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구까지 청동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틀렸으므로, 청동제 농기구 보급이 옳지 않은 내용이다.
청동은 귀한 금속이어서 주로 무기·의기·장신구를 만드는 데 쓰였고, 농기구는 여전히 돌과 나무로 만들었다.
- 의례용 도구: 청동 거울·방울처럼 제사와 의례에 쓰는 도구를 만들었다.
- 비파형 동검과 민무늬 토기: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 반달돌칼: 벼 이삭을 따는 데 쓴 대표적인 석제 수확 도구이다.
- 철제 무기·공구와 청동기의 병용: 철기가 들어온 뒤에도 세형동검 등 청동기 제작이 이어져 철기와 함께 쓰였다.
ㄴ.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군사·행정상의 요지에 5경을 설치하여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였다.
ㄷ. 선조성의 장관을 좌상, 중대성의 장관을 우상이라 불렀다.
ㄹ. 정효공주묘는 고구려 고분구조를 닮았지만 모줄임 천장은 말갈문화의 영향이다.
옳은 지문은 ㄱ과 ㄷ이다.
발해는 선왕 때 전성기를 맞아 해동성국으로 불렸고, 3성의 장관 호칭도 지문과 같다. 지방 제도는 5경 15부 62주로 통일 신라의 체제와 구별된다.
- ㄱ(옳음): 9세기 전반 선왕 때 영토가 가장 넓어졌고 해동성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 ㄴ(틀림): 9주와 5소경은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이다.
- ㄷ(옳음): 선조성의 장관은 좌상, 중대성의 장관은 우상이라 불렀다.
- ㄹ(틀림): 모줄임 천장은 고구려 고분의 전통으로, 말갈 문화의 영향이 아니다.
사료의 탑은 황룡사 9층 목탑이고 건립한 왕은 선덕여왕이므로, 재위 중의 사건은 대야성 상실이다.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막고’라는 건립 목적과 ‘금동장육존상, 천사옥대’로 꼽히는 신라 삼보가 단서이다. 대야성은 선덕여왕 때 백제의 공격으로 함락되었다.
- 불국사 건립: 통일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다.
- 견훤의 경주 습격과 경애왕 살해: 신라 말 후삼국 시기의 사건이다.
- 거란과의 세 차례 전쟁: 고려 전기의 일이다.
- 강화도 천도: 고려 고종 때 몽골 침략에 맞서 단행하였다.
(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장헌) 세자의 무덤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팔달산 아래 축성한 것이다.
(가)는 남한산성, (나)는 수원 화성이며, 벽돌로만 성벽을 쌓았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유사시 임시수도’와 병자호란 피난처라는 점이 남한산성을, ‘화산’과 ‘팔달산’이 화성을 가리킨다. 화성은 돌과 벽돌을 함께 사용해 쌓았다.
- 수어청 설치: 5군영 가운데 수어청이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수도 남쪽을 방어하였다.
- 인조의 피난: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였다.
- 거중기·녹로 사용: 화성 축성에 쓰인 대표적인 기구이다.
- 세계문화유산 등재: 수원 화성과 남한산성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ㄴ. 공법을 실시하였다.
ㄷ. 경회루를 건설하였다.
ㄹ.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사료는 세종 때의 사민 정책이므로, 옳은 지문은 ㄴ과 ㄹ이다.
‘경원부’와 ‘영북진’은 세종 때 동북 지역을 개척하며 6진을 설치한 과정과 이어지고, 남쪽 주민을 옮기고 토관직을 준 것도 이때의 정책이다.
- ㄱ(틀림): 사병 혁파는 왕권 강화를 추진한 이방원(태종)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 ㄴ(옳음): 세종은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의 공법을 시행하였다.
- ㄷ(틀림): 경회루는 태종 때 지었다.
- ㄹ(옳음): 삼강행실도는 세종 때 편찬한 윤리서이다.
궁예가 활동한 10세기 초에 해당하는 국제 정세는 당의 멸망과 5대 10국의 시작이다.
궁예는 ‘마진’과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던 후삼국 시기의 인물이며, 당은 907년에 멸망하였다.
- 안록산의 반란: 8세기 중반의 사건으로 궁예 시기보다 훨씬 이르다.
- 전연의 맹약: 11세기 초에 송과 거란이 맺었다.
- 헤이안 천도: 8세기 말의 일이다.
- 가마쿠라 막부 수립: 12세기 말의 일이다.
조선의용대는 1942년 광복군에 합류해 제1지대로 편성되었으므로, 제3지대라는 설명이 옳지 않다.
충칭 임시정부는 김구를 중심으로 한국독립당과 광복군을 갖추고 건국 준비를 진행하였다.
- 삼위일체 체제: 임시정부, 여당인 한국독립당, 군대인 광복군이 하나로 움직였다.
- 대한민국건국강령: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충칭에서 발표하였다.
- 9개 준승: 중국군사위원회가 광복군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한 조치이다.
- OSS 합작: 미국 전략정보국과 협력해 국내 진입 작전을 준비하였다.
(가)는 러일전쟁, (나)는 한일의정서이므로, 뤼순항 기습과 전략상 필요한 곳의 제공을 든 설명이 옳다.
‘국외중립 선언’과 개전 직후 서울 주둔이 단서이다. 일본은 뤼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해 전쟁을 시작했고, 한일의정서로 군사상 필요한 곳을 쓸 수 있게 되었다.
- 랴오둥 반도·타이완 할양과 통감부 설치: 앞은 청일전쟁의 결과, 뒤는 을사늑약의 내용이다.
- 청의 종주권 박탈과 공사 철수: 앞은 청일전쟁의 목적이고, 공사 철수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뒤의 일이다.
- 포츠머스 강화조약과 군대 해산: 강화조약은 맞지만, 군대 해산은 한일의정서가 아니라 정미 7조약 때의 일이다.
- 시모노세키 조약: 러일전쟁이 아니라 청일전쟁을 끝낸 조약이다.
다음 자료와 관계된 개헌안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자료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이므로, 국무총리제 폐지와 개별 국무위원 불신임을 담았다는 설명이 옳다.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명을 ‘반올림’해 부결을 뒤집은 것이 단서이다. 이 개헌의 핵심은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 철폐였다.
-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 1952년 발췌 개헌의 내용이다.
- 대통령 간선제와 비례대표제: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의 내용이다.
-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 1948년 제헌 헌법과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의 특징으로, 사사오입 개헌의 내용이 아니다.
- 대통령 삼선 연임과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1969년 3선 개헌의 내용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김대중 정부 때 제정되었으므로 김영삼 정부의 일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와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등 부정부패 척결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추진하였다.
- 「공직자 윤리법」 개정: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를 제도화하였다.
- 금융실명제: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실시하였다.
-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주민이 직접 선출하게 되었다.
- 두 전직 대통령 수감: 역사 바로 세우기 과정에서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었다.
(가)는 최충헌이며, 정방을 설치한 인물은 그의 아들 최우이므로 정방 설치가 옳지 않다.
‘이의민 세력을 숙청’과 ‘봉사 10조’가 최충헌을 가리키는 단서이다.
- 도방: 경대승이 처음 두었고, 최충헌이 다시 설치해 신변 경호와 사병 기반으로 삼았다.
- 교정도감: 최충헌이 설치한 최고 권력 기구로, 그 장관인 교정별감이 국정을 장악하였다.
- 농민항쟁 진압: 최충헌은 집권기에 잇따른 농민과 천민의 봉기를 강경하게 진압하였다.
- 왕의 폐립: 최충헌은 명종과 희종을 폐위하는 등 왕의 교체를 좌우하였다.
사료의 나라는 부여이므로, 도둑질하면 12배를 배상하는 1책 12법이 옳은 설명이다.
‘마가·우가·저가·구가’라는 가축 이름의 관명과 ‘사출도’가 부여를 확정하는 단서이다.
- 서옥제: 고구려의 혼인 풍습이다.
- 민며느리제: 옥저의 혼인 풍습이다.
- 신지, 읍차: 삼한의 지배자 칭호이다.
- 책화: 동예의 풍속이다.
ㄴ. 장학재단인 학보를 설치하였다.
ㄷ.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였다.
ㄹ.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을 건립하였다.
사료는 고려 태조 때의 만부교 사건이므로, 옳은 지문은 ㄱ과 ㄴ이다.
‘만부교’와 거란을 ‘무도한 나라’로 여겨 국교를 끊은 내용은 태조의 북진·발해 유민 포용 정책과 이어진다.
- ㄱ(옳음): 사심관 제도는 태조가 지방 호족을 통제하려고 실시하였다.
- ㄴ(옳음): 태조는 서경에 학교를 세우고 학보를 두었다.
- ㄷ(틀림): 『국사』는 신라 진흥왕 때 거칠부가 편찬하였다.
- ㄹ(틀림): 염거화상탑은 통일 신라 말의 승탑이다.
『대전통편』은 고종이 아니라 정조 때 편찬되었으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주도해 편찬한 법전은 『대전회통』이다.
- 『경국대전』: 세조 때 시작해 성종 때 완성·반포하였다.
- 의금부: 왕명을 받아 반역죄 등 중죄인을 다스렸다.
- 관찰사와 수령: 지방 행정관이 관할 구역의 사법권도 함께 행사하였다.
- 상언·격쟁: 백성이 글이나 징을 쳐서 왕에게 억울함을 알리는 제도였다.
자료는 군포 부담의 폐단을 줄이려 한 균역법과 관련되며, 그 배경은 감영과 병영의 독자적 군포 징수로 부담이 늘어난 상황이다.
‘양역’, ‘군포’, ‘황구첨정’이 단서이다. 군영과 지방 군사 기관이 제각기 군포를 거두면서 농민의 이중 부담과 도망이 심해졌다.
- 직전법: 세조 때 현직 관리에게 수조지를 준 토지 제도로, 군역 문제와 관계가 없다.
- 호포제: 흥선 대원군이 시행한 제도로 균역법보다 뒤의 일이다.
- 속오군: 양반부터 노비까지 편성한 지방군이므로, 양반의 군역 면제 근거가 아니다.
- 공물 대납: 방납의 폐단으로, 대동법의 배경이다.
『편년통록』은 김관의가 고려 왕실의 세계를 설화 중심으로 엮은 책이므로, 성리학적 역사 인식이 반영되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편년통록』은 고려 중기의 저술로 풍수지리 등 신이적 전승을 담고 있으며, 성리학이 들어오기 전의 책이다.
- 『제왕운기』: 이승휴가 중국사와 우리 역사를 운율시로 서술하였다.
- 『동명왕편』: 이규보가 고구려 건국 영웅을 노래해 고려가 성인의 나라임을 드러내려 하였다.
- 『동국사략』: 권근 등이 성리학적 명분에 따라 여왕을 여주로 낮추어 불렀다.
- 『삼국유사』: 일연은 신라사를 상고·중고·하고로 나누었다.
명동성당을 최초의 고딕식 벽돌 건축물이라고 한 설명이 옳지 않다.
명동성당은 1898년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벽돌 성당이지만, 그보다 앞선 1892년에 서울의 약현성당이 고딕 요소를 갖춘 서양식 벽돌 성당으로 세워졌다. 따라서 ‘최초’라는 규정이 맞지 않는다.
- 한성순보: 1883년 박문국에서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 전차: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서 처음 운행하였다.
- 한성전기회사: 발전소를 세워 전차를 운행하고 서울에 전등을 가설하였다.
- 철도: 경인선 개통에 이어 일본이 러일전쟁 전후에 경부선과 경의선을 놓았다.
(나) 국가총동원법
(다) 경찰범처벌규칙
(라)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
(마)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
제정 순서는 경찰범처벌규칙 → 치안유지법 →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 → 국가총동원법 →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 곧 (다) - (가) - (라) - (나) - (마)이다.
연도는 1912년 → 1925년 → 1936년 → 1938년 → 1941년이다. 1910년대 무단 통치기, 1920년대 사회주의 단속, 1930년대 이후 사상 통제와 전시 동원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치안유지법 다음에 경찰범처벌규칙, 국가총동원법을 둔 배열: 1910년대의 경찰범처벌규칙이 치안유지법보다 앞선다.
- 치안유지법 다음에 경찰범처벌규칙, 예방구금령을 둔 배열: 첫머리부터 틀렸고, 예방구금령은 가장 늦게 제정되었다.
- 국가총동원법을 보호관찰령보다 앞에 둔 배열: 보호관찰령이 국가총동원법보다 먼저 제정되었다.
- 국가총동원법을 맨 끝에 둔 배열: 예방구금령이 국가총동원법보다 뒤에 제정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 | 대한국민의회 (1919.3.) | 한성정부 (1919.4.) |
| 국무총리: (가) 내무총장: (나) 군무총장: (다) | 대통령: (라) 부통령: (마) 국무총리: (가) | 집정관 총재: (가) 국무총리 총재: (나) |
※ 국회사무처 최종정답이 정답 없음(전항 정답 처리)으로 공개된 문항입니다. 어느 보기를 골라도 실제 시험에서는 정답 처리되었습니다.
자료는 일제 말 전시 배급 체제의 모습이므로, 그 시기의 정책은 국민학교령 공포이다.
‘하이규[배급]’와 곡물 대체물 지급, 굶주림이 1940년대 전시 동원 체제를 보여 준다. 일제는 1941년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꾸고 황국 신민 교육을 강화하였다.
- 조선식산은행령: 1910년대에 공포되었다.
- 헌병 경찰제: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제도이다.
- 산미증식계획: 1920년에 시작하였다.
- 부전강·허천강 발전소: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걸쳐 착수한 북부 공업화 사업으로, 배급 체제가 본격화하기 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