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1[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다음 풍습이 있었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였다.

    - 목곽 입구에는 죽은 자가 먹을 양식으로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놓기도 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

    1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2
    제가가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
    3
    소도라는 신성 구역이 존재하였다.
    4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다.
    해설

    자료는 옥저의 장례 풍습이며, 옥저에는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시체를 가매장했다가 뼈를 추려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고 입구에 쌀 항아리를 매달았다는 것은 옥저의 골장제(가족 공동 무덤)에 대한 기록이다.

    • 제가가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린 나라는 부여이다.
    • 소도라는 신성 구역이 존재한 곳은 삼한이다.
    •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연 나라는 동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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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미륵사지에는 목탑 양식의 석탑이 있다.
    2
    정림사지에는 백제의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3
    능산리 고분군에는 계단식 돌무지무덤이 있다.
    4
    무령왕릉에는 무덤 주인공을 알려주는 지석이 있었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능산리 고분군에 계단식 돌무지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사비 시기 백제 왕실의 무덤으로 굴식 돌방무덤이 중심이며, 계단식 돌무지무덤은 한성 시기의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 볼 수 있다.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 양식을 석재로 옮긴 석탑이므로 옳다.
    • 부여 정림사지에는 백제의 5층 석탑이 남아 있으므로 옳다.
    • 공주 무령왕릉에서는 무덤 주인공을 알려 주는 지석이 출토되었으므로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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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조선 시대의 관청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사간원-교지를 작성하였다.
    2
    한성부-시정기를 편찬하였다.
    3
    춘추관-외교문서를 작성하였다.
    4
    승정원-국왕의 명령을 출납하였다.
    해설

    옳은 설명은 승정원이 국왕의 명령을 출납하였다는 것이다.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국왕 비서 기관이고, 나머지 선택지는 관청과 기능이 서로 어긋나 있다.

    •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을 맡은 언론 기관이며, 교지 작성은 예문관의 일이다.
    • 한성부는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맡았으며, 시정기 편찬은 춘추관의 일이다.
    • 춘추관은 역사 기록과 실록 편찬을 맡았으며, 외교문서 작성은 승문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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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1 운동 직후에 만들어진 ( 가 )은/는 연통제라는 비밀 행정 조직을 만들었으며, 국내 인사와의 연락과 이동을 위해 교통국을 두었다. 또 외교 선전물을 간행하여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 가 )의 활동 방향을 두고 외교 운동 노선과 무장투쟁 노선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1
    외교 운동을 위해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설치하였다.
    2
    비밀결사 운동을 추진하고자 독립 의군부를 만들었다.
    3
    이인영, 허위 등을 중심으로 서울 진공 작전을 추진하였다.
    4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해설

    (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외교 운동을 위해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설치하였다.

    ‘3·1 운동 직후’ 수립되어 ‘연통제’라는 비밀 행정 조직과 ‘교통국’을 두었다는 단서가 임시 정부를 가리킨다.

    • 독립 의군부는 임병찬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한 비밀결사이다.
    • 이인영·허위 등이 서울 진공 작전을 추진한 것은 정미의병 시기 13도 창의군이다.
    • 베델을 발행인으로 한 대한매일신보는 양기탁 등이 1904년에 창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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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다음 (가), (나) 승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가)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부석사를 비롯한 여러 사원을 건립하였으며, 문무왕이 경주에 성곽을 쌓으려 할 때 만류한 일화로 유명하다.

    (나) 진골 귀족 출신으로 대국통을 역임하였으며, 선덕여왕에게 황룡사 9층탑의 건립을 건의하였다.

    1
    (가)는 모든 것이 한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사상을 제시하였다.
    2
    (가)는 「화엄일승법계도」를 만들었다.
    3
    (나)는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남겼다.
    4
    (나)는 이론과 실천을 같이 강조하는 교관겸수를 제시하였다.
    해설

    (가)는 의상, (나)는 자장이며, 의상은 화엄 사상을 정리한 「화엄일승법계도」를 만들었다.

    ‘부석사’ 건립과 ‘문무왕’의 성곽 축조를 만류한 일화는 의상의 행적이고, ‘대국통’을 지내고 ‘황룡사 9층탑’ 건립을 건의한 승려는 자장이다.

    • 모든 것이 한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사상은 원효가 제시하였다.
    •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승려는 혜초이다.
    • 이론과 실천을 함께 강조한 교관겸수는 고려의 의천이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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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당 현종 개원 7년에 대조영이 죽으니, 그 나라에서 사사로이 시호를 올려 고왕(高王)이라 하였다. 아들 ( 가 )이/가 뒤이어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가 겁을 먹고 그를 섬겼으며, 또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고쳤다.

    -『신당서』-

    1
    수도를 상경성으로 옮겼다.
    2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만큼 전성기를 이루었다.
    3
    장문휴를 시켜 당의 등주(산둥성)를 공격하였다.
    4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 도읍을 정하였다.
    해설

    (가)는 발해 무왕(대무예)으로, 장문휴를 시켜 당의 등주를 공격하였다.

    ‘대조영’의 아들로 왕위를 잇고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고쳤다는 단서가 무왕을 가리킨다.

    • 수도를 상경성으로 옮긴 왕은 문왕이다.
    •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전성기를 이룬 왕은 선왕이다.
    •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 도읍을 정한 왕은 대조영(고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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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라) 국왕 대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조선 시대 국가를 운영하는 핵심 법전인 『경국대전』은 세조 대에 그 편찬이 시작되어 ( 가 ) 대에 완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국가 체제를 수습하고 새로운 정치·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법전 정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 나 ) 대에 『속대전』을 편찬하였으며, ( 다 ) 대에 『대전통편』을, 그리고 ( 라 ) 대에는 『대전회통』을 편찬하였다.

    1
    (가)-홍문관을 두어 집현전을 계승하였다.
    2
    (나)-서원을 붕당의 근거지로 인식하여 대폭 정리하였다.
    3
    (다)-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고 화성을 축조하였다.
    4
    (라)-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했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라)에 대한 진술이다. (라)는 『대전회통』을 편찬한 고종(흥선 대원군 집권기)인데, 삼정이정청은 임술 농민 봉기 이후 철종 대에 설치되었다.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속대전』은 영조, 『대전통편』은 정조 대의 일이므로 (가)~(다)는 각각 성종·영조·정조이다.

    • 성종이 홍문관을 두어 집현전을 계승한 것은 옳다.
    • 영조가 서원을 붕당의 근거지로 보아 대폭 정리한 것은 옳다.
    •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고 화성을 축조한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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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밑줄 친 '사건'의 명칭은?

    중종에 의해 등용된 조광조는 현량과를 통해 사림을 대거 등용하였다. 그는 3사의 언관직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 나갔고, 위훈삭제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중종도 급진적인 개혁 조치에 부담을 느껴 조광조 등을 제거하였다. 이 사건으로 사림은 큰 피해를 입었다.

    1
    갑자사화
    2
    기묘사화
    3
    무오사화
    4
    을사사화
    해설

    밑줄 친 사건은 중종 대 조광조 일파가 제거된 기묘사화이다.

    ‘조광조’의 ‘현량과’ 실시와 ‘위훈삭제’ 주장에 대한 훈구 세력의 반발로 중종 대에 사림이 큰 피해를 입었다.

    • 갑자사화는 연산군 대에 폐비 윤씨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 무오사화는 연산군 대에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일어났다.
    • 을사사화는 명종 즉위 직후 외척 간의 대립 속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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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가 ) 역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왕에게 바쳤다. “성상 전하께서 옛 사서를 널리 열람하시고, ‘지금의 학사 대부는 모두 오경과 제자의 책과 진한(秦漢) 역대의 사서에는 널리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이는 있으나, 도리어 우리나라의 사실에 대하여서는 망연하고 그 시말(始末)을 알지 못하니 심히 통탄할 일이다. 하물며 신라·고구려·백제가 나라를 세우고 정립하여 능히 예의로써 중국과 통교한 까닭으로 범엽의 『한서』나 송기의 『당서』에는 모두 열전이 있으나 국내는 상세하고 국외는 소략하게 써서 자세히 실리지 않았다. …(중략)… 일관된 역사를 완성하고 만대에 물려주어 해와 별처럼 빛나게 해야 하겠다.’라고 하셨다.”

    ( 나 ) 역사서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실려 있다. “부여씨와 고씨가 망한 다음에 김씨의 신라가 남에 있고, 대씨의 발해가 북에 있으니 이것이 남북국이다. 여기에는 마땅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할 터인데, 고려가 그것을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1
    (가)는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이다.
    2
    (가)는 불교를 중심으로 고대 설화를 수록하였다.
    3
    (나)는 만주 지역까지 우리 역사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4
    (나)는 고조선부터 고려에 이르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해설

    (가)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나)는 유득공의 『발해고』이며, 『발해고』는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다루어 만주 지역까지 역사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가)는 ‘신라·고구려·백제’의 일관된 역사를 왕명을 받아 편찬하며 올린 글이고, (나)는 ‘대씨의 발해’와 신라를 ‘남북국’으로 부른 서문이다.

    •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다.
    • 불교를 중심으로 고대 설화를 수록한 역사서는 일연의 『삼국유사』이다.
    • 고조선부터 고려에 이르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통사로는 『동국통감』 등이 있으며, 『발해고』는 발해사를 다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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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다음 주장을 한 실학자가 쓴 책은?

    토지를 겸병하는 자라고 해서 어찌 진정으로 빈민을 못살게 굴고 나라의 정치를 해치려고 했겠습니까? 근본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라면 역시 부호를 심하게 책망할 것이 아니라 관련 법제가 세워지지 않은 것을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진실로 토지의 소유를 제한하는 법령을 세워, “어느 해 어느 달 이후로는 제한된 면적을 초과해 소유한 자는 더는 토지를 점하지 못한다. 이 법령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소유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광대한 면적이라 해도 불문에 부친다. 자손에게 분급해 주는 것은 허락한다. 만약에 사실대로 고하지 않고 숨기거나 법령을 공포한 이후에 제한을 넘어 더 점한 자는 백성이 적발하면 백성에게 주고, 관(官)에서 적발하면 몰수한다.”라고 하면, 수십 년이 못 가서 전국의 토지 소유는 균등하게 될 것입니다.

    1
    반계수록
    2
    성호사설
    3
    열하일기
    4
    목민심서
    해설

    제시문은 토지 소유의 상한을 정하자는 박지원의 한전론이며, 박지원이 쓴 책은 『열하일기』이다.

    ‘어느 해 어느 달 이후로는 제한된 면적을 초과해 소유한 자는 더는 토지를 점하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법령 시행 이전의 소유는 불문에 부치자는 것은 박지원이 『한민명전의』에서 제시한 토지 소유 제한론이다.

    • 『반계수록』은 신분에 따라 토지를 차등 분배하자는 균전론을 주장한 유형원의 저술이다.
    • 『성호사설』은 영업전의 매매를 금지하자는 한전론을 주장한 이익의 저술이다.
    • 『목민심서』는 지방관의 도리를 정리한 정약용의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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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헌병에게 경찰 업무를 부여한 헌병 경찰제를 시행했다. 헌병 경찰은 정식 재판 없이 한국인에게 벌금 등의 처벌을 가하거나 태형에 처할 수도 있었다. 한국인은 이처럼 강압적인 지배에 저항해 3·1 운동을 일으켰으며, 일제는 이를 계기로 지배 정책을 전환했다. 일제가 한국을 병합한 직후부터 3·1 운동이 벌어진 때까지를 ( 가 ) 시기라고 부른다.

    1
    토지 조사령이 공포되었다.
    2
    창씨개명 조치가 시행되었다.
    3
    초등 교육 기관의 명칭이 국민학교로 변경되었다.
    4
    전쟁 물자 동원을 내용으로 한 국가총동원법이 적용되었다.
    해설

    (가)는 1910년대 무단 통치 시기로, 이 시기에 토지 조사령이 공포되었다.

    ‘헌병 경찰제’와 태형, 그리고 ‘병합한 직후부터 3·1 운동이 벌어진 때까지’라는 단서가 1910년대를 가리키며, 토지 조사령은 1912년에 공포되었다.

    • 창씨개명은 1930년대 후반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인 1940년에 시행되었다.
    • 초등 교육 기관의 명칭을 국민학교로 바꾼 것은 1941년이다.
    • 국가총동원법은 중일 전쟁 이후인 1938년에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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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밑줄 친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한국 국민당을 이끌던 그는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고자 한국 독립당을 결성해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다. 광복 직후 귀국한 그는 정부 수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남한 단독 선거가 결정되자 김규식과 더불어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1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해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2
    광복 직후 안재홍 등과 함께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만들었다.
    3
    무장 항일투쟁을 위해 하와이로 건너가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하였다.
    4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 사항이 알려지자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펼쳤다.
    해설

    밑줄 친 ‘그’는 김구로,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결정이 알려지자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펼쳤다.

    ‘한국 국민당’을 이끌고 ‘한국 독립당’을 결성했으며,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해 ‘김규식’과 함께 평양에서 남북 협상에 참여한 인물은 김구이다.

    •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해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한 것은 여운형·김규식 등이다.
    • 광복 직후 안재홍 등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만든 인물은 여운형이다.
    • 하와이에서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한 인물은 박용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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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제헌 국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2
    한ㆍ일 기본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3
    통일 3대 원칙이 언급된 7ㆍ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4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뽑는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해설

    제헌 국회는 1948년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제헌 국회는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되어 헌법을 제정한 국회이므로, 나머지 선택지의 1960~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기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 한·일 기본 조약은 1965년 박정희 정부 때 체결되었다.
    • 7·4 남북 공동 성명은 1972년 박정희 정부가 발표하였다.
    •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뽑도록 한 것은 1972년의 유신 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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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밑줄 친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종이 즉위한 직후에 실권을 장악한 그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천주교 선교사를 통해 프랑스와 교섭하려 했다. 하지만 천주교를 금지해야 한다는 유생의 주장이 높아지자 다수의 천주교도와 선교사를 잡아들여 처형한 병인박해를 일으켰다. 이후 고종의 친정이 시작됨에 따라 물러난 그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잠시 권력을 장악했지만, 청군의 개입으로 곧 물러났다.

    1
    미국에 보빙사라는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2
    전국 여러 곳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했다.
    3
    국경을 획정하고자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4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를 두었다.
    해설

    밑줄 친 ‘그’는 흥선 대원군으로,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알리기 위해 전국 여러 곳에 척화비를 세웠다.

    ‘고종이 즉위한 직후 실권을 장악’하고 ‘병인박해’를 일으켰으며 ‘임오군란’ 때 잠시 재집권했다가 청군에 의해 물러난 인물은 흥선 대원군이다.

    •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한 것은 고종 친정 이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뒤의 일이다.
    • 백두산정계비는 숙종 대에 청과 국경을 정하며 세웠다.
    • 통리기무아문과 12사를 둔 것은 고종 친정 이후 개화 정책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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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밑줄 친 '이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백제 개로왕은 장기와 바둑을 좋아하였는데, 도림이 고하기를 “제가 젊어서부터 바둑을 배워 꽤 묘한 수를 알게 되었으니 개로왕께 알려드리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중략)… 개로왕이 (도림의 말을 듣고) 나라 사람을 징발하여 흙을 쪄서 성(城)을 쌓고 그 안에는 궁실, 누각, 정자를 지으니 모두가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창고가 비고 백성이 곤궁하니, 나라의 위태로움이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 그제야 도림이 도망을 쳐 와서 그 실정을 고하니 이 왕이 기뻐하여 백제를 치려고 장수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었다.

    -『삼국사기』-

    1
    평양으로 도읍을 천도하였다.
    2
    진대법을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3
    낙랑군을 점령하고 한 군현 세력을 몰아내었다.
    4
    신라에 침입한 왜군을 낙동강 유역에서 물리쳤다.
    해설

    밑줄 친 ‘이 왕’은 고구려 장수왕으로,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승려 ‘도림’을 보내 백제 ‘개로왕’이 무리한 토목 공사로 국력을 소모하게 한 뒤 백제를 공격한 왕은 장수왕이며, 이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었다.

    • 진대법을 처음 시행한 왕은 고국천왕이다.
    • 낙랑군을 점령하고 한 군현 세력을 몰아낸 왕은 미천왕이다.
    • 신라에 침입한 왜군을 낙동강 유역에서 물리친 왕은 광개토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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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이 건물은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은 배흘림 양식이다. 1972년 보수 공사 중에 공민왕 때 중창하였다는 상량문이 나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1
    서울 흥인지문
    2
    안동 봉정사 극락전
    3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4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해설

    설명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다.

    ‘1972년 보수 공사’ 중 ‘공민왕 때 중창’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평가되며, 주심포 양식·맞배지붕·배흘림기둥을 갖추었다.

    • 서울 흥인지문은 조선 한양 도성의 동쪽 성문이다.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의 주심포 양식·배흘림기둥 건물이지만 팔작지붕이다.
    •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조선 시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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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열강의 이권 침탈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서재필 등은 ( 가 )을/를 만들었다. ( 가 )은/는 고종에게 자주독립을 굳건히 하고 내정 개혁을 단행하라는 내용이 담긴 상소문을 제출하였으며,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여 외국의 간섭과 일부 관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였다.

    1
    「교육 입국 조서」를 작성해 공포하였다.
    2
    영은문이 있던 자리 부근에 독립문을 세웠다.
    3
    개혁의 기본 강령인 「홍범 14조」를 발표하였다.
    4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채 보상 운동을 일으켰다.
    해설

    (가)는 독립 협회로, 영은문이 있던 자리 부근에 독립문을 세웠다.

    ‘아관파천 이후’ ‘서재필’ 등이 만들고 ‘만민 공동회’를 열어 외국의 간섭과 관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한 단체는 독립 협회이다.

    • 교육 입국 조서는 제2차 갑오개혁 시기에 고종이 반포하였다.
    • 홍범 14조는 제2차 갑오개혁 때 고종이 개혁의 기본 강령으로 반포하였다.
    •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등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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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 시기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무신정권 몰락
    ↓
    (가)
    ↓
    공민왕 즉위

    1
    만권당이 만들어졌다.
    2
    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3
    쌍성총관부가 수복되었다.
    4
    「제왕운기」가 저술되었다.
    해설

    (가)는 무신정권 몰락 이후 공민왕 즉위 이전의 원 간섭기이며, 쌍성총관부 수복은 공민왕이 즉위한 뒤 반원 개혁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이 시기의 사실이 아니다.

    나머지 선택지는 모두 원 간섭기의 일이다.

    • 만권당은 충선왕이 원의 수도 연경에 세웠으므로 옳다.
    • 정동행성은 원이 일본 원정을 위해 충렬왕 대에 설치하였으므로 옳다.
    • 「제왕운기」는 충렬왕 대에 이승휴가 저술하였으므로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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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밑줄 친 '이 나라'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이 나라에는 관리에게 정해진 면적의 토지에서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나누어주는 전시과라는 제도가 있었다. 농민은 소를 이용해 깊이갈이를 하기도 했으며, 시비법의 발달로 휴경지가 점차 줄어들었다. 밭농사는 2년 3작의 윤작법이 점차 보급되었다. 이 나라의 말기에는 직파법 대신 이앙법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될 정도로 논농사에 변화가 나타났다. 또한 이암에 의해 중국 농서인 『농상집요』도 소개되었다.

    1
    재정을 운영하는 관청으로 삼사를 두었다.
    2
    공물 부과 기준이 가호에서 토지로 바뀌었다.
    3
    생산량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조세를 거두었다.
    4
    '소'라는 행정구역의 주민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생산하였다.
    해설

    ‘이 나라’는 고려이며, 공물 부과 기준을 가호에서 토지로 바꾼 것은 조선의 대동법이므로 고려의 경제 상황으로 옳지 않다.

    ‘전시과’와 ‘이암’이 소개한 ‘『농상집요』’라는 단서가 고려를 가리킨다.

    • 고려는 화폐와 곡식의 출납·회계를 맡는 재정 관청으로 삼사를 두었으므로 옳다.
    • 고려는 민전에서 생산량의 10분의 1을 조세로 거두었으므로 옳다.
    • 고려에는 ‘소’라는 특수 행정 구역이 있어 주민이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였으므로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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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급 국가직 한국사] 22년 1회차
    (가)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신미양요 → (가) → 갑오개혁

    1
    을사늑약 체결
    2
    정미 의병 발생
    3
    오페르트 도굴 미수 사건
    4
    조ㆍ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해설

    (가) 시기에 있었던 일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1882)이다.

    (가)는 신미양요(1871)와 갑오개혁(1894) 사이이며,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그 사이에 체결되었다.

    • 오페르트 도굴 미수 사건은 1868년으로 신미양요 이전이다.
    • 을사늑약 체결은 1905년으로 갑오개혁 이후이다.
    • 정미의병은 1907년으로 갑오개혁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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