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발음에 맞지 않는 것은 ‘밭을[바슬]’이다.
받침 ‘ㅌ’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오면 받침이 그대로 뒤 음절 첫소리로 옮겨 가는 연음이 일어나므로 [바틀]로 발음한다.
- ‘없이도’는 겹받침 ‘ㅄ’의 ‘ㅅ’이 뒤 음절로 옮겨 가며 된소리가 되어 [업씨도]로 발음한다.
- ‘피읖을’은 한글 자모 이름의 받침을 발음하는 특례에 따라 [피으블]로 발음한다.
- ‘않도록’은 받침 ‘ㅎ’과 뒤의 ‘ㄷ’이 합쳐져 ‘ㅌ’이 되므로 [안토록]으로 발음한다.
괄호에는 전환점(轉換點)이 들어가야 한다.
글쓴이는 적성을 발견한 해를 ‘내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므로,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계기나 고비를 뜻하는 말이 알맞다.
- 첩경(捷徑)은 지름길이나 어떤 일에 이르기 쉬운 방법을 뜻하여 삶이 바뀐 시점과 맞지 않는다.
- 접경(接境)은 경계가 서로 맞닿은 곳을 뜻하여 문맥과 관계가 없다.
- 교차점(交叉點)은 서로 엇갈리는 지점을 뜻할 뿐 변화의 계기를 나타내지 않는다.
간접 언어 행위와 관계없는 것은 ‘지우개 좀 줄래?’이다.
이 말은 지우개를 달라는 요청을 문장에 그대로 담고 있어 맥락의 도움 없이도 의도가 드러나는 직접 언어 행위에 해당한다.
- ‘좀 춥지 않으세요?’는 추위를 묻는 형식으로 창문을 닫아 달라는 의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 ‘저 이제 내립니다.’는 자기 상황을 알리는 형식으로 비켜 달라는 의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 ‘오늘 저녁에 바빠요?’는 일정을 묻는 형식으로 음악회에 함께 가자는 의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은 ‘이번 사건은 가능한 한 알려지지 않는 것이 좋겠다.’이다.
‘가능한’ 뒤에 ‘한’을 갖추어 ‘가능한 한’으로 쓴 올바른 표현이며, 문장 성분의 호응에도 문제가 없다.
- ‘환경을 지배하기도 하고 지배받기도 한다’는 목적어 ‘환경을’이 ‘지배받기도’와 호응하지 않으므로 ‘환경에 지배받기도’와 같이 고쳐야 한다.
- ‘생각되어진다’는 ‘-되다’에 ‘-어지다’가 겹친 이중 피동이므로 ‘생각된다’로 고쳐야 한다.
- ‘보여진다’는 피동사 ‘보이다’에 ‘-어지다’가 겹친 이중 피동이므로 ‘보인다’로 고쳐야 한다.
품사가 다른 것은 형용사 ‘작다’이다.
‘작다’는 대상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며, 현재 시제 어미 ‘-ㄴ다/-는다’와 결합하지 못해 ‘작는다’로 쓸 수 없다. 나머지는 모두 동사이다.
- ‘오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온다’로 활용하는 동사이다.
- ‘가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간다’로 활용하는 동사이다.
- ‘먹다’는 동작을 나타내고 ‘먹는다’로 활용하는 동사이다.
○ 일기에 하루의 ( ㉡ )을 적어 자신을 돌아본다.
㉠에는 鑑賞(감상), ㉡에는 感想(감상)이 들어가야 한다.
鑑賞은 예술 작품을 이해하며 즐기고 평가하는 일이고, 感想은 마음에 느끼어 일어나는 생각이다. 感傷은 하찮은 일에도 슬퍼지는 마음을 뜻한다.
- ㉡에 感傷을 넣은 조합은 하루를 적어 자신을 돌아본다는 문맥과 맞지 않는다.
- ㉠에 感想, ㉡에 感傷을 넣은 조합은 음악 작품을 즐기는 행위를 나타내지 못하고 ㉡의 문맥과도 맞지 않는다.
- ㉠에 感想, ㉡에 鑑賞을 넣은 조합은 두 낱말의 뜻이 서로 뒤바뀌어 있다.
( ) 조선 제일의 호화 주택은 중종반정 공신 박원종(朴元宗)의 집이었다. 그 집에 가 본 적이 있는 정사룡(鄭士龍)의 묘사에 의하면, 그 집은 화려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정사룡은 대청에 닿기 위해 세 개의 커다란 문을 지나야 했다. 대청에서는 붉은 난간과 푸른 창문이 눈부셨는데, 거기서 잠시 기다리자, 작은 누각에서 성장한 시녀가 나와 손님을 이끌고 구불구불한 장식 회랑을 무수히 거쳐 어딘가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못 동쪽 평상 위 비단 자리에 여종들의 부채질을 받으며 박원종이 누워 있었다. 화려의 극치를 보인 이 집 때문에 박원종은 당시 백성들로부터 지탄받았다고 한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괄호에는 앞뒤 내용을 대조하는 ‘반면에’가 들어가야 한다.
앞 문단은 ‘단칸집’에 살며 사색을 즐긴 홍귀달의 이야기이고, 뒤 문단은 ‘화려의 극치’를 이룬 박원종의 집 이야기이므로 두 내용이 대조 관계이다.
- ‘하물며’는 앞의 사실에 비추어 뒤의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을 나타내므로 대조 관계에 맞지 않는다.
- ‘게다가’는 앞의 내용에 비슷한 내용을 덧붙일 때 쓰므로 맞지 않는다.
- ‘심지어’는 앞의 내용보다 더 심한 경우를 들 때 쓰므로 맞지 않는다.
( ) 조선 제일의 호화 주택은 중종반정 공신 박원종(朴元宗)의 집이었다. 그 집에 가 본 적이 있는 정사룡(鄭士龍)의 묘사에 의하면, 그 집은 화려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정사룡은 대청에 닿기 위해 세 개의 커다란 문을 지나야 했다. 대청에서는 붉은 난간과 푸른 창문이 눈부셨는데, 거기서 잠시 기다리자, 작은 누각에서 성장한 시녀가 나와 손님을 이끌고 구불구불한 장식 회랑을 무수히 거쳐 어딘가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못 동쪽 평상 위 비단 자리에 여종들의 부채질을 받으며 박원종이 누워 있었다. 화려의 극치를 보인 이 집 때문에 박원종은 당시 백성들로부터 지탄받았다고 한다.
이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이 글은 두 인물의 집을 대비하여 청백리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단칸집’에서도 ‘9,999칸의 사색’을 한 홍귀달은 선비들에게 ‘큰 감명’을 준 반면, 호화 주택에 산 박원종은 ‘백성들로부터 지탄’받았다고 서술한다.
- 외국 주택과 조선 가옥을 대조했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 ‘런던의 타지마할’은 글을 여는 도입 화제에 그친다.
- 가옥 구조를 주된 이야깃거리로 삼았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 집의 모습은 인물의 삶을 보여 주기 위한 소재이다.
- 권력과 경제력의 상관관계를 보여 준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 글에서 두 요소의 관계를 따지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선생님 잡수라고 사 왔습죠.”
하는 때였다. 웬 사람 하나가 날쌔게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수건이의 멱살을 움켜쥐고 끌고 나갔다. 수건이는 그 우둔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꼼짝 못하고 끌려 나갔다.
나는 수건이가 포도밭에서 포도를 훔쳐 온 것을 직각하였다. 쫓아 나가 매를 말리고 포도 값을 물어 주었다. 포도 값을 물어 주고 보니 수건이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다섯 송이의 포도를 탁자 위에 얹어 놓고 오래 바라보며 아껴 먹었다. 그의 은근한 순정의 열매를 먹듯 한 알을 가지고도 오래 입 안에 굴려 보며 먹었다.
- 이태준, 「달밤」 중에서 -
이 글은 인물의 행동 묘사를 통해 인물 간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수건이는 ‘벙긋거리며’ 포도를 건네고, ‘나’는 매를 말린 뒤 포도 값을 물어 주며 ‘오래 입 안에 굴려 보며’ 먹는다. 이러한 행동에서 수건이의 순박한 정과 그를 아끼는 ‘나’의 따뜻한 관계가 드러난다.
-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는 어휘를 사용했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는 시대를 특정할 만한 어휘를 찾을 수 없다.
- 성격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 포도를 둘러싼 한 사건만 다룰 뿐 인물의 성격이 바뀌는 과정은 없다.
- 내면 묘사로 갈등을 드러냈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 ‘나’의 짐작과 감회는 나타나지만 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은 그려지지 않는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중에서 -
옳지 않은 설명은 ㉣을 ‘사랑의 영원함에 대한 기원’으로 본 것이다.
㉣은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고 하여 뜻밖의 이별이 주는 슬픔을 토로할 뿐, 사랑이 영원하기를 비는 내용이 아니다.
- ㉠은 ‘님은 갔습니다’를 되풀이하므로 임의 부재에 대한 인식으로 볼 수 있다.
- ㉡은 ‘굳고 빛나던 옛 맹서’가 변한 모습이므로 약속이 깨어져 허무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 ㉢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강렬한 기억이므로 임과 만난 순간의 황홀함으로 볼 수 있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 것은 ‘불문률’이며, ‘불문율’로 적어야 한다.
한자음 ‘률(律·率)’은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서 ‘율’로 적고, 그 밖의 받침 뒤에서는 ‘률’로 적는다. ‘불문율’은 ‘ㄴ’ 받침 뒤이므로 ‘율’이 맞다.
- ‘수익률’은 ‘ㄱ’ 받침 뒤이므로 ‘률’로 적는다.
- ‘경쟁률’은 ‘ㅇ’ 받침 뒤이므로 ‘률’로 적는다.
- ‘정답률’은 ‘ㅂ’ 받침 뒤이므로 ‘률’로 적는다.
문맥에 맞게 쓰인 것은 ‘가사 문학의 정수’이다.
정수(精髓)는 사물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나 핵심을 뜻하므로 「관동별곡」을 높이 평가하는 문장에 알맞다.
- ‘경신’은 기록을 깨뜨리거나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이므로, 병에서 회복하는 문맥에서는 ‘갱생’과 같은 말을 써야 한다.
- ‘조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는 뜻이므로, 관광단지를 만드는 문맥에서는 ‘조성’을 써야 한다.
- ‘초면’은 처음 만나는 처지를 뜻하므로, 낯이 익다고 느낀 문맥에서는 ‘구면’을 써야 한다.
‘경찰의 손’과 뜻이 가장 가까운 것은 ‘남의 손에 넘어갔다’의 ‘손’이다.
두 문장의 ‘손’은 모두 어떤 사람의 권한이나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를 뜻한다.
-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의 ‘손’은 신체 부위를 뜻한다.
- ‘손이 커서’의 ‘손’은 씀씀이나 일을 벌이는 규모를 뜻하는 관용 표현이다.
- ‘손이 모자라서’의 ‘손’은 일을 하는 사람, 곧 일손을 뜻한다.
지문이 설명하는 언어의 특성은 역사성이다.
지문은 ‘단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기도 한다’고 하며, 15세기 형태가 현대의 ‘가늘다’로 바뀐 예를 들고 있다. 언어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설명이다.
- 사회성은 언어가 사회 구성원의 약속이어서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특성이므로 지문의 내용과 다르다.
- 자의성은 말소리와 의미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없다는 특성이므로 지문의 내용과 다르다.
우리 청소년들도 스마트폰 열풍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조사에 의하면 해마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급증하여 현재 중고생의 80 %가량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문제는 이런 스마트폰이 우리 학생들의 스마트한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각종 부작용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지나친 스마트폰의 사용은 가족 관계, 친구 관계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학업성적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일상생활에도 큰 장애가 된다고 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방안은 ㉡을 ‘숙인 체’로 고치는 것이다.
‘채’는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라는 뜻이고 ‘체’는 그럴듯하게 꾸미는 태도를 뜻한다. 고개를 숙인 상태로 열중하는 모습이므로 ‘숙인 채’가 옳다.
- ㉠은 ‘음악’이 서술어 ‘볼’과 호응하지 않으므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등’으로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
- ㉢은 보유율 이야기에서 문제 제기로 화제가 바뀌는 자리이므로 ‘또한’을 ‘그런데’로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
- ㉣은 주어 ‘문제는’과 호응해야 하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로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국어사전에는 우리말로 인정된 단어가 등재된다는 점이다.
외국어 단어는 ‘우리말로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표제어로 등재되지 않는다’고 하고, 외래어와 귀화어는 우리말의 일부로서 사전에 등재된다고 설명한다.
- 외래어가 시간이 지나면 귀화어가 된다는 진술은 알 수 없다. 글은 그렇게 취급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만 한다.
- 사전 표시 방식이 같다는 진술은 틀렸다. ‘외래어는 외국어 단어를 병기하지만 귀화어는 어원만 별도로 표시’한다고 하였다.
- 외래어가 우리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진술은 틀렸다. 글은 외래어를 ‘우리말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글의 전개 방식은 유추이다.
글은 ‘자전거 타기’와 ‘독서’의 유사성에 기대어, 친숙한 자전거 타기로 독서를 설명한다. ‘자전거 타기이듯이’ 읽는 이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이를 보여 준다.
- 분류는 대상을 기준에 따라 묶거나 나누는 방식인데, 글에는 그런 구분이 없다.
- 인용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끌어 쓰는 방식인데, 글에는 끌어 쓴 말이나 글이 없다.
- 정의는 개념의 뜻을 밝히는 방식인데, 독서의 뜻을 밝힌 대목이 있어도 글 전체를 이끄는 방식은 두 대상의 비교이다.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墨畵)」 -
이 시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에서 할머니와 소가 고단하고 외로운 처지를 서로 가엾게 여기며 위로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동병상련은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 유유상종(類類相從)은 같은 무리끼리 서로 어울린다는 뜻으로, 처지에 대한 연민을 담지 못한다.
- 주객전도(主客顚倒)는 주인과 손의 위치가 뒤바뀐다는 뜻으로, 시의 내용과 관계가 없다.
-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재물을 빼앗는다는 뜻으로, 시의 내용과 관계가 없다.
괄호에 들어갈 한자는 止(그칠 지)로, 성어는 명경지수(明鏡止水)이다.
명경지수는 맑은 거울과 고요히 멈춘 물이라는 뜻으로, 잡념과 가식, 허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비유한다.
- 池(못 지)는 연못을 뜻하여 이 성어의 글자가 아니다.
- 之(갈 지)는 어조사나 ‘가다’의 뜻으로 쓰이며 이 성어의 글자가 아니다.
- 址(터 지)는 터를 뜻하여 이 성어의 글자가 아니다.
적절하지 않은 표현은 상주에게 ‘호상이네요’라고 말한 것이다.
호상(好喪)은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을 이르는 말이지만, 슬픔에 잠긴 상주에게 하면 예의에 어긋난다.
- 할머니께 드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는 웃어른을 높여 새해 덕담을 전하는 말로 적절하다.
- 친구에게 한 ‘내 잘못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줘’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말로 적절하다.
- 환자에게 한 ‘좀 어떠십니까?’는 몸 상태를 높여 묻는 병문안 인사로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