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이 옳지 않은 것은 ‘삭히려고’이며, 분노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므로 ‘삭이려고’로 써야 한다.
‘삭이다’는 화나 긴장을 풀어 가라앉힌다는 말이고, ‘삭히다’는 김치·젓갈 등을 발효시켜 맛이 들게 한다는 말이다.
- ‘띤’: 빛깔이나 성질을 가진다는 뜻의 ‘띠다’가 활용한 형태로 옳다.
- ‘십상’: 거의 예외가 없다는 뜻의 말로 옳은 표기이며, ‘쉽상’으로 쓰지 않는다.
- ‘섧고’: ‘섧다’는 ‘서럽다’와 함께 표준어로 인정되므로 옳다.
- ‘발라서’: ‘바르다’가 ‘르’ 불규칙 활용을 한 형태로 옳다.
띄어쓰기가 옳지 않은 것은 ‘오는∨지’가 쓰인 문장이며, ‘오는지’로 붙여 써야 한다.
여기의 ‘-는지’는 막연한 의문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이므로 앞말에 붙여 쓴다.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 ‘지’와 구별해야 한다.
- ‘올∨듯도∨하다’: 보조 용언 ‘듯하다’의 중간에 조사 ‘도’가 끼어들면 뒤의 ‘하다’를 띄어 쓴다.
- ‘했을∨리가’: ‘리’는 까닭이나 이치를 뜻하는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 ‘인천∨간’: 두 대상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간’은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 ‘열∨명∨내지∨스무∨명’: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 ‘명’과 부사 ‘내지’는 모두 띄어 쓴다.
옳은 설명은 ㉠과 ㉡ 모두 대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은 ‘따뜻하다 → 따뜯하다(ㅅ→ㄷ, 대치) → 따뜨타다(ㄷ+ㅎ→ㅌ, 축약)’로 변한다.
㉡은 ‘삯일 → 삭일(ㅅ 탈락) → 삭닐(ㄴ 첨가) → 상닐(ㄱ→ㅇ, 비음화라는 대치)’로 변한다.
- 탈락이 ㉠에만 일어난다는 설명: 탈락은 자음군 단순화가 일어나는 ㉡에만 나타난다.
- 첨가가 ㉠에만 일어난다는 설명: ㄴ 첨가는 ㉡에만 나타난다.
- 둘 다 축약이 일어난다는 설명: 축약은 ㉠에만 나타난다.
- 둘 다 음운의 개수가 줄어든다는 설명: ㉠은 축약으로 하나 줄지만, ㉡은 ㅅ이 탈락하고 ㄴ이 첨가되어 개수가 같다.
옳지 않은 것은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 뒤에 온다는 설명이다.
국어는 ‘새 책’, ‘빨리 달린다’처럼 수식어가 피수식어 앞에 놓이는 언어이다.
- 어미 발달: 국어는 교착어로 어미와 조사가 발달해 있으므로 옳다.
- 이중 주어 구문: ‘코끼리는 코가 길다’와 같은 구문이 있으므로 옳다.
- 자유로운 어순: 조사가 문장 성분을 표시해 주어 어순이 비교적 자유로우므로 옳다.
- 공손성 표현: 높임법과 높임 어휘가 발달해 있으므로 옳다.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樣)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옳지 않은 것은 ‘삼경’을 해 질 무렵이라 한 설명이며, 삼경은 한밤중을 가리킨다.
삼경(三更)은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오경 가운데 셋째 시각이다. 시조의 화자도 달 밝은 깊은 밤에 ‘잠 못 들어’ 하므로 해 질 무렵과는 맞지 않는다.
- ‘이화’: 이화(梨花)는 배나무의 꽃, 곧 배꽃이므로 옳다.
- ‘은한’: 은한(銀漢)은 은하수를 뜻하므로 옳다.
- ‘일지’: 일지(一枝)는 한 나뭇가지를 뜻하므로 옳다.
- ‘자규’: 자규(子規)는 두견이를 이르는 한자어로, 이 시조에서는 소쩍새로 풀이하므로 옳다.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저문 강에 삽을 씻고」-
㉠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깊어지는 상황을 나타낸다.
화자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라며 강물을 자신들의 삶에 포개고, 그 강에 ‘슬픔도 퍼다 버린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물녘 깊어 가는 강은 깊어 가는 노동자의 슬픔과 고통을 비춘다.
- 자정 작용에 대한 기대감: ‘샛강 바닥 썩은 물’에서 보듯 강이 스스로 맑아진다는 기대는 드러나지 않는다.
- 적극적인 극복 의지: 화자는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돌아갈 뿐이다’라며 체념적인 태도를 보인다.
- 설의적 표현을 통한 성찰: 설의법은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에 있으며 ㉠은 설의적 표현이 아니다.
- 갈등 해소의 염원: ㉠은 강이 깊어 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며, 화자는 끝내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사회라는 것과 사회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서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고려해볼 때, 역사 서적을 읽을 때 던져야 하는 가장 큰 질문은 ㉠ 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삶을 살아갈 때 가장 인간답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누군가의 삶들을 통해 현재의 삶을 수정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이 나의 삶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묻는 질문이 들어가야 한다.
글은 역사 서적 읽기를 ‘현재의 삶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 통찰해 본다는 것’으로 규정하고, ‘현재의 삶을 수정해 나갈 수 있다’는 유익함으로 맺는다. 따라서 질문의 초점은 현재의 삶과의 연관에 있다.
-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되었는지 묻는 질문: 서술의 관점은 글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
- 역사가의 임무와 기술 방법을 묻는 질문: 글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자세를 다룬다.
- 사건의 발생 원인과 전개를 묻는 질문: ‘죽은 과거의 사실을 살펴본다는 것’에 머무는 질문이다.
- 사실의 진위와 조작 여부를 묻는 질문: 사료 비판의 문제로, 현재의 삶을 통찰한다는 논지와 맞지 않는다.
㉡ 그녀는 내가 모르는 노래를 불렀다.
옳은 설명은 ㉡의 안긴문장에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의 안긴문장 ‘내가 모르는’은 관형절로, 본래 ‘내가 (노래를) 모른다’에서 피수식어와 겹치는 목적어 ‘노래를’이 생략되었다.
- ㉠을 부사절을 안은 문장으로 본 설명: ‘그 사람이 정직함’은 명사형 어미 ‘-(으)ㅁ’이 붙은 명사절이다.
- ㉠의 안긴문장에 서술어가 생략되었다는 설명: ‘정직함’이 서술어로 드러나 있다.
- ㉡을 명사절을 안은 문장으로 본 설명: ‘내가 모르는’은 ‘노래’를 꾸미는 관형절이다.
- 둘 다 서술절을 포함한다는 설명: ㉠은 명사절, ㉡은 관형절을 안고 있을 뿐 서술절은 없다.
“비밀 지킬 수 있어?”
친구는 기지 계획을 들을 수 있다는 희망에 큰 소리로 답했다.
“물론이지!”
이에 루스벨트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래.”
루스벨트는 친구의 불합리한 요구를 교묘하게 거절하면서 친구의 체면을 지켰다.
루스벨트의 말하기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곤란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비밀 지킬 수 있어?’라고 묻고, ‘물론이지!’라는 답에 ‘나도 그래.’라고 응수해 기밀을 말할 수 없음을 알렸다. 글도 이를 ‘불합리한 요구를 교묘하게 거절하면서 친구의 체면을 지켰다’고 정리한다.
- 인정에 호소하는 설득: 정에 기대어 상대를 설득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 상대의 기대에 부응: 친구가 바라던 기지 계획은 끝내 알려 주지 않았다.
- 단호한 거절: ‘직설적으로 거절’하는 것을 피하여 돌려 말했다.
- 직접적인 비판: 친구를 비판하지 않았고, 오히려 체면을 지켜 주었다.
연결이 옳지 않은 것은 牽强附會(견강부회)이다.
견강부회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맞춘다는 뜻이다. 세상과 타협한다는 뜻이라면 곡학아세(曲學阿世)에 가깝다.
- 股肱之臣(고굉지신): 다리와 팔처럼 임금이 믿고 의지하는 중요한 신하를 뜻하므로 옳다.
- 狐假虎威(호가호위):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데서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린다는 뜻이므로 옳다.
- 要領不得(요령부득): 말이나 글의 목적과 요령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므로 옳다.
- 肝膽相照(간담상조): 간과 쓸개를 서로 내보인다는 데서 속마음을 터놓고 친하게 사귄다는 뜻이므로 옳다.
(나)면역은 크게 선천성(비특이적) 면역과 후천성(특이적) 면역으로 나뉩니다. 선천성과 후천성은 말 그대로 면역을 태어날 때부터 완비했느냐, 살아가면서 습득했느냐에 따라 구분됩니다.
(다)다른 하나는 세포성 면역으로, T세포에 의존하며 세포 내부에 침투한 병원체를 제거합니다.
(라) 후천성 면역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체액성(항체 매개) 면역으로, 항원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를 내뿜는 면역 방식입니다. 체액에 엄청난 양의 항체를 뿌리는 세포는 B세포입니다.
(마) T세포는 자기 자신의 세포가 비자기로 돌변한 것, 예컨대 암세포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T세포는 면역을 활성화하기도 억제하기도 합니다.
문맥에 맞는 순서는 (나)-(가)-(라)-(다)-(마)이다.
(나)가 면역을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누며 글을 열고, (가)가 ‘선천성 면역은 다시’로 앞의 것을 설명한다. 이어 (라)가 ‘후천성 면역에도’로 넘어가 ‘하나는’ 체액성 면역을 말하고, (다)가 ‘다른 하나는’ 세포성 면역을 말하며, (마)가 그 T세포를 부연한다.
- (가)-(라)-(다)-(마)-(나): (가)가 맨 앞이면 ‘다시’ 나뉜다는 말의 전제가 없고, 분류를 여는 (나)가 맨 끝에 놓인다.
- (나)-(가)-(다)-(마)-(라): ‘다른 하나는’의 (다)가 ‘하나는’의 (라)보다 앞에 올 수 없다.
- (나)-(라)-(가)-(마)-(다): (라) 뒤에 짝이 되는 (다)가 바로 이어지지 않고, (마)의 T세포가 (다)보다 먼저 나온다.
- (라)-(다)-(나)-(마)-(가): 후천성 면역이라는 하위 내용이 면역의 분류를 여는 (나)보다 앞설 수 없다.
| <보 기> | ||
| 그리하여 가축과 그 고기를 먹는 인간의 건강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의 농지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는 것이다. | ||
㉤
㉣
㉡
㉠
㉢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름답구나!’ 하는 것은 자기의 심리다. 자기의 심리인 ‘아름답구나!’만 써가지고는, 독자는 아무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한다. 독자에게도 그런 심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풍경이 아름다운 까닭을, 즉 하늘, 구름, 산, 내, 나무, 돌 등 풍경의 재료를 풍경대로 조합해서 문장으로 표현해주어야 독자도 비로소 작자와 동일한 경험을 그 문장에서 얻고 한가지로 ‘아름답구나!’ 하는 심리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제재의 현상을 문장으로 재현하는 것이 묘사다.
묘사를 할 때 명심해야 할 사항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첫째,객관적일 것. 언제든지 냉정한 관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연할 것.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순서가 있어야 전체 인상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셋째, 사진을 찍는 것과는 달라야 할 것. 대상의 핵심과 특색은 취하되,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것은 묘사에서 주관적인 심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이해이다.
글에서 ‘객관적일 것’은 ‘냉정한 관찰’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오히려 묘사는 풍경의 재료를 조합해 독자도 ‘아름답구나!’ 하는 심리에 이르게 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 실경과 실황을 보여 준다는 이해: ‘실경(實景), 실황(實況)을 보여주어’라는 설명과 일치한다.
- 질서정연할수록 분명하게 전달된다는 이해: ‘순서가 있어야 전체 인상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일치한다.
- 모든 정보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는 이해: ‘핵심과 특색은 취하되,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한다는 설명과 일치한다.
- 제재의 현상을 재현한다는 이해: ‘제재의 현상을 문장으로 재현하는 것이 묘사’라는 문장과 일치한다.
㉡ 끓이다, 높이다
㉢ 짓밟다, 짓누르다
㉣ 착하다, 아름답다
㉤ 먹이, 덮개
옳은 설명은 ㉠에서 어근과 파생어의 품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어른’과 ‘슬기’는 명사이고, 접미사 ‘-스럽다’, ‘-롭다’가 붙은 ‘어른스럽다’, ‘슬기롭다’는 형용사이다. 곧 접미사가 품사를 바꾸었다.
- ㉡의 품사가 같다는 설명: ‘끓이다’는 동사에서 동사로 같지만, ‘높이다’는 형용사 ‘높다’에서 동사가 되어 다르다.
- ㉢의 접두사가 명사에 붙는다는 설명: ‘짓-’은 동사 ‘밟다’, ‘누르다’에 붙어 있다.
- ㉣이 명사에 접미사가 붙은 것이라는 설명: ‘착’은 홀로 쓰이지 못하는 어근이며, ‘아름’도 여기서 명사로 쓰이지 않는다.
- ㉤의 접미사가 형용사에 붙는다는 설명: ‘먹-’과 ‘덮-’은 동사 어근이다.
인공지능이 대거 활약하게 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돼서 이런 일이 상품과 지식 생산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어쨌건 상품이나 지식의 값은 싸지겠지만, 그것을 돈 주고 사는 소비자는 점점 없어져 버리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분명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분명히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괜찮은 사회,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일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진다든지 아니면 조금 다른 용어로 사회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져서 아주 많은 돈을 버는 소수의 사람들과 일자리가 없는 다수의 사람들로 세상이 양극화될 가능성을 크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야말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공존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주목할 책이 1516년 출간된 영국 작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이다. 이 책이 선구적인 이유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모어는 ‘좋은 곳’이라는 뜻의 ‘eu-topia’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의 ‘ou-topia’를 동시에 나타내는 중의적 개념으로 유토피아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뜻하게 되었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의 반대말로, 상당히 끔찍한 미래의 어떤 사회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접두어 ‘dys’는 ‘나쁜’, ‘고된’이란 뜻이다. 디스토피아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말로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표현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기계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디스토피아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널리 사용되었다.
옳지 않은 것은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안된 표현이라는 이해이다.
글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1516년 모어의 책에서 나왔고, 디스토피아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말로 유토피아의 반대말이다. 앞선 말이 뒤에 생긴 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안될 수는 없다.
- 인공지능 기술의 양면성: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공존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 디스토피아라는 용어의 배경: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인간성 상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졌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세상이 양극화될 가능성을 크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 유토피아의 최초 사용: 모어의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이 늙은 아비가 세상살이를 오래 경험하였고 또 어렵고 험난한 일을 고루 겪어보아서 사람들의 심리를 두루 알고 있다. 무릇 천륜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믿어서도 안 되며, 비록 충직하고 인정 있고 부지런하고 재빠르게 온 정성을 다하여 나를 섬기더라도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끝내 은혜를 배반하고 의리를 잊어먹고 아침에는 따뜻이 대해주다가도 저녁에는 차갑게 변하고 만다.
대체로 이 세상에 깊은 은혜와 두터운 의리는 부모형제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부모형제를 그처럼 가볍게 버리는 사람이 벗들에게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이치다. 너희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두도록 하거라. 무릇 불효자는 가까이 하지 말고 형제끼리 우애가 깊지 못한 사람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옳지 않은 것은 학문에 깊이가 있고 충직한 사람은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한다는 이해이다.
글쓴이는 효도와 우애가 없다면 학식이 고명해도 ‘흙담에다 아름답게 색칠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천륜에 야박한 사람은 충직하게 섬기더라도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 몸을 닦는 일의 중요성: 수신을 효도와 우애로써 근본 삼으라고 강조한 내용과 일치한다.
- 효와 우애를 지키는 사람을 친구로 삼으라는 권고: 불효자와 우애가 깊지 못한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 스스로 단정해야 좋은 벗을 사귄다는 충고: ‘사귀는 벗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일 것’이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 천륜을 어기는 사람에 대한 경계: ‘천륜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옳은 예는 ‘낮은 지대’와 ‘관심도가 낮다’의 짝이다.
‘낮은 지대’의 ‘낮다’는 높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뜻이고, ‘관심도가 낮다’의 ‘낮다’는 정도를 나타내는 추상적 의미이다.
- ‘좁은 소견’과 ‘마음이 좁아서는’: 둘 다 추상적 의미로만 쓰였다.
- ‘넓은 공터’와 ‘마당은 꽤 넓다’: 둘 다 물리적 공간의 의미로만 쓰였다.
- ‘가능성이 크다’와 ‘기쁨도 큰 법’: 둘 다 추상적 의미로만 쓰였다.
- ‘사실에 가깝다’와 ‘가까운 곳’: 앞이 추상적 의미, 뒤가 공간적 의미여서 ㉠과 ㉡이 뒤바뀌어 있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장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 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현진건,「운수 좋은 날」에서 -
옳지 않은 것은 대화를 통해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된다는 이해이다.
아내는 이미 죽어 ‘…….’로만 나타나므로 김 첨지의 말은 대답 없는 일방적 외침이다.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갈등이 해소될 수도 없다.
- 반어적 기법: 아내가 죽은 날을 두고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이라 말하는 데서 드러난다.
- 비속어 사용: ‘이 오라질 년’, ‘이 눈깔’ 같은 거친 말이 인물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 음성 상징어 사용: ‘빽빽’, ‘응아’, ‘어룽어룽’ 등이 쓰여 표현 효과를 높인다.
- 설렁탕의 기능: 사다 놓았으나 아내가 먹지 못한다는 데서 비극적 상황이 강조된다.
표기가 옳지 않은 것은 프로포즈이며, ‘propose’는 ‘프러포즈’로 적는다.
이 단어의 첫 음절 모음은 [ə]이므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어’로 적는다.
- 플랫폼(platform): 받침에 ‘ㅅ’을 쓰는 올바른 표기이다.
- 레이다(radar): 표준 표기로 옳다.
- 장르(genre): 프랑스어에서 온 말의 올바른 표기이다.
- 배지(badge): 어말의 [ʤ]는 ‘지’로 적으므로 ‘뱃지’가 아니라 ‘배지’가 옳다.
철호는 갑자기 아내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운전수는 다시 휙 핸들을 이쪽으로 틀었다. 운전수 옆에 앉아 있는 조수 애가 한 번 철호를 돌아다보았다. 철호는 뒷자리 한구석에 가서 몸을 틀어박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는 한국은행 앞 로터리를 돌고 있었다. 그때 또 뒤에서 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X경찰서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철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미 죽었는데 하고.
이번에는 다행히 차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달렸다.
“X경찰서 앞입니다.”
철호는 눈을 떴다.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곧 털썩 뒤로 기대고 쓰러져버렸다.
“아니야, 가.”
“X경찰섭니다. 손님.”
조수 애가 뒤로 몸을 틀어 돌리고 말했다.
“가자.”
철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하 참, 딱한 아저씨네.”
“…….”
“취했나?”
운전수가 힐끔 조수 애를 쳐다보았다.
“그런가 봐요.”
“어쩌다 오발탄(誤發彈)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 이범선,「오발탄」에서 -
옳은 이해는 철호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철호는 ‘S병원’, ‘X경찰서’로 목적지를 번복하다가 경찰서 앞에서도 ‘글쎄, 가!’라고만 한다. 운전수의 ‘자기 갈 곳도 모르게’라는 말도 이 상태를 드러낸다.
- 삶의 의지 회복: 철호는 상반신을 일으켰다가 ‘털썩 뒤로 기대고 쓰러져버렸다’.
- 운전수의 공감: 운전수는 ‘오발탄(誤發彈) 같은 손님이 걸렸어’라며 귀찮아한다.
- 계급 차이: 지문은 손님과 운전수의 대화일 뿐, 두 사람의 계급 차이를 보여 주는 내용이 없다.
- 이상향으로서의 공간: 병원은 ‘아내의 죽음’을 떠올리고 향하던 곳이며, 경찰서에서도 내리지 못할 뿐 두 곳을 이상향으로 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