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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4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가) 거란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낙타 50필을 보냈다. 왕은 거란이 일찍이 발해와 지속적으로 화목하다가 갑자기 의심하여 맹약을 어기고 멸망시켰으니, 이는 매우 무도하여 친선 관계를 맺어 이웃으로 삼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교빙을 끊고 사신 30인을 섬으로 유배 보냈으며,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 매어두니 모두 굶어 죽었다.
(나) 양규가 흥화진으로부터 군사 7백여 명을 이끌고 통주까지 와서 군사 1천여 명을 수습하였다. 밤중에 곽주로 들어가서 지키고 있던 적들을 급습하여 모조리 죽인 후 성 안에 있던 남녀 7천여 명을 통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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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에 대비하여 광군이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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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이 귀주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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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도감이 설치되어 화포를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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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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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위 설치에 반발하여 요동 정벌이 추진되었다.
해설
(가)는 거란이 보낸 낙타를 만부교에서 굶겨 죽인 만부교 사건(942, 태조)이고, (나)는 양규가 흥화진에서 곽주를 되찾은 거란의 2차 침입(1010~1011) 때의 일이다. 그 사이인 정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을 조직하고 광군사를 두어 통솔하게 하였다.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 화통도감 설치(1377), 김윤후의 처인성 승리(1232), 철령위 설치에 따른 요동 정벌(1388)은 모두 (나)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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