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 희미한 십오 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 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나)
우리 집도 아니고 / 일갓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가), (나)의 공통점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 (나)의 공통점이 아닌 것은 시적 대상과의 대화를 통한 시상 전개이다.
(가)는 화자가 흰 바람벽을 바라보며 혼자 떠올리는 생각을,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기억을 서술한다. 두 시 모두 대상과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없다.
- 화자가 분명히 드러난다는 설명은 적절하다. (가)에는 ‘내’, ‘나’가, (나)에는 ‘우리’가 나온다.
-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도 적절하다. (가)는 ‘이 흰 바람벽에’와 ‘그러하듯이’를, (나)는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으로 시작하는 구절을 되풀이한다.
-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도 적절하다. (가)는 ‘희미한 십오 촉 전등’ 같은 시각 이미지를, (나)는 ‘풀벌레 소리’ 같은 청각 이미지를 쓴다.
(가)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 희미한 십오 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 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나)
우리 집도 아니고 / 일갓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보기>를 참고하여 [A]를 이해한 것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 < 보 기 >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는 일종의 스크린 역할을 하는 ‘흰 바람벽’을 통해 자기 성찰이 이루어진다. ‘흰 바람벽’을 통해 시인의 추억이 지나가고, 마침내 화자의 목소리가 자막으로 처리된다. 그 목소리의 실제 주인공인 화자는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나’를 보는 관객이 된다. ‘나’가 스크린을 통해 이렇게 둘로 분리되면서 ‘나’의 성찰은 한층 깊이를 갖게 된다. |
적절하지 않은 것은 초생달 등과의 합일을 통해 성찰을 드러냈다는 이해이다.
‘초생달’, ‘바구지꽃’, ‘짝새’, ‘당나귀’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의 예로 제시될 뿐, 화자가 이들과 하나가 된다는 내용은 없다. <보기>가 말하는 성찰의 방식도 합일이 아니라 ‘나’가 둘로 분리되는 것이다.
- ‘이러한 글자들’을 화자 자신의 목소리로 보는 것은 적절하다. <보기>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자막으로 처리된다’고 했다.
- 화자가 관객이 되어 지나가는 글자들을 바라본다는 것도 적절하다. <보기>의 ‘화자는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나’를 보는 관객이 된다’와 맞는다.
- 화자의 목소리가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지나가는 글자로 표현되어 성찰이 깊어진다는 것도 적절하다. <보기>의 ‘성찰은 한층 깊이를 갖게 된다’와 맞는다.
(가)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 희미한 십오 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 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나)
우리 집도 아니고 / 일갓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적절한 설명은 ㉠과 ㉡ 모두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화자는 흰 바람벽 위로 ‘가난한 늙은 어머니’와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을 떠올린다. 지금 곁에 없는 두 사람이 벽에 비쳐 보일 만큼 화자의 그리움이 깊다.
- ㉡과 ㉣이 모두 고국을 떠나 유랑한다는 설명은 틀렸다. ㉣은 ‘노령을 다니면서’ 살았지만, ㉡은 ‘어늬 먼 앞대’에서 지아비와 저녁을 먹을 뿐 고국을 떠났다는 내용이 없다.
- ㉡과 ㉢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유발한다는 설명도 틀렸다. 두 대상은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룬 옛 연인과 그 아이로, 고향이 아니라 화자의 외로움과 이어진다.
- ㉢과 ㉤이 재회를 소망하는 대상이라는 설명도 틀렸다. ㉢은 옛 연인의 아이이고, ㉤은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라는 구절처럼 임종 자리에 있는 자식들이다.
| < 보 기 > ㉠그는 자기 일 밖의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다. ㉡한밤중에 그가 나에게 전화 할 줄 몰랐다. ㉢노력한 만큼 대가가 있을 테니 선생님만큼만 공부하길 바란다. ㉣형님께는 햇사과를, 동생에게는 햅쌀을 선물로 보냈다. |
적절한 설명은 ㉣의 ‘를/을’이 음운 환경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조사라는 것이다.
모음으로 끝난 ‘햇사과’ 뒤에는 ‘를’이, 자음으로 끝난 ‘햅쌀’ 뒤에는 ‘을’이 붙는다. 두 형태 모두 목적격을 나타내는 문법적 의미만 지닌다.
- ㉠의 설명은 ‘없다’(없-+-다)에만 해당한다. 관형사 ‘다른’은 더 나뉘지 않는 하나의 형태소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 ㉡의 설명은 의존 명사 ‘줄’에만 해당한다. ‘한밤중’의 ‘한-’은 접두사이므로 단어의 자격이 없다.
- ㉢의 설명은 조사 ‘만큼’에만 해당한다. ‘노력한 만큼’의 ‘만큼’은 의존 명사로, 형식 형태소가 아니라 실질 형태소로 분류한다.
(가)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치 못한다.
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또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대부분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이곡, <차마설(借馬說)>
(나)
10월 초하루에 이자(李子)가 밖에서 돌아오니, 종들이 흙을 파서 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무덤과 같았다. 이자는 어리석은 체하며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집 안에다 무덤을 만들었느냐?”
하니, 종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무덤이 아니라 토실입니다.”
하기에,
“어찌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
하였더니,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들에게 편리하니, 아무리 추울 때라도 온화한 봄 날씨와 같아서 손이 얼어 터지지 않으므로 참 좋습니다.”
하였다.
이자는 더욱 화를 내며 말하기를,
“여름은 덥고 겨울이 추운 것은 사시(四時)의 정상적인 이치이니,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 옛적 성인이,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베옷을 입도록
| 마련하였으니, 그만한 준비가 있으면 족할 것인데, 다시 토실을 만들어서 추위를 더위로 바꿔 놓는다면 이는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뱀이나 두꺼비가 아닌데, 겨울에 굴속에 엎드려 있는 것은 너무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길쌈이란 할 시기가 있는 것인데, 하필 겨울에 할 것이냐? 또 봄에 꽃이 피었다가 겨울에 시드는 것은 초목의 정상적인 성질인데,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이것은 괴이한 물건이다. 괴이한 물건을 길러서 때아닌 구경거리를 삼는다는 것은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뜻이 아니다. 빨리 헐어 버리지 않는다면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하였더니, 종들이 두려워하여 재빨리 그것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땔나무를 마련했다. 그리하고 나니 나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하였다. 이규보, <괴토실설(壞土室說)> |
(가)와 (나)의 서술상의 특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가)와 (나)의 공통된 서술상 특징은 실재하는 사실을 들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두 글은 모두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음이나 견해를 밝히는 한문 수필 갈래인 설(說)이다. (가)는 남의 말을 빌려 탄 일에서 소유에 대한 생각을, (나)는 토실을 허문 일에서 자연의 이치에 대한 생각을 끌어낸다.
- 주관적 정서를 함축적 언어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시의 특징이다. 두 글은 산문으로 생각을 직접 서술한다.
- 대화와 행동을 중심으로 사건을 현재형으로 보여 준다는 설명은 틀렸다. (가)에는 대화 장면이 없고, (나)의 대화도 ‘하였다’와 같이 지난 일로 서술된다.
- 허구적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설명은 소설의 특징이다. 두 글은 글쓴이의 경험을 다루며, 갈등 중심의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다.
(가)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치 못한다.
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또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대부분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이곡, <차마설(借馬說)>
(나)
10월 초하루에 이자(李子)가 밖에서 돌아오니, 종들이 흙을 파서 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무덤과 같았다. 이자는 어리석은 체하며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집 안에다 무덤을 만들었느냐?”
하니, 종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무덤이 아니라 토실입니다.”
하기에,
“어찌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
하였더니,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들에게 편리하니, 아무리 추울 때라도 온화한 봄 날씨와 같아서 손이 얼어 터지지 않으므로 참 좋습니다.”
하였다.
이자는 더욱 화를 내며 말하기를,
“여름은 덥고 겨울이 추운 것은 사시(四時)의 정상적인 이치이니,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 옛적 성인이,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베옷을 입도록
| 마련하였으니, 그만한 준비가 있으면 족할 것인데, 다시 토실을 만들어서 추위를 더위로 바꿔 놓는다면 이는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뱀이나 두꺼비가 아닌데, 겨울에 굴속에 엎드려 있는 것은 너무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길쌈이란 할 시기가 있는 것인데, 하필 겨울에 할 것이냐? 또 봄에 꽃이 피었다가 겨울에 시드는 것은 초목의 정상적인 성질인데,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이것은 괴이한 물건이다. 괴이한 물건을 길러서 때아닌 구경거리를 삼는다는 것은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뜻이 아니다. 빨리 헐어 버리지 않는다면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하였더니, 종들이 두려워하여 재빨리 그것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땔나무를 마련했다. 그리하고 나니 나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하였다. 이규보, <괴토실설(壞土室說)> |
(나)의 이자(李子)가 비판할 대상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자가 비판할 대상이 아닌 것은 로컬푸드 직매장 확충을 통한 지역 내 거래 촉진이다.
이자는 토실이 ‘사시의 정상적인 이치’를 거스르고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일이라 비판한다. 비판의 기준은 인위적으로 자연의 이치를 바꾸는가이며, 지역 내 유통 방식은 이와 관련이 없다.
- 댐 건설은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므로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 스마트 온실은 계절과 무관하게 작물을 기르는 것으로, 토실에 화초와 과일을 두는 일과 통한다.
- 패시브 하우스의 연중 일정 온도 유지는 ‘여름은 덥고 겨울이 추운’ 이치를 바꾸는 일이므로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가)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하기 일쑤요,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치 못한다.
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또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대부분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이곡, <차마설(借馬說)>
(나)
10월 초하루에 이자(李子)가 밖에서 돌아오니, 종들이 흙을 파서 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무덤과 같았다. 이자는 어리석은 체하며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집 안에다 무덤을 만들었느냐?”
하니, 종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무덤이 아니라 토실입니다.”
하기에,
“어찌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
하였더니,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들에게 편리하니, 아무리 추울 때라도 온화한 봄 날씨와 같아서 손이 얼어 터지지 않으므로 참 좋습니다.”
하였다.
이자는 더욱 화를 내며 말하기를,
“여름은 덥고 겨울이 추운 것은 사시(四時)의 정상적인 이치이니,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 옛적 성인이,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베옷을 입도록
| 마련하였으니, 그만한 준비가 있으면 족할 것인데, 다시 토실을 만들어서 추위를 더위로 바꿔 놓는다면 이는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뱀이나 두꺼비가 아닌데, 겨울에 굴속에 엎드려 있는 것은 너무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길쌈이란 할 시기가 있는 것인데, 하필 겨울에 할 것이냐? 또 봄에 꽃이 피었다가 겨울에 시드는 것은 초목의 정상적인 성질인데,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이것은 괴이한 물건이다. 괴이한 물건을 길러서 때아닌 구경거리를 삼는다는 것은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뜻이 아니다. 빨리 헐어 버리지 않는다면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하였더니, 종들이 두려워하여 재빨리 그것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땔나무를 마련했다. 그리하고 나니 나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하였다. 이규보, <괴토실설(壞土室說)> |
(가)와 <보기>에 대한 이해로 적절한 것을 모두 고르면?
| < 보 기 > 강산 죠흔 경을 힘센 이 닷톨 양이면 ᄂᆡ 힘과 ᄂᆡ 분으로 어이ᄒᆞ여 엇들쏜이 진실로 금ᄒᆞ리 업쓸씌 나도 두고 논이노라 - 김천택 |
| ㄱ.(가)의 ‘만방의 임금’과 <보기>의 ‘힘센 이’ 모두 멀리해야 할 대상이 되겠군. ㄴ.(가)와 <보기> 모두 설의의 방식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고 있군. ㄷ.(가)의 ‘맹자’와 <보기>의 화자 모두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군. ㄹ.(가)와 <보기> 모두 독자로 하여금 성찰의 자세를 갖출 것을 독려하고 있군. |
적절한 것은 ㄴ과 ㄷ이다.
(가)의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와 <보기>의 ‘어이ᄒᆞ여 엇들쏜이’는 모두 설의로 뜻을 강조한다. 또한 맹자는 오래 빌린 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을 말했고, <보기>의 화자는 ‘진실로 금ᄒᆞ리 업쓸씌’라며 강산이 누구도 독차지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한다.
- ㄱ은 적절하지 않다. ‘만방의 임금’은 빌린 것을 돌려주면 처지가 달라진다는 예시일 뿐이고, ‘힘센 이’도 가정 속의 인물이어서 멀리하라는 내용은 없다.
- ㄹ은 적절하지 않다. (가)는 돌이켜 보지 않는 태도를 깨우치지만, <보기>는 ‘나도 두고 논이노라’처럼 자연을 즐기는 화자의 태도를 드러낼 뿐이다.
1980년대 심리학자들은 어떤 단어를 보았을 때 그것과 연관된 많은 단어 중에 어떤 단어가 쉽게 떠오르는지는 그때그때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를테면 ‘SO_P’에서 빈칸을 채워 단어를 완성하라고 하면, 최근에 ‘먹다’라는 단어를 보았거나 들은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SOAP(비누)’ 보다는 ‘SOUP(수프)’란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반면에 금방 ‘씻다’라는 단어를 본 사람이라면 ‘수프’보다 ‘비누’를 떠올릴 확률이 높다. 이런 현상을 ‘점화 효과’라 하고, ‘먹다’라는 말이 ‘수프’ 생각을 점화 또는 촉발했다거나 그 말이 기폭제가 되어 ‘수프’가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점화 효과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머릿속에 ‘먹다’라는 개념이 있으면 ‘수프’란 말이 어렴풋이 들리거나 뿌옇게 보여도 평소보다 빨리 그 단어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수프 외에도 ‘고기’, ‘배고프다’, ‘다이어트’ 등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여기에서 점화된 개념은 정도는 약할지라도 또다시 다른 개념을 점화할 수 있다. 이런 활성화는 호수에 물결이 일듯이 거대한 연상망의 한쪽에서 주위로 퍼져나간다. 이 현상은 현재 심리학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기억 연구에서 또 하나의 큰 성과는 점화 효과가 개념이나 단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지만, 인지하지도 못한 사건이 행동과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존 바그가 동료들과 실시한 실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대부분 18세에서 22세 사이인 뉴욕대학 학생들에게 단어 다섯 개가 뒤섞인 문장을 주고 거기서 단어 네 개를 뽑아 문장을 완성하라고 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문장 중 절반에 ‘깜빡하다’, ‘대머리’, ‘회색’, ‘주름’ 등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섞어 제시했다. 문제를 다 푼 학생은 복도 끝에 있는 실험실로 가서 다른 실험에 참여해야 했다. 이 짧은 순간이 바로 이 실험의 핵심이었다. 연구원들은 각 학생이 반대쪽 실험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바그가 예상한 대로, 노인과 관련 있는 단어로 문장을 만든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훨씬 느린 걸음으로 다른 실험실로 이동했다.
‘관념운동 효과’로도 알려진 실험 결과는 점화 효과의 두 단계가 나타났다. 첫째, 주어진 단어 조합에는 ‘노인’이란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노인에 대한 개념을 점화했다. 둘째, 이런 생각이 행동을 촉발해, 노인처럼 느리게 걷게 했다. 이 모든 결과는 실험 참가자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일어났다. 실험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제시된 단어에 공통된 주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냐고 묻자 하나같이 몰랐다고 대답하였고, 첫 번째 실험에서 본 단어가 그 뒤의 행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관념운동 효과는 거꾸로 나타날 수도 있다. 독일의 어느 대학에서는 뉴욕 대학에서 바그가 했던 실험을 거꾸로 실시했다. 실험에서 학생들은 1분에 30걸음을 걷는 속도로 5분 동안 실험실 안을 걸어 다녀야 했는데, 평소 속도의 약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 짧은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깜빡하다’, ‘늙다’, ‘외롭다’ 등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훨씬 빨리 알아보았다. 점화 효과가 어느 방향으로 나타나든 모두 일관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윗글의 내용 전개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이 글은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 설명 대상의 이해를 돕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설명 대상인 점화 효과를 ‘SO_P’ 단어 완성 예, 존 바그의 실험, 독일 대학의 실험으로 뒷받침한다.
- 다양한 가설을 검증한다는 설명은 틀렸다. 사례는 여러 가설을 시험하기보다 점화 효과를 설명하려고 제시되었다.
- 해결 방안과 한계를 설명한다는 내용은 없다. 글에는 해결할 문제 자체가 제시되지 않는다.
- 구분되는 관점과 반례를 분석한다는 설명도 틀렸다. 독일 실험은 반례가 아니라 ‘모두 일관된 반응을 보인’ 사례이다.
1980년대 심리학자들은 어떤 단어를 보았을 때 그것과 연관된 많은 단어 중에 어떤 단어가 쉽게 떠오르는지는 그때그때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를테면 ‘SO_P’에서 빈칸을 채워 단어를 완성하라고 하면, 최근에 ‘먹다’라는 단어를 보았거나 들은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SOAP(비누)’ 보다는 ‘SOUP(수프)’란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반면에 금방 ‘씻다’라는 단어를 본 사람이라면 ‘수프’보다 ‘비누’를 떠올릴 확률이 높다. 이런 현상을 ‘점화 효과’라 하고, ‘먹다’라는 말이 ‘수프’ 생각을 점화 또는 촉발했다거나 그 말이 기폭제가 되어 ‘수프’가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점화 효과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머릿속에 ‘먹다’라는 개념이 있으면 ‘수프’란 말이 어렴풋이 들리거나 뿌옇게 보여도 평소보다 빨리 그 단어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수프 외에도 ‘고기’, ‘배고프다’, ‘다이어트’ 등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여기에서 점화된 개념은 정도는 약할지라도 또다시 다른 개념을 점화할 수 있다. 이런 활성화는 호수에 물결이 일듯이 거대한 연상망의 한쪽에서 주위로 퍼져나간다. 이 현상은 현재 심리학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기억 연구에서 또 하나의 큰 성과는 점화 효과가 개념이나 단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지만, 인지하지도 못한 사건이 행동과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존 바그가 동료들과 실시한 실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대부분 18세에서 22세 사이인 뉴욕대학 학생들에게 단어 다섯 개가 뒤섞인 문장을 주고 거기서 단어 네 개를 뽑아 문장을 완성하라고 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문장 중 절반에 ‘깜빡하다’, ‘대머리’, ‘회색’, ‘주름’ 등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섞어 제시했다. 문제를 다 푼 학생은 복도 끝에 있는 실험실로 가서 다른 실험에 참여해야 했다. 이 짧은 순간이 바로 이 실험의 핵심이었다. 연구원들은 각 학생이 반대쪽 실험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바그가 예상한 대로, 노인과 관련 있는 단어로 문장을 만든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훨씬 느린 걸음으로 다른 실험실로 이동했다.
‘관념운동 효과’로도 알려진 실험 결과는 점화 효과의 두 단계가 나타났다. 첫째, 주어진 단어 조합에는 ‘노인’이란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노인에 대한 개념을 점화했다. 둘째, 이런 생각이 행동을 촉발해, 노인처럼 느리게 걷게 했다. 이 모든 결과는 실험 참가자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일어났다. 실험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제시된 단어에 공통된 주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냐고 묻자 하나같이 몰랐다고 대답하였고, 첫 번째 실험에서 본 단어가 그 뒤의 행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관념운동 효과는 거꾸로 나타날 수도 있다. 독일의 어느 대학에서는 뉴욕 대학에서 바그가 했던 실험을 거꾸로 실시했다. 실험에서 학생들은 1분에 30걸음을 걷는 속도로 5분 동안 실험실 안을 걸어 다녀야 했는데, 평소 속도의 약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 짧은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깜빡하다’, ‘늙다’, ‘외롭다’ 등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훨씬 빨리 알아보았다. 점화 효과가 어느 방향으로 나타나든 모두 일관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윗글의 내용과 가장 일치하는 것은?
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은 점화 효과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동과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진술이다.
글은 ‘인지하지도 못한 사건이 행동과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고 밝힌다. 바그 실험의 학생들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느리게 걷는 행동을 보였다.
- 단어와 관련된 개념만 활성화한다는 진술은 틀렸다. 점화 효과는 ‘개념이나 단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고 했다.
- 일정한 방향으로만 작용한다는 진술도 틀렸다. 글은 ‘관념운동 효과는 거꾸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진술은 근거가 없다. 활성화가 연상망에서 ‘퍼져나간다’고 했을 뿐 사유의 폭을 말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 심리학자들은 어떤 단어를 보았을 때 그것과 연관된 많은 단어 중에 어떤 단어가 쉽게 떠오르는지는 그때그때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를테면 ‘SO_P’에서 빈칸을 채워 단어를 완성하라고 하면, 최근에 ‘먹다’라는 단어를 보았거나 들은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SOAP(비누)’ 보다는 ‘SOUP(수프)’란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반면에 금방 ‘씻다’라는 단어를 본 사람이라면 ‘수프’보다 ‘비누’를 떠올릴 확률이 높다. 이런 현상을 ‘점화 효과’라 하고, ‘먹다’라는 말이 ‘수프’ 생각을 점화 또는 촉발했다거나 그 말이 기폭제가 되어 ‘수프’가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점화 효과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머릿속에 ‘먹다’라는 개념이 있으면 ‘수프’란 말이 어렴풋이 들리거나 뿌옇게 보여도 평소보다 빨리 그 단어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수프 외에도 ‘고기’, ‘배고프다’, ‘다이어트’ 등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여기에서 점화된 개념은 정도는 약할지라도 또다시 다른 개념을 점화할 수 있다. 이런 활성화는 호수에 물결이 일듯이 거대한 연상망의 한쪽에서 주위로 퍼져나간다. 이 현상은 현재 심리학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기억 연구에서 또 하나의 큰 성과는 점화 효과가 개념이나 단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지만, 인지하지도 못한 사건이 행동과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존 바그가 동료들과 실시한 실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대부분 18세에서 22세 사이인 뉴욕대학 학생들에게 단어 다섯 개가 뒤섞인 문장을 주고 거기서 단어 네 개를 뽑아 문장을 완성하라고 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문장 중 절반에 ‘깜빡하다’, ‘대머리’, ‘회색’, ‘주름’ 등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섞어 제시했다. 문제를 다 푼 학생은 복도 끝에 있는 실험실로 가서 다른 실험에 참여해야 했다. 이 짧은 순간이 바로 이 실험의 핵심이었다. 연구원들은 각 학생이 반대쪽 실험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바그가 예상한 대로, 노인과 관련 있는 단어로 문장을 만든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훨씬 느린 걸음으로 다른 실험실로 이동했다.
‘관념운동 효과’로도 알려진 실험 결과는 점화 효과의 두 단계가 나타났다. 첫째, 주어진 단어 조합에는 ‘노인’이란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노인에 대한 개념을 점화했다. 둘째, 이런 생각이 행동을 촉발해, 노인처럼 느리게 걷게 했다. 이 모든 결과는 실험 참가자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일어났다. 실험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제시된 단어에 공통된 주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냐고 묻자 하나같이 몰랐다고 대답하였고, 첫 번째 실험에서 본 단어가 그 뒤의 행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관념운동 효과는 거꾸로 나타날 수도 있다. 독일의 어느 대학에서는 뉴욕 대학에서 바그가 했던 실험을 거꾸로 실시했다. 실험에서 학생들은 1분에 30걸음을 걷는 속도로 5분 동안 실험실 안을 걸어 다녀야 했는데, 평소 속도의 약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 짧은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깜빡하다’, ‘늙다’, ‘외롭다’ 등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훨씬 빨리 알아보았다. 점화 효과가 어느 방향으로 나타나든 모두 일관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의 내용을 이해한 것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 < 보 기 > 우리는 투표를 정책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가치를 반영하는 의도적 행위로 보고, 정책과 무관한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투표소의 위치 등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0년 애리조나 선거구에서 투표 유형을 분석한 결과, 학교 재정 지원 증가안에 찬성한 비율은 학교 안에 투표소가 설치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았다. |
적절하지 않은 것은 찬성한 사람들이 투표소 위치의 영향을 주장할 것이라는 이해이다.
바그 실험의 참가자들은 단어가 ‘행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점화 효과는 인식하지 못한 채 일어나므로, 투표자들도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보다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
- 투표소 위치가 투표 행위를 점화했다는 이해는 적절하다. 학교라는 장소가 찬성 행동을 촉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학교와 관련된 개념이나 단어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해는 적절하다. 글은 단어가 개념을 점화하고 이것이 행동을 촉발한다고 설명한다.
- 자율적이라 여긴 판단이 인지하지 못한 요인에서 촉발될 수 있다는 이해도 적절하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건이 행동과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내용과 맞는다.
앞부분 줄거리: ‘나’의 친정어머니는 넘어져 크게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받게 되고, ‘나’는 홀로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게 된다. 아흔에 가까운 고령의 어머니는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서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그놈 또 왔다. 뭘하고 있냐! 느이 오래빌 숨겨야지, 어서”
“엄마, 제발 이러시지 좀 마세요. 오빠가 어디 있다고 숨겨요?”
“그럼 느이 오래빌 벌써 잡아갔냐.”
“엄마, 제발.”
어머니의 손이 사방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붕대 감긴 자기의 다리에 손이 닿자 날카롭게 속삭였다.
“가엾은 내 새끼 여기 있었구나. 꼼짝 말아. 다 내가 당할 테니.”
어머니의 떨리는 손이 다리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다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온몸으로 그 다리를 엄호하면서 어머니의 적을 노려보았다. 어머니의 적은 저승의 사자가 아니었다.
“군관 동무, 군관 선생님,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어머니의 눈의 푸른 기가 애처롭게 흔들리면서 입가에 비굴한 웃음이 감돌았다. 나는 어머니가 환각으로 보고 있는 게 무엇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엾은 어머니, 차라리 저승의 사자를 보시는 게 나았을 것을…….
어머니는 그 다리를 어디다 숨기려는지 몸부림쳤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군관 나으리,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찾아보실 것도 없다니까요. 군관 나으리.”
그러나 절대절명의 위기가 어머니에게 육박해오고 있음을 난들 어쩌랴. 공포와 아직도 한 가닥 기대를 건 비굴이 어머니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일그러뜨리고 이마에선 구슬 같은 땀이 송글송글 솟아오르고 다리를 감싼 손과 앙상한 어깨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가엾은 어머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죽게 하시지, 그 몹쓸 일을 두 번 겪게 하시다니…….
“어머니, 어머니 이러시지 말고 제발 정신 차리세요.”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어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나를 검부러기처럼 가볍게 털어내면서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안된다. 안돼. 이 노옴. 안돼. 너도 사람이냐? 이 노옴, 이 노옴.”
나는 벽까지 떠다밀린 채 와들와들 떨면서 점점 심해가는 어머니의 광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몸에서 수술한 다리만 빼고는 온몸이 노한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래서 더욱 그 다리는 어머니의 몸이 아닌 이물질처럼 괴기스러워 보였다. 어머니의 그 다리와 아들과의 동일시가 나한테까지 옮아붙은 것처럼 나는 그 다리가 무서웠다.
“안된다 이 노옴”이라는 호통과 “군관 나으리, 군관 선생님, 군관 동무”라는 아부를 번갈아 하며 몸부림치는 서슬에 마침내 링거줄이 주사바늘에서 빠져 버렸다. 혈관에 꽂힌 채인 주사바늘을 통해 피가 역류해 환자복과 시트를 점점 물들였다. 피를 보자 어머니의 광란은 극에 달했다.
중략 줄거리: ‘나’는 겨우 어머니를 진정시킨다. 과거 6․25 전쟁에서 ‘나’의 오빠는 인민군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의용군에 지원했다가 겨우 탈출하여 돌아온다.
그런데 오빠는 속속들이 망가져 있었다.
전세가 불리해져 피란을 갈 상황에 처한 가족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숨어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닥친 인민군 군관에게 발각된다.
다시 포성이 가까워지고 그들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앉으나서나 그들이 곱게 물러가기만을 축수했다.
“그저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불쌍한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마침내 보위군관이 작별하러 왔다. 그의 작별방법은 특이했다.
“내가 동무들같이 간사한 무리들한테 끝까지 속을 것 같소. 지금이라도 바른 대로 대시오. 이래도 바른 소리를 못하겠소?”
그가 허리에 찬 권총을 빼 오빠에게 겨누며 말했다.
“안된다. 안돼. 이 노옴 너도 사람이냐? 이 노옴.”
어머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짐승 같은 소리로 신음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획 뿌리쳤다.
“이래도 이래도 바른 말을 안할 테냐? 이래도.”
총성이 울렸다. 다리였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같은 소리밖에 못 냈다.
“좋다. 이래도 바른 말을 안할 테냐? 이래도.”
또 총성이 울렸다. 같은 말과 총성이 서너 번이나 되풀이됐다. 잔혹하게도 그 당장 목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체만 겨냥하고 쏴댔다.
오빠는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기절해 꼬꾸라지고 어머니도 그가 뿌리쳐 나동그라진 자리에서 처절한 외마디 소리만 지르다가 까무라쳤다.
“죽기 전에 바른말 할 기회를 주기 위해 당장 죽이진 않겠다.”
그후 군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만에 세상은 또 바뀌었다.
오빠의 총상은 다 치명상이 아니었는데도 며칠만에 운명했다. 출혈이 심한데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박완서, <엄마의 말뚝2> -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의 서술상 특징은 서술자가 자신의 심리적 반응과 해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서술자 ‘나’는 ‘나는 그 다리가 무서웠다’라며 자신의 반응을 밝히고, ‘가엾은 어머니, 차라리 저승의 사자를 보시는 게 나았을 것을’이라며 상황을 해석한다.
- 서술자를 장면에 따라 전환한다는 설명은 틀렸다. 병실 장면과 과거 회상 모두 ‘나’가 서술한다.
- 동시에 벌어진 사건을 병렬한다는 설명도 틀렸다. 어머니의 수술 후 환각과 전쟁 때의 사건은 서로 다른 시기의 일이다.
-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설명도 틀렸다. 과거 사건은 오빠의 죽음으로 끝나고, 그 상처는 어머니의 환각으로 되살아난다.
앞부분 줄거리: ‘나’의 친정어머니는 넘어져 크게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받게 되고, ‘나’는 홀로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게 된다. 아흔에 가까운 고령의 어머니는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서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그놈 또 왔다. 뭘하고 있냐! 느이 오래빌 숨겨야지, 어서”
“엄마, 제발 이러시지 좀 마세요. 오빠가 어디 있다고 숨겨요?”
“그럼 느이 오래빌 벌써 잡아갔냐.”
“엄마, 제발.”
어머니의 손이 사방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붕대 감긴 자기의 다리에 손이 닿자 날카롭게 속삭였다.
“가엾은 내 새끼 여기 있었구나. 꼼짝 말아. 다 내가 당할 테니.”
어머니의 떨리는 손이 다리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다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온몸으로 그 다리를 엄호하면서 어머니의 적을 노려보았다. 어머니의 적은 저승의 사자가 아니었다.
“군관 동무, 군관 선생님,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어머니의 눈의 푸른 기가 애처롭게 흔들리면서 입가에 비굴한 웃음이 감돌았다. 나는 어머니가 환각으로 보고 있는 게 무엇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엾은 어머니, 차라리 저승의 사자를 보시는 게 나았을 것을…….
어머니는 그 다리를 어디다 숨기려는지 몸부림쳤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군관 나으리,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찾아보실 것도 없다니까요. 군관 나으리.”
그러나 절대절명의 위기가 어머니에게 육박해오고 있음을 난들 어쩌랴. 공포와 아직도 한 가닥 기대를 건 비굴이 어머니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일그러뜨리고 이마에선 구슬 같은 땀이 송글송글 솟아오르고 다리를 감싼 손과 앙상한 어깨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가엾은 어머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죽게 하시지, 그 몹쓸 일을 두 번 겪게 하시다니…….
“어머니, 어머니 이러시지 말고 제발 정신 차리세요.”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어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나를 검부러기처럼 가볍게 털어내면서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안된다. 안돼. 이 노옴. 안돼. 너도 사람이냐? 이 노옴, 이 노옴.”
나는 벽까지 떠다밀린 채 와들와들 떨면서 점점 심해가는 어머니의 광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몸에서 수술한 다리만 빼고는 온몸이 노한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래서 더욱 그 다리는 어머니의 몸이 아닌 이물질처럼 괴기스러워 보였다. 어머니의 그 다리와 아들과의 동일시가 나한테까지 옮아붙은 것처럼 나는 그 다리가 무서웠다.
“안된다 이 노옴”이라는 호통과 “군관 나으리, 군관 선생님, 군관 동무”라는 아부를 번갈아 하며 몸부림치는 서슬에 마침내 링거줄이 주사바늘에서 빠져 버렸다. 혈관에 꽂힌 채인 주사바늘을 통해 피가 역류해 환자복과 시트를 점점 물들였다. 피를 보자 어머니의 광란은 극에 달했다.
중략 줄거리: ‘나’는 겨우 어머니를 진정시킨다. 과거 6․25 전쟁에서 ‘나’의 오빠는 인민군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의용군에 지원했다가 겨우 탈출하여 돌아온다.
그런데 오빠는 속속들이 망가져 있었다.
전세가 불리해져 피란을 갈 상황에 처한 가족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숨어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닥친 인민군 군관에게 발각된다.
다시 포성이 가까워지고 그들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앉으나서나 그들이 곱게 물러가기만을 축수했다.
“그저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불쌍한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마침내 보위군관이 작별하러 왔다. 그의 작별방법은 특이했다.
“내가 동무들같이 간사한 무리들한테 끝까지 속을 것 같소. 지금이라도 바른 대로 대시오. 이래도 바른 소리를 못하겠소?”
그가 허리에 찬 권총을 빼 오빠에게 겨누며 말했다.
“안된다. 안돼. 이 노옴 너도 사람이냐? 이 노옴.”
어머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짐승 같은 소리로 신음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획 뿌리쳤다.
“이래도 이래도 바른 말을 안할 테냐? 이래도.”
총성이 울렸다. 다리였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같은 소리밖에 못 냈다.
“좋다. 이래도 바른 말을 안할 테냐? 이래도.”
또 총성이 울렸다. 같은 말과 총성이 서너 번이나 되풀이됐다. 잔혹하게도 그 당장 목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체만 겨냥하고 쏴댔다.
오빠는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기절해 꼬꾸라지고 어머니도 그가 뿌리쳐 나동그라진 자리에서 처절한 외마디 소리만 지르다가 까무라쳤다.
“죽기 전에 바른말 할 기회를 주기 위해 당장 죽이진 않겠다.”
그후 군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만에 세상은 또 바뀌었다.
오빠의 총상은 다 치명상이 아니었는데도 며칠만에 운명했다. 출혈이 심한데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박완서, <엄마의 말뚝2> -
㉠과 관련해 작품의 구절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몸부림을 ‘나’에 대한 원망으로 본 이해이다.
어머니는 환각 속 군관에게서 다리, 곧 아들을 숨기려고 몸부림친다. ‘나’를 털어낸 것은 말리는 손길을 뿌리친 결과일 뿐, 글 어디에도 ‘나’가 오빠를 지키지 못했다는 원망의 근거가 없다.
- 다리를 엄호하는 행동에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담겼다는 이해는 적절하다. 어머니는 ‘꼼짝 말아. 다 내가 당할 테니’라고 말하고, 과거에도 군관의 팔에 매달렸다.
- 환각 속 군관이 오빠를 해친 존재라는 이해는 적절하다. 어머니는 환각 속 상대를 ‘군관 나으리’라 부르고, 호통 ‘너도 사람이냐’는 과거 장면에서도 나온다.
- ‘차라리 죽게 하시지’를 어머니의 고통을 아는 데서 나온 생각으로 본 이해도 적절하다. ‘그 몹쓸 일을 두 번 겪게 하시다니’라는 구절이 이를 뒷받침한다.
앞부분 줄거리: ‘나’의 친정어머니는 넘어져 크게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받게 되고, ‘나’는 홀로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게 된다. 아흔에 가까운 고령의 어머니는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서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그놈 또 왔다. 뭘하고 있냐! 느이 오래빌 숨겨야지, 어서”
“엄마, 제발 이러시지 좀 마세요. 오빠가 어디 있다고 숨겨요?”
“그럼 느이 오래빌 벌써 잡아갔냐.”
“엄마, 제발.”
어머니의 손이 사방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붕대 감긴 자기의 다리에 손이 닿자 날카롭게 속삭였다.
“가엾은 내 새끼 여기 있었구나. 꼼짝 말아. 다 내가 당할 테니.”
어머니의 떨리는 손이 다리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다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온몸으로 그 다리를 엄호하면서 어머니의 적을 노려보았다. 어머니의 적은 저승의 사자가 아니었다.
“군관 동무, 군관 선생님,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어머니의 눈의 푸른 기가 애처롭게 흔들리면서 입가에 비굴한 웃음이 감돌았다. 나는 어머니가 환각으로 보고 있는 게 무엇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엾은 어머니, 차라리 저승의 사자를 보시는 게 나았을 것을…….
어머니는 그 다리를 어디다 숨기려는지 몸부림쳤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군관 나으리,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찾아보실 것도 없다니까요. 군관 나으리.”
그러나 절대절명의 위기가 어머니에게 육박해오고 있음을 난들 어쩌랴. 공포와 아직도 한 가닥 기대를 건 비굴이 어머니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일그러뜨리고 이마에선 구슬 같은 땀이 송글송글 솟아오르고 다리를 감싼 손과 앙상한 어깨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가엾은 어머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죽게 하시지, 그 몹쓸 일을 두 번 겪게 하시다니…….
“어머니, 어머니 이러시지 말고 제발 정신 차리세요.”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어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나를 검부러기처럼 가볍게 털어내면서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안된다. 안돼. 이 노옴. 안돼. 너도 사람이냐? 이 노옴, 이 노옴.”
나는 벽까지 떠다밀린 채 와들와들 떨면서 점점 심해가는 어머니의 광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몸에서 수술한 다리만 빼고는 온몸이 노한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래서 더욱 그 다리는 어머니의 몸이 아닌 이물질처럼 괴기스러워 보였다. 어머니의 그 다리와 아들과의 동일시가 나한테까지 옮아붙은 것처럼 나는 그 다리가 무서웠다.
“안된다 이 노옴”이라는 호통과 “군관 나으리, 군관 선생님, 군관 동무”라는 아부를 번갈아 하며 몸부림치는 서슬에 마침내 링거줄이 주사바늘에서 빠져 버렸다. 혈관에 꽂힌 채인 주사바늘을 통해 피가 역류해 환자복과 시트를 점점 물들였다. 피를 보자 어머니의 광란은 극에 달했다.
중략 줄거리: ‘나’는 겨우 어머니를 진정시킨다. 과거 6․25 전쟁에서 ‘나’의 오빠는 인민군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의용군에 지원했다가 겨우 탈출하여 돌아온다.
그런데 오빠는 속속들이 망가져 있었다.
전세가 불리해져 피란을 갈 상황에 처한 가족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숨어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닥친 인민군 군관에게 발각된다.
다시 포성이 가까워지고 그들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앉으나서나 그들이 곱게 물러가기만을 축수했다.
“그저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불쌍한 내 자식 해코지만 마소서.”
마침내 보위군관이 작별하러 왔다. 그의 작별방법은 특이했다.
“내가 동무들같이 간사한 무리들한테 끝까지 속을 것 같소. 지금이라도 바른 대로 대시오. 이래도 바른 소리를 못하겠소?”
그가 허리에 찬 권총을 빼 오빠에게 겨누며 말했다.
“안된다. 안돼. 이 노옴 너도 사람이냐? 이 노옴.”
어머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짐승 같은 소리로 신음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획 뿌리쳤다.
“이래도 이래도 바른 말을 안할 테냐? 이래도.”
총성이 울렸다. 다리였다. 오빠는 으, 으, 으, 으, 같은 소리밖에 못 냈다.
“좋다. 이래도 바른 말을 안할 테냐? 이래도.”
또 총성이 울렸다. 같은 말과 총성이 서너 번이나 되풀이됐다. 잔혹하게도 그 당장 목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체만 겨냥하고 쏴댔다.
오빠는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기절해 꼬꾸라지고 어머니도 그가 뿌리쳐 나동그라진 자리에서 처절한 외마디 소리만 지르다가 까무라쳤다.
“죽기 전에 바른말 할 기회를 주기 위해 당장 죽이진 않겠다.”
그후 군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만에 세상은 또 바뀌었다.
오빠의 총상은 다 치명상이 아니었는데도 며칠만에 운명했다. 출혈이 심한데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박완서, <엄마의 말뚝2> -
윗글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법원행정처 확정정답이 복수정답(②③)으로 공개된 문항입니다. 실제 시험에서는 ②③ 모두 정답 처리되었습니다.
| 世·솅宗조ᇰ 御·ᅌᅥᆼ製·졩 訓·훈民민正·져ᇰ音ᅙᅳᆷ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 달·아 ㉡文문字· 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이런 젼·ᄎᆞ·로 어·린 百·ᄇᆡᆨ姓·셔ᇰ·이 니르·고·져 ㉢·호ᇙ·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ᄒᆞᇙ ·노·미 하·니·라 ㉤·내 ·이·ᄅᆞᆯ 爲·윙·ᄒᆞ·야 :어엿·비 너·겨 · 새·로 ㉥·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 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 :ᄒᆡ․ᅇᅧ :수·ᄫᅵ 니·겨 ·날·로 ㉦·ᄡᅮ· 메 便뼌安ᅙᅡᆫ·킈 ᄒᆞ·고·져 ᄒᆞᇙ ᄯᆞᄅᆞ·미니·라 |
윗글의 ㉠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 ㉠과 ㉦에 동일한 비교의 부사격 조사가 쓰였다는 설명이다.
㉠의 ‘에’는 ‘중국과 달라’의 뜻으로 비교를 나타낸다. 반면 ㉦의 ‘ᄡᅮ메’는 ‘쓰는 데’의 뜻이므로 ‘에’가 비교가 아닌 처소의 부사격 조사이다.
- ㉡의 ‘와로’는 ‘문자와’의 뜻으로, 다른 대상과의 비교를 표시하므로 적절하다.
- ㉢과 ㉤은 같은 격 조사를 보여 주므로 적절하다. ‘배’는 ‘바+ㅣ’, ‘내’는 ‘나+ㅣ’로, 둘 다 주격 조사 ‘ㅣ’가 결합했다.
- ㉣과 ㉥은 목적격 조사의 교체를 보여 주므로 적절하다. 자음 뒤 음성 모음 환경에서는 ‘을’, 모음 뒤 양성 모음 환경에서는 ‘ᄅᆞᆯ’이 쓰였다.
| 世·솅宗조ᇰ 御·ᅌᅥᆼ製·졩 訓·훈民민正·져ᇰ音ᅙᅳᆷ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 달·아 ㉡文문字· 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이런 젼·ᄎᆞ·로 어·린 百·ᄇᆡᆨ姓·셔ᇰ·이 니르·고·져 ㉢·호ᇙ·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ᄒᆞᇙ ·노·미 하·니·라 ㉤·내 ·이·ᄅᆞᆯ 爲·윙·ᄒᆞ·야 :어엿·비 너·겨 · 새·로 ㉥·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 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 :ᄒᆡ․ᅇᅧ :수·ᄫᅵ 니·겨 ·날·로 ㉦·ᄡᅮ· 메 便뼌安ᅙᅡᆫ·킈 ᄒᆞ·고·져 ᄒᆞᇙ ᄯᆞᄅᆞ·미니·라 |
현대 국어와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음운 변화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 종성 ‘ㄷ’이 ‘ㅅ’으로 발음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현대 국어 ‘못’의 ‘ㅅ’은 표기일 뿐이고, 받침은 음절의 끝소리 규칙에 따라 [ㄷ]으로 발음된다. 따라서 ‘몯’이 ‘못’으로 바뀐 것은 발음이 아니라 표기의 변화이다.
- ‘·이런’이 ‘이런’으로 바뀐 것에서 성조의 소멸을 알 수 있으므로 적절하다. 글자 왼쪽의 방점이 성조를 나타낸다.
- 아래 아의 변화에 대한 설명도 적절하다. ‘ᄆᆞ·ᄎᆞᆷ:내’의 첫 음절은 ‘마’로, 둘째 음절은 ‘침’으로 바뀌었고, ‘말ᄊᆞ·미’의 둘째 음절은 ‘씀’으로 바뀌었다.
- ‘펴․디’가 ‘펴지’로 바뀐 것은 ‘ㅣ’ 모음 앞에서 ‘ㄷ’이 ‘ㅈ’으로 바뀐 구개음화이므로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