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도 달리기를 거른 기억이 없다’만 관형절을 안은 문장이고, 나머지 문장은 모두 명사절을 안고 있다.
‘거른’은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어 뒤의 ‘기억’을 꾸민다. 이 문장의 ‘달리기’는 파생 명사일 뿐 명사형 어미 ‘-기’가 이끄는 절이 아니다.
- ‘아이들은 장난을 좋아하기 마련이에요’: ‘장난을 좋아하기’가 명사절이다.
- ‘이러다가는 버스를 놓치기 십상이다’: ‘버스를 놓치기’가 명사절이다.
- ‘공부가 어렵기는 해도 결국 저 하기 나름이에요’: ‘저 하기’가 명사절이다.
-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공사를 할 수 없다’: ‘비가 많이 오기’가 명사절이다.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은 ‘걸맞는’을 쓴 문장이다.
‘걸맞다’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이므로 현재 관형사형이 ‘-는’이 아닌 ‘-은’으로 활용한다. 따라서 ‘걸맞은 짝’으로 고쳐야 한다.
- ‘지나가는 대로’: ‘대로’는 ‘그 즉시’의 뜻을 나타내는 의존 명사로, 쓰임이 바르다.
- ‘익숙지 않으면’: ‘익숙하지’에서 안울림소리 받침 뒤의 ‘하’가 통째로 줄어든 형태로 바르다.
- ‘생각건대’: ‘생각하건대’에서 ‘하’가 통째로 줄어든 형태로 바르다.
- ‘기대치도’: ‘기대하지도’에서 ‘ㅏ’만 줄고 ‘ㅎ’이 뒤의 ‘ㅈ’과 합쳐져 거센소리가 된 형태로 바르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행복과 희망만 가득찬
절망이 꽃피는, 광고의 나라
- 함민복, 「광고의 나라」에서 -
㉠에 쓰인 기법은 반어이며, 같은 기법이 쓰인 것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이다.
화자가 말하는 곳은 ‘행복과 희망만 가득찬’ 나라이면서 ‘절망이 꽃피는’ 나라다. ‘살고 싶다’는 겉말과 달리 그 속에는 광고가 만든 허상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역시 이별의 슬픔을 겉으로 부정해 속뜻을 반대로 드러낸다.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추상적인 전설을 열매처럼 표현한 은유다.
- ‘내 마음은 나그네요’: ‘A는 B이다’ 꼴로 마음을 나그네에 빗댄 은유다.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듯이’로 직접 빗댄 직유다.
- ‘어둠은 새를 낳고’: 무생물인 어둠을 생명체처럼 표현한 활유다.
융은 다른 정신역동학자와 달리 오랫동안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존재하는 무의식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융은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개인적 요인보다는 집단 무의식 수준의 보편적 원리들이 작동하여 성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특히 융은 인간의 정신이 대립원리에 의해 작동한다고 주장했는데, 대립원리란 개인 내에 존재하는 대립 혹은 양극적인 힘이 갈등을 야기하고, 이 갈등이 정신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융의 주장을 근거로 1940년대 MBTI와 같은 유형론적 성격 이론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 유전학과 뇌과학 등 생물학적 방법론이 크게 발전하면서 성격에 대한 접근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부모의 양육 방식 등 환경을 강조한 정신역동학에 비해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기질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내향성과 외향성은 성격 형성에 대한 기질의 영향을 잘 보여 주는 특성이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특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그 결과 성격 5요인 모델과 같은 특성론적 성격 이론이 확립되었다.
적절한 이해는 유전학의 발전에 따른 발견들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으로 성격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유전학과 뇌과학의 발전으로 기질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나왔고,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특성을 발견하려는 노력’ 끝에 ‘특성론적 성격 이론이 확립’되었다고 밝힌다.
- 프로이트가 욕구 조절 방식을 유형화했다는 설명: 정신역동학은 ‘성격을 유형화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 생물학적 방법론이 부모의 양육 태도를 강조했다는 설명: 환경을 강조한 쪽은 정신역동학이고, 생물학적 방법론은 타고나는 기질을 뒷받침했다.
- 융 이전의 학자들이 집단 무의식의 보편적 원리를 중시했다는 설명: 이는 융이 ‘다른 정신역동학자와 달리’ 강조한 내용이다.
- 외향성과 내향성이 유형론의 해체를 불러왔다는 설명: 지문은 이를 기질의 영향을 보여 주는 특성으로 제시할 뿐, 유형론의 해체는 말하지 않는다.
자료2.않네 → [안네] 뚫는 → [뚤는 → 뚤른]
자료3.닿소 → [다ː쏘] 많소 → [만ː쏘] 싫소 → [실쏘]
자료4.놓는 → [논는] 쌓네 → [싼네]
자료5.낳은 → [나은] 않은 → [아는] 싫어도 → [시러도]
옳지 않은 규칙은 ‘ㅎ’ 뒤에 ‘ㄴ’이 결합될 때 ‘ㅎ’을 발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자료4의 ‘놓는 → [논는]’, ‘쌓네 → [싼네]’를 보면 ‘ㅎ’은 탈락하지 않고 [ㄴ]으로 발음된다. 표준 발음법의 받침 ‘ㅎ’ 규정도 이와 같다.
- 뒤의 ‘ㅅ’을 [ㅆ]으로 발음한다는 규칙: 자료3의 ‘닿소 → [다ː쏘]’, ‘많소 → [만ː쏘]’, ‘싫소 → [실쏘]’로 확인된다.
- ‘ㄶ, ㅀ’ 뒤에 ‘ㄴ’이 오면 ‘ㅎ’을 발음하지 않는다는 규칙: 자료2의 ‘않네 → [안네]’, ‘뚫는 → [뚤른]’으로 확인된다.
- 모음으로 시작된 어미나 접미사 앞에서 ‘ㅎ’을 발음하지 않는다는 규칙: 자료5의 ‘낳은 → [나은]’, ‘싫어도 → [시러도]’로 확인된다.
- 뒤의 ‘ㄱ, ㄷ, ㅈ’과 합쳐 [ㅋ, ㅌ, ㅊ]으로 발음한다는 규칙: 자료1의 ‘놓고 → [노코]’, ‘않던 → [안턴]’, ‘닳지 → [달치]’로 확인된다.
또한 글쓰기 과정이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타인이 볼 글을 쓸 때, 스스로 검열하고 글이 충분히 좋은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러나 표현적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두서없고, 누가 읽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글을 쓴 후 버리면 된다. 이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감정과 교감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적절한 이해는 표현적 글쓰기가 참고 발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경청할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표현적 글쓰기가 ‘종일 꾹꾹 참고 발설하지 않은 취약한 측면을 찾아내고 그것에 대해 경청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직접 밝힌다.
-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설명: 지문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마주해야 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 자수성가를 칭송하는 데 필요하다는 설명: 그런 문화는 욕구를 간과하게 하는 압박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 타인을 의식해 스스로 검열한다는 설명: 표현적 글쓰기는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 두서없이 써서 간직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설명: 지문은 그런 글을 ‘쓴 후 버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낮은 액수의 제안을 받으면 거절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연구에서 나타난 명백한 결과에 따르면 총액의 25% 미만을 제안할 경우 그 제안은 거절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비록 자기의 이익이 최대화되지 않더라도 제안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 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액수를 반반으로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는 점은 이를 지지해 준다.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 ㉡ )는 것을 보여 준다.
㉠에는 ‘제안한 1,000원을 받든가, 한 푼도 받지 못하든가’, ㉡에는 ‘인간의 행동이 경제적 이득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가 들어가야 한다.
규칙상 B가 ‘제안을 거절하면, 아무도 그 돈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B의 선택지는 제안액 수령과 빈손 둘뿐이다. 또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이 최대화되지 않더라도 제안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 거절’하므로, 이익 외의 요인도 행동을 좌우한다.
- ㉡을 ‘경제적 이득에 의해서 움직인다’로 본 조합: ㉠은 맞지만 ㉡은 이기적 개인을 가정한 예측이어서 실험 결과와 어긋난다.
- ㉠을 ‘1,000원보다 더 적은 금액을 받든가’로 보고 ㉡을 공정성·상호 이득으로 본 조합: 규칙에 더 적은 금액을 받는 경우가 없어 ㉠이 틀렸다.
- ㉠을 ‘1,000원보다 더 적은 금액을 받든가’로 보고 ㉡을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로 본 조합: ㉡은 맞지만 ㉠이 같은 이유로 틀렸다.
- ㉡을 ‘공정성과 상호 이득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지 않는다’로 본 조합: 불공평하면 거절한다는 실험 결과와 정반대다.
나이브 아트는 개인적인 즐거움을 주제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이브 아트 예술가로는 앙리 루소, 앙드레 보샹, 모리스 허쉬필드, 루이 비뱅, 그랜마 모지스 등이 있다. 이들은 서양 미술의 기본 규칙인 원근법, 명암법, 구도 등에 구속되지 않는 평면적 화면, 단순하지만 강렬한 색채, 자세한 묘사 등을 특징으로 보여 준다.
전업 화가가 아닌 본업이 따로 있어 낮은 취급을 받던 아웃사이더 예술이었지만, 독일 출신의 컬렉터이자 비평가 빌헬름 우데가 루소, 보샹 등의 화가들을 발굴하며 하나의 예술 영역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나이브 아트는 피카소와 같은 기존 미술의 권위와 전통에 반하는 그림을 그리려는 화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현대미술의 탄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 < 보 기 > | ||
| ㄱ.나이브 아트에 속하는 화가로 루소, 보샹 등이 있다. ㄴ.나이브 아트는 특정한 유파를 가리킨다. ㄷ.나이브 아트 작가들은 서양 미술의 기본 규칙을 따르고자 한다. ㄹ.현대미술은 나이브 아트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 ||
적절한 설명은 ㄱ 하나뿐이다.
ㄱ은 옳다. 지문이 나이브 아트 예술가로 앙리 루소, 앙드레 보샹 등을 꼽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틀리므로 ㄴ·ㄷ·ㄹ이 포함된 조합은 성립하지 않는다.
- ㄴ(틀림): 지문은 ‘특정한 유파를 가리키기보다 작가의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 ㄷ(틀림): 작가들은 원근법, 명암법, 구도 같은 기본 규칙에 ‘구속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 ㄹ(틀림): 영향 관계가 뒤바뀌었다. 나이브 아트가 ‘현대미술의 탄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 김선우, 「단단한 고요」 -
적절하지 않은 이해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인간 이해를 보여 준다는 설명이다.
이 시는 도토리가 묵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리로 그려 낼 뿐,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나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대목이 없다.
- 청각적 이미지 중심의 형상화: ‘얼굴 부비는 소리’, ‘멍드는 소리’처럼 ‘소리’가 반복되고 그 끝에 ‘도토리묵 한 모’가 나온다.
- 나무의 도토리에서 묵으로 엉길 때까지의 과정: ‘후두둑 뛰어내려’에서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까지 순서대로 이어진다.
- ‘고요’와 ‘시끄러운’의 병치: ‘저 고요’를 ‘저토록 시끄러운’이라고 표현해 역설을 이룬다.
- 도토리의 의인화: ‘가슴 동당거리는’, ‘이별 인사 하는’, ‘서로 핥아 주는’에서 도토리를 사람처럼 그렸다.
(나)아동 정신의학자로 활동하며 연구를 이어간 끝에, 볼비는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불안정한 아이는 정서 발달과 행동 발달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또한 아이가 애착을 느끼는 대상이 아이를 세심하게 돌보고 보살필 때 아이는 보호받는 기분, 안전함, 편안함을 느끼고, 이는 아이가 건강하게 발달해서 생존할 확률을 높이는 요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애착이란 시간이 흐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유지되는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으로 정의할 수 있다. 특정한 사람과 어떻게든 가까이 있고 싶은 감정이 애착의 핵심이지만 상대가 반드시 똑같이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라)하지만 볼비는 아이가 엄마와 분리되면 엄청나게 괴로워하며, 다른 사람이 돌봐 주거나 먹을 것을 줘도 그러한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엄마와 아이의 유대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의미였다.
논리적 순서는 (다)-(가)-(라)-(나)이다.
애착을 정의한 (다)가 먼저 오고, (가)의 ‘이 현상’이 그 애착을 받는다. (라)는 ‘하지만’으로 (가)의 먹을 것 때문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나)는 ‘연구를 이어간 끝에’ 얻은 최종 결론을 제시한다.
- (가)-(나)-(다)-(라): ‘이 현상’이 가리킬 대상이 앞에 없고, 정의가 결론 뒤에 놓인다.
- (가)-(다)-(나)-(라): 역시 ‘이 현상’으로 시작하며, 통념을 뒤집는 (라)가 결론 뒤로 밀린다.
- (나)-(가)-(다)-(라): 연구의 결론이 연구의 출발보다 앞선다.
- (다)-(라)-(가)-(나): (라)의 ‘하지만’이 반박할 통념이 앞에 없고, 연구 시작을 말하는 (가)가 발견 뒤에 온다.
우리는 어떻게 시시각각 신기술로 무장하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첫째, ‘인공지능이 해 줄 수 있는 일’과 ‘인간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인간이 그것을 할 줄 몰라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을 지혜롭게 사용하려면 인공지능이 가진 성찰성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챗지피티의 흥미로운 특징은 매우 성찰적인 인공지능인 척하지만, 사실은 매우 형편없는 자기반성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데 있다.
인공지능의 기능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지, 기계의 역할이 아니다. 물론 인공지능은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의 오류를 교정하고 최적화하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명백하게도 인간 사용자의 특성과 의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사용자 경험을 통해 성능을 향상시켜 가고 있는 구글 번역기는 영어-스페인어 사이의 전환은 훌륭하게 수행하지만 영어-한국어 사이의 전환은 그만큼 잘하지 못한다. 그 사용자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사회의 소수자는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에서도 소수자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에 대해 성찰하는 역할만큼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맡기지 말아야 할 영역이다.
인공지능의 범람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또한 인간 스스로의 가치와 주체성도 과소평가하지 않는, 용감하고 당당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적절하지 않은 이해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양질의 정보를 가려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인공지능이 오류를 교정하는 기능을 갖추었다고 하면서도, 그 메커니즘은 ‘인간 사용자의 특성과 의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했다. 자기반성 능력도 ‘매우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성찰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 글의 입장이다.
- 인공지능과 공존하며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는 이해: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과 맞다.
- 머신러닝에 사용자의 특성이 반영된다는 이해: 구글 번역기의 사례로 뒷받침된다.
- 인간도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이해: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인간이 ‘할 줄 몰라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
- 성찰성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해: ‘인공지능이 가진 성찰성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그대로 밝혔다.
(나)배우는 자는 마땅히 자기 역량에 따라 알맞게 쓸 뿐이다. 억지로 남을 본떠서 자기 개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본령이다.
(다)글이란 것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제목을 놓고 붓을 잡은 다음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고전의 사연을 찾으며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화가를 불러서 초상을 그릴 적에 용모를 고치고 나서는 것과 같다.
(라)문장에 뜻을 두는 사람들이 첫째로 주의할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면 마음이 이치에 통하고 온갖 관찰력이 환하게 밝아질 것이다.
(마)대체 글이란 조화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정교하게 되나 손끝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정교하게 되지 않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적절하지 않은 이해는 (가)에서 훌륭한 문장이 빈부귀천에 따라 정해진다는 설명이다.
(가)는 ‘귀천과 빈부를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정하지 않는 것은 오직 문장뿐’이라고 했다. 가난한 선비도 빛을 남길 수 있다는 내용이므로 설명이 지문과 정반대다.
- (나)의 자기만의 개성 표현: ‘억지로 남을 본떠서 자기 개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과 맞다.
- (다)의 꾸밈보다 뜻의 표현: ‘글이란 것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라는 내용과 맞다.
- (라)의 진솔한 표현: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을 첫째로 든 내용과 맞다.
- (마)의 마음에서 이뤄지는 조화: ‘글이란 조화’이며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이 정교하다는 내용과 맞다.
쓰임이 옳지 않은 것은 ‘소에게 받쳐서’이다.
소의 뿔 등에 세게 부딪힌 것이므로 ‘받다’의 피동사 ‘받히다’를 써서 ‘받혀서’로 적어야 한다.
- 상추를 채반에 ‘밭쳤다’: 구멍 뚫린 물건에 올려 물기를 뺀다는 뜻의 ‘밭치다’로 바르다.
- 턱을 ‘받치고’: 물체의 밑에 다른 물체를 대어 괸다는 뜻의 ‘받치다’로 바르다.
- 내복을 ‘받쳐서’ 입으면: 옷의 안에 다른 옷을 입는다는 뜻의 ‘받치다’로 바르다.
- 상인에게 ‘받혀도’: 물건을 도거리로 사게 한다는 뜻으로, ‘받다’의 사동사 ‘받히다’가 바르게 쓰였다.
피동 표현이 옳지 않은 것은 ‘짚히는’이다.
‘짚다’의 피동사는 ‘짚이다’이므로 ‘짚이는 바가 없다’로 고쳐야 한다.
- ‘나뉜다’: ‘나누다’의 피동사 ‘나뉘다’를 바르게 활용했다.
- ‘덮인’: ‘덮다’의 피동사 ‘덮이다’를 바르게 활용했다.
- ‘베인’: ‘베다’의 피동사 ‘베이다’를 바르게 활용했다.
- ‘걷히고’: ‘걷다’의 피동사 ‘걷히다’를 바르게 활용했다.
띄어쓰기가 맞는 것은 ‘총금액’이다.
‘총-’은 ‘전체를 합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므로 뒷말에 붙여 쓴다.
- ‘못했다’: 일이 있어서 하지 못한 경우이므로 부사 ‘못’을 띄어 ‘못 했다’로 쓴다.
- ‘한달간’: ‘달’은 단위 명사이고 ‘-간’은 접미사이므로 ‘한 달간’으로 쓴다.
- ‘제문제’: ‘제’는 ‘여러’를 뜻하는 관형사이므로 ‘제 문제’로 띄어 쓴다.
- ‘해야 할 지’: ‘-ㄹ지’는 하나의 어미이므로 ‘해야 할지’로 붙여 쓴다.
옳은 표기는 종로 Jongno, 여의도 Yeouido, 신라 Silla이다.
로마자 표기법은 음운 변화를 표기에 반영한다. 종로는 비음화로 [종노], 신라는 유음화로 [실라]가 되어 각각 ‘Jongno’, ‘Silla’로 적는다. 또 ‘ㅢ’는 ‘ui’로 적으므로 여의도는 ‘Yeouido’이다.
- Jongro / Yeouido / Silla: 종로에 비음화를 반영하지 않았다.
- Jongro / Yeoeuido / Sinla: 종로·여의도·신라의 표기가 모두 틀렸다.
- Jongno / Yeoeuido / Silla: 여의도의 ‘ㅢ’를 ‘eui’로 잘못 적었다.
- Jongno / Yeoeuido / Sinla: 여의도의 표기가 틀리고, 신라에 유음화를 반영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타당성을 갖는 환경법을 요구하는 환경 정책은 애초부터 좌절될 수밖에 없다. 비록 나라와 문화마다 정도가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현대화 과정에서 족벌에 대한 충성심을 넘어서서 다른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충성심이 발달했다. 환경 정책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기회를 얻는다. 이기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환경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현대화 과정에서 발달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물론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환경을 지키려는 각오도 환경 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환경 운동은 완전히 보편적 방향으로 발달하기는 힘들다. 우선 자신의 이해관계부터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 탓에 근본적 긴장은 항상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적절한 이해는 올슨 패러독스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환경 운동은 완전히 보편적 방향으로 발달하기는 힘들다’고 하며, 그 이유로 ‘자신의 이해관계부터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 탓에 근본적 긴장은 항상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이기적 이해관계가 자연 지배권 인식과 함께 발달했다는 설명: 지문은 이기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안목이 발달했다고 할 뿐, 자연 지배권은 언급하지 않는다.
- 특정 생물 집단 보전에서 시작해 자연 경관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는 설명: 초창기 운동의 목표는 특정 조류를 보호하려는 ‘좁은 생각을 극복’하는 것이었고, 자연 경관 보호는 언급되지 않는다.
- 대규모 집단과 소규모 집단의 이해가 일치할 때 이루어진다는 설명: 지문은 두 집단의 이해 일치를 말하지 않고, 소규모 그룹의 추진력이 더 뛰어나다고 했다.
- 이기심이 직접적 동기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설명: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환경을 지키려는 각오’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과 어긋나고, 공리주의 원칙도 언급되지 않는다.
표기가 맞지 않는 단어는 ‘마굿간’이며, ‘마구간’으로 적어야 한다.
‘마구간(馬廏間)’은 한자어로만 이루어진 말이다. 사이시옷 규정에서 한자어끼리의 합성어는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의 여섯 단어만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
- ‘인사말’: [인사말]로 발음되어 뒷말에 사잇소리가 나지 않으므로 사이시옷을 적지 않는다.
- ‘등굣길’: 한자어 ‘등교’와 고유어 ‘길’의 합성어로, 뒷말이 된소리로 나서 사이시옷을 적는다.
- ‘빨랫줄’: 고유어 ‘빨래’와 ‘줄’의 합성어로, 뒷말이 된소리로 나서 사이시옷을 적는다.
- ‘셋방’: 한자어끼리의 합성어이지만 예외로 정한 여섯 단어에 들어 사이시옷을 적는다.
하여간 김 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 내, 병인의 땀 섞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 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 ㉡ )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차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뭇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 현진건, 「운수 좋은 날」에서 -
㉠에는 허장성세(虛張聲勢), ㉡에는 주야장천(晝夜長川)이 들어가야 한다.
㉠의 고함은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을 쫓으려는 것이므로, ‘실속 없이 큰소리치며 허세를 부림’을 뜻하는 허장성세가 맞다. ㉡은 ‘누워만 있으면’을 꾸미므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연달아’를 뜻하는 주야장천이 맞다.
- 노심초사(勞心焦思)와 주야불식(晝夜不息)의 조합: 노심초사는 몹시 애태움을 뜻해, 큰소리치는 ㉠의 고함과 맞지 않다.
- 허장성세와 전전반측(輾轉反側)의 조합: ㉠은 맞지만, 전전반측은 잠 못 이루고 뒤척인다는 뜻이어서 ‘누워만 있으면’과 맞지 않다.
- 절치부심(切齒腐心)과 전전반측의 조합: 절치부심은 분해서 이를 갈며 속을 썩인다는 뜻이어서 ㉠에 맞지 않고, ㉡도 맞지 않다.
- 노심초사와 주야장천의 조합: ㉡은 맞지만 ㉠에 노심초사가 맞지 않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 중후반에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광활한 대지의 개간이나 밭갈이에는 엄청난 노동력과 강한 근력이 요구되었다. 농사는 더 이상 여성의 섬세함만으로 해낼 수 없는 아주 고된 일로 바뀌었다. 마침 이 무렵, 집짐승 기르기가 시작되면서 남성들은 더 이상 사냥감을 찾아 산야를 헤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냥 활동에서 벗어난 남성들은 생산 활동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여성들은 보조자로 밀려나서 주로 집안일이나 육아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성이 주요 생산 활동을 담당하게 되고, ( ㉠ )
㉠에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앞 문단의 여성은 농사를 맡고 출산력으로도 중시되었으나, 뒤 문단에서는 남성이 ‘생산 활동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고 여성은 ‘보조자로 밀려나서’ 집안일과 육아를 맡는다. ㉠은 이 변화를 정리하는 자리다.
- 여성이 생산 활동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내용: 지문은 ‘보조자’로 밀려났다고 했을 뿐 완전한 배제를 말하지 않는다.
- 남성이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 남성의 본래 역할이 있다는 전제는 지문에 없다.
- 여성을 씨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 지문에 근거가 없다.
- 사냥에서 여성이 남성을 대체했다는 내용: 남성이 사냥에서 벗어났을 뿐, 여성이 사냥을 맡았다는 언급은 없다.
발터 벤야민은 “책을 획득하는 방법 중에서도 책을 직접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칭송할 만한 방법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라고 논평했던 적이 있다. 헤이안 시대의 여자들도 깨달았듯이 어떤 경우에는 책을 직접 쓰는 방법만이 유일한 길일 수가 있다. 헤이안 시대의 여자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로 일본 문학사에서, 아마도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몇 편을 남겼다. 무라사키 부인이 쓴 『겐지 이야기』와 작가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가 그 예이다.
『겐지 이야기』, 『마쿠라노소시』 같은 책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문화적·사회적 삶이 소상하게 나타나지만, 그 당시 궁정의 남자 관리들이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던 정치적 술책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언어와 정치 현장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이 쇼나곤과 무라사키 부인조차도 이런 활동에 대해서는 풍문 이상으로 묘사할 수 없었다. 어떤 예이든 이런 여성들은 근본적으로 그들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의 삶을 향해 거울을 받쳐 들고 있었던 셈이다.
적절한 설명은 읽을거리에 대한 열망을 문학 창작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여성들이 ‘읽을거리를 늘리기 위해’, 또 ‘그들만의 독특한 취향에 상응하는 읽을거리를 손에 넣기 위해’ ‘그들만의 고유한 문학을 창조해 냈다’고 밝힌다.
- 자신들의 언어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했다는 설명: 가나분카쿠를 개발해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로’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 궁정의 정치적 행위를 치밀하게 묘사했다는 설명: 정치적 술책에는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았고 ‘풍문 이상으로 묘사할 수 없었다’고 했다.
- 한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창작했다는 설명: 지문은 그런 내용을 말하지 않으며, 이들의 언어는 ‘한자 구조가 거의 배제된’ 것이 특징이다.
- 남성적 취향의 문학 독서를 수행했다는 설명: 여성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읽을거리를 찾아 ‘그들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외래어 표기가 옳은 것은 ‘재스민’이다.
영어 jasmine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재스민’으로 적는다. 나머지는 모두 굳어진 잘못된 표기를 쓴 경우다.
- ‘부페’: 프랑스어 buffet의 바른 표기는 ‘뷔페’이다.
- ‘애드립’: 영어 ad lib의 바른 표기는 ‘애드리브’이다.
- ‘팜플렛’: 영어 pamphlet의 바른 표기는 ‘팸플릿’이다.
- ‘꽁트’: 프랑스어 conte의 바른 표기는 ‘콩트’로, 외래어 표기에서는 파열음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
첫째는 상황이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놓일 수는 없다. 제한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부모의 학대로 인해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처럼 자신의 의지나 책임이 아닌 절대적 상황이 그런 경우다. 이때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나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는 사람이 상황을 선택하는 경우다. 이때는 자신의 욕망이나 목표에 맞는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면 상황을 설명하고 조퇴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회적 압력이나 압박들이 단순히 직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고 보다 더 본질적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불균형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주 왜곡된 관념들로 치닫기 시작하면 상황이 사람을 지배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해를 가해서라도 그런 상황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상황을 지배해 나가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래서 상황이 사람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사람이 상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다른 측면이 점화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공손함이나 공격성 등은 상황에 따라 점화되는 것이 다르다. 우리가 읽거나 들었던 단어 또는 정보가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이러한 현상을 ‘점화 효과’라고 한다.
윗글의 서술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설명은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점화 효과’의 개념을 소개하지만 구체적인 실험이나 그 결과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 예의 제시: ‘예를 들어’로 경제적 어려움, 조퇴 등의 사례를 들었다.
- 서로 다른 내용의 대비: ‘상황이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와 ‘사람이 상황을 선택하는 경우’를 맞세웠다.
- 개념의 제시: ‘이러한 현상을 ‘점화 효과’라고 한다’고 개념을 밝혔다.
- 병렬적 구조: ‘첫째’, ‘둘째’로 영향의 방식을 나란히 나열했다.
첫째는 상황이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놓일 수는 없다. 제한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부모의 학대로 인해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처럼 자신의 의지나 책임이 아닌 절대적 상황이 그런 경우다. 이때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나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는 사람이 상황을 선택하는 경우다. 이때는 자신의 욕망이나 목표에 맞는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면 상황을 설명하고 조퇴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회적 압력이나 압박들이 단순히 직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고 보다 더 본질적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불균형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주 왜곡된 관념들로 치닫기 시작하면 상황이 사람을 지배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해를 가해서라도 그런 상황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상황을 지배해 나가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래서 상황이 사람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사람이 상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다른 측면이 점화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공손함이나 공격성 등은 상황에 따라 점화되는 것이 다르다. 우리가 읽거나 들었던 단어 또는 정보가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이러한 현상을 ‘점화 효과’라고 한다.
윗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이해는 경제적 불균형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을 지배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왜곡된 관념으로 치달으면 상황이 사람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상황을 지배해 나가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했다.
- 사람과 상황이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이해: 첫 문장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들’을 소개한다고 밝혔다.
- 부모의 학대가 절대적 상황이라는 이해: ‘자신의 의지나 책임이 아닌 절대적 상황’의 예로 들었다.
- 조퇴가 합리적 판단이라는 이해: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의 예로 들었다.
- 공격성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점화된다는 이해: ‘공손함이나 공격성 등은 상황에 따라 점화되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첫닭 울고 둘째 닭 울더니 작은 별 큰 별 떨어지는데 문을 들락거리며 살짝이 살짝이 행인은 길 떠날 채비하네
2
나그네 새벽 틈타 떠나렸더니 주인은 안 된다며 보내질 않네 채찍을 손에 쥔 채 못 이긴 척 돌아서니 닭만 괜스레 번거롭게 했구나
- 이병연, 「조발(早發)」 -
| < 보 기 > | ||
| ㄱ.‘첫닭’은 시간적 배경을 드러낸다. ㄴ.‘나그네’와 ‘주인’의 관계가 닭 울음으로 인해 달라진다. ㄷ.‘살짝이 살짝이’는 ‘행인’의 조심스러운 심리를 나타내고 있다. ㄹ.화자는 ‘나그네’와 ‘주인’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 ||
적절한 것은 ㄱ, ㄷ, ㄹ이다.
ㄴ만 틀리므로 ㄱ, ㄷ, ㄹ을 모두 포함하고 ㄴ은 뺀 조합만 성립한다.
- ㄱ(옳음): ‘첫닭’과 ‘둘째 닭’ 울음은 길 떠날 무렵인 새벽을 드러낸다.
- ㄴ(틀림): 나그네를 붙드는 것은 주인의 만류이며, 닭 울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바꾸지는 않는다. ‘닭만 괜스레 번거롭게 했구나’도 닭 울음이 소용없었다는 뜻이다.
- ㄷ(옳음): 행인이 ‘살짝이 살짝이’ 채비하는 모습에서 조심스러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ㄹ(옳음): 화자는 ‘행인’, ‘나그네’, ‘주인’이라 부르며 인물들의 행동을 바깥에서 지켜보듯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