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 9급 한국사] 15년 1회차
지역인재 9급 한국사 기출문제

15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지역인재 9급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15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중 독도와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문헌은?
1해동제국기
2고려사지리지
3세종실록지리지
4신증동국여지승람
정답 및 해설

독도 관련 기록이 없는 문헌은 해동제국기이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성종 때 일본과 류큐의 사정을 정리한 책이므로 우리 동해의 섬을 다루지 않는다.

  • 고려사 지리지: 울진현 조에 우산과 무릉을 기록하였다.
  • 세종실록지리지: 울진현 조에 우산과 무릉 두 섬을 기록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첨부 지도인 팔도총도에 우산도를 표기하였다.
문제 2
다음에서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그는 천성이 명민하여 슬기로우며 나면서부터 도를 깨달았다. 이두로 구경(九經)을 해독하여 후생을 훈도하였으므로 지금까지 학자들이 종주(宗主)로 삼고 있다.
- 삼국사기 -
1강수
2설총
3김유신
4사다함
정답 및 해설

지문의 인물은 신라의 유학자 설총이다.

‘이두로 구경을 해독’하여 후학을 가르쳤다는 단서가 이두로 유교 경전을 풀이한 설총의 업적과 일치한다.

  • 강수: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던 신라의 문장가이다.
  • 김유신: 삼국 통일 전쟁을 이끈 장군이다.
  • 사다함: 대가야 정벌에서 공을 세운 화랑이다.
문제 3
흥선 대원군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서원 철폐
2비변사 폐지
3우정국 설립
4경복궁 중건
정답 및 해설

우정국 설립은 흥선 대원군의 정책이 아니다.

우정국은 대원군이 물러난 뒤인 고종 친정기에 설치된 근대 우편 기구로, 1884년 갑신정변의 무대가 되었다.

  • 서원 철폐: 대원군이 면세와 면역의 폐단을 줄이려고 서원을 정리한 정책이다.
  • 비변사 폐지: 대원군이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리면서 추진하였다.
  • 경복궁 중건: 대원군이 왕실 권위를 세우려고 추진하였다.
문제 4
삼국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1김해의 금관가야는 진흥왕 때 신라에 통합되었다.
2백제 무령왕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3고구려 장수왕은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4신라 내물마립간 때 김씨의 세습왕조 시대가 열렸다.
정답 및 해설

금관가야를 통합한 왕은 진흥왕이 아니라 법흥왕이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금관가야는 532년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고, 진흥왕은 562년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 무령왕의 22담로 왕족 파견: 지방 통제를 강화한 사실로 옳다.
  • 장수왕의 한성 함락: 475년 개로왕을 죽인 사실로 옳다.
  • 내물마립간의 김씨 세습: 이때부터 김씨의 왕위 세습이 자리 잡았으므로 옳다.
문제 5
항일 의병의 활동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을미의병 - 민종식이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2을미의병 - 신돌석과 같은 평민 의병장이 활약하였다.
3을사의병 - 군대해산에 항거한 대한제국 군인들이 합세하였다.
4정미의병 -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서울 진공 작전을 벌였다.
정답 및 해설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을 정미의병과 연결한 설명이 옳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였고, 1908년 서울 진공을 시도하였다.

  • 민종식의 홍주성 점령: 을미의병이 아니라 을사의병 때의 활동이다.
  • 신돌석 같은 평민 의병장의 활약: 을미의병이 아니라 을사의병 때 나타났다.
  • 해산 군인의 합세: 을사의병이 아니라 정미의병 때의 일이다.
문제 6
고려 무신정권기의 지배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정방은 최우가 백관의 인사를 처리하기 위해 자기 집에 설치한 기관이었다.
2중방은 상장군과 대장군의 합의기관인데 무신정권 초기 권력기구로 운영되었다.
3도방은 경대승이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사병을 조직하여 기구화한 것으로, 최충헌이 재건하였다.
4교정도감은 최충헌이 군국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한 집정부로, 최씨 정권 몰락과 함께 해체되었다.
정답 및 해설

교정도감이 최씨 정권 몰락과 함께 해체되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교정도감은 최씨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이후 무신 집권자들이 교정별감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무신정권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 정방: 최우가 인사권을 장악하려고 자기 집에 설치하였으므로 옳다.
  • 중방: 상장군과 대장군의 합의 기관으로 무신정권 초기 권력 기구가 되었으므로 옳다.
  • 도방: 경대승이 신변 보호를 위해 조직하였고 최충헌이 재건하였으므로 옳다.
문제 7
다음 조선시대 사화를 일어난 순서대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연산군이 자기 어머니의 폐위에 관여한 훈신과 남아있던 사림을 몰아냈다.
ㄴ. 명종이 즉위하여 외척 간의 권력다툼이 전개되면서 사림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ㄷ. 위훈삭제사건을 계기로 훈신들이 반격을 가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축출하였다.
ㄹ. 훈신 유자광 등이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왕을 충동하여 사림을 박해하였다.
1ㄱ → ㄴ → ㄹ → ㄷ
2ㄴ → ㄷ → ㄹ → ㄱ
3ㄷ → ㄱ → ㄴ → ㄹ
4ㄹ → ㄱ → ㄷ → ㄴ
정답 및 해설

사화의 순서는 ㄹ → ㄱ → ㄷ → ㄴ이다.

ㄹ은 ‘조의제문’이 발단인 무오사화(1498), ㄱ은 폐비 문제가 발단인 갑자사화(1504), ㄷ은 ‘위훈삭제’가 발단인 기묘사화(1519), ㄴ은 명종 즉위 후 외척 다툼에서 비롯된 을사사화(1545)이다.

  • ㄱ → ㄴ → ㄹ → ㄷ 배열: 가장 이른 무오사화를 뒤에 두어 틀렸다.
  • ㄴ → ㄷ → ㄹ → ㄱ 배열: 가장 늦은 을사사화를 맨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ㄱ → ㄴ → ㄹ 배열: 기묘사화를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보다 앞에 두어 틀렸다.
문제 8
다음 상황이 전개되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근래 세상의 도리가 점점 썩어가고 있다. 돈 있고 힘 있는 백성은 군역을 피하고자 간사한 아전과 짜고 뇌물을 쓰고 호적을 위조한다. 그것으로 국역을 면하거나 다른 고을로 옮겨 가서 양반 행세를 한다.
- 일성록 -
1중인층이 시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2화차와 신기전 등 신무기가 개발되었다.
3문인 화가인 강희안이 고사관수도를 그렸다.
4계미자, 갑인자 등의 금속 활자가 주조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시기의 사실은 중인층의 시사 조직이다.

‘호적을 위조’하고 ‘양반 행세’를 한다는 단서는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를 보여 주며, 이 시기에 중인층은 시사를 만들어 위항 문학 활동을 벌였다.

  • 화차와 신기전 개발: 조선 전기의 군사 기술 발전이다.
  •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조선 전기의 회화이다.
  • 계미자와 갑인자 주조: 조선 초 태종과 세종 때의 일이다.
문제 9
다음 인물이 수행한 상업 활동으로 옳은 것은?
허생은 안성의 한 주막에 자리 잡고서 밤, 대추, 감, 배, 귤 등을 모두 사들였다. 그가 사들이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치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과일값이 계속 폭등하자 허생은 모은 것을 10배의 값으로 팔았다.
1시전
2방납
3도고
4보부상
정답 및 해설

허생의 상업 활동은 도고에 해당한다.

과일을 ‘모두 사들였다’가 값이 오르자 ‘10배의 값’으로 팔았다는 내용은 물품을 매점매석해 이익을 얻는 조선 후기 도고의 모습이다.

  • 시전: 관청의 허가를 받아 도성에서 영업하던 상점이다.
  • 방납: 공물을 대신 납부하고 그 대가를 받던 행위이다.
  • 보부상: 장시를 돌며 물건을 팔던 행상이다.
문제 10
강화도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최혜국 대우 조항을 명시하였다.
2일본과의 무관세 무역을 허용하였다.
3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4개항장에서 일본의 치외법권을 인정하였다.
정답 및 해설

최혜국 대우는 강화도 조약에 명시되지 않았다.

최혜국 대우 조항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 처음 인정되었다.

  • 무관세 무역 허용: 강화도 조약과 같은 해 맺은 후속 규정에서 일본 상품의 무관세가 인정되었다.
  • 최초의 근대적 조약: 1876년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 치외법권 인정: 개항장의 일본인 범죄를 일본 영사가 재판하도록 하였다.
문제 11
『삼국사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삼국 중 신라가 가장 먼저 건국되었다고 신라에 우호적으로 서술하였다.
2고려 초의 『구삼국사』를 참고하여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하였다.
3대외적으로는 평화적인 사대 질서를 옹호하는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하였다.
4김부식 개인이 오랜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수년간 서술하여 완성한 사찬 사서이다.
정답 및 해설

『삼국사기』를 사찬 사서라고 한 설명이 옳지 않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의 명으로 김부식 등이 편찬한 관찬 사서이다.

  • 신라를 먼저 건국한 나라로 서술: 신라 계승 의식이 드러난 부분으로 옳다.
  • 『구삼국사』 참고와 기전체 정리: 기존 사서를 바탕으로 기전체로 편찬하였으므로 옳다.
  • 사대 질서 옹호: 유교적 사관에 따라 대외 관계를 서술하였으므로 옳다.
문제 12
고려시대 전시과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5품 이상 관리의 자손은 공음전을 받을 수 있었다.
2향리는 관료라 할 수 없기 때문에 토지를 받지 못하였다.
3관료들에게 관품에 따라 전지뿐만 아니라 시지도 분급하는 제도이다.
4토지에 대한 수조권만을 지급한 것이지, 소유권까지 지급한 것은 아니다.
정답 및 해설

향리가 토지를 받지 못하였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고려의 향리는 지방 행정 실무의 대가로 외역전을 지급받았다.

  • 공음전: 5품 이상 고위 관료에게 지급되어 자손에게 세습되었으므로 옳다.
  • 전지와 시지의 분급: 관품에 따라 곡물을 얻는 땅과 땔감을 얻는 땅을 함께 지급하였으므로 옳다.
  • 수조권 지급: 소유권이 아니라 조세를 거둘 권리를 준 제도이므로 옳다.
문제 13
조선시대 양명학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16세기 전반 조선에 전래되었다.
2이황은 양명학에 깊은 관심을 보여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3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학파로 발전시켰다.
4강화학파의 학풍은 한말 이건창, 박은식, 정인보 등에게까지 이어졌다.
정답 및 해설

이황이 양명학을 적극 소개하였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이황은 『전습록변』을 지어 양명학을 비판하였고, 이 때문에 양명학은 조선에서 이단으로 배척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 16세기 전반 전래: 중종 무렵 조선에 전해졌으므로 옳다.
  • 정제두의 학파 형성: 강화도를 중심으로 강화학파를 이루었으므로 옳다.
  • 강화학파의 계승: 한말의 이건창, 박은식, 정인보 등으로 이어졌으므로 옳다.
문제 14
3·1운동 이후의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1토지조사사업의 실시
2대한독립의군부의 결성
3헌병 경찰 제도의 시행
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정답 및 해설

3·1 운동 이후의 사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이끌 조직의 필요성이 커져 같은 해 4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 토지조사사업: 1910년대에 실시되어 3·1 운동 이전의 일이다.
  • 대한독립의군부: 1910년대 초 임병찬이 결성한 비밀 결사이다.
  • 헌병 경찰 제도: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제도로 3·1 운동 이후 보통 경찰제로 바뀌었다.
문제 15
(가) ~ (라) 시기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녹과전
지급
과전법
반포
직전법
실시
관수관급제
실시
직전법
폐지
(가)(나)(다)(라)
1(가) - 사전을 경상·전라·충청도로 옮겼다.
2(나) - 일반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3(다) -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였다.
4(라) - 관료들은 수조지 수입이 없어지고 녹봉만 받았다.
정답 및 해설

(다) 시기에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였다는 연결이 옳다.

기준 제도의 순서는 녹과전(1271) → 과전법(1391) → 직전법(1466) → 관수관급제(1470) → 직전법 폐지(1556)이다. (다)는 직전법 실시부터 관수관급제 실시 전까지이며,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는 것이 직전법의 내용이다.

  • 사전을 하삼도로 옮긴 일: 과전법 이후인 조선 태종 때의 일이므로 (가) 시기가 아니다.
  • 백성에게 정전 지급: 통일 신라 성덕왕 때의 일이므로 (나) 시기가 아니다.
  • 관료가 녹봉만 받게 된 일: 직전법이 폐지된 뒤의 상황이므로 (라) 시기가 아니다.
문제 16
고려시대의 사회 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빈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의창을 두었다.
2환자 진료를 위하여 동·서 대비원을 두었다.
3물가의 안정을 꾀하기 위하여 상평창을 두었다.
4지방민의 구호와 진료를 위하여 제생원을 두었다.
정답 및 해설

제생원을 고려의 기구로 설명한 것이 옳지 않다.

제생원은 조선 초에 설치된 구호·의료 기관이다.

  • 의창: 고려가 빈민 구제를 위해 곡식을 대여하던 기구이다.
  • 동·서 대비원: 고려가 개경에 두어 환자를 치료하고 빈민을 돌보던 기구이다.
  • 상평창: 고려가 곡물 가격을 조절해 물가를 안정시키던 기구이다.
문제 17
다음은 독립운동가 김구의 행적이다. 이를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중경으로 옮긴 임시정부에서 주석으로 활약하였다.
ㄴ. 일제의 수뇌를 처단하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결성하였다.
ㄷ.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을 내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였다.
1ㄱ → ㄴ → ㄷ
2ㄴ → ㄱ → ㄷ
3ㄷ → ㄴ → ㄱ
4ㄷ → ㄱ → ㄴ
정답 및 해설

김구의 행적은 ㄴ → ㄱ → ㄷ 순서이다.

ㄴ의 한인애국단 결성은 1931년, ㄱ의 충칭 임시정부 주석 활동은 1940년대, ㄷ의 남북연석회의 참가는 1948년의 일이다.

  • ㄱ → ㄴ → ㄷ 배열: 1940년대의 주석 활동을 1931년의 한인애국단 결성보다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ㄴ → ㄱ 배열: 가장 늦은 남북연석회의를 맨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ㄱ → ㄴ 배열: 남북연석회의를 맨 앞에 두고 시간 순서도 뒤집어 틀렸다.
문제 18
다음의 항일 독립운동을 수행한 단체는?
○ 1920년 9월 박재혁은 부산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체포된 후 단식으로 자결하였다.
○ 1923년 1월 김상옥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대치한 후 자결하였다.
1의열단
2국권회복단
3대한독립군
4조선의용군
정답 및 해설

지문의 활동을 수행한 단체는 의열단이다.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투탄과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투탄은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의거이다.

  • 국권회복단: 1910년대 국내에서 활동한 비밀 결사이다.
  • 대한독립군: 홍범도가 이끈 독립군 부대로 봉오동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 조선의용군: 1940년대 화북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독립 동맹의 군사 조직이다.
문제 19
일제 말 민족말살정책의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1황국신민의 서사를 암송하도록 강요하였다.
2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가 수업하도록 하였다.
3모든 읍과 면에 신사를 만들어 조선인을 강제로 참배시켰다.
4우리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단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의 수업은 민족말살정책기의 내용이 아니다.

교사가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한 것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모습이다.

  • 황국신민의 서사 암송: 일제 말 황국 신민화 정책으로 강요되었다.
  • 신사 참배 강요: 일제 말 전국에 신사를 세워 조선인에게 강요하였다.
  • 창씨개명: 일제 말 우리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정책이다.
문제 20
다음은 어떤 회의에서 합의한 결정문이다. 이 회의의 결정 사항으로 옳은 것은?
속히 일본의 장구한 조선통치의 참담한 결과를 청산하기 위하여 조선의 공업, 교통, 농업과 조선 인민의 민족문화 발전에 필요한 모든 시책을 취할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1신간회를 해소한다.
2남한에 미군정을 실시한다.
3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한다.
4조선에 신탁통치를 실시한다.
정답 및 해설

이 회의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이며 결정 사항은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 실시이다.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 수립이 단서로, 1945년 12월 회의에서 임시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최대 5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 신간회 해소: 1931년에 이루어진 일로 이 회의와 무관하다.
  • 남한 미군정 실시: 이 회의 이전인 1945년 9월에 이미 시작되었다.
  • 좌우합작위원회 구성: 1946년 여운형과 김규식 등이 주도한 활동으로 회의 결정 사항이 아니다.
지역인재 9급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15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중 독도와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문헌은?
1해동제국기
2고려사지리지
3세종실록지리지
4신증동국여지승람
정답 및 해설

독도 관련 기록이 없는 문헌은 해동제국기이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성종 때 일본과 류큐의 사정을 정리한 책이므로 우리 동해의 섬을 다루지 않는다.

  • 고려사 지리지: 울진현 조에 우산과 무릉을 기록하였다.
  • 세종실록지리지: 울진현 조에 우산과 무릉 두 섬을 기록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첨부 지도인 팔도총도에 우산도를 표기하였다.
문제 2
다음에서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그는 천성이 명민하여 슬기로우며 나면서부터 도를 깨달았다. 이두로 구경(九經)을 해독하여 후생을 훈도하였으므로 지금까지 학자들이 종주(宗主)로 삼고 있다.
- 삼국사기 -
1강수
2설총
3김유신
4사다함
정답 및 해설

지문의 인물은 신라의 유학자 설총이다.

‘이두로 구경을 해독’하여 후학을 가르쳤다는 단서가 이두로 유교 경전을 풀이한 설총의 업적과 일치한다.

  • 강수: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던 신라의 문장가이다.
  • 김유신: 삼국 통일 전쟁을 이끈 장군이다.
  • 사다함: 대가야 정벌에서 공을 세운 화랑이다.
문제 3
흥선 대원군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서원 철폐
2비변사 폐지
3우정국 설립
4경복궁 중건
정답 및 해설

우정국 설립은 흥선 대원군의 정책이 아니다.

우정국은 대원군이 물러난 뒤인 고종 친정기에 설치된 근대 우편 기구로, 1884년 갑신정변의 무대가 되었다.

  • 서원 철폐: 대원군이 면세와 면역의 폐단을 줄이려고 서원을 정리한 정책이다.
  • 비변사 폐지: 대원군이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리면서 추진하였다.
  • 경복궁 중건: 대원군이 왕실 권위를 세우려고 추진하였다.
문제 4
삼국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1김해의 금관가야는 진흥왕 때 신라에 통합되었다.
2백제 무령왕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3고구려 장수왕은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4신라 내물마립간 때 김씨의 세습왕조 시대가 열렸다.
정답 및 해설

금관가야를 통합한 왕은 진흥왕이 아니라 법흥왕이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금관가야는 532년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고, 진흥왕은 562년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 무령왕의 22담로 왕족 파견: 지방 통제를 강화한 사실로 옳다.
  • 장수왕의 한성 함락: 475년 개로왕을 죽인 사실로 옳다.
  • 내물마립간의 김씨 세습: 이때부터 김씨의 왕위 세습이 자리 잡았으므로 옳다.
문제 5
항일 의병의 활동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을미의병 - 민종식이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2을미의병 - 신돌석과 같은 평민 의병장이 활약하였다.
3을사의병 - 군대해산에 항거한 대한제국 군인들이 합세하였다.
4정미의병 -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서울 진공 작전을 벌였다.
정답 및 해설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을 정미의병과 연결한 설명이 옳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였고, 1908년 서울 진공을 시도하였다.

  • 민종식의 홍주성 점령: 을미의병이 아니라 을사의병 때의 활동이다.
  • 신돌석 같은 평민 의병장의 활약: 을미의병이 아니라 을사의병 때 나타났다.
  • 해산 군인의 합세: 을사의병이 아니라 정미의병 때의 일이다.
문제 6
고려 무신정권기의 지배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정방은 최우가 백관의 인사를 처리하기 위해 자기 집에 설치한 기관이었다.
2중방은 상장군과 대장군의 합의기관인데 무신정권 초기 권력기구로 운영되었다.
3도방은 경대승이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사병을 조직하여 기구화한 것으로, 최충헌이 재건하였다.
4교정도감은 최충헌이 군국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한 집정부로, 최씨 정권 몰락과 함께 해체되었다.
정답 및 해설

교정도감이 최씨 정권 몰락과 함께 해체되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교정도감은 최씨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이후 무신 집권자들이 교정별감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무신정권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 정방: 최우가 인사권을 장악하려고 자기 집에 설치하였으므로 옳다.
  • 중방: 상장군과 대장군의 합의 기관으로 무신정권 초기 권력 기구가 되었으므로 옳다.
  • 도방: 경대승이 신변 보호를 위해 조직하였고 최충헌이 재건하였으므로 옳다.
문제 7
다음 조선시대 사화를 일어난 순서대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연산군이 자기 어머니의 폐위에 관여한 훈신과 남아있던 사림을 몰아냈다.
ㄴ. 명종이 즉위하여 외척 간의 권력다툼이 전개되면서 사림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ㄷ. 위훈삭제사건을 계기로 훈신들이 반격을 가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축출하였다.
ㄹ. 훈신 유자광 등이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왕을 충동하여 사림을 박해하였다.
1ㄱ → ㄴ → ㄹ → ㄷ
2ㄴ → ㄷ → ㄹ → ㄱ
3ㄷ → ㄱ → ㄴ → ㄹ
4ㄹ → ㄱ → ㄷ → ㄴ
정답 및 해설

사화의 순서는 ㄹ → ㄱ → ㄷ → ㄴ이다.

ㄹ은 ‘조의제문’이 발단인 무오사화(1498), ㄱ은 폐비 문제가 발단인 갑자사화(1504), ㄷ은 ‘위훈삭제’가 발단인 기묘사화(1519), ㄴ은 명종 즉위 후 외척 다툼에서 비롯된 을사사화(1545)이다.

  • ㄱ → ㄴ → ㄹ → ㄷ 배열: 가장 이른 무오사화를 뒤에 두어 틀렸다.
  • ㄴ → ㄷ → ㄹ → ㄱ 배열: 가장 늦은 을사사화를 맨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ㄱ → ㄴ → ㄹ 배열: 기묘사화를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보다 앞에 두어 틀렸다.
문제 8
다음 상황이 전개되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근래 세상의 도리가 점점 썩어가고 있다. 돈 있고 힘 있는 백성은 군역을 피하고자 간사한 아전과 짜고 뇌물을 쓰고 호적을 위조한다. 그것으로 국역을 면하거나 다른 고을로 옮겨 가서 양반 행세를 한다.
- 일성록 -
1중인층이 시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2화차와 신기전 등 신무기가 개발되었다.
3문인 화가인 강희안이 고사관수도를 그렸다.
4계미자, 갑인자 등의 금속 활자가 주조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시기의 사실은 중인층의 시사 조직이다.

‘호적을 위조’하고 ‘양반 행세’를 한다는 단서는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를 보여 주며, 이 시기에 중인층은 시사를 만들어 위항 문학 활동을 벌였다.

  • 화차와 신기전 개발: 조선 전기의 군사 기술 발전이다.
  •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조선 전기의 회화이다.
  • 계미자와 갑인자 주조: 조선 초 태종과 세종 때의 일이다.
문제 9
다음 인물이 수행한 상업 활동으로 옳은 것은?
허생은 안성의 한 주막에 자리 잡고서 밤, 대추, 감, 배, 귤 등을 모두 사들였다. 그가 사들이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치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과일값이 계속 폭등하자 허생은 모은 것을 10배의 값으로 팔았다.
1시전
2방납
3도고
4보부상
정답 및 해설

허생의 상업 활동은 도고에 해당한다.

과일을 ‘모두 사들였다’가 값이 오르자 ‘10배의 값’으로 팔았다는 내용은 물품을 매점매석해 이익을 얻는 조선 후기 도고의 모습이다.

  • 시전: 관청의 허가를 받아 도성에서 영업하던 상점이다.
  • 방납: 공물을 대신 납부하고 그 대가를 받던 행위이다.
  • 보부상: 장시를 돌며 물건을 팔던 행상이다.
문제 10
강화도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최혜국 대우 조항을 명시하였다.
2일본과의 무관세 무역을 허용하였다.
3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4개항장에서 일본의 치외법권을 인정하였다.
정답 및 해설

최혜국 대우는 강화도 조약에 명시되지 않았다.

최혜국 대우 조항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 처음 인정되었다.

  • 무관세 무역 허용: 강화도 조약과 같은 해 맺은 후속 규정에서 일본 상품의 무관세가 인정되었다.
  • 최초의 근대적 조약: 1876년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 치외법권 인정: 개항장의 일본인 범죄를 일본 영사가 재판하도록 하였다.
문제 11
『삼국사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삼국 중 신라가 가장 먼저 건국되었다고 신라에 우호적으로 서술하였다.
2고려 초의 『구삼국사』를 참고하여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하였다.
3대외적으로는 평화적인 사대 질서를 옹호하는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하였다.
4김부식 개인이 오랜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수년간 서술하여 완성한 사찬 사서이다.
정답 및 해설

『삼국사기』를 사찬 사서라고 한 설명이 옳지 않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의 명으로 김부식 등이 편찬한 관찬 사서이다.

  • 신라를 먼저 건국한 나라로 서술: 신라 계승 의식이 드러난 부분으로 옳다.
  • 『구삼국사』 참고와 기전체 정리: 기존 사서를 바탕으로 기전체로 편찬하였으므로 옳다.
  • 사대 질서 옹호: 유교적 사관에 따라 대외 관계를 서술하였으므로 옳다.
문제 12
고려시대 전시과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5품 이상 관리의 자손은 공음전을 받을 수 있었다.
2향리는 관료라 할 수 없기 때문에 토지를 받지 못하였다.
3관료들에게 관품에 따라 전지뿐만 아니라 시지도 분급하는 제도이다.
4토지에 대한 수조권만을 지급한 것이지, 소유권까지 지급한 것은 아니다.
정답 및 해설

향리가 토지를 받지 못하였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고려의 향리는 지방 행정 실무의 대가로 외역전을 지급받았다.

  • 공음전: 5품 이상 고위 관료에게 지급되어 자손에게 세습되었으므로 옳다.
  • 전지와 시지의 분급: 관품에 따라 곡물을 얻는 땅과 땔감을 얻는 땅을 함께 지급하였으므로 옳다.
  • 수조권 지급: 소유권이 아니라 조세를 거둘 권리를 준 제도이므로 옳다.
문제 13
조선시대 양명학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16세기 전반 조선에 전래되었다.
2이황은 양명학에 깊은 관심을 보여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3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학파로 발전시켰다.
4강화학파의 학풍은 한말 이건창, 박은식, 정인보 등에게까지 이어졌다.
정답 및 해설

이황이 양명학을 적극 소개하였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이황은 『전습록변』을 지어 양명학을 비판하였고, 이 때문에 양명학은 조선에서 이단으로 배척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 16세기 전반 전래: 중종 무렵 조선에 전해졌으므로 옳다.
  • 정제두의 학파 형성: 강화도를 중심으로 강화학파를 이루었으므로 옳다.
  • 강화학파의 계승: 한말의 이건창, 박은식, 정인보 등으로 이어졌으므로 옳다.
문제 14
3·1운동 이후의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1토지조사사업의 실시
2대한독립의군부의 결성
3헌병 경찰 제도의 시행
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정답 및 해설

3·1 운동 이후의 사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이끌 조직의 필요성이 커져 같은 해 4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 토지조사사업: 1910년대에 실시되어 3·1 운동 이전의 일이다.
  • 대한독립의군부: 1910년대 초 임병찬이 결성한 비밀 결사이다.
  • 헌병 경찰 제도: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제도로 3·1 운동 이후 보통 경찰제로 바뀌었다.
문제 15
(가) ~ (라) 시기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녹과전
지급
과전법
반포
직전법
실시
관수관급제
실시
직전법
폐지
(가)(나)(다)(라)
1(가) - 사전을 경상·전라·충청도로 옮겼다.
2(나) - 일반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3(다) -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였다.
4(라) - 관료들은 수조지 수입이 없어지고 녹봉만 받았다.
정답 및 해설

(다) 시기에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였다는 연결이 옳다.

기준 제도의 순서는 녹과전(1271) → 과전법(1391) → 직전법(1466) → 관수관급제(1470) → 직전법 폐지(1556)이다. (다)는 직전법 실시부터 관수관급제 실시 전까지이며,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는 것이 직전법의 내용이다.

  • 사전을 하삼도로 옮긴 일: 과전법 이후인 조선 태종 때의 일이므로 (가) 시기가 아니다.
  • 백성에게 정전 지급: 통일 신라 성덕왕 때의 일이므로 (나) 시기가 아니다.
  • 관료가 녹봉만 받게 된 일: 직전법이 폐지된 뒤의 상황이므로 (라) 시기가 아니다.
문제 16
고려시대의 사회 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빈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의창을 두었다.
2환자 진료를 위하여 동·서 대비원을 두었다.
3물가의 안정을 꾀하기 위하여 상평창을 두었다.
4지방민의 구호와 진료를 위하여 제생원을 두었다.
정답 및 해설

제생원을 고려의 기구로 설명한 것이 옳지 않다.

제생원은 조선 초에 설치된 구호·의료 기관이다.

  • 의창: 고려가 빈민 구제를 위해 곡식을 대여하던 기구이다.
  • 동·서 대비원: 고려가 개경에 두어 환자를 치료하고 빈민을 돌보던 기구이다.
  • 상평창: 고려가 곡물 가격을 조절해 물가를 안정시키던 기구이다.
문제 17
다음은 독립운동가 김구의 행적이다. 이를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중경으로 옮긴 임시정부에서 주석으로 활약하였다.
ㄴ. 일제의 수뇌를 처단하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결성하였다.
ㄷ.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을 내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였다.
1ㄱ → ㄴ → ㄷ
2ㄴ → ㄱ → ㄷ
3ㄷ → ㄴ → ㄱ
4ㄷ → ㄱ → ㄴ
정답 및 해설

김구의 행적은 ㄴ → ㄱ → ㄷ 순서이다.

ㄴ의 한인애국단 결성은 1931년, ㄱ의 충칭 임시정부 주석 활동은 1940년대, ㄷ의 남북연석회의 참가는 1948년의 일이다.

  • ㄱ → ㄴ → ㄷ 배열: 1940년대의 주석 활동을 1931년의 한인애국단 결성보다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ㄴ → ㄱ 배열: 가장 늦은 남북연석회의를 맨 앞에 두어 틀렸다.
  • ㄷ → ㄱ → ㄴ 배열: 남북연석회의를 맨 앞에 두고 시간 순서도 뒤집어 틀렸다.
문제 18
다음의 항일 독립운동을 수행한 단체는?
○ 1920년 9월 박재혁은 부산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체포된 후 단식으로 자결하였다.
○ 1923년 1월 김상옥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대치한 후 자결하였다.
1의열단
2국권회복단
3대한독립군
4조선의용군
정답 및 해설

지문의 활동을 수행한 단체는 의열단이다.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투탄과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투탄은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의거이다.

  • 국권회복단: 1910년대 국내에서 활동한 비밀 결사이다.
  • 대한독립군: 홍범도가 이끈 독립군 부대로 봉오동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 조선의용군: 1940년대 화북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독립 동맹의 군사 조직이다.
문제 19
일제 말 민족말살정책의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1황국신민의 서사를 암송하도록 강요하였다.
2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가 수업하도록 하였다.
3모든 읍과 면에 신사를 만들어 조선인을 강제로 참배시켰다.
4우리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단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의 수업은 민족말살정책기의 내용이 아니다.

교사가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한 것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모습이다.

  • 황국신민의 서사 암송: 일제 말 황국 신민화 정책으로 강요되었다.
  • 신사 참배 강요: 일제 말 전국에 신사를 세워 조선인에게 강요하였다.
  • 창씨개명: 일제 말 우리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정책이다.
문제 20
다음은 어떤 회의에서 합의한 결정문이다. 이 회의의 결정 사항으로 옳은 것은?
속히 일본의 장구한 조선통치의 참담한 결과를 청산하기 위하여 조선의 공업, 교통, 농업과 조선 인민의 민족문화 발전에 필요한 모든 시책을 취할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1신간회를 해소한다.
2남한에 미군정을 실시한다.
3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한다.
4조선에 신탁통치를 실시한다.
정답 및 해설

이 회의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이며 결정 사항은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 실시이다.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 수립이 단서로, 1945년 12월 회의에서 임시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최대 5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 신간회 해소: 1931년에 이루어진 일로 이 회의와 무관하다.
  • 남한 미군정 실시: 이 회의 이전인 1945년 9월에 이미 시작되었다.
  • 좌우합작위원회 구성: 1946년 여운형과 김규식 등이 주도한 활동으로 회의 결정 사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