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1[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다음 시가를 지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은?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울사 이 내 몸은
    뉘와 더불어 돌아가랴

    1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2
    낙랑군을 축출하였다.
    3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였다.
    4
    율령을 반포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해설

    이 시가는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이며, 유리왕 때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였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는 짝을 잃은 외로움을 꾀꼬리에 빗댄 「황조가」의 구절이다. 유리왕은 도읍을 졸본에서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으로 옮겼다.

    • 진대법은 고국천왕 때 을파소의 건의로 시행되었다.
    • 낙랑군 축출은 미천왕 때의 일이다.
    • 율령 반포를 통한 중앙집권 체제 강화는 소수림왕 때의 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밑줄 친 '유학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풍기군수 주세붕은 고려시대 유학자의 고향인 경상도 순흥면 백운동에 회헌사(晦軒祠)를 세우고, 1543년에 교육시설을 더해서 백운동 서원을 건립하였다.

    1
    해주향약을 보급하였다.
    2
    원 간섭기에 성리학을 국내로 소개하였다.
    3
    「성학십도」를 저술하여 경연에서 강의하였다.
    4
    일본의 동정을 담은 「해동제국기」를 저술하였다.
    해설

    밑줄 친 유학자는 안향으로, 원 간섭기에 성리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였다.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을 세워 제사 지낸 인물이며, '회헌(晦軒)'은 안향의 호이다. 백운동 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뒤에 소수 서원으로 사액되었다.

    • 해주향약을 보급한 인물은 조선의 이이이다.
    • 「성학십도」를 지어 선조에게 올린 인물은 조선의 이황이다.
    • 「해동제국기」는 조선 성종 때 신숙주가 일본에 다녀와 저술한 책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밑줄 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919년 3월 1일 탑골 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이 공원에 있는 탑은 왕이 세운 것으로 경천사 10층 석탑의 영향을 받았다.

    1
    우리나라 전쟁사를 정리한 「동국병감」을 편찬하였다.
    2
    우리나라 역대 문장의 정수를 모은 「동문선」을 편찬하였다.
    3
    6조 직계제를 실시하여 국왕 중심의 정치체제를 구축하였다.
    4
    한양으로 다시 천도하면서 이궁인 창덕궁을 창건하였다.
    해설

    밑줄 친 왕은 세조로, 6조 직계제를 실시하여 국왕 중심의 정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탑골 공원'에 있는 탑은 세조 때 세운 원각사지 10층 석탑으로, 고려 '경천사 10층 석탑'의 영향을 받았다. 세조는 계유정난으로 즉위한 뒤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였다.

    • 「동국병감」은 문종 때 편찬되었다.
    • 「동문선」은 성종 때 서거정 등이 편찬하였다.
    • 한양 재천도와 이궁 창덕궁 창건은 태종 때의 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가)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가 )이/가 올립니다. “지방의 경우에는 관찰사와 수령, 서울의 경우에는 홍문관과 육경(六卿), 그리고 대간(臺諫)들이 모두 능력 있는 사람을 천거하게 하십시오. 그 후 대궐에 모아 놓고 친히 여러 정책과 관련된 대책 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인물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역대 선왕께서 하지 않으셨던 일이요, 한나라의 현량과와 방정과의 뜻을 이은 것입니다. 덕행은 여러 사람이 천거하는 바이므로 반드시 헛되거나 그릇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1
    기묘사화로 탄압받았다.
    2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다.
    3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지지하였다.
    4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폐비하는 데 동조하였다.
    해설

    (가)는 현량과 실시를 건의한 조광조로, 그는 기묘사화로 탄압받아 죽었다.

    관찰사·수령·홍문관·육경·대간이 인재를 '천거'하고 왕 앞에서 '대책 시험'을 치르게 하자는 제도가 '한나라의 현량과와 방정과'를 본뜬 현량과이다. 조광조는 중종 때 현량과로 사림을 등용하고 위훈 삭제를 추진하다가 훈구 세력의 반발로 기묘사화를 당하였다.

    •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인물은 김일손으로,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었다.
    •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은 명종 때로, 조광조 사후의 일이다.
    • 연산군 생모 윤씨의 폐비에 동조한 일은 성종 때의 일로, 뒤에 갑자사화의 빌미가 되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5[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신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을 바르게 연결한 것만을 모두 고르면?

    ㄱ. 양양 오산리 유적 - 덧무늬토기
    ㄴ. 서울 암사동 유적 - 빗살무늬토기
    ㄷ. 공주 석장리 유적 - 미송리식토기
    ㄹ. 부산 동삼동 유적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1
    ㄱ, ㄴ
    2
    ㄱ, ㄹ
    3
    ㄴ, ㄷ
    4
    ㄷ, ㄹ
    해설

    바르게 연결된 것은 양양 오산리 유적-덧무늬토기와 서울 암사동 유적-빗살무늬토기이다.

    오산리와 암사동은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이며,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는 모두 신석기 시대의 토기이다.

    • 공주 석장리는 구석기 유적이고, 미송리식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토기이다.
    • 부산 동삼동은 신석기 유적이지만,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연천 전곡리 등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 유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6[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가) 시기에 신라에서 있었던 사실은?

    고구려의 침입으로 한성이 함락되자,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

    ↓

    (가)

    ↓

    성왕은 사비로 도읍을 옮겼다.

    1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2
    황초령순수비를 세웠다.
    3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였다.
    4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해설

    (가) 시기 신라에서는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475년, 성왕의 '사비' 천도는 538년이다. 신라의 불교 공인은 법흥왕 때인 527년으로 이 사이에 해당한다.

    • 대가야 정복은 진흥왕 때인 562년으로 사비 천도 이후이다.
    • 황초령 순수비 건립은 진흥왕 때인 568년으로 사비 천도 이후이다.
    • 거칠부의 「국사」 편찬은 진흥왕 때인 545년으로 사비 천도 이후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7[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시기별 대외 교류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백제: 노리사치계가 일본에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
    2
    통일신라: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3
    고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항으로 번성하였다.
    4
    조선: 명과의 교류에서 중강개시와 책문후시가 전개되었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조선이 명과의 교류에서 중강개시·책문후시를 전개했다는 설명이다.

    중강개시와 책문후시는 조선 후기 청과의 국경 지대에서 이루어진 무역으로, 명과의 교류와는 관계가 없다.

    • 백제의 노리사치계는 성왕 때 일본에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
    • 통일신라의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장악하였다.
    • 고려 때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는 송·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드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8[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우리나라 세계유산과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ㄱ.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는 전축분인 6호분과 무령왕릉이 있다.
    ㄴ. 양산 통도사는 금강계단 불사리탑이 있는 삼보 사찰이다.
    ㄷ.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피난했던 산성이다.
    ㄹ. 『승정원일기』는 역대 왕의 훌륭한 언행을 『실록』에서 뽑아 만든 사서이다.

    1
    ㄱ, ㄴ
    2
    ㄴ, ㄷ
    3
    ㄱ, ㄴ, ㄷ
    4
    ㄱ, ㄷ, ㄹ
    해설

    옳은 것은 송산리 고분군, 통도사, 남한산성에 대한 설명이다.

    송산리 고분군의 6호분과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전축분)이다. 통도사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어 불보 사찰로 꼽히는 삼보 사찰이며,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피난하여 항전한 곳이다.

    • 역대 왕의 훌륭한 언행을 『실록』에서 뽑아 엮은 사서는 『국조보감』이며,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에서 왕명 출납과 국정 사무를 날마다 기록한 일기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9[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다음은 발해 수도에 대한 답사 계획이다. 각 수도에 소재하는 유적에 대한 탐구 내용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문제 이미지
    1
    ㉠, ㉡
    2
    ㉠, ㉣
    3
    ㉡, ㉢
    4
    ㉢, ㉣
    해설

    옳은 탐구 내용은 화룡의 용두산 고분군 탐구와 영안의 오봉루 성문터 탐구이다.

    지도에서 ㉠은 돈화(동모산 일대), ㉡은 화룡(중경), ㉢은 영안(상경), ㉣은 훈춘(동경)이다. 화룡의 용두산 고분군에는 당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인 정효공주 무덤이 있고, 상경 용천부는 당의 장안성을 본떠 쌓았으며 오봉루 성문터가 남아 있다.

    • 정효공주 무덤은 돈화가 아니라 화룡의 용두산 고분군에 있다.
    • 고구려 무덤 양식(굴식 돌방무덤)을 계승한 정혜공주 무덤은 훈춘이 아니라 돈화의 육정산 고분군에 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0[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다음 상소문을 올린 왕대에 있었던 사실은?

    석교(釋敎)를 행하는 것은 수신(修身)의 근본이요, 유교를 행하는 것은 이국(理國)의 근원입니다. 수신은 내생의 자(資)요, 이국은 금일의 요무(要務)로서, 금일은 지극히 가깝고 내생은 지극히 먼 것인데도 가까움을 버리고 먼 것을 구함은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1
    양경과 12목에 상평창을 설치하였다.
    2
    균여를 귀법사 주지로 삼아 불교를 정비하였다.
    3
    국자감에 7재를 두어 관학을 부흥하고자 하였다.
    4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지급하는 경정 전시과를 실시하였다.
    해설

    이 상소문은 성종 때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로, 성종 때 양경과 12목에 상평창을 설치하였다.

    '석교(불교)'는 수신의 근본, '유교'는 이국(나라를 다스림)의 근원이라며 유교 정치 이념을 강조한 것이 시무 28조의 핵심이다. 성종은 이를 받아들여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개경·서경과 12목에 물가 조절 기구인 상평창을 두었다.

    • 균여를 귀법사 주지로 삼아 불교를 정비한 것은 광종 때이다.
    • 국자감에 7재를 두어 관학을 진흥한 것은 예종 때이다.
    • 경정 전시과를 실시한 것은 문종 때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1[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한미 원조 협정을 체결하였다.
    2
    농지개혁에 따른 지가증권을 발행하였다.
    3
    제분, 제당, 면방직 등 삼백 산업을 적극 지원하였다.
    4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해설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이 아닌 것은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이다.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 주도의 군사 정부가 1962년부터 추진하였다.

    • 한미 원조 협정은 이승만 정부 수립 직후 체결되어 미국의 경제 원조가 시작되었다.
    • 이승만 정부는 유상 매수·유상 분배의 농지 개혁을 실시하면서 지주에게 지가 증권을 발급하였다.
    •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원조 물자를 바탕으로 제분·제당·면방직의 삼백 산업을 육성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2[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민족 말살 정책이 아닌 것은?
    1
    아침마다 궁성요배를 강요하였다.
    2
    일본에 충성하자는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하였다.
    3
    공업 자원의 확보를 위하여 남면북양 정책을 시행하였다.
    4
    황국 신민 의식을 강화하고자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해설

    민족 말살 정책이 아닌 것은 남면북양 정책이다.

    남면북양 정책은 1930년대 초 일본 방직 공업의 원료를 확보하려고 남부에는 면화, 북부에는 양 사육을 강요한 경제 수탈 정책으로, 중일전쟁 이전에 시작되었다.

    • 궁성 요배 강요는 중일전쟁 이후 황국 신민화 정책의 하나이다.
    •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는 중일전쟁 직후 시작된 민족 말살 정책이다.
    •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꾼 것은 1941년의 일로, 황국 신민 의식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3[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밑줄 친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905년 8월 4일 오후 3시, 우리가 앉아있는 곳은 새거모어 힐의 대기실, 루스벨트의 저택이다. 새거모어 힐은 루스벨트의 여름용 대통령 관저로 3층짜리 저택이다. …(중략)… 대통령과 마주하자 나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저는 대한제국 황제의 친필 밀서를 품고 지난 2월에 헤이 장관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 밀서에서 우리 황제는 1882년에 맺은 조약의 거중조정 조항에 따른 귀국의 지원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1
    영사재판권이 인정되었다.
    2
    임오군란을 계기로 체결되었다.
    3
    최혜국 대우 조항이 포함되었다.
    4
    「조선책략」의 영향을 받았다.
    해설

    밑줄 친 조약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며, 이 조약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체결된 것이 아니다.

    '루스벨트'에게 '1882년'에 맺은 조약의 '거중조정' 조항을 근거로 지원을 요청한 것이므로 미국과 맺은 조약이다. 이 조약은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전에 체결되었고, 임오군란 이후 맺어진 것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는 미국의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이 규정되었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는 처음으로 최혜국 대우 조항이 포함되었다.
    • 미국과의 연합을 권한 「조선책략」의 유포가 조약 체결의 배경이 되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4[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고려시대 향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ㄱ. 부호장 이하의 향리는 사심관의 감독을 받았다.
    ㄴ. 상층 향리는 과거로 중앙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ㄷ. 일부향리의 자제들은 기인으로 선발되어 개경으로 보내졌다.
    ㄹ. 속현의 행정 실무는 향리가 담당하였다.

    1
    ㄱ
    2
    ㄱ, ㄴ
    3
    ㄴ, ㄷ, ㄹ
    4
    ㄱ, ㄴ, ㄷ, ㄹ
    해설

    제시된 네 가지 설명이 모두 옳다.

    고려의 향리는 지방 행정의 실무를 맡은 계층으로, 중앙은 사심관·기인 제도로 이들을 통제하였다.

    • 부호장 이하의 향리는 출신 지역의 사심관에게 감독을 받았다.
    • 호장·부호장 등 상층 향리의 자제는 과거에 응시해 중앙 관리로 진출할 수 있었다.
    • 향리의 자제를 기인으로 뽑아 개경에 머물게 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은 향리가 실제 행정을 담당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5[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밑줄 친 '이 농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대개 이 농법을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두 땅의 힘으로 하나의 모를 서로 기르는 것이고, …(중략)… 옛 흙을 떠나 새 흙으로 가서 고갱이를 씻어 내어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릇 벼를 심는 논에는 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하천이나 물을 댈 수 있는 저수지가 꼭 필요하다. 이러한 것이 없다면 볏논이 아니다.

    -『임원경제지』-

    ㄱ. 세종 때 편찬된 『농사직설』에도 등장한다.
    ㄴ. 고랑에 작물을 심도록 하였다.
    ㄷ. 『경국대전』의 수령칠사 항목에서도 강조되었다.
    ㄹ. 직파법보다 풀 뽑는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었다.

    1
    ㄱ, ㄴ
    2
    ㄱ, ㄹ
    3
    ㄴ, ㄷ
    4
    ㄷ, ㄹ
    해설

    밑줄 친 농법은 이앙법(모내기법)이며, 옳은 것은 『농사직설』에도 등장한다는 것과 제초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모를 서로 기르는' 방식과 물을 댈 '저수지'가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모를 키워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임을 알 수 있다. 이앙법은 조선 전기 『농사직설』에 소개되었으나 가뭄 피해 우려로 일부 지역에 제한되었고, 조선 후기에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 고랑에 작물을 심는 것은 밭농사의 견종법으로, 이앙법과 관계없다.
    • 이앙법은 가뭄 때 피해가 커서 국가가 오히려 억제하였으므로, 『경국대전』 수령칠사에서 강조된 농법이 아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6[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밑줄 친 '헌법'이 시행 중인 시기에 일어난 사건은?

    이 헌법은 한 사람의 집권자가 긴급조치라는 형식적인 법 절차와 권력 남용으로 양보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 인권과 존엄성을 억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 남용에 형식적인 합법성을 부여하고자 …(중략)…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한 사람의 집권자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1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2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하였다.
    3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4
    한일 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6‧3 시위가 있었다.
    해설

    밑줄 친 헌법은 유신 헌법이며, 이 헌법이 시행 중이던 1979년에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긴급조치'와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한 사람의 집권자에게 집중시켰다는 단서로 1972년 12월 공포된 유신 헌법임을 알 수 있다. 유신 헌법은 1980년 제8차 개헌 때까지 유지되었다.

    • 국민교육헌장 선포는 1968년으로 유신 헌법 이전이다.
    • 7·4 남북 공동 성명은 1972년 7월로 유신 헌법 공포 이전이다.
    • 한일 협정 체결에 반대한 6·3 시위는 1964년의 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7[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밑줄 친 '회의'에서 있었던 사실은?

    본 회의는 2천만 민중의 공정한 뜻에 바탕을 둔 국민적 대화합으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국민의 완전한 통일을 공고하게 하며, 광복 대업의 근본 방침을 수립하여 우리 민족의 자유를 만회하며 독립을 완성하기를 기도하고 이에 선언하노라. …(중략)… 본 대표 등은 국민이 위탁한 사명을 받들어 국민적 대단결에 힘쓰며 독립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확립하여 통일적 기관 아래에서 대업을 완성하고자 하노라.

    1
    대한민국 건국 강령이 상정되었다.
    2
    박은식이 임시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3
    민족유일당운동 차원에서 조선혁명당이 참가하였다.
    4
    임시정부를 대체할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왔다.
    해설

    밑줄 친 회의는 1923년의 국민대표회의로, 이 회의에서 임시정부를 대체할 새 조직을 만들자는 주장(창조파)이 나왔다.

    '본 대표 등'이 '국민적 대단결'과 '독립운동이 나아갈 방향'의 확립을 내세운 선언은 국민대표회의 선언서이다. 회의는 임시정부를 개편하자는 개조파와 새 정부를 세우자는 창조파로 갈려 결렬되었다.

    • 대한민국 건국 강령은 1941년 충칭 임시정부가 발표하였다.
    • 박은식은 국민대표회의 이후인 1925년 이승만 탄핵 뒤 임시대통령에 선출되었다.
    • 조선혁명당은 1920년대 말 이후에 결성된 정당이므로 1923년 회의에 참가할 수 없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8[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다음 법령에 따라 시행된 사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1조 토지의 조사 및 측량은 본령에 따른다.
    제4조 토지 소유자는 조선 총독이 정한 기간 내에 주소, 성명 또는 명칭 및 소유지의 소재, 지목, 자 번호, 사표, 등급, 지적, 결수를 임시토지조사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단 국유지는 보관 관청이 임시토지 조사국장에게 통지해야 한다.

    1
    농상공부를 주무 기관으로 하였다.
    2
    역둔토, 궁장토를 총독부 소유로 만들었다.
    3
    토지약탈을 위해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였다.
    4
    춘궁 퇴치, 농가 부채 근절을 목표로 내세웠다.
    해설

    이 법령은 토지 조사령이며, 이에 따른 토지 조사 사업으로 역둔토·궁장토가 총독부 소유가 되었다.

    '토지의 조사 및 측량', 정해진 기간 내 '신고', '임시토지조사국장' 등의 단서로 1912년 공포된 토지 조사령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업에서 신고되지 않은 토지와 역둔토·궁장토 같은 공공 기관 소유지가 총독부 소유로 넘어갔다.

    • 토지 조사 사업의 주무 기관은 농상공부가 아니라 총독부 산하의 임시토지조사국이었다.
    • 동양 척식 주식회사는 토지 조사령 이전인 1908년에 설립되었으며, 이 법령에 따라 세워진 것이 아니다.
    • 춘궁 퇴치와 농가 부채 근절은 1930년대 농촌 진흥 운동의 구호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9[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개항기 무역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개항장에서 조선인 객주가 중개 활동을 하였다.
    2
    조ㆍ청 무역장정으로 청국에서의 수입액이 일본을 앞질렀다.
    3
    일본 상인은 면제품을 팔고, 쇠가죽ㆍ쌀ㆍ콩 등을 구입하였다.
    4
    조ㆍ일 통상장정의 개정으로 곡물 수출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조·청 무역 장정으로 청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설명이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이후 청 상인의 진출로 청으로부터의 수입이 크게 늘어 일본과 비슷한 수준까지 접근했지만, 일본을 앞지르지는 못하였다.

    • 개항 초기 외국 상인의 활동이 개항장 일대로 제한되어 조선인 객주·여각이 중개 활동으로 성장하였다.
    • 일본 상인은 영국산 면제품을 중계하여 팔고 쌀·콩·쇠가죽 등을 사 갔다.
    • 개정된 조·일 통상 장정에 방곡령 규정이 들어가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0[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밑줄 친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군역에 뽑힌 장정에게 군포를 거두었는데, 그 폐단이 많아서 백성들이 뼈를 깎는 원한을 가졌다. 그런데 사족들은 한평생 한가하게 놀며 신역(身役)이 없었다. …(중략)… 그러나 유속(流俗)에 끌려 이행되지 못하였으나 갑자년 초에 그가 강력히 나서서 귀천이 동일하게 장정 한 사람마다 세납전(歲納錢) 2민(緡)을 바치게 하니, 이를 동포전(洞布錢)이라고 하였다.

    -『매천야록』-

    1
    만동묘 건립을 주도하였다.
    2
    군국기무처 총재를 역임하였다.
    3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하고 5군영을 부활하였다.
    4
    탕평 정치를 정리한 「만기요람」을 편찬하였다.
    해설

    밑줄 친 '그'는 흥선 대원군으로, 임오군란 때 재집권하여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하고 5군영을 부활시켰다.

    '갑자년 초'에 '귀천이 동일하게' 군포를 내게 한 '동포전'은 양반에게도 군포를 거둔 흥선 대원군의 호포제(동포제)를 가리킨다. 흥선 대원군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다시 정권을 잡자 개화 정책 기구를 없애고 옛 군제를 되살렸다.

    • 만동묘는 숙종 때 송시열의 유지에 따라 세워졌으며, 흥선 대원군은 오히려 만동묘를 철폐하였다.
    • 군국기무처의 총재는 김홍집이 맡았다.
    • 「만기요람」은 순조 때 서영보·심상규 등이 재정과 군정을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전 회차를 한 권으로 — 9급 국가직 한국사 기출문제 PDF 전자책(문제집·정답해설집) →

[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정답과 해설은 무료인가요?

이 페이지의 20문항 정답과 해설은 로그인 없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무제한 풀이·실전 모의고사·PDF 출력·전자책 다운로드는 베이직 플랜에 포함됩니다.

이 회차를 CBT 로 직접 풀어볼 수 있나요?

9급 국가직 한국사 기출문제 암기장에서 이 회차를 회차별·랜덤으로 풀고 오답노트에 자동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9급 국가직 한국사 기출문제 풀러 가기 →

시험지 PDF 나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나요?

이 회차의 인쇄용 시험지 PDF 와, 전 회차를 문제집·정답해설집으로 묶은 PDF 전자책을 제공합니다. 9급 국가직 한국사 기출문제 PDF 전자책 보기 →

[9급 국가직 한국사] 21년 1회차 문항별 상세 페이지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