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본론·결론의 단계마다 필자의 관점을 바꾸어 표현한다는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비평문은 대상에 대한 필자의 평가를 논증하는 글이므로, 글 전체에서 일관된 관점을 유지해야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 논거를 타당성·공정성·신뢰성으로 따져 활용하는 것은 비평문의 논증 요건에 맞다.
- 시사 현안 비평문은 문제 상황에 대한 자기 관점을 세우는 데서 출발하므로 적절하다.
-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간결·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비평문의 바람직한 표현 방식이다.
표준 발음은 생산력[생산녁]이다.
‘ㄴ’과 ‘ㄹ’이 만나면 보통 유음화가 일어나지만, 표준 발음법 제20항 ‘다만’ 규정에 따라 ‘생산력’은 예외적으로 ‘ㄹ’을 [ㄴ]으로 발음한다.
- ‘흙과’는 겹받침 ‘ㄺ’이 자음 앞에서 [ㄱ]으로 발음되므로 [흑꽈]가 맞다.
- ‘체증’은 된소리로 발음할 근거가 없어 [체증]이 맞다.
- ‘인사말’은 ‘ㄴ’이 덧나지 않아 [인사말]이 맞다.
‘하셨겠더구나’에 없는 의미는 진행이다.
이 표현은 ‘하-+-시-+-었-+-겠-+-더-+-구나’로 분석되는데, 진행을 나타내는 어미는 들어 있지 않다. 진행이라면 ‘-고 있-’ 같은 형태가 쓰여야 한다.
- 추측은 선어말 어미 ‘-겠-’이 나타낸다.
- 회상은 선어말 어미 ‘-더-’가 나타낸다.
- 주체 높임은 선어말 어미 ‘-시-’가 나타낸다.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자연과 인간의 갈등을 구체화한다는 이해가 적절하지 않다.
시에서 산은 화자를 위협하거나 맞서는 존재가 아니다.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처럼 화자에게 삶의 방향을 일러 주는 존재로, 화자와 자연 사이에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 “살아라 한다”와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의 반복으로 운율을 이루며 시상을 전개한다.
- “밭이나 갈며”,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에서 자연 속 전원적 삶을 바라는 태도가 드러난다.
- ‘들찔레처럼’, ‘그믐달처럼’ 살라는 표현에 소박하게 순응하는 삶을 향한 화자의 지향이 담겨 있다.
○ 긍정과 부정의 입장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 찬성 측의 입장을 담아 완결된 긍정문으로 진술해야 한다.
○ 범위를 특정하기 어려운 부정확한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주말에 운동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면 안 된다.
→교내에서 과도한 간식 소비를 금지해야 한다.
→청소년의 여가 활동으로 적절한 운동을 제안해 보자.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가장 적절한 수정은 논제를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로 고친 것이다.
원래 논제는 휴대폰 사용과 교복 착용이라는 두 쟁점을 함께 담고 있었다. 이를 하나로 줄여 ‘쟁점이 하나여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했고, 찬성 입장의 완결된 긍정문이라는 조건도 지켰다.
- ‘개방하면 안 된다’는 찬성 측 입장을 담은 긍정문이 아니어서 조건을 어긴다.
- ‘무분별한’을 ‘과도한’으로 바꾸어도 범위를 특정하기 어려운 표현이라 조건을 어긴다.
- ‘제안해 보자’는 찬반 입장을 나눌 수 없고 찬성 측 긍정문도 아니다.
도파민이 과다하면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추론이 적절하지 않다.
글에서는 “도파민이 과다하면 조현병이 발생하고, 지나치게 적으면 우울증이 생기는” 현상을 규명했다고 했다. 즉 우울증은 도파민이 부족할 때의 문제이다.
- “음악 감상이나 격렬한 운동 등의 활동을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에서 격렬한 운동의 중단을 추론할 수 있다.
- “그 자극에 적응하면,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에서 더 강력한 쾌락의 추구를 추론할 수 있다.
- “인간의 심리적 본능과 취약점을 노린 디지털 서비스”라는 표현에서 이용 과정에 그 취약점이 드러날 수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박제가, 「시장과 우물」에서-
이 글은 경제 활동을 일상생활에 비유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첫 문장의 “재물은 비유하자면 우물이다.”가 근거이다. 우물물을 길어야 물이 차듯, 재물도 써야 생산이 살아난다는 뜻을 친숙한 일상의 소재로 풀어냈다.
- “농업은 황폐해져”라고 했으므로 농업이 성행한다고 볼 수 없다.
- 글의 인과는 소비를 하지 않아 생산이 사라진다는 것이므로, 공급 부족으로 소비가 준다는 설명과 반대이다.
- 기술이 사라진 까닭은 “기교를 숭상하지 않기에”라고 했으며, 다른 나라와의 교류 부족을 원인으로 들지 않았다.
이 글에 나타나는 서술 방식은 예시이다.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이 우리를 끌고 간다는 일반적 진술을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유튜브, 아마존,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 뒷받침하고 있다.
- 대조는 두 대상의 차이를 견주는 방식인데, 나열된 사이트들은 공통점으로 묶여 있다.
- 서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인데, 글에 그러한 사건 전개가 없다.
- 인용은 남의 말이나 글을 끌어오는 방식인데, 글에 끌어온 말이나 글이 없다.
○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 (나) )스러웠다.
(가)에는 결제, (나)에는 곤혹이 들어가야 한다.
‘결제(決濟)’는 대금을 주고받아 거래를 끝내는 일이므로 밀린 대금과 어울린다. ‘곤혹(困惑)’은 곤란한 일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므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다.
- ‘결재·곤욕’ 조합은 두 말 모두 문맥에 맞지 않는다. ‘결재(決裁)’는 윗사람이 안건을 승인하는 일이다.
- ‘결제·곤욕’ 조합은 (나)가 틀렸다. ‘곤욕(困辱)’은 심한 모욕이나 참기 힘든 일을 뜻한다.
- ‘결재·곤혹’ 조합은 (가)가 틀렸다. 대금은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치르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국민 주택이라면 편의점은 국민 점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편의점은 결코 단순한 점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편의점의 시작은 분명히 소매 유통업이었지만, 그 끝이 어디일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다. 편의점은 일상에 필요한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면서 주변 상권을 흡수 통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금융이나 치안, 복지 등에 관련된 공적 영역으로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편의점이 자임하는 문화적 기능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제 일상 대화에서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편의점 창업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이처럼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편의점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진입 장벽에 부딪혔다는 내용은 글에서 알 수 없다.
글에는 “금융이나 치안, 복지 등에 관련된 공적 영역으로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고만 했을 뿐, 진입 장벽에 관한 언급은 없다.
- “우리 일상에 성큼 들어와 있는 것이다”에서 일상에 가까운 시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미국은 물론”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대한민국이 목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으므로 인구 대비 밀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 “일상 대화에서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창업이 오가며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했다.
(나) 그렇다면 형체가 있는 것을 마음껏 쓰면서도 닳아 없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베푸는 것만 한 것이 없을 테니, 이는 어째서인가?
(다) 그런데 형체가 있는 것을 형체로 쓰면 다 닳아 없어지기에 이르나, 형체가 있는 것을 마음으로 쓰면 변하거나 없어지는 법이 없다.
(라) 형체가 있는 것이 이미 다른 사람의 집에 있으니 도둑이 훔쳐갈까 염려하지도 않고, 불에 타 없어질까 걱정하지도 않으며, 소나 말에 실어 운반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없다.
재물을 씀으로써 얻는 아름다운 이름은 죽고 난 뒤에도 없어지지 않고 천년토록 전해질 것이니, 천하에 이같이 큰 이익은 없다.
자연스러운 순서는 (가)-(다)-(나)-(라)이다.
(가)에서 재물을 쓰는 두 방식을 구분하고, (다)가 ‘그런데’로 그 결과의 차이를 밝힌다. (나)는 ‘그렇다면’으로 베푸는 것이 최선임을 끌어내며 ‘어째서인가’라고 묻고, (라)가 그 답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마지막 문장은 큰 이익이라는 결론으로 글을 맺는다.
- (가)-(나)-(다)-(라)는 ‘닳아 없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말하는 (나)가, 닳지 않는다는 내용의 (다)보다 앞서므로 맞지 않다.
- (라)-(가)-(나)-(다)는 (나)의 물음에 답하는 (라)가 물음보다 앞서므로 맞지 않다.
- (라)-(나)-(가)-(다)는 (라)가 맨 앞에 와서 ‘형체가 있는 것’이 남의 집에 있는 까닭을 알 수 없으므로 맞지 않다.
반대 의견 개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반응이 적절하지 않다.
글은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고 기꺼이 논쟁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하여, 오히려 반대 의견의 활성화를 주장한다.
- 반대 의견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에 몰두”한다고 했으므로 논쟁 회피와 자기 합리화를 연결한 반응은 적절하다.
- 양극화 사회에서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으므로 적절하다.
- “논쟁이 활발한 사회의 경우에는 의견 스펙트럼의 중간층이 두껍다”고 했으므로 중간층이 좁으면 논쟁이 활발하지 않다는 반응은 적절하다.
○ 곱다²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산뜻하고 아름답다.
○ 곱다³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얼어서 감각이 없고 놀리기가 어렵다.
‘곱다²’와 ‘곱다³’을 모두 불규칙 용언으로 본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곱다²’는 ‘고와, 고우니’로 활용하는 ㅂ 불규칙 용언이지만, ‘곱다³’은 ‘곱아, 곱으니’로 활용하는 규칙 용언이다.
- ‘곱다¹’은 손해를 입게 되는 움직임을 나타내므로 동사이고, 나머지 둘은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 ‘주식에 손을 대었다가 도리어 곱고 말았다.’는 이익을 보려다 손해를 입었다는 뜻이므로 바른 용례이다.
- ‘곱다²’는 모양이나 행동이 산뜻하고 아름답다는 뜻이므로 ‘밉다’와 반의 관계에 있다.
옳지 않은 표기는 지향(知向)이며, 바른 표기는 지향(志向)이다.
‘지향’은 어떤 목표로 뜻이 쏠려 향하는 것이므로, ‘알 지(知)’가 아니라 ‘뜻 지(志)’를 쓴다.
- 동화(同化)는 ‘같을 동, 될 화’로, 감정이 같아지는 문맥에 맞다.
- 능력(能力)은 ‘능할 능, 힘 력’으로 바른 표기이다.
- 진퇴(進退)는 ‘나아갈 진, 물러날 퇴’로, 접전을 벌이는 문맥에 맞다.
(나)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것과 같다.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갑자기 ‘왜앵’하고 귀가 울자 “와!” 하고 좋아하면서 가만히 옆 동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 이 소리 좀 들어봐. 내 귀에서 ‘왜앵’하는 소리가 난다. 피리를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생황을 부는 것 같기도 한데 소리가 동글동글한 게 꼭 별 같단다.” 그 동무가 자기 귀를 갖다 대 보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답답해 그만 소리를 지르며 남이 몰라주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가)의 서술자가 이명의 고통에 공감하며 슬퍼한다는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가)의 서술자는 “그 소리가 무엇 같으냐?”고 묻고 아우의 답을 옮겼을 뿐이다. 아우 역시 소리를 “주울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글 어디에도 고통이나 슬픔은 드러나지 않는다.
- (가)는 서술자가 묻고 어린 아우의 대답을 그대로 옮겨 전달하는 글이다.
- (나)는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라며 이를 “귀가 울리”는 일에 비유해 글에 관한 생각을 펼친다.
- (나)에서 아이의 귀울음을 동무가 듣지 못하는 장면은, 비방과 칭찬이 남에게 달려 있어 평가가 저자의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쓰임이 적절하지 않은 것은 亡羊之歎(망양지탄)이다.
망양지탄은 달아난 양을 찾다가 갈림길이 많아 놓쳤다는 데서 나온 말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여서 진리를 찾기 어렵다는 탄식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효도하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은 風樹之歎(풍수지탄)이다.
- 緣木求魚(연목구어)는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함을 이르므로 문맥에 맞다.
- 羊頭狗肉(양두구육)은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름을 이르므로 신뢰할 수 없다는 문맥에 맞다.
- 刻舟求劍(각주구검)은 배에 표시를 새겨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융통성 없이 시대 변화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므로 문맥에 맞다.
타동사에 붙어 피동의 의미를 더한 예는 ‘섞여’이다.
‘섞여’는 타동사 ‘섞다’에 접미사 ‘-이-’가 붙은 피동사 ‘섞이다’의 활용형으로, 소음이 무엇인가에 섞임을 당한다는 뜻이다.
- ‘녹였다’는 자동사 ‘녹다’에 ‘-이-’가 붙어 녹게 한다는 사동의 뜻이다.
- ‘들려 보냈다’는 꽃을 들게 하여 보낸다는 사동의 뜻이다.
- ‘먹이면’은 옷에 풀을 먹게 한다는 사동의 뜻이다.
(나) 매년 2천여 명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머리를 다쳐 심각한 정도의 두뇌 손상을 입고 고생합니다. 오토바이 사망 사고 원인의 80 %가 두뇌 손상입니다. 콘크리트 지면에서는 30 cm 이하의 높이에서도 뇌진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은 헬멧을 착용하여 머리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헬멧의 착용은 두뇌 손상의 위험을 90 % 정도 줄여 줍니다. 저는 헬멧을 쓰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고 거추장스럽다고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친구의 사고 후 헬멧을 쓰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오토바이를 탈 때면 항상 헬멧을 착용합니다.
(라) 만약 오토바이를 타는 모든 사람이 헬멧을 착용한다면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신체 피해를 75 % 줄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토바이가 주는 즐거움과 편리함을 안전하게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안전을 위해서 헬멧을 반드시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다)가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다)는 헬멧이 “두뇌 손상의 위험을 90 % 정도 줄여 줍니다”라며 효용을 내세운다.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은 과거의 인식일 뿐,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착용한다며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 (가)는 친구가 겪은 사고를 들어 청자의 주의를 끈다.
- (나)는 “사망 사고 원인의 80 %가 두뇌 손상”과 같은 통계로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한다.
- (라)는 신체 피해 감소라는 이익을 밝히고 “반드시 착용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요구하는 행동을 제시한다.
이때 진짜 왕연희가 궐에서 나와 하인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 여겨 동료의 말을 빌려 타고 집에 돌아오니 하인들이 문 앞에 있었다. 왕연희가 크게 화를 내면서 집에 와 있는 까닭을 묻자 하인들이 말하기를, “소인들이 아까 상공을 모셔왔는데 어찌 또 상공이 계십니까?” 하고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 (중략) …
왕연희가 아무것도 모르고 침실로 들어가니, 과연 다른 왕연희가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왕연희가 크게 화를 내며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어떤 놈이기에 감히 사대부 집에 들어와 내 부인과 말을 주고받고 있느냐?” 하고 종들에게 호령했다. “㉢저 놈을 빨리 결박하라!”
이에 전우치가 말하기를, “웬 놈이 내 얼굴을 하고 내당에 들어와 부인을 겁탈하려 하니, 이런 변이 어디 있느냐?” 하고 하인에게 호령하여, “㉣저 놈을 빨리 몰아 내쳐라.”라고 하였다.
지시 대상이 다른 하나는 ㉣로, 전우치가 진짜 왕연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은 전우치가 “웬 놈이 내 얼굴을 하고”라며 하인에게 몰아내라고 호령할 때 쓴 말이므로, 진짜 왕연희를 뜻한다.
- ㉠은 왕연희로 변해 그의 집 내당에 들어간 전우치를 가리킨다.
- ㉡은 진짜 왕연희가 부인과 말을 나누던 상대, 곧 전우치를 꾸짖으며 부른 말이다.
- ㉢은 진짜 왕연희가 결박하라고 명한 대상이므로 전우치를 가리킨다.
“당신 안색이 아주 나빠져서 큰일 났어요. 어머님 산소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무진에 며칠 동안 계시다가 오세요. 주주총회에서의 일은 아버지하고 저하고 다 꾸며놓을게요. 당신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고 그리고 돌아와보면 대회생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되어 있을 게 아니에요?”라고, 며칠 전날 밤, 아내가 나의 파자마 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진심에서 나온 권유를 했을 때 가기 싫은 심부름을 억지로 갈 때 아이들이 불평을 하듯이 내가 몇 마디 입안엣소리로 투덜댄 것도 무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였었다.
내가 나이가 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김승옥, 「무진기행」에서-
글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은 ‘나’가 무진에만 오면 공상에 빠지고 생각이 뒤엉켰다는 점이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가 직접적인 근거이다.
- 전무 자리는 아내가 “돌아와보면” “전무님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 앞으로의 일이므로, 지금 전무로 근무하는 것은 아니다.
- “아무런 부끄럼 없이”는 엉뚱한 생각을 해냈다는 말일 뿐, 글에 무진에서의 아내와의 기억은 나오지 않는다.
- 어머니 산소는 “다녀온다는 핑계”일 뿐이며, 벌초하러 간다는 내용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