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48회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우경이 널리 보급되었다.
비파형 동검을 제작하였다.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였다.
주로 동굴과 막집에서 거주하였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은 우표 소재로 고인돌과 민무늬 토기를 골랐다고 하면서 이를 (가) 시대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배자의 무덤인 고인돌과 민무늬 토기는 모두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산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으로 비파형 동검과 거친무늬 거울 등을 만들어 주로 지배층의 의기나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계급이 발생하면서 군장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대의 모습입니다. 철제 농기구 사용은 철기 시대의 특징이고, 소를 이용한 우경이 널리 보급된 것은 삼국 시대 이후이며, 동굴이나 막집에 살며 이동 생활을 한 것은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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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8조법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지배자로 신지, 읍차 등이 있었다.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선생님이 들고 있는 그림책에는 호랑이와 곰이 등장하는 장면과 단군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설명은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이 나라를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이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8조법을 두었는데, 그중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으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세 조항이 한서 지리지에 전합니다. 이를 통해 생명과 사유 재산을 중시하고 신분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여러 나라의 풍습입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연 나라는 부여이고, 신지·읍차 같은 지배자가 있었던 것은 삼한이며,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배상하게 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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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나라를 지도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가)
(나)
(다)
(라)
제시된 자료는 여자가 열 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하고 신랑 집에서 데려다 기른 뒤, 성인이 되면 신부 집에 대가를 주고 며느리로 삼는 풍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며느리제로, 옥저의 대표적인 혼인 풍속입니다.
또한 가족이 죽으면 뼈만 추려 보관하는 장례 풍습은 옥저의 골장제(가족 공동 무덤)에 해당합니다. 시신을 임시로 묻었다가 살이 썩은 뒤 뼈만 추려 가족 목곽에 함께 안치하던 풍습입니다.
지도에서 옥저는 함경도 동해안 일대에 자리 잡았던 나라이므로, 한반도 북동쪽 해안에 표시된 위치를 골라야 합니다. 지도 맨 위쪽 만주 일대는 부여, 압록강 중류 졸본·국내성 일대는 고구려, 옥저 아래 강원도 동해안은 동예의 자리이며, 한반도 남부의 마한·진한·변한은 삼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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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상수리 제도를 두었다.
지방에 22담로를 설치하였다.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가 있었다.
화면에 소개된 문화유산은 정림사지 5층 석탑, 금동 대향로, 산수무늬 벽돌입니다. 세 가지 모두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유적이므로 (가)는 백제입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부여의 백제 석탑이고, 금동 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 금속 공예의 걸작이며, 산수무늬 벽돌은 백제인의 자연관을 보여 주는 부여 출토 벽돌입니다.
백제는 무령왕 때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하여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반면 흉년에 곡식을 빌려주던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 지방 세력가를 수도에 머물게 한 상수리 제도와 골품제는 신라의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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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가)
(나)
(다)
(라)
제시된 자료는 망이·망소이의 난(1176년)으로, 공주 명학소의 소민들이 부역과 신분 차별에 반발하여 봉기한 사건이다. 이는 무신정변(1170) 이후 무신 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일어났으며, 강화도 천도(1232) 이전 시기에 해당하므로 연표의 (나) 시기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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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전투’로 옳은 것은? [1점]
귀주 대첩
살수 대첩
안시성 전투
처인성 전투
인물이 “우문술, 우중문이 이끄는 수의 30만 대군을 격퇴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 양제가 보낸 별동대 30만여 명을 물리친 사건은 612년 을지문덕이 이끈 고구려군의 승리, 곧 살수 대첩입니다.
을지문덕은 거짓 후퇴로 수군을 평양성 부근까지 끌어들인 뒤, 지친 적이 물러날 때 살수(청천강)에서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때 우중문에게 보낸 오언시가 전해집니다.
귀주 대첩은 고려 강감찬이 거란을 물리친 싸움, 안시성 전투는 당 태종의 침입을 막아 낸 고구려의 항전, 처인성 전투는 김윤후가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한 싸움으로 시기와 상대가 모두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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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대답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②
③
④
교사가 통일 신라의 대외 교역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옳은 대답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주도했다는 내용입니다.
장보고는 흥덕왕 때 완도에 청해진을 세워 해적을 소탕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중계 무역을 장악하였습니다. 이 시기 산둥반도 일대에는 신라인 거주지인 신라방과 사찰인 신라원이 세워졌고, 당항성·울산항이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습니다.
여진과 교역하기 위해 무역소를 설치한 것은 조선 태종 때이고, 개시·후시를 통한 국경 무역이 활발했던 것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또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한 것은 철이 풍부했던 변한과 금관가야에 해당하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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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강수
설총
최승로
최치원
안내 내용에 따르면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무성 서원이며, 배향된 인물은 신라 6두품 출신으로 당의 빈공과에 합격해 관직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뒤 진성 여왕에게 개혁안 10여 조를 올린 사람입니다. 이는 최치원에 해당합니다.
최치원은 당에서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고, 귀국 후 시무 10여 조를 올렸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은거하였습니다. 저술로 계원필경이 전합니다.
강수는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던 문장가, 설총은 이두를 정리하고 화왕계를 지은 인물이며, 최승로는 고려 성종에게 시무 28조를 올린 인물로 시대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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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적절한 것은? [2점]
수행 평가 계획서의 주제가 발해의 문화유산이고, 조사 대상으로 이불병좌상과 발해 석등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도 발해의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보기 가운데 발해의 것은 연꽃무늬 수막새입니다. 상경성 등 발해 도성터에서 출토된 기와로, 고구려 기와의 힘찬 문양을 계승한 점에서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보여 주는 유물로 꼽힙니다.
나머지는 시대와 나라가 다릅니다. 칠지도는 백제가 왜에 보낸 철제 칼이고, 금관총 금관과 호우총 청동 그릇은 신라 고분에서 나온 유물입니다. 특히 호우총 청동 그릇에는 광개토 대왕을 가리키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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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나’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견훤
궁예
만적
양일
그림 속 인물은 “오래전 신라는 당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나는 이제 이곳 완산주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억울함을 풀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완산주(전주)에 도읍하고 백제 부흥을 내세운 인물은 견훤입니다.
견훤은 신라의 군인 출신으로 세력을 키워 900년 후백제를 세웠습니다. 이후 중국의 오월·후당과 외교 관계를 맺었고, 927년에는 신라의 금성을 습격해 경애왕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궁예는 송악과 철원을 근거로 후고구려를 세운 인물이고, 만적은 고려 무신 집권기에 신분 해방을 내걸고 봉기를 모의한 노비여서 시기와 활동이 전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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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역사 다큐멘터리의 제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광종, 왕권 강화를 도모하다.
인종, 서경 천도를 계획하다.
태조, 북진 정책을 추진하다.
현종, 지방 제도를 정비하다.
다큐멘터리 장면에서 왕이 “노비를 안검하고 조사하여 불법적으로 노비가 된 자는 양민으로 돌려놓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려 광종이 실시한 노비안검법입니다.
노비안검법은 후삼국 혼란기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원래 신분인 양인으로 되돌린 조치입니다. 이를 통해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한편, 국가의 조세와 역을 부담하는 양인을 늘려 왕권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광종은 이 밖에도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시행하고, 공복을 제정했으며 광덕·준풍 등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에 어울리는 제목은 왕권 강화를 도모한 광종의 개혁을 담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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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화유산 카드에 국보 제68호, 소장처 간송 미술관, 그리고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표면에 무늬를 새겨 파내고 다른 재질의 재료를 넣어 제작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무늬를 파낸 자리에 백토·흑토를 채워 넣는 이 기법이 바로 상감법입니다.
따라서 (가)에 들어갈 유물은 구름과 학 무늬를 상감으로 새긴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입니다. 12세기 후반 상감 청자의 절정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카드에 적힌 국보 번호와 소장처가 그대로 일치합니다.
다른 보기의 분청사기 철화 어문 항아리와 백자 철화 끈무늬 병은 조선 시대 자기이며, 청자 참외모양 병은 고려 자기이지만 무늬 없이 형태와 비색으로 승부한 순청자여서 상감 기법이라는 설명에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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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기구로 옳은 것은? [2점]
어사대
의정부
중추원
도병마사
검색 결과에 고려 시대의 중앙 정치 기구로서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고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였으며, 그 관원이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고 나옵니다. 이에 해당하는 기구는 어사대입니다.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를 합쳐 대간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 잘못된 왕명을 돌려보내는 봉박, 관리 임명과 법 제정에 동의하는 서경의 권한을 행사하며 권력의 독점을 견제하였습니다.
의정부는 조선의 최고 정무 기구이고,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맡은 고려의 기구이며, 도병마사는 국방과 군사 문제를 논의하던 고려의 회의 기구여서 감찰과 간쟁을 담당했다는 설명과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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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김헌창이 난을 일으켰다.
최우가 정방을 설치하였다.
묘청이 금 정벌을 주장하였다.
서희가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그림 왼쪽은 정중부가 “문신은 보이는 대로 모두 없애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무신정변(1170)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배중손이 “이곳 진도에서 우리 삼별초는 적에 맞서 끝까지 항전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삼별초의 진도 항쟁(1270~1271) 장면입니다.
따라서 (가)는 무신정권이 유지되던 약 100년의 시기입니다. 이 기간에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는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해 인사 행정을 장악하였으므로, 정방 설치가 (가) 시기의 사실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김헌창의 난은 신라 하대(822년)의 일이고, 서희의 강동 6주 획득은 거란의 1차 침입 때인 성종 대(993년), 묘청의 금 정벌 주장은 인종 대(1135년)로 모두 무신정변 이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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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1점]
경당
향교
국자감
주자감
퀴즈의 힌트는 고려 성종 때 설립, 유학과 기술 교육을 담당, 고려의 최고 교육 기관입니다.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개경에 세워진 국립 대학 국자감입니다.
국자감에는 유학을 가르치는 국자학·태학·사문학과 함께 기술학인 율학·서학·산학이 설치되어, 힌트에 나온 “유학과 기술 교육을 담당”한다는 설명과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혼동하기 쉬운 기관과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경당은 고구려의 지방 사립 교육 기관,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이며, 향교는 지방에 설치된 중등 교육 기관이라 ‘최고 교육 기관’이라는 힌트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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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학습 주제로 적절한 것은? [2점]
몽골의 침입과 항쟁
왜구의 침략과 격퇴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축조
서양 함대의 침입과 척화비 건립
지도에 표시된 전투는 홍산 대첩 – 최영, 진포 대첩 – 최무선, 황산 대첩 – 이성계 세 가지입니다. 세 전투 모두 고려 말에 해안과 내륙을 노략질하던 왜구를 물리친 싸움입니다.
최영은 1376년 충남 부여 홍산에서, 최무선은 1380년 화포를 이용해 금강 하구 진포에서 왜선을 격침하였으며, 이성계는 같은 해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따라서 학습 주제는 왜구의 침략과 격퇴가 알맞습니다.
다른 주제들은 등장 인물·지역과 맞지 않습니다. 몽골 항쟁은 강화도와 삼별초, 동북 9성은 윤관과 별무반, 척화비 건립은 흥선 대원군 시기의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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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균역법을 시행하였다.
직전법을 실시하였다.
5군영 체제를 완성하였다
6조 직계제를 시행하였다.
그림의 가운데 주제는 조선 태종이 한 일이고, 이미 채워진 항목은 호패법 시행, 전국을 8도로 나눔, 계미자 주조입니다. 모두 왕권 강화와 국가 기틀 마련을 위한 태종의 정책입니다.
빈칸에 들어갈 태종의 업적으로는 6조 직계제 시행이 알맞습니다. 6조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왕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한 제도로, 재상의 권한을 줄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조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정책입니다. 직전법은 세조, 균역법은 영조, 5군영 체제 완성은 숙종 대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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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상 뉴스 보도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흑창이 운영되었다.
사심관 제도가 실시되었다.
한양에 시전이 설치되었다.
정동행성 이문소가 폐지되었다.
뉴스 화면의 자막은 “새 궁궐의 이름, 경복궁으로 결정”이며, 국왕과 백성이 함께 만년토록 태평하며 큰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이름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뒤 새 궁궐을 완성한 1395년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후에 전개된 사실을 골라야 합니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조선 정부는 종로를 중심으로 시전을 설치해 상업 활동을 관리하였으므로, 한양에 시전이 설치된 것이 이 보도 이후의 일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고려 시대의 사실입니다. 흑창 운영과 사심관 제도 실시는 고려 태조 왕건 때이고,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는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으로 조선 건국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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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과학 기구로 옳은 것은? [1점]
자격루
측우기
혼천의
앙부일구
설명에 따르면 (가)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장치를 갖춘 물시계로, 이 시계가 알리는 시간에 따라 도성 문을 여닫고 궁궐 호위병들이 임무를 교대하였습니다. 사진에도 물을 담는 큰 항아리(파수호)와 그 물을 받는 긴 원통(수수호)이 늘어선 물시계 구조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자동 시보 장치를 갖춘 물시계는 세종 때 장영실 등이 만든 자격루입니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인형이 종·북·징을 쳐서 시간을 알리도록 만든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다른 기구들은 성격이 다릅니다. 측우기는 강우량 측정 기구,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기구, 앙부일구는 그림자로 시각을 재는 해시계여서 ‘물시계’라는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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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1점]
4군 6진을 개척하였다.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하였다.
발표 자료에 적힌 선정 이유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와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입니다. 우리말을 적는 문자를 만들고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서를 펴낸 왕은 조선 세종입니다.
세종은 북방 개척에도 힘써 최윤덕을 보내 압록강 방면에 4군을, 김종서를 보내 두만강 방면에 6진을 설치하여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때의 일이며, 대동여지도는 조선 후기에 김정호가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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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그림으로 옳은 것은? [2점]
전시 해설은 이 작품이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안평 대군이 꿈에서 본 이상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안견이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작품은 보기 그림 가운데 몽유도원도라고 이름이 붙은 산수화입니다. 기암절벽이 늘어선 도원의 세계가 두루마리처럼 옆으로 길게 펼쳐져, 현실 세계에서 꿈속 도원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보여 줍니다.
나머지 그림은 시기와 작가가 다릅니다. 무동도는 조선 후기 김홍도의 풍속화, 세한도는 김정희의 문인화,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실제 인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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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성학집요를 저술함
백운동 서원을 건립함
현량과 실시를 건의함
시헌력 도입을 주장함
인물 카드에는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중심 인물, 도학 정치를 추구함, 소격서 폐지를 주장함, 생몰년 1482년~1519년이 적혀 있습니다. 이는 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은 조광조입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조광조의 활동인 현량과 실시 건의가 들어가야 합니다. 현량과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추천으로 등용하는 제도로, 사림 세력을 중앙 정계에 진출시키려는 개혁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입니다. 성학집요 저술은 이이, 백운동 서원 건립은 주세붕, 시헌력 도입 주장은 조선 후기 김육과 관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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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승리하였다.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타 없어졌다.
윤관이 별무반 편성을 건의하였다.
뉴스는 진주성에서 진주 목사 김시민의 지휘 아래 관군과 백성이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곽재우가 이끄는 의병 부대가 성 밖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1592년 진주 대첩의 상황이므로 (가) 전쟁은 임진왜란입니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관군과 백성이 힘을 합쳐 일본군의 총공격을 막아내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진주 대첩, 한산도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힙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대의 일입니다. 천리장성 축조와 윤관의 별무반 편성 건의는 고려 시대이며,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탄 것은 고려 시대 몽골 침입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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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왕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대전회통을 편찬하였다.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
대동법을 처음 시행하였다.
사진은 능이 아니라 묘로 불리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대화에서 그 이유를 인조반정으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다고 했으므로 (가)는 광해군입니다.
광해군은 명의 파병 요청에 강홍립 부대를 보내면서도 상황에 따라 후금에 항복하도록 하는 등 실리를 좇는 중립 외교를 폈고,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국가 재정과 민생을 되살리는 데 힘썼습니다.
그 대표적인 조치가 방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베·동전으로 걷도록 바꾼 대동법으로,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습니다.
한편 대전회통 편찬과 삼정이정청 설치는 각각 흥선 대원군 집권기와 임술 농민 봉기 이후 철종 때의 일이며, 초계문신제는 정조가 젊은 문신을 재교육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다) 불상을 만들어진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가)-(나)-(다)
(가)-(다)-(나)
(다)-(가)-(나)
(다)-(나)-(가)
제시된 세 불상은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 파주 용미리 마애 이불 입상입니다. 만들어진 시대를 각각 판단하면 순서가 정해집니다.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은 백제의 대표적 불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 때문에 '백제의 미소'라고 불립니다. 세 불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입니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은 통일 신라 8세기 경덕왕 대에 김대성이 주도해 조성한 인공 석굴 사원의 주불로,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사실적인 조형미가 특징입니다.
파주 용미리 마애 이불 입상은 천연 암벽에 몸을 새기고 그 위에 머리와 갓을 따로 얹은 고려 시대 거대 석불로, 지역적 특색이 강한 대형 불상 유행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 →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 → 파주 용미리 마애 이불 입상 순으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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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설명하는 명절로 옳은 것은? [1점]
단오
설날
추석
한식
제시된 책자에는 음력 8월 15일에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송편을 빚어 먹고 강강술래를 하며 풍년을 기원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모두 추석의 풍속입니다.
추석은 한가위·중추절이라고도 하며,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수확에 감사하는 대표적인 명절입니다. 송편 빚기, 강강술래, 씨름, 줄다리기 등이 함께 행해졌습니다.
같은 이유로 다른 명절은 맞지 않습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에 머리 감기·그네뛰기·씨름을 하고, 설날은 음력 1월 1일로 떡국을 먹으며 세배를 합니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으며 조상의 묘를 돌보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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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통해 알 수 있는 지역을 지도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가)
(나)
(다)
(라)
게시판에는 송산리 고분군에서 백제 문화를 만날 수 있고, 석장리 유적에서 구석기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으며, 우금치에서 동학 농민군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 곳이 모두 모여 있는 지역은 공주입니다.
공주는 백제가 한성 함락 이후 도읍으로 삼았던 웅진으로, 무령왕릉이 포함된 송산리 고분군이 남아 있습니다. 석장리 유적은 남한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이며, 우금치는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우다 크게 패한 곳입니다.
지도에는 표시된 각 지점마다 지역 이름이 함께 적혀 있는데, 공주는 충청남도 금강 유역에 자리한 지점입니다. 함께 표시된 연천(경기 북부)은 전곡리 구석기 유적, 제천(충북)은 의림지, 경주(경북)는 신라의 도읍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제시된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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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내상이 일본과의 무역을 주도했어.
벽란도에서 송과의 무역이 이루어졌어.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했어.
정기 시장인 장시가 전국 각지에서 열렸어.
학생들이 조선 후기 상업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경강상인이 한강을 무대로 운송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조선 후기 경제 상황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대동법 시행으로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대신 사서 납품하는 공인이 등장했고, 전국 각지에 장시가 정기적으로 열려 보부상이 이를 연결했습니다. 또 동래를 근거지로 한 내상이 일본과의 무역을, 의주의 만상이 청과의 무역을 주도했습니다.
반면 벽란도에서 송과 무역이 이루어진 것은 고려 시대의 모습입니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는 고려의 국제 무역항으로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던 곳이므로, 조선 후기 상업을 설명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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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퀴즈에서 조선 시대에 정부가 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충하려고 곡물과 돈 등을 받고 그 대가로 신분을 올려 주거나 벼슬을 내린 정책을 묻고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납속책입니다.
납속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재정이 크게 부족해지자 널리 시행되었고, 이름을 비워 둔 임명장인 공명첩과 함께 활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재산을 모은 상민이 합법적으로 신분을 올릴 수 있게 되어 양반 수가 늘고 상민이 줄어드는 신분제의 동요가 나타났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용어는 성격이 다릅니다. 사창제는 흥선 대원군이 환곡의 폐단을 고치려 마을 단위로 곡식을 빌려 주게 한 제도이고, 영정법은 인조 때 전세를 풍흉과 관계없이 토지 1결당 4~6두로 고정한 세법이며, 호포제는 양반에게도 군포를 물린 군역 개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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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상 인터뷰의 주인공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동학을 창시하였다.
추사체를 창안하였다.
목민심서를 저술하였다.
사상 의학을 확립하였다.
가상 인터뷰에서 주인공은 마을 단위로 농민이 함께 경작하고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 생산물을 일한 양에 따라 분배하자는 여전론을 주장했다고 말합니다. 여전론을 제기한 인물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입니다.
정약용은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강진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중 목민심서는 지방 수령이 지켜야 할 마음가짐과 실무 지침을 정리한 책이며, 이 밖에 경세유표·흠흠신서도 함께 저술했습니다.
그는 뒷날 토지의 공동 소유와 경작을 좀 더 현실에 맞게 고친 정전제를 제시하기도 했고, 거중기를 고안해 수원 화성 축조에 활용되게 했습니다.
한편 동학을 창시한 인물은 최제우, 추사체를 창안한 인물은 김정희, 사상 의학을 확립한 인물은 이제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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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인물 카드에는 생몰 1607년~1689년, 호는 우암(尤菴), 주요 활동으로 효종과 함께 북벌을 주장, 예송 논쟁에서 허목과 대립, 서인이 분열하면서 노론의 영수로 활약이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인물은 송시열입니다.
송시열은 효종 대에 기축봉사를 올려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며 북벌을 뒷받침했고, 현종 대 두 차례 예송에서 남인의 허목·윤휴와 상복 기간을 두고 맞섰습니다. 이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릴 때 노론을 이끌었고,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사사되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은 시기와 활동이 다릅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남긴 18세기 북학파 실학자, 정몽주는 고려 말 성리학자, 채제공은 정조 대 남인을 대표한 재상으로 신해통공을 주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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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생이 생각하고 있는 기구로 옳은 것은? [2점]
규장각
성균관
집현전
홍문관
학생이 떠올린 기구는 왕실 도서관이자 학문 연구 기관으로 정조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했고, 이곳에 소장된 고금도서집성의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수원 화성을 축조했으며, 유득공·박제가 같은 서얼 출신 인재가 검서관으로 등용된 곳입니다. 이는 규장각에 대한 설명입니다.
정조는 즉위 직후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세워 역대 왕의 글과 서적을 보관하게 하고, 나아가 정책을 연구·자문하는 핵심 기구로 키웠습니다. 초계문신제를 두어 젊은 문신을 재교육한 것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기구는 성격이 다릅니다.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 집현전은 세종이 학문 연구를 위해 설치한 기구, 홍문관은 경연을 담당하며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삼사를 이룬 언론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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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원에 공녀로 끌려가는 여인
원산 총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
독립운동가를 감시하는 헌병 경찰
경복궁 중건 공사에 동원하는 농민
대화에 나오는 화폐는 당백전으로, 원래 쓰던 엽전 한 닢의 백 배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실제 가치는 훨씬 못 미친다고 했고, 그 남발로 물가가 크게 올라 백성의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백전이 발행된 시기는 흥선 대원군 집권기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했고, 그 비용을 마련하려고 원납전을 강제로 걷고 당백전을 발행했으며 백성을 공사에 동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물가 폭등과 부역 부담으로 원성이 커졌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은 경복궁 중건 공사에 동원되는 농민입니다. 원에 공녀로 끌려가는 여인은 고려 후기, 원산 총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와 독립운동가를 감시하는 헌병 경찰은 일제 강점기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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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가)-(나)-(다)
(가)-(다)-(나)
(다)-(가)-(나)
(다)-(나)-(가)
세 액자에 적힌 사건은 각각 강화도 조약 체결, 조선 총독부 설치, 을사늑약 체결이다. 셋 모두 개항 이후 국권이 단계적으로 무너져 간 과정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강화도 조약은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1876년에 맺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으로, 부산 등 세 항구를 열고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을 내주었다.
을사늑약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1905년에 강제로 체결한 것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이어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통치 기구로 조선 총독부를 두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강화도 조약 체결 → 을사늑약 체결 → 조선 총독부 설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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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설명하는 사건의 영향으로 옳은 것은? [2점]
운요호 사건이 일어났다.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청의 내정 간섭이 심화되었다.
강연 화면에 제시된 ‘개화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주제와,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던 구식 군인들이 밀린 봉급을 겨와 모래가 섞인 쌀로 지급받자 분노하여 난을 일으켰고 일부 백성도 합세했다는 설명은 1882년 임오군란을 가리킨다.
구식 군인들은 개화 정책을 주도하던 관료들과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였고, 흥선 대원군이 잠시 재집권하였다. 그러나 민씨 정권의 요청으로 청군이 출병하여 군란을 진압하고 흥선 대원군을 청으로 납치해 갔다.
그 결과 청은 군대를 조선에 주둔시키고 마젠창·묄렌도르프 등 고문을 파견하였으며,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는 등 내정 간섭을 크게 강화하였다. 이것이 임오군란이 남긴 대표적인 영향이다.
운요호 사건은 강화도 조약 이전인 1875년의 일이고, 통리기무아문 설치는 임오군란 이전의 개화 정책 추진 기구이며,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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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3점]
조총으로 무장한 훈련도감 군인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된 독립운동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하는 보안회 회원
대화에서 한 사람은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일본이 군수 물자 수송을 위해 경부선 철도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마을 남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고된 일을 시킨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인 러일 전쟁(1904~1905) 시기이며, 일제는 이때 군수 수송로 확보를 위해 경부선 부설을 서두르면서 조선인의 토지와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였다.
바로 이 무렵인 1904년, 일제가 전국의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자 보안회가 조직되어 반대 운동을 벌였고 결국 요구를 철회시켰다.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알맞다.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조선 후기의 군영이고, 황국 신민 서사 암송과 치안 유지법에 따른 탄압은 국권 피탈 이후 일제 강점기의 일이므로 러일 전쟁 시기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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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형평 운동을 전개하였다.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였다.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
제시된 글은 “우리 대조선국이 독립국이 되어”라고 선언하면서,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가)를 조직하여 옛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고쳐 독립관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영은문과 모화관은 조선이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상징적인 장소였다. 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관을 세우겠다는 것은 청에 대한 사대 관계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이 단체는 1896년 서재필 등이 창립한 독립 협회이다.
독립 협회는 독립문 건립과 토론회 개최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만민 공동회를 열어 러시아의 이권 침탈을 규탄하였고, 관민이 함께한 자리에서 헌의 6조를 결의하는 등 자주 국권·자유 민권 운동을 전개하였다.
형평 운동은 조선 형평사, 한국 광복군 창설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은 조선어 학회가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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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대종교를 창시하였다.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였다.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되었다.
신문 기사는 일본 미야기현 다이린사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가)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해마다 추모 법회가 열린다고 전하고 있다.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인물은 안중근이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을 대한 의군 참모중장이라 밝히며 의거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한국·청·일본 세 나라가 대등하게 협력하여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자는 구상을 담은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였으나, 사형이 집행되면서 끝내 완성하지 못하였다.
대종교를 창시한 인물은 나철,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한 인물은 신채호,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로 파견된 인물은 김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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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났다.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았다.
단발령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만주, 연해주, 미주 등지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화면 속 설명은 가네코 후미코가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인 (가)를 목격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이후 박열 등과 함께 반제국주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생을 마쳤다고 소개한다.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은 1919년 3·1 운동이다.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민족 대표들이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학생과 시민이 만세 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시위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퍼져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나아가 만주와 연해주, 미주 등 국외 동포 사회로까지 번져 나갔다. 그 열기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것은 6·10 만세 운동,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국채 보상 운동, 단발령에 반발해 일어난 것은 을미의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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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나운규
남승룡
손기정
안창남
화면의 게시물에는 #8월_9일 #1936년_베를린_올림픽 #마라톤_금메달리스트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의 사진이 실려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선수는 손기정이다. 그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지만, 나라를 잃은 처지여서 일장기를 단 채 시상대에 올라야 했다.
이때 동아일보 등이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어나 해당 신문이 정간되기도 하였다. 함께 출전한 남승룡은 같은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을 만든 영화인이고, 안창남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로 고국 방문 비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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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옳은 것은? [3점]
신간회를 결성하였습니다.
국민 대표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한·중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지도에는 치치하얼·하얼빈·창춘·지린·옌지를 포함한 넓은 지역이 만주국의 영역으로 표시되어 있고, 교사는 일제가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꼭두각시 정권인 만주국을 세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제는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고 이듬해 만주국을 세웠다. 이에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세력은 중국인들과 손을 잡고 함께 일본군에 맞섰다.
양세봉이 이끈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흥경성 전투에서, 지청천이 이끈 한국 독립군은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대전자령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즉 한·중 연합 작전을 전개한 것이 이 시기 만주 독립군의 대응이었다.
신간회 결성(1927)과 국민 대표 회의 소집(1923), 신흥 무관 학교 설립(1910년대)은 모두 만주 사변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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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제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취재하는 기자
교조 신원 운동에 참여하는 동학 교도
국채 보상 기성회에 성금을 내는 여성
수업 화면에는 대아 저수지(전북 완주) 사진이 제시되어 있고, 교사는 이 저수지가 일제가 산미 증식 계획을 시행하던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수리 시설을 늘리면서 조선 농민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웠다고 설명한다.
산미 증식 계획은 일본의 식량 부족을 조선에서 메우기 위해 1920년부터 추진된 정책이다. 수리 조합비와 품종 개량비 등 증산 비용이 농민에게 전가되었고, 늘어난 생산량보다 더 많은 쌀이 일본으로 실려 나가 조선인의 식량 사정은 오히려 나빠졌다.
따라서 이 시기는 1920년대이며, 1929년 광주에서 한·일 학생 간 충돌을 계기로 전국으로 번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취재하는 기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중원 설립(1885), 교조 신원 운동(1890년대 초), 국채 보상 운동(1907)은 모두 국권 피탈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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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 이 운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브나로드 운동
문자 보급 운동
물산 장려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사진 속 동상은 고당 조만식 선생의 상이며, 대화에서 한 사람이 ‘내 살림 내 것으로’라는 표어를 내세운 이 운동을 주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를 구호로 내건 이 운동은 물산 장려 운동이다. 회사령 철폐와 관세 철폐 움직임으로 일본 자본의 침투가 심해지자,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 등이 조선 물산 장려회를 세우며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국산품 애용과 근검저축, 자급자족을 통해 민족 산업을 키우자는 실력 양성 운동이었으나, 상품 가격만 올려 상인과 자본가의 배만 불린다는 사회주의 계열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브나로드 운동과 문자 보급 운동은 언론사가 주도한 농촌 계몽·문맹 퇴치 운동이고,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이상재 등이 고등 교육 기관을 세우고자 벌인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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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제시된 다큐멘터리 기획안은 ‘(가), 군국주의의 심장을 겨누다’라는 제목 아래 평범한 식민지 조선 청년이 민족 차별에 눈을 뜨고 독립운동가로 변해 가는 과정을 4부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3부 한인 애국단의 단원이 된다는 점과 4부 도쿄에서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한인 애국단은 1931년 김구가 침체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상하이에서 조직한 의열 투쟁 단체입니다.
이 단체의 첫 번째 의거를 실행한 인물이 이봉창으로, 1932년 1월 도쿄 사쿠라다문 부근에서 일왕의 행렬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거사 자체는 실패했지만 일본의 심장부를 겨눈 이 사건은 중국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고, 이후 윤봉길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한인 애국단원이라도 윤봉길은 도쿄가 아니라 상하이에서 일본군 장성들을 향해 폭탄을 던졌고, 김원봉은 한인 애국단이 아닌 의열단을 이끌었으며, 윤동주는 무장 투쟁이 아니라 저항시를 남긴 시인이므로 기획안의 내용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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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위원회’로 옳은 것은? [2점]
남북 조절 위원회
미·소 공동 위원회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화면 속 해설자는 덕수궁 석조전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결정된 한반도의 임시 민주 정부 수립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위원회가 열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외상들은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를 세우고 이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의 대표가 참여하는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미·소 공동 위원회가 1946년 3월과 1947년 5월 두 차례 덕수궁 석조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나 임시 정부 수립 협의에 참여시킬 단체의 범위를 두고 미국과 소련이 끝내 대립하면서 회의는 결렬되었고, 한국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는 광복 직후 여운형이 국내에서 조직한 자치 기구이고,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는 제헌 국회가 친일파 청산을 위해 설치한 기구이며, 남북 조절 위원회는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설치된 남북 대화 기구이므로 석조전에서 열린 미·소 협의체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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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3점]
(가) - 삼백 산업과 원조 경제 체제
(나) -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석유 파동
(다) - 산업 구조의 재편과 3저 호황
(라) - 외환 위기 발생과 금 모으기 운동
특강 안내문은 ‘대한민국 경제의 발자취’를 시기별로 나누어 제1강 1950년대, 제2강 1960년대, 제3강 1970년대, 제4강 1980년대의 네 강좌로 구성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빈칸에는 해당 연대의 경제 상황이 들어가야 합니다.
1950년대는 6·25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 물자에 의존하던 시기로, 밀가루·설탕·면화를 원료로 하는 제분·제당·면방직 이른바 삼백 산업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삼백 산업과 원조 경제 체제가 1950년대 강좌의 주제로 알맞습니다.
나머지는 연대가 어긋납니다. 중화학 공업 육성과 석유 파동은 1960년대가 아니라 1970년대의 일이고, 3저 호황(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 따른 산업 구조 재편은 1970년대가 아닌 1980년대 후반의 현상입니다.
또 외환 위기와 금 모으기 운동은 1997년 말에 시작되어 1998년에 전개된 일이므로 1980년대 강좌의 주제가 될 수 없습니다. 1960년대에는 경공업 중심의 제1·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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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제시된 신문 기사는 1970년 11월 14일 자로, 서울 청계천 부근 평화 시장에서 기업주의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쓰고 분신한 (가)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기사 속 인물은 평화 시장의 재단사였던 전태일입니다. 그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실태를 고발하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쳤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스스로 몸을 불살랐습니다.
이 사건은 고도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노동 문제를 사회 전면에 드러냈고, 이후 노동 운동과 지식인·학생들의 노동 현실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은 시기와 사건이 다릅니다. 김주열은 1960년 4·19 혁명, 박종철과 이한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과 관련된 인물이므로 1970년 평화 시장 노동 운동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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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4·19 혁명
6월 민주 항쟁
부·마 민주 항쟁
5·18 민주화 운동
대화 장면에서 등장인물은 미국 정부가 추가 공개한 기밀문서를 두고, 이 문서가 40년 전 이 사건 당시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 회복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며 신군부에 저항했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주, 계엄령 철폐, 신군부라는 세 단서가 함께 나오는 사건은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1980년 5월 전두환 등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자 광주에서 학생과 시민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맞서 시민군이 조직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기록물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4·19 혁명은 1960년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 선거에 맞선 운동이고, 부·마 민주 항쟁은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저항한 운동이며, 6월 민주 항쟁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운동으로 모두 광주에서 신군부에 맞선 사건과는 구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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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었다.
베트남에 국군이 파병되었다.
소련 및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었다.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웹툰 화면은 제6공화국의 시작을 알린 (가) 정부를 다루면서, 1화 서울 올림픽 개최, 2화 3당 합당으로 국내 정치 지형이 바뀐 일, 3화 남북 정부 요인들이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한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1990년 민주 자유당 창당으로 이어진 3당 합당,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은 모두 노태우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 이루어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출범하여 제6공화국의 문을 연 정부입니다.
이 정부는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넓히는 북방 외교를 적극 추진하여 1990년 소련과, 1992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였습니다. 같은 시기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 베트남 국군 파병은 박정희 정부, 6·15 남북 공동 선언 발표는 김대중 정부 시기의 사실이므로 웹툰이 다루는 정부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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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적절한 것은? [3점]
전시 화면의 제목은 ‘사진으로 보는 노무현 정부’이며, 이미 걸려 있는 두 사진은 10·4 남북 공동 선언과 행정 중심 복합 도시 건설 시작입니다. 따라서 빈자리에는 같은 정부 시기의 장면이 들어가야 합니다.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채택된 10·4 남북 공동 선언,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어지는 행정 중심 복합 도시 건설은 모두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정부의 일입니다.
이 시기에는 2005년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정상 회의가 개최되었고,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 협상이 타결되는 등 대외 경제 협력이 확대되었습니다. 따라서 APEC 정상 회의 개최 사진이 빈자리에 알맞습니다.
경부 고속 국도 준공은 1970년 박정희 정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은 1996년 김영삼 정부,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는 2018년 문재인 정부 때의 일이므로 전시 주제와 시기가 어긋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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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48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