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줄 친 '이 선거'는 1948년 실시된 5·10 총선거로, 김구·김규식 등 남북 협상파는 단독 선거에 반대해 불참을 선언하였다.
자료의 '1948년', '최초로 실시된 보통 선거', 우표의 '총선거 기념 1948.5.10'이 단서이다. 이 선거로 제헌 국회가 구성되어 헌법을 제정하였다.
- 국회의원 선출: 5·10 총선거로 뽑힌 제헌 국회의원의 임기는 2년이었다.
- 이승만 대통령 선출: 대통령은 이 선거가 아니라 제헌 국회의 간접 선거로 선출되었다.
- 18세 이상 투표권: 당시 선거권은 만 21세 이상의 국민에게 주어졌다.
| 고령군은 원래 (가)이다.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 유지되었다. 진흥 대왕이 이를 공격해 없애고 그 지역을 군으로 삼았는데, 경덕왕이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

②

산수문전
임신서기석
③

④

지산동 고분군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가)는 대가야이며, 대가야가 남긴 문화유산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다.
사료의 '고령군', '시조 이진아시왕', '16대 520년', '진흥 대왕이 공격해 없앰'이 단서이다. 대가야는 고령을 중심으로 후기 가야 연맹을 이끌다가 신라 진흥왕 때 멸망하였고, 지산동 고분군에는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이 모여 있다.
- 산수문전: 산과 나무, 구름 무늬를 새긴 백제의 벽돌이다.
- 임신서기석: 두 청년이 유교 경전 학습을 맹세한 신라의 비석이다.
-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연가'라는 연호가 새겨진 고구려의 불상이다.
| 이번에 춘천 등지에서 백성이 소란을 피운 것은 8월 20일 사변 때 쌓인 울분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나라의 역적을 이미 법에 의해 처단하였고 나머지 무리도 차례로 처벌할 것이니, 옛 울분을 풀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지방에 주둔하는 군대는 반드시 이 조칙을 춘천부에 모여 있는 백성에게 보여, 각자 백성으로 돌아가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너희 군대의 무관과 병졸은 즉시 돌아오도록 하라. |
자료의 의병은 을미의병으로, 양반 유생이 주도한 의병이다.
'8월 20일 사변'은 명성 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을 가리키며, 이에 대한 울분으로 춘천 등지에서 봉기한 의병에게 해산을 권고하는 조칙이다. 을미의병은 유인석·이소응 등 위정척사 계열 유생이 이끌었고 단발령 시행이 봉기를 확산시켰다.
-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의병 부대가 아니라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1909)이다.
- 서울 진공 작전은 정미의병 때 13도 창의군이 전개하였다(1908).
- 외교권 박탈에 항의하여 일어난 것은 을사늑약(1905) 이후의 을사의병이다.
| ●명종 6년 망이의 고향인 (가)을/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켜 그들을 달래었다. ●고종 42년 충주의 (나)이/가 몽골군을 막는 데 공을 세워 현으로 승격시켰다. |
(가) 명학소와 (나) 다인철소는 고려의 특수 행정 구역인 소로, 일반 군현에 비해 세금 부담이 컸다.
'망이의 고향'은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난 공주 명학소이고, 몽골군을 막아 현으로 승격된 충주의 지역은 다인철소이다. 향·부곡·소의 주민은 신분상 양인이었으나 일반 군현민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지고 거주 이전에도 제약을 받았다.
- 군사적 특수 지역으로 설치된 것은 북방 국경 지대의 양계(동계·북계)이다.
- 원주·청주 등 다섯 곳에 설치된 것은 통일 신라의 5소경이다.
- 지역 순찰을 위해 안찰사가 파견된 곳은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이다.
| 사건의 발단은 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날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소요의 기미가 있는데, 설사 독립운동과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해 일체의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경찰청장의 통고문을 접수한 것은 이보다 앞선 1월 28일의 일이었다. 2월 14일에도 한국인의 독립 선언문 보도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2월 19일 『재팬 클로니클』지는 보도 금지된 사실과 선언문을 배포한 사람들이 비밀 재판을 받고 1년간의 징역을 선고받은 사실을 담은 기사를 크게 보도하였다. |
밑줄 친 '사건'은 3·1 운동이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날'에 시작되었다는 단서와 독립 선언문 보도 금지 명령을 통해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임을 알 수 있다.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 지도부의 필요성이 커져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이다.
-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된 것 역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다.
- 민족 유일당 운동을 추진하는 계기가 된 것은 6·10 만세 운동(1926)이다.
| 김윤후는 일찍이 승려가 되어 백현원에 살았는데 몽골병이 오자 처인성으로 난을 피하였다. 몽골의 원수 살리타이가 쳐들어와서 처인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그를 활로 쏴 죽였다.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상장군을 제수하였으나, 김윤후는 공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말하기를, “싸울 때를 당하여 나는 활과 화살이 없었는데 어찌 감히 헛되이 무거운 상을 받으리오” 하고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에 (훨씬 낮은 계급인) 섭낭장으로 고쳐 제수하였다. |
처인성 전투 당시의 집권자는 최우이며, 사병 조직인 도방을 확대한 것은 최우가 아닌 최충헌의 대표적 업적이다.
'김윤후', '살리타이', '처인성'은 몽골의 2차 침입(1232) 때의 처인성 전투를 가리키며, 이때의 무신 집권자는 최충헌의 아들 최우이다. 경대승이 처음 만든 도방을 부활·확대해 신변 경호 조직으로 삼은 것은 최충헌이다.
- 정방을 자신의 집에 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한 것은 최우이다.
- 몽골의 침입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것은 최우이다.
- 서방을 두어 능력 있는 문신들을 숙위·자문에 활용한 것도 최우이다.
| 제39조①대통령은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제40조①대통령선거인단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 선거인으로 구성한다. |
자료는 제5공화국 헌법(1980)이며, 이 시기에 언론사에 보도지침이 하달되었다.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는 조항은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를 규정한 제8차 개헌 헌법이다. 전두환 정부는 언론 통폐합과 함께 보도지침을 내려 언론을 통제하였고, 이는 1986년에 폭로되었다.
- 10월 유신은 1972년 박정희 정부 때로, 이 헌법 이전의 일이다.
- 베트남 파병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때 이루어졌다.
-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는 1995년 김영삼 정부 때이다.
| ●3․15 부정 선거와 김주열 사망으로 인해 이승만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전두환 정부의 독재에 반대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전국적 시위의 결과 6․29 선언이 발표되었다. |
4·19 혁명과 6월 민주 항쟁은 모두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3·15 부정 선거와 김주열 사망'은 4·19 혁명, '호헌 철폐'와 '6·29 선언'은 6월 민주 항쟁(1987)이다. 4·19 혁명 후 내각 책임제 개헌이, 6월 민주 항쟁 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 비상계엄은 4·19 혁명 때 선포되었으나 6월 민주 항쟁 때는 선포되지 않았다.
- 유신 체제에 저항한 것은 부마 민주 항쟁 등 197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두 운동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것은 이승만이 물러난 4·19 혁명뿐이다.
| ●5월에 교서를 내려 문무 관료들에게 토지를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봄 정월에 중앙과 지방 관리들의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조를 차등 있게 주고 이를 일정한 법으로 삼았다. |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한 왕은 신문왕으로,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였다.
'문무 관료들에게 토지를 차등 있게 하사'는 관료전 지급,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조를 차등 있게' 준 것은 녹읍 폐지로, 모두 신문왕의 정책이다. 신문왕은 즉위 초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며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 삼국 통일을 완성한 것은 매소성·기벌포 전투로 당을 몰아낸 문무왕이다.
- 단양 신라 적성비를 세운 것은 진흥왕이다.
- 국정을 총괄하는 상대등을 둔 것은 법흥왕이다.
| 요즈음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이 기구에서 모두 다룹니다. 의정부는 한갓 이름뿐이고 6조는 할 일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름은 변방 방비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과거나 왕비와 후궁 간택까지도 모두 여기서 처리합니다. |
밑줄 친 '이 기구'는 비변사로, 3포 왜란 이후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
'의정부는 한갓 이름뿐', '변방 방비를 위해서'라는 단서는 국방 문제를 다루다 국정 전반을 장악한 비변사를 가리킨다. 비변사는 중종 때 3포 왜란을 계기로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고, 을묘왜변 이후 상설화되어 임진왜란 뒤 최고 기구가 되었다.
- 3사 관리의 추천권을 가진 것은 이조 전랑이다.
- 사헌부·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린 것은 사간원이다.
- 서얼 출신 학자들이 검서관에 등용된 곳은 정조 때의 규장각이다.
| 다른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하게 한다. 도둑질한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노비로 삼으며, 용서를 받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을 내게 한다. …… 부인은 정숙하고 신의가 있어서 음란하지 않았다. - 「한서」지리지 - |
자료와 관련 있는 나라는 고조선으로, 중국과 한반도 남부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
살인·상해·도둑질을 처벌하는 조항은 『한서』 지리지에 전하는 고조선의 8조법이다. 위만 조선 시기에 고조선은 한과 한반도 남부의 진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독점해 이익을 얻었다.
- 국가 중대사를 제가 회의에서 논의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 가축 이름을 딴 제가가 사출도를 다스린 나라는 부여이다.
- 읍락을 침범하면 노비와 소·말로 배상하게 한 책화는 동예의 풍속이다.
| 백정 박성춘이 “이 사람은 바로 대한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식합니다. 그러나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 관리와 백성이 힘을 합하여 우리 대황제의 훌륭한 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영원토록 무궁하게 합시다.”라고 연설하니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단체 회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한 후 …… 먼저 6개 조항을 만민에게 돌려 찬성을 받고 대신들도 모두 가(可)자 아래 서명하였다. |
밑줄 친 '단체'는 독립 협회로,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다.
'백정 박성춘'의 연설과 '6개 조항'에 대신들이 서명한 것은 독립 협회가 개최한 관민 공동회(1898)와 헌의 6조 결의를 가리킨다.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열어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는 등 이권 수호 운동을 벌였다.
-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것은 보안회이다.
- 을사오적 처단을 목표로 한 것은 나철·오기호 등의 자신회이다.
-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한 것은 대한 자강회이다.
|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려는 정부가 마침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발전하게 되면 정경 유착이나 관치금융, 그리고 부정부패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
연설문을 발표한 정부는 김대중 정부이며, 이 정부 때 6·15 남북 공동 선언이 채택되었다.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이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첫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 개성 공업 지구의 착공·조성은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루어졌다.
-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때 합의되었다.
-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노태우 정부 때이다.
| ●(가)에는 양인 이상의 신분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으며, 생원․진사시를 준비하는 교육을 받았다. 동학, 서학, 남학, 중학이 있었다. ●(나)은/는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주민의 교화를 위해 부․목․군․현에 하나씩 설치되었다. 이에 대한 관리를 수령 7사에 포함시켜 수령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
(가)는 4부 학당, (나)는 향교이며, 4부 학당은 한성에 설치되었다.
'동학, 서학, 남학, 중학'은 수도 한성에 둔 중등 관학인 4부 학당이다. 부·목·군·현에 하나씩 두고 성현 제사와 교육을 맡으며 수령 7사로 관리된 (나)는 향교이다.
- 풍기 군수 주세붕이 처음 세운 것은 백운동 서원으로, 사학인 서원의 시초이다.
- 흥선 대원군 때 47개소만 남기고 정리된 것은 서원이다.
- 생원·진사의 자격이 있어야 입학할 수 있었던 곳은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이다.
| 양역(良役)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명정전에 나아가 말하기를, “결포(結布)는 이미 정해진 세율이 있으니 결코 더 부과하기가 어렵고, 호포(戶布)가 조금 나을 것 같아 1필을 감하고 호전(戶錢)을 걷기로 하였으나 마음은 매우 불쾌하다. …… 호포나 결포나 모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1필은 감하는 정사로 온전히 돌아가야 할 것이니, 1필을 감한 대책을 경들은 잘 강구하라.” |
| < 보 기 > ㄱ.원납전을 징수하였다. ㄴ.선무군관포를 거두었다. ㄷ.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ㄹ.어염선세를 국고로 전환하였다. |
밑줄 친 '대책'은 균역법 시행에 따른 재정 보충책으로, 선무군관포 징수와 어염선세의 국고 전환이 해당한다.
'양역의 절반을 감하라'는 영조의 균역법으로,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줄어든 재정은 결작, 일부 상류층에게 거둔 선무군관포, 왕실 재정이던 어염선세의 국고 전환 등으로 보충하였다.
- 원납전은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고 징수하였다.
- 삼정이정청은 철종 때 임술 농민 봉기(1862)를 수습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 정부가 이 나라와 통상 조약을 체결하려 하자 위정 척사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다. 전국의 유생들은 정부가 황쭌셴의 『조선책략』에 따라 서양과 통교하려 한다고 여겨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
밑줄 친 '이 나라'는 미국으로, 러일 전쟁을 끝낸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하였다.
'황쭌셴의 『조선책략』'은 미국과의 수교를 권하였고, 이에 반발한 영남 만인소 등 위정척사 운동 뒤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하였다.
-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이다.
- 삼국 간섭에 참여한 나라는 러시아·프랑스·독일이다.
-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한 나라는 병인양요 때의 프랑스이다.
| (가)이/가 정방(政房)을 자기 집에 설치하고 학문하는 선비들을 선발하여 여기에 소속시켰다. 그가 벼슬자리에 올릴 사람을 결정하여 의견을 달아 올리면, 왕은 그 명단에 다만 점을 찍어 임명할 뿐이었다. |
(가) 인물은 최우이며, 그의 집권기에 이연년 형제가 난을 일으켰다.
'정방을 자기 집에 설치'하고 인사를 좌우한 인물은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이다. 최우 집권기인 고종 때 전라도 담양 일대에서 백제 부흥을 내건 이연년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 명종의 즉위는 무신 정변(1170) 직후로, 최씨 정권 이전이다.
- 교정도감을 처음 설치한 것은 최충헌이다.
- 도방을 처음 조직한 것은 경대승이다.
| < 보 기 > ㄱ.조선과 청은 군신 관계를 맺었다. ㄴ.강홍립의 군대가 명에 파견되었다. ㄷ.서인 세력은 인조를 왕으로 세웠다. ㄹ.가도에 주둔하던 명의 모문룡이 제거되었다. |
네 사건을 순서대로 놓으면 첫 번째는 강홍립 군대의 파견, 세 번째는 모문룡 제거이다.
광해군 때의 파병에서 인조반정, 정묘호란 이후의 모문룡 제거를 거쳐 병자호란의 군신 관계 체결로 이어진다.
- 강홍립의 군대가 명의 요청으로 후금 정벌에 파견되었다(광해군, 1619).
- 서인 세력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세웠다(인조반정, 1623).
- 가도에 주둔하던 명의 장수 모문룡이 제거되었다(1629).
- 병자호란의 결과 조선과 청이 군신 관계를 맺었다(1637).
< 고려 토지 제도의 변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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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경종이 사색공복 제도를 제정했다는 설명이 옳지 않으며, 사색공복은 광종이 제정하였다.
역분전은 태조, 시정 전시과는 경종, 개정 전시과는 목종, 경정 전시과는 문종 때 시행되었다. 관리의 공복을 자·단·비·녹의 네 색으로 나눈 것은 광종의 왕권 강화책이다.
- 태조는 후대 왕들에게 훈요 10조를 남겼다.
- 목종은 강조의 정변으로 폐위되었다.
- 문종은 경원 이씨 이자연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 (가) 제31조입법권은 국회가 행한다.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한다. 제55조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단, 재선에 의하여 1차 중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잔임 기간 중 재임한다. 부칙이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제55조 제1항의 단서의 제한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나) 1.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을 것 4.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기울일 것 6.과업이 성취되면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출 것 |
국민 교육 헌장 제정은 1968년의 일로, 사사오입 개헌(1954)과 5·16 혁명 공약(1961) 사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가)는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철폐한 1954년 제2차 개헌, (나)는 1961년 5·16 군사 정변 때 발표된 혁명 공약이다. 국민 교육 헌장은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68년에 제정되었다.
- 진보당 사건은 1958년 이승만 정부 때 일어났다.
- 내각 책임제로의 헌법 개정은 4·19 혁명 직후인 1960년에 이루어졌다.
- 윤보선은 1960년 내각 책임제 아래에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 1931년 12월 (가)의 지휘부는 길림성 자위군 총지휘관과 만나 연합 전선을 결성할 것을 합의하고, 이듬해 카오펑린 부대와 합작하여 쌍성보를 공격하였다. 연합군은 이 전투에서 많은 물자를 노획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중국인 부대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후퇴하였다. 전열을 재정비한 연합군은 쌍성보를 다시 공격하여 일본군을 섬멸하였다. |
(가) 부대는 한국 독립군으로, 지청천의 지휘 아래 활동하였다.
1931년 길림성 자위군과 연합하고 '쌍성보'를 공격한 것은 한국 독립당 산하 한국 독립군이다. 한국 독립군은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승리하였다.
- 흥경성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양세봉이 이끈 조선 혁명군이다.
- 동북 항일 연군 내 한인 활동은 사회주의 계열의 흐름으로, 한국 독립군과는 다른 계열이다.
- 중국 화북에서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된 것은 조선 의용대이다.
| (가)진성 여왕 3년 나라 안의 여러 주․군에서 조세와 공물을 보내지 않아 나라의 창고가 텅 비고 씀씀이가 궁핍하게 되었으므로 왕이 사자를 보내어 독촉하였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상주)를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다. (나)3월 웅천주 도독 헌창이 그의 아버지 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나라 이름을 장안이라 하고 …… 여러 군사가 성을 에워싸고 열흘 동안 공격하여 성이 장차 함락되려 하자 헌창은 화를 면할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죽었다. (다)이찬 김지정이 난을 일으켜 무리를 모아 궁궐을 에워싸고 침범했다. 여름 4월에 상대등 김양상이 이찬 경신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 등을 죽였으나, 왕(혜공왕)과 왕비는 반란군에게 살해되었다. |
세 사건은 김지정의 난 → 김헌창의 난 → 원종·애노의 난 순서로 일어났다.
세 사건 모두 신라 하대의 혼란을 보여 주는데, 왕위 쟁탈전으로 시작해 진성 여왕 때의 농민 봉기로 이어졌다.
- 혜공왕 때 김지정의 난이 일어나 혜공왕이 피살되고 하대가 시작되었다(780).
- 헌덕왕 때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국호를 장안이라 하며 반란을 일으켰다(822).
- 진성 여왕 때 조세 독촉에 반발해 원종·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889).
| (가)7조 국왕이 백성을 다스림은 집집마다 가서 돌보고 날마다 이를 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령을 나누어 보내어 가서 백성의 이익과 손해를 살피게 하는 것입니다. …… 이제 제가 보건대 향리의 토호들이 늘 공무를 빙자해 백성들을 침해하고 학대하므로 백성들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니, 청컨대 외관을 두소서. (나)서경 임원역의 땅은 음양가들이 말하는 대화세(명당)에 해당합니다. 이곳에 궁궐을 짓고 옮기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금이 예물을 가져와 스스로 항복할 것이요, 주변 서른여섯 나라가 모두 머리를 조아릴 것입니다. |
두 자료 사이에 일어난 사실은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이다.
(가)는 외관 파견을 건의한 성종 때 최승로의 시무 28조(982), (나)는 인종 때 묘청 등의 서경 천도 주장이다. 거란의 3차 침입 때 강감찬이 귀주에서 승리한 것은 현종 때로 두 시기 사이에 해당한다.
- 만적의 신분 해방 운동은 최충헌 집권기의 일로, (나) 이후이다.
- 노비안검법은 광종 때 실시되어 (가)보다 앞선다.
- 도평의사사가 최고 권력 기구로 기능한 것은 원 간섭기 이후로, (나)보다 뒤이다.
| 최근 한국 경제는 대기업 연쇄 부도에 따른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 단기 자금 만기 연장의 어려움 등 외화 차입의 곤란으로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 정부는 금융 시장의 안정이 확고히 정착되게 하기 위해 …… 국제 통화 기금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하였습니다. |
자료는 김영삼 정부 시기의 발표이며, 이 시기에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대기업 연쇄 부도'와 '국제 통화 기금 자금 지원 요청'은 1997년 외환 위기 때의 정부 발표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OECD에 가입하였다.
- 전태일 분신 사건은 1970년 박정희 정부 때 일어났다.
- 다문화 가족 지원법은 2008년에 제정되어 김영삼 정부 이후의 일이다.
-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은 김대중 정부 때 제정되었다.
| (가)신립이 충주에 이르러 여러 장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들판에서 싸우려고 하였다. 적의 복병이 아군의 후방을 포위하여 아군이 대패하였다. (나)아군이 왜적을 유인하여 한산 앞바다로 끌어냈다. 아군이 학익진을 쳐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며 …… 왜적들을 무찌르고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렸다. (다)적이 수만 명의 대군을 출동시켜 새벽에 행주산성을 포위하였다. 요새 안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는데, 권율이 거듭 영을 내려 진정시켰다. …… 적이 결국 패해 후퇴하였다. (라)국왕의 행차가 서울로 돌아왔으나 성안은 타다 남은 건물 잔해와 시체로 가득하였고, 밖에서는 곳곳에서 도적들이 일어났다. |
네 사건은 충주 탄금대 전투 → 한산도 대첩 → 행주 대첩 → 선조의 환도 순서이다.
모두 임진왜란 중의 사건으로, 초기 육전의 패배 이후 수군의 승리와 관군·의병의 반격을 거쳐 한성을 되찾는 흐름이다.
-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으나 패하였다(1592년 4월).
- 이순신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으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1592년 7월).
-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의 대군을 물리쳤다(1593년 2월).
- 한성 수복 후 선조가 서울로 돌아왔다(1593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