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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3회
(라)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 (가) 살리타이가 처인성을 공격하였다. 적을 피해 성에 와 있던 한 승려가 살리타이를 쏘아 죽였다. 국가에서 그 전공을 칭찬하여 상장군 벼슬을 주었다. 승려가 전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말하기를, "전투할 때 나는 활과 화살이 없었으니, 어찌 감히 공 없이 무거운 상을 받겠습니까."라고 하고,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 (나) [우리 부대가] 대군(大軍)과 연합하여 평양을 포위하였다. 보장왕이 먼저 연남산 등을 보내 영공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이에 영공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덕남 및 대신 등 20여만 명을 끌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는 영공을 따라 돌아갔다.
- (다)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적병이 두 차례나 용골산성을 공격해 왔지만 정봉수는 홀로 고립된 성을 지키면서 충성과 용맹을 더욱 떨쳤습니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를 더 모집하여 육로로 혹은 배편으로 달려가서 기세(氣勢)를 돕게 하소서. 용골산성이 비록 포위에서 풀렸으나 이 일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따랐다.
- (라) 부사 송상현은 왜적이 바다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주민과 군사 그리고 이웃 고을의 군사를 모두 불러 모아 성에 들어가 지켰다. …… 성이 포위당하자 상현이 성의 남문에 올라가 전투를 독려하였으나 한나절 만에 성이 함락되었다. 상현은 갑옷 위에 조복(朝服)*을 입고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 적이 모여들어 생포하려고 하자 상현이 발로 걷어차면서 항거하다가 마침내 해를 입었다.
*조복(朝服):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 입던 예복
1
내상이 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2
안승이 왕으로 봉해진 보덕국이 세워졌다.
3
지역 차별에 반발하여 홍경래가 봉기하였다.
4
만적을 비롯한 노비들이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다.
5
지주 문재철의 횡포에 맞서 소작 쟁의가 일어났다.
해설
(라)는 임진왜란 초기에 부사 송상현이 갑옷 위에 조복을 갖추어 입고 끝까지 항전하다 순절한 동래성 전투이므로,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동래 곧 오늘날의 부산이다. 조선 후기 동래에는 일본과의 교역 창구인 왜관이 설치되어 이곳을 근거지로 한 상인인 내상이 대일 무역을 주도하였다. 보덕국이 세워져 안승이 왕으로 봉해진 곳은 금마저(익산), 홍경래가 봉기한 곳은 평안도, 만적이 신분 해방을 도모한 곳은 개경, 지주 문재철에 맞선 소작 쟁의가 일어난 곳은 암태도이므로 동래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다. 참고로 (가)는 몽골의 침입 때의 처인성 전투, (나)는 고구려 멸망, (다)는 정묘호란 때의 용골산성 항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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