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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1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가) 임금이 여러 도(道)에 명을 내렸다. “나라의 운세가 매우 좋지 않아 역적 이괄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여러 장수들이 좌시하여 수도가 함락되고 말았다. …… 예로부터 반역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이처럼 극도로 흉악한 역적은 없었다. 종사와 자전*을 염려하여 남쪽으로 피란하기로 결정하였다.”
(나) 정명수가 심양에 있는 소현 세자의 관소에 와서 용골대의 뜻을 전하기를, “세자가 이곳에 들어온 지가 이미 5년이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먹고살 길을 마련하지 않는가. 세자와 인질들에게 어찌 먹고살 식량을 늘 지급해 줄 수가 있겠는가. 경작할 땅을 주어 내년부터 각자 농사를 지어 먹도록 함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
1
정문부가 길주에서 의병을 이끌었다.
2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3
영창 대군이 사사되고 인목 대비가 유폐되었다.
4
이덕형이 구원병 요청을 위해 명에 청원사로 파견되었다.
5
김상헌 등이 남한산성에서 화의에 반대하여 항전을 주장하였다.
해설
(가)는 인조가 공주로 피란하게 만든 1624년 이괄의 난이고, (나)는 병자호란 뒤 청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 세자가 심양에 머문 지 5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 사이인 1636년 병자호란 때 김상헌 등은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의에 반대하며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정문부의 의병 활동과 훈련도감 설치는 임진왜란, 영창 대군 사사와 인목 대비 유폐는 광해군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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