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늙은이, 어깨동무, 정들다, 앞서다, 손쉽다가 모두 합성어인 묶음이다.
합성어는 어근과 어근이 결합한 말이다. ‘늙은이’도 관형사형 ‘늙은’과 의존 명사 ‘이’가 결합한 합성어이고, ‘정들다’, ‘앞서다’, ‘손쉽다’ 역시 어근끼리 결합했다.
- 비행기, 짓밟다가 든 묶음: ‘비행기’는 접미사 ‘-기(機)’, ‘짓밟다’는 접두사 ‘짓-’이 붙은 파생어다.
- 막내둥이, 돌부처가 든 묶음: ‘막내둥이’는 ‘막내’에 접미사 ‘-둥이’가 붙은 파생어다.
- 비행기, 개살구가 든 묶음: ‘비행기’와 함께 접두사 ‘개-’가 붙은 ‘개살구’도 파생어다.
- 늙은이, 척척박사가 든 묶음: 이 묶음에도 파생어 ‘막내둥이’가 들어 있다.
쓰임이 적절하지 않은 단어는 늡늡하고이다.
‘늡늡하다’는 성격이 너그럽고 활달하다는 뜻이어서 ‘인색한 샌님티’와 어울리지 않는다.
- 골막하게: ‘담긴 것이 가득 차지 않고 조금 모자란 듯하다’는 뜻으로, 넘치지 않게 담으라는 문맥에 맞다.
- 시름없는: ‘근심과 걱정으로 맥이 없다’는 뜻으로, 주춤하다 돌아누워 말하는 태도에 맞다.
- 뜯적거려: ‘괜히 자꾸 건드려 귀찮게 하다’는 뜻으로, 가만히 있는 아이를 울리는 상황에 맞다.
- 옆댕이: ‘옆’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가게 옆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 쓸 수 있다.
ㄱ. 게티스버그(Gettysburg)
ㄴ. 알레르기(Allergie)
ㄷ. 컬렉션(collection)
ㄹ. 미네랄(mineral)
ㅁ. 아쿠아마린(aquamarine)
옳은 표기는 ㄴ 알레르기, ㄷ 컬렉션, ㄹ 미네랄이다.
ㄱ은 유성음 [z]를 살린 게티즈버그, ㅁ은 [kw]를 한 음절로 붙여 적은 아콰마린이 바른 표기이므로 둘은 틀렸다.
- ㄱ, ㄴ, ㅁ: 틀린 ㄱ과 ㅁ이 모두 들어 있다.
- ㄷ, ㄹ, ㅁ: 틀린 ㅁ이 들어 있고 옳은 ㄴ이 빠졌다.
- ㄱ, ㄴ, ㄷ, ㄹ: 틀린 ㄱ이 들어 있다.
- 다섯 항목 전체: 틀린 ㄱ과 ㅁ까지 포함한다.
구성이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은 출산 장려 정책을 다룬 문장이다.
앞 절이 ‘집중시키는데’로 이어지는데 뒤 절은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로 끝나 호응이 맞지 않는다. ‘집중시킨다. 이는 … 때문이다’처럼 이유를 받는 주어를 세워야 한다.
- 자본주의를 다룬 문장: ‘자본주의가 … 결과인 것은 … 문제가 아니다’로 주술 호응이 이루어진다.
- 시장 근본주의를 다룬 문장: ‘추구한 결과로 … 구조화되었다’로 인과 관계가 자연스럽다.
- 사회적 동물을 다룬 문장: ‘-는 데서, 나아가 -는 데서’가 병렬되어 ‘찾을 수 있겠다’로 이어진다.
- 지성적 연구를 다룬 문장: ‘연구는 … 성립하기 때문에 … 성질의 것이다’로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한다.
ㄴ.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ㄷ.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 철업든 내 귀로 드렀노라 /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 오늘날 뵈올 수 잇엇스면 / 나는 세상 모르고 사랏노라 /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 갓튼 말도 죠금 더 영리하게 / 말하게도 지금은 되엇건만 /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사랏스면!
ㄹ.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ㅁ.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창작 연대순은 ㄱ-ㄷ-ㅁ-ㄹ-ㄴ이다.
ㄱ은 주요한 「불놀이」(1919), ㄷ은 시집 『진달래꽃』(1925)에 실린 김소월 「나는 세상 모르고 사랏노라」, ㅁ은 김광균 「추일서정」(1940), ㄹ은 김수영 「풀」(1968), ㄴ은 기형도 「빈집」(1989)이다.
- ㄱ-ㄴ-ㄷ-ㄹ-ㅁ: 가장 늦은 ㄴ을 둘째에 두었다.
- ㄱ-ㄷ-ㅁ-ㄴ-ㄹ: 1989년의 ㄴ을 1968년의 ㄹ보다 앞에 두었다.
- ㄷ-ㄱ-ㄴ-ㅁ-ㄹ: ㄱ보다 늦은 ㄷ을 맨 앞에 두었고 ㄴ도 ㅁ, ㄹ보다 앞서 있다.
- ㄷ-ㄱ-ㅁ-ㄹ-ㄴ: 뒤의 세 작품은 맞지만 ㄱ과 ㄷ의 순서가 바뀌었다.
글이 비판하는 핵심은 이론의 독재이다.
글쓴이는 소수의 직관적 특징으로 만든 일반 개념을 개별 작품에 내려 적용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작가들에게 ‘개념이라는 외투를 억지로 입힘’이라는 표현이 이론이 대상을 지배하는 상황을 보여 준다.
- 귀납적 사고의 위험성: 글은 일반화로부터 ‘연역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하므로 귀납이 대상이 아니다.
- 다른 이론을 배척하는 태도: 다른 이론과의 대립이나 배척은 글에 나오지 않는다.
- 개념의 왜곡: 개념의 뜻이 뒤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대상에 강요한 것이 문제다.
-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비난: 비이성을 비난하는 내용은 글에 없다.
ㄴ. 그래야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바람직하다.
ㄷ. 생태 위기에 대한 윤리적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ㄹ. 인간은 삶의 터전이자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ㅁ. 그렇다면 자연과의 바람직한 관계 회복 역시 인간이 주도적으로 대안을 내놓아야 할 과제다.
논리적 순서는 ㄱ-ㄷ-ㅁ-ㄹ-ㄴ이다.
ㄱ의 주장에 ㄷ이 ‘때문이다’로 이유를 붙이고, ㅁ이 ‘그렇다면’으로 인간의 과제를 끌어낸다. 이어 ㄹ이 지향점을 밝히고, ㄴ의 ‘그래야’가 ㄹ을 받아 마무리한다.
- ㄱ-ㄹ-ㄷ-ㅁ-ㄴ: 이유인 ㄷ이 ㄱ과 떨어지고, ㄴ도 ㄹ 바로 뒤에 오지 못한다.
- ㄱ-ㅁ-ㄴ-ㄷ-ㄹ: ㅁ의 ‘그렇다면’이 이유인 ㄷ보다 먼저 나온다.
- ㄹ-ㄴ-ㄷ-ㄱ-ㅁ: 이유인 ㄷ이 그 대상인 ㄱ보다 앞선다.
- ㄹ-ㄷ-ㄱ-ㄴ-ㅁ: ㄷ이 ㄹ의 이유가 되고, ㄴ도 ㄱ을 받게 되어 연결이 어긋난다.
ㄱ. 된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ㄴ. 성조가 사라지고 방점의 기능이 소멸되었다.
ㄷ. 아래아(·)의 음가가 완전히 소실되었다.
ㄹ. 중세 특유의 주체 높임법, 객체 높임법 등이 있었다.
ㅁ. 몽골어, 여진어 등 외래어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중세 국어의 특징이 아닌 것은 ㄴ과 ㄷ이다.
성조와 방점이 사라진 것(ㄴ)과 아래아의 음가가 완전히 소실된 것(ㄷ)은 모두 근대 국어 이후의 변화다. 된소리의 등장(ㄱ), 주체·객체 높임법(ㄹ), 몽골어·여진어 차용(ㅁ)은 중세 국어에 해당한다.
- ㄱ, ㄷ: ㄱ은 중세 국어의 특징이다.
- ㄷ, ㄹ: ㄹ은 중세 국어의 특징이다.
- ㄱ, ㄴ, ㄷ: 중세 국어의 특징인 ㄱ이 섞여 있다.
- ㄴ, ㄹ, ㅁ: ㄹ과 ㅁ은 중세 국어의 특징이고 ㄷ이 빠졌다.
적절하지 않은 전망은 수소 생산 비용 절감이다.
글은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말할 뿐, 수소 자체의 생산 비용이나 관련 산업의 활성화는 언급하지 않는다.
- 환경오염 감소: 연료전지는 ‘연소 과정’이 필요 없으므로 전망할 수 있다.
- 에너지 부족 문제 감소: 두 기술이 ‘화석 연료의 고갈’ 위기를 짊어질 기술로 제시된다.
- 적은 비용의 에너지 생산: ‘에너지 생산의 효율성이 높아 경제적’이라는 내용과 맞다.
- 보다 안전한 삶: 핵융합 발전은 ‘방사능 유출의 위험이 거의 없다’고 했다.
표기가 옳지 않은 것은 작사(詐詞)이다.
노랫말을 짓는다는 뜻의 작사는 作詞로 적어야 한다. ‘詐’는 ‘속이다’라는 뜻이다.
- 알현(謁見): 지위가 높은 사람을 찾아가 뵙는다는 뜻으로 맞다.
- 내홍(內訌): 내부에서 일어난 분쟁이라는 뜻으로 맞다.
- 상쇄(相殺): 서로 비겨 없앤다는 뜻으로, ‘殺’은 여기서 ‘쇄’로 읽는다.
- 무론(毋論): ‘물론(勿論)’과 같은 뜻으로 쓰는 말로, 표기가 맞다.
(가)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다.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분명치 않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이상향을 꿈꾸었다. 현실이 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사형당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서로 베개를 베고 누워 있고, 차꼬를 차고 칼을 쓴 죄수들이 서로 밀칠 정도로 바글거리고, ㉠형륙을 당해 손발 잘린 자들이 서로 마주 볼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유가와 묵가의 선생이란 자들은 그들 사이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다니며 성(聖)과 지(知), 인(仁)과 의(義)를 잘난 척 떠들어대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과 지는 차꼬나 목에 씌우는 칼의 쐐기와 다른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내세우는 인과 의는 죄수의 형구를 채우는 자물쇠와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세상이 평화롭게 다스려지려면 먼저 성지(聖知)와 인의(仁義)부터 끊어버려야 한다고.
(나)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그의 이야기는 시비와 차별의 경계를 가차 없이 부수어버린다. 천자인 요임금과 은자인 허유의 지위가 뒤집히고 성 밖에 사는 천민 남곽자기가 성안에 사는 귀족에게 가르침을 베풀며, 소 잡는 백정의 신들린 칼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삶을 구원하는 이치를 찾아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겨 절름발이, 언청이, 곱사등이, 사지가 ㉢지리멸렬한 기형불구라고 칭하는 인간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입을 빌려 지고(至高)의 도를 이야기했다. 그가 바란 이상향은 부유하고 귀한 자가 가난하고 천한 자의 삶을 업신여기지 않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다) 노나라의 애태타는 절름발이에다 곱사등이인 장애인으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추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노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 위나라의 인기지리무순과 제나라의 옹앙대영도 총체적인 장애를 가진 기형불구의 인간이었지만 한 나라의 임금이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한다. 그들에게 부와 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뛰어난 언변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지적인 능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른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운 덕 때문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덕이 충만해 있으면 외형의 ㉣결핍은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오히려 외형의 결핍에 가려 내면의 아름다운 덕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그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비웃었다.
(라) 사람만이 아니다.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붕새의 비상을 높이 사지만 매미나 메추라기의 날갯짓을 낮추어보지 않았고 황하의 신 하백(河伯)과 북해의 신 약(若)을 한자리에 불러내 우주의 광활함과 천지의 장대함을 노래했다. 까치와 오동나무가 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가 하면 수십 만 년을 사는 거북이와 수백 만 년을 사는 상고시대의 대춘나무가 등장하여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짧은지 깨우쳐준다.
(마) 꿈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길흉을 점치지만 그 자체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그저 꿈을 현실이라 착각한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꿈속의 꿈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꿈인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죽음이라는 깨어남을 통해 깨어나야 할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다음 중 각 단락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라)에서 광활함과 무한함을 우위에 두었다고 본 설명이다.
(라)는 붕새의 비상을 높이 사지만 ‘매미나 메추라기의 날갯짓을 낮추어보지 않았고’라고 했다.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에 우열을 두지 않은 것이다.
- (가)의 설명: 성지와 인의를 ‘끊어버려야 한다’고 했으므로 유가·묵가에 동의하지 않았다.
- (나)의 설명: ‘은유와 상징’으로 ‘시비와 차별의 경계’를 부순다는 내용과 맞다.
- (다)의 설명: ‘덕이 충만해 있으면 외형의 결핍은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과 맞다.
- (마)의 설명: 삶 또한 ‘깨어나야 할 꿈’이라 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가)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다.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분명치 않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이상향을 꿈꾸었다. 현실이 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사형당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서로 베개를 베고 누워 있고, 차꼬를 차고 칼을 쓴 죄수들이 서로 밀칠 정도로 바글거리고, ㉠형륙을 당해 손발 잘린 자들이 서로 마주 볼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유가와 묵가의 선생이란 자들은 그들 사이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다니며 성(聖)과 지(知), 인(仁)과 의(義)를 잘난 척 떠들어대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과 지는 차꼬나 목에 씌우는 칼의 쐐기와 다른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내세우는 인과 의는 죄수의 형구를 채우는 자물쇠와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세상이 평화롭게 다스려지려면 먼저 성지(聖知)와 인의(仁義)부터 끊어버려야 한다고.
(나)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그의 이야기는 시비와 차별의 경계를 가차 없이 부수어버린다. 천자인 요임금과 은자인 허유의 지위가 뒤집히고 성 밖에 사는 천민 남곽자기가 성안에 사는 귀족에게 가르침을 베풀며, 소 잡는 백정의 신들린 칼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삶을 구원하는 이치를 찾아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겨 절름발이, 언청이, 곱사등이, 사지가 ㉢지리멸렬한 기형불구라고 칭하는 인간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입을 빌려 지고(至高)의 도를 이야기했다. 그가 바란 이상향은 부유하고 귀한 자가 가난하고 천한 자의 삶을 업신여기지 않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다) 노나라의 애태타는 절름발이에다 곱사등이인 장애인으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추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노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 위나라의 인기지리무순과 제나라의 옹앙대영도 총체적인 장애를 가진 기형불구의 인간이었지만 한 나라의 임금이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한다. 그들에게 부와 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뛰어난 언변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지적인 능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른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운 덕 때문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덕이 충만해 있으면 외형의 ㉣결핍은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오히려 외형의 결핍에 가려 내면의 아름다운 덕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그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비웃었다.
(라) 사람만이 아니다.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붕새의 비상을 높이 사지만 매미나 메추라기의 날갯짓을 낮추어보지 않았고 황하의 신 하백(河伯)과 북해의 신 약(若)을 한자리에 불러내 우주의 광활함과 천지의 장대함을 노래했다. 까치와 오동나무가 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가 하면 수십 만 년을 사는 거북이와 수백 만 년을 사는 상고시대의 대춘나무가 등장하여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짧은지 깨우쳐준다.
(마) 꿈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길흉을 점치지만 그 자체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그저 꿈을 현실이라 착각한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꿈속의 꿈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꿈인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죽음이라는 깨어남을 통해 깨어나야 할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밑줄 친 ㉠∼㉣의 한자 표기 중 옳은 것은?
㉠ ㉡ ㉢ ㉣
옳은 표기는 刑戮-隱喩-支離滅裂-缺乏이다.
형륙(刑戮)은 형벌로 죽이는 일, 은유(隱喩)는 비유법의 하나, 지리멸렬(支離滅裂)은 갈가리 흩어져 갈피를 잡지 못함, 결핍(缺乏)은 모자람을 뜻한다.
- 刑戮-隱維-支離滅裂-缺乏: ‘은유’의 ‘유’는 維가 아니라 喩다.
- 刑勠-隱維-支離滅劣-抉乏: 勠, 維, 劣, 抉이 모두 틀렸다.
- 刑勠-隱喩-支離滅劣-缺乏: ‘형륙’의 勠과 ‘지리멸렬’의 劣이 틀렸다.
- 刑勠-隱喩-支離滅裂-抉乏: ‘형륙’의 勠과 ‘결핍’의 抉이 틀렸다.
∙ 이 문제는 입주민들과의 ㉠협의[혀븨]를 통해서 해결합시다.
∙ 외국인들은 한글의 복잡한 ㉡띄어쓰기[띄어쓰기]를 어려워한다.
∙ 관객들이 ㉢썰물[썰ː물]처럼 빠져나갔다.
∙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라는 ㉣우리의[우리에] 소망이 이루어질까?
∙ ㉤반신반의[반ː신 바ː니] 하는 분위기였다.
표준 발음으로 옳은 것은 ㉠, ㉣, ㉤이다.
표준 발음법 제5항에 따르면 단어 첫음절 이외의 ‘의’는 [ㅢ]가 원칙이고 [ㅣ]도 허용되며, 조사 ‘의’는 [ㅢ]가 원칙이고 [ㅔ]도 허용된다. 그래서 원칙 발음인 ㉠ [혀븨], 허용 발음인 ㉣ [우리에]와 ㉤ [반ː신 바ː니]는 모두 옳다.
반면 자음을 첫소리로 가진 음절의 ‘의’는 [ㅣ]로 발음하므로 ㉡은 [띠어쓰기]이고, ㉢은 짧게 발음하는 [썰물]이다.
- ㉠㉡㉢: 틀린 ㉡과 ㉢이 들어 있다.
- ㉠㉢㉣: 틀린 ㉢이 들어 있다.
- ㉡㉢㉤: 틀린 ㉡과 ㉢이 들어 있다.
- ㉡㉣㉤: 틀린 ㉡이 들어 있다.
ㄱ. 얼룩배기
ㄴ. 판때기
ㄷ. 나이빼기
ㄹ. 이맛배기
ㅁ. 거적때기
ㅂ. 상판대기
맞게 표기한 것은 ㄴ 판때기, ㅁ 거적때기, ㅂ 상판대기이다.
‘판때기’, ‘거적때기’는 한글 맞춤법 제54항의 ‘-때기’ 표기를 따르고, ‘상판대기’도 표준어로 올라 있다. 반면 ㄱ은 얼룩빼기, ㄷ은 나이배기, ㄹ은 이마빼기가 바른 표기다.
- ㄱ, ㄷ, ㅁ: 틀린 ㄱ과 ㄷ이 들어 있다.
- ㄱ, ㄹ, ㅂ: 틀린 ㄱ과 ㄹ이 들어 있다.
- ㄴ, ㄷ, ㄹ: 틀린 ㄷ과 ㄹ이 들어 있다.
- ㄴ, ㄷ, ㅂ: 틀린 ㄷ이 들어 있다.
문장 부사가 쓰인 문장은 의외로 철수가 빨리 왔다이다.
‘의외로’는 특정 성분이 아니라 ‘철수가 빨리 왔다’는 문장 전체를 수식해 그 사실에 대한 판단을 나타낸다.
- 활짝: 서술어 ‘피었다’만 수식하는 성분 부사다.
- 바로: 체언 ‘뒤’를 수식하는 성분 부사다.
- 안: 서술어 ‘먹는다’를 부정하는 성분 부사다.
- 이리: 서술어 ‘와’의 방향을 나타내는 성분 부사다.
쓰임이 다른 것은 민족자존의 정권의 ‘의’이다.
이 ‘의’는 뒤 명사 ‘정권’을 꾸미는 일반적인 관형격 조사다. 나머지는 모두 ‘의’ 앞말이 뒤 내용의 주어로 풀리는 주격 기능의 ‘의’다.
- 조선의 독립국임: ‘조선이 독립국임’으로 풀린다.
- 생존권의 박상됨: ‘생존권이 박상됨’으로 풀린다.
- 민족의 갈 길: ‘민족이 갈 길’로 풀린다.
- 일본의 소의함: ‘일본이 소의함’으로 풀린다.
∙ 듯: 의존 명사. ①‘듯이’의 준말. ②(‘-은 듯 만 듯’, ‘-는 듯 마는 듯’, ‘-을 듯 말 듯’ 구성으로 쓰여)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아니한 것 같기도 함을 나타내는 말.
∙ -듯이: 어미. (‘이다’의 어간,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뒤 절의 내용이 앞 절의 내용과 거의 같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
∙ -듯: 어미. ‘-듯이’의 준말.
∙ 듯하다: 보조 형용사. (동사나 형용사, 또는 ‘이다’의 관형사형 뒤에 쓰여) 앞말이 뜻하는 사건이나 상태 따위를 짐작하거나 추측함을 나타내는 말.
띄어쓰기가 옳지 않은 것은 일 듯이이다.
앞 절과 뒤 절의 내용이 거의 같음을 나타내므로 이 ‘듯이’는 용언 어간 뒤에 붙는 연결 어미다. 따라서 ‘일듯이’로 붙여 써야 한다.
- 황량했던 듯하다: ‘듯하다’는 관형사형 뒤에 쓰는 보조 형용사이므로 띄어 쓴다.
- 떠날 듯이: 어미 ‘-을’ 뒤에서 짐작을 나타내는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 걷는 듯: 어미 ‘-는’ 뒤에 쓴 의존 명사 ‘듯’이므로 띄어 쓴다.
- 조용하듯: 뒤 절과 내용이 같음을 나타내는 어미 ‘-듯’이므로 붙여 쓴다.
오늘은 『墨子』를 읽습니다. 反戰 思想과 함께 墨子 思想의 ㉠精髓라고 할 수 있는 ㉡兼愛 思想까지 읽기로 하겠습니다. ㉢‘無鑑於水’는 널리 알려진 글귀는 아닙니다. 내가 많이 紹介하는 편입니다. 물에(於水) 비추어 보지 마라(無鑑)는 뜻입니다. 물은 옛날에 거울이었습니다. ㉣銅鏡이 나오기 전에는 물을 거울로 삼았습니다. 물에 비추어 보면 얼굴만 비추어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鑑於人’, 사람에 비추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거울에 비추어 보면 ㉤外貌만 보게 되지만,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보면 자기의 人間的 品性이 드러납니다. 人文學的인 메시지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共感할 수 있는 金言입니다.
한글 표기가 옳지 않은 것은 ㉡ 경애이다.
‘兼’은 ‘겸’으로 읽으므로 兼愛는 겸애로 적는다. 묵자가 말한, 차별 없이 널리 사랑한다는 사상이다.
- ㉠ 정수: 精髓는 사물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뜻하며 ‘정수’로 읽는다.
- ㉢ 무감어수: 無鑑於水는 글 속 풀이대로 물에 비추어 보지 말라는 뜻이다.
- ㉣ 동경: 銅鏡은 구리로 만든 거울로 ‘동경’으로 읽는다.
- ㉤ 외모: 外貌는 겉모습을 뜻하며 ‘외모’로 읽는다.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적절하지 않은 설명은 3, 4, 5, 6행을 하나의 의미 단락으로 묶은 것이다.
3·4행은 ‘잠길 테요’로 앞으로의 설움을 예상하지만, 5행부터는 ‘무덥던 날’의 일을 ‘무너졌느니’까지 돌아본다. 시제와 내용이 달라 5·6행은 7·8행과 이어진다.
- 2행 6연의 형태: 12행이 연 구분 없이 이어지면서도 2행씩 짝을 이룬다.
- 호흡의 교체: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짧은 호흡 뒤에 긴 행이 이어진다.
- 현상 뒤 정서 변화: ‘뚝뚝 떨어져 버린 날’을 먼저 보이고 ‘설움에 잠길 테요’로 이어진다.
- 피는 상황과 진 상황: ‘피기까지는’과 ‘떨어져 버린 날’로 시상이 나뉜다.
글의 요지는 사실성 강화의 장점과 서술성 부족의 단점을 함께 말한 것이다.
글은 사진이 ‘기사의 사실성을 더해 주는’ 수단이라고 한 뒤 ‘그러나’로 돌려, ‘서술성의 부족’ 때문에 속이는 증거로도 쓰인다고 말한다.
- 보도 대상의 이면 이해: 사진은 속사정에 대해 ‘침묵한다’고 했으므로 반대다.
- 항상 좋은 영향력: 나쁜 쓰임도 제시되므로 ‘항상’이 틀렸다.
- 높은 사실성 때문에 잘못 쓰임: 글은 ‘서술성의 부족으로 인해’ 속이는 증거로 쓰인다고 했다.
- 객관적 증거로서의 큰 가치: 글에 없는 내용이며 사기에 쓰이는 사례와도 맞지 않는다.
글의 내용을 가장 잘 함축한 것은 인애(仁愛)의 마음이다.
글은 ‘그 만물을 어진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 뒤, 가는 그물을 쓰지 않고 잠자는 것을 쏘지 않는 등의 구체적 사례를 나열한다.
- 차별(差別)의 정서: ‘사람이 으뜸’이라는 순서는 있으나 글의 초점은 만물을 아끼는 데 있다.
- 생명(生命)의 조화: ‘큰 조화’는 출발점일 뿐, 나열된 내용은 인간의 절제와 배려다.
- 공감(共感)의 태도: 남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는 내용은 없다.
- 융화(融和)의 양태: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되는 모습이 아니라 대하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적절하지 않은 설명은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화자는 임이 온다는 말에 대문 밖으로 나가 ‘보션 버서 품에 품고’ 달려가 ‘정(情)엣말’을 하려 한다. 임을 향한 마음을 행동으로 적극 드러낸 것이다.
- 조선 후기 문학 형태: 긴 사설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성행한 사설시조다.
- 평민 가객의 노래: 사설시조는 평민 가객들이 주로 불렀다.
- 해학과 자유로움: ‘주추리 삼대’를 임으로 착각하는 대목이 웃음을 준다.
- 구체적 사물을 통한 표현: 버선과 신, 주추리 삼대 같은 사물로 상황을 실감 나게 그린다.
한자 표기가 옳지 않은 것은 堅持이다.
‘넓은 견지에서’는 어떤 사물을 보는 입장을 뜻하므로 見地로 적어야 한다. 堅持는 의견이나 입장을 굳게 지닌다는 뜻이다.
- 集團: 여럿이 모여 이룬 무리라는 뜻으로 문맥에 맞다.
- 形成: 어떤 모양을 이룬다는 뜻으로 문맥에 맞다.
- 實體: 실제의 물체나 본체를 뜻하며 문맥에 맞다.
- 要素: 무엇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을 뜻하며 문맥에 맞다.
(가) 충실하게 과학 방법을 적용하여 얻어진 결론도 이와 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과학 방법을 적용하지 않고 얻어 낸 결론이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없는 분야에서 상반된 결론들이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 분야의 특성상 엄밀하게 과학 방법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특히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에서 이런 오류가 자주 빚어지는 것은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한계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 ‘과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결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 의해서 가려내야 한다. 어떤 결론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그 결론이 유도되는 과정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 함은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을 과정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 최근에는 과학이라는 말이 본래의 뜻과는 달리 ‘정확하다’, ‘완벽하다’ 또는 ‘좋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혼란은 오히려 과학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게 만들었고, 과학 방법에 충실한 과학을 그렇지 못한 유사 과학과 구별하는 것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흔히들 ‘과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구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라)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과학 방법이다. 과학 방법은 귀납법과 연역법이라고 하는 큰 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귀납법은 실험, 관찰, 통계와 같은 방법으로 개별적 사실로부터 일반 원리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반면에 연역법은 우리가 확연히 알 수 있는 공리에서부터 출발하여 논리적 추론에 의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마) 과학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문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얻어진 결과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과학은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추구해 가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기에 그 결론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얻은 결론이므로 인간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얻어진 결론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논리적 순서는 (다)-(나)-(라)-(마)-(가)이다.
(다)가 과학을 ‘진실이냐, 아니냐’로 가르는 통념을 제시하고, (나)가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으로 가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라)가 그 과정의 과학 방법을 설명하고, (마)가 결론의 한계를 말한 뒤, (가)가 ‘이와 같은 한계’를 받아 마무리한다.
- (다)-(나)-(마)-(라)-(가): ‘이와 같은 한계’를 받는 (가)가 (마)가 아닌 (라) 뒤에 온다.
- (다)-(라)-(나)-(가)-(마): (가)가 한계를 제시하는 (마)보다 먼저 나온다.
- (마)-(가)-(라)-(다)-(나): 통념을 제시하는 (다)가 도입부에 오지 못했다.
- (마)-(라)-(가)-(다)-(나): (라)의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가 받을 (나)가 맨 뒤로 밀렸고, 통념을 제시하는 (다)도 도입부에 오지 못했다.
㉠ ㉡ ㉢
옳은 표기는 冊肆-詩境-眞跡이다.
㉠은 책 가게인 책사(冊肆), ㉡은 시인의 경지인 시경(詩境), ㉢은 추사가 직접 쓴 필적인 진적(眞跡)이다. 글의 ‘고객’, ‘시인의 방’, ‘추사의 글씨’라는 문맥이 근거다.
- 冊絲-詩經-眞籍: ‘실’을 뜻하는 絲, 경전 이름인 詩經, ‘문서’를 뜻하는 籍이 문맥에 맞지 않는다.
- 冊肆-詩境-眞寂: ‘고요하다’는 뜻의 寂이 필적의 뜻에 맞지 않는다.
- 冊絲-詩經-眞迹: 冊絲와 詩經이 문맥에 맞지 않는다.
- 冊使-詩境-眞蹟: ‘사신’을 뜻하는 使가 책 가게의 뜻에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