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25년 1회차
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기출문제

25년 1회차

총 15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5년 1회차

총 15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밑줄 친 ‘이 선거’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1임기 4년의 국회의원을 선출하였다.
2김구, 김규식은 선거 불참을 선언하였다.
3이 선거로 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4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선거는 5·10 총선거이며, 옳은 설명은 김구와 김규식이 선거 불참을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1948년'에 실시된 '우리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보통 선거'라는 단서가 5·10 총선거를 가리킨다. 김구와 김규식은 이 선거를 남한 단독 선거로 보아 반대하고 남북 협상을 추진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출: 이 선거로 뽑힌 제헌 국회의원의 임기는 2년이었다.
  • 이승만의 대통령 선출: 대통령은 이 선거로 직접 뽑힌 것이 아니라 제헌 국회의 간접 선거로 선출되었다.
  • 18세 이상 모든 국민의 투표권: 당시 선거권은 21세 이상 국민에게 주어졌다.
문제 2
다음 (가) 나라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가장 옳은 것은?
고령군은 원래 (가)이다.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 유지되었다. 진흥 대왕이 이를 공격해 없애고 그 지역을 군으로 삼았는데, 경덕왕이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①

②

산수문전
임신서기석
③

④

지산동 고분군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1①
2②
3③
4④
정답 및 해설

(가) 나라는 대가야이고, 이 나라가 남긴 문화유산은 지산동 고분군이다.

'고령군', 시조 '이진아시왕', 마지막 왕 '도설지왕'이라는 단서는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를 가리킨다. 신라 진흥왕에게 멸망했다는 내용도 이와 맞는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이 모인 대표 유적이다.

  • 산수문전: 산과 구름 무늬를 새긴 백제의 벽돌이다.
  • 임신서기석: 신라의 두 청년이 유교 경전 공부를 맹세한 내용을 새긴 돌이다.
  •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경남 의령에서 출토되었으나 명문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만든 불상이다.
문제 3
다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의병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이번에 춘천 등지에서 백성이 소란을 피운 것은 8월 20일 사변 때 쌓인 울분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나라의 역적을 이미 법에 의해 처단하였고 나머지 무리도 차례로 처벌할 것이니, 옛 울분을 풀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지방에 주둔하는 군대는 반드시 이 조칙을 춘천부에 모여 있는 백성에게 보여, 각자 백성으로 돌아가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너희 군대의 무관과 병졸은 즉시 돌아오도록 하라.
1양반 유생이 주도하였다.
2초대 통감을 사살하였다.
3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4외교권 박탈에 항의하여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자료의 의병은 을미의병이며, 이 의병은 양반 유생이 주도하였다.

‘8월 20일 사변’은 음력으로 표기한 을미사변(1895)이고, ‘춘천’ 등지의 소요를 달래며 해산을 명한 조칙은 을미의병 때의 일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유인석, 이소응 같은 유생이 봉기를 이끌었다.

  • 초대 통감 사살: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사살한 안중근의 의거(1909)이다.
  • 서울 진공 작전: 정미의병 때 13도 창의군이 전개하였다(1908).
  • 외교권 박탈 항의: 을사늑약(1905)에 반발한 을사의병의 봉기 원인이다.
문제 4
다음 (가), (나)와 같은 행정 구역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명종 6년 망이의 고향인 (가)을/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켜 그들을 달래었다.
●고종 42년 충주의 (나)이/가 몽골군을 막는 데 공을 세워 현으로 승격시켰다.
1군사적인 특수 지역에 설치되었다.
2일반 군현에 비해 세금 부담이 컸다.
3원주, 청주 등 다섯 곳에 설치되었다.
4지역 순찰을 위해 안찰사가 파견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 (나)는 고려의 특수 행정 구역인 향·소·부곡이며, 주민은 일반 군현민보다 세금 부담이 컸다.

‘망이의 고향’은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난 공주 명학소이고, ‘충주’에서 몽골군을 막은 곳은 다인철소이다. 둘 다 소였다가 현으로 승격한 사례이다.

  • 군사적 특수 지역: 고려의 양계(동계·북계)에 대한 설명이다.
  • 원주, 청주 등 다섯 곳: 통일 신라의 5소경에 대한 설명이다.
  • 안찰사 파견: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5
다음 밑줄 친 ‘사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가장 옳은 것은?
사건의 발단은 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날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소요의 기미가 있는데, 설사 독립운동과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해 일체의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경찰청장의 통고문을 접수한 것은 이보다 앞선 1월 28일의 일이었다. 2월 14일에도 한국인의 독립 선언문 보도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2월 19일 『재팬 클로니클』지는 보도 금지된 사실과 선언문을 배포한 사람들이 비밀 재판을 받고 1년간의 징역을 선고받은 사실을 담은 기사를 크게 보도하였다.
1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2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3민족 유일당 운동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4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사건’은 3·1 운동이며, 이 운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고종의 인산일’을 앞둔 시점과 ‘독립 선언문’이라는 단서가 1919년의 3·1 운동을 가리킨다. 이후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 지도부의 필요성이 커져 같은 해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 신간회 진상 조사단 파견: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 때의 일이다.
  •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 역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전개 양상이다.
  • 민족 유일당 운동의 계기: 민족주의·사회주의 세력의 연대 계기가 된 6·10 만세 운동(1926)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6
다음 자료의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 무신 집권자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김윤후는 일찍이 승려가 되어 백현원에 살았는데 몽골병이 오자 처인성으로 난을 피하였다. 몽골의 원수 살리타이가 쳐들어와서 처인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그를 활로 쏴 죽였다.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상장군을 제수하였으나, 김윤후는 공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말하기를, “싸울 때를 당하여 나는 활과 화살이 없었는데 어찌 감히 헛되이 무거운 상을 받으리오” 하고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에 (훨씬 낮은 계급인) 섭낭장으로 고쳐 제수하였다.
1사병 조직인 도방을 확대하였다.
2정방을 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3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몽골에 항전하였다.
4서방을 두어 능력 있는 문신들에게 자문하였다.
정답 및 해설

처인성 전투 당시 무신 집권자는 최우이고, 도방 확대는 그의 대표 업적으로 꼽는 내용이 아니다.

‘살리타이’를 사살한 ‘처인성’ 전투는 몽골의 2차 침입(1232) 때의 일로, 이때 집권자가 최우이다. 도방은 경대승이 처음 두었고, 이를 재건해 확대한 인물은 일반적으로 최충헌으로 정리한다.

  • 정방 설치: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해 인사권을 장악한 기구이다.
  • 강화 천도: 최우가 몽골의 침입에 맞서 1232년에 단행하였다.
  • 서방 설치: 최우가 능력 있는 문신들을 두어 자문을 구한 기구이다.
문제 7
다음 헌법이 적용된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제39조①대통령은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제40조①대통령선거인단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 선거인으로 구성한다.
110월 유신이 단행되었다.
2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졌다.
3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되었다.
4언론사에 보도지침이 하달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헌법은 제8차 개헌 헌법이고, 이 시기의 사실은 언론사 보도지침 하달이다.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는 1980년 개정 헌법의 내용으로, 전두환 정부가 이 헌법 아래 출범하였다. 이 정부는 언론 기관 통폐합에 이어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하였다.

  • 10월 유신: 1972년 박정희 정부가 단행한 일로, 제8차 개헌 이전이다.
  • 베트남 파병: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때의 일이다.
  •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1995년 김영삼 정부 때로, 제9차 개헌 이후이다.
문제 8
다음 두 민주화 운동의 공통점으로 가장 옳은 것은?
●3․15 부정 선거와 김주열 사망으로 인해 이승만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전두환 정부의 독재에 반대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전국적 시위의 결과 6․29 선언이 발표되었다.
1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2유신 체제에 저항하였다.
3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4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답 및 해설

‘3·15 부정 선거’의 4·19 혁명과 ‘호헌 철폐’의 6월 민주 항쟁은 모두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4·19 혁명 후에는 의원 내각제를 골자로 한 제3차 개헌이, ‘6·29 선언’ 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제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

  • 비상계엄 선포: 4·19 혁명 때는 선포되었으나 6월 민주 항쟁 때는 선포되지 않았다.
  • 유신 체제 저항: 유신 체제는 1972~1979년이므로 두 운동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 대통령 하야: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났을 뿐, 6월 민주 항쟁으로 전두환이 하야하지는 않았다.
문제 9
다음 제도를 시행한 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5월에 교서를 내려 문무 관료들에게 토지를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봄 정월에 중앙과 지방 관리들의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조를 차등 있게 주고 이를 일정한 법으로 삼았다.
1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2김흠돌의 난을 진압하였다.
3단양 신라 적성비를 세웠다.
4국정을 총괄하는 상대등을 두었다.
정답 및 해설

제도를 시행한 왕은 신문왕이며, 이 왕은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였다.

‘문무 관료들에게 토지’를 준 것은 관료전 지급(687)이고, ‘녹읍을 폐지’한 것은 이어진 조치(689)로 모두 신문왕의 정책이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김흠돌의 난을 진압해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 삼국 통일 완성: 문무왕 때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룬 일이다.
  • 단양 신라 적성비: 진흥왕 때 세운 비석이다.
  • 상대등 설치: 법흥왕 때의 일이다.
문제 10
다음 밑줄 친 ‘이 기구’와 관련된 내용으로 가장 옳은 것은?
요즈음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이 기구에서 모두 다룹니다. 의정부는 한갓 이름뿐이고 6조는 할 일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름은 변방 방비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과거나 왕비와 후궁 간택까지도 모두 여기서 처리합니다.
13사 관리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었다.
2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렸다.
33포 왜란 이후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
4서얼 출신 학자들이 검서관에 등용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기구’는 비변사이며, 3포 왜란 이후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

‘변방 방비’를 명분으로 하면서 ‘의정부는 한갓 이름뿐’이 될 만큼 권한이 커졌다는 비판이 단서이다. 비변사는 중종 때 임시 기구로 출발해 임진왜란 이후 국정 전반을 다루는 최고 기구로 확대되었다.

  • 3사 관리 추천권: 이조 전랑의 권한이다.
  •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3사: 이에 해당하는 기관은 사간원이다.
  • 서얼 출신 검서관 등용: 정조 때 규장각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11
다음 자료와 관련 있는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하게 한다. 도둑질한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노비로 삼으며, 용서를 받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을 내게 한다. …… 부인은 정숙하고 신의가 있어서 음란하지 않았다.
- 「한서」지리지 -
1국가의 중대사는 제가회의에서 논의되었다.
2가축 이름을 딴 제가가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
3읍락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와 소, 말로 배상하게 하였다.
4중국과 한반도 남부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
정답 및 해설

자료의 나라는 고조선이며, 중국과 한반도 남부 사이의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

‘한서 지리지’에 실린 살인·상해·도둑질 처벌 규정은 고조선의 범금 8조(8조법)이다. 위만 조선 시기에는 중국 한과 한반도 남부 세력 사이의 교역을 중계하며 이익을 독점하였다.

  • 제가회의: 고구려에서 국가 중대사를 논의한 회의이다.
  • 사출도: 가축 이름을 딴 제가가 다스린 부여의 지배 구조이다.
  • 읍락 침범 시 배상: 동예의 책화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12
다음 밑줄 친 ‘단체’와 관련된 내용으로 가장 옳은 것은?
백정 박성춘이 “이 사람은 바로 대한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식합니다. 그러나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 관리와 백성이 힘을 합하여 우리 대황제의 훌륭한 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영원토록 무궁하게 합시다.”라고 연설하니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단체 회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한 후 …… 먼저 6개 조항을 만민에게 돌려 찬성을 받고 대신들도 모두 가(可)자 아래 서명하였다.
1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다.
2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였다.
3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목표를 지녔다.
4고종의 강제 퇴위를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정답 및 해설

‘단체’는 독립 협회이며,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다.

‘백정 박성춘’이 연설한 자리는 관민 공동회이고, ‘6개 조항’은 이 자리에서 결의한 헌의 6조(1898)이다.

  •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 보안회의 활동이다(1904).
  • 을사오적 처단: 나철, 오기호 등이 조직한 자신회의 목표이다.
  • 고종 강제 퇴위 반대: 대한 자강회가 주도한 시위이다(1907).
문제 13
다음 연설문을 발표한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가장 옳은 것은?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려는 정부가 마침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발전하게 되면 정경 유착이나 관치금융, 그리고 부정부패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1개성 공업 지구가 조성되었다.
27․4 남북 공동 성명을 합의하였다.
36․15 남북 공동 선언이 채택되었다.
4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정답 및 해설

연설문의 정부는 김대중 정부이며, 이 정부의 통일 노력은 6·15 남북 공동 선언 채택이다.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는 표현은 1998년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취임사임을 보여 준다. 이 정부는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 개성 공업 지구 조성: 노무현 정부 시기에 착공되어 조성되었다.
  • 7·4 남북 공동 성명: 박정희 정부 때 합의되었다(1972).
  •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노태우 정부 때의 일이다(1991).
문제 14
다음 조선 시대 (가), (나) 교육 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가)에는 양인 이상의 신분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으며, 생원․진사시를 준비하는 교육을 받았다. 동학, 서학, 남학, 중학이 있었다.
●(나)은/는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주민의 교화를 위해 부․목․군․현에 하나씩 설치되었다. 이에 대한 관리를 수령 7사에 포함시켜 수령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1(가)는 한성에 설치되었다.
2(가)는 풍기 군수 주세붕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3(나)는 흥선 대원군 때 전국에 47개소만 남기고 폐지되었다.
4(나)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생원 또는 진사의 지위를 지녀야 했다.
정답 및 해설

(가)는 4부 학당, (나)는 향교이며, (가)가 한성에 설치되었다는 설명이 옳다.

‘동학, 서학, 남학, 중학’은 한성의 네 학당을 가리키고, ‘부·목·군·현’에 하나씩 두고 ‘수령 7사’의 평가 대상이 된 곳은 향교이다.

  • 풍기 군수 주세붕이 처음 세움: 백운동 서원에 대한 설명이다.
  • 47개소만 남기고 폐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정리에 대한 설명이다.
  • 생원·진사 지위가 입학 요건: 성균관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15
다음 밑줄 친 ‘대책’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양역(良役)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명정전에 나아가 말하기를, “결포(結布)는 이미 정해진 세율이 있으니 결코 더 부과하기가 어렵고, 호포(戶布)가 조금 나을 것 같아 1필을 감하고 호전(戶錢)을 걷기로 하였으나 마음은 매우 불쾌하다. …… 호포나 결포나 모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1필은 감하는 정사로 온전히 돌아가야 할 것이니, 1필을 감한 대책을 경들은 잘 강구하라.”

< 보 기 >
ㄱ.원납전을 징수하였다.
ㄴ.선무군관포를 거두었다.
ㄷ.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ㄹ.어염선세를 국고로 전환하였다.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대책’은 균역법 시행에 따른 재정 보충책이며, 선무군관포 징수와 어염선세의 국고 전환이 이에 해당한다.

‘양역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한 임금은 영조로,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면서 생긴 재정 부족을 메워야 했다. 이를 위해 일부 상층민에게 선무군관포를 걷고, 왕실 재정으로 들어가던 어세·염세·선세를 국고로 돌렸다.

  • 원납전 징수: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한 조치이다.
  • 삼정이정청 설치: 철종 때 임술 농민 봉기(1862)를 수습하려 둔 기구이다.
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5년 1회차
총 15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밑줄 친 ‘이 선거’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1임기 4년의 국회의원을 선출하였다.
2김구, 김규식은 선거 불참을 선언하였다.
3이 선거로 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4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선거는 5·10 총선거이며, 옳은 설명은 김구와 김규식이 선거 불참을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1948년'에 실시된 '우리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보통 선거'라는 단서가 5·10 총선거를 가리킨다. 김구와 김규식은 이 선거를 남한 단독 선거로 보아 반대하고 남북 협상을 추진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출: 이 선거로 뽑힌 제헌 국회의원의 임기는 2년이었다.
  • 이승만의 대통령 선출: 대통령은 이 선거로 직접 뽑힌 것이 아니라 제헌 국회의 간접 선거로 선출되었다.
  • 18세 이상 모든 국민의 투표권: 당시 선거권은 21세 이상 국민에게 주어졌다.
문제 2
다음 (가) 나라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가장 옳은 것은?
고령군은 원래 (가)이다.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 유지되었다. 진흥 대왕이 이를 공격해 없애고 그 지역을 군으로 삼았는데, 경덕왕이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①

②

산수문전
임신서기석
③

④

지산동 고분군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1①
2②
3③
4④
정답 및 해설

(가) 나라는 대가야이고, 이 나라가 남긴 문화유산은 지산동 고분군이다.

'고령군', 시조 '이진아시왕', 마지막 왕 '도설지왕'이라는 단서는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를 가리킨다. 신라 진흥왕에게 멸망했다는 내용도 이와 맞는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이 모인 대표 유적이다.

  • 산수문전: 산과 구름 무늬를 새긴 백제의 벽돌이다.
  • 임신서기석: 신라의 두 청년이 유교 경전 공부를 맹세한 내용을 새긴 돌이다.
  •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경남 의령에서 출토되었으나 명문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만든 불상이다.
문제 3
다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의병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이번에 춘천 등지에서 백성이 소란을 피운 것은 8월 20일 사변 때 쌓인 울분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나라의 역적을 이미 법에 의해 처단하였고 나머지 무리도 차례로 처벌할 것이니, 옛 울분을 풀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지방에 주둔하는 군대는 반드시 이 조칙을 춘천부에 모여 있는 백성에게 보여, 각자 백성으로 돌아가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너희 군대의 무관과 병졸은 즉시 돌아오도록 하라.
1양반 유생이 주도하였다.
2초대 통감을 사살하였다.
3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4외교권 박탈에 항의하여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자료의 의병은 을미의병이며, 이 의병은 양반 유생이 주도하였다.

‘8월 20일 사변’은 음력으로 표기한 을미사변(1895)이고, ‘춘천’ 등지의 소요를 달래며 해산을 명한 조칙은 을미의병 때의 일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유인석, 이소응 같은 유생이 봉기를 이끌었다.

  • 초대 통감 사살: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사살한 안중근의 의거(1909)이다.
  • 서울 진공 작전: 정미의병 때 13도 창의군이 전개하였다(1908).
  • 외교권 박탈 항의: 을사늑약(1905)에 반발한 을사의병의 봉기 원인이다.
문제 4
다음 (가), (나)와 같은 행정 구역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명종 6년 망이의 고향인 (가)을/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켜 그들을 달래었다.
●고종 42년 충주의 (나)이/가 몽골군을 막는 데 공을 세워 현으로 승격시켰다.
1군사적인 특수 지역에 설치되었다.
2일반 군현에 비해 세금 부담이 컸다.
3원주, 청주 등 다섯 곳에 설치되었다.
4지역 순찰을 위해 안찰사가 파견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 (나)는 고려의 특수 행정 구역인 향·소·부곡이며, 주민은 일반 군현민보다 세금 부담이 컸다.

‘망이의 고향’은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난 공주 명학소이고, ‘충주’에서 몽골군을 막은 곳은 다인철소이다. 둘 다 소였다가 현으로 승격한 사례이다.

  • 군사적 특수 지역: 고려의 양계(동계·북계)에 대한 설명이다.
  • 원주, 청주 등 다섯 곳: 통일 신라의 5소경에 대한 설명이다.
  • 안찰사 파견: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5
다음 밑줄 친 ‘사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가장 옳은 것은?
사건의 발단은 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날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소요의 기미가 있는데, 설사 독립운동과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해 일체의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경찰청장의 통고문을 접수한 것은 이보다 앞선 1월 28일의 일이었다. 2월 14일에도 한국인의 독립 선언문 보도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2월 19일 『재팬 클로니클』지는 보도 금지된 사실과 선언문을 배포한 사람들이 비밀 재판을 받고 1년간의 징역을 선고받은 사실을 담은 기사를 크게 보도하였다.
1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2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3민족 유일당 운동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4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사건’은 3·1 운동이며, 이 운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고종의 인산일’을 앞둔 시점과 ‘독립 선언문’이라는 단서가 1919년의 3·1 운동을 가리킨다. 이후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 지도부의 필요성이 커져 같은 해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 신간회 진상 조사단 파견: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 때의 일이다.
  •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 역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전개 양상이다.
  • 민족 유일당 운동의 계기: 민족주의·사회주의 세력의 연대 계기가 된 6·10 만세 운동(1926)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6
다음 자료의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 무신 집권자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김윤후는 일찍이 승려가 되어 백현원에 살았는데 몽골병이 오자 처인성으로 난을 피하였다. 몽골의 원수 살리타이가 쳐들어와서 처인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그를 활로 쏴 죽였다.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상장군을 제수하였으나, 김윤후는 공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말하기를, “싸울 때를 당하여 나는 활과 화살이 없었는데 어찌 감히 헛되이 무거운 상을 받으리오” 하고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에 (훨씬 낮은 계급인) 섭낭장으로 고쳐 제수하였다.
1사병 조직인 도방을 확대하였다.
2정방을 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3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몽골에 항전하였다.
4서방을 두어 능력 있는 문신들에게 자문하였다.
정답 및 해설

처인성 전투 당시 무신 집권자는 최우이고, 도방 확대는 그의 대표 업적으로 꼽는 내용이 아니다.

‘살리타이’를 사살한 ‘처인성’ 전투는 몽골의 2차 침입(1232) 때의 일로, 이때 집권자가 최우이다. 도방은 경대승이 처음 두었고, 이를 재건해 확대한 인물은 일반적으로 최충헌으로 정리한다.

  • 정방 설치: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해 인사권을 장악한 기구이다.
  • 강화 천도: 최우가 몽골의 침입에 맞서 1232년에 단행하였다.
  • 서방 설치: 최우가 능력 있는 문신들을 두어 자문을 구한 기구이다.
문제 7
다음 헌법이 적용된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제39조①대통령은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제40조①대통령선거인단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 선거인으로 구성한다.
110월 유신이 단행되었다.
2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졌다.
3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되었다.
4언론사에 보도지침이 하달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헌법은 제8차 개헌 헌법이고, 이 시기의 사실은 언론사 보도지침 하달이다.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는 1980년 개정 헌법의 내용으로, 전두환 정부가 이 헌법 아래 출범하였다. 이 정부는 언론 기관 통폐합에 이어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하였다.

  • 10월 유신: 1972년 박정희 정부가 단행한 일로, 제8차 개헌 이전이다.
  • 베트남 파병: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때의 일이다.
  •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1995년 김영삼 정부 때로, 제9차 개헌 이후이다.
문제 8
다음 두 민주화 운동의 공통점으로 가장 옳은 것은?
●3․15 부정 선거와 김주열 사망으로 인해 이승만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전두환 정부의 독재에 반대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전국적 시위의 결과 6․29 선언이 발표되었다.
1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2유신 체제에 저항하였다.
3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4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답 및 해설

‘3·15 부정 선거’의 4·19 혁명과 ‘호헌 철폐’의 6월 민주 항쟁은 모두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4·19 혁명 후에는 의원 내각제를 골자로 한 제3차 개헌이, ‘6·29 선언’ 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제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

  • 비상계엄 선포: 4·19 혁명 때는 선포되었으나 6월 민주 항쟁 때는 선포되지 않았다.
  • 유신 체제 저항: 유신 체제는 1972~1979년이므로 두 운동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 대통령 하야: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났을 뿐, 6월 민주 항쟁으로 전두환이 하야하지는 않았다.
문제 9
다음 제도를 시행한 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5월에 교서를 내려 문무 관료들에게 토지를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봄 정월에 중앙과 지방 관리들의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조를 차등 있게 주고 이를 일정한 법으로 삼았다.
1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2김흠돌의 난을 진압하였다.
3단양 신라 적성비를 세웠다.
4국정을 총괄하는 상대등을 두었다.
정답 및 해설

제도를 시행한 왕은 신문왕이며, 이 왕은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였다.

‘문무 관료들에게 토지’를 준 것은 관료전 지급(687)이고, ‘녹읍을 폐지’한 것은 이어진 조치(689)로 모두 신문왕의 정책이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김흠돌의 난을 진압해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 삼국 통일 완성: 문무왕 때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룬 일이다.
  • 단양 신라 적성비: 진흥왕 때 세운 비석이다.
  • 상대등 설치: 법흥왕 때의 일이다.
문제 10
다음 밑줄 친 ‘이 기구’와 관련된 내용으로 가장 옳은 것은?
요즈음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이 기구에서 모두 다룹니다. 의정부는 한갓 이름뿐이고 6조는 할 일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름은 변방 방비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과거나 왕비와 후궁 간택까지도 모두 여기서 처리합니다.
13사 관리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었다.
2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렸다.
33포 왜란 이후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
4서얼 출신 학자들이 검서관에 등용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기구’는 비변사이며, 3포 왜란 이후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

‘변방 방비’를 명분으로 하면서 ‘의정부는 한갓 이름뿐’이 될 만큼 권한이 커졌다는 비판이 단서이다. 비변사는 중종 때 임시 기구로 출발해 임진왜란 이후 국정 전반을 다루는 최고 기구로 확대되었다.

  • 3사 관리 추천권: 이조 전랑의 권한이다.
  •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3사: 이에 해당하는 기관은 사간원이다.
  • 서얼 출신 검서관 등용: 정조 때 규장각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11
다음 자료와 관련 있는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하게 한다. 도둑질한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노비로 삼으며, 용서를 받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을 내게 한다. …… 부인은 정숙하고 신의가 있어서 음란하지 않았다.
- 「한서」지리지 -
1국가의 중대사는 제가회의에서 논의되었다.
2가축 이름을 딴 제가가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
3읍락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와 소, 말로 배상하게 하였다.
4중국과 한반도 남부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
정답 및 해설

자료의 나라는 고조선이며, 중국과 한반도 남부 사이의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

‘한서 지리지’에 실린 살인·상해·도둑질 처벌 규정은 고조선의 범금 8조(8조법)이다. 위만 조선 시기에는 중국 한과 한반도 남부 세력 사이의 교역을 중계하며 이익을 독점하였다.

  • 제가회의: 고구려에서 국가 중대사를 논의한 회의이다.
  • 사출도: 가축 이름을 딴 제가가 다스린 부여의 지배 구조이다.
  • 읍락 침범 시 배상: 동예의 책화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12
다음 밑줄 친 ‘단체’와 관련된 내용으로 가장 옳은 것은?
백정 박성춘이 “이 사람은 바로 대한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식합니다. 그러나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 관리와 백성이 힘을 합하여 우리 대황제의 훌륭한 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영원토록 무궁하게 합시다.”라고 연설하니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단체 회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한 후 …… 먼저 6개 조항을 만민에게 돌려 찬성을 받고 대신들도 모두 가(可)자 아래 서명하였다.
1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다.
2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였다.
3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목표를 지녔다.
4고종의 강제 퇴위를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정답 및 해설

‘단체’는 독립 협회이며,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다.

‘백정 박성춘’이 연설한 자리는 관민 공동회이고, ‘6개 조항’은 이 자리에서 결의한 헌의 6조(1898)이다.

  •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 보안회의 활동이다(1904).
  • 을사오적 처단: 나철, 오기호 등이 조직한 자신회의 목표이다.
  • 고종 강제 퇴위 반대: 대한 자강회가 주도한 시위이다(1907).
문제 13
다음 연설문을 발표한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가장 옳은 것은?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려는 정부가 마침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발전하게 되면 정경 유착이나 관치금융, 그리고 부정부패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1개성 공업 지구가 조성되었다.
27․4 남북 공동 성명을 합의하였다.
36․15 남북 공동 선언이 채택되었다.
4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정답 및 해설

연설문의 정부는 김대중 정부이며, 이 정부의 통일 노력은 6·15 남북 공동 선언 채택이다.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는 표현은 1998년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취임사임을 보여 준다. 이 정부는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 개성 공업 지구 조성: 노무현 정부 시기에 착공되어 조성되었다.
  • 7·4 남북 공동 성명: 박정희 정부 때 합의되었다(1972).
  •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노태우 정부 때의 일이다(1991).
문제 14
다음 조선 시대 (가), (나) 교육 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가)에는 양인 이상의 신분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으며, 생원․진사시를 준비하는 교육을 받았다. 동학, 서학, 남학, 중학이 있었다.
●(나)은/는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주민의 교화를 위해 부․목․군․현에 하나씩 설치되었다. 이에 대한 관리를 수령 7사에 포함시켜 수령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1(가)는 한성에 설치되었다.
2(가)는 풍기 군수 주세붕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3(나)는 흥선 대원군 때 전국에 47개소만 남기고 폐지되었다.
4(나)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생원 또는 진사의 지위를 지녀야 했다.
정답 및 해설

(가)는 4부 학당, (나)는 향교이며, (가)가 한성에 설치되었다는 설명이 옳다.

‘동학, 서학, 남학, 중학’은 한성의 네 학당을 가리키고, ‘부·목·군·현’에 하나씩 두고 ‘수령 7사’의 평가 대상이 된 곳은 향교이다.

  • 풍기 군수 주세붕이 처음 세움: 백운동 서원에 대한 설명이다.
  • 47개소만 남기고 폐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정리에 대한 설명이다.
  • 생원·진사 지위가 입학 요건: 성균관에 대한 설명이다.
문제 15
다음 밑줄 친 ‘대책’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양역(良役)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명정전에 나아가 말하기를, “결포(結布)는 이미 정해진 세율이 있으니 결코 더 부과하기가 어렵고, 호포(戶布)가 조금 나을 것 같아 1필을 감하고 호전(戶錢)을 걷기로 하였으나 마음은 매우 불쾌하다. …… 호포나 결포나 모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1필은 감하는 정사로 온전히 돌아가야 할 것이니, 1필을 감한 대책을 경들은 잘 강구하라.”

< 보 기 >
ㄱ.원납전을 징수하였다.
ㄴ.선무군관포를 거두었다.
ㄷ.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ㄹ.어염선세를 국고로 전환하였다.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대책’은 균역법 시행에 따른 재정 보충책이며, 선무군관포 징수와 어염선세의 국고 전환이 이에 해당한다.

‘양역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한 임금은 영조로,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면서 생긴 재정 부족을 메워야 했다. 이를 위해 일부 상층민에게 선무군관포를 걷고, 왕실 재정으로 들어가던 어세·염세·선세를 국고로 돌렸다.

  • 원납전 징수: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한 조치이다.
  • 삼정이정청 설치: 철종 때 임술 농민 봉기(1862)를 수습하려 둔 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