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24년 1회차
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기출문제

24년 1회차

총 15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4년 1회차

총 15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가) (나) ①태조왕이 옥저를 복속하였다.
②진흥왕이 화랑도를 개편하였다.
③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④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정하였다.
1①
2②
3③
4④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이 아닌 것은 태조왕의 옥저 복속이다. 이 사건은 1세기의 일로 (가) 지도보다 훨씬 앞선다.

(가) 지도는 고구려 수도가 '국내성'이고 백제 수도가 '한성'이므로 427년 고구려의 평양 천도 이전 상황이다. (나) 지도는 고구려 수도가 '평양', 백제 수도가 '사비'이고 신라 영역이 동해안 북부까지 뻗어 있어 538년 사비 천도 이후, 진흥왕의 영토 확장기 상황이다.

  • 장수왕의 남진 정책: 5세기에 평양 천도와 한성 함락으로 이어졌으므로 두 지도 사이의 일이다.
  • 지증왕의 국호 제정: 6세기 초인 503년에 '신라'로 정했으므로 두 지도 사이의 일이다.
  • 진흥왕의 화랑도 개편: 신라가 (나) 지도의 영토로 넓어지던 6세기 진흥왕 대의 일로, 두 지도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문제 2
(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가) 건국강령
1.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 이래로 같은 말과 글과 국토와 주권과 경제와 문화를 가지고 공동한 민족정기를 길러온, 우리끼리 형성하고 단결한 고정적 집단의 최고조직임.
2. 우리나라의 건국 정신은 삼균제도의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 이는 사회 각 계급‧계층이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향유를 균평하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전유지하라고 한 것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켜야 할 최고의 공리임.
1충칭에서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21941년 일제에 대일 선전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3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하였다.
4민족혁명당과 사회주의 계열 단체 인사가 합류하였다.
정답 및 해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한 것은 임시정부가 아니라 화북조선독립동맹 계열의 활동이다.

‘건국강령’과 ‘삼균제도’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1941년 충칭에서 발표한 건국 방침이므로, (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 한국광복군: 임시정부가 1940년 충칭에서 창설한 정규군이다.
  • 대일 선전 성명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정부가 1941년에 발표하였다.
  • 민족혁명당 등의 합류: 1940년대 전반 김원봉 등 좌파 계열 인사가 참여해 임시정부가 좌우 합작의 모습을 갖추었다.
문제 3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가)명군 도독 이여송이 대병력의 관군을 거느리고 곧바로 평양성 밖에 다다라 제장에게 부서를 나누어 본성을 포위하였습니다. … 조선의 장군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매복하고 함께 대로로 나아가니 왜적들은 사방으로 도망가다가 복병의 요격을 입었습니다.
(나)화의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명은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나라이고 노적은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원수입니다. … 어찌 차마 이런 시기에 다시 화의를 제창할 수 있겠습니까?
1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2신립 장군은 충주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였다.
3인조는 삼전도에 나가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4조선은 왜구의 약탈을 근절하고자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강홍립의 후금 항복(1619)이다.

(가)는 ‘이여송’의 명군이 ‘평양성’을 포위한 장면으로 임진왜란 중 평양성 탈환(1593)이고, (나)는 ‘화의’를 반대하고 ‘노적’을 원수라 한 척화론으로 병자호란 무렵(1636)의 상소이다.

  • 신립의 충주 패배: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의 일로 (가)보다 앞선다.
  • 인조의 삼전도 항복: 1637년의 일로 척화 상소가 올라온 (나)보다 뒤이다.
  • 대마도 정벌: 세종 때인 1419년의 일로 (가)보다 훨씬 앞선다.
문제 4
밑줄 친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남편은 세상을 떴으나 뱃속에 아기가 있었지요. …… 포대기에 쌓인 갓난아기 장정으로 군적에 올려서 문이 닳도록 찾아와 군포를 바치라고 독촉하고 어제는 아기를 업고 관가에 점호를 받으러 갔다오. …… 점호라고 받고 돌아오니 아기는 이미 죽어 있었지요.
이 시에서 나타낸 조세 제도를 감면한 뒤 발생한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1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2풍흉에 관계 없이 일정하게 조세를 거두었다.
3부유한 양민에게 선무군관포를 내게 하였다.
4토지 소유자에게 공납을 쌀․동전 등으로 내게 하였다.
정답 및 해설

재정 부족을 메운 방법은 선무군관포 징수이다. 시에 나타난 군포 부담을 줄인 균역법의 보완책에 해당한다.

시의 '군적', '군포'와 갓난아기를 장정으로 올렸다는 내용은 어린아이에게 군포를 물린 황구첨정의 폐단을 보여 준다. 영조는 균역법으로 군포 부담을 줄였고, 줄어든 수입은 결작, 어장세·염세·선박세, 일부 부유한 양민에게 걷은 선무군관포로 보충하였다.

  •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 통일 신라 신문왕 대의 토지 정책으로 군포와 관계없다.
  • 풍흉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거두는 조세: 조선 인조 대 영정법의 전세 고정 내용이다.
  • 공납을 쌀·동전 등으로 내게 한 조치: 공납의 폐단을 고친 대동법의 내용이다.
문제 5
(가) 시기에 해당하는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노비를 상세히 조사하고 살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밝혀내도록 명하였다. 주인을 배반하는 노비들이 이루 다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로 말미암아 상전을 능멸하는 풍조가 크게 일어나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고 원망하므로 왕비가 간절하게 간언하였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
(가)
⤋
가을 7월. 교(敎)하기를, “양민이 된 노비들은 해가 점차 멀어지면 반드시 그 본래의 주인을 가벼이 보고 업신여기게 된다. … 만약 그 주인을 욕하는 자가 있으면, 다시 천민으로 되돌려 부리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강조가 정변을 일으켰다.
2거란이 개경을 점령하였다.
3전시과가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4공신들에게 역분전이 지급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의 사실은 경종 때 전시과가 처음 제정된 것(976)이다.

앞 자료는 ‘노비를 상세히 조사’하여 옳고 그름을 가린 광종의 노비안검법(956)이고, 뒤 자료는 주인을 욕하는 자를 ‘다시 천민으로 되돌려’ 부리게 한 성종의 노비환천법(987)이다.

  • 강조의 정변: 목종을 폐위한 1009년의 일로 성종 이후이다.
  • 거란의 개경 점령: 현종 때 거란의 2차 침입(1010~1011) 때의 일로 성종 이후이다.
  • 역분전 지급: 태조 때인 940년의 일로 광종 이전이다.
문제 6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김해․고령 등 (가)고분군 7곳,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됐다.
유네스코 “고대 문명의 주요 증거”
한반도 남부에 남아 있는 유적 7곳을 묶은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됐다. … (가)은/는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주로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작은 나라들의 총칭이다.
- 2023. 9. 18. □□ 일보 -
1낙동강 하류의 변한 지역에서 성장하였다.
2철기를 활발히 생산하여 주변국에 수출하였다.
3골품에 따라 관등이나 관직 승진에 제한이 있었다.
4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전기 가야 연맹이 결성되었다.
정답 및 해설

골품에 따른 관등·관직 승진의 제한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의 신분제에 대한 설명이다.

‘김해·고령’ 등의 고분군과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에서 번성한 작은 나라들의 총칭이라는 단서로 (가)는 가야임을 알 수 있다.

  • 변한 지역 성장: 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변한 소국들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 철기 수출: 풍부한 철을 생산해 낙랑과 왜 등에 수출하였다.
  • 전기 가야 연맹: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다.
문제 7
(가), (나) 사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가)봉화백(奉化伯) 정도전․의성군(宜城君) 남은과 부성군(富城君) 심효생(沈孝生) 등이 여러 왕자들을 해치려 꾀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을 당하였다.
(나)상왕이 말하기를, “만일 물리치지 못하고 항상 침노만 받는다면, 한(漢)나라가 흉노에게 욕을 당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구주(九州)에서 온 왜인만은 구류하여 경동하는 일이 없게 하라. 또 우리가 약한 것을 보이는 것은 불가하니, 후일의 환이 어찌 다함이 있으랴.” 하고, 곧 이종무를 삼군 도체찰사로 명하여, 중군을 거느리게 하였다.
1경연이 폐지되었다.
2홍문관이 설치되었다.
36조 직계제가 시행되었다.
4위화도 회군이 단행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태종 때 시행된 6조 직계제이다.

(가)는 ‘정도전’ 등이 처형된 제1차 왕자의 난(1398)이고, (나)는 ‘상왕’ 태종이 ‘이종무’를 보내 추진한 대마도 정벌(1419)이므로, 태종 때의 일이 이 시기에 든다.

  • 경연 폐지: 세조 때의 일로 (나)보다 뒤이다.
  • 홍문관 설치: 집현전을 계승한 기구로 성종 때 정비되어 (나)보다 뒤이다.
  • 위화도 회군: 조선 건국 전인 1388년의 일로 (가)보다 앞선다.
문제 8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가)에는 각각 우두머리가 있어서 세력이 강대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하였다. …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에 각각 한 사람씩 세워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이라 부른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1무천이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다.
2화백회의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다.
3여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연맹체였다.
4사출도라 불리는 독자적인 영역이 있었다.
정답 및 해설

(가)는 삼한이며, 여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연맹체였다.

우두머리를 ‘신지’·‘읍차’라 부르고,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을 따로 둔 것은 정치와 제사가 분리된 삼한 사회의 특징이다.

  • 무천: 동예의 제천행사이다.
  • 화백회의: 신라의 귀족 합의 기구이다.
  • 사출도: 부여의 가(加)들이 다스린 영역이다.
문제 9
밑줄 친 ‘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에게 말하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성을 부수었으니, 노객은 백성된 자로서 왕에게 귀의하여 분부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 10년(400)에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1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2마한을 병합하고 평양을 공격하였다.
3마립간이라는 왕호를 처음 사용하였다.
4요동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왕’은 광개토대왕으로, 요동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신라가 왜의 침입을 알리며 ‘노객’이라 자칭하고, 왕이 ‘10년(400)’에 군대 5만을 보내 구원한 내용은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이다.

  • 태학 설립과 율령 반포: 고구려 소수림왕의 업적이다.
  • 마한 병합과 평양 공격: 백제 근초고왕의 업적이다.
  • 마립간 왕호: 신라 내물왕 때 사용된 왕호로 고구려와 관계가 없다.
문제 10
(가), (나) 집단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효종의 사망과 관련하여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의 복제(服制)가 쟁점이 되었다. (가)은/는 효종이 적장자가 아니라는 근거를 들어 왕과 사대부에게 같은 예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나)은/는 왕에게는 일반 사대부와 다른 예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가) - 인조반정으로 몰락하였다.
2(가) -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3(나) -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되었다.
4(나) - 송시열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서인이며, 경신환국(1680)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효종’의 사망 후 ‘자의대비’의 복제를 둘러싼 기해예송에서, 효종이 적장자가 아니므로 왕과 사대부에게 같은 예를 적용하자는 쪽이 서인이고, 왕에게는 다른 예를 적용하자는 (나)는 남인이다.

  • 인조반정으로 몰락: 광해군을 지지한 북인에 해당하며 서인은 오히려 반정의 주도 세력이었다.
  •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 남인이 아니라 서인의 분화이다.
  • 송시열 중심의 세력 확대: 송시열은 서인의 영수로 남인에 해당하지 않는다.
문제 11
(가)~(다)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가)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났다.
(나)이승훈이 최창현ㆍ홍낙민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다)윤지충과 권상연을 사형에 처하고, 진산군(珍山郡)은 현(縣)으로 강등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1(가) - (나) - (다)
2(나) - (가) - (다)
3(다) - (가) - (나)
4(다) - (나) - (가)
정답 및 해설

일어난 순서는 (다) → (나) → (가)이다.

정조 때 신해박해가 먼저이고, 순조 즉위 초의 신유박해(1801) 안에서 이승훈의 처형이 황사영 백서 사건보다 앞선다.

  • (다) 윤지충·권상연 처형: 신주를 불사른 진산 사건으로 일어난 신해박해(1791)이다.
  • (나) 이승훈 처형: 1801년 신유박해 초기에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참수되었다.
  • (가) 황사영 백서 사건: 신유박해의 실상을 베이징 주교에게 알리려던 백서가 1801년 후반에 발각된 사건이다.
문제 12
(가)~(다)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조선은 김기수와 김홍집을 수신사로 (가)에 파견하였다. (나)에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아 무기 제조 기술 등을 배우는 유학생을 보냈다. 또한 조선은 민영익 등을 보빙사로 (다)에 파견하였다.
1(가) - 흥선 대원군을 자국으로 납치하였다.
2(나) -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3(다) -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4(가)와 (나) -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 일본과 (나) 청이 톈진 조약(1885)을 체결하였다는 설명이 옳다.

‘수신사’를 보낸 (가)는 일본, ‘영선사’ 김윤식을 보낸 (나)는 청, ‘보빙사’ 민영익을 보낸 (다)는 미국이다.

  • 흥선 대원군 납치: 임오군란 뒤 청이 벌인 일로 일본의 행위가 아니다.
  • 강화도 조약: 조선이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청과는 관계가 없다.
  • 거문도 불법 점령: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벌인 일로 미국의 행위가 아니다.
문제 13
다음 정책과 같은 목적으로 시행된 것은?
신라 왕 김부가 항복해 오니 그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여 부호장 이하의 관직 등에 관한 일을 맡게 하였다. 이에 여러 공신들 역시 이를 본받아 각각 자기 주의 사심관이 되게 하였다.
1기인제도
2북진정책
3정혜쌍수
4독서삼품과
정답 및 해설

사심관 제도와 같은 목적으로 시행된 것은 기인제도이다.

태조가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한 것은 지방 출신 인사에게 그 지역의 책임을 맡겨 호족을 통제하려는 정책이며, 호족의 자제를 개경에 머물게 한 기인제도도 같은 목적이다.

  • 북진정책: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영토 확장 정책이다.
  • 정혜쌍수: 지눌이 내세운 불교 수행론이다.
  • 독서삼품과: 통일 신라 원성왕 때 유학 소양으로 관리를 뽑으려 한 제도이다.
문제 14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 : 고려 시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의 관원을 합쳐서 불렀다. 이들은 (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사 용어 사전」-
1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
2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법제와 격식 제정
3관원 임명시 동의 여부에 서명할 수 있는 서경
4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봉박
정답 및 해설

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법제와 격식을 정한 것은 대간이 아니라 식목도감에 모인 재신의 역할이다.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의 관원을 합쳐 부르는 ○○은 대간이며, 간쟁·봉박·서경으로 왕과 고위 관리를 견제하였다.

  • 간쟁: 왕의 잘못을 논하는 대간의 권한이다.
  • 서경: 관원 임명 때 동의 여부를 서명하는 대간의 권한이다.
  • 봉박: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대간의 권한이다.
문제 15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가장 옳게 나열한 것은?
(가)전라도 각지에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나)고부에서 만석보가 허물어졌다.
(다)청과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1(가)-(나)-(다)
2(가)-(다)-(나)
3(나)-(다)-(가)
4(나)-(가)-(다)
정답 및 해설

일어난 순서는 (나) → (가) → (다)이다.

세 사건은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와 청일 전쟁의 종결 순서로 정리된다.

  • (나) 만석보 파괴: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일어난 1894년 초 고부 농민 봉기 때의 일이다.
  • (가) 집강소 설치: 1894년 전주 화약 이후 농민군이 전라도 각지에 설치하였다.
  • (다) 시모노세키 조약: 청일 전쟁을 끝내며 1895년에 체결되었다.
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4년 1회차
총 15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가) (나) ①태조왕이 옥저를 복속하였다.
②진흥왕이 화랑도를 개편하였다.
③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④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정하였다.
1①
2②
3③
4④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이 아닌 것은 태조왕의 옥저 복속이다. 이 사건은 1세기의 일로 (가) 지도보다 훨씬 앞선다.

(가) 지도는 고구려 수도가 '국내성'이고 백제 수도가 '한성'이므로 427년 고구려의 평양 천도 이전 상황이다. (나) 지도는 고구려 수도가 '평양', 백제 수도가 '사비'이고 신라 영역이 동해안 북부까지 뻗어 있어 538년 사비 천도 이후, 진흥왕의 영토 확장기 상황이다.

  • 장수왕의 남진 정책: 5세기에 평양 천도와 한성 함락으로 이어졌으므로 두 지도 사이의 일이다.
  • 지증왕의 국호 제정: 6세기 초인 503년에 '신라'로 정했으므로 두 지도 사이의 일이다.
  • 진흥왕의 화랑도 개편: 신라가 (나) 지도의 영토로 넓어지던 6세기 진흥왕 대의 일로, 두 지도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문제 2
(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가) 건국강령
1.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 이래로 같은 말과 글과 국토와 주권과 경제와 문화를 가지고 공동한 민족정기를 길러온, 우리끼리 형성하고 단결한 고정적 집단의 최고조직임.
2. 우리나라의 건국 정신은 삼균제도의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 이는 사회 각 계급‧계층이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향유를 균평하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전유지하라고 한 것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켜야 할 최고의 공리임.
1충칭에서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21941년 일제에 대일 선전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3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하였다.
4민족혁명당과 사회주의 계열 단체 인사가 합류하였다.
정답 및 해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한 것은 임시정부가 아니라 화북조선독립동맹 계열의 활동이다.

‘건국강령’과 ‘삼균제도’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1941년 충칭에서 발표한 건국 방침이므로, (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 한국광복군: 임시정부가 1940년 충칭에서 창설한 정규군이다.
  • 대일 선전 성명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정부가 1941년에 발표하였다.
  • 민족혁명당 등의 합류: 1940년대 전반 김원봉 등 좌파 계열 인사가 참여해 임시정부가 좌우 합작의 모습을 갖추었다.
문제 3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가)명군 도독 이여송이 대병력의 관군을 거느리고 곧바로 평양성 밖에 다다라 제장에게 부서를 나누어 본성을 포위하였습니다. … 조선의 장군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매복하고 함께 대로로 나아가니 왜적들은 사방으로 도망가다가 복병의 요격을 입었습니다.
(나)화의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명은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나라이고 노적은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원수입니다. … 어찌 차마 이런 시기에 다시 화의를 제창할 수 있겠습니까?
1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2신립 장군은 충주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였다.
3인조는 삼전도에 나가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4조선은 왜구의 약탈을 근절하고자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강홍립의 후금 항복(1619)이다.

(가)는 ‘이여송’의 명군이 ‘평양성’을 포위한 장면으로 임진왜란 중 평양성 탈환(1593)이고, (나)는 ‘화의’를 반대하고 ‘노적’을 원수라 한 척화론으로 병자호란 무렵(1636)의 상소이다.

  • 신립의 충주 패배: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의 일로 (가)보다 앞선다.
  • 인조의 삼전도 항복: 1637년의 일로 척화 상소가 올라온 (나)보다 뒤이다.
  • 대마도 정벌: 세종 때인 1419년의 일로 (가)보다 훨씬 앞선다.
문제 4
밑줄 친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남편은 세상을 떴으나 뱃속에 아기가 있었지요. …… 포대기에 쌓인 갓난아기 장정으로 군적에 올려서 문이 닳도록 찾아와 군포를 바치라고 독촉하고 어제는 아기를 업고 관가에 점호를 받으러 갔다오. …… 점호라고 받고 돌아오니 아기는 이미 죽어 있었지요.
이 시에서 나타낸 조세 제도를 감면한 뒤 발생한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1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2풍흉에 관계 없이 일정하게 조세를 거두었다.
3부유한 양민에게 선무군관포를 내게 하였다.
4토지 소유자에게 공납을 쌀․동전 등으로 내게 하였다.
정답 및 해설

재정 부족을 메운 방법은 선무군관포 징수이다. 시에 나타난 군포 부담을 줄인 균역법의 보완책에 해당한다.

시의 '군적', '군포'와 갓난아기를 장정으로 올렸다는 내용은 어린아이에게 군포를 물린 황구첨정의 폐단을 보여 준다. 영조는 균역법으로 군포 부담을 줄였고, 줄어든 수입은 결작, 어장세·염세·선박세, 일부 부유한 양민에게 걷은 선무군관포로 보충하였다.

  •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 통일 신라 신문왕 대의 토지 정책으로 군포와 관계없다.
  • 풍흉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거두는 조세: 조선 인조 대 영정법의 전세 고정 내용이다.
  • 공납을 쌀·동전 등으로 내게 한 조치: 공납의 폐단을 고친 대동법의 내용이다.
문제 5
(가) 시기에 해당하는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노비를 상세히 조사하고 살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밝혀내도록 명하였다. 주인을 배반하는 노비들이 이루 다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로 말미암아 상전을 능멸하는 풍조가 크게 일어나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고 원망하므로 왕비가 간절하게 간언하였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
(가)
⤋
가을 7월. 교(敎)하기를, “양민이 된 노비들은 해가 점차 멀어지면 반드시 그 본래의 주인을 가벼이 보고 업신여기게 된다. … 만약 그 주인을 욕하는 자가 있으면, 다시 천민으로 되돌려 부리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강조가 정변을 일으켰다.
2거란이 개경을 점령하였다.
3전시과가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4공신들에게 역분전이 지급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의 사실은 경종 때 전시과가 처음 제정된 것(976)이다.

앞 자료는 ‘노비를 상세히 조사’하여 옳고 그름을 가린 광종의 노비안검법(956)이고, 뒤 자료는 주인을 욕하는 자를 ‘다시 천민으로 되돌려’ 부리게 한 성종의 노비환천법(987)이다.

  • 강조의 정변: 목종을 폐위한 1009년의 일로 성종 이후이다.
  • 거란의 개경 점령: 현종 때 거란의 2차 침입(1010~1011) 때의 일로 성종 이후이다.
  • 역분전 지급: 태조 때인 940년의 일로 광종 이전이다.
문제 6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김해․고령 등 (가)고분군 7곳,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됐다.
유네스코 “고대 문명의 주요 증거”
한반도 남부에 남아 있는 유적 7곳을 묶은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됐다. … (가)은/는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주로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작은 나라들의 총칭이다.
- 2023. 9. 18. □□ 일보 -
1낙동강 하류의 변한 지역에서 성장하였다.
2철기를 활발히 생산하여 주변국에 수출하였다.
3골품에 따라 관등이나 관직 승진에 제한이 있었다.
4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전기 가야 연맹이 결성되었다.
정답 및 해설

골품에 따른 관등·관직 승진의 제한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의 신분제에 대한 설명이다.

‘김해·고령’ 등의 고분군과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에서 번성한 작은 나라들의 총칭이라는 단서로 (가)는 가야임을 알 수 있다.

  • 변한 지역 성장: 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변한 소국들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 철기 수출: 풍부한 철을 생산해 낙랑과 왜 등에 수출하였다.
  • 전기 가야 연맹: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다.
문제 7
(가), (나) 사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가)봉화백(奉化伯) 정도전․의성군(宜城君) 남은과 부성군(富城君) 심효생(沈孝生) 등이 여러 왕자들을 해치려 꾀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을 당하였다.
(나)상왕이 말하기를, “만일 물리치지 못하고 항상 침노만 받는다면, 한(漢)나라가 흉노에게 욕을 당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구주(九州)에서 온 왜인만은 구류하여 경동하는 일이 없게 하라. 또 우리가 약한 것을 보이는 것은 불가하니, 후일의 환이 어찌 다함이 있으랴.” 하고, 곧 이종무를 삼군 도체찰사로 명하여, 중군을 거느리게 하였다.
1경연이 폐지되었다.
2홍문관이 설치되었다.
36조 직계제가 시행되었다.
4위화도 회군이 단행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태종 때 시행된 6조 직계제이다.

(가)는 ‘정도전’ 등이 처형된 제1차 왕자의 난(1398)이고, (나)는 ‘상왕’ 태종이 ‘이종무’를 보내 추진한 대마도 정벌(1419)이므로, 태종 때의 일이 이 시기에 든다.

  • 경연 폐지: 세조 때의 일로 (나)보다 뒤이다.
  • 홍문관 설치: 집현전을 계승한 기구로 성종 때 정비되어 (나)보다 뒤이다.
  • 위화도 회군: 조선 건국 전인 1388년의 일로 (가)보다 앞선다.
문제 8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가)에는 각각 우두머리가 있어서 세력이 강대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하였다. …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에 각각 한 사람씩 세워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이라 부른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1무천이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다.
2화백회의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다.
3여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연맹체였다.
4사출도라 불리는 독자적인 영역이 있었다.
정답 및 해설

(가)는 삼한이며, 여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연맹체였다.

우두머리를 ‘신지’·‘읍차’라 부르고,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을 따로 둔 것은 정치와 제사가 분리된 삼한 사회의 특징이다.

  • 무천: 동예의 제천행사이다.
  • 화백회의: 신라의 귀족 합의 기구이다.
  • 사출도: 부여의 가(加)들이 다스린 영역이다.
문제 9
밑줄 친 ‘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에게 말하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성을 부수었으니, 노객은 백성된 자로서 왕에게 귀의하여 분부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 10년(400)에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1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2마한을 병합하고 평양을 공격하였다.
3마립간이라는 왕호를 처음 사용하였다.
4요동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왕’은 광개토대왕으로, 요동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신라가 왜의 침입을 알리며 ‘노객’이라 자칭하고, 왕이 ‘10년(400)’에 군대 5만을 보내 구원한 내용은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이다.

  • 태학 설립과 율령 반포: 고구려 소수림왕의 업적이다.
  • 마한 병합과 평양 공격: 백제 근초고왕의 업적이다.
  • 마립간 왕호: 신라 내물왕 때 사용된 왕호로 고구려와 관계가 없다.
문제 10
(가), (나) 집단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효종의 사망과 관련하여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의 복제(服制)가 쟁점이 되었다. (가)은/는 효종이 적장자가 아니라는 근거를 들어 왕과 사대부에게 같은 예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나)은/는 왕에게는 일반 사대부와 다른 예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가) - 인조반정으로 몰락하였다.
2(가) -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3(나) -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되었다.
4(나) - 송시열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서인이며, 경신환국(1680)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효종’의 사망 후 ‘자의대비’의 복제를 둘러싼 기해예송에서, 효종이 적장자가 아니므로 왕과 사대부에게 같은 예를 적용하자는 쪽이 서인이고, 왕에게는 다른 예를 적용하자는 (나)는 남인이다.

  • 인조반정으로 몰락: 광해군을 지지한 북인에 해당하며 서인은 오히려 반정의 주도 세력이었다.
  •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 남인이 아니라 서인의 분화이다.
  • 송시열 중심의 세력 확대: 송시열은 서인의 영수로 남인에 해당하지 않는다.
문제 11
(가)~(다)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가)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났다.
(나)이승훈이 최창현ㆍ홍낙민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다)윤지충과 권상연을 사형에 처하고, 진산군(珍山郡)은 현(縣)으로 강등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1(가) - (나) - (다)
2(나) - (가) - (다)
3(다) - (가) - (나)
4(다) - (나) - (가)
정답 및 해설

일어난 순서는 (다) → (나) → (가)이다.

정조 때 신해박해가 먼저이고, 순조 즉위 초의 신유박해(1801) 안에서 이승훈의 처형이 황사영 백서 사건보다 앞선다.

  • (다) 윤지충·권상연 처형: 신주를 불사른 진산 사건으로 일어난 신해박해(1791)이다.
  • (나) 이승훈 처형: 1801년 신유박해 초기에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참수되었다.
  • (가) 황사영 백서 사건: 신유박해의 실상을 베이징 주교에게 알리려던 백서가 1801년 후반에 발각된 사건이다.
문제 12
(가)~(다)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조선은 김기수와 김홍집을 수신사로 (가)에 파견하였다. (나)에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아 무기 제조 기술 등을 배우는 유학생을 보냈다. 또한 조선은 민영익 등을 보빙사로 (다)에 파견하였다.
1(가) - 흥선 대원군을 자국으로 납치하였다.
2(나) -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3(다) -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4(가)와 (나) -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 일본과 (나) 청이 톈진 조약(1885)을 체결하였다는 설명이 옳다.

‘수신사’를 보낸 (가)는 일본, ‘영선사’ 김윤식을 보낸 (나)는 청, ‘보빙사’ 민영익을 보낸 (다)는 미국이다.

  • 흥선 대원군 납치: 임오군란 뒤 청이 벌인 일로 일본의 행위가 아니다.
  • 강화도 조약: 조선이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청과는 관계가 없다.
  • 거문도 불법 점령: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벌인 일로 미국의 행위가 아니다.
문제 13
다음 정책과 같은 목적으로 시행된 것은?
신라 왕 김부가 항복해 오니 그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여 부호장 이하의 관직 등에 관한 일을 맡게 하였다. 이에 여러 공신들 역시 이를 본받아 각각 자기 주의 사심관이 되게 하였다.
1기인제도
2북진정책
3정혜쌍수
4독서삼품과
정답 및 해설

사심관 제도와 같은 목적으로 시행된 것은 기인제도이다.

태조가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한 것은 지방 출신 인사에게 그 지역의 책임을 맡겨 호족을 통제하려는 정책이며, 호족의 자제를 개경에 머물게 한 기인제도도 같은 목적이다.

  • 북진정책: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영토 확장 정책이다.
  • 정혜쌍수: 지눌이 내세운 불교 수행론이다.
  • 독서삼품과: 통일 신라 원성왕 때 유학 소양으로 관리를 뽑으려 한 제도이다.
문제 14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 : 고려 시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의 관원을 합쳐서 불렀다. 이들은 (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사 용어 사전」-
1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
2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법제와 격식 제정
3관원 임명시 동의 여부에 서명할 수 있는 서경
4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봉박
정답 및 해설

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법제와 격식을 정한 것은 대간이 아니라 식목도감에 모인 재신의 역할이다.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의 관원을 합쳐 부르는 ○○은 대간이며, 간쟁·봉박·서경으로 왕과 고위 관리를 견제하였다.

  • 간쟁: 왕의 잘못을 논하는 대간의 권한이다.
  • 서경: 관원 임명 때 동의 여부를 서명하는 대간의 권한이다.
  • 봉박: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대간의 권한이다.
문제 15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가장 옳게 나열한 것은?
(가)전라도 각지에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나)고부에서 만석보가 허물어졌다.
(다)청과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1(가)-(나)-(다)
2(가)-(다)-(나)
3(나)-(다)-(가)
4(나)-(가)-(다)
정답 및 해설

일어난 순서는 (나) → (가) → (다)이다.

세 사건은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와 청일 전쟁의 종결 순서로 정리된다.

  • (나) 만석보 파괴: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일어난 1894년 초 고부 농민 봉기 때의 일이다.
  • (가) 집강소 설치: 1894년 전주 화약 이후 농민군이 전라도 각지에 설치하였다.
  • (다) 시모노세키 조약: 청일 전쟁을 끝내며 1895년에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