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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국문교서’가 발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
이순신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
2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항전하였다.
3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4
계해약조가 체결되어 세견선의 입항이 허가되었다.
5
조선 정부의 통제에 반발항 3포 왜란이 일어났다.
해설
그림 속 자료는 의주로 파천한 국왕이 내린 국문 교서로, 어쩔 수 없이 왜군에게 협조한 백성의 죄는 묻지 않으며, 왜군을 잡아오거나 포로가 된 우리 백성을 데리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벼슬을 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설명된다.
국왕이 의주까지 피란한 상황은 임진왜란 초기이며, 이 교서는 왜군 점령지의 백성을 회유하여 조선 편으로 돌리려 한 선조의 문서다. 따라서 이 교서 이후의 사실을 골라야 한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한 것이 이 교서가 발표된 뒤의 일이다. 이순신은 남은 열세 척의 배로 좁은 울돌목의 조류를 이용해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 서해로 향하던 물길을 막았다.
나머지는 모두 그 이전이다. 신립의 탄금대 항전은 왜란 발발 직후 국왕이 의주로 향하기 전에 있었고, 이종무의 쓰시마섬 정벌은 세종 즉위 초, 계해약조와 3포 왜란은 각각 세종·중종 때의 일로 임진왜란보다 훨씬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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