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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광통역안내사] 15년 1회차
다음 내용의 인물과 관련이 없는 것은?
그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합격하고, 이름을 날린 뒤 고국에 돌아와 자신의 뜻을 펴보려 했으나, 출세하지 못하고 외직으로 나가 태수가 되었다. 시무책(時務策) 10개 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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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품제라는 신분제 때문에 정치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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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최(崔) 중 한 사람으로 문집 계원필경 20권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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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난이라고도 하여 진골 다음가는 일반 귀족 신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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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원(원주)지방의 도적 집단을 규합하여 호족이 되었다.
해설
제시된 사료의 인물은 최치원이며, 북원(원주) 지방의 도적 집단을 규합해 호족이 된 인물은 양길이므로 최치원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사료의 '당나라 유학, 빈공과 급제, 귀국 후 시무책 건의와 좌절'은 신라 하대 6두품 지식인 최치원의 대표적 이력이다. 그는 결국 뜻을 펴지 못하고 지방 태수로 밀려났다가 은둔했다.
- 골품제라는 신분의 벽 때문에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관등이 아찬까지로 막혀 있었고, 최치원의 정치적 좌절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 그는 최승우·최언위와 함께 신라 말 3최(崔)로 불렸고, 당에서 지은 글을 모은 문집 『계원필경』 20권을 남겼다.
- 득난은 얻기 어려운 신분이라는 뜻으로 6두품을 달리 이르는 말이며, 진골 바로 아래의 귀족 신분이라는 설명도 최치원에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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