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왕의 업적은 후연을 격퇴하고 요동 지역을 확보한 것이다.
광개토왕은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영토를 넓혔으며, 서쪽으로는 후연을 물리쳐 요동을 차지하였다.
- 태학 설립과 율령 반포는 소수림왕의 업적이다.
- 평양 천도와 남진 정책 추진은 장수왕의 업적이다.
- 낙랑군을 몰아내고 대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왕은 미천왕이다.
제시된 내용이 새겨진 비석은 임신서기석이다.
‘두 사람이 함께 맹서’하고 ‘『시경』·『상서』·『예기』·『춘추전』’을 3년에 습득하겠다고 다짐한 내용에서, 신라 청년들이 유교 경전 학습과 충도 실천을 맹세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 단양 적성 신라비는 진흥왕이 적성 지역을 차지한 뒤 공을 세운 사람을 포상하고 민심을 다독인 내용을 담고 있다.
- 이차돈 순교비는 불교 공인 과정에서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는 비석이다.
- 사택지적비는 백제 귀족 사택지적이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불당을 세운 일을 새긴 비석이다.
고려 태조의 정책이 아닌 것은 공신에게 공음전을 하사했다는 내용이다.
태조가 통일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인품과 공로를 기준으로 지급한 토지는 역분전이다. 공음전은 고려 중기 문종 때 정비된 제도로, 5품 이상 고위 관리에게 세습을 허용한 토지이다.
- 거란 배척은 태조의 정책으로,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적대하여 만부교 사건을 일으켰다.
- 훈요십조는 태조가 후대 왕에게 남긴 정책 지침이다.
- 호족에게 성씨를 내려 준 사성 정책은 태조의 호족 통합책이다.
고려시대의 역사서가 아닌 것은 『동국통감』이다.
『동국통감』은 조선 성종 때 서거정 등이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편년체 통사이다.
-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 등이 편찬한 기전체 역사서이다.
-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저술하였다.
- 『해동고승전』은 고려 고종 때 승려 각훈이 지은 고승 전기이다.
-『삼국지』-
㉠은 철이므로 이를 사용하여 만든 것은 철제 괭이이다.
‘한, 예, 왜 등이 모두 와서 사 간다’와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으며’라는 단서는 『삼국지』 동이전이 전하는 변한 지역의 철 생산과 교역 모습을 가리킨다.
- 신라 금관은 금으로 만든 장신구이다.
-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의 청동 유물이다.
- 백제 은제 관식은 은으로 만든 관 꾸미개이다.
신라 법흥왕의 업적은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이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독자적 연호로 왕권의 위상을 드러냈다.
- 한강 유역을 차지한 왕은 진흥왕이다.
-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정벌한 왕은 지증왕이다.
-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진골 세력을 숙청한 왕은 신문왕이다.
한국 광복군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미얀마·인도 전선에 공작대를 파견한 일이다.
광복군은 영국군의 요청에 따라 공작대를 보내 포로 심문, 선전, 정보 수집 등의 대일 연합 작전에 참여하였다.
- 양세봉은 조선 혁명군의 총사령이며, 광복군의 총사령관은 지청천이었다.
- 쌍성보 전투는 지청천이 이끈 한국 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하여 치른 전투이다.
- 광복군은 상하이가 아니라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대로 창설되었다.
정도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소격서 폐지이다.
도교 행사를 맡던 소격서의 폐지는 조광조가 중종 때 추진한 개혁이며, 조선 초기 인물인 정도전과는 관련이 없다.
- 재상 중심의 통치 체제는 정도전이 내세운 정치 구상이다.
- 요동 정벌 계획과 군사력 강화는 정도전이 사병 혁파 등과 함께 추진한 일이다.
- 불교 비판과 성리학 통치 이념 확립은 『불씨잡변』 저술 등에서 드러나는 정도전의 활동이다.
ㄴ. 『해동제국기』
ㄷ. 「동명왕편」
ㄹ. 『제왕운기』
단군조선부터 서술한 것은 『동사강목』과 『제왕운기』이다.
『동사강목』은 안정복이 단군조선부터 고려 말까지를 강목체로 정리한 역사서이고, 『제왕운기』는 이승휴가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단군으로 잡아 서술한 역사시이다.
-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일본과 류큐의 사정을 기록한 책으로, 우리 역사서가 아니다.
- 「동명왕편」은 이규보가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건국 이야기를 노래한 서사시이다.
-『택리지』-
강경포가 성장하던 시기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대동법이 처음 실시되었다는 내용이다.
‘『택리지』’는 18세기 이중환의 저술이므로 제시문은 조선 후기 포구 상업이 발달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대동법은 이보다 앞선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다.
- 선상, 객주, 여각의 활동은 조선 후기 포구 상업의 대표적 모습이다.
- 경강상인이 한강 운송업으로 거상이 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 만상과 내상이 청·일본과 중개무역을 전개한 것도 조선 후기의 일이다.
정조 재위 기간의 일은 초계문신제 실시이다.
정조는 젊은 관리를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와 규장각을 통해 개혁 세력을 길렀다.
- 영정법을 처음 실시한 것은 인조 때의 일이다.
- 중앙 관서 노비 6만여 명의 해방은 순조 때의 일이다.
- 『속대전』과 『동국문헌비고』의 편찬은 영조 때의 일이다.
‘문화 통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농촌 진흥 운동이다.
농촌 진흥 운동은 일제가 1930년대에 농촌의 불만을 달래려고 벌인 관제 운동으로, 1920년대 문화 통치 시기의 정책이 아니다.
- 관리와 교원의 제복 착용 폐지는 3·1 운동 이후 유화책의 하나였다.
- 헌병 경찰제 폐지와 보통 경찰제 시행은 문화 통치의 대표적 조치이다.
- 문관 총독 임용 규정도 이 시기에 마련되었으나, 실제로 문관이 임명된 적은 없다.
고려시대의 과학 기술에 해당하는 것은 『향약구급방』 편찬이다.
『향약구급방』은 고려 후기에 우리나라 약재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정리한 의학서로, 현존 최고(最古)의 의학서로 꼽힌다.
- 계미자는 조선 태종 때 주조된 금속활자이다.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편찬된 농서이다.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태종 때 제작된 세계 지도이다.
옳지 않은 설명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따라 조사 시찰단이 파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조사 시찰단은 조약 체결 이전인 1881년에 일본의 근대 시설을 살피려고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조약 체결에 따라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은 보빙사이다.
- 수신사는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일본에 파견되었다.
- 2차 수신사로 간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들여와 유포하였다.
- 영선사는 김윤식 인솔로 청에 파견되어 무기 제조 기술과 군사 훈련법을 배웠다.
옳지 않은 설명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으로 외국 상인의 내륙 통상이 어려워졌다는 내용이다.
이 장정은 임오군란 뒤 체결되어 청 상인의 내지 통상을 허용하였고, 이후 다른 나라 상인의 내륙 진출도 넓어졌으므로 결과는 반대이다.
- 임오군란 이후 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청 상인의 진출이 활발해졌다.
- 방곡령은 곡물 유출을 막기 위해 지방관이 내린 조치이다.
- 상회사 설립은 외국 상인의 침투에 맞선 객주와 상인들의 대응이다.
㉠은 민족 혁명당이며, 이 단체의 활동은 조선 의용대 조직을 주도한 것이다.
‘한국 대일 전선 통일 동맹’, ‘조선 의열단’, ‘조선 혁명당’이라는 단서는 중국 관내의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결성된 통합 정당을 가리킨다. 김원봉 중심의 이 세력은 중일 전쟁 이후 한커우에서 조선 의용대를 창설하였다.
- 건국 강령 발표는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한 일이다.
-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등이 거둔 성과이다.
- 신흥 무관 학교는 신민회 계열 인사들이 서간도 삼원보에 세운 군사 교육 기관이다.
옳지 않은 설명은 승정원을 관원 비행 감찰 기관이라고 한 내용이다.
승정원은 왕명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이며, 관원의 비행을 감찰한 기관은 사헌부이다.
- 의금부는 왕명에 따라 중대한 죄인을 다스린 기관이다.
- 춘추관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맡은 기관이다.
- 홍문관은 경연을 주도하고 왕의 자문에 응한 학문 기관이다.
밑줄 친 ‘그’는 이이이며, 옳은 설명은 『동호문답』을 통해 개혁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성학집요』’와 ‘『기자실기』’는 이이의 저술이고, 『동호문답』 또한 이이가 왕도 정치와 민생 개혁 방안을 문답 형식으로 쓴 글이다.
- 심성론 정립과 이(理)의 자발성 강조는 이황의 사상이다.
- 경(敬)과 의(義)를 근본으로 한 실천적 성리학은 조식의 학풍이다.
- 안향을 기리는 조선 최초의 서원을 세운 인물은 주세붕이다.
시기와 정책이 바르게 연결된 것은 1990년대의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이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6년에 OECD에 가입하였다.
- 원조 물자를 이용한 삼백 산업 육성은 1950년대의 일이다.
-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은 2000년대에 본격화되었다.
… (중략) …
제3조 일제 치하 독립운동자와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옳지 않은 설명은 6·25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는 내용이다.
제시된 법령은 ‘한·일 병합에 적극 협력한 자’와 ‘독립운동자와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를 처벌하는 반민족 행위 처벌법이다. 이 법은 1948년에 제정되어 6·25 전쟁 이전에 시행되었으나,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방해로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 제정 주체는 제헌 국회가 맞다.
- 이 법에 따라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법의 목적은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한 친일파의 처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