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가 옳지 않은 것은 ‘못 된’을 쓴 문장이다.
‘성질이나 품행이 좋지 않다’는 뜻의 ‘못되다’는 한 단어인 형용사이므로 ‘심보가 참 못된 친구이다’처럼 붙여 써야 한다.
- ‘꽃 중의 꽃’: ‘중’은 여럿의 가운데를 뜻하는 의존 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쓴 것이 맞다.
- ‘다년간의 경험’: 기간을 나타내는 접미사 ‘-간’은 앞말에 붙여 쓴 것이 맞다.
-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은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쓴 것이 맞다.
- ‘가까워지기는커녕’: ‘는커녕’은 보조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쓴 것이 맞다.
풀이가 옳지 않은 것은 ‘죽’을 오징어 열두 마리라고 한 설명이다.
‘죽’은 옷이나 그릇 따위의 열 벌을 묶어 세는 단위이다. 오징어를 묶어 세는 단위는 스무 마리를 뜻하는 ‘축’이다.
- ‘쾌’: 북어 스무 마리를 한 줄에 꿴 것, 또는 엽전 열 냥을 세는 단위로 옳다.
- ‘우리’: 기와를 세는 단위로, 한 우리는 기와 이천 장이므로 옳다.
- ‘강다리’: 쪼갠 장작을 세는 단위로, 한 강다리는 100개비이므로 옳다.
- ‘뭇’: 생선 열 마리, 미역 열 장을 묶어 세는 단위로 옳다.
박생의 삶의 태도에 가장 가까운 말은 생기사귀(生寄死歸)이다.
이 말은 ‘삶은 잠시 머무는 것이고 죽음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박생은 죽음을 예감하자 ‘날마다 집안일을 정리하는 데 몰두’하고 ‘의사와 무당을 사절’하여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뜻인데, 글에는 가난에 대한 내용이 없다.
- 방약무인(傍若無人):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행동한다는 뜻으로, 박생의 차분한 태도와 맞지 않는다.
- 살신성인(殺身成仁):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룬다는 뜻인데, 박생은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 조이불망(釣而不網): 낚시질은 해도 그물질은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취하지 않는 절제를 말하므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무관하다.
즉,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실마리를 찾아 조합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은 창의성에 가깝고, 특정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타고난 기초 능력이 큰 것은 천재성에 가깝다. 창의성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시각과 독특한 해석 능력을 가리키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가의 영감은 천재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갖춘 독특한 성격을 띠겠지만, 일반인이 추구하는 창의성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개발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글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시각과 독특한 해석 능력을 천재성의 징표라고 한 진술이다.
글은 ‘창의성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시각과 독특한 해석 능력을 가리키는 셈’이라고 했다. 즉 이 능력은 천재성이 아니라 창의성에 해당한다.
- 창의성의 후천적 개발: ‘노력으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개발의 대상’이라는 구절과 부합한다.
- 비범한 아이디어 산출: 창의성을 ‘비범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으로 정의한 구절과 부합한다.
- 예술가의 영감: ‘천재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갖춘’ 성격을 띤다는 구절과 부합한다.
- 모차르트의 천재성: 모차르트를 ‘선천적으로 타고났음’을 뜻하는 천재성의 예로 든 구절과 부합한다.
품사가 다른 것은 ‘너무하건 말건’의 ‘너무하건’으로, 이것만 동사로 쓰였고 나머지는 형용사로 쓰였다.
현재 시제에서 동사는 ‘-는다, -는군, -는’과 결합하므로, 이런 형태를 취하지 않은 활용을 보면 형용사임을 판별할 수 있다. ‘너무하건 말건’은 뒤의 동사 ‘말다’와 호응하여 ‘지나치게 하든 말든’이라는 행위를 나타낸다.
- ‘너무하다 싶었다’: 동사라면 ‘너무한다’가 되어야 하므로, 기본형 그대로 쓰인 이 말은 형용사이다.
- ‘너무하군’: 동사라면 ‘너무하는군’이 되어야 하므로 형용사이다.
- ‘너무하지 않으냐고’: 동사 뒤라면 ‘않느냐고’가 되는데 ‘않으냐고’로 활용했으므로 형용사이다.
- ‘너무하신 처사’: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관형사형 ‘-(으)ㄴ’이 쓰였고, 동사라면 ‘너무하시는’이 되므로 형용사이다.
부르디외는 정치적 의견이 생산되는 양식에 관심을 두면서 대표자들을 통해 개인의 의견이 표현된다는 고전적 민주주의의 의 이론과 달리 유권자들의 정치적 판단이 대표자들과의 관계에 의해 드러나는 왜곡된 의사소통체계로 인해 발생되는 ‘유용효과’를 보인다고 보았다. 즉 정치적 이슈나 정당정치의 후보자들에 대한 개별 유권자들의 선택이 그들의 식견에 따라 결정된다기보다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계획이나 프로그램, 또는 정치인들의 신비적 이미지들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부르디외의 대표자 효과는 정치의식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주체의 소외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표자 효과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하나는 국민들(유권자들)은 대표자 효과로 인해 정치적으로 문외한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국민들은 대표자들이 만들어 낸 전문적 의견을 자신의 의견과 동일시하는 ‘허위의 동일시 효과’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를 ‘정치적 물신숭배’라 했다.
지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피지배자들의 심리적 동의가 무엇보다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력양태에서 중요한 것은 지배자들, 부르디외의 표현에 따르면 대표자들을 신비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대표자들의 신비는 그들의 권력도용을 은폐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며 대표자의 명령에 정당성을 얻게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대표자의 신분의 변형도 은폐하게 되는데, 이것은 상징적 권력으로서 대표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 권력은 인정을 전제로 하는 권력으로서 대표자들을 통해 행사되는 폭력의 양태를 오인하는 과정을 말한다.
글과 부합하는 것은 대표자들을 신비와 연결시키는 일이 심리적 동의와 명령의 정당성에 기여한다는 진술이다.
글은 지배에 ‘피지배자들의 심리적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대표자들을 신비와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이 신비가 ‘대표자의 명령에 정당성을 얻게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 베버의 권력: ‘타인의 의지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힘이므로, 이해관계 일치라는 선의의 결과라는 설명은 틀렸다.
- 정당성 인정 여부: 대표자의 효과는 피지배자들이 ‘인정할 때 비로소 성립’하므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설명은 틀렸다.
-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 ‘대표자들을 통해 개인의 의견이 표현된다’고 보는 쪽이며, ‘유용효과’는 부르디외의 주장이므로 틀렸다.
- 정치적 물신숭배: 전문적 의견을 자기 의견과 동일시하는 ‘허위의 동일시 효과’를 가리키므로, 주체적 참여를 찬양했다는 설명은 틀렸다.
(나) 산업화 초기에 나타났던 많은 문제점, 예컨대 도시 오염의 확산과 경관의 파괴, 주민 건강의 악화 등은 우리로 하여금 무분별한 발전이 과연 정당한지 되묻게 했다.
(다) 환경 운동은 근대의 산업화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시작됐다.
(라) 그리고 이러한 반성을 통해 사람들은 자연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 마구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 이 과정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지금 당장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났다.
가장 적절한 순서는 (다)-(나)-(라)-(마)-(가)이다.
(다)가 환경 운동의 출발을 제시하고, (나)가 ‘되묻게 했다’며 산업화의 문제를 밝힌다. (라)의 ‘이러한 반성’이 (나)의 되물음을 받고, (마)의 ‘이 과정에서’가 그 흐름을 잇는다. 마지막 (가)는 ‘어느새’ 전 지구적 과제가 된 현재의 결과로 글을 맺는다.
- (다)-(라)-(가)-(나)-(마): ‘이러한 반성’의 (라)가 반성 내용인 (나)보다 앞서므로 지시 관계가 맞지 않는다.
- (가)-(나)-(마)-(라)-(다): 오늘날의 결과인 (가)로 시작하고 출발점인 (다)로 끝나 시간 흐름이 뒤집힌다.
- (가)-(나)-(라)-(다)-(마): 역시 결과인 (가)로 시작하고, ‘시작됐다’는 (다)가 뒤로 밀려 흐름이 끊긴다.
- (다)-(나)-(마)-(가)-(라): ‘이러한 반성’의 (라)가 (나)와 멀어지고, 결말인 (가) 뒤에 놓여 글의 마무리가 어색하다.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것은 ‘랍스터’이다.
‘랍스터’는 ‘로브스터’와 함께 표준 표기로 인정된다. 나머지는 모두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난 표기이다.
- ‘달마시안’: 올바른 표기는 ‘달마티안’이다.
- ‘까페’: 파열음 표기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 원칙에 따라 ‘카페’로 적는다.
- ‘메타세콰이어’: 올바른 표기는 ‘메타세쿼이아’이다.
- ‘케잌’: 외래어의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 쓰므로 ‘ㅋ’ 받침은 쓸 수 없고, ‘케이크’로 적는다.
(중략)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緘默(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 -유치환-
‘머언 원뢰’와 같은 표현이 나타난 것은 ‘낙숫물 소리’이다.
‘원뢰(遠雷)’에 이미 ‘멀다’는 뜻이 있는데 ‘머언’을 덧붙였으므로 같은 뜻이 겹치는 의미 중복 표현이다. ‘낙숫물’도 ‘낙수(落水)’의 ‘수(水)’에 고유어 ‘물’이 겹쳐 같은 방식이다.
- ‘남몰래 흘리는 눈물’: 뜻이 겹치는 말이 없다.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대상을 부르며 물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돈호와 설의의 표현이다.
- ‘찬란한 슬픔의 봄’: 어울리지 않는 말을 결합한 역설적 표현이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물음의 형식으로 뜻을 강조하는 설의적 표현이다.
정극인, <상춘곡>
옳지 않은 것은 표현 기교에 풍유법까지 포함한 진술이다.
설의법(‘엇던 벗이 잇ᄉᆞ올고’), 의인법(‘功名도 날 ᄭᅴ우고’), 대구법(‘아ᄎᆞᆷ에 採山ᄒᆞ고, 나조ᄒᆡ 釣水ᄒᆞ새’), 직유법(‘錦繡ᄅᆞᆯ 재폇ᄂᆞᆫ ᄃᆞᆺ’)은 확인된다. 그러나 본뜻을 숨기고 비유만으로 뜻을 암시하는 풍유는 쓰이지 않았다.
- 갈래를 서정·정격·양반 가사라고 한 설명: 사대부가 정해진 율격으로 자연 속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이므로 옳다.
- 운문체·가사체라는 설명: 일정한 율격이 길게 이어지는 형식이므로 옳다.
- 주제를 봄의 완상과 안빈낙도로 본 설명: 봄 경치를 즐기고 ‘簞瓢陋巷’에도 만족하는 내용이므로 옳다.
- ‘면앙정가’와 함께 은일 가사로 묶은 설명: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에 묻혀 지내는 삶을 노래했으므로 옳다.
우리는 그 회사에 원자재를 대고 있습니다.
‘원자재를 대고’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은 ‘학비는 내가 대마’이다.
두 문장의 ‘대다’는 모두 필요한 것을 마련하여 주다라는 뜻이다.
- ‘벽에 등을 대고’: 어떤 것을 다른 것에 닿게 한다는 뜻이다.
- ‘핑계를 대고’: 이유나 구실을 내세운다는 뜻이다.
- ‘바른 대로 대라’: 어떤 사실을 있는 대로 말한다는 뜻이다.
- ‘논에 물을 대러’: 논밭에 물을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 것은 ‘알박이’이다.
알이 들어 배가 부른 생선은 ‘알배기’로 적는다. ‘-박이’는 무엇이 박혀 있는 사람이나 물건을 뜻할 때 쓰며, 알이 차 있다는 뜻과는 맞지 않는다.
- ‘나이배기’: 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표기가 옳다.
- ‘언덕배기’: 언덕의 꼭대기나 비탈진 곳을 뜻하는 말로 표기가 옳다.
- ‘오이소박이’: 오이에 소를 박아 넣은 음식이므로 ‘-박이’가 옳다.
- ‘판박이’: 판에 박은 듯 꼭 닮은 사람이나 사물을 뜻하므로 ‘-박이’가 옳다.
옳지 않은 설명은 ‘무단히’를 ‘무단이’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무단히’는 ‘-하다’가 붙는 ‘무단하다’의 어근에 ‘-히’가 결합한 부사이다. 한글 맞춤법의 부사 끝음절 규정에서 ‘이’로만 나는 것만 ‘-이’로 적으므로 ‘무단히’가 바른 표기이다.
- ‘걸어보니’: 본용언과 보조 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제47항에 따라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되므로 옳은 설명이다.
- ‘한치의’: 관형사 ‘한’과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 ‘치’는 띄어 써야 하므로 옳은 설명이다.
- ‘갈갈이’: ‘갈기갈기’를 뜻하는 말의 바른 표기는 ‘갈가리’이므로 옳은 설명이다.
- ‘같이’: [가치]로 소리 나더라도 제6항에 따라 받침 ‘ㅌ’을 살려 적으므로 옳은 설명이다.
사실상 모든 예술·학문은 인간을 위해 봉사한다. 그것은 인간에게만 또한 봉사하고 있다. ㉠ 인간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는 인문과학은 인간의 어느 한 면만을 연구하고 관찰한다. ㉡ 사회학은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심리학은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종합한다. ㉢ 문학은 어떤 개인이 인간의 한 측면만을 붙잡고 씨름함으로써 인간을 피상적으로, 그리고 단편적으로 파악할지도 모를 단점을 막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게 한다. ㉣ 인간이 단편적으로 파악될 때 억지가 생겨나고 불건강한 사회가 형성된다. ㉤ 문학은 그러한 불균형을, 인간을 총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교정시킨다.
밑줄 친 문장이 들어갈 곳은 ㉢이다.
‘그러나’는 앞뒤의 대조를 이끈다. ㉢ 앞에는 인문과학이 ‘인간의 어느 한 면만을’ 연구한다는 내용이 사회학·심리학의 예와 함께 나오고, 뒤에는 문학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게 한다’는 내용이 이어져 부분과 총체의 대조가 성립한다.
- ㉠: 앞 문장은 예술·학문이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내용이어서 ‘그러나’로 대조할 수 없다.
- ㉡: 인문과학의 일면성과 그 예시인 사회학·심리학 사이가 끊긴다.
- ㉣: 문학의 총체성을 이미 설명한 뒤라 문학을 처음 내세우는 문장이 놓이기에 늦다.
- ㉤: 앞 문장이 인간을 단편적으로 파악할 때의 폐해이고 뒤 문장이 곧바로 ‘그러한 불균형’을 받으므로 끼어들 수 없다.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고신원루를 비 삼아 뿌려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거든 구비구비 펴리라.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은 오락가락 하노라.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성격이 다른 하나는 ‘철령 높은 봉에’로 시작하는 시조이다.
‘고신원루(孤臣冤淚)’, ‘구중심처’에서 보듯 이 작품의 ‘임’은 임금이다. 나머지는 모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 ‘어져 내 일이야’: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에서 떠나보낸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어론님 오신 날 밤’에서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마음이 드러난다.
-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에서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 ‘묏 버들 가려 꺾어’: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와 ‘나인가 여기소서’에서 임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드러난다.
뜻이 옳지 않은 것은 ‘이골이 나다’이다.
‘이골이 나다’는 어떤 방면에 길이 들어 버릇처럼 아주 익숙해지다라는 뜻이다. 지긋지긋하다는 부정적 뜻이 아니다.
- ‘떡 해 먹을 집안’: 불화로 분란이 끊이지 않는 집안을 이르는 말로 옳다.
- ‘벙어리 재판’: 말 못 하는 사람을 재판하듯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로 옳다.
- ‘반죽이 좋다’: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옳다.
- ‘아퀴를 짓다’: 일의 가부를 결정하여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옳다.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장 잘 이해한 것은 3연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바라는 소망을 읽어 낸 감상이다.
3연의 ‘호올로 있게 하소서’와 ‘나의 영혼’은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에 다다른다. 세속의 격정과 아름다움을 지나 홀로 선 영혼의 경지를 소망하는 것이다.
-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감상: ‘겸허한 모국어’는 기도의 언어를 뜻하므로 글자 그대로 읽은 오해이다.
- 이성 간의 사랑에 목마르다는 감상: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한 시간을 가꾸는 것은 삶을 성숙시키는 사랑이므로 이성애로 좁힐 수 없다.
- 시공간적 배경이 변화한다는 감상: 매 연이 ‘가을에는’으로 시작해 배경이 고정되어 있고, 바다와 골짜기도 영혼이 지나는 내면의 여정이다.
- 고독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감상: 화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며 고독을 스스로 원한다.
세 번째 단락은 ㉤에서 시작한다.
글은 시간과 사건에 따라 나뉜다. 비가 멎은 저녁의 일, ‘다음 날’ 신둥이의 일, 그리고 ‘늦은 조반때쯤’ 절가가 나타나는 새로운 사건의 순서이다.
- ㉠: 저녁때 비가 멎은 뒤 신둥이가 밥을 얻어먹는 내용으로, 첫째 단락에 속한다.
- ㉡: 같은 저녁의 일이므로 첫째 단락이 이어진다.
- ㉢: 시간이 ‘다음 날’로 바뀌는 곳으로, 둘째 단락의 시작이다.
- ㉣: ‘이날도’로 다음 날의 일을 이어 가므로 둘째 단락 안에 있다.
오늘날 산업화한 국가의 주된 사망 요인은 합성 화학물질, 방사선이나 납, 살충제 등의 오염 물질, 기름진 음식과 담배, 술, 운동 부족으로 빚어진 심장 질환과 암 등이다. 암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종양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있는 것이다.
글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암의 근원적 원인이 환경보다 유전자에 있다는 진술이다.
글은 ‘직접적인 원인은 종양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즉 근원적 원인은 환경이다.
- 약초 처방 의존: 노동자들이 ‘약초 처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구절과 부합한다.
- 19세기 말 사망률 하락: ‘위생과 식사 등 일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라는 구절과 부합한다.
- 암이 주된 사망 요인의 하나: ‘심장 질환과 암’을 주된 사망 요인으로 든 구절과 부합한다.
- 오염 물질: ‘방사선이나 납, 살충제 등의 오염 물질’을 주된 사망 요인으로 든 구절과 부합한다.
임금결정을 근로계약에 맡겨 놓을 때에는 당사자인 개별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는 ( ㉢ ) 교섭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고, 또한 모든 사업장의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에 의하여 조직되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근로자는 실질적으로 적정임금의 확보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근로자 보호정책이라는 원칙에 의하여 임금에 대한 간섭정책은 국가의 사회복지정책 채택의 논리에서 구해진다.
이에 국가는 최소한의 적정임금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저임금법을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우리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노사의 임금결정에 ( ㉠ )하는 행위이며, 이는 헌법 제32조의 근로권에 근거하여 나타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빈칸에 들어갈 말은 개입 - 수정 - 대등한이다.
㉠은 국가가 임금을 결정해 강제하므로 ‘개입’이고, ㉡은 자유 교섭의 원칙을 국가가 고치는 것이므로 ‘수정’이다. ㉢은 뒤의 ‘이루어질 수 없고’와 이어져 개별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하지 못함을 말하므로 ‘대등한’이 맞다.
- 개입 - 묵인 - 불평등한: 국가의 개입은 자유 교섭 원칙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고, 불평등한 교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은 글의 취지와 반대이다.
- 추종 - 수정 - 대등한: 국가가 임금을 정해 강제하는 것은 추종이 아니다.
- 추종 - 묵인 - 불평등한: 세 빈칸이 모두 글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 개입 - 수정 - 불평등한: 앞의 둘은 맞지만, 글은 대등한 교섭이 어렵다는 시각이므로 마지막 말이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