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무덤과 널무덤이 만들어진 시대는 초기 철기 시대이며, 이 시기 유적에서 명도전·반량전 같은 중국 화폐가 출토된다.
'옹관묘(독무덤)'와 '목관묘(널무덤)'는 철기 문화가 보급되던 시기의 대표적 무덤 양식이다. 중국 화폐의 출토는 당시 중국과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 반달 돌칼과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다.
- 애니미즘·토테미즘 같은 원시 신앙은 신석기 시대에 출현하였다.
- 유적이 대부분 강가나 바닷가에 자리한 것은 신석기 시대의 특징이다.
- 미송리식 토기는 초기 철기 시대가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토기이다.
삼한은 씨뿌리기를 마친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계절제를 열었다.
이 제사는 벼농사 등 농경이 발달한 삼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므로 국가와 설명이 바르게 연결되어 있다.
- 읍락의 영역 침범을 변상하게 한 책화는 옥저가 아니라 동예의 풍습이다.
- 어린 여자아이를 신랑집에 데려다 키우는 민며느리제는 동예가 아니라 옥저의 풍습이다.
- 부여의 영고는 수렵 사회의 전통을 이은 제천 행사로 12월에 열렸다.
- 고구려의 제천 행사 동맹은 12월이 아니라 10월에 열렸다.
칙령 제41호의 '석도(石島)'는 독도이며, 일본은 러·일 전쟁 중인 1905년에 이곳을 불법적으로 편입하였다.
1900년의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 전도와 함께 석도를 관할 구역으로 명시하였다.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하였다.
- 프랑스가 병인박해를 구실로 침입한 곳은 강화도이다.
-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점령한 곳은 거문도이다.
- 러시아가 저탄소 설치를 위해 조차를 요구한 곳은 절영도(부산 영도)이다.
- 일본이 안봉선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청의 영토로 인정한 곳은 간도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ㄴ) 왕 재위 3년 순장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3월에는 주와 군의 수령에게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서 논밭을 갈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
(ㄱ)은 371년, (ㄴ)은 502년의 일이므로 그 사이에 있었던 사실은 427년 장수왕의 평양 천도이다.
'평양성'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서거한 왕은 고구려 고국원왕이다. '순장을 금지'하고 소를 이용한 경작을 권장한 왕 재위 3년은 신라 지증왕 때이다.
- 고구려의 낙랑군 축출은 313년 미천왕 때로 (ㄱ) 이전이다.
- 백제의 대야성 함락은 642년으로 (ㄴ) 이후이다.
- 신라의 금관가야 병합은 532년 법흥왕 때로 (ㄴ) 이후이다.
- 신라의 율령 반포는 520년 법흥왕 때로 (ㄴ) 이후이다.
네 법령은 회사령 → 조선어업령 → 토지조사령 → 조선광업령 순으로 공포되었다.
회사령은 1910년, 조선어업령은 1911년, 토지조사령은 1912년, 조선광업령은 1915년에 공포되었다. 모두 1910년대 일제의 경제 수탈 정책과 관련된 법령이다.
- 토지조사령을 맨 앞에 둔 배열은 그보다 앞선 회사령과 조선어업령의 시기와 맞지 않는다.
- 조선광업령을 맨 앞에 둔 배열은 가장 늦은 법령을 처음에 놓은 것이다.
- 조선어업령을 맨 앞에 둔 배열은 가장 이른 회사령을 맨 뒤에 놓은 것이다.
- 회사령·조선어업령 다음에 조선광업령을 둔 배열은 1915년의 법령을 1912년의 토지조사령보다 앞에 놓은 것이다.
- 고려사 -
밑줄 친 궁궐 소실은 이자겸의 난 때 일어난 사건이다.
'백수한', '정지상',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라는 단서는 인종 때의 서경 천도 운동을 가리킨다.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 궁궐이 불타자 묘청 세력은 개경의 지덕이 쇠하였다며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 만적의 난은 무신 집권기인 최충헌 때의 일로 서경 천도 운동보다 뒤이다.
- 거란의 침공은 현종 때 개경에 큰 피해를 주었으나 인종 대보다 훨씬 앞선 일이다.
- 몽골의 침략은 무신 집권기 고종 때의 일로 서경 천도 운동보다 뒤이다.
- 홍건적의 난은 공민왕 때의 일로 서경 천도 운동보다 뒤이다.
| (가)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였으며, 수행 방법으로 교관겸수를 제시하였다. | (나) 수선사 결사를 통해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였으며, 수행 방법으로 정혜쌍수를 제시하였다. |
| <보 기> | ||
| ㄱ.(가) - 무애가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ㄴ. (가) - 불교 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교장(敎藏)을 편찬하였다. ㄷ. (나) -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화엄 사상을 정리하였다. ㄹ. (나) - 돈오점수를 바탕으로 한 꾸준한 수행을 강조하였다. | ||
(가)는 의천, (나)는 지눌이므로 옳은 설명은 ㄴ과 ㄹ이다.
'해동 천태종'과 '교관겸수'는 의천, '수선사 결사'와 '정혜쌍수'는 지눌의 단서이다. ㄴ과 ㄹ만 옳으므로 ㄱ이나 ㄷ이 들어간 조합은 모두 제외된다.
- ㄱ(틀림): 무애가를 지어 불교 대중화에 힘쓴 승려는 신라의 원효이다.
- ㄴ(옳음): 의천은 불교 경전의 주석서를 모아 교장을 편찬하였다.
- ㄷ(틀림):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화엄 사상을 정리한 승려는 신라의 의상이다.
- ㄹ(옳음): 지눌은 돈오점수를 바탕으로 꾸준한 수행을 강조하였다.
훈요십조에서 도선의 풍수사상에 맞게 지으라고 한 것은 궁궐이 아니라 사원(절)이므로 궁궐을 지을 때의 원칙이라는 설명은 옳지 않다.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도선이 정한 곳 외에 함부로 절을 세우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나머지 내용은 모두 훈요십조에 담겨 있다.
- 간쟁을 따르고 참언을 멀리하여 신민의 지지를 얻으라는 내용은 훈요십조에 있다.
- 경사를 널리 읽어 옛날을 거울삼으라는 내용은 훈요십조에 있다.
- 요역과 세금을 가볍게 하여 민심을 얻으라는 내용은 훈요십조에 있다.
- 왕위를 장자가 잇되 현명하지 못하면 다른 아들이 잇게 하라는 내용은 훈요십조에 있다.
| 1938. 10. 무한에서 조선의용대 결성 |
| ↓ ……… (ㄱ) |
| 1940. 5. 한국독립당 창당 |
| ↓ ……… (ㄴ) |
| 1941. 11. 대한민국 건국강령 발표 |
| ↓ ……… (ㄷ) |
| 1941. 12.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 선전 포고 |
| ↓ ……… (ㄹ) |
| 1942. 10. 조선민족혁명당, 임시정부에 참여 |
| ↓ ……… (ㅁ) |
| 1943. 8. 한국광복군 인면전구 공작대 파견 |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에 조직되었으므로 한국독립당 창당과 대한민국 건국강령 발표 사이의 구간에 해당한다.
1940년 5월 한국독립당 창당으로 세력을 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같은 해 9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 1938년 10월부터 1940년 5월까지의 구간은 한국광복군 창설 이전이다.
- 1941년 11월부터 1941년 12월까지의 구간은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이다.
- 1941년 12월부터 1942년 10월까지의 구간은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이다.
- 1942년 10월부터 1943년 8월까지의 구간은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이다.
이륜행실도는 성종 때가 아니라 중종 때 편찬된 윤리서이다.
이륜행실도는 장유유서와 붕우유신의 덕목을 널리 알리려고 만든 책이다. 나머지 서적은 모두 성종 연간에 완성되었다.
- 국조오례의는 성종 때 완성된 국가 의례서이다.
- 동국통감은 성종 때 서거정 등이 편찬한 역사서이다.
- 동문선은 성종 때 서거정 등이 우리나라의 시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 악학궤범은 성종 때 성현 등이 편찬한 음악서이다.
이 선언문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때 발표되었고, 당시 경제는 3저 호황으로 고도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 놓고'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4·13 폭거'는 전두환 정부의 4·13 호헌 조치를 가리킨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은 1980년대 중후반의 경제 상황이다.
-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때 추진되었다.
- 오일 쇼크로 인한 성장 둔화는 1970년대의 상황이다.
- 미국의 원조에 힘입은 삼백 산업 발전은 1950년대의 상황이다.
- 외환 위기와 IMF 구제 금융 지원은 1997년의 일이다.
ㄴ. 선조는 세자와 함께 의주로 피난하고, 임해군과 순화군을 함경도와 강원도로 보내 근왕병을 모집하게 하였다.
ㄷ.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한산도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하여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ㄹ. 김시민이 이끄는 군관민이 왜군 2만여 명과 진주성에서 격돌하여 방어에 성공하였다.
사건의 순서는 선조의 피난 → 한산도 대첩 → 진주 대첩 → 평양성 탈환과 벽제관 패배이다.
선조의 의주 피난은 1592년 임진왜란 초기, 한산도 대첩은 같은 해 7월, 진주 대첩은 같은 해 10월의 일이다. 평양성 탈환과 벽제관 전투는 1593년 1월에 있었다.
- 평양성 탈환을 맨 앞에 둔 배열은 1593년의 사건을 가장 먼저 놓은 것이다.
- 선조의 피난 다음에 진주성 전투를 둔 배열은 한산도 대첩을 맨 뒤로 보낸 것이다.
- 한산도 대첩을 맨 앞에 둔 배열은 임진왜란 초기의 선조 피난을 맨 뒤로 보낸 것이다.
- 진주성 전투를 맨 앞에 둔 배열은 1592년 10월의 사건을 선조의 피난보다 먼저 놓은 것이다.
제시된 사화는 무오사화이며, 김일손의 사초가 발단이 되었다.
'조의제문'과 '김종직 부관참시'가 단서이다.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일이 문제가 되어 연산군 때 사림이 화를 입었다.
- 대윤과 소윤의 권력 다툼이 계기가 된 사건은 명종 때의 을사사화이다.
- 도학 정치를 주장한 조광조 등이 제거된 사건은 중종 때의 기묘사화이다.
- 위훈 삭제에 대한 훈구 세력의 반발이 원인이 된 사건도 기묘사화이다.
-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뉜 것은 사화가 아니라 선조 때 붕당 정치 과정의 일이다.
| 8·15 광복 |
| ↓ ……… ㉠ |
|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
| ↓ ……… ㉡ |
| 대한민국 정부 수립 |
| ↓ ……… ㉢ |
| 한국전쟁 발발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 수립은 1948년 9월의 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이므로 ㉡ 시기에 넣은 것은 옳지 않다.
기준 사건은 8·15 광복(1945년 8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1945년 12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한국전쟁 발발(1950년 6월)이다. 북한 정부 수립은 ㉢ 시기에 해당한다.
-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1945년 8월 광복 직후에 결성되었으므로 ㉠ 시기가 맞다.
- 중경 임시정부 요인들은 1945년 11월 이후 귀국하였으므로 ㉠ 시기가 맞다.
- 여운형·김규식 등의 좌우합작운동은 1946년에 전개되었으므로 ㉡ 시기가 맞다.
- 반민족 행위 처벌법은 1948년 9월에 제정되었으므로 ㉢ 시기가 맞다.
- 정약용,『경세유표』-
조, 보리, 콩의 2년 3작은 조선 후기가 아니라 고려 시대에 시작되었으므로 옳지 않다.
정약용의 '경세유표'와 담배·모시·생강 등 작물의 높은 수익성 언급은 조선 후기의 상업적 농업을 보여 준다.
- 이앙법의 보급으로 노동력이 줄어 넓은 면적의 경작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은 옳다.
- 광작으로 수확을 늘려 장시에 내다 팔았다는 설명은 옳다.
- 쌀을 비롯해 인삼, 면화, 고추 등의 상품 작물을 재배하였다는 설명은 옳다.
- 양반 지주가 소작지를 줄이고 노비나 머슴을 고용해 직접 경영하였다는 설명은 옳다.
| <보 기> | ||
| ㄱ. 은본위 화폐제도와 조세의 금납화를 실시하였다. ㄴ. 양전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ㄷ. 군국기무처라는 임시특별기구가 설치되었다. ㄹ. 단발령을 폐지하였다. | ||
갑오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은본위 화폐제도·조세의 금납화와 군국기무처 설치이다.
ㄱ과 ㄷ만 옳으므로 ㄴ이나 ㄹ이 들어간 조합은 모두 제외된다.
- ㄱ(옳음): 제1차 갑오개혁에서 은본위 화폐제도와 조세의 금납화를 실시하였다.
- ㄴ(틀림): 양전사업을 실시하고 지계를 발급한 것은 광무개혁이다.
- ㄷ(옳음): 제1차 갑오개혁을 추진한 임시 특별 기구가 군국기무처이다.
- ㄹ(틀림): 단발령은 을미개혁 때 시행되었고, 갑오개혁에서 폐지한 일은 없다.
밑줄 친 인물은 박지원이며, 그가 지은 서적은 열하일기이다.
'한전론'을 인정하면서 '영농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농기구 개량'을 강조한 내용이 단서이다. 박지원은 토지 소유 제한과 함께 농업 기술과 경영 개선을 중시하였다.
- 반계수록은 균전론을 제시한 유형원의 저술이다.
- 성호사설은 이익의 저술이다.
- 목민심서는 정약용의 저술이다.
-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