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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6회
(가)~(마)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역사 돋보기] 우리나라의 연호(年號)

연호는 군주가 자기의 치세 연차(年次)에 붙이는 칭호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사용되었다. 연호는 원칙적으로 황제만 사용 가능하고, 제후 왕은 독자적인 연호를 쓸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연호는 고구려 (가) 의 영락이다. 신라도 (나) 이 건원이라는 연호를, 뒤를 이은 진흥왕은 개국·태창·홍제 등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발해 고왕은 연호를 천통으로 했으며, (다) 은/는 인안, 문왕은 대흥, 선왕은 건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려 태조는 천수를 사용하고, (라) 은/는 광덕·준풍을 연호로 삼았다.

조선은 고종 대에 개국기년(開國紀年)을 공문서에 사용하다가 건양, 광무로 연호를 정하였다. 그 뒤를 이은 (마) 은/는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1
(가) - 군대를 보내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였다.
2
(나) - 금관가야를 복속하여 영토를 확대하였다.
3
(다) - 장문휴를 보내 당의 산둥반도를 공격하였다.
4
(라) -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호족 세력을 견제하였다.
5
(마) - 전제 군주제를 명문화한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다.
해설

(가)는 영락 연호를 사용한 고구려 광개토 대왕, (나)는 건원 연호를 처음 사용한 신라 법흥왕, (다)는 인안 연호를 쓴 발해 무왕, (라)는 광덕·준풍 연호를 쓴 고려 광종, (마)는 융희 연호를 사용한 순종이다. 대한국 국제는 1899년 고종이 황제권을 명문화하며 반포한 것이므로 순종의 사실로 볼 수 없다. 나머지 왕들의 설명, 즉 광개토 대왕의 신라 구원, 법흥왕의 금관가야 복속, 무왕이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를 공격한 일, 광종의 노비안검법 시행은 모두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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