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라에는 왕이 있다.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명을 정하여 마가, 우가, 구가, 저가 등이 있다. 제가들은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한다.
옳은 설명은 (나) 나라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한 것이다.
'계루부'와 '연노부'가 나오는 (가)는 고구려이고, '마가, 우가, 구가, 저가'와 '사출도'가 나오는 (나)는 부여이다. 부여에는 도둑질한 자에게 12배를 물리는 1책 12법이 있었다.
- 민며느리제: 고구려가 아니라 옥저의 혼인 풍습이다.
- 단궁·과하마·반어피: 고구려가 아니라 동예의 특산물이다.
- 천군: 부여가 아니라 삼한의 제사장이다.
(가)에는 원효, (나)에는 의상이 들어간다.
'일심 사상'과 '아미타 신앙'을 통한 불교 대중화는 원효의 활동이다. 당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화엄 사상'을 정립하고 '관음 신앙'을 제시한 인물은 의상이다.
- 원효와 지눌의 연결: 지눌은 고려의 승려로 정혜쌍수를 내세웠으며, 화엄 사상을 정립한 신라의 의상과 다르다.
- 의상과 의천의 연결: 일심 사상을 제시한 쪽은 의상이 아니라 원효이고, 의천은 고려의 승려이다.
- 의천과 지눌의 연결: 두 사람 모두 고려의 승려로, 신라의 원효·의상과 맞지 않는다.
신문왕 때의 사실은 국학 설치이다.
신문왕은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세워 인재를 기르고 왕권 강화를 뒷받침하였다.
- 우산국 점령: 지증왕 때 이사부가 정복하였다.
- 금관가야 흡수: 법흥왕 때의 일이다.
- 정전 지급: 성덕왕 때의 일이다.
(가) 왕은 고려 광종이며, 광덕·준풍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쌍기'의 건의로 '과거'를 처음 시행한 왕이 광종이다. 광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칭제건원을 하며 독자적 연호를 썼다.
- 기인제도: 고려 태조 때 호족 견제를 위해 실시하였다.
- 신돈 등용과 전민변정도감 설치: 공민왕의 개혁 정책이다.
- 12목 설치와 지방관 파견: 성종 때의 일이다.
(가) 시기의 사실은 인조반정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은 1590년, 후금의 국호 변경(청)은 1636년이다.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이 사이에 든다.
- 균역법 시행: 1750년 영조 때로, 시기 뒤의 일이다.
- 직전법 실시: 1466년 세조 때로, 시기 앞의 일이다.
- 금난전권 폐지: 1791년 정조의 신해통공으로, 시기 뒤의 일이다.
밑줄 친 왕은 정조이며,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 '규장각', '초계문신제'가 단서이다. 정조는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두어 왕권을 뒷받침하였다.
- 삼별초: 고려 무신 정권기 최우가 만든 야별초에서 비롯한 군사 조직이다.
- 6조 직계제: 태종과 세조 때 시행한 제도이다.
- 백두산정계비: 숙종 때 건립하였다.
이 정책은 대동법이다.
'방납'의 폐단을 줄이려 '경기도에서 먼저 시행'한 점, 공물을 '토지 1결당 쌀 12두' 등으로 내게 한 점, 공인이 등장한 점이 단서이다.
- 과전법: 고려 말에 마련된 토지 제도로, 관리에게 경기 지역의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 견종법: 밭고랑에 씨를 뿌리는 농법으로, 수취 제도가 아니다.
- 영정법: 인조 때 전세를 토지 1결당 쌀 4~6두로 고정한 제도이다.
옳지 않은 것은 쓰시마섬 정벌이다. 쓰시마섬 정벌은 고려 말 박위, 조선 세종 때 이종무가 이끈 일로, 흥선 대원군과 무관하다.
'고종의 아버지'이자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철폐한 (가)는 흥선 대원군이다.
- 『대전회통』 편찬: 흥선 대원군이 법전을 정비하며 편찬하였다.
- 경복궁 중건 착수: 왕실 권위를 세우기 위해 추진하였다.
- 의정부 기능 회복: 비변사의 기능을 축소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되살렸다.
이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이며, 토지 조사 사업이 실시되었다.
'헌병 경찰제'와 '조선 태형령'이 단서이다.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지세 수입을 늘리고 토지를 장악하였다.
- 간도 협약: 1909년에 체결되어 이 시기보다 앞선다.
- 국가 총동원법: 1938년에 시행된 민족 말살 통치기의 법령이다.
- 산미 증식 계획: 1920년부터 실행되어 이 시기보다 뒤이다.
(가)는 물산 장려 운동이며,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는 광고를 냈다.
'회사령 폐지', '관세 철폐' 소식, '민족 산업을 육성'이 단서이다. 이 운동은 토산품 애용과 민족 자본 육성을 내세웠다.
- '조선인 본위의 교육' 요구: 학생 운동·교육 운동에서 내건 구호이다.
- 자치권과 참정권 획득: 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의 자치 운동이 내세운 주장이다.
- 소작료 인하와 소작권 이동 반대: 농민의 소작 쟁의에서 제기한 주장이다.
고려의 향리는 속현의 실제 행정을 맡았다.
고려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많았고, 이곳의 조세 징수와 행정 실무는 향리가 담당하였다.
- 도축업 종사: 향리와 무관하며, 조선 시대에 천시받은 백정의 생업이다.
- 양인이면서 천역 담당: 향리가 아니라 신량역천 계층의 특징이다.
- 삼정이정청 설립: 조선 철종 때 임술 농민 봉기를 수습하려 조정이 설치한 기구로, 고려의 향리와 무관하다.
(가)는 여진이며, 고려는 별무반을 편성하고 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서희가 '압록강 안팎'을 차지한 세력을 내쫓자고 말한 대상이 여진이다. 고려는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을 만들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 귀주 대첩: 강감찬이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싸움이다.
- 4군 6진 개척: 여진을 상대했으나 고려가 아닌 조선 세종 때의 일이다.
- 쌍성총관부 공격: 공민왕이 원의 지배 지역을 수복한 일이다.
(가) 왕은 중종이며, 그의 재위 시기에 현량과가 시행되었다.
'조광조'와 '반정 공신'을 둘러싼 갈등으로 조광조 일파가 화를 입은 일은 중종 때의 기묘사화이다. 조광조는 현량과를 통해 사림을 등용하자고 주장하였다.
- 북학론 제기: 조선 후기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실학자들의 주장이다.
- 탕평비 건립: 영조 때의 일이다.
- 한양 천도: 조선 태조 때의 일이다.
○ 18세기 조선의 인기 수출품은 인삼이었다. 인삼의 인공 재배가 확대되었고 인삼을 찐 후 말린 홍삼이 개발되면서 수출 이익이 극대화되었다. 인삼의 재배와 홍삼 제조에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으며, 이를 장악한 이들은 (가) 에 기반을 둔 송상이었다.
(가) 지역은 개성(개경)이며, 만적 등이 이곳의 북산에서 난을 모의하였다.
'송악산', '벽란도', '송상'이 단서이다. 고려 무신 집권기에 사노 만적이 개경 북산에서 신분 해방을 꾀하였다.
- 묘청의 천도 주장: 개경이 아니라 서경(평양)으로 옮기자는 주장이었다.
- 인조의 항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청군에 맞섰다.
- 이성계의 회군: 요동 정벌에 반대해 위화도에서 회군하였다.
연결이 옳지 않은 것은 충북 단양과 팔만대장경 경판이다.
팔만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 강화도 피난 시기에 조판되었고, 경판은 오늘날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 인천 강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입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였다.
- 전남 장흥: 보림사는 신라 말 선종 구산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중심 사찰이다.
- 경북 영주: 소수서원은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서 비롯한 최초의 사액 서원이다.
-『대한매일신보』-
13도 의병은 의병을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인정받고자 하였다.
'이인영' 총대장, '허위' 군사장, '신협약' 파기가 단서로, 1907년 정미의병 때 결성된 13도 창의군이다. 이들은 서울 진공 작전을 추진하며 각국 영사관에 교전 단체 승인을 요구하였다.
- 을미사변이 배경: 1895년 을미의병에 해당한다.
- 우금치 전투 패배: 1894년 동학 농민군의 일이다.
- 최익현의 태인 봉기: 을사늑약에 반발한 을사의병에 해당한다.
제3조 본사는 계급 타파, 모욕적 칭호 폐지, 교육 권장, 상호의 친목을 목적으로 한다.
제4조 본 사원의 자격은 조선인은 하인(何人)을 불문하고 입사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조선 형평사의 규정이므로 창립 배경을 조사하는 활동이 적절하다.
'진주'에 본사를 두고 '계급 타파', '모욕적 칭호 폐지'를 내세운 점이 단서이다. 조선 형평사는 1923년 진주에서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해 창립되었다.
- 브나로드: 1930년대 동아일보가 벌인 농촌 계몽 운동과 관련된다.
- 신간회: 1927년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함께 만든 단체로, 자료와 무관하다.
-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조선인의 대학 설립을 목표로 한 교육 운동 단체로, 자료와 무관하다.
-『서울신문』-
| 1945. 12. | 1946. 10. | 1947. 5. | 1948. 1. | 1948. 5. | ||||
| (가) | (나) | (다) | (라) | |||||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 좌우합작 7원칙 발표 | 제2차 미ㆍ소 공동 위원회 개최 | UN 한국 임시 위원단 내한 | 5.10 총선거실시 |
이 발언은 (가) 시기에 나왔다. 1946년 6월 이승만의 정읍 발언이기 때문이다.
'무기 휴회한 공위'는 1946년 5월 휴회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를 가리키며,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가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주장의 단서이다. 이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와 1946년 10월 좌우합작 7원칙 사이의 일이다.
- (나) 시기: 1946년 10월~1947년 5월로, 발언 시점보다 뒤이다.
- (다) 시기: 1947년 5월~1948년 1월로, 발언 시점보다 뒤이다.
- (라) 시기: 1948년 1월~1948년 5월로, 발언 시점보다 뒤이다.
(가) 종교는 천도교이며, 『만세보』와 『개벽』을 간행하였다.
'방정환'이 주도한 '소년회'가 단서이다. 천도교 소년회는 소년 운동을 이끌었고, 천도교는 민족 언론·출판 활동도 펼쳤다.
- 나철의 창시: 대종교에 대한 설명이다.
- 유교구신론: 박은식이 주장한 유교 개혁론이다.
- 『조선불교유신론』: 한용운이 불교 혁신을 주장한 저술이다.
이 사건 이전의 사실은 한성 사범 학교 설립이다.
'상투를 자르니'는 1895년 을미개혁 때의 단발령을 가리킨다. 한성 사범 학교는 같은 해 교육 입국 조서에 따라 그보다 먼저 세워졌다.
- 원수부 설치: 1899년 광무개혁 때의 일로, 단발령 이후이다.
- 양전·지계 사업: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 정책으로, 단발령 이후이다.
- 23부에서 13도로 개편: 1896년의 일로, 단발령 이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