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 에움길’은 두 단어의 모음이 모두 단모음이다.
‘공책’은 ㅗ·ㅐ, ‘에움길’은 ㅔ·ㅜ·ㅣ로 이루어져 있다. 표준 발음법의 단모음은 ㅏ·ㅐ·ㅓ·ㅔ·ㅗ·ㅚ·ㅜ·ㅟ·ㅡ·ㅣ이다.
- ‘서예, 뒤웅박’: ‘예’의 ㅖ가 이중 모음이다.
- ‘팔괘, 외골목’: ‘괘’의 ㅙ가 이중 모음이다.
- ‘자료, 늦가을’: ‘료’의 ㅛ가 이중 모음이다.
이 대리: 그래도 상사인데. 하긴 직장 생활 한평생 할 것도 아닌데 편하게 지내는 것이 좋지.
박 과장은 상황에 따른 존대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부서 내에서야 다른 직원들이 있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말씀 낮추세요”라는 말에서 장소와 듣는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높임 여부를 달리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성별에 따른 협력 방식: 대화에 성별 차이나 협력을 다룬 내용이 없다.
- 계층에 따른 공감 방식: 공감을 표현하는 방식을 계층과 연결한 말이 없다.
- 세대에 따른 설득 방식: 말을 낮추라고 권하고는 있으나 그 기준이 세대가 아니라 부서 안팎이라는 상황이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거나,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음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서 둘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맑은 거울을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생긴 사람은 오히려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습니다. 못생긴 사람이 맑은 거울을 본다면 반드시 깨뜨릴 것입니다. 그러니 깨뜨려질 바에야 차라리 먼지에 흐려진 채로 두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먼지로 흐려진 것은 겉은 흐릴지라도 그 맑은 바탕은 없어지지 않으니, 잘생긴 사람을 만난 후에 갈고 닦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음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림을 취하고자 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를 이상하다 생각합니까?” 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 이규보, 「경설」 -
적절하지 않은 설명은 인물의 역할을 뒤바꾼 것이다. 작가의 분신은 ‘나그네’가 아니라 ‘거사’이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거나,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음을 취하는 것”이라며 일반적 인식을 말하는 쪽이 나그네이고, 흐린 거울을 보는 까닭을 밝히며 주제를 전하는 쪽이 거사이다.
- 문답 형식: 나그네가 묻고 거사가 답하는 구성이어서 작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생각을 전한다.
- ‘흐린 거울’과 ‘맑은 거울’의 대비: “맑음을 취하기 위함”과 “흐림을 취하고자 하는 것”을 맞세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 비유적 표현의 활용: “잘생긴 사람을 만난 후에 갈고 닦아도 늦지 않습니다”처럼 거울에 빗대어 삶의 깨달음을 제시한다.
두 ‘사실’을 가르는 기준은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여부이다.
글은 역사를 “그 많은 사실(事實)들 중에서 그야말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사실들, 즉 사실(史實)을 뽑아 모은 것”이라고 직접 정의한다.
- 대중의 동의가 진실한지 여부: 글에서 폭넓은 동의는 선택된 사실의 진실성을 인정받는 조건이며, 동의 자체가 진실한지를 따지지는 않는다.
- 유일한 가치와 대표성을 확보했는지 여부: 글에 유일성이나 대표성을 기준으로 삼는 내용이 없다.
- 역사가의 사적인 견해가 반영되었는지 여부: 글은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과 시대적 맥락을 말할 뿐, 사적 견해의 반영 여부를 구분 기준으로 들지 않는다.
○ 탈락: 한 음운이 없어지는 현상
○ 첨가: 없던 음운이 생기는 현상
○ 축약: 두 음운이 합쳐져서 제3의 음운으로 바뀌는 현상
‘떡잎[떵닙]’에서는 첨가와 대치가 모두 일어난다.
합성어 ‘떡잎’의 뒷말에 ㄴ이 덧나는 것은 ㄴ 첨가이고, ㅍ이 ㅂ으로 바뀌고 ㄱ이 ㅇ으로 바뀌는 평파열음화와 비음화는 대치이다.
- ‘팥하고[파타고]’: ㅌ이 ㄷ으로 바뀐 뒤(대치) ㅎ과 합쳐져 ㅌ이 되므로(축약) 없어지는 음운이 없다. 탈락이 아니다.
- ‘밝고[발꼬]’: 겹받침의 ㄱ이 없어지는 탈락과 ㄱ이 ㄲ으로 바뀌는 대치가 일어나며, 축약은 없다.
- ‘부엌도[부억또]’: ㅋ이 ㄱ으로, ㄷ이 ㄸ으로 바뀌는 대치만 일어나며, 새로 생긴 음운이 없어 첨가가 아니다.
‘목표량을 달성하겠다’의 ‘-겠-’이 제시문과 같이 주체의 의지를 나타낸다.
“낚시하러 가겠다고 한사코 우겼다”에서 ‘-겠-’은 가려는 뜻을 나타내고, ‘꼭 달성하겠다’도 이루려는 뜻을 나타낸다.
- ‘참 특이한 사람 다 보겠군’: 의지가 아니라 눈앞의 대상을 보고 놀라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내일 새벽에 도착하겠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추측이다.
- ‘식장으로 입장하시겠습니다’: 곧 있을 일을 알리는 표현으로, 말하는 이의 의지와 관계가 없다.
‘그릇과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의 쓰임이 적절하다.
‘부딪치다’는 ‘부딪다’를 강조하는 말로, 두 물체가 세게 마주 닿을 때 쓴다. 나머지는 뜻이 비슷하거나 소리가 같은 다른 단어와 혼동한 경우이다.
- 흙덩이를 ‘부신’: 덩어리를 깨뜨린다는 뜻이므로 ‘부순’으로 써야 한다.
- 굵기가 ‘얇아서’: 굵기에는 ‘가늘다’를 쓰고, ‘얇다’는 두께에 쓴다.
- 눈물을 ‘겉잡을’: 쏟아지는 것을 붙들어 진정시킨다는 뜻이므로 ‘걷잡을’로 써야 한다.
‘한식은 매운 맛과 풍부한 영양가가 특징이다.’가 호응이 바른 문장이다.
‘매운 맛과 풍부한 영양가’가 함께 ‘특징이다’에 이어져 주어부와 서술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나머지는 필요한 성분이 빠졌거나 주어와 서술어가 어긋난다.
- ‘작품에 손을 대거나 파손하는 행위 금지’: ‘파손하는’의 목적어가 빠졌으므로 ‘작품에 손을 대거나 작품을 파손하는’으로 고친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 먹자.’: 주어 ‘바는’에 맞게 ‘먹자는 것이다’로 고친다.
- ‘실패한 원인은 … 몰랐어요.’: 주어 ‘원인은’에 맞게 ‘몰랐기 때문이다’로 고친다.
( )命: 명령을 받고 일을 처리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함
( )活: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공통으로 들어갈 한자는 復(회복할 복, 다시 부)이다.
풀이에 맞는 말은 차례로 回復(회복), 復命(복명), 復活(부활)이다.
- 死(죽을 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과 뜻이 맞지 않는다.
- 生(날 생): 回生은 성립하지만 生命·生活은 제시된 풀이와 다른 말이다.
- 歸(돌아갈 귀): 回歸는 있어도 ‘歸活’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예서부터가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금은 개복동과 연접된 구복동(九福洞)을 한데 버무려 가지고, 산상정(山上町)이니 개운정(開運町)이니 하는 하이칼라 이름을 지었지만, 예나 시방이나 동네의 모양다리는 그냥 그 대중이고 조금도 개운(開運)은 되질 않았다. 그저 복판에 포도 장치(鋪道裝置)도 안 한 십오 간짜리 토막길이 있고, 길 좌우로 연달아 평지가 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대로 사뭇 언덕 비탈이다.
그러나 언덕 비탈의 언덕은 눈으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 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 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듯 다닥다닥 주어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인 것이다. 그 집들이 콩나물 길듯 주어박힌 동네 모양새에서 생긴 이름인지, 이 개복동서 그 너머 둔뱀이[屯栗里]로 넘어가는 고개를 콩나물 고개라고 하는데, 실없이 제격에 맞는 이름이다.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그리고 이편으로 뚝 떨어져 정거장 뒤에 있는 ‘스래[京浦里]’,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십 분의 일도 못 되는 땅이다.
그뿐 아니라 정리된 시구(市區)라든지, 근대식 건물로든지, 사회 시설이나 위생 시설로든지, 제법 문화 도시의 모습을 차리고 있는 본정통이나, 전주통이나, 공원 밑 일대나, 또 넌지시 월명산(月明山) 아래로 자리를 잡고 있는 주택지대나, 이런 데다가 빗대면 개복동이니 둔뱀이니 하는 곳은 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 세기라니, 인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고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질 않다.
- 채만식, 「탁류」 -
이 글은 구체적 지명으로 공간적 배경을 제시하여 시대적 상황을 드러낸다.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이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등에 몰려 사는 모습을 “본정통”, “전주통”과 맞세워 당시 조선 사람들의 궁핍한 처지를 보여 준다.
- 동시에 벌어진 사건을 나란히 서술: 글은 사건보다 동네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 과거와 사뭇 다른 현실을 대조: “예나 시방이나 동네의 모양다리는 그냥 그 대중”이라 하여 오히려 변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 인물의 내적 갈등 제시: 정 주사의 이동 뒤로 서술자의 공간 설명이 이어질 뿐 내면의 갈등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혼란은 책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역할을 교육이 충분히 수행하지 못해 ‘책을 꾸며낼’ 권리가 학생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텍스트에 대한 존중과 수정 불가의 금기에 마비당하는데다 텍스트를 암송하거나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속박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창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상상력이 유익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것을 스스로 금해 버린다.
글과 가장 유사한 주장은 책을 많이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을 “창조적 활동”으로 보고, 학생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명하기 위한” 방도를 배우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 독서 습관과 문제 해결 능력: 글의 초점은 독서 습관의 효용이 아니라 책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 책을 읽는 행위 자체의 의미: 글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일을 다루므로 읽는 행위를 앞세우는 주장과 맞지 않는다.
- 좋은 책을 골라 읽어야 한다는 주장: 글에서 상상력을 막는 것은 무분별한 독서가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존중과 수정 불가의 금기”이다.
그런 혼란은 책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역할을 교육이 충분히 수행하지 못해 ‘책을 꾸며낼’ 권리가 학생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텍스트에 대한 존중과 수정 불가의 금기에 마비당하는데다 텍스트를 암송하거나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속박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창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상상력이 유익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것을 스스로 금해 버린다.
㉠ ‘표명하기’와 가장 가까운 말은 ‘밝히기’이다.
‘표명하다’는 생각이나 태도를 드러내어 분명히 하다라는 뜻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밝히기 위한”으로 바꿔도 문맥이 유지된다.
- ‘바꾸기’: 생각을 다른 것으로 고친다는 뜻이 되어 문맥과 달라진다.
- ‘더하기’: 무엇을 보탠다는 뜻으로, 드러낸다는 의미가 없다.
- ‘꾸미기’: 사실과 달리 지어낸다는 뜻이 있어 드러낸다는 의미와 다르다.
제목으로는 ‘판소리, 삶의 전면적 진실을 찾아서’가 가장 적절하다.
글은 심 봉사의 골계적 모습이 논리에는 어긋나도 삶에는 더 현실적이라고 설명한 뒤, “판소리는 이처럼 삶의 진실성을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로 맺는다.
- 기원과 역사: 판소리의 형성 과정이나 내력을 다루지 않는다.
- 전통 계승의 길: 판소리를 어떻게 이어 갈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
- 다양한 관객의 비밀: 관객의 구성이나 특성을 다루지 않는다.
끊임없이 / 열 마리씩 /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 파도의 칼날 하나를 / 집어 들었다.
- 전봉건, 「피아노」 -
이 시는 이미지의 연상을 통해 피아노 연주에서 받은 화자의 느낌을 드러낸다.
피아노를 치는 손에서 “신선한 물고기”가 쏟아지고, 이 이미지가 바다와 “시퍼런 파도의 칼날”로 이어지면서 연주의 생동감과 날카로운 감흥이 전달된다.
- 의인화와 부정적 태도: 대상을 사람처럼 표현하지 않았고 “신선한”, “가장 신나게”에서 보듯 태도도 긍정적이다.
- 자연의 가치 예찬: 인간과 자연을 견주거나 자연을 칭송하는 내용이 없다.
- 상반된 계절적 배경: 시에 계절을 나타내는 표현이 없다.
‘다친 데’와 ‘별수’로 쓴 문장이 옳다.
‘다친 데’의 ‘데’는 ‘곳’을 뜻하는 의존 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쓴다. ‘별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뜻하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쓴다.
- ‘다친데 … 별수’: ‘곳’의 뜻인 ‘데’를 어미처럼 붙여 썼다.
- ‘다친데 … 별 수’: ‘데’를 붙여 쓰고 한 단어인 ‘별수’를 띄어 써서 둘 다 틀렸다.
- ‘다친 데 … 별 수’: 앞은 맞지만 한 단어인 ‘별수’를 띄어 썼다.
‘병환이 깊다’의 반의어로 ‘가깝다’는 적절하지 않다.
여기서 ‘깊다’는 병이 중하다는 뜻이므로 반대말은 ‘가볍다’ 쪽이 된다. ‘가깝다’는 거리나 사이를 나타내는 말로 이 문맥의 ‘깊다’와 대립하지 않는다.
- ‘산 그림자가 깊다’ - ‘옅다’: 빛깔이나 어둠이 짙다는 뜻이므로 ‘옅다’와 대립한다.
- ‘생각이 깊다’ - ‘가볍다’: 생각이 신중하다는 뜻이므로 경솔하다는 뜻의 ‘가볍다’와 대립한다.
- ‘역사가 깊다’ - ‘짧다’: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뜻이므로 ‘짧다’와 대립한다.
구어를 활용한 글쓰기를 분산형 독서의 결과로 본 추론이 적절하지 않다.
“구어를 활용한 문장”은 글에서 검색형 독서로 이어진 인터넷 혁명 이후의 변화로 제시된다. 분산형 독서는 다독으로 바뀐 18세기 중반의 변화이다.
- 집중형 독서와 정독: “책을 정독(精讀)하는 집중형 독서”라는 진술에서 추론할 수 있다.
- 독자가 생산자 역할을 함: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진술에서 추론할 수 있다.
- 책의 양과 독서 방식의 상관관계: “책 생산량이 이전의 3, 4배로 증가하면서” 독서 방식이 바뀌었다는 진술에서 추론할 수 있다.
글에서 찾을 수 없는 서술 방식은 대상을 종류별로 나누어 정리하는 것이다.
시설 현대화 사업과 상품권 사업이 언급되지만 이는 현재 시행되는 방안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것일 뿐, 재래시장을 기준에 따라 분류하지는 않는다.
- 비유적 표현의 활용: “물고기 잡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에 스스로 생존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방식: “무엇이 필요한가?”, “근본 방안은 무엇일까?”로 화제를 제시하고 답을 이어 간다.
- 문제점 제시와 해결책 모색: 기존 사업의 한계를 지적한 뒤 젊은이들이 찾는 시장, 대형 유통 업체와의 차별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溫故知新(온고지신)이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앎’이라는 뜻으로,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 법도에 맞을” 것을 강조하는 글의 내용과 통한다.
- 一日三秋(일일삼추): 하루가 삼 년처럼 길게 느껴질 만큼 몹시 애타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 先憂後樂(선우후락): 세상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즐거움은 나중에 누린다는 뜻이다.
- 送舊迎新(송구영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님의 집 창(窓) 밧긔 석로(石路)라도 달흐리라
ᄭᅮᆷ길히 자최 업스니 그를 슬허ᄒᆞ노라.
(나) 비 갠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가)와 (나)는 모두 상황을 과장하여 화자의 절실한 감정을 드러낸다.
(가)는 꿈길에 자취가 난다면 돌길도 “달흐리라”라고 하여 임을 향한 그리움을 과장한다. (나)는 해마다 더해지는 눈물로 대동강 물이 다하지 않을 것이라 하여 이별의 슬픔을 과장한다.
- 시적 대상과의 대화: 두 작품 모두 화자의 독백일 뿐 대상과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
- 역설적 표현과 원망: 두 작품 모두 역설적 표현이 없고, 원망보다 슬픔과 그리움이 중심이다.
- 인식의 전환과 긍정: (가)의 “슬허ᄒᆞ노라”, (나)의 “슬픈 노래”에서 보듯 부정적 상황을 긍정으로 바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