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1[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해적이 출몰하여 무역선을 약탈하거나 신라인을 잡아 노비로 파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를 막기 위해 (가) 이/가 군진의 설치를 건의하자 흥덕왕은 청해진을 두고 그를 대사로 임명하였다.
    1
    김유신
    2
    대광현
    3
    장보고
    4
    연개소문
    해설

    (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장보고이다.

    신라 말 해적의 약탈을 막기 위해 군진 설치를 건의했고, ‘흥덕왕’이 ‘청해진’을 두고 그를 ‘대사’로 임명했다는 단서가 청해진 대사 장보고를 가리킨다.

    • 김유신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이끈 장군으로, 청해진보다 훨씬 앞선 시기의 인물이다.
    • 대광현은 발해의 세자로, 발해 멸망 뒤 고려에 귀부한 인물이다.
    • 연개소문은 고구려 말기에 정권을 장악한 인물로, 신라 흥덕왕 대와 시기가 맞지 않는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정동행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충렬왕이 쿠빌라이와 담판을 벌여 폐지하였다.
    2
    수령을 보좌하고, 수령과 향리의 비리를 감시하였다.
    3
    개경 환도를 반대하고 진도,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항전하였다.
    4
    일본 정벌을 위해 설치되었고, 이후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였다.
    해설

    정동행성은 일본 정벌을 위해 설치되었다가 이후 고려 내정 간섭 기구로 남았다.

    원은 충렬왕 대에 일본 원정을 준비하며 정동행성을 두었고, 원정이 실패한 뒤에도 이를 유지하며 고려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 충렬왕이 담판으로 폐지했다는 설명은 틀리다. 정동행성의 간섭 기능은 공민왕의 반원 개혁 때 이문소를 없애면서 크게 약화되었다.
    • 수령을 보좌하고 수령과 향리를 감시한 것은 조선의 지방 자치 기구인 유향소에 해당한다.
    • 개경 환도에 반대해 진도와 제주도로 옮겨 항전한 것은 삼별초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고려시대 불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지눌은 불교 개혁을 위해 수선사에서 결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2
    의천은 천태종을 개창하고,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려 하였다.
    3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4
    혜초는 인도 등을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썼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혜초를 고려시대 승려로 다룬 내용이다.

    혜초는 통일 신라 시기의 승려로, 인도 등을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겼으므로 고려시대 불교의 내용이 아니다.

    • 지눌이 수선사에서 결사 운동을 전개한 것은 고려 후기 불교 개혁의 내용으로 옳다.
    •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고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꾀한 것은 고려 중기의 일로 옳다.
    • 몽골 침입 때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은 옳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에서 설명하는 법전은?
    ○ 세조 대에 편찬이 시작되어 성종 대에 반포되었다.
    ○ 정치ㆍ경제ㆍ사회를 망라한 조선의 최고 법전으로 조선시대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1
    『경국대전』
    2
    『대전통편』
    3
    『조선경국전』
    4
    『육전조례』
    해설

    제시된 법전은 『경국대전』이다.

    ‘세조 대에 편찬이 시작되어 성종 대에 반포’되었다는 점과 조선의 최고 법전이라는 설명이 결정적 단서이다.

    • 『대전통편』은 정조 때 편찬된 법전으로, 세조·성종 대의 편찬 시기와 맞지 않는다.
    •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이 조선 초에 지어 태조에게 올린 사찬 법전이다.
    • 『육전조례』는 조선 말 고종 때 간행된 법전으로, 시기가 훨씬 뒤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5[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에 들어갈 말로 옳은 것은?
    정조가 죽은 뒤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는 60여 년 동안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가) 정치가 나타났다. 이 시기 권력은 비변사에 집중되었으며, 몇몇 가문 출신이 비변사와 군영의 요직을 차지해 권력 유지의 기반으로 삼았다.
    1
    붕당
    2
    민본
    3
    세도
    4
    탕평
    해설

    (가)에 들어갈 말은 세도이다.

    ‘순조, 헌종, 철종’ 시기에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고 ‘비변사’에 권력이 집중되었다는 단서는 세도 정치의 특징이다.

    • 붕당은 학문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나뉜 정치 집단으로, 소수 가문의 권력 독점과는 다르다.
    • 민본은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정치 이념으로, 특정 시기의 정치 형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 탕평은 영조와 정조가 붕당 간 대립을 완화하고자 추진한 정책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6[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에 들어갈 단체는?
    1920년대 국내에서는 일제와 타협하자는 자치 운동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사회주의 세력이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제휴를 주장하는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1927년에 (가) 이/가 창립되었다. (가) 은/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열고자 하였다. 일제 경찰은 이러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 그 간부들을 체포하였다.
    1
    중광단
    2
    신간회
    3
    정의부
    4
    참의부
    해설

    (가)에 들어갈 단체는 신간회이다.

    ‘정우회 선언’을 계기로 ‘1927년’에 창립되었고,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추진했다는 단서가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결성된 신간회를 가리킨다.

    • 중광단은 대종교 세력이 북간도에서 조직한 항일 무장 단체이다.
    • 정의부는 1920년대 남만주에서 활동한 독립군 자치 조직이다.
    • 참의부는 압록강 유역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직할을 표방한 독립군 조직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7[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1910년 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제는 조선 총독부를 중심으로 식민 통치를 위한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특히 1910년대에는 헌병이 경찰 업무를 담당하는 헌병 경찰제를 시행하였다. 무단통치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일제는 한국인의 항일 의지를 꺾기 위해 강압적인 지배 정책을 시행하였다.
    1
    조선어학회 사건 발생
    2
    창씨개명 강제 시행
    3
    국민 징용령 제정
    4
    조선 태형령 공포
    해설

    ‘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은 조선 태형령 공포이다.

    제시문의 ‘헌병 경찰제’와 ‘무단통치기’는 1910년대를 가리키며, 조선 태형령은 1912년에 공포되어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적용하였다.

    • 조선어학회 사건은 1942년에 일어난 민족 말살 통치기의 사건이다.
    • 창씨개명은 1940년부터 강제로 시행되었다.
    • 국민 징용령은 중일 전쟁 이후인 1939년에 제정되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8[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압력에 시달리던 고종은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고자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으로 정했으며, 황제가 무한한 군주권을 행사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한국 국제를 공포하였다. 또한 ‘옛것을 근본으로 삼고 새것을 참고한다.’라는 구본신참을 표방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1
    양지아문을 설치하여 양전 사업을 추진하였다.
    2
    통상 사무를 담당하는 통리기무아문을 창설하였다.
    3
    주요 지역에 농민 자치 조직인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4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ㆍ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해설

    밑줄 친 ‘개혁’은 광무개혁이며, 양지아문을 설치해 양전 사업을 추진한 것이 그 내용이다.

    ‘대한국 국제’와 ‘구본신참’이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을 가리키는 단서이다. 대한 제국 정부는 1898년 양지아문을 설치해 토지 조사에 나섰다.

    •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대한 제국 수립 이전의 일이다.
    • 집강소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 전주 화약 뒤 설치되었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1882년에 체결되어 대한 제국 수립보다 앞선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9[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태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신라 왕이 사신을 보내 아뢰기를 “왜인이 나라에 가득 차 성을 부수고 노객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려 하니 왕께 구원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왕은 은혜와 자비를 내려 … (중략) …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였다.
    1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2
    요동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3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4
    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평양 천도이다.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왕은 장수왕이다.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왜를 물리쳤다는 내용에서 ‘태왕’은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임을 알 수 있다.

    • 요동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장악한 것은 광개토 대왕의 업적으로 옳다.
    •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은 옳다.
    • 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한 것은 옳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0[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백제의 유물 또는 유적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칠지도 - 왜와의 긴밀한 교류 관계를 보여준다.
    2
    무령왕릉 -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이다.
    3
    미륵사지 석탑 - 내부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4
    정림사지 5층 석탑 - 당나라의 백제 평정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통일 신라의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는 사리봉영기 등 사리 장엄구가 나왔다.

    • 칠지도는 백제와 왜의 긴밀한 교류 관계를 보여 주는 유물로 옳다.
    •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옳다.
    • 정림사지 5층 석탑에는 당이 백제를 평정한 일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어 옳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1[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가) 의 무왕이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자 위기를 느낀 당나라가 압박에 나섰다. 이에 무왕은 수군을 보내 당의 산둥 지방을 선제공격했고, 뒤를 이은 문왕은 당나라와 친선 관계를 맺고 제도를 정비하였다.
    1
    군사 조직으로 9서당을 조직하였다.
    2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였다.
    3
    중앙 정치는 집사부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4
    지방 행정구역으로 22개의 담로를 설치하였다.
    해설

    (가) 국가는 발해이며,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였다.

    ‘무왕’이 수군을 보내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했고, 뒤이은 ‘문왕’이 당과 친선 관계를 맺었다는 단서가 발해를 가리킨다.

    • 9서당은 통일 신라의 중앙군 조직이다.
    • 집사부 중심의 중앙 정치는 신라의 체제이다.
    • 22개의 담로는 백제 무령왕 때 지방에 설치한 것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2[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내가 삼국의 기원을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뒤에 신라가 일어났다. … (중략) … 그런데 당 고종이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백제를 공멸하였으니 지금 내가 어찌 완산(전주)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 『삼국사기』 -
    1
    중국의 오월(吳越)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2
    신라 서남 해안을 지키던 군인 출신이었다.
    3
    신라의 금성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였다.
    4
    북원경(원주)에서 양길의 부하로 활동하며 세력을 키웠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양길의 부하로 활동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궁예의 행적이다.

    ‘완산(전주)에 도읍’하고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겠다는 내용에서 밑줄 친 인물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임을 알 수 있다.

    • 중국의 오월에 사신을 파견해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견훤의 행적으로 옳다.
    • 신라 서남 해안을 지키던 군인 출신이라는 것은 옳다.
    • 신라의 금성을 습격해 경애왕을 죽인 것은 옳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3[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 (나) 사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 여진 세력이 커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커지자, 기병의 중요성을 강조한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을 편성하였다.
    (나) 인종과 관료들이 서경 천도가 현실성 없다고 반대하자, 묘청 등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1
    교정도감이 설치되었다.
    2
    『삼국유사』가 편찬되었다.
    3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켰다.
    4
    지방에 12목이 설치되었다.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이자겸의 난이다.

    (가) ‘별무반’ 편성은 숙종 대인 1104년, (나) ‘묘청’의 서경 반란은 인종 대인 1135년의 일이다. 이자겸의 난은 1126년에 일어나 두 사건 사이에 놓인다.

    • 교정도감은 1209년 최충헌이 설치한 기구로, (나)보다 뒤이다.
    • 『삼국유사』는 충렬왕 대에 일연이 편찬한 것으로, (나)보다 뒤이다.
    • 12목은 성종 대인 983년에 설치되어 (가)보다 앞선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4[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에 들어갈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최승로가 성종께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글에 “ (가) 께서 삼한을 통합한 후에 지방관을 파견하려 하였으나, 처음이어서 일이 번거로워 시행할 겨를이 없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1
    만권당을 세웠다.
    2
    훈요 10조를 남겼다.
    3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다.
    4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해설

    (가)에 들어갈 왕은 고려 태조이며, 후대 왕에게 훈요 10조를 남겼다.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상소에서 ‘삼한을 통합’했다고 언급한 왕이므로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을 가리킨다.

    • 만권당은 충선왕이 원의 수도에 세운 학문 연구 기관이다.
    • 노비안검법은 광종이 호족 세력을 누르기 위해 실시하였다.
    •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이 신돈을 등용해 권문세족의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게 한 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5[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왕은 공법을 시행하였다.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어 면적을 달리하고, 해마다 풍흉에 따라 거둘 양을 9등급으로 나누어 4두에서 20두까지 차등 있게 전세를 거두었다.
    1
    대동법을 시행하였다.
    2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3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4
    현직 관리에게만 과전을 주었다.
    해설

    밑줄 친 ‘왕’은 세종이며, 그의 업적은 『농사직설』 편찬이다.

    ‘공법’을 시행하고 토지를 ‘6등급’, 풍흉을 ‘9등급’으로 나눈 것은 세종 대의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이다.

    • 대동법은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다.
    • 훈련도감은 선조 때 임진왜란 중에 설치되었다.
    • 현직 관리에게만 과전을 지급한 것은 세조 때의 직전법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6[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통상 조약 체결을 요구하였으나, 조선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군함을 보내 강화도를 침략해 초지진, 광성보 등을 점령하였다. 어재연이 이끄는 부대는 광성보에서 미군에 대항해 결사적으로 항전하여 대부분 전사하였다.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가 협상에 응하지 않자 미군은 철수하였다.

    병인양요 발생
    (가)
    강화도조약 체결
    (나)
    동학농민군 전주성 점령
    (다)
    독립협회 창립
    (라)
    일제의 을사늑약 강요
    1
    (가)
    2
    (나)
    3
    (다)
    4
    (라)
    해설

    제시된 사건은 신미양요이며, 발생 시기는 (가) 구간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한 미국의 강화도 침략, '초지진'·'광성보' 점령, '어재연' 부대의 항전이 단서이다. 신미양요는 1871년의 일로, 1866년 병인양요와 1876년 강화도 조약 사이에 해당한다.

    • (나) 구간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부터 1894년 동학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까지로, 신미양요보다 뒤의 시기이다.
    • (다) 구간은 1894년 전주성 점령부터 1896년 독립 협회 창립까지로, 신미양요보다 뒤의 시기이다.
    • (라) 구간은 1896년 독립 협회 창립부터 1905년 을사늑약 강요까지로, 신미양요보다 뒤의 시기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7[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이항로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운 (가) 은/는 철종 때 과거에 합격한 뒤 예조좌랑, 동부승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흥선대원군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에 유배되는 고초를 겪었으며, 운요호 사건 직후 일본과 교섭을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유생과 함께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작성했다. 그는 “저들이 비록 왜인이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양 오랑캐와 다를 바 없다.”라는 내용의 왜양일체론을 내세웠다.
    1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하였다.
    2
    을사늑약에 반대해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3
    만주의 삼원보에 신흥 무관 학교를 만들었다.
    4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발표하였다.
    해설

    (가) 인물은 최익현이며, 을사늑약에 반대해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항로의 문하’, 흥선대원군 비판 상소, 개항 반대 상소와 ‘왜양일체론’이 최익현을 가리키는 단서이다.

    •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한 인물은 이승훈이다.
    • 삼원보에 신흥 무관 학교를 만든 것은 이회영 등 신민회 계열 인사들이다.
    •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한 인물은 장지연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8[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 신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양기탁 등은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워 (가) 을/를 창간하였다. (가) 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을 비판하고 항일 운동을 호의적으로 보도하는 등 대중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데 노력하였다. 통감부는 영국 측에 베델의 처벌을 요구하는 등 이 신문을 탄압했다.
    1
    브나로드 운동을 추진하였다.
    2
    국채 보상 운동에 참여하였다.
    3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기관지였다.
    4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해설

    (가)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이며, 국채 보상 운동에 참여하였다.

    ‘양기탁’과 ‘베델’이 창간하고 항일 논조를 펴 통감부의 탄압을 받았다는 내용이 대한매일신보를 가리킨다.

    • 브나로드 운동은 1930년대 초 동아일보가 추진하였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기관지는 『독립신문』이다.
    • 조선 물산 장려회는 1920년대에 조만식 등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9[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는 을지문덕과 이순신 등의 전기를 펴냈으며, 민족을 역사 서술의 주체로 내세워 근대 역사학의 방향을 제시한 「독사신론」을 저술하였다. 또 그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하고 독립의 의지를 밝힌 「대동단결선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
    육영공원을 세웠다.
    2
    『조선책략』을 저술하였다.
    3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였다.
    4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해설

    밑줄 친 ‘그’는 신채호이며, 의열단의 활동 지침인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을지문덕·이순신 전기, ‘독사신론’, ‘대동단결선언’ 참여가 신채호를 가리키는 단서이다.

    • 육영공원은 조선 정부가 세운 근대식 관립 학교로, 개인의 업적이 아니다.
    • 『조선책략』은 청의 외교관 황준헌이 저술하였다.
    • 한인 애국단을 조직한 인물은 김구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0[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
    (가)
    ↓
    제헌 국회를 소집하기 위한 총선거가 시행되었다.
    1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었다.
    2
    국가 총동원법이 공포되었다.
    3
    미ㆍ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4
    북한의 남침으로 6ㆍ25 전쟁이 일어났다.
    해설

    (가) 시기의 사실은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이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조직은 1945년, 제헌 국회를 위한 총선거는 1948년의 일이다.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6년과 1947년에 열렸으므로 그 사이에 놓인다.

    • 농지 개혁법은 1949년에 제정되어 총선거보다 뒤이다.
    • 국가 총동원법은 일제가 1938년에 공포해 시기가 앞선다.
    • 6·25 전쟁은 1950년에 일어나 총선거보다 뒤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정답과 해설은 무료인가요?

이 페이지의 20문항 정답과 해설은 로그인 없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무제한 풀이·실전 모의고사·PDF 출력·전자책 다운로드는 베이직 플랜에 포함됩니다.

이 회차를 CBT 로 직접 풀어볼 수 있나요?

지역인재 9급 한국사 기출문제 암기장에서 이 회차를 회차별·랜덤으로 풀고 오답노트에 자동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지역인재 9급 한국사 기출문제 풀러 가기 →

시험지 PDF 나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나요?

이 회차의 인쇄용 시험지 PDF 페이지에서 시험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험지 PDF 받기 →

[지역인재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문항별 상세 페이지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