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에는 마을 주위에 목책이나 환호 같은 방어 시설이 조성되었다.
벼농사 확대로 잉여 생산물과 사유 재산이 늘면서 계급이 생기고 집단 간 정복 전쟁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 우경 보급: 철제 농기구가 쓰인 철기 시대 이후의 모습으로, 신라 지증왕 때 장려된 사실이 대표적이다.
- 돌무지덧널무덤: 삼국 시대 신라 지배층의 무덤 양식이다.
- 빗살무늬 토기: 신석기 시대의 대표 토기로, 청동기 시대에는 민무늬 토기가 널리 쓰였다.
- 찍개와 주먹도끼: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이다.
고구려는 3세기 동천왕 때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 환도성을 빼앗기는 위기를 맞았다.
나머지 설명은 시기나 주체, 사건의 방향이 사실과 어긋난다.
- 고조선의 진나라 공격: 기원전 3세기 무렵 고조선은 오히려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입으로 서쪽 영토를 상실하였다.
- 신라의 대고구려 동맹: 고구려 남진에 맞선 나제 동맹은 5세기의 일이며, 6세기 후반의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백제와 적대하고 있었다.
- 백제의 웅진 천도: 4세기가 아니라 5세기 후반 한성 함락 직후의 일이고, 세력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 가야의 몰락: 금관가야는 6세기 전반에 먼저 멸망하였고, 6세기 중엽 대가야의 멸망으로 가야 연맹이 완전히 해체되었다.
밑줄 친 ‘그’는 고려 승려 의천으로, 이론과 실천을 함께 닦는 교관겸수를 중시하였다.
‘선종 2년’, ‘불법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서’, ‘백파를 도입’이라는 단서는 왕자 출신 의천의 송나라 유학과 교학 정리 활동을 가리킨다.
- 세속 5계: 신라 승려 원광이 화랑도의 생활 규범으로 제시하였다.
-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 신라 승려 원효의 저술이다.
- 교학 일변도 반대와 선법 전파: 선종 승려들의 입장이며, 의천은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려 하였다.
- 백련 결사: 고려 후기 승려 요세가 전개하였다.
대동법은 경상도가 아니라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으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시범 실시된 뒤 점차 확대되어 숙종 때 평안도·함경도 등을 제외한 전국에서 시행되었다.
- 선혜청 설치: 대동미의 출납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 포나 화폐 납부: 산간 지역 등 쌀 납부가 어려운 곳에서는 포나 동전으로 낼 수 있었다.
- 지세 통합: 갑오개혁기의 세제 개혁으로 지세에 통합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 상납미와 유치미: 대동미는 중앙으로 올려 보내는 상납미와 지방 경비로 남겨 두는 유치미로 나뉘었다.
10세기인 993년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거란으로부터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나머지 설명은 사건과 세기를 잘못 연결하였다.
- 묘청의 난: 1135년에 일어난 12세기의 사건이다.
- 강화도 천도: 1232년 여진이 아니라 몽골의 침입에 대비한 13세기의 일이다.
- 무신정권과 과전법: 무신정권은 1170년에 성립한 12세기의 일이고, 과전법은 고려 말 공양왕 때인 1391년에 제정되었다.
- 노비 인구 격감: 14세기에는 권문세족의 농장 확대로 양인이 노비로 전락하는 일이 늘어 노비가 격감하지 않았다.
| 시정전시과 제정 | → (ㄱ) → | 개정전시과 시행 | → (ㄴ) → | 경정전시과 실시 |
건원중보는 996년(성종 15) 발행되어 (ㄱ) 시기에 해당한다.
기준이 되는 제도는 시정전시과 976년(경종 1), 개정전시과 998년(목종 1), 경정전시과 1076년(문종 30)이므로 (ㄱ)은 976~998년, (ㄴ)은 998~1076년이다.
- 역분전 지급: 940년 태조 때의 일로 시정전시과 이전이다.
- 양반공음전시법 제정: 1049년 문종 때의 일로 (ㄴ) 시기에 해당한다.
- 해동통보 발행: 1102년 숙종 때의 일로 경정전시과 이후이다.
- 녹과전 지급: 1271년 원종 때의 일로 경정전시과 훨씬 이후이다.
| ㄱ. 관산성 전투 ㄷ. 금관가야 멸망 | ㄴ. 사비 천도 ㄹ. 『신집』 편찬 |
오래된 순서는 금관가야 멸망 → 사비 천도 → 관산성 전투 → 『신집』 편찬이다.
각 사건의 연도를 대조하면 순서가 확정된다.
- 금관가야 멸망: 532년 신라 법흥왕 때이다.
- 사비 천도: 538년 백제 성왕 때이다.
- 관산성 전투: 554년 신라가 백제군을 격파하고 성왕이 전사하였다.
- 『신집』 편찬: 600년 고구려 영양왕 때 이문진이 편찬하였다.
제국신문은 1898년 창간된 순 한글 신문으로, 대한제국 시기(1897~1910)에 여성이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국신문은 서민과 여성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다.
- 우정총국 출근: 우정총국은 1884년 설치되었으나 갑신정변 실패로 곧 폐지되었다.
- 박은식의 『이순신전』: 국권 피탈 이후 망명기인 1910년대에 저술되었다.
-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1882년 설치된 외교 담당 기구로, 18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아문으로 개편되었다.
- 근로보국대: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전시 노동력 동원 조직이다.
노비제를 포함한 신분제의 법적 철폐는 대한국 국제가 아니라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1899년의 대한국 국제는 황제의 무한한 군권을 규정한 법규로, 신분제 철폐와는 관련이 없다.
- 노비종모법: 영조 때 어머니가 양인이면 자녀도 양인이 되도록 하여 양인 인구를 늘리려 하였다.
- 노비추쇄관 혁파: 정조 때 도망 노비를 쫓아 잡는 추쇄관을 없앴다.
- 내시노비 해방: 순조 1년에 공노비 6만 6천여 명을 양인으로 해방하였다.
- 사가노비절목: 고종 때 제정되어 노비 세습제를 폐지하였다.
•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강령의 단체는 신간회이며, 조선 소년 연합회 창설은 신간회의 활동이 아니다.
‘정치·경제적 각성’, ‘단결 공고’, ‘기회주의 일체 부인’은 1927년 결성된 민족 협동 전선 신간회의 3대 강령이다. 조선 소년 연합회는 소년 운동 단체들이 추진한 별도의 조직이다.
- 동양 척식 주식회사 폐지: 신간회가 제시한 당면 과제에 포함되었다.
- 일본인의 조선 이민 반대: 일제의 이민 정책 철폐를 주장하였다.
- 여성 차별 철폐: 여성의 법률상·사회적 차별 철폐를 내세웠고, 자매 단체인 근우회와도 연계되었다.
- 최저 임금제 요구: 노동·농민 운동을 지원하며 노동자 권익 보호를 요구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제시된 풍속의 나라는 부여이며, 왕이 죽으면 주변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장마와 가뭄’으로 오곡이 익지 않으면 ‘왕에게 허물을 돌린다’는 기록은 왕권이 약했던 부여의 모습을 보여 준다.
- 동맹: 고구려의 제천 행사이다.
- 도둑질한 자를 노비로 삼는 법: 고조선의 범금 8조에 전하는 내용이다.
- 후, 읍군, 삼로: 대군장이 없던 옥저와 동예의 군장 명칭이다.
- 옛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짓는 풍습: 동예에 관한 기록이다.
일제는 만주사변(1931) 이후인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이용하였다.
나머지는 만주사변 이전이나 일제 패망 이후의 일이 포함되어 있다.
- 회사령 폐지: 1920년의 일로 만주사변 이전이다.
- 국민대표 회의 결렬: 1923년의 일로 만주사변 이전이다.
- 수풍 발전소와 흥남 질소 비료 공장: 수풍 발전소는 이 시기에 건설되었으나 흥남 질소 비료 공장은 만주사변 이전인 1920년대 후반에 건설이 시작되었다.
- 한민당 결성: 광복 이후인 1945년의 일이다.
훈련도감은 조선 전기가 아니라 임진왜란 중에 설치되었으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왜란 초기의 패전을 겪은 뒤 선조 때 유성룡의 건의로 설치되어 조선 후기 5군영의 중심이 되었다.
- 삼수병 편제: 포수, 살수, 사수로 구성되었다.
- 상비군 제도: 군인에게 급료를 지급하는 직업 군인 성격의 부대였다.
- 『기효신서』의 영향: 명나라 척계광의 병법을 받아들여 조직과 훈련에 반영하였다.
- 폐지 시기: 1881년 별기군 설치를 전후한 군제 개혁으로 5군영이 2영으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대조영을 고려의 별종이라 한 것은 『구당서』이고 『신당서』는 속말말갈 출신으로 기록하였으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두 사서가 대조영의 출신을 다르게 전한다는 점이 핵심이며,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 동모산 건국: 대조영은 698년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국이라 하였다.
- 발해군왕 책봉: 당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여 현실 세력으로 인정하였다.
- 해동성국: 9세기 선왕 때 융성하여 얻은 칭호이다.
- 문왕의 고려국왕 자처: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국왕이라 칭하여 고구려 계승 의식을 드러냈다.
밑줄 친 ‘군’은 한국광복군이며,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협력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임시정부에 직속한 국군’이라는 단서는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을 가리킨다.
- 태항산 항전: 화북 지역의 조선 의용대 세력이 전개한 활동이다.
- 쌍성보 전투: 1930년대 초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하여 치렀다.
- 압록강 사이토 총독 저격: 1920년대 참의부의 활동이다.
- 청산리 전투 후 러시아령 이동: 1920년 만주의 독립군 부대가 겪은 일로, 광복군 창설 훨씬 이전이다.
•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조선 건국 동맹이 모태가 되었다.
제시된 단체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이며, 이 단체가 선포한 것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아니라 ‘조선 인민 공화국’이다.
‘여운형’, ‘조선 건국 동맹이 모태’, ‘8·15 해방 직후 지부 조직’이 단서이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1948년 북한에 수립된 정권의 명칭이다.
- 이승만 주석·여운형 부주석: 조선 인민 공화국 선포 때 발표된 인선이다.
- 구성 세력: 여운형과 안재홍을 중심으로 온건 좌파와 중도 우파가 참여하였다.
- 우파의 탈퇴: 좌파의 영향력이 커지자 안재홍 등이 이탈하였다.
- 치안대 조직: 광복 직후 치안 유지를 위해 조직하였다.
제12조 농지의 분배는 1가구당 총 경영 면적 3정보를 초과하지 못한다.
제13조 상환은 5년간 균분 연부로 하고 매년 정부에 납입해야 한다.
제시된 법령은 농지 개혁법이며, 농지 상환 자금을 대충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대충자금은 미국의 원조 물자를 판매한 대금을 적립한 자금으로, 농민의 농지 상환과는 관련이 없다.
- 3정보 초과 농지 처리: ‘3정보’ 상한에 따라 그 이상의 농지는 국가가 보상을 지급하고 거두어들였다.
- 유상매수·유상분배: 농지 개혁의 기본 원칙이었다.
- 지가 증권 발행: 정부는 지주에게 현금 대신 지가 증권을 지급하였다.
- 30%씩 5년 상환: 농민은 평년 생산량의 30%를 5년간 나누어 상환하였다.
| ㄱ. 신해통공 ㄷ. 이인좌의 난 | ㄴ. 균역법 제정 ㄹ. 백두산 정계비 건립 |
오래된 순서는 백두산 정계비 건립 → 이인좌의 난 → 균역법 제정 → 신해통공이다.
각 사건의 연도를 대조하면 숙종, 영조, 정조로 이어지는 순서가 확정된다.
- 백두산 정계비 건립: 1712년 숙종 때이다.
- 이인좌의 난: 1728년 영조 즉위 초에 일어났다.
- 균역법 제정: 1750년 영조 때이다.
- 신해통공: 1791년 정조 때 금난전권을 축소하였다.
김대중 정부 시기인 1998년 해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 정책으로 남북 교류를 확대하였다.
-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발표되었다.
- 남북 기본 합의서: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채택되었다.
- 개성공단 착공: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이루어졌다.
-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 1985년 전두환 정부 때 성사되었다.
1960년대 말 박정희 정부의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개헌에 맞서 반대 투쟁이 전개되었다.
3선 개헌은 1969년에 이루어졌으므로 시기와 내용이 일치한다.
- 자유당 정권 붕괴: 1960년 4·19 혁명의 결과로 1950년대의 일이 아니다.
- 유신 헌법: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연임 제한을 없애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으며, 단임제와는 반대된다.
- 문민정부 탄생: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1990년대의 일이다.
- 직선제 개헌: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로 1980년대의 일이며, 국민의 정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