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단어가 모두 파생어인 묶음은 ‘많이, 알짜, 돋보기, 철렁거리다’이다.
많이(많- + -이), 알짜(알 + -짜), 돋보기(돋보- + -기), 철렁거리다(철렁 + -거리다)는 모두 어근에 접사가 붙어 만들어졌다.
- ‘잠, 덮개, 굳세다, 덧나다’는 굳세다가 어근 ‘굳-’과 ‘세-’가 결합한 합성어이므로 제외된다.
- ‘기쁨, 크기, 밀치다, 어린이’는 어린이가 ‘어린’과 ‘이’가 결합한 합성어이므로 제외된다.
- ‘멀리, 접칼, 곁눈질, 좁히다’는 접칼이 ‘접-’과 ‘칼’이 결합한 비통사적 합성어이므로 제외된다.
- ‘웃음, 밝히다, 어녹다, 여닫이’는 어녹다가 ‘얼다’와 ‘녹다’가 결합한 합성어이므로 제외된다.
| < 보 기 > | ||
| 마르세이유, 밸런타인데이, 비젼, 엠블런스, 엔도르핀, 윈도, 플루트, 코즈모폴리턴, 크리스찬 | ||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단어는 다섯 개이다.
옳은 표기는 밸런타인데이, 엔도르핀, 윈도, 플루트, 코즈모폴리턴이다.
나머지 네 단어는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 마르세이유는 ‘마르세유’로 적는다.
- 비젼은 ‘비전’으로 적는다. 외래어 표기에서는 ‘져’를 쓰지 않고 ‘저’로 적는다.
- 엠블런스는 ‘앰뷸런스’로 적는다.
- 크리스찬은 ‘크리스천’으로 적는다.
어법에 맞는 문장은 ‘구름양’을 쓴 문장이다.
‘量’은 한자어 뒤에서는 ‘량’(강수량)으로 적지만 고유어·외래어 뒤에서는 독립된 단어처럼 ‘양’으로 적는다. 고유어 ‘구름’ 뒤이므로 두음법칙에 따른 ‘구름양’이 옳다.
- ‘경제 성장율’은 ‘성장률’로 써야 한다. 모음이나 ‘ㄴ’ 받침 뒤가 아니므로 ‘률’로 적는다.
- ‘회계년도’는 ‘회계 연도’로 써야 한다. 한자어 ‘年度’는 두음법칙에 따라 ‘연도’로 적는다.
- ‘펜팔란’은 ‘펜팔난’으로 써야 한다. ‘欄’은 고유어·외래어 뒤에서 ‘난’으로 적는다.
- ‘싹뚝’은 ‘싹둑’으로 써야 한다. ‘ㄱ’ 받침 뒤의 된소리는 같은 음절이 겹치는 경우가 아니면 예사소리로 적는다.
| < 보 기 > | ||
| ㄱ.최근 주식이 하락세로 치닫고 있습니다. ㄴ.언제까지 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ㄷ.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필 수 없습니다. ㄹ.청소년에게 걸맞는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ㅁ.이 꽃에게 물을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 ||
어법에 맞는 문장은 ㄴ 하나뿐이다.
ㄴ의 ‘뒤치다꺼리’는 바른 표기이다. ㄱ은 ‘치닫다’가 본디 위쪽으로 달려 올라간다는 뜻이어서 ‘하락세로’와 어울리지 않고, 하락하는 대상도 주식 자체가 아니라 ‘주가’여야 호응한다. ㄷ은 ‘담배를 필’이 아니라 ‘피울’로, ㄹ은 ‘걸맞는’이 아니라 ‘걸맞은’으로 써야 한다. ㅁ은 무정 명사 ‘꽃’에 ‘에게’를 쓸 수 없어 ‘꽃에’로 고쳐야 한다.
- ‘ㄱ, ㄴ’ 조합은 ㄱ의 ‘주식이 하락세로 치닫고’가 의미상 호응하지 않아 맞지 않다.
- ‘ㄴ, ㄷ’ 조합은 ㄷ의 ‘필’이 ‘피우다’의 잘못이어서 맞지 않다.
- ‘ㄹ, ㅁ’ 조합은 ㄹ과 ㅁ이 모두 어법에 어긋나 맞지 않다.
- ‘ㄷ, ㄹ, ㅁ’ 조합은 세 문장 모두 어법에 어긋나 맞지 않다.
뜻풀이가 잘못된 단어는 백안시(白眼視)이다.
백안시는 흰 눈으로 본다는 데서 나온 말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봄을 뜻한다. ‘친밀하고 반가운 감정으로 대하는 눈매’는 이와 반대되는 풀이이다.
- 천착(穿鑿)은 구멍을 뚫듯 깊이 파고들어 연구한다는 뜻으로 뜻풀이가 옳다.
- 소원(疎遠)은 사이가 멀어 서먹서먹하다는 뜻으로 뜻풀이가 옳다.
- 첩경(捷徑)은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이라는 뜻으로 뜻풀이가 옳다.
- 진작(振作)은 떨쳐 일어나거나 일으킨다는 뜻으로 ‘사기 진작’의 쓰임에 맞다.
다음 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시인 이육사가 북경에서 총살당했다는 소문은 한심통박하였다. 아직 젊은 나이에, 또 그렇게 꿈꾸고 바라던 조국 광복도 보지 못한 채. 그러나 조국 광복의 간절한 소망을 시로 남겼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 손녀가 읽어 준 육사의 시에는 그가 바라는 손님은 청포를 입고 찾아올 것이라고 하얀 모시수건을 은쟁반에 준비하라고 했다. 조국 광복을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기다렸을지를 나는 안다.
해방 이듬해 시월에 이육사의 동생들인 원일, 원조, 원창 삼형제가 내가 살고 있는 돗질에 들렀다. 묘사(墓祀)를 지내러 안동에 오는 길에 외사촌 누나인 날 보러 왔던 것이다. “우리는 국수 좋아하는데 국수 좀 해 주시려는가?” 그들 중 누가 그랬다.
“국수 좋아하면 더 좋지. 반찬 따로 안 해도 되고.”
대답해 놓고 밀가루 반죽해서 손으로 썰어 얼른 칼국수를 해 주었다. 한 그릇씩 먹고 더 먹는 걸 보고 어찌나 흐뭇했던지 모른다. 집 앞에 있는 정자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더니 벽계(碧溪) 소리 좋다고 찬사가 대단했다.
“원일이 너 거기서 시 하나 지어라.” 했더니, 그렇잖아도 쓰려던 중이라 했다. 바위틈으로 졸졸 흐르는 도랑물이 큰 바위 석곽에 일단 고였다가 다시 떨어지는 그 석천(石泉)의 운치가 보통사람에게도 예사롭진 않았다.
육사 형제는 모두 여섯이다. 원기, 원삼, 원일, 원조, 원창, 원홍이다. 원삼이가 곧 육사인데, 아명은 원록이라고도 했다. 육사는 해방되기 얼마 전에 만주에서 돌아와 서울 들렀다 북경 갔다고 했다. 그 길로 붙잡혀 그 이듬해 사형당했다. 그가 바라던 청포 입은 손님도 맞이하지 못하고 마흔 살 나이에 아깝게 갔다.
원일이하고 남편하고는 동갑이라 집에 오면 늘 항렬 따지고 생일 따지며 서로 자기가 어른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고모(육사 어머니)가 안동으로 시집와 시어머니의 친정 질부가 된 때문에 양쪽으로 친척이라 항렬 따지기가 좀 복잡했다.
- 허은 구술, ꡔ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ꡕ 에서 -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육사가 시를 지어 읊었다는 회상이다.
글쓴이가 시를 지으라고 권한 인물은 동생 원일이다. “원일이 너 거기서 시 하나 지어라.”라는 구절이 근거이며, 이육사 본인은 이 일화에 없다. 그는 이 일화 이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 이육사가 서른아홉 살에 체포되었다는 내용은 “그 길로 붙잡혀 그 이듬해 사형당했다”와 “마흔 살 나이에”에서 알 수 있다.
- ‘청포 입은 손님’이 조국 광복을 의미한다는 내용은 손님을 기다리는 시를 조국 광복을 기다리는 마음과 연결한 대목에서 확인된다.
- 어린 시절 이름이 ‘원록’이었다는 내용은 “아명은 원록이라고도 했다”와 일치한다.
- ‘나’의 남편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내용은 남편이 동생 원일과 동갑이라는 진술에서 추론된다. 형제 순서에서 육사는 원일의 형이다.
이 문장은 ㉠‘만나다’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즉, ㉡‘동생’이 주체가 되는 경우 ‘어떤 사람이든지’는 대상으로서 목적어 역할을 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이든지’가 주체가 되는 경우 ‘동생’은 서술어의 ‘대상’이 된다. ㉣이 문장에서 ‘어떤’은 부정칭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하다’는 문장의 본동사로 사용되었다.
옳지 않은 설명은 ㉤이다.
‘만나려 한다’의 ‘하다’는 앞의 본동사 ‘만나다’에 의도의 의미를 더하는 보조 동사이다. 따라서 문장의 본동사로 쓰였다는 설명은 틀렸다.
- ㉠은 옳다. ‘만나다’의 주체를 동생으로 볼 수도, 어떤 사람으로 볼 수도 있어 중의적이다.
- ㉡은 옳다. 동생이 주체이면 ‘어떤 사람이든지’는 동생이 만날 대상이 된다.
- ㉢은 옳다. 어떤 사람이 주체이면 ‘동생’이 만남의 대상이 된다.
- ㉣은 옳다. ‘어떤’은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아 부정칭의 의미를 갖는다.
음식의 역사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식의 역사만큼 거시사와 미시사를 아우르는 것도 없다. 사람은 잘났건 못났건 누구나 먹어야 살고, 먹기 위해 경제 활동은 물론이고 사회활동도 정치활동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개인이나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를 알면 그 사회의 역사가 보인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거시적 관점의 추상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음식의 역사가 “거시사와 미시사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뿐, 거시적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거나 그 극복을 논하지 않는다.
- 배추와 배추김치가 다른 음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내용은 이들이 음식의 역사 서술을 논하기 위한 예시라는 점에서 적절하다.
- 문헌 고증만으로 부족하다는 내용은 “단순 나열만 한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와 부합한다.
- 식사가 미시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내용은 “먹기 위해 경제 활동은 물론이고 사회활동도 정치활동도 하기 때문이다”에서 추론된다.
- 사회적 기반과 경제적 여건을 통찰해야 한다는 내용은 “그 속에는 경제와 정치와 사회가 있다”와 부합한다.
신경성 식욕 부진증은 10대 전후에서 시작해서 20대에 가장 많이 발견된다. 인구의 4% 정도까지 이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흥미롭게도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직접 요리를 해서 다른 사람을 먹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칼로리 소모를 위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움직이고 음식물의 칼로리나 영양분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고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신경성 식욕 부진증의 근본적인 문제는 ‘나는 뚱뚱하다.’라고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거울을 보여주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도 자신은 아직 뚱뚱하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긴다. 깡말랐음에도 불구하고 1〜2kg만 늘면 무척 불편해하고, 쓸데없는 살덩이가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힘들어한다. 주변에서 볼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특히 부모들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10명 중에 1명의 환자는 결국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적절한 것은 왜곡된 신체 이미지가 문제라는 내용이다.
지문은 “근본적인 문제는 ‘나는 뚱뚱하다.’라고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 진술과 직접 일치한다.
- 식욕 통제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내용은 환자가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서술과 맞지 않다.
- 생명을 잃을 확률이 4%라는 내용은 틀렸다. 4%는 이 병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구 비율이고, 사망은 “10명 중에 1명”이다.
- 음식 냄새조차 거부한다는 내용은 지문에 없고, 오히려 “직접 요리를 해서 다른 사람을 먹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 영양분과 칼로리에 무지해서 발병한다는 내용은 음식물 지식이 “해박하다”는 서술과 반대이다.
(나)행동방식이라는 측면에서도 일상성은 양식을 완전히 추방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에 대한 그리움은 한층 더 진하여, 그것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거의 필사적이다. 우리의 추석 명절, 차례 풍습을 생각해 보자. 제기와 의복을 고루 갖춘 명문 선비가의 차례의식을 TV화면이 비추는 것은 이 양식에 대한 현대인의 강한 노스탤지어의 표현이다. (중략) 양식은 하찮은 물건, 하찮은 행위, 무의미한 제스처 하나하나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옛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양식에 의거해서 행동했다.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줄 양식이 사라진 오늘날, 사람들이 공허감, 권태, 무기력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양식이란 무엇인가? 우선 예술분야에서 말해 본다면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어떤 소재와 형태를 다루는 특정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방법을 뜻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그와 비슷한 성격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그 시대의 어떤 미학적 전형을 이룬다. 어떤 미술 유파의 양식이라든가, 또는 영국 양식의 가구라든가 하는 말이 그것이다.
(라)그러나 양식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그것에 대한 향수는 한층 더 짙어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양식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그에 대한 악착같은 추구로 특징지어진다고 르페브르는 말한다. 1960년대의 프랑스를 묘사한 이와 같은 현상은 1980년대의 우리나라와 너무도 비슷하다. 19세기의 농민들이 마지못해 가졌을 시골 가구들이 현대 부르주아의 거실을 장식하고 있다고 르페브르가 말했듯이, 지금 서울의 상류층 가정들은 시골 행랑채에나 있었을 투박한 원목가구를 거실의 가장 중심부에 두고 애지중지하고 있다. 골동품이나 옛 양식의 가구에 대한 취미는 단순히 개인적인 여가선용이나 고가품에 대한 취미가 아니라 양식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리고 일상과의 단절이라는 염원을 담고 있음을 그는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마)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행동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생활양식이니 행동양식이니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옛날에는 농부의 옷장에도 양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비싼 가구에도 양식이 없다. 형태, 기능, 구조의 어떤 통일성이 양식을 형성하는 것인데, 현대에 와서는 이것들이 분리되거나 마구 뒤섞였다. 대중사회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양식의 종말을 고한다. 대중의 수용에 부응하는 대량생산은 기능 이외의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 순서는 (가) - (다) - (마) - (라) - (나)이다.
(가)가 일상성의 특징으로 ‘양식의 부재’를 제시하고, (다)가 “양식이란 무엇인가?”로 개념을 풀며, (마)가 “또 한편으로는”으로 뜻풀이를 이어 양식의 종말까지 말한다. 이어 (라)가 “그러나 양식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으로 향수를 말하고, (나)가 행동방식 측면에서 그 그리움과 공허감을 정리한다.
- (가) - (다) - (라) - (마) - (나) 순서는 (다)의 첫째 뜻에 이어져야 할 (마)의 “또 한편으로는”이 (라) 뒤로 밀려 맞지 않다.
- (다) - (나) - (가) - (라) - (마) 순서는 화두를 여는 (가)가 뒤로 가고 (마)의 “또 한편으로는”이 (다)와 끊어져 맞지 않다.
- (다) - (마) - (가) - (라) - (나) 순서는 “양식이란 무엇인가?”가 양식의 부재를 제시한 (가)보다 앞서 맞지 않다.
- (다) - (마) - (라) - (가) - (나) 순서도 (가)가 뒤로 밀려 양식이라는 화두가 제시되기 전에 개념 풀이가 시작되므로 맞지 않다.
그러나 현대 농업의 단작화와 품종의 단순화는 농경지 생태계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어들면 병, 해충, 기후 변화, 환경 변화 등에 취약해지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이에 대한 예는 매우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벼농사 경험이 그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에 통일벼를 육성하고 대대적인 보급을 하여 1976년에는 국민의 염원인 쌀의 자급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978년에는 우리나라 논 전체의 70% 이상에서 통일계 품종이 재배되었다. 통일계 품종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에는 우리나라 논농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도열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거듭되고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통일계 품종들이 점차 늘어나자 새로운 도열병 균계가 생겨나 통일계 품종의 저항성이 무너짐으로써 1973년에 전국적으로 이삭목 도열병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문은 단작화와 품종 단순화의 위험을 지적하고 통일벼 사례로 뒷받침할 뿐, 구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는다.
- 재배 관련 여러 개념은 윤작, 복작, 단작을 설명한 데서 확인된다.
- 구체적 수치는 “단지 6개 품종이 옥수수 생산량의 70% 이상”과 같은 서술에서 확인된다.
- 과거와 현대의 대비는 전통 농업의 윤작·복작과 현대의 단작을 견주는 데서 확인된다.
- 여러 예시 중 하나를 골라 설명한 점은 “우리나라의 벼농사 경험이 그중 하나이다”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현대 농업의 단작화와 품종의 단순화는 농경지 생태계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어들면 병, 해충, 기후 변화, 환경 변화 등에 취약해지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이에 대한 예는 매우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벼농사 경험이 그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에 통일벼를 육성하고 대대적인 보급을 하여 1976년에는 국민의 염원인 쌀의 자급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978년에는 우리나라 논 전체의 70% 이상에서 통일계 품종이 재배되었다. 통일계 품종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에는 우리나라 논농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도열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거듭되고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통일계 품종들이 점차 늘어나자 새로운 도열병 균계가 생겨나 통일계 품종의 저항성이 무너짐으로써 1973년에 전국적으로 이삭목 도열병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윗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 도열병 저항성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유전적으로 유사한 통일계 품종이 늘자 새로운 균계가 생겨 “저항성이 무너짐으로써” 큰 피해가 났다고 서술한다. 내용이 정반대이다.
- 복작과 단작이 대비된다는 내용은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과 한 작물만 재배하는 방식을 맞세운 데서 적절하다.
- 개량된 소수 품종이 주를 이룬다는 내용은 “소수의 품종들이 들판을 차지하게 되었다”와 일치한다.
- 단작화가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한다는 내용은 “농경지 생태계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다”와 일치한다.
- 통일벼 육성으로 쌀을 자급했다는 내용은 “1976년에는 국민의 염원인 쌀의 자급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와 일치한다.
이것이 바로 야생종들이 인류가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 유지를 도와주는 생성물들의 원천이 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산물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약물에 관한 것들이다. 미국의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약물의 40% 이상이 원래 식물, 동물, 곰팡이, 미생물 등에서 추출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약인 아스피린은 살리실산에서 만들어 낸 것인데, 살리실산은 다시 톱니꼬리조팝나무의 한 종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약으로 쓰일 수 있는 자연 생성물이 들어 있는지 검사된 것은 그 종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항생물질과 항말라리아제 발견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물질들은 질병 유기체가 약에 대한 유전적 저항성을 획득함에 따라 그 효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보편적인 포도상구균 박테리아는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병원체로서 다시 등장했고 폐렴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의학 연구자들은 앞으로 더욱 격렬해질 것이 분명한, 빠르게 진화하는 병원체들과의 군비 경쟁에 붙잡혀 있다. 21세기 의학의 새로운 무기를 얻기 위해서는 더 광범위한 야생종들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적절한 것은 야생종의 유전자를 연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유전자가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을 돕고, 그래서 야생종이 “우리의 생명 유지를 도와주는 생성물들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더 광범위한 야생종들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맺어 이 내용과 부합한다.
- 생화학적 장치가 유전자의 진화보다 더 크게 기여했다는 비교는 지문에 없다. 장치를 작동시키는 주체가 유전자이다.
- 인간의 환경 문제와 무관하다는 내용은 야생종이 “인류가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서술과 어긋난다.
- 인간이 유전적 저항성을 획득했다는 내용은 틀렸다. 저항성을 획득한 쪽은 “질병 유기체”이다.
- 병원체가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은 틀렸다. 지문은 기존 약의 효과가 줄고 병원체가 “다시 등장”하며 진화한다고 설명한다.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 짝이 아닌 것은 ‘야무지다 - 야물딱지다’이다.
이 짝에서는 ‘야무지다’만 표준어이고, ‘야물딱지다’는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다.
- ‘굽신거리다’와 ‘굽실거리다’는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다.
- ‘꺼림직하다’와 ‘꺼림칙하다’는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다.
- ‘남사스럽다’와 ‘남우세스럽다’는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다.
- ‘두루뭉술하다’와 ‘두리뭉실하다’는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다.
띄어쓰기가 옳지 않은 것은 ‘들어했다’이다.
‘-어하다’는 단어 뒤에서는 붙여 쓰지만, ‘마음에 들다’처럼 구 뒤에 올 때는 띄어 ‘마음에 들어 했다’로 쓴다.
- ‘될법하다’는 옳다. ‘될 법하다’가 원칙이고 본용언과 보조 용언을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된다.
- ‘올 듯도 하다’는 옳다. 중간에 조사가 들어가면 보조 용언을 띄어 쓴다.
- ‘기억해둘 만하다’는 옳다. 보조 용언이 겹칠 때 앞의 보조 용언만 붙여 쓸 수 있다.
- ‘떠내려가 버렸다’는 옳다. 앞말이 합성 동사이면 보조 용언을 띄어 쓴다.
쓰임이 옳지 않은 단어는 ‘졸인다’이다.
생선에 양념이 배어들게 바짝 끓이는 일은 ‘조리다’이므로 ‘생선을 조린다’로 써야 한다. ‘졸이다’는 마음을 졸이는 경우나 찌개를 졸게 하는 경우에 쓴다.
- ‘늘인다’는 옳다. 본디보다 더 길어지게 하는 뜻이므로 고무줄에 맞다.
- ‘부치다’는 옳다. 어떤 문제를 다른 기회로 넘겨 맡긴다는 뜻으로 ‘회의에 부치다’로 쓴다.
- ‘걷힌다’는 옳다. 돈이나 물건을 거둔다는 뜻의 ‘걷다’의 피동사이다.
- ‘이따가’는 옳다. 조금 지난 뒤에라는 뜻의 부사이다.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東海)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 장만영, 「달·포도(葡萄)·잎사귀」-
적절하지 않은 것은 화자가 동해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는 설명이다.
시의 공간은 “고풍한 뜰”이다. “동해바다 물처럼”은 푸른 가을밤을 나타내는 비유일 뿐 화자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 돈호법은 “순이”를 부르는 표현에서 확인된다.
- 공감각적 심상은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에서 시각 대상을 후각으로 표현한 데서 확인된다.
- 직유법은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에서 확인된다.
- 주요 소재가 제목이 되었다는 점은 달, 포도, 잎사귀가 시상의 중심 소재이자 제목이라는 데서 확인된다.
바르게 연결된 것은 ㉠ 부싯돌 / ㉡ 빗물 / ㉢ 훗일이다.
부싯돌은 뒷말이 된소리로 나고, 빗물은 [빈물]로 ‘ㄴ’ 소리가 덧나며, 훗일은 [훈닐]로 ‘ㄴㄴ’ 소리가 덧난다.
- ‘귓병 / 잇몸 / 웃어른’ 연결은 웃어른이 사이시옷이 아니라 접두사 ‘웃-’이 붙은 말이어서 맞지 않다.
- ‘덧저고리 / 툇마루 / 깻잎’ 연결은 덧저고리가 접두사 ‘덧-’이 붙은 말이어서 맞지 않다.
- ‘돗자리 / 뒷머리 / 베갯잇’ 연결은 돗자리의 ‘돗’이 사이시옷이 아니라 본래 ‘돗’이라는 명사여서 맞지 않다.
- ‘절댓값 / 도리깻열 / 가욋일’ 연결은 도리깻열이 [도리깬녈]로 ‘ㄴㄴ’ 소리가 덧나 ㉡이 아니라 ㉢에 속하므로 맞지 않다.
| < 보 기 > | ||
| ㄱ.그 사람은 생각이 매우 깊다. ㄴ.도대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ㄷ.이제는 어차피 늦었으니 너무 서두르지 맙시다. ㄹ.왜 그런 일을 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ㅁ.사과를 수확하는 해의 기후 조건이 중요하다. ㅂ.친구는 접시에 밥을 담고 카레 소스를 얹었다. | ||
한자어만 고른 조합은 ‘ㄴ, ㄷ, ㅁ’이다.
도대체(都大體), 어차피(於此彼), 사과(沙果)는 한자어이다. 생각, 도무지, 접시는 고유어로 분류한다.
- ‘ㄱ, ㄴ, ㅁ’ 조합은 고유어 ‘생각’이 들어 있어 맞지 않다.
- ‘ㄱ, ㄷ, ㅂ’ 조합은 고유어 ‘생각’과 ‘접시’가 들어 있어 맞지 않다.
- ‘ㄴ, ㄷ, ㅂ’ 조합은 고유어 ‘접시’가 들어 있어 맞지 않다.
- ‘ㄷ, ㄹ, ㅁ’ 조합은 고유어 ‘도무지’가 들어 있어 맞지 않다.
| < 보 기 > | ||
| ㄱ.받은 공문을 다른 부서로 다시 보내어 알림 또는 그 공문 ㄴ.헌법상의 조약 체결권자가 조약을 최종적으로 확인, 동의하는 절차 ㄷ.입법부가 법률에 지정된 공무원의 임명과 행정부의 행정 행위를 인정하는 일 ㄹ.윗사람이나 관청 등에 일에 대한 의견이나 사정 따위를 말이나 글로 보고하는 것 ㅁ.납세 의무자의 신고가 없거나 신고액이 너무 적을 때에 정부가 과세 표준과 과세액을 변경하는 일 ㅂ.주로 공사나 용역 따위의 큰 규모의 거래에서 수요자가 물건이나 건축 공사 따위를 공급자에게 주문함 | ||
바른 연결은 이첩(移牒), 비준(批准), 인준(認准), 상신(上申), 경정(更正), 발주(發注)의 순서이다.
조약을 최종 확인·동의하는 절차가 비준이고, 입법부가 공무원 임명 등을 인정하는 일이 인준이다. 공문을 다른 부서로 다시 보내는 일은 이첩, 윗사람에게 말이나 글로 보고하는 일은 상신, 세액을 변경하는 일은 경정, 주문을 내는 일은 발주이다.
- ㄴ에 인준, ㄷ에 비준을 놓은 연결은 두 말의 뜻이 뒤바뀌어 맞지 않다.
- ㅁ에 갱정, ㅂ에 수주를 놓은 연결은 ‘更正’의 바른 독음이 ‘경정’이고 수주는 주문을 받는 일이어서 맞지 않다.
- ㄱ에 통첩을 놓고 ㄴ·ㄷ을 뒤바꾼 연결은 통첩이 문서로 알리는 일을 뜻하고 비준·인준도 어긋나 맞지 않다.
- ㄱ에 통첩, ㅁ에 갱정, ㅂ에 수주를 놓은 연결은 여러 항목이 어긋나 맞지 않다.
그의 살갗 밑을 흐르는 혈액 속에는 표면장력이 있어 그는 늘 그렇게 자신의 표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염원으로 잔뜩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합니다, 아주 죄송스럽군요, 하는 듯한 웃음을 언제든 필요할 때 즉시 내보낼 수 있도록 입 안쪽 어디쯤에 고여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허공을 정확히 정육각형으로 조각조각 가르고 있는 창살 너머 잔잔히 깔린 비늘구름에 노을빛이 묻어 불그레하게 빛나고 있다. 나는 때때로, 특히 달 밝은 밤 창 바깥쪽에서 잠자리나 초파리의 수많은 겹눈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나 거의 유아적인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는 여전히 웅크린 채 창틀에 앉아 휘익휘익 휘파람을 불고 있다. 바람 때문에 공기의 진동은 내가 있는 곳에 채 닿기도 전에 소리의 형태를 스러뜨리고 사라져버려 나는 그가 어떠한 곡조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오정희, 「불의 강」에서 -
적절한 것은 사건 서술 없이 묘사에 치중한다는 설명이다.
지문은 창틀에 웅크린 ‘그’의 외양과 철창, 비늘구름, 노을빛, 바람 같은 시공간 묘사로 이루어져 있고,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다.
- 대상의 객관적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 수은이나 “미안합니다” 하는 듯한 웃음 등 ‘나’의 주관적 연상이 짙다.
- 대상의 심리를 직접 드러낸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 ‘그’의 내면은 “것 같다”로 추측될 뿐이다.
- 사건을 압축적으로 요약한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 지문에는 요약할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 시선의 동선에 따라 장면이 바뀐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 창살 너머로 눈길이 잠시 옮겨도 창가의 한 장면에 머문다.
거기에 말과 글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말과 글이 같으면서 다른 점은 여러 각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말은 청각에 이해시키는 점, 글은 시각에 이해시키는 점이 다르다. 말은 그 자리, 그 시간에서 사라지지만 글은 공간적으로 널리, 시간적으로 얼마든지 오래 남을 수 있는 것도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지적이 있다.
먼저, 글은 말처럼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배워야 글자도 알고, 글 쓰는 법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말은 외국어가 아닌 이상엔 커가면서 거의 의식적인 노력 없이 배워지고, 의식적으로 연습하지 않아도 날마다 말하는 것이 절로 연습이 된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생활만큼은 별 걱정 없이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글은 배워야 알고, 연습해야 잘 쓸 수 있다.
또 말은 머리도 꼬리도 없이 불쑥 나오는 대로, 한 마디 혹은 한두 마디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한두 마디만 불쑥 나오더라도 제3자가 이해할 수 있는 환경과 표정과 함께 지껄여지기 때문이다. 연설이나 무슨 행사에서 쓰는 말 외에는 앞에 할 말, 뒤에 할 말을 꼭 꾸며가지고 할 필요가 없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글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내용이다.
지문은 말과 글의 습득 과정 차이를 설명할 뿐,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글의 가치가 더 크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특성은 “말은 청각에 이해시키는 점, 글은 시각에 이해시키는 점”과 “말은 그 자리, 그 시간에서 사라지지만”에서 확인된다.
- 말의 형식이 자유로운 이유는 “제3자가 이해할 수 있는 환경과 표정과 함께 지껄여지기 때문”에서 확인된다.
- 글에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글은 배워야 알고, 연습해야 잘 쓸 수 있다”에서 확인된다.
- 외국어에서는 말도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는 내용은 “말은 외국어가 아닌 이상엔”에서 추론된다.
(나)테스토스테론은 사춘기가 시작되게 하고 적혈구 세포를 생성하는 등 우리 몸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특성은 공격성과의 관계다. 테스토스테론이 사람의 공격성을 직접적으로 유발하지는 않는다. 일부 동물에게서는 그런 효과가 확인되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높은 공격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다른 호르몬의 상호작용이 공격적 반응을 유발하며, 경쟁 상황에서는 특히 더 큰 효과가 나타나는 듯 보인다.
(다)스티브 처칠과 그의 학생 밥 케이리는 20만 년 전에서 9만 년 전 사이인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두개골 13점, 3만 8,000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인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두개골 41점을 포함하여 총 1,421점 두개골의 눈썹활 돌출 정도와 얼굴 길이를 분석했다. 양 볼 사이의 거리, 코 상단에서 치아 상단까지의 길이를 측정해 얼굴의 너비와 길이를 분석했고 눈에서 눈썹활까지의 높이로 눈 위 뼈가 얼마나 돌출되어 있는지도 측정했다.
(라)평균적으로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두개골에서 눈썹활 높이가 이전 두개골에 비해 10% 낮아졌다. 또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얼굴이 플라이스토세 중기보다 10% 더 짧아지고 5% 더 좁아졌다. 다양한 패턴을 띠면서도 변화는 계속되어 현대 수렵채집인과 농경인에 이르자 플라이스토세 후기인들의 얼굴보다도 한층 더 동안인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 < 보 기 > | ||
|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공격성이 낮고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발달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 ||
적절한 것은 친화력이 증가하는 진화 방향을 확인하려는 조사라는 내용이다.
눈썹활과 얼굴 길이는 (가)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다. (라)의 눈썹활이 낮아지고 얼굴이 짧아진 변화는 공격성이 낮은 개체가 선택되었다는 <보기>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읽을 수 있다.
- 주입만으로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내용은 “인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높은 공격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와 어긋난다.
-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내용은 <보기>가 말한 ‘자연선택’과 맞지 않다.
- ‘관련 호르몬’과 ‘다른 호르몬’이 같다는 내용은 근거가 없고, 성공 욕구를 자극한다는 언급도 없다.
- 여성호르몬이 필수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은 지문과 <보기> 어디에도 없다.
자유 시장 체제에서는 재화를 사고 파는 행위에 대해 사회 질서나 도덕성 여부와 상관없이 구매하는 사람이 지불하려는 가격과 판매하는 사람이 원하는 가격이 일치하면 거래가 이루어 진다. 대리 줄서기에 관해 자유 시장 체제를 옹호하는 입장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 존중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에 대한 주장이다. 첫 번째는 자유지상주의의 입장이다. 그들은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원하는 재화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장기 매매 금지법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암표 매매 금지법에 반대한다. 이러한 법은 성인이 상호 동의에 따라 내린 선택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장을 옹호하는 두 번째 주장은 경제학자에게 좀 더 친숙한 것으로 공리주의자의 입장이다. 공리주의자는 시장에서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고 말한다. 돈을 지불한 사람과 돈을 받고 대리로 줄을 선 사람 사이에 거래가 성립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양측이 모두 이익을 얻었다는 뜻이다. 10만 원을 내고 대리로 줄서는 사람을 고용한 사람은 줄을 서지 않고 유명한 뮤지컬을 관람함으로써 틀림없이 행복을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사람을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10만 원을 번 사람도 행복을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윗글을 읽고 추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 자유지상주의자가 사회적 효용을 근거로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자유지상주의자가 금지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적 효용의 향상은 공리주의자의 근거이다.
-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두 행복해진다는 내용은 공리주의의 “양측이 모두 이익을 얻었다”는 설명과 부합한다.
- 대리 줄서기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은 시장 옹호 입장이 “줄서기의 도덕성”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데서 추론된다.
- 높은 가치를 매기는 사람에게 재화가 할당된다는 내용은 가격이 일치하면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시장 원리에서 추론된다.
- 가장 많은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에게 돌아가 효용이 증가한다는 내용은 거래가 집단의 행복을 높인다는 주장에서 추론된다.
자유 시장 체제에서는 재화를 사고 파는 행위에 대해 사회 질서나 도덕성 여부와 상관없이 구매하는 사람이 지불하려는 가격과 판매하는 사람이 원하는 가격이 일치하면 거래가 이루어 진다. 대리 줄서기에 관해 자유 시장 체제를 옹호하는 입장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 존중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에 대한 주장이다. 첫 번째는 자유지상주의의 입장이다. 그들은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원하는 재화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장기 매매 금지법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암표 매매 금지법에 반대한다. 이러한 법은 성인이 상호 동의에 따라 내린 선택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장을 옹호하는 두 번째 주장은 경제학자에게 좀 더 친숙한 것으로 공리주의자의 입장이다. 공리주의자는 시장에서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고 말한다. 돈을 지불한 사람과 돈을 받고 대리로 줄을 선 사람 사이에 거래가 성립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양측이 모두 이익을 얻었다는 뜻이다. 10만 원을 내고 대리로 줄서는 사람을 고용한 사람은 줄을 서지 않고 유명한 뮤지컬을 관람함으로써 틀림없이 행복을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사람을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10만 원을 번 사람도 행복을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기>의 입장에서 윗글의 자유지상주의와 공리주의를 비판한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 < 보 기 > | ||
| 콘서트나 축구 경기를 가장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도 입장권을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최고 가격을 내고 입장권을 손에 넣은 사람이라도 그 경험의 가치를 전혀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콘서트나 축구 경기에 대한 열망으로 오랜 시간 줄을 서서 어렵게 입장권을 구한 사람이 그 경험에 대한 가치와 만족감을 훨씬 높게 평가할 수 있다. | ||
적절한 것은 지불 능력이나 합의된 거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비판이다.
<보기>는 간절히 원해도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 있다”고 하고, 최고 가격을 낸 사람이 그 경험을 “전혀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지불한 값과 실제 가치가 다를 수 있음을 들어 시장 옹호론을 비판한다.
- 수요와 공급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내용은 시장을 옹호하는 쪽의 논리이다.
- 판매자의 이익이 중요한 기준이라는 내용은 <보기>의 관심사가 아니며 공리주의의 논리에 가깝다.
- 구매자와 판매자의 행복과 효용을 기준으로 삼자는 내용은 비판 대상인 공리주의의 주장 그 자체이다.
- 경제적 가치가 개인의 관심과 만족감으로 정해진다는 내용은 지나치다. <보기>는 경험의 가치가 가격과 다를 수 있다고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