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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이 기구’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선조 26년(1593)… | [관광통역안내사] 20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관광통역안내사] 20년 1회차

밑줄 친 ‘이 기구’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선조 26년(1593) 국왕의 행차가 서울로 돌아왔으나 성 안은 타다 남은 건물 잔해와 시체로 가득했다. 선조는 이 기구를 설치하여 군사를 훈련시키라고 명하였다. 이에 유성룡이 주도하여 명나라의 기효신서를 참고하여 훈련법을 습득하고 조직을 갖추었다.

1
군병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였다.
2
정토군이 편성되어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3
부대 편성은 삼수군인 포수, 사수, 살수로 하였다.
4
서울에 내영, 수원에 외영을 두어 국왕의 친위를 담당하였다.
해설

선조 26년(1593) 유성룡의 주도로 명의 기효신서를 참고해 설치된 이 기구는 훈련도감이며, 그 편제는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이었다.

임진왜란 중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속수무책이던 경험을 반영해, 훈련도감은 조총을 다루는 포수, 활을 쏘는 사수, 창검으로 근접전을 벌이는 살수로 나뉘어 전문 훈련을 받았다. 이는 5군영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부대이자 조선 후기 중앙군의 핵심이 되었다.

  • 훈련도감의 군병은 삼수미세 등으로 급료를 받는 직업적 상비군이었으므로, 스스로 비용을 부담했다는 설명은 자비로 무장하던 조선 전기 병농일치 군역이나 속오군에 해당한다.
  • 여진 침입에 대비해 정토군(별무반)을 편성한 것은 고려 숙종 때 윤관의 건의에 따른 일로 시기와 나라가 다르다.
  • 서울에 내영,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두어 국왕 친위를 맡은 부대는 정조가 창설한 장용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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