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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가)…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0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0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 (가) 순무영에서 정족산성 수성장 양헌수가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 우리 군사가 잠입한 사실을 적들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저들은 우리가 지키고 있는 성을 점령할 계책으로 그 우두머리가 말을 타고 나귀를 끌고 짐바리와 술과 음식을 가지고 동문과 남문으로 나누어 들어왔습니다. 이때 우리 군사들이 좌우에 매복하였다가 일제히 총탄을 퍼부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나) 4월 24일에 계속해서 올린 강화 진무사 정기원의 치계에, “미국 배가 다시 항구로 들어와서 광성진을 습격하여 함락하였는데, 중군 어재연이 힘껏 싸우다가 목숨을 바쳤고, 사망한 군사가 매우 많습니다. 적병은 초지포 부근에 주둔하였습니다. 장수 이렴이 밤을 이용하여 습격해서야 그들을 퇴각시켰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1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2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의 도굴을 시도하였다.
3
마젠창과 묄렌도르프가 고문으로 파견되었다.
4
영국군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5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해설

(가)는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병인양요(1866), (나)는 어재연이 광성보에서 미군에 맞서 싸운 신미양요(1871)이다. 두 사건 사이인 1868년에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의 도굴을 시도하여 서양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운요호 사건은 1875년, 마젠창·묄렌도르프 파견은 임오군란 이후, 거문도 사건은 1885년, 황사영 백서는 1801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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