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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9회
밑줄 그은 '이 전쟁'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사료로 만나는 한국사]

신풍부원군 장유가 예조에 단자를 올리기를 “외아들이 있는데 강도(江都)의 변 때 그의 처가 잡혀갔다가 속환되어 지금은 친정 부모집에 가 있습니다. 그대로 배필로 삼아 함께 조상의 제사를 받들 수 없으니, 새로 장가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위 사료는 이 전쟁 중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적국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며느리를 아들과 이혼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글이다. 국왕이 삼전도에서 항복하며 종결된 이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여성들은 살아 돌아오더라도 절개를 잃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이혼을 당하기도 하였다.
1
이완 등을 중심으로 북벌이 추진되었다.
2
김종서가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였다.
3
이종무가 적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4
강홍립이 이끄는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
5
국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비변사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해설

강화도가 함락되고 국왕이 삼전도에서 항복하며 끝났으며 많은 사람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이 전쟁'은 병자호란(1636~1637)이다. 전쟁의 치욕을 씻자는 명분 아래 효종은 송시열·이완 등을 중심으로 청을 정벌하려는 북벌을 추진하였다. 6진 개척과 쓰시마 정벌은 조선 전기, 사르후 전투 참전은 광해군, 비변사의 처음 설치는 중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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