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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9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이때 세금을 부과하는 직책의 신하들이 재물을 거두어들여 자기 배만 채우면서 각영(各營)에 소속된 군인들의 봉급은 몇 달 동안 나누어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훈국(訓局)의 군사가 맨 먼저 난을 일으키고, 각영의 군사가 잇달아 일어났다. 이들은 이최응, 민겸호, 김보현, 민창식을 죽였고 또 중전을 시해하려 하였다. 중전은 장호원으로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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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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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3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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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사관 경비 명목으로 일본군이 주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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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를 두었다.
해설
봉급을 받지 못한 훈국의 군사가 먼저 난을 일으켜 민겸호 등을 죽이고 중전이 장호원으로 피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자료의 사건은 임오군란(1882)이다. 군란 수습 과정에서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맺어 배상금을 물고 공사관 경비를 명목으로 일본군의 주둔을 허용하였다. 강화도 조약과 김기수의 수신사 파견은 이전의 일이고, 척화비 건립은 신미양요 직후, 통리기무아문 설치는 1880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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