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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1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1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2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3
영국군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4
조선이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하고 천주교 포교를 허용하였다.
5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해설

(가)는 「베이징 주재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의 서한」으로, 조선에서 국왕의 명령에 의해 프랑스인 주교 2명과 선교사 9명, 조선인 사제 7명과 수많은 천주교도가 학살되었으며 며칠 내로 군대가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출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1866년 병인박해 직후 병인양요를 예고한 문서다.

(나)는 「대한계년사」의 기록으로, 돌을 캐어 종로에 비석을 세우고 그 비면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 새겼다고 하였다. 신미양요 직후인 1871년 흥선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는 1866년부터 1871년까지의 시기이다. 이 기간에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1868년 통상을 요구하던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 아버지의 묘를 파헤치려다 실패하였고, 이 사건은 서양에 대한 반감을 키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나) 이후의 일이다. 운요호의 영종도 공격은 187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1885년, 프랑스와의 조약 체결로 천주교 포교가 허용된 것은 1886년,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한 영남 만인소는 188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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