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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이 자료…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4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4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이 자료는 종교계와 재야 인사들이 명동 성당에서 독재 정권을 비판하며 발표한 3·1 민주 구국 선언의 일부입니다. 이 선언이 발표된 이후에 있었던 사실에 대해 말해 볼까요?

민주 구국 선언
1.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 조치를 곧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다가 투옥된 민주 인사들과 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국민의 의사가 자유로이 표명될 수 있도록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국민에게 돌리라고 요구한다.
둘째로 우리는 유신 헌법으로 허울만 남은 의회 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이 표현되는 민의를 국회는 입법에 반영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행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것을 꺼리고 막는 정권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실은 국민을 위하려는 뜻이 없는 정권이다.
1
국회 별관에서 3선 개헌안이 통과되었습니다.
2
정부에 비판적인 경향신문이 폐간되었습니다.
3
YH 무역 노동자들이 야당 당사에서 농성하였습니다.
4
최고 통치 기구인 국가 재건 최고 회의가 구성되었습니다.
5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이 처형되었습니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1976년 명동 성당에서 재야 인사들이 긴급 조치 철폐와 유신 헌법 아래 무력해진 의회 정치의 회복을 요구하며 발표한 3·1 민주 구국 선언이다. 이 선언 이후인 1979년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폐업에 항의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고, 이 사건은 부마 민주 항쟁과 유신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3선 개헌안 통과는 1969년, 경향신문 폐간과 조봉암 처형은 1950년대, 국가 재건 최고 회의 구성은 1961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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