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주먹도끼 (ㄴ) 가락바퀴

옳은 설명은 주먹도끼가 찍개와 더불어 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석기라는 내용이다.
주먹도끼와 찍개는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로, 구석기인이 사냥과 채집에 썼다. 반면 가락바퀴는 신석기 시대부터 쓰인, 실을 뽑는 도구이다.
- 반달돌칼과 묶어 농경의 발전을 보여 준다는 설명: 반달돌칼은 곡식 이삭을 따는 청동기 시대의 농기구이고, 주먹도끼는 농경 이전 구석기 시대의 도구이다.
- 토기를 만들 때 이용했다는 설명: 가락바퀴는 토기 제작이 아니라 실을 뽑는 데 쓴 방적 도구이다.
- 다산과 풍요를 비는 주술적 용도라는 설명: 가락바퀴는 원시적 수공업인 옷감 짜기와 관련된 실용 도구이다.
- 주로 무덤에서 출토된다는 설명: 주먹도끼는 구석기인의 생활 유적에서, 가락바퀴는 움집 터 같은 주거 유적에서 주로 나온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대표적 경제정책은 일본의 쌀 부족을 메우려고 추진한 산미증식계획이다.
1920년부터 토지 개량과 농사 개량으로 쌀 증산을 꾀했으나, 증산량보다 많은 쌀이 일본으로 반출되어 조선 농민의 부담이 커졌다.
- 회사령: 1910년에 제정되어 민족 자본의 성장을 억눌렀고, 1920년에 오히려 철폐되었다.
- 국민징용령·임금통제령: 1939년에 시행된 전시 노동력 통제 법령으로, 1930년대 말 민족 말살·병참 기지화 시기의 정책이다.
- 생활필수품통제령: 1941년에 시행된 전시 물자 통제 정책이다.
- 토지조사사업: 1910년대에 실시된 무단 통치기의 재정 기반 확보 사업이다.
ㄱ. 9주 5소경 체제로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ㄴ. 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황룡사 9층탑을 창건하였다.
ㄷ. 유학 교육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국학을 설립하였다.
ㄹ. 화랑도를 제도화하여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삼국통일 후의 사실은 9주 5소경 정비와 국학 설립이므로 옳은 조합은 ㄱ, ㄷ이다.
ㄱ(O): 통일 후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려고 신문왕 때 9주 5소경 체제를 갖추었다. ㄷ(O): 신문왕은 유학 교육을 진흥하려고 국학을 세웠다.
- ㄴ(X): 황룡사 9층탑은 삼국통일 이전인 선덕여왕 때 세워졌다.
- ㄹ(X):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한 왕은 삼국통일 이전의 진흥왕이다.
밑줄 친 ‘스님’은 고려 광종 때의 승려 균여이며, 성상융회를 표방하였다.
‘남악과 북악’으로 갈라진 화엄종의 대립을 하나로 모으려 한 점과 ‘왕륜사’ 승과에서 그 학풍을 정통으로 삼은 점이 단서이다. 균여는 성(性)과 상(相)을 함께 아우르는 성상융회로 교단 통합을 꾀하였다.
- 천태종 창시: 고려 숙종 때 의천의 업적이다.
- 정혜결사 조직: 고려 후기 지눌의 활동이다.
- 화엄일승법계도 저술: 신라 의상의 업적이다.
- 무애가를 통한 불교 대중화: 신라 원효의 활동이다.
옳지 않은 것은 장시가 조선후기에 처음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장시는 조선 전기인 15세기 후반에 전라도 지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조선후기에는 전국으로 퍼지며 크게 늘어났고, 일부는 상설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 세금·지대의 동전 대납: 18세기 후반 동전 유통이 확대되면서 가능해진 옳은 설명이다.
- 공인과 사상의 활동: 대동법 시행 뒤 공인이 성장하고 사상도 늘어나 상품 유통이 활발해졌다.
- 선상·객주·여각: 포구를 거점으로 운송·중개·보관 등을 맡은 상인들이다.
- 신해통공: 정조 때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없앤 조치이다.
‘서원’을 철폐한 ‘그’는 흥선대원군이며, 그의 업적이 아닌 것은 양전 지계 사업이다.
양전과 지계 발급은 대한제국이 광무개혁 때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두어 추진한 사업이다.
- 비변사 기능 이관: 비변사를 혁파하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린 흥선대원군의 정책이다.
- 호포제: 양반에게도 군포를 거두어 군역의 폐단을 줄인 흥선대원군의 정책이다.
- 경복궁 중건: 임진왜란으로 불탄 궁궐을 다시 지어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한 사업이다.
- 사창제: 환곡의 폐단을 줄이려고 지역민이 운영하게 한 제도이다.
(나) 농가가 아닌 자의 농지, 자경하지 않는 자의 농지, 3정보를 초과하는 부분의 농지, 과수원 등 3정보 이상 자영하는 자의 소유인 다년성 식물 재배 이외의 농지는 정부가 매수한다.
ㄱ. (가) - 미 군정기에 발표되었다.
ㄴ. (가) - 법의 집행을 위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ㄷ. (나) - 6.25 전쟁 이후에 공포되었다.
ㄹ. (나) - 제헌 헌법에 의거하여 특별법의 형태로 제정되었다.
(가)는 반민족 행위 처벌법, (나)는 농지개혁법이며, 옳은 조합은 ㄴ, ㄹ이다.
ㄴ(O):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집행하려고 국회에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ㄹ(O): 농지개혁법은 제헌 헌법의 농지 분배 조항에 따라 제정된 법률이다.
- ㄱ(X): 반민족 행위 처벌법은 정부 수립 뒤인 1948년 9월에 제헌 국회가 제정하였으므로 미 군정기의 법령이 아니다.
- ㄷ(X): 농지개혁법은 1949년에 제정·공포되어 6.25 전쟁 이전에 나온 법이다.
ㄱ. 현종 때에 12목을 설치하였다.
ㄴ. 주현보다 속현의 수가 많았다.
ㄷ. 북방의 국경 지대에 동계·북계를 설치하고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ㄹ. 향, 소, 부곡은 모두 농업에 종사하는 천민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옳은 설명은 속현이 주현보다 많았다는 점과 양계에 병마사를 파견했다는 점으로, 조합은 ㄴ, ㄷ이다.
ㄴ(O): 고려는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주현보다 많아, 주현의 수령이 속현을 함께 맡아 간접적으로 다스렸다. ㄷ(O): 북방 국경 지대에 동계·북계를 두고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 ㄱ(X): 12목은 현종이 아니라 성종 때 설치되었다.
- ㄹ(X): 소의 주민은 수공업·광업에 종사하였고, 향·부곡민도 일반 군현민보다 차별받았을 뿐 신분상 천민으로 보지 않는 것이 통설이다.
(나) 9월에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진흥왕)이 이사부에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이 부장이 되었다. 사다함은 5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앞서 달려가 전단문에 들어가 흰 깃발을 세우니, 성 안의 사람들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거기에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 삼국사기 -
ㄱ. 고구려군이 신라를 침략한 왜군을 격퇴하였다.
ㄴ.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ㄷ. 신라가 건원이라는 연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ㄹ. 고구려가 동쪽으로 진출하여 동옥저를 정복하였다.
(가)는 371년 평양성 전투, (나)는 562년 대가야 정복이며, 그 사이의 사건은 ㄱ, ㄷ이다.
ㄱ(O):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침입한 왜군을 물리친 것은 400년으로 두 사건 사이이다. ㄷ(O): 신라 법흥왕이 ‘건원’ 연호를 쓴 것은 536년으로 역시 두 사건 사이이다.
- ㄴ(X): 백제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한 것은 642년으로, (나)보다 뒤의 일이다.
- ㄹ(X): 고구려 태조왕의 동옥저 정복은 1세기의 일로, (가)보다 앞선다.
∘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하여는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합니다.
∘ 우리 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과 대결이 과감히 제거되어 국민적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과거에 어떠하였든 간에 김대중씨도 사면·복권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ㄱ. 금융실명제 실시
ㄴ.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
ㄷ. 중·고생의 교복 자율화
ㄹ. 베트남 파병
제시문은 1987년의 6·29 선언이며, 당시 정부는 전두환 정부이므로 해당 사건은 ㄴ, ㄷ이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씨’ 사면·복권 요구가 단서이다. ㄴ(O):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은 1983년에 일어났다. ㄷ(O): 중·고생의 교복 자율화도 전두환 정부 때 시행되었다.
- ㄱ(X):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에 실시되었다.
- ㄹ(X): 베트남 파병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0년대의 일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ㄱ.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회의에서 사형에 처하였으며, 서옥제의 풍습이 있었다.
ㄴ.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였으나 풍속이 달랐으며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ㄷ. 왕 아래에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다.
ㄹ. 특산물로는 단궁이라는 활과 과하마, 반어피 등이 유명하였다.
ㅁ.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하였다.
‘무천’과 호랑이 제사, 동성 간 금혼 풍습을 지닌 나라는 동예이며, 이에 해당하는 설명은 ㄹ, ㅁ이다.
ㄹ(O): 단궁, 과하마, 반어피는 동예의 특산물이다. ㅁ(O):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는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다.
- ㄱ(X): 제가회의와 서옥제는 고구려의 제도·풍습이다.
- ㄴ(X): 민며느리제는 옥저의 풍습이다.
- ㄷ(X): 마가, 우가, 저가, 구가의 관직 체계는 부여의 특징이다.
제시문은 한원진의 주장으로, 이 인물성이론을 편 호론은 한말 위정척사 사상으로 계승되었다.
‘남당집’과 사람과 동물의 본성이 같지 않다는 내용이 단서이다. 호락논쟁에서 호론은 주로 충청 지역 노론이 이끌었고, 화이 구분을 엄격히 지키는 입장으로 이어졌다.
- 성리학 이해에 탄력적인 태도: 호론이 아니라 인물성동론을 편 낙론 쪽의 특징이다.
- 강화학파 형성: 정제두가 양명학을 연구하며 이룬 학맥이다.
- 청의 문물 도입 주장: 낙론의 흐름과 이어지는 북학파의 입장이다.
- 한양 인근 노론의 주류 형성: 서울·경기 일대 노론을 기반으로 한 낙론의 특징이다.
ㄱ.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은 이, 호, 예, 병, 형, 공의 6전으로 구성된 조선의 기본 법전이다.
ㄴ. 영조 때 『대전회통』을 편찬하여 제도와 권력 구조의 개편 내용을 정리하였다.
ㄷ. 정조 때 통치규범을 전반적으로 재정리하기 위해 『대전통편』을 편찬하였다.
ㄹ. 대원군은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체제 확립을 위해 『속대전』을 편찬하였다.
옳은 설명은 『경국대전』과 『대전통편』에 관한 내용으로, 조합은 ㄱ, ㄷ이다.
ㄱ(O):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은 6전 체제의 기본 법전이다. ㄷ(O): 정조 때 『대전통편』을 편찬해 법전 체계를 다시 정리하였다.
- ㄴ(X): 『대전회통』은 영조가 아니라 고종 때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편찬되었다.
- ㄹ(X): 『속대전』은 대원군이 아니라 영조 때 편찬되었다.
‘이 왕’은 고려 성종이며, 재위 중 실시한 정책은 10도제이다.
‘981년’ 즉위, ‘대종 욱’의 아들,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이 단서이다. 성종은 지방 제도를 정비하며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다.
- 노비안검법 시행: 광종의 정책이다.
- 국학 7재 설치: 예종의 정책이다.
- 개정전시과 제정: 목종의 정책이다.
- 연등회·팔관회 부활: 성종 때 축소·폐지된 행사를 현종이 되살린 것이다.
제53조 대통령은 양원 합동회의에서 선거하고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투표를 얻어 당선된다.
제71조 국무원은 민의원에서 국무원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가결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민의원 해산을 결의하지 않는 한 총사직하여야 한다.
제시된 헌법에 의거해 수립된 정부는 장면 내각이며, 이 정부는 경제 제일주의를 내세워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마련하였다.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 ‘국무원 불신임’ 조항은 4·19 혁명 뒤 1960년의 제3차 개헌으로 도입된 의원내각제의 특징이다.
- 반공법의 국가보안법 흡수: 전두환 정부 때의 조치이다.
- 조봉암 사형: 이승만 정부 때의 진보당 사건이다.
- 새마을운동: 박정희 정부 때 전개되었다.
- 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 요청: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의 일이다.
발해의 중정대는 관리를 감찰하는 기구로, 신라의 사정부와 비슷한 기능을 하였다.
발해는 당의 3성 6부를 받아들이면서도 정당성·선조성·중대성 등 독자적 명칭과 운영을 보였다.
- 대대로: 고구려의 수상 격 관직이다.
- 집사부: 신라의 기밀 사무 기구이다.
- 중추원: 고려가 송의 제도를 참고해 둔 기구로, 발해 관제가 아니다.
- 중대성: 당의 중서성에 해당하며, 당의 문하성에 해당하는 기구는 선조성이다.
∘ 내가 일전에 학교에 갈 때 종로를 지나다가 보니 태극기는 일월(日月) 같이 높이 달고 흰 구름 같은 천막이 울타리 담장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무 울타리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들에게 물으니, “정부 대신을 초청하여 묻고 토론할 일이 있어 집회가 열렸소.”라고 했습니다. - 대한계년사 -
사료와 관련된 단체는 독립협회이며,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다.
외세 의존을 경계한 ‘○○신문’의 논설과, 종로에서 ‘정부 대신을 초청’해 토론한 집회가 단서이다. 이는 독립신문의 자주 논조와 관민공동회의 모습에 해당한다.
- 고종 황제 퇴위 반대 운동: 대한자강회의 활동이다.
-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 신민회의 활동이다.
- 위정척사 유생들의 결성: 독립협회는 서재필 등 개화 지식층이 주도한 단체이다.
- 탐관오리의 죄상 조사와 엄징: 동학 농민군의 폐정 개혁 요구에 해당한다.
∘ 직전법 실시
∘ 불교 장려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왕은 세조이며, 재위 중의 사실은 집현전 혁파이다.
세조는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주는 ‘직전법’을 실시하고 불교를 장려하였다. 또한 단종 복위 사건을 계기로 집현전을 없앴다.
- 이륜행실도 간행: 중종 때의 일이다.
- 계해약조 체결: 세종 때의 일이다.
- 창덕궁 건립: 태종 때의 일이다.
- 사병 혁파: 태종 이방원이 주도한 조치이다.
ㄱ. 양지아문을 설치하고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인정하였다.
ㄴ. 중국 연호를 폐지하고 개국기년을 사용하였다.
ㄷ. 은 본위 화폐제도와 조세의 금납화를 시행하였다.
ㄹ. 재판소를 설치하여 사법권을 행정권에서 분리하였다.
ㅁ. 군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 337군으로 개편하였다.
제1차 갑오개혁의 내용은 개국기년 사용과 은 본위제·조세 금납화로, 조합은 ㄴ, ㄷ이다.
ㄴ(O): 청의 연호를 버리고 개국기년을 써서 자주성을 드러냈다. ㄷ(O): 재정을 탁지아문으로 일원화하면서 은 본위 화폐제도와 조세의 금납화를 시행하였다.
- ㄱ(X): 양지아문 설치와 토지 소유권 인정은 대한제국 광무개혁의 내용이다.
- ㄹ(X): 재판소 설치는 제2차 갑오개혁의 내용이다.
- ㅁ(X): 23부 337군 개편도 제2차 갑오개혁의 내용이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제시문은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이며, 그 직후의 사실은 경의선과 동해선 복원공사 착수이다.
‘연합제 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성 인정, ‘8.15’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단서이다. 선언 뒤 끊어진 철도를 잇는 사업이 이어졌다.
- 남북조절위원회 설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뒤의 일이다.
-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1991년의 일이다.
- 금강호를 이용한 금강산 관광: 선언 이전인 1998년에 시작되었다.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1년 말에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