다음 글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에 가장 알맞은 것은?우리네 학교 … | [9급 지방직 국어] 08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9급 지방직 국어] 08년 1회차
다음 글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에 가장 알맞은 것은?
우리네 학교 교육은, 그러니까 시작하던 그 때부터 우리 말과 우리 삶을 떠나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말과 우리 삶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었으므로,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말과 우리 얼로부터 멀어지고 육신마저 집과 고향을 멀리 떠나게 마련이었습니다. 제 것을 버리고 무시하고 떠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오래도록 걸어온 길이었기에, 학교 교육을 받은 시간의 길이와 내 것을 버리고 떠나간 마음과 공간의 거리가 늘 비례했습니다. 높은 학교까지 가서 많이 배운 사람은 반드시 고향을 버리고 멀리 떠나가 살아야 마땅한 것으로 여기다 보니 어쩌다가 그런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자 하면 모두들 업신여겼습니다. 쓸모없이 버려진 사람으로 보고 그의 공부가 헛되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교육의 역사입니다.
1
올바른 교육은 언제나 우리 삶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2
올바른 교육은 제 것보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
3
올바른 교육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고향에 돌아와 봉사해야 한다.
4
올바른 교육은 모름지기 자기 것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해설
필자의 취지는 올바른 교육은 자기 것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학교 교육이 “우리 말과 우리 삶을 떠나 있었”고 “제 것을 버리고 무시하고 떠나게 만드는 것”이었다며 이를 “서글픈 교육의 역사”라고 비판한다. 비판의 이면에는 교육이 우리말과 우리 삶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삶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진술: 삶을 떠난 교육을 비판한 필자의 입장과 정반대이다.
-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는 진술: 제 것을 버리게 한 교육을 비판했으므로 맞지 않는다.
- 고향에 돌아와 봉사해야 한다는 진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업신여긴 풍조를 사례로 들었을 뿐, 봉사의 의무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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