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관련 기록이 없는 문헌은 해동제국기이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성종 때 일본과 류큐의 사정을 정리한 책이므로 우리 동해의 섬을 다루지 않는다.
- 고려사 지리지: 울진현 조에 우산과 무릉을 기록하였다.
- 세종실록지리지: 울진현 조에 우산과 무릉 두 섬을 기록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첨부 지도인 팔도총도에 우산도를 표기하였다.
- 삼국사기 -
지문의 인물은 신라의 유학자 설총이다.
‘이두로 구경을 해독’하여 후학을 가르쳤다는 단서가 이두로 유교 경전을 풀이한 설총의 업적과 일치한다.
- 강수: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던 신라의 문장가이다.
- 김유신: 삼국 통일 전쟁을 이끈 장군이다.
- 사다함: 대가야 정벌에서 공을 세운 화랑이다.
우정국 설립은 흥선 대원군의 정책이 아니다.
우정국은 대원군이 물러난 뒤인 고종 친정기에 설치된 근대 우편 기구로, 1884년 갑신정변의 무대가 되었다.
- 서원 철폐: 대원군이 면세와 면역의 폐단을 줄이려고 서원을 정리한 정책이다.
- 비변사 폐지: 대원군이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리면서 추진하였다.
- 경복궁 중건: 대원군이 왕실 권위를 세우려고 추진하였다.
금관가야를 통합한 왕은 진흥왕이 아니라 법흥왕이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금관가야는 532년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고, 진흥왕은 562년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 무령왕의 22담로 왕족 파견: 지방 통제를 강화한 사실로 옳다.
- 장수왕의 한성 함락: 475년 개로왕을 죽인 사실로 옳다.
- 내물마립간의 김씨 세습: 이때부터 김씨의 왕위 세습이 자리 잡았으므로 옳다.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을 정미의병과 연결한 설명이 옳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였고, 1908년 서울 진공을 시도하였다.
- 민종식의 홍주성 점령: 을미의병이 아니라 을사의병 때의 활동이다.
- 신돌석 같은 평민 의병장의 활약: 을미의병이 아니라 을사의병 때 나타났다.
- 해산 군인의 합세: 을사의병이 아니라 정미의병 때의 일이다.
교정도감이 최씨 정권 몰락과 함께 해체되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교정도감은 최씨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이후 무신 집권자들이 교정별감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무신정권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 정방: 최우가 인사권을 장악하려고 자기 집에 설치하였으므로 옳다.
- 중방: 상장군과 대장군의 합의 기관으로 무신정권 초기 권력 기구가 되었으므로 옳다.
- 도방: 경대승이 신변 보호를 위해 조직하였고 최충헌이 재건하였으므로 옳다.
ㄴ. 명종이 즉위하여 외척 간의 권력다툼이 전개되면서 사림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ㄷ. 위훈삭제사건을 계기로 훈신들이 반격을 가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축출하였다.
ㄹ. 훈신 유자광 등이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왕을 충동하여 사림을 박해하였다.
사화의 순서는 ㄹ → ㄱ → ㄷ → ㄴ이다.
ㄹ은 ‘조의제문’이 발단인 무오사화(1498), ㄱ은 폐비 문제가 발단인 갑자사화(1504), ㄷ은 ‘위훈삭제’가 발단인 기묘사화(1519), ㄴ은 명종 즉위 후 외척 다툼에서 비롯된 을사사화(1545)이다.
- ㄱ → ㄴ → ㄹ → ㄷ 배열: 가장 이른 무오사화를 뒤에 두어 틀렸다.
- ㄴ → ㄷ → ㄹ → ㄱ 배열: 가장 늦은 을사사화를 맨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ㄱ → ㄴ → ㄹ 배열: 기묘사화를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보다 앞에 두어 틀렸다.
- 일성록 -
이 시기의 사실은 중인층의 시사 조직이다.
‘호적을 위조’하고 ‘양반 행세’를 한다는 단서는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를 보여 주며, 이 시기에 중인층은 시사를 만들어 위항 문학 활동을 벌였다.
- 화차와 신기전 개발: 조선 전기의 군사 기술 발전이다.
-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조선 전기의 회화이다.
- 계미자와 갑인자 주조: 조선 초 태종과 세종 때의 일이다.
허생의 상업 활동은 도고에 해당한다.
과일을 ‘모두 사들였다’가 값이 오르자 ‘10배의 값’으로 팔았다는 내용은 물품을 매점매석해 이익을 얻는 조선 후기 도고의 모습이다.
- 시전: 관청의 허가를 받아 도성에서 영업하던 상점이다.
- 방납: 공물을 대신 납부하고 그 대가를 받던 행위이다.
- 보부상: 장시를 돌며 물건을 팔던 행상이다.
최혜국 대우는 강화도 조약에 명시되지 않았다.
최혜국 대우 조항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 처음 인정되었다.
- 무관세 무역 허용: 강화도 조약과 같은 해 맺은 후속 규정에서 일본 상품의 무관세가 인정되었다.
- 최초의 근대적 조약: 1876년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 치외법권 인정: 개항장의 일본인 범죄를 일본 영사가 재판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를 사찬 사서라고 한 설명이 옳지 않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의 명으로 김부식 등이 편찬한 관찬 사서이다.
- 신라를 먼저 건국한 나라로 서술: 신라 계승 의식이 드러난 부분으로 옳다.
- 『구삼국사』 참고와 기전체 정리: 기존 사서를 바탕으로 기전체로 편찬하였으므로 옳다.
- 사대 질서 옹호: 유교적 사관에 따라 대외 관계를 서술하였으므로 옳다.
향리가 토지를 받지 못하였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고려의 향리는 지방 행정 실무의 대가로 외역전을 지급받았다.
- 공음전: 5품 이상 고위 관료에게 지급되어 자손에게 세습되었으므로 옳다.
- 전지와 시지의 분급: 관품에 따라 곡물을 얻는 땅과 땔감을 얻는 땅을 함께 지급하였으므로 옳다.
- 수조권 지급: 소유권이 아니라 조세를 거둘 권리를 준 제도이므로 옳다.
이황이 양명학을 적극 소개하였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이황은 『전습록변』을 지어 양명학을 비판하였고, 이 때문에 양명학은 조선에서 이단으로 배척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 16세기 전반 전래: 중종 무렵 조선에 전해졌으므로 옳다.
- 정제두의 학파 형성: 강화도를 중심으로 강화학파를 이루었으므로 옳다.
- 강화학파의 계승: 한말의 이건창, 박은식, 정인보 등으로 이어졌으므로 옳다.
3·1 운동 이후의 사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이끌 조직의 필요성이 커져 같은 해 4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 토지조사사업: 1910년대에 실시되어 3·1 운동 이전의 일이다.
- 대한독립의군부: 1910년대 초 임병찬이 결성한 비밀 결사이다.
- 헌병 경찰 제도: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제도로 3·1 운동 이후 보통 경찰제로 바뀌었다.
| 녹과전 지급 | 과전법 반포 | 직전법 실시 | 관수관급제 실시 | 직전법 폐지 | ||||
|---|---|---|---|---|---|---|---|---|
| (가) | (나) | (다) | (라) |
(다) 시기에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였다는 연결이 옳다.
기준 제도의 순서는 녹과전(1271) → 과전법(1391) → 직전법(1466) → 관수관급제(1470) → 직전법 폐지(1556)이다. (다)는 직전법 실시부터 관수관급제 실시 전까지이며,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는 것이 직전법의 내용이다.
- 사전을 하삼도로 옮긴 일: 과전법 이후인 조선 태종 때의 일이므로 (가) 시기가 아니다.
- 백성에게 정전 지급: 통일 신라 성덕왕 때의 일이므로 (나) 시기가 아니다.
- 관료가 녹봉만 받게 된 일: 직전법이 폐지된 뒤의 상황이므로 (라) 시기가 아니다.
제생원을 고려의 기구로 설명한 것이 옳지 않다.
제생원은 조선 초에 설치된 구호·의료 기관이다.
- 의창: 고려가 빈민 구제를 위해 곡식을 대여하던 기구이다.
- 동·서 대비원: 고려가 개경에 두어 환자를 치료하고 빈민을 돌보던 기구이다.
- 상평창: 고려가 곡물 가격을 조절해 물가를 안정시키던 기구이다.
ㄴ. 일제의 수뇌를 처단하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결성하였다.
ㄷ.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을 내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였다.
김구의 행적은 ㄴ → ㄱ → ㄷ 순서이다.
ㄴ의 한인애국단 결성은 1931년, ㄱ의 충칭 임시정부 주석 활동은 1940년대, ㄷ의 남북연석회의 참가는 1948년의 일이다.
- ㄱ → ㄴ → ㄷ 배열: 1940년대의 주석 활동을 1931년의 한인애국단 결성보다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ㄴ → ㄱ 배열: 가장 늦은 남북연석회의를 맨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ㄱ → ㄴ 배열: 남북연석회의를 맨 앞에 두고 시간 순서도 뒤집어 틀렸다.
○ 1923년 1월 김상옥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대치한 후 자결하였다.
지문의 활동을 수행한 단체는 의열단이다.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투탄과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투탄은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의거이다.
- 국권회복단: 1910년대 국내에서 활동한 비밀 결사이다.
- 대한독립군: 홍범도가 이끈 독립군 부대로 봉오동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 조선의용군: 1940년대 화북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독립 동맹의 군사 조직이다.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의 수업은 민족말살정책기의 내용이 아니다.
교사가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한 것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모습이다.
- 황국신민의 서사 암송: 일제 말 황국 신민화 정책으로 강요되었다.
- 신사 참배 강요: 일제 말 전국에 신사를 세워 조선인에게 강요하였다.
- 창씨개명: 일제 말 우리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정책이다.
이 회의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이며 결정 사항은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 실시이다.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 수립이 단서로, 1945년 12월 회의에서 임시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최대 5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 신간회 해소: 1931년에 이루어진 일로 이 회의와 무관하다.
- 남한 미군정 실시: 이 회의 이전인 1945년 9월에 이미 시작되었다.
- 좌우합작위원회 구성: 1946년 여운형과 김규식 등이 주도한 활동으로 회의 결정 사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