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논쟁이 있었던 무렵의 저술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재상 박유가… | [9급 지방직 한국사] 13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9급 지방직 한국사] 13년 1회차
다음 논쟁이 있었던 무렵의 저술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재상 박유가 아뢰기를 “청컨대 여러 신하, 관료로 하여금 여러 처를 두게 하되, 품위에 따라 그 수를 점차 줄이도록 하여 보통사람에 이르러서는 1처 1첩을 둘 수 있도록 하며, 여러 처에서 낳은 아들도 역시 본처가 낳은 아들처럼 벼슬을 할 수 있게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연등회 날 저녁 박유가 왕의 행차를 호위하여 따라갔는데, 어떤 노파가 그를 손가락질하면서 “첩을 두고자 요청한 자가 저 늙은이다.”라고 하였다. 듣는 사람들이 서로 전하여 서로 가리키니 무서워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건의를 정지하고, 결국 시행하지 못하였다. |
1
김부식이 진삼국사기표를 지었다.
2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찬술하였다.
3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다.
4
정인지가 훈민정음해례 서문을 지었다.
해설
박유가 축첩을 건의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이며, 같은 시기 일연이 「삼국유사」를 찬술하였다.
원 간섭기 남녀 인구 불균형을 이유로 박유가 다처제를 건의했으나 반발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바친 것은 고려 인종 때이다.
-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은 조선 건국 초 태조 때 저술되었다.
-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 서문은 조선 세종 때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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