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인은 지증왕이 아니라 법흥왕 때의 일이다.
불교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되었다. 지증왕은 그보다 앞선 왕으로, 국호와 왕호를 정비하고 농업·상업을 진흥하였다.
-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은 지증왕 때의 사실이다.
- 수도에 시장 감독 기구를 둔 동시 개설은 지증왕 때의 사실이다.
- 농사 권장과 우경 보급은 지증왕 때의 사실이다.
6두품 출신의 당 유학은 장보고가 아니라 최치원 같은 도당 유학생의 이력이다.
장보고는 당에 건너가 군인으로 활약한 뒤 귀국하여 해상 세력을 이끌었다.
- 완도의 청해진 설치는 장보고의 대표적 활동이다.
- 신라인을 약탈하던 해적 소탕은 청해진 설치의 목적이자 장보고의 활동이다.
- 당·신라·일본을 잇는 교통과 무역 장악은 청해진을 거점으로 한 장보고의 활동이다.
고려 경종 때 처음으로 전시과(시정 전시과)가 제정되었다.
시정 전시과는 관등과 함께 인품을 반영해 토지를 지급한 제도이다.
- 백관의 공복 제정은 광종 때의 일이다.
- 지방에 경학·의학 박사를 파견한 것은 성종 때의 일이다.
-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을 추진한 것은 태조 왕건 때의 일이다.
과전법은 수조권만 지급한 제도이므로, 노동력 징발 권리를 주었다는 설명이 틀렸다.
백성의 노동력과 공물까지 수취할 수 있었던 것은 신라의 녹읍이다. 과전법의 수급자는 세금을 거둘 권리만 받았다.
- 직역의 대가로 수조권을 지급한 것은 과전법의 기본 원칙이다.
- 사망한 관료의 처에게 준 수신전과 어린 자녀에게 준 휼양전은 세습의 길을 열어 준 명목이다.
- 지급 대상 토지를 경기 지역으로 한정한 것은 과전법의 특징이다.
ㄴ. 가야가 낙랑과 왜 등에 철을 수출하였다.
ㄷ. 고구려가 율령을 반포하고 태학을 설립하였다.
ㄹ. 신라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바른 순서는 ㄴ→ㄷ→ㄹ→ㄱ이다.
낙랑이 등장하는 가야의 철 수출이 가장 이르고, 삼국의 체제 정비를 거쳐 백제 멸망으로 이어진다.
- ㄴ: 가야의 철 수출 대상에 낙랑이 있으므로, 낙랑이 존재하던 초기 가야 시기이다.
- ㄷ: 율령 반포와 태학 설립은 4세기 후반 고구려 소수림왕 때이다.
- ㄹ: 화랑도의 국가 조직 개편은 6세기 신라 진흥왕 때이다.
- ㄱ: 사비성 함락은 660년으로 가장 늦다.
황초령비·마운령비는 남북국시대가 아니라 삼국시대의 유물이다.
두 비석은 6세기 진흥왕이 함경도 지역까지 영토를 넓힌 뒤 세운 순수비이다.
- 발해가 스스로를 ‘천손’이라 칭한 것은 자주 의식을 보여 주는 사실이다.
- 5경 15부 62주는 발해 지방 행정 체제의 근간이다.
- 신라의 9서당에 고구려·백제·말갈 출신을 포함한 것은 민족 융합 정책의 일환이다.
자료는 단군 신화이므로 탐구 주제로는 고조선의 건국과 주민 집단이 알맞다.
‘환웅’, ‘신단수’, ‘곰’, ‘호랑이’가 단서이다. 환웅의 무리는 이주 세력, 곰과 호랑이는 토착 부족으로 해석되어 주민 집단의 결합을 탐구할 수 있다.
- 금관의 형태는 삼국시대의 유물을 다루는 주제로, 자료에 관련 내용이 없다.
- 초기 고구려의 경제 상황은 고구려 관련 사료로 탐구할 주제이다.
- 구석기시대의 동굴 주거지는 유적으로 탐구할 주제이며, 자료의 동굴은 신화 속 배경이다.
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에 취임하였다.
ㄷ. 건양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태양력을 채택하였다.
ㄹ. 교육입국 조서를 반포하고 한성 사범 학교를 설립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정책은 양전·지계 발급과 원수부 설치이다.
대한제국은 광무개혁으로 토지 소유권을 확인하는 지계를 발급하고, 황제가 군 통수권을 장악하는 원수부를 두었다.
- 건양 연호와 태양력 채택은 대한제국 수립 이전의 을미개혁 때 일이다.
- 교육입국 조서 반포와 한성 사범 학교 설립은 대한제국 수립 이전의 제2차 갑오개혁 때 일이다.
㉠은 의열단이며, 소속 인물의 활동은 나석주의 동양 척식 주식회사 폭탄 투척이다.
‘김원봉’과 ‘조선혁명선언’이 단서이다. 나석주는 의열단원으로 일제의 수탈 기관을 공격하였다.
-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은 1909년의 일로, 의열단 결성 이전이다.
-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은 1908년의 일로, 의열단 결성 이전이다.
- 윤봉길의 폭탄 의거는 의열단이 아니라 한인 애국단의 활동이다.
ㄴ.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
ㄷ. 일본의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ㄹ.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은 광성보에서 미국군을 맞아 항전하였다.
바른 순서는 ㄴ→ㄱ→ㄹ→ㄷ이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서양 세력 침입이 먼저 이어지고, 운요호 사건이 가장 늦다.
- ㄴ: 정족산성 전투는 1866년 병인양요 때이다.
- ㄱ: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는 1868년이다.
- ㄹ: 어재연의 광성보 항전은 1871년 신미양요 때이다.
- ㄷ: 운요호 사건은 1875년이다.
-『삼국지』-
㉠은 삼한의 신성 지역인 소도로, 죄인이 도망해 숨어도 잡아갈 수 없는 곳이다.
‘천군’, ‘별읍’,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이 단서이다. 소도는 군장의 정치권력이 미치지 않아 제정 분리를 보여 준다.
- 12월의 제천 행사는 부여의 영고이다.
- 침범 시 소·말로 배상하는 풍습은 동예의 책화이다.
- 가축의 이름을 딴 제가가 주관한 곳은 부여의 사출도이다.
『농사직설』은 정초 등이 왕명을 받아 우리 실정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서이다.
세종 때 각 지역 농민의 경험을 모아 편찬하였으며, 중국 농법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난 우리 농서로 꼽힌다.
- 『농상집요』는 강희안의 저술이 아니라 원나라 농서이다.
- 『산림경제』의 저자는 서유구가 아니라 홍만선이다.
- 『금양잡록』의 저자는 홍만선이 아니라 강희맹이다.
혜상공국 혁파와 의정부·6조 외 기관 폐지는 홍범 14조가 아니라 갑신정변 14개조 정강의 내용이다.
홍범 14조는 제2차 갑오개혁 때 고종이 반포한 개혁 강령으로, 청과의 관계 단절과 내정 개혁을 담았다.
-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의 분리는 홍범 14조의 내용이다.
-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우는 것은 홍범 14조의 내용이다.
- 젊은이를 외국에 파견해 학술과 기예를 익히게 하는 것은 홍범 14조의 내용이다.
ㄴ. 김일손이 지은 사초가 문제 되어 김종직의 문인들이 처형당했다.
ㄷ. 강홍립이 1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명의 후금 공격을 지원하였다.
ㄹ. 위훈삭제를 주장하는 조광조의 급진적인 개혁에 반정 공신들이 반발하였다.
바른 순서는 ㄴ→ㄹ→ㄱ→ㄷ이다.
연산군 대의 사화에서 시작해 중종, 선조를 거쳐 광해군 대의 파병으로 이어진다.
- ㄴ: 김일손의 사초가 문제가 된 무오사화는 1498년 연산군 때이다.
- ㄹ: 조광조의 위훈 삭제 주장이 부른 기묘사화는 1519년 중종 때이다.
- ㄱ: 정여립 모반 사건은 1589년 선조 때이다.
- ㄷ: 강홍립의 파병은 1619년 광해군 때이다.
유향소와 경재소는 조선 후기가 아니라 조선 전기에 설치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부농층이 성장하면서 기존 사족의 향촌 지배력이 약화되고, 수령과 향리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 사족들은 약해진 지위를 지키려 혈연 중심의 동족 마을을 늘려 갔다.
- 부농층은 관권과 결탁하여 향임직에 진출하였다.
- 향회는 사족의 자치 기구에서 수령의 부세 자문 기구로 변질되었다.
설명에 해당하는 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태종 때 제작’, ‘권근의 발문’, ‘원나라의 세계 지도 참고’가 단서이다.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 지도로 꼽히며 중화 중심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 동국지도는 세계 지도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그린 지도이다.
- 조선방역지도는 16세기에 제작된 우리나라 지도이다.
- 곤여만국전도는 태종 때의 지도가 아니라 마테오 리치가 제작해 17세기 초 조선에 전해진 세계 지도이다.
○ 항일 의병을 일으킨 임병찬을 중심으로 복벽주의를 바탕으로 한 독립의군부가 조직되었다.
| 1910 국권 피탈 | 1919 3․1운동 | 1931 만주사변 | 1941 태평양 전쟁 | 1945 광복 | ||||
|---|---|---|---|---|---|---|---|---|
| (가) | (나) | (다) | (라) |
두 사건은 모두 1910년대의 일이므로 1910년 국권 피탈과 1919년 3·1 운동 사이인 (가) 시기에 해당한다.
임병찬의 ‘독립의군부’는 1912년, 이상설과 이동휘의 ‘대한광복군 정부’는 1914년에 조직되었다. 무단 통치기에 비밀 결사와 국외 기지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 3·1 운동과 만주사변 사이는 1927년 신간회 창립 등이 있던 시기이다.
- 만주사변과 태평양 전쟁 사이는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등이 있던 시기이다.
- 태평양 전쟁과 광복 사이는 1944년 조선 건국 동맹 결성 등이 있던 시기이다.
○ 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함.
○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함.
강령을 발표한 단체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이며, 결성 당시 여운형이 위원장, 안재홍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완전한 독립 국가의 건설’, ‘일시적 과도기’,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가 단서이다. 이 단체는 광복 직후 치안과 건국 준비를 맡았다.
- 좌우 합작 7원칙은 1946년 좌우 합작 위원회가 발표하였다.
- 김성수, 송진우 등 우익 인사들은 건국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 평양 남북 협상은 1948년 김구와 김규식이 추진하였다.
밑줄 친 ‘그’는 이황이며, 그의 『자성록』은 일본 성리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자서절요’와 ‘성학십도’가 단서이다. 이황은 인간의 심성을 중시하는 주리론의 학풍을 세웠다.
- 대명의리론 강조와 북벌론 제창은 송시열의 주장이다.
- 경과 의를 강조하며 수양과 실천을 중시한 인물은 조식이다.
- 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실적·개혁적 경향은 이이의 사상이다.
글의 저자는 박은식이며, 그는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민족의 독립운동 과정을 서술하였다.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라는 표현이 단서이다. 박은식은 민족의 혼을 강조하였고 『한국통사』로 일제의 침략 과정을 정리하였다.
- 진단학회를 조직해 실증주의 사학을 발전시킨 인물은 이병도 등이다.
- 유물사관에 입각한 사회경제 사학은 백남운이 대표한다.
- 조선얼을 강조하며 조선학 운동을 이끈 인물은 정인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