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미 관계를 고려하여 적절한 접속 표현을 사용할 것.
○ 문장 성분 간의 호응 관계를 정확히 표현할 것.
○ 정확한 조사를 사용하여 문법적 의미를 표시할 것.
○ 필요한 문장 성분이 생략되지 않도록 할 것.
○○시청
수신 공동주택 관리 주체(입주자 대표) 귀하
제목 승강기 등 공동주택 시설 일제 점검 협조 요청
1. 최근 안전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급증함에 따라 입주민의 안전을 위하여 공동주택 관리 주체(입주자 대표)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2. 「공동주택관리법」 제93조(공동주택관리에 관한 감독) 규정에 따라 공동주택의 관리 주체가 단지 내 승강기, 비상발전시설, 소방설비 등에 대한 자체 ㉡점검이 실시되어야 합니다.
3. 아울러 점검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2026년 12월 31일(목)까지 제출해야 합니다. 기한 내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공동주택관리법」 제102조(과태료) 규정에 따라 1천만 원 ㉢이하에 과태료가 부과되니 ㉣반드시 준수하기 바랍니다.
적절하지 않은 수정은 ㉠을 ‘급증함에도 불구하고’로 바꾼 것이다.
안전에 대한 우려의 급증은 협조를 부탁하는 이유이므로 원문의 ‘급증함에 따라’가 맞다. ‘-에도 불구하고’는 양보 표현이라 ‘적절한 접속 표현’ 원칙에 오히려 어긋난다.
- ㉡을 ‘점검을 실시해야’로 고치면 주어 ‘관리 주체가’와 서술어가 바르게 호응한다.
- ㉢을 ‘이하의 과태료’로 고치면 뒤의 체언을 꾸미는 조사 ‘의’가 정확히 쓰인다.
- ㉣을 ‘반드시 기한을 준수하기 바랍니다’로 고치면 생략되었던 목적어가 채워진다.
“부모님의 사랑은 넓고 깊은 바다다.”가 은유의 사례로 적절하다.
글에서 은유는 두 대상의 공통 속성을 활용해 ‘A는 B다.’의 형식으로 비유하는 방식이다. 이 문장은 ‘사랑’과 ‘바다’의 공통 속성을 이 형식으로 나타낸다.
- 나비가 꽃밭에서 춤춘다는 문장은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관계가 없어 제유가 아니다.
- ‘소처럼’ 일한다는 문장은 ‘처럼’을 붙여 직접 빗댔으므로 제유가 아니라 직유이다.
- ‘작년같이’ 공부한다는 문장은 ‘같이’가 있어도 올해와 작년을 비교할 뿐, 다른 대상에 빗댄 표현이 아니다.
글의 중심 내용은 실험이 어려운 경제학에서 역사적 사건의 자료가 중요하게 활용된다는 것이다.
글은 ‘실험이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 뒤, ‘실제로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에서 관련 자료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석유 파동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 물리학자의 실험 가능성은 경제학과 대비하려고 든 부분적 내용일 뿐 중심 내용이 아니다.
- 실질적 대책은 ‘정책 담당자’의 몫으로 나오며, 경제학자에게 사건은 ‘연구 자료를 확보할 기회’로 제시된다.
- 글은 경제학도 ‘이론과 관찰에 의존’한다고 할 뿐, 이론 분석에 치우친다고 대비하지 않는다.
○ 서론에서 보고서 작성 배경과 필요성을 순서대로 제시할 것.
○ 본론을 두 개의 장으로 구성하고, 2장의 하위 절과 3장의 하위 절이 대응하도록 하여 통일성 있게 제시할 것.
○ 결론에서 기대 효과와 향후 과제를 순서대로 제시할 것.
○ 제목: 공공행정 분야 AI 도입 및 활성화 전략
1장 서론
1절 현대 사회의 AI 활용 영역 확장
2절 (가)
2장 공공행정 분야의 AI 도입 제약 요인
1절 (나)
2절 AI를 활용한 업무 자동화 시스템 구축 예산 부족
3장 공공행정 분야의 AI 도입 및 활성화 방안
1절 실무자 대상 AI 활용법 및 리터러시 교육 실시
2절 (다)
4장 결론
1절 (라)
2절 공공행정 분야 AI 활용 확대를 위한 제도 정비
적절하지 않은 것은 (다)에 넣은 ‘운영 경력자 채용’이다.
지침은 2장과 3장의 하위 절이 대응하도록 요구한다. 2장 2절이 ‘구축 예산 부족’이므로 (다)에는 예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와야 하는데, 경력자 채용은 이에 대응하지 않는다.
- (가)의 AI 도입 필요는 1절의 배경에 이어 ‘필요성’을 제시하므로 서론 지침에 맞다.
- (나)의 AI 사용 능력 및 리터러시 부족은 3장 1절의 활용법·리터러시 교육과 대응한다.
- (라)의 업무 효율성 제고는 결론 1절에 둘 ‘기대 효과’에 해당한다.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이다. 과학 연구에서는 충분한 물질적 증거가 없다면 일단 ㉢불확실성부터 제거해야 한다. 과학의 진정한 힘은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데에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고,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라기보다 민주적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이다.
㉢을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로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
해당 문단의 첫 문장은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라 하고, 뒤에서도 과학의 힘이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데에서 온다’고 한다. ‘제거’는 이 흐름과 어긋난다.
- ㉠을 논리적 주장의 채택으로 고치면 ‘논리로만 이루어진 이론이나 주장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앞 문장과 충돌한다.
- ㉡을 구분할 수 없다로 고치면 ‘무지를 인정하는 태도’라는 내용과 맞지 않는다.
- ㉣을 확신으로 고치면 불확실성을 인정한다는 글의 흐름에 어긋나므로 원문의 ‘의심’이 맞다.
(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 후 미륵은 옷을 만들어 입고 음식을 해 먹는다. 이는 지상에서의 생활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복 문화와 음식 문화를 창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앞으로 등장할 인간의 기본 문화를 정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 미륵이 탄생함으로써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분리되었다. 이는 한 덩어리였던 세계가 차이를 가진 세계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미륵은 하늘에 해와 달, 별들의 위치를 정하고 운행 규칙을 마련하였다. 이 행위는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라) 문화를 창조한 후 미륵은 인간을 창조한다. 미륵은 하늘에서 내려온 애벌레를 금쟁반과 은쟁반에 받아서 인간 남녀로 만든다. 이는 곧 신이 조화롭게 만든 세계에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간이 천상에 근원을 둔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적절한 순서는 (가) - (다) - (나) - (라)이다.
(가)가 세계 창조, 질서와 문화 창조, 인간 창조의 순서를 먼저 제시하고, 나머지 문단이 이 순서대로 전개된다. (나)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 후’와 (라)의 ‘문화를 창조한 후’가 연결 고리이다.
- (가) - (다) - (라) - (나)는 문화 창조를 전제하는 (라)가 문화를 다룬 (나)보다 앞서 부적절하다.
- (다) - (가) - (나) - (라)는 미륵을 소개하는 (가)보다 미륵의 탄생을 전제한 (다)가 앞서 부적절하다.
- (다) - (가) - (라) - (나)는 (다)가 (가)보다 앞서고, (라)도 (나)보다 앞서 부적절하다.
「동백꽃」에 등장하는 꽃은 사실 생강나무꽃이다. 이 꽃은 봄이 되면 강원도 내륙 산기슭에 소복하게 피어나는데, 소설에서처럼 그 색이 노란색이고 알싸한 향기를 풍긴다. 생강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잘라 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는 데에서 기원한 것인데, 강원도에서는 이 나무를 동백나무로 불렀다. 강원도가 고향인 김유정은 강원도식 표현으로 소설의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강원도에서는 왜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불렀던 것일까? 아마도 두 식물의 용도가 공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짜는 동백기름은 식용으로도 쓸 수 있지만 머리에 바르는 기름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동백이 자라지 않는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 대신 머릿기름으로 사용하였고, 그러다가 그 나무를 동백나무로 부르게 된 것이다.
윗글에서 추론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글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이름이 같아도 지역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이 다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남도의 동백나무와 달리 ‘강원도에서는 이 나무를 동백나무로 불렀다’고 하므로, 같은 ‘동백’이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가리킨다.
- 글의 북방한계선은 동백의 경우로 충청남도 서천이며, 생강나무의 북방한계선은 언급되지 않는다.
- 글은 동백꽃이 ‘향기가 없고 붉은색’이라 하므로 붉고 향이 짙은 꽃의 자생지는 끌어낼 수 없다.
- 생강나무 기름은 강원도에서 동백기름 ‘대신’ 머릿기름으로 썼다고 할 뿐, 식용 지역에 대한 언급은 없다.
「동백꽃」에 등장하는 꽃은 사실 생강나무꽃이다. 이 꽃은 봄이 되면 강원도 내륙 산기슭에 소복하게 피어나는데, 소설에서처럼 그 색이 노란색이고 알싸한 향기를 풍긴다. 생강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잘라 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는 데에서 기원한 것인데, 강원도에서는 이 나무를 동백나무로 불렀다. 강원도가 고향인 김유정은 강원도식 표현으로 소설의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강원도에서는 왜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불렀던 것일까? 아마도 두 식물의 용도가 공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짜는 동백기름은 식용으로도 쓸 수 있지만 머리에 바르는 기름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동백이 자라지 않는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 대신 머릿기름으로 사용하였고, 그러다가 그 나무를 동백나무로 부르게 된 것이다.
윗글의 문맥상 ㉠의 의미와 가장 가까운 것은?
㉠과 가장 가까운 것은 “발이 눈에 파묻혀 걸을 수가 없었다.”의 쓰임이다.
㉠은 몸이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들어가 덮인 상태로, 어떤 것이 다른 물체 속에 들어가 덮이고 가려진다는 뜻이다. 발이 눈 속에 빠져 덮인 상황도 같은 뜻이다.
- 흑막 속의 사건은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물체에 덮이는 상황이 아니다.
- 일에 파묻혀 산다는 것은 어떤 일에 몰두한다는 뜻이다.
- 목소리가 함성에 파묻힌다는 것은 큰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날개」에서 ‘아내’는 개인적 존재를 넘어, 자본주의적 속성을 상징하는 우의적 장치로 기능한다. 아내는 사랑이나 윤리의 대상이라기보다 돈과 교환 가치가 지배하는 세계의 논리를 체현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내와 주인공의 갈등은 곧 자본주의적 질서와 자의식적 개인 사이의 충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그러한 세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는 자의식적 존재로 형상화된다. ㉢그의 투쟁은 특정 개인과의 대립이 아니라, 돈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저항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상의 「날개」는 자본주의적 현대성에 대한 직접적인 논설이 아니라, 우의적 서술을 통해 그 본질을 사유하게 하는 문학적 장치이다. ㉣그는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를 드러냈고, 이를 통해 인간이 어떤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질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윗글의 (가)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한 것은 갈등 관계를 통한 우의적 서술이라는 내용이다.
글은 「날개」가 ‘구체적 인물과 그들 사이의 갈등 관계’로 세계를 형상화했고, ‘우의적 서술을 통해 그 본질을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 글은 작품이 ‘직접적인 논설이 아니라’고 밝히며, 해결책 제시도 언급하지 않는다.
- 작품의 충돌은 사회 계층 간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질서와 자의식적 개인 사이’의 충돌이다.
- 윤리 의식 약화가 경제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글에 나오지 않으며, 작품은 돈이 지배하는 세계의 논리를 드러낸다.
「날개」에서 ‘아내’는 개인적 존재를 넘어, 자본주의적 속성을 상징하는 우의적 장치로 기능한다. 아내는 사랑이나 윤리의 대상이라기보다 돈과 교환 가치가 지배하는 세계의 논리를 체현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내와 주인공의 갈등은 곧 자본주의적 질서와 자의식적 개인 사이의 충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그러한 세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는 자의식적 존재로 형상화된다. ㉢그의 투쟁은 특정 개인과의 대립이 아니라, 돈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저항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상의 「날개」는 자본주의적 현대성에 대한 직접적인 논설이 아니라, 우의적 서술을 통해 그 본질을 사유하게 하는 문학적 장치이다. ㉣그는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를 드러냈고, 이를 통해 인간이 어떤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질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윗글의 ㉠~㉣ 중 지시 대상이 나머지와 다른 하나는?
지시 대상이 다른 하나는 ㉢으로, ㉢만 작품 속 주인공을 가리킨다.
㉢ 앞 문장의 ‘그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아내와 갈등하는 주인공을 말하며, ‘그의 투쟁’도 주인공의 투쟁이다.
- ㉠은 현대 사회의 질서를 드러낸 작가 이상을 가리키며, 사회를 ‘포착한’ 주체이다.
- ㉡은 ‘소설 형식을 빌려 자본주의를 비판한’ 주체이므로 작가 이상이다.
- ㉣은 등장인물과 갈등 관계를 통해 권력 구조를 드러낸 주체이므로 작가 이상이다.
(나) 행사 예산이 편성되지 않으면, 박 팀장이 현장에 답사를 나가지 않는다.
(다) 정 팀장이 행사 기획안을 작성한다.
따라서 ( ).
빈칸에 들어갈 결론은 ‘행사 예산이 편성된다’이다.
(다)와 (가)에서 정 팀장이 기획안을 작성하므로 박 팀장이 답사를 나간다.
(나)의 대우는 ‘박 팀장이 답사를 나가면 예산이 편성된다’이다.
따라서 예산이 편성된다.
- ‘예산이 편성되지 않는다’는 도출된 결론과 모순된다.
- ‘박 팀장이 답사를 나가지 않고’라는 내용은 박 팀장이 답사를 나간다는 사실과 어긋난다.
- ‘답사를 나가면 예산이 편성되지 않는다’는 (나)의 대우와 반대이다.
비의식적 인지는 정보를 의식보다 훨씬 더 빨리 처리하고, 의식이 ㉠식별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한 패턴들을 포착하여, 행동에 영향을 주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비의식적 인지는 처리 능력이 제한된 의식이 1,000분의 1초마다 뇌로 흘러드는 내부와 외부의 정보 홍수에 압도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즉 수많은 정보를 ㉡수용하고 그중 일부를 선택하여 전달하는 효율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비의식적 인지의 작동 과정은 인간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물에게서 발견되며, 인공적 시스템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단세포 유기체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받아들이고 어떤 화학물질은 거부할지 결정하는 것처럼 단순한 과정일 수도 있고, 거대한 교통 통제 시스템에서 수많은 차량의 흐름을 감지하고 정교하게 신호를 ㉢조절하는 것처럼 복잡한 과정일 수도 있다. 이처럼 비인간 존재의 비의식적 인지와 인간의 비의식적 인지는 수행하는 기능이 다르지 않다.
비의식적 인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생물학적 유기체뿐만 아니라 인공물을 포함한 비생명체도 인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이러한 관점은 의식의 작용이 곧 인지라고 생각하여 인간의 인지 활동만 인정했던 오래된 편견을 ㉣탈피하고, 인지 능력을 가진 비인간 존재와의 비교를 통해 인지에 대한 균형 잡히고 정확한 견해에 도달하게 해 준다.
윗글에서 추론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추론으로 적절한 것은 교통 통제 시스템에서 정보의 수용과 선택이 일어난다는 내용이다.
글은 교통 통제 시스템의 작동을 비의식적 인지의 사례로 들고, 비인간 존재의 비의식적 인지는 인간과 ‘수행하는 기능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인간의 비의식적 인지가 ‘수많은 정보를 수용하고 그중 일부를 선택’하므로 이 시스템도 같다.
- 정보 처리의 속도 차이는 나오지만 정확도를 비교한 내용은 없다.
- 글이 인공물에 인정하는 것은 비의식적 인지이며, 의식적 인지 능력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내용은 없다.
- 정보량이 적을 때 의식만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비의식적 인지는 정보를 의식보다 훨씬 더 빨리 처리하고, 의식이 ㉠식별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한 패턴들을 포착하여, 행동에 영향을 주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비의식적 인지는 처리 능력이 제한된 의식이 1,000분의 1초마다 뇌로 흘러드는 내부와 외부의 정보 홍수에 압도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즉 수많은 정보를 ㉡수용하고 그중 일부를 선택하여 전달하는 효율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비의식적 인지의 작동 과정은 인간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물에게서 발견되며, 인공적 시스템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단세포 유기체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받아들이고 어떤 화학물질은 거부할지 결정하는 것처럼 단순한 과정일 수도 있고, 거대한 교통 통제 시스템에서 수많은 차량의 흐름을 감지하고 정교하게 신호를 ㉢조절하는 것처럼 복잡한 과정일 수도 있다. 이처럼 비인간 존재의 비의식적 인지와 인간의 비의식적 인지는 수행하는 기능이 다르지 않다.
비의식적 인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생물학적 유기체뿐만 아니라 인공물을 포함한 비생명체도 인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이러한 관점은 의식의 작용이 곧 인지라고 생각하여 인간의 인지 활동만 인정했던 오래된 편견을 ㉣탈피하고, 인지 능력을 가진 비인간 존재와의 비교를 통해 인지에 대한 균형 잡히고 정확한 견해에 도달하게 해 준다.
윗글의 ㉠~㉣과 바꿔 쓸 수 있는 유사한 표현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바꿔 쓸 수 없는 것은 ㉢ ‘조절하는’과 ‘주고받는’의 짝이다.
㉢은 차량의 흐름에 맞게 신호를 알맞게 맞춘다는 뜻이고, ‘주고받다’는 서로 교환한다는 뜻이어서 의미가 다르다.
- ㉠ ‘식별하기’는 구별하여 알아본다는 뜻이므로 ‘분별하여 알아보기’로 바꿀 수 있다.
- ㉡ ‘수용하고’는 ‘받아들이고’로 바꿀 수 있다.
- ㉣ ‘탈피하고’는 편견에서 빠져나온다는 뜻이므로 ‘벗어나고’로 바꿀 수 있다.
언어란 역사적 구성물로서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힘을 지닌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언어를 탐구한다면 마치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대상을 분석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공허한 결과물을 얻는 데 그친다. 따라서 한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언어의 이상적인 형태를 따로 떼어 내서 설명해서는 안 되며 지역, 계층, 세대, 문화 등 언어 사용의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과 배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
논지를 강화하는 것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완전히 배제하고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진술이다.
글의 논지는 언어 탐구에서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과 배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맥락과 분리된 화자가 현실에 없다면 ‘사회문화적 요소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을 상정한 연구의 한계가 뚜렷해진다.
- 표준어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진술은 언어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글의 주장과 반대 방향이다.
- 이상적인 발화가 필요하다는 진술은 글이 비판하는 입장을 지지한다.
- 불변하는 기능 중심의 연구 경향은 언어의 변화와 맥락을 중시하는 논지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선생님은 어린 따님이 있으세요.”에 ㉡이 사용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문장은 높이려는 주체인 선생님의 ‘친족’을 높인 것으로, 글의 ‘간접적으로 높이는 경우’에 해당하는 ㉠ 주체 높임이다. ‘동작의 대상’을 높이는 객체 높임이 아니다.
- “할머니께서 주무셔.”는 조사 ‘께서’와 높임 어휘로 주체를 높이므로 ㉠이 맞다.
- “할아버지가 수염이 많으시다.”는 주체의 신체 일부를 ‘-(으)시-’로 높이므로 ㉠이 맞다.
- “이제 곧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는 종결 어미로 청자를 높이므로 ㉢이 맞다.
예를 들어, 손아래의 특정 상대에게 만나자고 할 때 청소년 시절에는 “야, 나 좀 봐.”라고 하던 사람이 노인이 되어서 “자네, 나 좀 보세.”라고 말하는 것은 (가)에 의한 언어변이다. 반면에 ‘잔(盞)’을 셀 때의 언어 관습을 보면, 노년층은 ‘석 잔, 넉 잔’이라고 하고 청소년층은 ‘세 잔, 네 잔’이라고 하는데, 이는 (나)에 의한 언어변이로 볼 수 있다. ‘석 잔’이라고 말하는 노년층들은 젊은 시절에도 차를 주문할 때 ‘석 잔’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언어변이는 개인의 언어 사용이 일생에 걸쳐 자연스럽게 바뀌며 나타나는 (다)에 의한 언어변이와 구별된다.
(가)는 연령 단계, (나)는 세대차, (다)는 연령 단계이다.
같은 사람이 나이가 들며 말투를 바꾸는 (가)는 연령대에 따른 변이이다. ‘석 잔’을 쓰는 노년층은 ‘젊은 시절에도’ 그렇게 말했으므로 (나)는 관습 차이인 세대차이고, ‘일생에 걸쳐’ 바뀌는 (다)는 연령 단계이다.
- 세대차 / 연령 단계 / 세대차는 세 칸 모두 반대로 채워 부적절하다.
- 세대차 / 연령 단계 / 연령 단계는 (가)와 (나)가 뒤바뀌어 부적절하다.
- 연령 단계 / 세대차 / 세대차는 일생에 걸친 변화를 세대차로 보아 부적절하다.
○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도서관에 자주 가지 않는다.
○ 도서관에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격이 차분하다.
○ 갑은 성격이 차분하지 않은 사람이다.
반드시 참인 것은 ‘갑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이다.
독서 좋아함 → 도서관 자주 감 → 성격 차분함으로 이어진다.
갑은 차분하지 않으므로 대우에 따라 도서관에 자주 가지 않는다.
따라서 갑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 갑이 도서관에 자주 간다는 진술은 위의 도출과 모순된다.
- 야외 활동을 즐기면 도서관에 자주 가지 않지만, 그 역은 보장되지 않으므로 갑이 야외 활동을 즐긴다고 단정할 수 없다.
- 독서를 좋아하는 쪽은 거짓이고 야외 활동을 즐기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이 선언문은 반드시 참이 아니다.
특히 인간의 본성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복잡한 전체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특정 부분만 골라내 변형하는 것이 어렵고, 부분의 변형이 원래의 전체가 지녔던 특성을 훼손하는 파괴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는 곧 인간 존엄성 자체의 파괴를 의미한다. 그런 결과를 예측하여 방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어떤 부분을 인위적으로 변형하려는 시도가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ㄴ.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부분들은 독립적이어서 한 부분의 성질 변화가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은 약화된다.
ㄷ.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부분들 가운데 부정적 성질이 발현되는 부분만 판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은 약화된다.
적절한 평가는 ㄱ, ㄴ이다.
ㄱ: 글은 복잡하게 연결된 전체라서 결과를 ‘예측하여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므로 ㄱ의 조건은 ㉠을 강화한다.
ㄴ: 부분들이 독립적이면 ‘연쇄적으로 변형을 일으키는 문제’가 사라지므로 ㉠은 약화된다.
ㄷ: 부정적 부분을 판별할 수 없으면 변형은 더 위험해지므로 ㉠은 약화되지 않는다.
- ㄱ만 고르는 조합은 타당한 평가인 ㄴ을 빠뜨린다.
- ㄴ, ㄷ을 고르는 조합은 타당한 ㄱ을 빠뜨리고 부적절한 ㄷ을 포함한다.
- ㄱ, ㄴ, ㄷ을 모두 고르는 조합은 부적절한 ㄷ을 포함한다.
따라서 광주행 소포와 부산행 소포의 택배 요금이 서로 다르다.
추가해야 할 전제는 ‘광주행 소포와 부산행 소포는 부피가 서로 다르다’이다.
광주행과 대전행, 대전행과 부산행의 무게가 같으므로 세 소포의 무게는 모두 같다.
무게로는 요금 차이를 끌어낼 수 없으므로 광주행과 부산행의 부피가 달라야 한다.
그러면 ‘부피가 서로 다르면’ 요금이 다르다는 조건에 따라 결론이 나온다.
- 광주행과 부산행의 부피가 같으면 두 소포의 요금이 다르다는 근거가 없다.
- 대전행과 부산행의 부피가 같다는 정보만으로는 광주행의 부피를 알 수 없다.
- 대전행과 부산행의 부피가 달라도 대전행과 부산행의 요금 차이만 나올 뿐, 광주행과의 관계는 알 수 없다.
연희: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관광객이 증가해 지역 경제에 활력이 생겨. 물론 약간의 환경 파괴가 불가피하겠지만, 케이블카 설치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환경 파괴로 인한 손실보다 더 크다면 설치해야지.
영찬: 환경 파괴로 인한 손실은 경제적 계산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교통 약자를 포함해 더 많은 사람이 국립공원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지. 나는 사람들의 문화 향유권을 확대한다는 점에서는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해.
수아: 국립공원은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정한 곳이야. 인공적 시설물을 설치하면 이용자의 편리함이야 더 늘어나겠지.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국립공원을 지정한 목적을 벗어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연희: 국립공원을 지정한 목적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맞지만 그 목적이 절대적일 수는 없어. 케이블카를 설치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익이 크다면 설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영찬: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국립공원 이용자들을 고려해서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다만, 케이블카를 설치할 때 불가피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자연을 보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거야.
적절하지 않은 것은 영찬이 환경 파괴의 불가피성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영찬도 ‘케이블카를 설치할 때 불가피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하므로 수아, 연희와 같은 인식을 보인다.
- 수아는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정한 곳’이라 하고, 연희도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맞지만’이라 하여 동의한다.
- 수아는 ‘이용자의 편리함이야 더 늘어나겠지’라 하고, 영찬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지’라 하여 동의한다.
- 연희는 경제적 이익을 설치 근거로 삼지만, 영찬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이용자를 고려한다고 하여 입장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