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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광통역안내사] 14년 1회차
다음 글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민족이 스스로 생존하는 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선명함이며, 민족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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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대하여 무장항일 운동의 실천을 촉구하는 독립신문의 사설이다.
2
유학생들이 동경(東京)에서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며 내건 2ㆍ8 독립선언의 결의문이다.
3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게재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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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3ㆍ1 독립선언서이다.
해설
제시된 글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3·1 독립선언서(기미독립선언서)의 첫머리(선언 부분)이다.
최남선이 초안을 쓴 이 선언서에는 천도교·기독교·불교 등 종교계 인사 33인이 서명하였다.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포하고 인류 평등과 세계 개조의 대세에 순응한다는 논리를 폈으며, 끝의 공약삼장에서 질서를 존중할 것을 밝혀 평화적·비폭력 원칙에 입각한 만세 시위로 이어졌다.
- 독립신문 사설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에 실린 글로, 이 선언서와는 발표 주체와 성격이 다르다.
- 2·8 독립선언은 도쿄 유학생들이 3·1 운동에 앞서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발표한 것으로,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며 최후의 혈전을 언급한 점에서 문면이 다르다.
- '시일야방성대곡'은 을사늑약 체결에 통분하여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실은 논설로, 독립 선언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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