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격문이 작성된 시기의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51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51회
다음 격문이 작성된 시기의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1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2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었다.
3
최치원이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4
수령과 향리의 수탈로 삼정이 문란하였다.
해설
격문은 평서대원수의 이름으로 관서 지역 사람들에게 호소하면서, 조정이 관서를 썩은 흙과 같이 버렸고 권세가의 노비조차 관서 사람을 보면 ‘평안도 놈’이라 부른다며 차별의 억울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1811년 순조 때 일어난 홍경래의 난 당시의 격문입니다. 평안도 지역에 대한 오랜 차별과 세도 정치기의 수탈이 겹치면서 몰락 양반 홍경래를 중심으로 영세 농민, 광산 노동자, 상인 등이 봉기해 청천강 이북을 장악했다가 정주성에서 진압되었습니다.
이 시기 상황으로 옳은 것은 수령과 향리의 수탈로 삼정이 문란했다는 설명입니다. 세도 정치 아래 전정·군정·환곡의 운영이 무너져 농민 부담이 커졌고, 그 결과 1862년 임술 농민 봉기로도 이어졌습니다.
무신들의 정권 장악은 고려 무신 정변 이후, 별기군 창설은 1881년 개항 이후의 개화 정책,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건의는 신라 하대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