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돌아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기 시작하였다. 뒤에서 두 놈이 총을 재었다.
바야흐로 불길을 뿜으려는 총구를 등 뒤에 받으며, 주저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피해자는 눈길을 맨발로 헤쳐 가고 있다. 인제 몇 발의 총성과 더불어 그는 무참히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똑바로 정면으로 눈을 준 채 조금도 흩어질 줄 모르는 그의 침착한 걸음걸이…….
눈앞이 빙빙 돈다. ⓐ 그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자기인 것만 같았다. ㉠ 순간, 그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쏴야 한다. 그는 사수를 겨누었다. 숨죽이는 순간 이미 그의 두 총구에서는 빗발같이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쓰러진다. 분명히 두 놈이 쓰러졌다. 그는 다음 다음 연달아 쏘았다. 일순간이 지나자 응수가 왔다. 이마에서 줄곧 땀이 흐른다. 눈앞이 돈다. 전신의 근육이 개머리판의 진동에 따라 약동한다. 의식이 자주 흐려진다. 그는 푹 고개를 묻고 쓰러졌다. 위기일발, 다시 겨눈다. 또 어깨 위에 급격한 진동이 지나간다. 자꾸 흩어지는 의식. 놈들의 사격이 뚝 그쳤다. 적은 전후 좌우방으로 흩어져서 육박하여 오고 있다. 의식을 잃은 난사.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푹 쓰러졌다. 의식이 깜박 사라진다. 갓 지나간 격렬한 총성의 여음이 귓가에서 감돈다. 몸 어느 한 구석이 쿡쿡 찔리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난다.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친다. 그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오른편 팔 위에 격통이 일어난다. 그는 간신히 왼편 손으로 오른편 팔을 엎쓸어 더듬었다. 손끝에 오는 감촉이 끈적끈적하다. 손을 떼었다.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 손끝과 손가락 사이에는 피, 검붉은 피가 흠뻑 젖어 있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먼지와 거미줄이 뽀야니 늘어 붙은 찢어진 천장 구멍으로 사라져 간다. 방안이다. 방안에 눕혀져 있는 것이다. 이따금 흰 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희미한 의식 속에 떠오른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따라서 그의 의식도 희미해진다.
그 후 몇 번이고 신문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아무 생각도 없다. 전신의 근육이 감각을 잃은 채 이따금 경련을 일으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말소리도. ⓒ 시간이 되었나 보다.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고 급기야 어둠을 헤치고 흘러 들어오는 광선을 띠고 사닥다리가 내려올 것이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일순간이 지났다. 조용하다. 아무런 동정도 없다. 어떤 일일까……? 막연한 의식의 착오 탓인가. 확실히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는 …… 정확한 ……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광선이 눈부시게 흘러 들어온다. 사닥다리다.
“뭐하고 있어! 빨리 나와!”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독촉하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정신을 가다듬고 감각을 잃은 무릎을 힘껏 괴어 짚으며 기어올랐다. 입구에 다다르자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속에 그대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찬 눈이 얼굴 위에 스치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은 인제 끝나는 것이다. ⓓ 끝나는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그는 눈을 다섯 손가락으로 꽉 움켜 짚고 떨리는 다리를 바로 잡아가며 일어섰다. 그리고 한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음을 옮겼다. ㉡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
본부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준비 완료 보고와 집행 명령이 뒤이어 떨어졌다.
㉢ 눈에 함빡 싸인 흰 둑길이다. 오오 이 둑길…… 몇 사람이나 이 둑길을 걸었을 거냐.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 흰 눈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 닿은 길이오. 그처럼 가고 싶어 하는 길이니 유감없을 거요. 걸음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따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확히 걸어야 한다. 사수(射手) 준비! 총탄 재는 소리가 바람처럼 차갑다. 눈앞에 흰 눈뿐, 아무것도 없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 초, 일 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걸음걸이는 그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아무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허튼,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흰 눈, 그 속을 걷고 있다.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선 언덕, 흰 눈이다. 연발하는 총성, 마치 외부 세계의 잡음만 같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흰 눈 속을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눈 속에 부서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난다. 누가 뒤통수서 잡아 일으키는 것 같다. 뒷허리에 충격을 느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 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쩍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들 갈 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들 갈 것이다. 몇 분 후면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 피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오상원, 「유예」-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이 글의 특징은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로 현실에 대한 인물의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눈앞이 빙빙 돈다’, ‘의식이 깜박 사라진다’, ‘자꾸 흩어지는 의식’처럼 주인공의 의식이 이어지는 대로 사건이 서술되고, 눈길을 걷는 현재와 과거의 전투가 그 의식 속에서 겹쳐진다.
- 인물 간 대화로 철학을 나타낸다는 설명: 대화는 ‘뭐하고 있어! 빨리 나와!’처럼 드물고, 인물의 생각은 주로 내면 서술로 제시된다.
- 서술자가 개입해 작가의 주장을 직접 제시한다는 설명: 서술자가 나서서 주장을 펴는 대목이 없고,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갈 뿐이다.
- 짧은 문장으로 긍정적 변화를 암시한다는 설명: ‘쓰러진다.’ 같은 짧은 문장은 긴박감을 줄 뿐이며, 상황은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라는 죽음으로 향한다.
피해자는 돌아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기 시작하였다. 뒤에서 두 놈이 총을 재었다.
바야흐로 불길을 뿜으려는 총구를 등 뒤에 받으며, 주저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피해자는 눈길을 맨발로 헤쳐 가고 있다. 인제 몇 발의 총성과 더불어 그는 무참히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똑바로 정면으로 눈을 준 채 조금도 흩어질 줄 모르는 그의 침착한 걸음걸이…….
눈앞이 빙빙 돈다. ⓐ 그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자기인 것만 같았다. ㉠ 순간, 그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쏴야 한다. 그는 사수를 겨누었다. 숨죽이는 순간 이미 그의 두 총구에서는 빗발같이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쓰러진다. 분명히 두 놈이 쓰러졌다. 그는 다음 다음 연달아 쏘았다. 일순간이 지나자 응수가 왔다. 이마에서 줄곧 땀이 흐른다. 눈앞이 돈다. 전신의 근육이 개머리판의 진동에 따라 약동한다. 의식이 자주 흐려진다. 그는 푹 고개를 묻고 쓰러졌다. 위기일발, 다시 겨눈다. 또 어깨 위에 급격한 진동이 지나간다. 자꾸 흩어지는 의식. 놈들의 사격이 뚝 그쳤다. 적은 전후 좌우방으로 흩어져서 육박하여 오고 있다. 의식을 잃은 난사.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푹 쓰러졌다. 의식이 깜박 사라진다. 갓 지나간 격렬한 총성의 여음이 귓가에서 감돈다. 몸 어느 한 구석이 쿡쿡 찔리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난다.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친다. 그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오른편 팔 위에 격통이 일어난다. 그는 간신히 왼편 손으로 오른편 팔을 엎쓸어 더듬었다. 손끝에 오는 감촉이 끈적끈적하다. 손을 떼었다.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 손끝과 손가락 사이에는 피, 검붉은 피가 흠뻑 젖어 있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먼지와 거미줄이 뽀야니 늘어 붙은 찢어진 천장 구멍으로 사라져 간다. 방안이다. 방안에 눕혀져 있는 것이다. 이따금 흰 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희미한 의식 속에 떠오른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따라서 그의 의식도 희미해진다.
그 후 몇 번이고 신문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아무 생각도 없다. 전신의 근육이 감각을 잃은 채 이따금 경련을 일으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말소리도. ⓒ 시간이 되었나 보다.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고 급기야 어둠을 헤치고 흘러 들어오는 광선을 띠고 사닥다리가 내려올 것이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일순간이 지났다. 조용하다. 아무런 동정도 없다. 어떤 일일까……? 막연한 의식의 착오 탓인가. 확실히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는 …… 정확한 ……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광선이 눈부시게 흘러 들어온다. 사닥다리다.
“뭐하고 있어! 빨리 나와!”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독촉하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정신을 가다듬고 감각을 잃은 무릎을 힘껏 괴어 짚으며 기어올랐다. 입구에 다다르자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속에 그대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찬 눈이 얼굴 위에 스치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은 인제 끝나는 것이다. ⓓ 끝나는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그는 눈을 다섯 손가락으로 꽉 움켜 짚고 떨리는 다리를 바로 잡아가며 일어섰다. 그리고 한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음을 옮겼다. ㉡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
본부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준비 완료 보고와 집행 명령이 뒤이어 떨어졌다.
㉢ 눈에 함빡 싸인 흰 둑길이다. 오오 이 둑길…… 몇 사람이나 이 둑길을 걸었을 거냐.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 흰 눈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 닿은 길이오. 그처럼 가고 싶어 하는 길이니 유감없을 거요. 걸음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따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확히 걸어야 한다. 사수(射手) 준비! 총탄 재는 소리가 바람처럼 차갑다. 눈앞에 흰 눈뿐, 아무것도 없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 초, 일 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걸음걸이는 그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아무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허튼,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흰 눈, 그 속을 걷고 있다.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선 언덕, 흰 눈이다. 연발하는 총성, 마치 외부 세계의 잡음만 같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흰 눈 속을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눈 속에 부서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난다. 누가 뒤통수서 잡아 일으키는 것 같다. 뒷허리에 충격을 느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 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쩍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들 갈 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들 갈 것이다. 몇 분 후면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 피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오상원, 「유예」-
윗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은 주인공이 ‘피해자’를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이를 직접 보여 준다. 이 동일시가 주인공이 총을 쏘게 된 계기이다.
- ‘피해자’가 주인공에게서 도망가다 죽었다는 내용: 총을 잰 것은 ‘두 놈’이고, 피해자는 ‘주저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 기밀을 지키려 신문을 견뎠다는 내용: 지문에는 ‘몇 번이고 신문이 지나갔다’는 사실만 있고 기밀에 대한 언급은 없다.
- 탈출하던 중 총에 맞았다는 내용: 주인공은 달아난 것이 아니라 먼저 사수를 겨누어 총격전을 벌이다 쓰러졌다.
피해자는 돌아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기 시작하였다. 뒤에서 두 놈이 총을 재었다.
바야흐로 불길을 뿜으려는 총구를 등 뒤에 받으며, 주저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피해자는 눈길을 맨발로 헤쳐 가고 있다. 인제 몇 발의 총성과 더불어 그는 무참히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똑바로 정면으로 눈을 준 채 조금도 흩어질 줄 모르는 그의 침착한 걸음걸이…….
눈앞이 빙빙 돈다. ⓐ 그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자기인 것만 같았다. ㉠ 순간, 그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쏴야 한다. 그는 사수를 겨누었다. 숨죽이는 순간 이미 그의 두 총구에서는 빗발같이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쓰러진다. 분명히 두 놈이 쓰러졌다. 그는 다음 다음 연달아 쏘았다. 일순간이 지나자 응수가 왔다. 이마에서 줄곧 땀이 흐른다. 눈앞이 돈다. 전신의 근육이 개머리판의 진동에 따라 약동한다. 의식이 자주 흐려진다. 그는 푹 고개를 묻고 쓰러졌다. 위기일발, 다시 겨눈다. 또 어깨 위에 급격한 진동이 지나간다. 자꾸 흩어지는 의식. 놈들의 사격이 뚝 그쳤다. 적은 전후 좌우방으로 흩어져서 육박하여 오고 있다. 의식을 잃은 난사.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푹 쓰러졌다. 의식이 깜박 사라진다. 갓 지나간 격렬한 총성의 여음이 귓가에서 감돈다. 몸 어느 한 구석이 쿡쿡 찔리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난다.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친다. 그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오른편 팔 위에 격통이 일어난다. 그는 간신히 왼편 손으로 오른편 팔을 엎쓸어 더듬었다. 손끝에 오는 감촉이 끈적끈적하다. 손을 떼었다.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 손끝과 손가락 사이에는 피, 검붉은 피가 흠뻑 젖어 있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먼지와 거미줄이 뽀야니 늘어 붙은 찢어진 천장 구멍으로 사라져 간다. 방안이다. 방안에 눕혀져 있는 것이다. 이따금 흰 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희미한 의식 속에 떠오른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따라서 그의 의식도 희미해진다.
그 후 몇 번이고 신문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아무 생각도 없다. 전신의 근육이 감각을 잃은 채 이따금 경련을 일으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말소리도. ⓒ 시간이 되었나 보다.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고 급기야 어둠을 헤치고 흘러 들어오는 광선을 띠고 사닥다리가 내려올 것이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일순간이 지났다. 조용하다. 아무런 동정도 없다. 어떤 일일까……? 막연한 의식의 착오 탓인가. 확실히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는 …… 정확한 ……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광선이 눈부시게 흘러 들어온다. 사닥다리다.
“뭐하고 있어! 빨리 나와!”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독촉하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정신을 가다듬고 감각을 잃은 무릎을 힘껏 괴어 짚으며 기어올랐다. 입구에 다다르자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속에 그대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찬 눈이 얼굴 위에 스치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은 인제 끝나는 것이다. ⓓ 끝나는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그는 눈을 다섯 손가락으로 꽉 움켜 짚고 떨리는 다리를 바로 잡아가며 일어섰다. 그리고 한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음을 옮겼다. ㉡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
본부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준비 완료 보고와 집행 명령이 뒤이어 떨어졌다.
㉢ 눈에 함빡 싸인 흰 둑길이다. 오오 이 둑길…… 몇 사람이나 이 둑길을 걸었을 거냐.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 흰 눈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 닿은 길이오. 그처럼 가고 싶어 하는 길이니 유감없을 거요. 걸음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따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확히 걸어야 한다. 사수(射手) 준비! 총탄 재는 소리가 바람처럼 차갑다. 눈앞에 흰 눈뿐, 아무것도 없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 초, 일 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걸음걸이는 그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아무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허튼,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흰 눈, 그 속을 걷고 있다.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선 언덕, 흰 눈이다. 연발하는 총성, 마치 외부 세계의 잡음만 같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흰 눈 속을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눈 속에 부서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난다. 누가 뒤통수서 잡아 일으키는 것 같다. 뒷허리에 충격을 느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 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쩍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들 갈 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들 갈 것이다. 몇 분 후면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 피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오상원, 「유예」-
윗글을 영화로 제작하려고 할 때, ㉠~㉣의 영상 제작에 대한 계획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계획은 ㉢에서 운명에 대한 원망과 좌절을 나타내려는 계획이다.
㉢ 바로 뒤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라는 서술이 이어지고, 주인공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곧 ㉢의 정서는 원망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의지이다.
- ㉠에서 총을 세게 잡는 손아귀를 확대하는 계획: ‘총을 꽉 움켜쥐었다’와 ‘비겁한 수단이다’에 담긴 결심을 잘 살린다.
- ㉡에서 의지에 찬 표정을 확대하는 계획: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서술에 들어맞는다.
- ㉣에서 화면을 점차 어둡게 하고 소리를 줄이는 계획: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는 서술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다.
피해자는 돌아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기 시작하였다. 뒤에서 두 놈이 총을 재었다.
바야흐로 불길을 뿜으려는 총구를 등 뒤에 받으며, 주저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피해자는 눈길을 맨발로 헤쳐 가고 있다. 인제 몇 발의 총성과 더불어 그는 무참히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똑바로 정면으로 눈을 준 채 조금도 흩어질 줄 모르는 그의 침착한 걸음걸이…….
눈앞이 빙빙 돈다. ⓐ 그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자기인 것만 같았다. ㉠ 순간, 그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쏴야 한다. 그는 사수를 겨누었다. 숨죽이는 순간 이미 그의 두 총구에서는 빗발같이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쓰러진다. 분명히 두 놈이 쓰러졌다. 그는 다음 다음 연달아 쏘았다. 일순간이 지나자 응수가 왔다. 이마에서 줄곧 땀이 흐른다. 눈앞이 돈다. 전신의 근육이 개머리판의 진동에 따라 약동한다. 의식이 자주 흐려진다. 그는 푹 고개를 묻고 쓰러졌다. 위기일발, 다시 겨눈다. 또 어깨 위에 급격한 진동이 지나간다. 자꾸 흩어지는 의식. 놈들의 사격이 뚝 그쳤다. 적은 전후 좌우방으로 흩어져서 육박하여 오고 있다. 의식을 잃은 난사.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푹 쓰러졌다. 의식이 깜박 사라진다. 갓 지나간 격렬한 총성의 여음이 귓가에서 감돈다. 몸 어느 한 구석이 쿡쿡 찔리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난다.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친다. 그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오른편 팔 위에 격통이 일어난다. 그는 간신히 왼편 손으로 오른편 팔을 엎쓸어 더듬었다. 손끝에 오는 감촉이 끈적끈적하다. 손을 떼었다.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 손끝과 손가락 사이에는 피, 검붉은 피가 흠뻑 젖어 있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먼지와 거미줄이 뽀야니 늘어 붙은 찢어진 천장 구멍으로 사라져 간다. 방안이다. 방안에 눕혀져 있는 것이다. 이따금 흰 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희미한 의식 속에 떠오른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따라서 그의 의식도 희미해진다.
그 후 몇 번이고 신문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아무 생각도 없다. 전신의 근육이 감각을 잃은 채 이따금 경련을 일으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말소리도. ⓒ 시간이 되었나 보다.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고 급기야 어둠을 헤치고 흘러 들어오는 광선을 띠고 사닥다리가 내려올 것이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일순간이 지났다. 조용하다. 아무런 동정도 없다. 어떤 일일까……? 막연한 의식의 착오 탓인가. 확실히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는 …… 정확한 ……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광선이 눈부시게 흘러 들어온다. 사닥다리다.
“뭐하고 있어! 빨리 나와!”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독촉하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정신을 가다듬고 감각을 잃은 무릎을 힘껏 괴어 짚으며 기어올랐다. 입구에 다다르자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속에 그대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찬 눈이 얼굴 위에 스치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은 인제 끝나는 것이다. ⓓ 끝나는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그는 눈을 다섯 손가락으로 꽉 움켜 짚고 떨리는 다리를 바로 잡아가며 일어섰다. 그리고 한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음을 옮겼다. ㉡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
본부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준비 완료 보고와 집행 명령이 뒤이어 떨어졌다.
㉢ 눈에 함빡 싸인 흰 둑길이다. 오오 이 둑길…… 몇 사람이나 이 둑길을 걸었을 거냐.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 흰 눈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 닿은 길이오. 그처럼 가고 싶어 하는 길이니 유감없을 거요. 걸음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따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확히 걸어야 한다. 사수(射手) 준비! 총탄 재는 소리가 바람처럼 차갑다. 눈앞에 흰 눈뿐, 아무것도 없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 초, 일 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걸음걸이는 그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아무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허튼,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흰 눈, 그 속을 걷고 있다.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선 언덕, 흰 눈이다. 연발하는 총성, 마치 외부 세계의 잡음만 같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흰 눈 속을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눈 속에 부서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난다. 누가 뒤통수서 잡아 일으키는 것 같다. 뒷허리에 충격을 느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 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쩍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들 갈 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들 갈 것이다. 몇 분 후면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 피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오상원, 「유예」-
ⓐ~ⓓ 중 <보기>의 밑줄 친 내용의 예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 < 보 기 > ‘유예’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의 혼용이다. 즉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주인공의 의식을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1인칭 ‘나’의 시점에서 서술하기도 한다. |
<보기>의 1인칭 서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 ‘그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자기인 것만 같았다’이다.
이 문장은 주인공을 ‘그’로 가리키며 그의 의식을 바깥에서 전하는 3인칭 시점의 서술이다.
- ⓑ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라는 1인칭 주어가 드러나 있다.
- ⓒ ‘시간이 되었나 보다’: 갇힌 채 발자국 소리를 듣는 주인공이 속으로 짐작하는 말로, ‘나’의 시점에서 내면을 드러낸다.
- ⓓ ‘끝나는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나를’이 쓰인 주인공 자신의 다짐이다.
| < 보 기 > 자음의 분류 기준은 자음이 실현될 때 일어나는 ‘방해 과정’을 중시한다. 방해가 일어나는 위치를 조음 위치, 방해가 일어나는 방식을 조음 방식이라고 한다. ‘ㄱ’의 경우에 조음 위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 ㉠ )이며, 조음 방식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 ㉡ )이다. ‘ㄴ’의 경우에 조음 위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 ㉢ )이며, 조음 방식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비음이다. |
빈칸에 들어갈 말은 차례대로 연구개음, 파열음, 치조음이다.
‘ㄱ’은 혀의 뒷부분을 여린입천장(연구개)에 붙였다 터뜨리는 소리이므로 연구개음이자 파열음이다. ‘ㄴ’은 혀끝을 윗잇몸에 대고 코로 공기를 내보내는 소리이므로 치조음이자 비음이다.
- ‘ㄴ’을 양순음으로 본 조합: 양순음은 ‘ㅁ, ㅂ’처럼 두 입술에서 나는 소리이다.
- ‘ㄱ’을 치조음·마찰음, ‘ㄴ’을 경구개음으로 본 조합: ‘ㄱ’은 치조음도 마찰음도 아니고, 경구개음은 ‘ㅈ, ㅊ’ 등이다.
- ‘ㄱ’을 치조음·마찰음, ‘ㄴ’을 연구개음으로 본 조합: 두 소리의 조음 위치를 모두 잘못 짚었다. 연구개음인 것은 ‘ㄱ’ 쪽이다.
| < 보 기 > <제7장> 블근 새 그를 므러 寢室(침실) 이페 안ᄌᆞ니 聖子革命(성자혁명)에 帝祜(제호)ᄅᆞᆯ 뵈ᅀᆞᄫᆞ니 ᄇᆞ야미 가칠 므러 즘겟 가재 연ᄌᆞ니 聖孫將興(성손장흥)에 嘉祥(가상)이 몬졔시니 - 「용비어천가」(1447) - [현대어 풀이] <제7장> 붉은 새가 글을 물어 침실의 지게문에 앉으니, 성자가 혁명을 일으킴에 하늘이 내린 복을 보이니 뱀이 까치를 물어 나무의 가지에 얹으니, 성손이 장차 일어남에 기쁜 징조가 먼저 나타나니 |
적절한 분석은 ‘그를’의 조사를 오늘날과 같은 목적격 조사 ‘을’로 본 것이다.
‘그를’은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글’에 ‘을’이 결합한 말을 이어적기한 형태이므로, 오늘날의 ‘글을’과 조사의 형태가 같다.
- ‘ᄇᆞ야미’에서 다른 형태의 주격 조사를 찾은 분석: ‘ᄇᆞ얌’에 주격 조사 ‘이’가 결합한 것으로, 오늘날의 ‘이’와 형태가 같다.
- ‘블근’과 ‘안ᄌᆞ니’를 거듭적기로 본 분석: 받침을 뒤 음절 초성으로 옮겨 적은 이어적기이다.
- ‘뵈ᅀᆞᄫᆞ니’의 객체 높임을 어말 어미로 본 분석: 객체 높임은 어말 어미가 아니라 선어말 어미 ‘-ᅀᆞᇦ-’으로 실현되었다.
| < 보 기 > ㉠ 급행열차 → [그팽녈차] ㉡ 끓는 → [끌른] ㉢ 알약 → [알략] |
적절한 설명은 ㉡과 ㉢에 공통으로 일어난 음운 변동을 유음화로 본 것이다.
㉠은 ‘ㅂ+ㅎ→ㅍ’의 거센소리되기(축약)와 ‘ㄴ’ 첨가가 일어났다. ㉡은 겹받침 ‘ㅀ’의 ‘ㅎ’이 떨어진 뒤 ‘ㄹ+ㄴ→ㄹ+ㄹ’의 유음화가 일어났고, ㉢은 ‘ㄴ’ 첨가 뒤 첨가된 ‘ㄴ’이 ‘ㄹ’로 바뀌는 유음화가 일어났다.
- ㉠만 음운 변동이 두 번 이상이라는 설명: ㉢도 ‘ㄴ’ 첨가와 유음화로 두 번 일어났다.
- 세 예 모두 탈락이 일어났다는 설명: 탈락은 ㉡에만 있고, ㉠과 ㉢에는 없다.
- ㉠과 ㉡ 모두 음운이 하나 줄었다는 설명: ㉡은 탈락으로 하나 줄지만, ㉠은 축약으로 하나 줄고 첨가로 하나 늘어 개수가 그대로이다.
[앞부분의 줄거리]
일본에 유학 중인 나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길에 오른다. 나는 도쿄에서 기차로 시모노세키까지 와서 관부 연락선에 올라 배 안의 목욕탕에 들렀다. 나는 목욕탕 안에서 일본인들이 조선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엿듣게 된다.
“그래 그렇게 모집을 해 가면, 얼마나 생기나요?”
촌뜨기는, 구수하다는 듯이 침을 흘리며 듣는다.
“얼마가 뭐요. 여비가 있지, 일당이 또 있지, 게다가 한 사람 모집하는 데에 일 원 내지 이 원이니까―그건, 회사와 일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령 방적회사의 여공 같은 것은 임금도 싼 데다가, 모집원의 수수료도 제일 헐하고, 광부 같은 것은 지금 시세로도 일 원 오십 전으로 이 원까지라오. 가령 지금 천 명만 맡아 가지고 와서 보구려. 이삼 삭 동안 여비나 일당에서 남는 것은, 그까짓 건 다 제하고라도, 일천삼사백 원, 잘만 되면 근 이천 원은 간데없는 것일 게니…… 하하하, 나도 맨 처음에―그건 제주도에서 모집해 갔지만―그때에 오백 명 모아다 주고, 실살고로 남긴 것이, 팔구백 근 천 원이었고, 둘째 번에는 올가을에 팔백 명이나 홋카이도 탄광에 보내고, 근 이천 원 돈이 들어왔다우.”
노동자 모집원이라는 자는 입의 침이 마르게 천 원, 이천 원을 신이 나서 뇌며 목욕탕 속에서 나왔다.
“에, 에.” 하며, 일평생 들어 보지도 못하던 천 원 이천 원 소리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던 시골자는, 때를 다 밀었는지, 그 장대한 동색(銅色) 거구를 벌떡 일으켜, 다시 욕탕 속에 출렁 집어넣으면서, 만족한 듯이 또다시 말을 붙였다.
“그래 조선 농군들이 가서, 그런 공사일을 잘들 하나요?”
“잘하구 못하는 것은, 내가 상관할 것 무엇 있소마는, 하여간 요보는 말을 잘 듣고 힘드는 일을 잘하는 데다가 임은(賃銀)이 헐하니까, 안성맞춤이지. 그야 처음 데려갈 때에는 품삯도 많고, 일은 드러누워서 떡 먹기라고 푹 삶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갈 노자며, 처자까지 데리고 가게 하고, 게다가 빚까지 갚아 주는 데야 제 아무런 놈이기로 안 따라나설 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나서기만 하면야, 전차(前借)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 일이 고되거나 품이 헐하긴 고사하고 굶어 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벌써 부하가 되었다는 듯이, 득의만면하여 모집 방법의 비술까지, 도도히 설명을 해 주고 앉았다.
나는 좀 더 들으려고, 일부러 머뭇머뭇하며 앉았으려니까, 승객이 다 올라탔는지, 별안간에 욕객의 한 떼가 디밀어 들어오기에, 금시초문의 그 무서운 이야기를, 곰곰 생각하며 몸을 훔치기 시작하였다.
스물두셋쯤 된 ㉠ 책상 도련님인 그때의 나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어떠하니 인간성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해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할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나, 그렇지 않으면 코빼기도 보지 못한 조상의 덕택으로, 공부 자(工夫字)나 얻어 하였거나, 소설 권이나 들춰 보았다고 인생이니 자연이니 시니 소설이니 한대야 결국은 배가 불러서,
포만의 비애를 호소함일 따름이요, 실인생 실사회의 이면의 이면, 진상의 진상과는 아무 관계도 연락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하는 것, 이로부터 하려는 일이 결국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 년 열두 달 죽도록 애를 쓰고도, 반년짝은 시래기로 목숨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까…….’ 하는 말을 들을 제,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날만치, 나는 귀가 번쩍하였다. 나도 팔구 세까지는 부모의 고향인 충청도 촌 속에서 자라났고, 그 후에 1년에 한 두어 번씩은, 촌락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소작인의 생활이 참혹하리라고는, 꿈에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시를 짓는 것보다는 밭을 갈라고 한다. 그러나 ㉡ 밭을 가는 그것이 벌써 시가 아니냐.……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에 돌아간다. 흙의 방순한 냄새에 취할 수 있는 자의 행복이여! 흙의 복욱(馥郁)한 생기야말로, 너 인간의 끊임없는 새 생명이니라…….’
이러한 의미로 올봄에 산문시를 쓰던, 자기의 공상과 천려(淺慮)가 도리어 부끄러웠다. 흙의 냄새가 방순치 않다는 것도 아니다. 그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자가 행복스럽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조반 후의 낮잠은 위약(胃弱)’이라는 고등유민 계급의 유행병에나 걸릴까 보아서, 대팻밥모자에 연경(煙鏡)이나 쓰고, 아침저녁으로 호미 자루를 잡는 것이 행복스럽지 않고 시적(詩的)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일 년 열두 달, 우마(牛馬) 이상의 죽을 고역을 다 하고도, 시래기죽에 얼굴이 붓는 것도 시일까? 그들이 삼복의 끓는 햇볕에, 손등을 데면서 호미 자루를 놀릴 때, 그들은 행복을 느끼는가? 그들은 흙의 노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의 노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것은, 다만 땀과 피뿐이다. 그리고 주림뿐이다. 그들이 어머니의 배 속에서 뛰어나오기 전에, 벌써 확정된 유일한 사실은, 그들의 모공이 막히고 혈청이 마르기까지, 흙에, 그 땀과 피를 쏟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 방울의 땀과 백 방울의 피는 한 알의 나락을 기른다. 그러나 그 한 알의 나락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가? ㉢ 그에게 지불되는 보수는 무엇인가.―주림만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그의 받을 품삯이다.
- 염상섭, 「만세전」-
윗글의 특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의 특징은 실제 지명을 언급해 사실성을 더한다는 점이다.
‘시모노세키’, ‘제주도’, ‘홋카이도 탄광’과 같은 지명이 나와 식민지 현실을 사실적으로 느끼게 한다.
- 서술자를 교체한다는 설명: 처음부터 끝까지 ‘나’ 한 사람이 서술한다.
-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설명: ‘나’가 직접 겪고 생각한 것을 말하는 1인칭 시점이다.
- 장면 전환이 빈번하다는 설명: 장면은 연락선의 목욕탕에 머물고, 뒷부분은 ‘나’의 생각이 이어질 뿐이다.
[앞부분의 줄거리]
일본에 유학 중인 나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길에 오른다. 나는 도쿄에서 기차로 시모노세키까지 와서 관부 연락선에 올라 배 안의 목욕탕에 들렀다. 나는 목욕탕 안에서 일본인들이 조선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엿듣게 된다.
“그래 그렇게 모집을 해 가면, 얼마나 생기나요?”
촌뜨기는, 구수하다는 듯이 침을 흘리며 듣는다.
“얼마가 뭐요. 여비가 있지, 일당이 또 있지, 게다가 한 사람 모집하는 데에 일 원 내지 이 원이니까―그건, 회사와 일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령 방적회사의 여공 같은 것은 임금도 싼 데다가, 모집원의 수수료도 제일 헐하고, 광부 같은 것은 지금 시세로도 일 원 오십 전으로 이 원까지라오. 가령 지금 천 명만 맡아 가지고 와서 보구려. 이삼 삭 동안 여비나 일당에서 남는 것은, 그까짓 건 다 제하고라도, 일천삼사백 원, 잘만 되면 근 이천 원은 간데없는 것일 게니…… 하하하, 나도 맨 처음에―그건 제주도에서 모집해 갔지만―그때에 오백 명 모아다 주고, 실살고로 남긴 것이, 팔구백 근 천 원이었고, 둘째 번에는 올가을에 팔백 명이나 홋카이도 탄광에 보내고, 근 이천 원 돈이 들어왔다우.”
노동자 모집원이라는 자는 입의 침이 마르게 천 원, 이천 원을 신이 나서 뇌며 목욕탕 속에서 나왔다.
“에, 에.” 하며, 일평생 들어 보지도 못하던 천 원 이천 원 소리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던 시골자는, 때를 다 밀었는지, 그 장대한 동색(銅色) 거구를 벌떡 일으켜, 다시 욕탕 속에 출렁 집어넣으면서, 만족한 듯이 또다시 말을 붙였다.
“그래 조선 농군들이 가서, 그런 공사일을 잘들 하나요?”
“잘하구 못하는 것은, 내가 상관할 것 무엇 있소마는, 하여간 요보는 말을 잘 듣고 힘드는 일을 잘하는 데다가 임은(賃銀)이 헐하니까, 안성맞춤이지. 그야 처음 데려갈 때에는 품삯도 많고, 일은 드러누워서 떡 먹기라고 푹 삶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갈 노자며, 처자까지 데리고 가게 하고, 게다가 빚까지 갚아 주는 데야 제 아무런 놈이기로 안 따라나설 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나서기만 하면야, 전차(前借)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 일이 고되거나 품이 헐하긴 고사하고 굶어 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벌써 부하가 되었다는 듯이, 득의만면하여 모집 방법의 비술까지, 도도히 설명을 해 주고 앉았다.
나는 좀 더 들으려고, 일부러 머뭇머뭇하며 앉았으려니까, 승객이 다 올라탔는지, 별안간에 욕객의 한 떼가 디밀어 들어오기에, 금시초문의 그 무서운 이야기를, 곰곰 생각하며 몸을 훔치기 시작하였다.
스물두셋쯤 된 ㉠ 책상 도련님인 그때의 나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어떠하니 인간성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해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할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나, 그렇지 않으면 코빼기도 보지 못한 조상의 덕택으로, 공부 자(工夫字)나 얻어 하였거나, 소설 권이나 들춰 보았다고 인생이니 자연이니 시니 소설이니 한대야 결국은 배가 불러서,
포만의 비애를 호소함일 따름이요, 실인생 실사회의 이면의 이면, 진상의 진상과는 아무 관계도 연락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하는 것, 이로부터 하려는 일이 결국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 년 열두 달 죽도록 애를 쓰고도, 반년짝은 시래기로 목숨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까…….’ 하는 말을 들을 제,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날만치, 나는 귀가 번쩍하였다. 나도 팔구 세까지는 부모의 고향인 충청도 촌 속에서 자라났고, 그 후에 1년에 한 두어 번씩은, 촌락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소작인의 생활이 참혹하리라고는, 꿈에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시를 짓는 것보다는 밭을 갈라고 한다. 그러나 ㉡ 밭을 가는 그것이 벌써 시가 아니냐.……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에 돌아간다. 흙의 방순한 냄새에 취할 수 있는 자의 행복이여! 흙의 복욱(馥郁)한 생기야말로, 너 인간의 끊임없는 새 생명이니라…….’
이러한 의미로 올봄에 산문시를 쓰던, 자기의 공상과 천려(淺慮)가 도리어 부끄러웠다. 흙의 냄새가 방순치 않다는 것도 아니다. 그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자가 행복스럽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조반 후의 낮잠은 위약(胃弱)’이라는 고등유민 계급의 유행병에나 걸릴까 보아서, 대팻밥모자에 연경(煙鏡)이나 쓰고, 아침저녁으로 호미 자루를 잡는 것이 행복스럽지 않고 시적(詩的)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일 년 열두 달, 우마(牛馬) 이상의 죽을 고역을 다 하고도, 시래기죽에 얼굴이 붓는 것도 시일까? 그들이 삼복의 끓는 햇볕에, 손등을 데면서 호미 자루를 놀릴 때, 그들은 행복을 느끼는가? 그들은 흙의 노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의 노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것은, 다만 땀과 피뿐이다. 그리고 주림뿐이다. 그들이 어머니의 배 속에서 뛰어나오기 전에, 벌써 확정된 유일한 사실은, 그들의 모공이 막히고 혈청이 마르기까지, 흙에, 그 땀과 피를 쏟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 방울의 땀과 백 방울의 피는 한 알의 나락을 기른다. 그러나 그 한 알의 나락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가? ㉢ 그에게 지불되는 보수는 무엇인가.―주림만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그의 받을 품삯이다.
- 염상섭, 「만세전」-
윗글의 ㉠과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적절한 설명은 ‘나’가 ㉡을 떠올린 이유가 목욕탕에서 엿들은 이야기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나’는 소작인의 참혹한 삶에 관한 말을 듣고 놀란 뒤, 올봄에 쓴 산문시를 떠올리며 ‘자기의 공상과 천려가 도리어 부끄러웠다’고 한다. ㉡은 그 자기반성의 대상이다.
- ㉠에 자부심이 드러난다는 설명: ‘책상 도련님’은 현실을 모르고 ‘탁상의 공론’이나 하던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 ㉡이 노동의 비참한 면모를 드러낸다는 설명: ㉡은 밭갈이를 시로 여겨 미화한 구절로, 비참함을 몰랐던 시절의 생각이다.
- ㉠과 ㉡이 일본인을 비판한다는 설명: 두 표현 모두 ‘나’ 자신의 과거 모습과 생각을 향해 있다.
[앞부분의 줄거리]
일본에 유학 중인 나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길에 오른다. 나는 도쿄에서 기차로 시모노세키까지 와서 관부 연락선에 올라 배 안의 목욕탕에 들렀다. 나는 목욕탕 안에서 일본인들이 조선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엿듣게 된다.
“그래 그렇게 모집을 해 가면, 얼마나 생기나요?”
촌뜨기는, 구수하다는 듯이 침을 흘리며 듣는다.
“얼마가 뭐요. 여비가 있지, 일당이 또 있지, 게다가 한 사람 모집하는 데에 일 원 내지 이 원이니까―그건, 회사와 일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령 방적회사의 여공 같은 것은 임금도 싼 데다가, 모집원의 수수료도 제일 헐하고, 광부 같은 것은 지금 시세로도 일 원 오십 전으로 이 원까지라오. 가령 지금 천 명만 맡아 가지고 와서 보구려. 이삼 삭 동안 여비나 일당에서 남는 것은, 그까짓 건 다 제하고라도, 일천삼사백 원, 잘만 되면 근 이천 원은 간데없는 것일 게니…… 하하하, 나도 맨 처음에―그건 제주도에서 모집해 갔지만―그때에 오백 명 모아다 주고, 실살고로 남긴 것이, 팔구백 근 천 원이었고, 둘째 번에는 올가을에 팔백 명이나 홋카이도 탄광에 보내고, 근 이천 원 돈이 들어왔다우.”
노동자 모집원이라는 자는 입의 침이 마르게 천 원, 이천 원을 신이 나서 뇌며 목욕탕 속에서 나왔다.
“에, 에.” 하며, 일평생 들어 보지도 못하던 천 원 이천 원 소리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던 시골자는, 때를 다 밀었는지, 그 장대한 동색(銅色) 거구를 벌떡 일으켜, 다시 욕탕 속에 출렁 집어넣으면서, 만족한 듯이 또다시 말을 붙였다.
“그래 조선 농군들이 가서, 그런 공사일을 잘들 하나요?”
“잘하구 못하는 것은, 내가 상관할 것 무엇 있소마는, 하여간 요보는 말을 잘 듣고 힘드는 일을 잘하는 데다가 임은(賃銀)이 헐하니까, 안성맞춤이지. 그야 처음 데려갈 때에는 품삯도 많고, 일은 드러누워서 떡 먹기라고 푹 삶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갈 노자며, 처자까지 데리고 가게 하고, 게다가 빚까지 갚아 주는 데야 제 아무런 놈이기로 안 따라나설 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나서기만 하면야, 전차(前借)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 일이 고되거나 품이 헐하긴 고사하고 굶어 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벌써 부하가 되었다는 듯이, 득의만면하여 모집 방법의 비술까지, 도도히 설명을 해 주고 앉았다.
나는 좀 더 들으려고, 일부러 머뭇머뭇하며 앉았으려니까, 승객이 다 올라탔는지, 별안간에 욕객의 한 떼가 디밀어 들어오기에, 금시초문의 그 무서운 이야기를, 곰곰 생각하며 몸을 훔치기 시작하였다.
스물두셋쯤 된 ㉠ 책상 도련님인 그때의 나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어떠하니 인간성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해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할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나, 그렇지 않으면 코빼기도 보지 못한 조상의 덕택으로, 공부 자(工夫字)나 얻어 하였거나, 소설 권이나 들춰 보았다고 인생이니 자연이니 시니 소설이니 한대야 결국은 배가 불러서,
포만의 비애를 호소함일 따름이요, 실인생 실사회의 이면의 이면, 진상의 진상과는 아무 관계도 연락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하는 것, 이로부터 하려는 일이 결국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 년 열두 달 죽도록 애를 쓰고도, 반년짝은 시래기로 목숨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까…….’ 하는 말을 들을 제,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날만치, 나는 귀가 번쩍하였다. 나도 팔구 세까지는 부모의 고향인 충청도 촌 속에서 자라났고, 그 후에 1년에 한 두어 번씩은, 촌락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소작인의 생활이 참혹하리라고는, 꿈에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시를 짓는 것보다는 밭을 갈라고 한다. 그러나 ㉡ 밭을 가는 그것이 벌써 시가 아니냐.……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에 돌아간다. 흙의 방순한 냄새에 취할 수 있는 자의 행복이여! 흙의 복욱(馥郁)한 생기야말로, 너 인간의 끊임없는 새 생명이니라…….’
이러한 의미로 올봄에 산문시를 쓰던, 자기의 공상과 천려(淺慮)가 도리어 부끄러웠다. 흙의 냄새가 방순치 않다는 것도 아니다. 그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자가 행복스럽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조반 후의 낮잠은 위약(胃弱)’이라는 고등유민 계급의 유행병에나 걸릴까 보아서, 대팻밥모자에 연경(煙鏡)이나 쓰고, 아침저녁으로 호미 자루를 잡는 것이 행복스럽지 않고 시적(詩的)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일 년 열두 달, 우마(牛馬) 이상의 죽을 고역을 다 하고도, 시래기죽에 얼굴이 붓는 것도 시일까? 그들이 삼복의 끓는 햇볕에, 손등을 데면서 호미 자루를 놀릴 때, 그들은 행복을 느끼는가? 그들은 흙의 노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의 노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것은, 다만 땀과 피뿐이다. 그리고 주림뿐이다. 그들이 어머니의 배 속에서 뛰어나오기 전에, 벌써 확정된 유일한 사실은, 그들의 모공이 막히고 혈청이 마르기까지, 흙에, 그 땀과 피를 쏟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 방울의 땀과 백 방울의 피는 한 알의 나락을 기른다. 그러나 그 한 알의 나락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가? ㉢ 그에게 지불되는 보수는 무엇인가.―주림만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그의 받을 품삯이다.
- 염상섭, 「만세전」-
윗글의 ㉢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은 힘든 노동을 해도 얻는 것은 배고픔뿐이라는 뜻이다.
㉢의 ‘주림만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그의 받을 품삯이다’는 앞의 ‘땀과 피뿐이다. 그리고 주림뿐이다’를 이어받아, 노동의 대가가 주림뿐인 현실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 정당한 품삯을 받고 있다는 이해: ‘품삯’은 주림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정반대이다.
- 보수와 상관없이 노동은 신성하다는 이해: ‘나’는 이런 시각을 ‘공상’으로 여기며 부끄러워한다.
- 앞으로 착취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이해: ㉢은 현재의 실상을 말할 뿐, 앞날을 예측하지 않는다.
[앞부분의 줄거리]
일본에 유학 중인 나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길에 오른다. 나는 도쿄에서 기차로 시모노세키까지 와서 관부 연락선에 올라 배 안의 목욕탕에 들렀다. 나는 목욕탕 안에서 일본인들이 조선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엿듣게 된다.
“그래 그렇게 모집을 해 가면, 얼마나 생기나요?”
촌뜨기는, 구수하다는 듯이 침을 흘리며 듣는다.
“얼마가 뭐요. 여비가 있지, 일당이 또 있지, 게다가 한 사람 모집하는 데에 일 원 내지 이 원이니까―그건, 회사와 일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령 방적회사의 여공 같은 것은 임금도 싼 데다가, 모집원의 수수료도 제일 헐하고, 광부 같은 것은 지금 시세로도 일 원 오십 전으로 이 원까지라오. 가령 지금 천 명만 맡아 가지고 와서 보구려. 이삼 삭 동안 여비나 일당에서 남는 것은, 그까짓 건 다 제하고라도, 일천삼사백 원, 잘만 되면 근 이천 원은 간데없는 것일 게니…… 하하하, 나도 맨 처음에―그건 제주도에서 모집해 갔지만―그때에 오백 명 모아다 주고, 실살고로 남긴 것이, 팔구백 근 천 원이었고, 둘째 번에는 올가을에 팔백 명이나 홋카이도 탄광에 보내고, 근 이천 원 돈이 들어왔다우.”
노동자 모집원이라는 자는 입의 침이 마르게 천 원, 이천 원을 신이 나서 뇌며 목욕탕 속에서 나왔다.
“에, 에.” 하며, 일평생 들어 보지도 못하던 천 원 이천 원 소리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던 시골자는, 때를 다 밀었는지, 그 장대한 동색(銅色) 거구를 벌떡 일으켜, 다시 욕탕 속에 출렁 집어넣으면서, 만족한 듯이 또다시 말을 붙였다.
“그래 조선 농군들이 가서, 그런 공사일을 잘들 하나요?”
“잘하구 못하는 것은, 내가 상관할 것 무엇 있소마는, 하여간 요보는 말을 잘 듣고 힘드는 일을 잘하는 데다가 임은(賃銀)이 헐하니까, 안성맞춤이지. 그야 처음 데려갈 때에는 품삯도 많고, 일은 드러누워서 떡 먹기라고 푹 삶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갈 노자며, 처자까지 데리고 가게 하고, 게다가 빚까지 갚아 주는 데야 제 아무런 놈이기로 안 따라나설 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나서기만 하면야, 전차(前借)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 일이 고되거나 품이 헐하긴 고사하고 굶어 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벌써 부하가 되었다는 듯이, 득의만면하여 모집 방법의 비술까지, 도도히 설명을 해 주고 앉았다.
나는 좀 더 들으려고, 일부러 머뭇머뭇하며 앉았으려니까, 승객이 다 올라탔는지, 별안간에 욕객의 한 떼가 디밀어 들어오기에, 금시초문의 그 무서운 이야기를, 곰곰 생각하며 몸을 훔치기 시작하였다.
스물두셋쯤 된 ㉠ 책상 도련님인 그때의 나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어떠하니 인간성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해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할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나, 그렇지 않으면 코빼기도 보지 못한 조상의 덕택으로, 공부 자(工夫字)나 얻어 하였거나, 소설 권이나 들춰 보았다고 인생이니 자연이니 시니 소설이니 한대야 결국은 배가 불러서,
포만의 비애를 호소함일 따름이요, 실인생 실사회의 이면의 이면, 진상의 진상과는 아무 관계도 연락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하는 것, 이로부터 하려는 일이 결국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 년 열두 달 죽도록 애를 쓰고도, 반년짝은 시래기로 목숨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까…….’ 하는 말을 들을 제,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날만치, 나는 귀가 번쩍하였다. 나도 팔구 세까지는 부모의 고향인 충청도 촌 속에서 자라났고, 그 후에 1년에 한 두어 번씩은, 촌락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소작인의 생활이 참혹하리라고는, 꿈에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시를 짓는 것보다는 밭을 갈라고 한다. 그러나 ㉡ 밭을 가는 그것이 벌써 시가 아니냐.……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에 돌아간다. 흙의 방순한 냄새에 취할 수 있는 자의 행복이여! 흙의 복욱(馥郁)한 생기야말로, 너 인간의 끊임없는 새 생명이니라…….’
이러한 의미로 올봄에 산문시를 쓰던, 자기의 공상과 천려(淺慮)가 도리어 부끄러웠다. 흙의 냄새가 방순치 않다는 것도 아니다. 그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자가 행복스럽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조반 후의 낮잠은 위약(胃弱)’이라는 고등유민 계급의 유행병에나 걸릴까 보아서, 대팻밥모자에 연경(煙鏡)이나 쓰고, 아침저녁으로 호미 자루를 잡는 것이 행복스럽지 않고 시적(詩的)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일 년 열두 달, 우마(牛馬) 이상의 죽을 고역을 다 하고도, 시래기죽에 얼굴이 붓는 것도 시일까? 그들이 삼복의 끓는 햇볕에, 손등을 데면서 호미 자루를 놀릴 때, 그들은 행복을 느끼는가? 그들은 흙의 노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의 노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것은, 다만 땀과 피뿐이다. 그리고 주림뿐이다. 그들이 어머니의 배 속에서 뛰어나오기 전에, 벌써 확정된 유일한 사실은, 그들의 모공이 막히고 혈청이 마르기까지, 흙에, 그 땀과 피를 쏟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 방울의 땀과 백 방울의 피는 한 알의 나락을 기른다. 그러나 그 한 알의 나락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가? ㉢ 그에게 지불되는 보수는 무엇인가.―주림만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그의 받을 품삯이다.
- 염상섭, 「만세전」-
다음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에 대해 추론한 것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 < 보 기 > 1924년에 연재를 시작한 「만세전」이 「묘지(墓地)」란 제목으로 잡지 <신생활>에 연재되던 때 검열에 걸려 연재 3회분이 전문 삭제되었다. 잡지의 편집자는 “상섭 군의 「묘지」는 더 말할 수 없는 참살을 당하였습니다.”라는 말로 분노를 드러내었다. 이때 삭제되었던 ‘연재 3회분’은 이후 단행본에 담겼다. 윗글은 이 가운데 일부이다. |
적절하지 않은 추론은 작가가 이후 연재본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보기>는 ‘연재 3회분’이 ‘전문 삭제’되었고 뒤에 ‘단행본에 담겼다’고만 전한다. 이후 연재본의 내용을 알려 주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검열을 생각하면 비슷한 내용을 다시 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잡지 구독자들이 검열된 부분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추론: 전문이 삭제되어 단행본 이전에는 볼 수 없었으므로 타당하다.
- 시대적 현실이 전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추론: 검열로 연재분이 삭제된 일이 그 예이므로 타당하다.
- 다른 사실주의 소설도 검열당한 사례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 현실을 담은 이 글이 삭제되었으니 같은 경향의 작품에도 있을 법한 일이다.
| (가)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두 시의 공통점은 특정 시어를 반복해 주제 의식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가)는 ‘모란’을 되풀이해 기다림과 상실의 정서를 강조한다. (나)는 ‘고양이’와 ‘봄’을 구절마다 되풀이해 고양이에게서 느낀 봄의 생기를 부각한다.
- 역설법으로 애상감을 드러낸다는 설명: ‘찬란한 슬픔의 봄’은 (가)에만 있고, (나)에는 역설법도 애상감도 없다.
- 하강 이미지로 시간적 배경을 드러낸다는 설명: ‘뚝뚝 떨어져’의 하강 이미지는 (가)에만 나타난다.
- 설의법을 반복한다는 설명: 두 시 모두 평서형과 감탄형으로 진술하며 설의적 표현을 쓰지 않는다.
| (가)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
㉠과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설명은 ㉠과 ㉡이 모두 그리움의 매개체라는 것이다.
㉠의 모란은 화자가 기다리는 ‘보람’의 대상이고, ㉡의 고양이는 봄의 감각적 정취를 드러내는 대상이다. 특히 (나)에는 무엇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 ㉠이 정서 변화의 주된 요인이라는 설명: 모란이 피기 전에는 기다림, 진 뒤에는 ‘봄을 여읜 설움’으로 정서가 바뀐다.
- ㉡에 정적·동적 이미지가 모두 있다는 설명: ‘고요히 다물은’ 입술의 정적 이미지와 ‘생기가 뛰놀아라’의 동적 이미지가 함께 있다.
- ㉠과 ㉡에 시각적 이미지가 있다는 설명: ‘떨어져 누운 꽃잎’과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눈이 그 예이다.
1986년 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이 로마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전통적 명소인 스페인 광장에 매장을 연 것이다. 해당 기업은 입점에 앞서 로마시와 협의를 거쳤고, 그 결과 매장에서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반영한 지중해식 샐러드도 함께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로마의 역사적 공간에 패스트푸드 매장이 들어선다는 사실 자체에 깊은 거부감을 느꼈다. 이들은 패스트푸드의 확산에 대항하여 전통적 식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의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는 슬로푸드 운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라는 명칭에는 각각 ‘빠르다’와 ‘느리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일부 사전은 이러한 표면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패스트푸드는 주문 즉시 완성되어 나오는 음식으로 햄버거, 피자 등을 이른다”거나, “슬로푸드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만들고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 하지만 이러한 수식어는 오히려 두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두 개념을 단순히 조리 및 제공 속도나 특정 메뉴의 이름에 한정하여 이해하려 들면, 그 이면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피자를 패스트푸드라고 부른다면 그들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본래 피자는 신선한 식재료를 엄선하여 화덕에 굽고, 식탁에 둘러앉아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풍속을 지닌 음식으로 오히려 슬로푸드에 가깝기 때문이다. 햄버거 역시 유기농 밀로 만든 빵에 윤리적으로 사육된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넣어 만든다면 패스트푸드라 할 수 없다. 반대로 오랜 전통을 지닌 음식이라 할지라도 대량 생산을 위해 화학 첨가물을 다량 가미하고 공장식으로 조리해 낸다면 그것은 패스트푸드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슬로푸드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패스트푸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탐사 전문 기자 에릭 슐로서는 그의 저서에서 패스트푸드를 이해하려면 매장에서의 서비스 속도가 아니라,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소비자와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무엇인지”를 통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육류를 빠르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기 위해 발생하는 노동력 착취,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한 산업 재해,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이 야기하는 생태계 파괴 등이 패스트푸드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 이에 대응하여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는 슬로푸드의 원칙을 ‘좋은, 깨끗한, 공정한’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압축했다. 이는 단순히 맛과 품질이 훌륭한 식재료를 넘어서, 생산지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며,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우가 이루어지는 음식을 의미한다. 자연을 훼손하거나 농민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음식은 결코 슬로푸드가 될 수 없다. 결국 슬로푸드란 패스트푸드가 초래한 획일화와 파괴에 맞서 우리 삶의 생물 다양성, 문화 다양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수호하려는 지향점 그 자체이다. 패스트푸드가 효율성과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현대 자본주의의 단면이라면, 슬로푸드는 잊힌 과거의 가치를 회복하여 병든 현재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이다. 현재의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패스트푸드의 힘은 막강하지만,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음식 문화 속에 내재된 ‘느림’의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려는 지속적인 성찰과 노력이 요구된다. |
윗글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이해는 피자나 햄버거가 조리 방식이나 식재료 출처와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패스트푸드라는 것이다.
지문은 피자가 ‘오히려 슬로푸드에 가깝’고, 햄버거도 유기농 밀과 윤리적으로 사육된 고기로 만들면 ‘패스트푸드라 할 수 없다’고 한다. 곧 분류의 기준은 메뉴가 아니라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 에릭 슐로서가 환경 파괴와 노동 착취에 주목했다는 이해: ‘노동력 착취’와 ‘생태계 파괴’를 핵심 요소로 든 내용과 일치한다.
- 스페인 광장의 매장 입점이 슬로푸드 운동을 촉발했다는 이해: ‘이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가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 페트리니의 원칙에 윤리적 대우와 지속가능성이 포함된다는 이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우’라는 설명과 일치한다.
1986년 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이 로마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전통적 명소인 스페인 광장에 매장을 연 것이다. 해당 기업은 입점에 앞서 로마시와 협의를 거쳤고, 그 결과 매장에서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반영한 지중해식 샐러드도 함께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로마의 역사적 공간에 패스트푸드 매장이 들어선다는 사실 자체에 깊은 거부감을 느꼈다. 이들은 패스트푸드의 확산에 대항하여 전통적 식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의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는 슬로푸드 운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라는 명칭에는 각각 ‘빠르다’와 ‘느리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일부 사전은 이러한 표면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패스트푸드는 주문 즉시 완성되어 나오는 음식으로 햄버거, 피자 등을 이른다”거나, “슬로푸드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만들고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 하지만 이러한 수식어는 오히려 두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두 개념을 단순히 조리 및 제공 속도나 특정 메뉴의 이름에 한정하여 이해하려 들면, 그 이면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피자를 패스트푸드라고 부른다면 그들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본래 피자는 신선한 식재료를 엄선하여 화덕에 굽고, 식탁에 둘러앉아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풍속을 지닌 음식으로 오히려 슬로푸드에 가깝기 때문이다. 햄버거 역시 유기농 밀로 만든 빵에 윤리적으로 사육된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넣어 만든다면 패스트푸드라 할 수 없다. 반대로 오랜 전통을 지닌 음식이라 할지라도 대량 생산을 위해 화학 첨가물을 다량 가미하고 공장식으로 조리해 낸다면 그것은 패스트푸드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슬로푸드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패스트푸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탐사 전문 기자 에릭 슐로서는 그의 저서에서 패스트푸드를 이해하려면 매장에서의 서비스 속도가 아니라,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소비자와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무엇인지”를 통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육류를 빠르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기 위해 발생하는 노동력 착취,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한 산업 재해,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이 야기하는 생태계 파괴 등이 패스트푸드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 이에 대응하여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는 슬로푸드의 원칙을 ‘좋은, 깨끗한, 공정한’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압축했다. 이는 단순히 맛과 품질이 훌륭한 식재료를 넘어서, 생산지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며,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우가 이루어지는 음식을 의미한다. 자연을 훼손하거나 농민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음식은 결코 슬로푸드가 될 수 없다. 결국 슬로푸드란 패스트푸드가 초래한 획일화와 파괴에 맞서 우리 삶의 생물 다양성, 문화 다양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수호하려는 지향점 그 자체이다. 패스트푸드가 효율성과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현대 자본주의의 단면이라면, 슬로푸드는 잊힌 과거의 가치를 회복하여 병든 현재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이다. 현재의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패스트푸드의 힘은 막강하지만,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음식 문화 속에 내재된 ‘느림’의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려는 지속적인 성찰과 노력이 요구된다. |
윗글의 ㉠에 대한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의 이유는 메뉴명과 조리 속도에만 집착하면 식재료의 본질적인 가치 기준을 간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 바로 뒤의 ‘조리 및 제공 속도나 특정 메뉴의 이름에 한정하여 이해하려 들면, 그 이면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가 그 이유를 직접 밝힌다. 지문이 말하는 기준은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이다.
- 조리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 차이가 무의미해졌다는 이유: 지문에 조리 기술의 발전은 언급되지 않는다.
- 패스트푸드 매장이 조리 시간이 긴 샐러드를 팔기 시작했다는 이유: 샐러드는 로마시와의 협의 결과로 나올 뿐, 조리 시간은 언급되지 않는다.
- 전통 음식은 대량 가공되어도 슬로푸드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는 이유: 지문은 그런 음식도 ‘패스트푸드로 전락하고 만다’고 하여 정반대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