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오봉 선생이 되고 보니, 왜놈들이나 그들의 앞잡이들의 비위에 맞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소위 합방 이후 낙동강 연안의 그 질펀한 갈밭들이 모조리 동척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이내 그들의 논밭이 되어가는 꼴을 보고는, 당신은 당신대로 더욱 참을 수가 없는 듯이, 툭하면 구두덜거리며 어디론지 핑 떠나기가 일쑤였다. 그러자니 사실 살림이라고는 깍듯이 돌아볼 경황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안 식구들도 자연 그렇게 된 어른에게 기댈 도리가 없어지고 도리어 세상을 등진 듯 새침하게 세월을 보내는 그의 비위나 거스를까 조마조마할 따름이었다.
A【 “우짜다가 화를 내실 때는 꼭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디이라. 목소리나 비미이(예사로) 큿나! ‘못난 것들!’ 하고 호통을 치실 때는 그저 온 집이 쩌렁쩌렁 울리디이라.”】
할머니는 이런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두려운 반면 자기에게는 이를 수 없이 고마운 시아버님이었다는 말도 잊지는 않았다.
“야아, 춥다, 어서 방에 들어가거라. 와 부엌 사람들한테 일을 맡기지 않고서……. ”
저녁 일이 늦을 때는 이렇게 나무람 겸 위로를 해 주시더란 것이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가벼운 한숨을 쉬곤 하였다고 한다.
B【그러나 그렇다고 며느리 가야 댁은 일을 덜 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한 가문의 부녀자들은 비록 굶는 한이 있더라도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여기었지만, 그녀는 타고난 천성이 그러질 못했다. 집안 형편을 따라서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해내었다. 일을 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긴다거나 꺼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찍 배우지 못한 일이라도 이내 손에 익숙해졌다. 머슴이나 부엌 식구들이 도리어 송구스럽게 여길 정도로 부지런했다. 벌써 그녀는 한다한 양반의 집 맏며느리가 아니라, 흔해 빠진 농사꾼의 마누라처럼 되어 갔다.】
남편인 명호 양반은 그저 미안스런 눈치만 보였다. 그는 소위 양반의 집 맏아들로서 층층시하에 눌려 살아온 처지라, 대소사를 막론하고 어른들의 눈치나 살필 일이지, 이러쿵저러쿵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실 그는 부인 가야댁보다 나이도 두어 살 아래였을 뿐 아니라 이녁 할아버지나 아버지 오봉 선생에 비하면, 위인이 그저 순하기만 했지, 아직은 무슨 일을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시아버지 오봉 선생이 멀리 출타를 할 때는 마누라보다 자부인 가야 부인을 꼭 불렀다.
“야아, 내 옷 좀 챙겨 오너라. 여분이 한 불쯤 더 있었음 좋겠다.”
애당초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도, 누가 따르기는커녕, 배웅도 멀리 못 나오게 했다.
“아부이 잘 다녀오이소.”
대문 밖에서 그저 이럴라치면
“오냐, 집 잘 지켜라.”
하고는 돌아도 안 보고 휭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아버지가 안 계시면 가야 부인이 실제 주인 구실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호 양반은 아직 글만 읽는 서생인 데다 시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워낙 눌려서만 살아오던 분이 돼서 매사에 자기의 의견이라고는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어머니라고 의향을 물으면,
“내가 머 아나. 니가 알아서 해라.”
고작 이런 투였다.(중략)
| 이런 꼴로 가야 부인의 시댁뿐 아니라 부락 자제들도 아직 신통한 해방 덕을 못 보았다. 첫째, 징용을 끌려간 사람들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어쩌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거지가 되어 오거나 병신이 되어 왔다. 더구나 ‘여자 정신대’에 나간 처녀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하고 기다리는 판이었다. 그래서 부락들은 역시 걱정에 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 불행하리라 믿었던 이와모도 참봉의 집은 반대로 활짝 꽃이 피었다. 고등계 경보부로 있었던 맏아들은 해방 직후에 코끝도 안 보이고 어디에 숨어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만 떠돌더니, 뜻밖에 다시 경찰 간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몇 해 뒤엔 어마어마하게도 국회 의원으로 뽑혔다. 명호 양반은 아버지 오봉 선생을 닮아서 다시 두문불출을 하다시피 구겨지고, 아들 가운데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던 막내도 결국 반거충이가 되어 어딜 돌아다니기만 했다. “애닯기도 하제. 즈그 할배나 징조할배가 그렇기 훌륭하고 독립운동도 많이 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들 안타까워했다. 양 접장이 살아 있었더람 뭐라고 할는지 사람들은 이렇게 궁금하게 여겼다. 가야 부인의 머리에 흰털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막내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야 부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땐 돌아가신 시어머니처럼 천수나 치고 미륵당에 나가면 미륵불 앞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곧잘 자줏빛 모란꽃잎이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석이 안 왔나?” C【가야 부인은 겨우 눈을 뜨고 또 뜨곤 막내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멀리서 또 포성이 쿵 울려 왔다.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 될까? 가야 부인은 무슨 말이라도 할 듯이 입을 약간 우물하다 만다. 이마에서 잇달아 솟는 땀이 드디어 그녀의 최후를 알리는 것 같았다. 】 -김정한, ‘수라도(修羅道)’ |
위 글을 감상할 때 작품의 내재적인 면에 주목하여 감상한 것은?
작품 안의 언어·형식 요소에 주목한 감상은 사투리 사용으로 인물에 생생함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내재적 관점은 작품 외부(현실·작가·독자)와 관계없이 작품 자체의 표현과 구조만으로 감상한다. “우짜다가 화를 내실 때는 … 울리디이라”처럼 경상도 방언으로 인물의 말투를 살린 점은 작품 내부의 언어적 특징이다.
- 두 집안의 흥망을 대조해 해방 직후 사회상을 표현한다는 감상은 작품과 현실의 관계에 주목한 반영론적 관점이다.
- 인물의 생애에서 참다운 삶의 자세를 배운다는 감상은 독자에게 주는 영향에 주목한 효용론적 관점이다.
- 주인공의 죽음으로 작가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는 감상은 작가의 의도에 주목한 표현론적 관점이다.
그러한 오봉 선생이 되고 보니, 왜놈들이나 그들의 앞잡이들의 비위에 맞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소위 합방 이후 낙동강 연안의 그 질펀한 갈밭들이 모조리 동척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이내 그들의 논밭이 되어가는 꼴을 보고는, 당신은 당신대로 더욱 참을 수가 없는 듯이, 툭하면 구두덜거리며 어디론지 핑 떠나기가 일쑤였다. 그러자니 사실 살림이라고는 깍듯이 돌아볼 경황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안 식구들도 자연 그렇게 된 어른에게 기댈 도리가 없어지고 도리어 세상을 등진 듯 새침하게 세월을 보내는 그의 비위나 거스를까 조마조마할 따름이었다.
A【 “우짜다가 화를 내실 때는 꼭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디이라. 목소리나 비미이(예사로) 큿나! ‘못난 것들!’ 하고 호통을 치실 때는 그저 온 집이 쩌렁쩌렁 울리디이라.”】
할머니는 이런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두려운 반면 자기에게는 이를 수 없이 고마운 시아버님이었다는 말도 잊지는 않았다.
“야아, 춥다, 어서 방에 들어가거라. 와 부엌 사람들한테 일을 맡기지 않고서……. ”
저녁 일이 늦을 때는 이렇게 나무람 겸 위로를 해 주시더란 것이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가벼운 한숨을 쉬곤 하였다고 한다.
B【그러나 그렇다고 며느리 가야 댁은 일을 덜 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한 가문의 부녀자들은 비록 굶는 한이 있더라도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여기었지만, 그녀는 타고난 천성이 그러질 못했다. 집안 형편을 따라서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해내었다. 일을 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긴다거나 꺼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찍 배우지 못한 일이라도 이내 손에 익숙해졌다. 머슴이나 부엌 식구들이 도리어 송구스럽게 여길 정도로 부지런했다. 벌써 그녀는 한다한 양반의 집 맏며느리가 아니라, 흔해 빠진 농사꾼의 마누라처럼 되어 갔다.】
남편인 명호 양반은 그저 미안스런 눈치만 보였다. 그는 소위 양반의 집 맏아들로서 층층시하에 눌려 살아온 처지라, 대소사를 막론하고 어른들의 눈치나 살필 일이지, 이러쿵저러쿵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실 그는 부인 가야댁보다 나이도 두어 살 아래였을 뿐 아니라 이녁 할아버지나 아버지 오봉 선생에 비하면, 위인이 그저 순하기만 했지, 아직은 무슨 일을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시아버지 오봉 선생이 멀리 출타를 할 때는 마누라보다 자부인 가야 부인을 꼭 불렀다.
“야아, 내 옷 좀 챙겨 오너라. 여분이 한 불쯤 더 있었음 좋겠다.”
애당초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도, 누가 따르기는커녕, 배웅도 멀리 못 나오게 했다.
“아부이 잘 다녀오이소.”
대문 밖에서 그저 이럴라치면
“오냐, 집 잘 지켜라.”
하고는 돌아도 안 보고 휭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아버지가 안 계시면 가야 부인이 실제 주인 구실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호 양반은 아직 글만 읽는 서생인 데다 시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워낙 눌려서만 살아오던 분이 돼서 매사에 자기의 의견이라고는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어머니라고 의향을 물으면,
“내가 머 아나. 니가 알아서 해라.”
고작 이런 투였다.(중략)
| 이런 꼴로 가야 부인의 시댁뿐 아니라 부락 자제들도 아직 신통한 해방 덕을 못 보았다. 첫째, 징용을 끌려간 사람들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어쩌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거지가 되어 오거나 병신이 되어 왔다. 더구나 ‘여자 정신대’에 나간 처녀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하고 기다리는 판이었다. 그래서 부락들은 역시 걱정에 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 불행하리라 믿었던 이와모도 참봉의 집은 반대로 활짝 꽃이 피었다. 고등계 경보부로 있었던 맏아들은 해방 직후에 코끝도 안 보이고 어디에 숨어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만 떠돌더니, 뜻밖에 다시 경찰 간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몇 해 뒤엔 어마어마하게도 국회 의원으로 뽑혔다. 명호 양반은 아버지 오봉 선생을 닮아서 다시 두문불출을 하다시피 구겨지고, 아들 가운데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던 막내도 결국 반거충이가 되어 어딜 돌아다니기만 했다. “애닯기도 하제. 즈그 할배나 징조할배가 그렇기 훌륭하고 독립운동도 많이 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들 안타까워했다. 양 접장이 살아 있었더람 뭐라고 할는지 사람들은 이렇게 궁금하게 여겼다. 가야 부인의 머리에 흰털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막내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야 부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땐 돌아가신 시어머니처럼 천수나 치고 미륵당에 나가면 미륵불 앞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곧잘 자줏빛 모란꽃잎이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석이 안 왔나?” C【가야 부인은 겨우 눈을 뜨고 또 뜨곤 막내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멀리서 또 포성이 쿵 울려 왔다.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 될까? 가야 부인은 무슨 말이라도 할 듯이 입을 약간 우물하다 만다. 이마에서 잇달아 솟는 땀이 드디어 그녀의 최후를 알리는 것 같았다. 】 -김정한, ‘수라도(修羅道)’ |
밑줄 친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에서 자줏빛 모란꽃잎이 떨어지는 심상은 가야 부인이 품었던 소망의 좌절을 나타낸다.
해방이 되었어도 “신통한 해방 덕을 못 보았다”, 친일한 이와모도 참봉 집은 “활짝 꽃이 피었다”, 기대를 걸었던 막내는 “반거충이가 되어” 떠돈다. 가문과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가 무너진 상황이 떨어지는 꽃잎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 죽음의 공포는 ㉠ 시점의 정서가 아니며, 가야 부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담담히 지낸다.
- 새로운 희망은 떨어지는 꽃잎의 하강 이미지와 반대된다.
- 실연의 아픔은 지문에 연애 관계가 등장하지 않아 근거가 없다.
그러한 오봉 선생이 되고 보니, 왜놈들이나 그들의 앞잡이들의 비위에 맞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소위 합방 이후 낙동강 연안의 그 질펀한 갈밭들이 모조리 동척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이내 그들의 논밭이 되어가는 꼴을 보고는, 당신은 당신대로 더욱 참을 수가 없는 듯이, 툭하면 구두덜거리며 어디론지 핑 떠나기가 일쑤였다. 그러자니 사실 살림이라고는 깍듯이 돌아볼 경황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안 식구들도 자연 그렇게 된 어른에게 기댈 도리가 없어지고 도리어 세상을 등진 듯 새침하게 세월을 보내는 그의 비위나 거스를까 조마조마할 따름이었다.
A【 “우짜다가 화를 내실 때는 꼭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디이라. 목소리나 비미이(예사로) 큿나! ‘못난 것들!’ 하고 호통을 치실 때는 그저 온 집이 쩌렁쩌렁 울리디이라.”】
할머니는 이런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두려운 반면 자기에게는 이를 수 없이 고마운 시아버님이었다는 말도 잊지는 않았다.
“야아, 춥다, 어서 방에 들어가거라. 와 부엌 사람들한테 일을 맡기지 않고서……. ”
저녁 일이 늦을 때는 이렇게 나무람 겸 위로를 해 주시더란 것이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가벼운 한숨을 쉬곤 하였다고 한다.
B【그러나 그렇다고 며느리 가야 댁은 일을 덜 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한 가문의 부녀자들은 비록 굶는 한이 있더라도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여기었지만, 그녀는 타고난 천성이 그러질 못했다. 집안 형편을 따라서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해내었다. 일을 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긴다거나 꺼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찍 배우지 못한 일이라도 이내 손에 익숙해졌다. 머슴이나 부엌 식구들이 도리어 송구스럽게 여길 정도로 부지런했다. 벌써 그녀는 한다한 양반의 집 맏며느리가 아니라, 흔해 빠진 농사꾼의 마누라처럼 되어 갔다.】
남편인 명호 양반은 그저 미안스런 눈치만 보였다. 그는 소위 양반의 집 맏아들로서 층층시하에 눌려 살아온 처지라, 대소사를 막론하고 어른들의 눈치나 살필 일이지, 이러쿵저러쿵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실 그는 부인 가야댁보다 나이도 두어 살 아래였을 뿐 아니라 이녁 할아버지나 아버지 오봉 선생에 비하면, 위인이 그저 순하기만 했지, 아직은 무슨 일을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시아버지 오봉 선생이 멀리 출타를 할 때는 마누라보다 자부인 가야 부인을 꼭 불렀다.
“야아, 내 옷 좀 챙겨 오너라. 여분이 한 불쯤 더 있었음 좋겠다.”
애당초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도, 누가 따르기는커녕, 배웅도 멀리 못 나오게 했다.
“아부이 잘 다녀오이소.”
대문 밖에서 그저 이럴라치면
“오냐, 집 잘 지켜라.”
하고는 돌아도 안 보고 휭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아버지가 안 계시면 가야 부인이 실제 주인 구실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호 양반은 아직 글만 읽는 서생인 데다 시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워낙 눌려서만 살아오던 분이 돼서 매사에 자기의 의견이라고는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어머니라고 의향을 물으면,
“내가 머 아나. 니가 알아서 해라.”
고작 이런 투였다.(중략)
| 이런 꼴로 가야 부인의 시댁뿐 아니라 부락 자제들도 아직 신통한 해방 덕을 못 보았다. 첫째, 징용을 끌려간 사람들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어쩌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거지가 되어 오거나 병신이 되어 왔다. 더구나 ‘여자 정신대’에 나간 처녀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하고 기다리는 판이었다. 그래서 부락들은 역시 걱정에 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 불행하리라 믿었던 이와모도 참봉의 집은 반대로 활짝 꽃이 피었다. 고등계 경보부로 있었던 맏아들은 해방 직후에 코끝도 안 보이고 어디에 숨어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만 떠돌더니, 뜻밖에 다시 경찰 간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몇 해 뒤엔 어마어마하게도 국회 의원으로 뽑혔다. 명호 양반은 아버지 오봉 선생을 닮아서 다시 두문불출을 하다시피 구겨지고, 아들 가운데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던 막내도 결국 반거충이가 되어 어딜 돌아다니기만 했다. “애닯기도 하제. 즈그 할배나 징조할배가 그렇기 훌륭하고 독립운동도 많이 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들 안타까워했다. 양 접장이 살아 있었더람 뭐라고 할는지 사람들은 이렇게 궁금하게 여겼다. 가야 부인의 머리에 흰털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막내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야 부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땐 돌아가신 시어머니처럼 천수나 치고 미륵당에 나가면 미륵불 앞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곧잘 자줏빛 모란꽃잎이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석이 안 왔나?” C【가야 부인은 겨우 눈을 뜨고 또 뜨곤 막내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멀리서 또 포성이 쿵 울려 왔다.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 될까? 가야 부인은 무슨 말이라도 할 듯이 입을 약간 우물하다 만다. 이마에서 잇달아 솟는 땀이 드디어 그녀의 최후를 알리는 것 같았다. 】 -김정한, ‘수라도(修羅道)’ |
A ~ C의 【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C 부분은 서술자가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은 설명이다.
C는 앞부분과 같은 작품 밖 서술자가 가야 부인의 임종 장면과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 될까?” 같은 속마음을 전달할 뿐, 서술의 주체를 교체하지 않는다.
- A는 할머니의 대사를 그대로 들려주어 오봉 선생의 엄한 성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보여주기 방식이다.
- B는 가야 댁이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해내었다”처럼 삶을 요약적으로 진술한다.
- B는 “부지런했다”처럼 서술자가 성격을 직접 제시하는 말하기 방식이다.
| 몇 년 전에 산업계가 중심이 되어 ‘2015 산업발전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 발표하면서 2015년 국민소득 3만 5,000달러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정보기술(IT) 등 4대 기술 혁신 사업화, 제조업과 인프라 서비스 산업의 동반 성장 체제 구축, 교육 및 의료 등의 산업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가) 우선은 이공계에 진학하려면 수학 물리학 등 배우기 어렵고 수능 점수도 올리기 힘든 과목을 이수해야 하며, 빠른 과학기술의 진보로 의학이나 법학 등에 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대학 졸업만으로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쉽지 않고, 산업현장에 배치될 확률이 높아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힘들 수 있다. 이 밖에 의료나 금융 분야보다 보수가 적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나)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수 이공계 인재의 확보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미 기업에서는 우수 이공계 출신이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경영진은 물론이고 상장 제조기업의 핵심 임원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이다. 중국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지도자의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이다. 이같이 이공계 출신이 국가 사회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청년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이러한 산업계의 바람과 달리 일선 교육현장에선 우수 인재의 이공계 진학 기피, 의약 등 특정 분야의 인재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제조업 중심의 국가 발전 토대가 흔들릴까 걱정된다. 포스텍 수석졸업생이 의대에 편입학하고 지방 의대 입학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서울 명문대 이공계 입학생의 점수보다 높다고 한다. 최근 3년간 주요 국립대 자퇴생의 절반 이상이 이공계 학생이며, 공대 졸업 후 취업 대신 고시촌에 몰리는 현상 등은 산업은 물론이고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라)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의료 법률 등 서비스 분야의 면허제도 등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하여 이들 분야에서 이른바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가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병역특례제도를 확대하고 산학 공동연구 참여자에 대한 학자금 및 생활비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이공계 학생들의 취업에 필요한 리더십 및 의사소통 교육, 산업현장 체험학습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마) 국가 차원에서는 의료나 교육 등 서비스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우수 인재가 이들 분야에 진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보건의료산업의 비중(2008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보건 및 의료 총지출 6.5%)에 비추어 볼 때 현재와 같은 우수 인재의 특정분야 쏠림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와 같은 산업 강국에서는 제조업이 전제되지 않은 서비스 산업 육성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산업제품을 수출해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이들 산업을 이끌어갈 우수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고, 의료 법률 등 서비스 분야만을 키워서는 균형 있는 국가 발전을 지속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청년들이 이공계 진학을 선호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수학 과학 교육의 혁신과 함께 고교 때 인문사회 분야와 이공계를 구분하여 수학 과학 교육을 차별화하는 것이 올바른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수 이공계 인력이 양성되어 제조업을 튼튼하게 뒷받침할 수 있을 때 제조업은 물론이고 서비스업도 살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 |
위 글에서 (가) ~ (마)를 논지 전개에 맞게 바르게 배열한 것은?
논지 전개 순서는 (다)-(나)-(가)-(마)-(라)이다.
첫 문단의 산업계 비전을 “이러한 산업계의 바람과 달리”로 받는 (다)가 먼저 이공계 기피 현상을 제시한다. (나)는 이공계 인재의 중요성을 말하며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묻고, (가)가 “우선은 … 때문이다”로 그 이유를 답한다.
(마)는 특정 분야 쏠림이 바람직하지 않으니 “이공계 진학을 선호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라)가 “국가 차원의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뒤 마지막 문단의 장기적 대책으로 이어진다.
| 몇 년 전에 산업계가 중심이 되어 ‘2015 산업발전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 발표하면서 2015년 국민소득 3만 5,000달러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정보기술(IT) 등 4대 기술 혁신 사업화, 제조업과 인프라 서비스 산업의 동반 성장 체제 구축, 교육 및 의료 등의 산업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가) 우선은 이공계에 진학하려면 수학 물리학 등 배우기 어렵고 수능 점수도 올리기 힘든 과목을 이수해야 하며, 빠른 과학기술의 진보로 의학이나 법학 등에 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대학 졸업만으로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쉽지 않고, 산업현장에 배치될 확률이 높아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힘들 수 있다. 이 밖에 의료나 금융 분야보다 보수가 적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나)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수 이공계 인재의 확보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미 기업에서는 우수 이공계 출신이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경영진은 물론이고 상장 제조기업의 핵심 임원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이다. 중국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지도자의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이다. 이같이 이공계 출신이 국가 사회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청년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이러한 산업계의 바람과 달리 일선 교육현장에선 우수 인재의 이공계 진학 기피, 의약 등 특정 분야의 인재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제조업 중심의 국가 발전 토대가 흔들릴까 걱정된다. 포스텍 수석졸업생이 의대에 편입학하고 지방 의대 입학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서울 명문대 이공계 입학생의 점수보다 높다고 한다. 최근 3년간 주요 국립대 자퇴생의 절반 이상이 이공계 학생이며, 공대 졸업 후 취업 대신 고시촌에 몰리는 현상 등은 산업은 물론이고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라)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의료 법률 등 서비스 분야의 면허제도 등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하여 이들 분야에서 이른바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가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병역특례제도를 확대하고 산학 공동연구 참여자에 대한 학자금 및 생활비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이공계 학생들의 취업에 필요한 리더십 및 의사소통 교육, 산업현장 체험학습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마) 국가 차원에서는 의료나 교육 등 서비스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우수 인재가 이들 분야에 진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보건의료산업의 비중(2008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보건 및 의료 총지출 6.5%)에 비추어 볼 때 현재와 같은 우수 인재의 특정분야 쏠림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와 같은 산업 강국에서는 제조업이 전제되지 않은 서비스 산업 육성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산업제품을 수출해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이들 산업을 이끌어갈 우수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고, 의료 법률 등 서비스 분야만을 키워서는 균형 있는 국가 발전을 지속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청년들이 이공계 진학을 선호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수학 과학 교육의 혁신과 함께 고교 때 인문사회 분야와 이공계를 구분하여 수학 과학 교육을 차별화하는 것이 올바른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수 이공계 인력이 양성되어 제조업을 튼튼하게 뒷받침할 수 있을 때 제조업은 물론이고 서비스업도 살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 |
위 글에 나타난 필자의 견해와 거리가 먼 것은?
필자는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할 뿐, 국가 발전 토대를 제조업 중심으로 빠르게 개편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에서 서비스 분야 육성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마지막 문단에서 제조업이 뒷받침될 때 “서비스업도 살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며 균형을 말한다.
- 의료·법률 분야의 진입 장벽 문제는 (라)의 “면허제도 등 진입 장벽을 완화”, “지대 추구” 언급과 맞는다.
- 수학·과학 교육 개선은 (가)의 어려운 과목 이수 부담과 마지막 문단의 “수학 과학 교육의 혁신”과 맞는다.
- 이공계의 빠른 지식 습득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은 (가)의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와 맞는다.
|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 경제상, 사회상으로 불평등, 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猜忌), 알력(軋轢), 침략(侵略),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報復)으로 작고 큰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人心)의 불안(不安)과 도덕(道德)의 타락(墮落)은 갈수록 더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生活原理)의 발견(發見)과 실천(實踐)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天職)이라고 믿는다. 이러하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 리 삼천만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 ㉡ )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侮辱)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序曲)이었다. 우리가 주연 배우(主演俳優)로 세계 역사의 무대(舞臺)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의 우리 민족이 옛날의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武力)으로 정복(征服)하거나 경제력(經濟力)으로 지배(支配)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空想)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 남녀(靑年男女)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使命)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樂)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댄 30년이 못 하여 우리 민족은 ( ㉢ )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確信)하는 바다. |
위 글에서 지은이가 생각하는 ㉠의 의미로 적절한 것은?
㉠ ‘천직’은 사랑과 평화의 문화를 실현하는 일을 뜻한다.
지은이는 인류에게 “새로운 생활 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하고, 우리 민족의 사업은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인류가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이라고 밝힌다.
- 세계에서 제일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은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진술과 어긋난다.
- 민주적 정치 제도의 확립은 지문에서 천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 무력 투쟁은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진술과 어긋난다.
|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 경제상, 사회상으로 불평등, 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猜忌), 알력(軋轢), 침략(侵略),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報復)으로 작고 큰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人心)의 불안(不安)과 도덕(道德)의 타락(墮落)은 갈수록 더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生活原理)의 발견(發見)과 실천(實踐)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天職)이라고 믿는다. 이러하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 리 삼천만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 ㉡ )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侮辱)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序曲)이었다. 우리가 주연 배우(主演俳優)로 세계 역사의 무대(舞臺)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의 우리 민족이 옛날의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武力)으로 정복(征服)하거나 경제력(經濟力)으로 지배(支配)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空想)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 남녀(靑年男女)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使命)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樂)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댄 30년이 못 하여 우리 민족은 ( ㉢ )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確信)하는 바다. |
㉡과 ㉢에 각각 들어갈 한자성어로 모두 적절한 것은?
㉡에는 자굴지심(自屈之心), ㉢에는 괄목상대(刮目相對)가 알맞다.
㉡은 초라한 형편을 보고 스스로 위축되어 위대한 일을 의심하는 마음이므로 ‘스스로 굽히는 마음’인 자굴지심이 맞다. ㉢은 30년 안에 몰라볼 만큼 발전한다는 확신이므로 ‘눈을 비비고 다시 볼 만큼 크게 나아짐’을 뜻하는 괄목상대가 맞다.
- 자격지심(自激之心)은 ‘자기 일에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이지만, 사상누각(砂上樓閣)은 ‘기초가 약해 오래가지 못함’이라 ㉢에 맞지 않는다.
- 자포자기(自暴自棄)는 ‘절망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고 돌아보지 않음’이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이라 ㉢의 민족 발전 전망과 맞지 않는다.
- 방약무인(傍若無人)은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함’, 자화자찬(自畵自讚)은 ‘자기 일을 스스로 칭찬함’이라 두 빈칸 모두 맞지 않는다.
| [앞부분의 줄거리] ‘나’는 ‘안’이라는 냉소적인 성격의 대학원생을 우연히 만나 포장마차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무의미한 대화를 나눈다.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오늘 아내가 죽었다고 하면서 동행을 간청한다. ‘나’와 ‘안’은 승낙하고 같이 술을 마신다. 택시를 타고 가던 세 사람은 소방차를 따라가서 불구경을 하게 된다.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돌아가려는 ‘나’와 ‘안’에게 혼자 있기가 무섭다며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한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서 거리로 나왔다. 적막한 거리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몹시 춥군요.”/ 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 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떨어져갔다.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
이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알맞은 것은?
이 작품은 대화와 행동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라며 사내의 부탁을 외면하는 ‘안’의 말과, 사내의 죽음을 알고 “빨리 도망해 버리는” 행동에서 인물들의 냉소적·개인주의적 성격이 직접 설명 없이 드러난다.
- 찬바람 부는 거리, 여관 등 사실적인 공간이 배경이므로 몽환적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 방을 따로 잡자는 의견 차이는 있으나 인물 간 대립 구도로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이 아니다.
- 서술자는 작품 속 인물인 ‘나’이므로 작품 밖의 서술자가 아니다.
| [앞부분의 줄거리] ‘나’는 ‘안’이라는 냉소적인 성격의 대학원생을 우연히 만나 포장마차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무의미한 대화를 나눈다.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오늘 아내가 죽었다고 하면서 동행을 간청한다. ‘나’와 ‘안’은 승낙하고 같이 술을 마신다. 택시를 타고 가던 세 사람은 소방차를 따라가서 불구경을 하게 된다.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돌아가려는 ‘나’와 ‘안’에게 혼자 있기가 무섭다며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한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서 거리로 나왔다. 적막한 거리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몹시 춥군요.”/ 라고 사내는 우리를 염려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추운데요. 빨리 여관으로 갑시다.” / 안이 말했다. “방을 한 사람씩 따로 잡을까요?” 여관에 들어갔을 때 안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요?” / “모두 한방에 드는 게 좋겠어요.” 라고 나는 아저씨를 생각해서 말했다. 아저씨는 그저 우리 처분만 바란다는 듯한 태도로, 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떨어져갔다.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
윗글의 ㉠ ~ ㉣을 현대 사회의 특성과 관련지어 설명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은 자아 분열이 아니라 사내의 죽음에 연루되기를 꺼리는 불안과 죄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사내의 죽음을 알고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길을 택한 직후,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에 자리를 옮긴다. 외면한 책임이 자신을 붙잡을 것 같은 심리적 부담이 투사된 장면이다.
- ㉠은 모든 프로가 끝난 극장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목표 부재에 따른 방향 상실을 보여 준다.
- ㉡은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는 사내의 부탁에도 각자 방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개인주의와 연대 의식의 상실을 드러낸다.
- ㉢은 숙박계에 모두 거짓 정보를 쓰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익명성을 보여 준다.
| < 보기1 > [논제] : 입학사정관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견1] : 입학사정관제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전의 입시 제도는 교과 성적을 중심으로 ‘한 줄 세우기’를 하는 제도였고, 이에 따라 고등학교는 입시 교과목만을 가르치는 입시 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적성과 인성을 입학 전형 자료로 삼는 ‘여러 줄 세우기’ 방식의 입학사정관제는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입학사정관제에 찬성한다. [댓글] : |
| < 보기2 > • [의견1]의 생각 일부를 인정한다. • [의견1]의 다른 문제점을 제기한다. • [의견1]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다. |
조건을 모두 갖춘 댓글은 취지에 공감하면서 부작용을 들어 시행에 반대하는 글이다.
“입학사정관제의 취지에 공감한다”로 의견1을 일부 인정하고, 교육 환경 미개선·내신 우수자 중심 선발이라는 다른 문제점을 제기한 뒤 “시행해서는 안 된다”로 반대 입장을 밝힌다.
- 취지 실현이 의문이라며 사교육 심화를 들어 반대하는 댓글은 의견1을 인정하는 부분이 없다.
- 구조적 문제와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시행과 함께 사회 구조 개선을 하자는 댓글은 반대 입장이 아니다.
- 제도를 흔들림 없이 시행해야 한다는 댓글은 의견1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임금과 더불어 하늘이 준 직분을 행하는 것이니 재능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본디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하여 풍부하게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 하여 인색하게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런 것을 알고, 인재를 더러 초야(草野)에서도 구하고 더러 항복한 오랑캐 장수 중에서도 뽑았으며, 더러 도둑 중에서도 끌어 올리고, 더러 창고지기를 등용키도 했다. 이들은 다 알맞은 자리에 등용되어 재능을 한껏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치적(治績)이 날로 융성케 된 것은 이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중국같이 큰 나라도 인재를 빠뜨릴까 걱정하여 늘 그 일을 생각한다. 잠자리에서도 생각하고, 밥 먹을 때에도 탄식(歎息)한다. 어찌하여 숲 속과 연못가에서 살면서 큰 보배를 품고도 풀지 못하는 자가 수두룩하고, 영걸 찬 인재가 하급 구실아치 속에 파묻혀서 끝내 그 포부를 펴지 못하는가? 정말, 인재를 모두 얻기도 어렵거니와, 모두 거두어 쓰기도 또한 어렵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좁고 인재가 드물게 나서 예부터 걱정거리였다. 더구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인재 등용의 길이 더 좁아져서 대대로 명망 있는 집 자식이 아니면 좋은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고, 바위 구멍과 띠풀 지붕 밑에 사는 선비는 비록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억울하게도 등용되지 못한다.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하고, 비록 덕이 훌륭해도 과거를 보지 않으면 재상(宰相)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하늘은 재주를 고르게 주는데 이것을 명문의 집과 과거(科擧)로써 제한하니 인재가 늘 모자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서고금에 첩이 낳은 아들의 재주를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만이 천한 어미를 가진 자손이나 두 번 시집간 자의 자손을 벼슬길에 끼지 못하게 한다. 조막만 하고 더욱이 양쪽 오랑캐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나라에서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할까 두려워해도 더러 나랏일이 제대로 될지 점칠 수 없는데, 도리어 그 길을 스스로 막고서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없다.”라고 탄식한다. 이것은 ㉠남쪽 나라를 치러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내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참으로 이웃 나라가 알까 두렵다. 한낱 여인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이 마음이 언짢아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데, 하물며 원망을 품은 사내와 원한에 찬 홀어미가 나라의 반을 차지하니 화평한 기운을 불러오기는 어려우리라. 옛날에 어진 인재는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많이 나왔었다. 그때에도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법을 썼다면, 범중엄(范仲淹)이 재상 때에 이룬 공업(功業)이 없었을 것이요, 진관(陣瓘)과 반양귀(潘良貴)는 곧은 신하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며, 사마양저(司馬穰苴), 위청(衛靑)과 같은 장수와 왕부(王符)의 문장도 끝내 세상에서 쓰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늘이 냈는데도 사람이 버리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고도 하늘에 나라를 길이 유지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늘의 순리를 받들어 행하면 나라의 명맥(命脈)을 훌륭히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허균, ‘유재론(遺才論)’ |
이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
이 글은 인재 등용의 불합리를 비판할 뿐, 왕권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글쓴이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임금과 더불어 하늘이 준 직분을 행하는 것”이라며 임금의 통치를 전제하고, 문제 삼는 것은 명문가·과거·서얼 차별로 인재를 막는 등용 제도이다.
- 옛날의 어진 임금이 초야·도둑·창고지기 중에서도 인재를 등용한 사례를 들어 현재를 비판한다.
- “천한 어미를 가진 자손이나 두 번 시집간 자의 자손”을 막는 신분 차별을 비판한다.
- 중국의 범중엄·위청 등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 인재의 사례를 들어 우리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임금과 더불어 하늘이 준 직분을 행하는 것이니 재능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본디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하여 풍부하게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 하여 인색하게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런 것을 알고, 인재를 더러 초야(草野)에서도 구하고 더러 항복한 오랑캐 장수 중에서도 뽑았으며, 더러 도둑 중에서도 끌어 올리고, 더러 창고지기를 등용키도 했다. 이들은 다 알맞은 자리에 등용되어 재능을 한껏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치적(治績)이 날로 융성케 된 것은 이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중국같이 큰 나라도 인재를 빠뜨릴까 걱정하여 늘 그 일을 생각한다. 잠자리에서도 생각하고, 밥 먹을 때에도 탄식(歎息)한다. 어찌하여 숲 속과 연못가에서 살면서 큰 보배를 품고도 풀지 못하는 자가 수두룩하고, 영걸 찬 인재가 하급 구실아치 속에 파묻혀서 끝내 그 포부를 펴지 못하는가? 정말, 인재를 모두 얻기도 어렵거니와, 모두 거두어 쓰기도 또한 어렵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좁고 인재가 드물게 나서 예부터 걱정거리였다. 더구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인재 등용의 길이 더 좁아져서 대대로 명망 있는 집 자식이 아니면 좋은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고, 바위 구멍과 띠풀 지붕 밑에 사는 선비는 비록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억울하게도 등용되지 못한다.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하고, 비록 덕이 훌륭해도 과거를 보지 않으면 재상(宰相)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하늘은 재주를 고르게 주는데 이것을 명문의 집과 과거(科擧)로써 제한하니 인재가 늘 모자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서고금에 첩이 낳은 아들의 재주를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만이 천한 어미를 가진 자손이나 두 번 시집간 자의 자손을 벼슬길에 끼지 못하게 한다. 조막만 하고 더욱이 양쪽 오랑캐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나라에서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할까 두려워해도 더러 나랏일이 제대로 될지 점칠 수 없는데, 도리어 그 길을 스스로 막고서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없다.”라고 탄식한다. 이것은 ㉠남쪽 나라를 치러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내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참으로 이웃 나라가 알까 두렵다. 한낱 여인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이 마음이 언짢아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데, 하물며 원망을 품은 사내와 원한에 찬 홀어미가 나라의 반을 차지하니 화평한 기운을 불러오기는 어려우리라. 옛날에 어진 인재는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많이 나왔었다. 그때에도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법을 썼다면, 범중엄(范仲淹)이 재상 때에 이룬 공업(功業)이 없었을 것이요, 진관(陣瓘)과 반양귀(潘良貴)는 곧은 신하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며, 사마양저(司馬穰苴), 위청(衛靑)과 같은 장수와 왕부(王符)의 문장도 끝내 세상에서 쓰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늘이 냈는데도 사람이 버리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고도 하늘에 나라를 길이 유지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늘의 순리를 받들어 행하면 나라의 명맥(命脈)을 훌륭히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허균, ‘유재론(遺才論)’ |
다음 중 ㉠의 표현과 의미상 연결할 수 있는 한자성어(漢字成語)는?
㉠과 의미가 통하는 한자성어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은 남쪽을 치러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모는 것처럼, 인재 등용의 길을 스스로 막고서 “인재가 없다”고 탄식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비유한다. 자가당착은 ‘자기의 언행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됨’이다.
-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남을 나무람’이다.
- 전차복철(前車覆轍)은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음을 뜻한다.
- 성동격서(聲東擊西)는 ‘동쪽에서 소리 내고 서쪽을 침’으로, 상대를 속이는 계책이다.
| (가)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ᄒᆞ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ᄯᅩ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 ‘청산별곡(靑山別曲)’ (나) 말 업슨 청산이요, 태(態) 업슨 유수(有數)ㅣ로다. 갑 업슨 청풍(淸風)이요, 님ᄌᆞ 업슨 명월(明月)이라. ㉠이중에 병 업슨 이 몸이 분별(分別) 업시 늙으리라. - 성혼 (다) 강호(江湖)에 ᄀᆞᄋᆞᆯ이 드니 고기마다 ᄉᆞᆯ져 있다. 소정(小艇)에 그믈 시러 흘리 ᄠᅴ여 더뎌 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ᄒᆡ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강호(江湖)에 겨월이 드니 눈 기피 자히 남다. 삿갓 빗기 ᄡᅳ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ᄒᆡ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 맹사성,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라) 이런ᄃᆞᆯ 엇더ᄒᆞ며 뎌런ᄃᆞᆯ 엇다ᄒᆞ료. 초야우생(草野優生)이 이러타 엇더ᄒᆞ료. ㉢ᄒᆞᄆᆞᆯ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텨 므슴ᄒᆞ료.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古人) 몯 뵈. 고인(古人)을 몯 뵈도 녀던 길 알ᄑᆡ 잇ᄂᆡ. ㉣녀던 길 알ᄑᆡ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 이황,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가) ~ (라)에서 운율을 형성하는 요소 중 공통적인 것은?
네 작품에 공통된 운율 요소는 유사한 어구와 문장 구조의 반복이다.
(가)는 “살어리 살어리랏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나)는 “말 업슨 … 태 업슨 … 갑 업슨”, (다)는 “역군은이샷다”, (라)는 “엇더ᄒᆞ료”, “녀던 길 알ᄑᆡ 잇ᄂᆡ / 잇거든”처럼 비슷한 구절을 되풀이해 운율을 만든다.
- (가) 청산별곡은 3음보 율격이므로 4음보 반복은 공통 요소가 아니다.
-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같은 여음구는 (가)에만 있다.
- 사물의 소리나 모양을 흉내 내는 음성상징어는 네 작품에 공통으로 쓰이지 않았다.
| (가)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ᄒᆞ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ᄯᅩ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 ‘청산별곡(靑山別曲)’ (나) 말 업슨 청산이요, 태(態) 업슨 유수(有數)ㅣ로다. 갑 업슨 청풍(淸風)이요, 님ᄌᆞ 업슨 명월(明月)이라. ㉠이중에 병 업슨 이 몸이 분별(分別) 업시 늙으리라. - 성혼 (다) 강호(江湖)에 ᄀᆞᄋᆞᆯ이 드니 고기마다 ᄉᆞᆯ져 있다. 소정(小艇)에 그믈 시러 흘리 ᄠᅴ여 더뎌 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ᄒᆡ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강호(江湖)에 겨월이 드니 눈 기피 자히 남다. 삿갓 빗기 ᄡᅳ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ᄒᆡ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 맹사성,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라) 이런ᄃᆞᆯ 엇더ᄒᆞ며 뎌런ᄃᆞᆯ 엇다ᄒᆞ료. 초야우생(草野優生)이 이러타 엇더ᄒᆞ료. ㉢ᄒᆞᄆᆞᆯ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텨 므슴ᄒᆞ료.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古人) 몯 뵈. 고인(古人)을 몯 뵈도 녀던 길 알ᄑᆡ 잇ᄂᆡ. ㉣녀던 길 알ᄑᆡ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 이황,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 ~ ㉣에서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은 임금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옛 성현이 가던 학문 수양의 길을 따르겠다는 의지이다.
앞 구절 “고인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 몯 뵈 / 고인을 몯 뵈도 녀던 길 알ᄑᆡ 잇ᄂᆡ”에서 ‘녀던 길’은 옛사람이 걸어간 도리의 길이며, 임금은 등장하지 않는다.
- ㉠ “분별 업시 늙으리라”는 근심 걱정 없이 자연 속에서 늙겠다는 달관의 태도이다.
- ㉡ “소일ᄒᆡ옴도 역군은이샷다”는 자연 속 한가로움도 임금의 은혜로 여기는 유교적 충의 의식이다.
- ㉢ “천석고황을 고텨 므슴ᄒᆞ료”는 자연을 사랑하는 고질병을 고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자연 속에 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 생명 가치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어서 ‘이념적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살아가려는 의지, 즉 ‘의지적 가치’의 형태로 모든 생명체들의 본능 속에 깊이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유정성을 지닌 모든 동물들에게 외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의식된 내용이 바로 자신의 생명 가치관을 이루는 선천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점은 이러한 생명 가치관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자기 삶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단위로 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인데, 이 점 또한 본능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생명에 대한 이러한 소중함의 관념이 자기 자신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사람들의 생명은 설혹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합리적 사변(㉡)에 의해 도달하는 관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인 것이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사람의 생명 가치를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기 주위의 사람들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일정한 차별이 나타나게 된다. 자신에게 자기 부모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더 소중하게 느껴짐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온당한 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대등하게 태어난 인간이라 할 때 내 생명 또는 내게 가까운 사람의 생명만 소중하고 남의 생명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다 같은 정도로 소중하다는 이 대원칙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역사적 과정이 소요되었다. 이는 우리의 느낌 속에 부각된 인간 생명 가치의 차별성과 합리적 사고가 말해 주는 동등성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겨 내려는 의식적 노력이 요구되며 이를 반영하는 사회적 장치가 바로 윤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남의 생명의 소중함이 자기 생명의 소중함과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윤리의 바탕에 깔린 기본 윤리가 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황금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점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이들의 소중함에 대한 상대적 차이를 심정적인 면에서까지 완전히 제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입장에 서면 그가 느끼는 바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해’를 지니고 이 이해가 공유되는 바탕 위에 모든 사회의 행위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이 윤리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이러한 고찰(㉣)이 인간이 아닌 여타의 생물이 지닌 생명에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동물과 식물, 박테리아의 생명까지를 모두 인간의 생명과 대등한 위치에 놓고 생각할 것인지 혹은 이들의 생명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낮다면 얼마나 낮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하는 데에 이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까지 윤리학자들의 한가한 이론적 과제로만 치부되어 온 측면이 없지 않았다. 우리에게 인간 사회 안에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 가 ] |
위 글에서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글의 내용과 맞는 것은 생명의 동등성을 갖기 위해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술이다.
셋째 문단에서 차별적 느낌과 합리적 동등성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이를 이겨 내려는 의식적 노력이 요구되며”라고 했다.
- 의지적 가치는 “태어날 때부터” 본능 속에 있다고 했으므로 후천적이라는 진술은 틀리다.
- 가까운 사람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 온당한 판단이 아니라”고 했다.
- 생명의 동등성 원칙이 인정되기까지 “오랜 역사적 과정이 소요되었다”고 했으므로 고대부터 보편적이었다는 진술은 틀리다.
| 생명 가치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어서 ‘이념적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살아가려는 의지, 즉 ‘의지적 가치’의 형태로 모든 생명체들의 본능 속에 깊이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유정성을 지닌 모든 동물들에게 외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의식된 내용이 바로 자신의 생명 가치관을 이루는 선천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점은 이러한 생명 가치관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자기 삶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단위로 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인데, 이 점 또한 본능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생명에 대한 이러한 소중함의 관념이 자기 자신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사람들의 생명은 설혹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합리적 사변(㉡)에 의해 도달하는 관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인 것이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사람의 생명 가치를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기 주위의 사람들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일정한 차별이 나타나게 된다. 자신에게 자기 부모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더 소중하게 느껴짐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온당한 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대등하게 태어난 인간이라 할 때 내 생명 또는 내게 가까운 사람의 생명만 소중하고 남의 생명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다 같은 정도로 소중하다는 이 대원칙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역사적 과정이 소요되었다. 이는 우리의 느낌 속에 부각된 인간 생명 가치의 차별성과 합리적 사고가 말해 주는 동등성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겨 내려는 의식적 노력이 요구되며 이를 반영하는 사회적 장치가 바로 윤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남의 생명의 소중함이 자기 생명의 소중함과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윤리의 바탕에 깔린 기본 윤리가 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황금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점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이들의 소중함에 대한 상대적 차이를 심정적인 면에서까지 완전히 제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입장에 서면 그가 느끼는 바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해’를 지니고 이 이해가 공유되는 바탕 위에 모든 사회의 행위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이 윤리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이러한 고찰(㉣)이 인간이 아닌 여타의 생물이 지닌 생명에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동물과 식물, 박테리아의 생명까지를 모두 인간의 생명과 대등한 위치에 놓고 생각할 것인지 혹은 이들의 생명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낮다면 얼마나 낮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하는 데에 이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까지 윤리학자들의 한가한 이론적 과제로만 치부되어 온 측면이 없지 않았다. 우리에게 인간 사회 안에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 가 ] |
글의 흐름상 [가]에 올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가]에는 인간 이외 생물의 생명 가치가 현실 문제로 대두된 이유가 와야 한다.
앞 문단은 인간 외 생물의 생명 가치 문제가 그동안 “한가한 이론적 과제로만 치부되어” 왔다고 하고, 이어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따라서 이 문제가 더 이상 이론에 머물지 않고 현실 문제가 된 까닭이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 사람의 천부 인권 침해 개선 방안은 인간 외 생물이라는 화제에서 벗어난다.
- 인간과 동등한 생명 가치를 인정해야 할 생물의 보호 방법은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앞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 인간에게 해가 되는 생명체를 없애는 방법은 글의 논지와 관련이 없다.
| 생명 가치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어서 ‘이념적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살아가려는 의지, 즉 ‘의지적 가치’의 형태로 모든 생명체들의 본능 속에 깊이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유정성을 지닌 모든 동물들에게 외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의식된 내용이 바로 자신의 생명 가치관을 이루는 선천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점은 이러한 생명 가치관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자기 삶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단위로 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인데, 이 점 또한 본능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생명에 대한 이러한 소중함의 관념이 자기 자신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사람들의 생명은 설혹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합리적 사변(㉡)에 의해 도달하는 관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인 것이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사람의 생명 가치를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기 주위의 사람들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일정한 차별이 나타나게 된다. 자신에게 자기 부모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더 소중하게 느껴짐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온당한 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대등하게 태어난 인간이라 할 때 내 생명 또는 내게 가까운 사람의 생명만 소중하고 남의 생명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다 같은 정도로 소중하다는 이 대원칙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역사적 과정이 소요되었다. 이는 우리의 느낌 속에 부각된 인간 생명 가치의 차별성과 합리적 사고가 말해 주는 동등성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겨 내려는 의식적 노력이 요구되며 이를 반영하는 사회적 장치가 바로 윤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남의 생명의 소중함이 자기 생명의 소중함과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윤리의 바탕에 깔린 기본 윤리가 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황금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점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이들의 소중함에 대한 상대적 차이를 심정적인 면에서까지 완전히 제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입장에 서면 그가 느끼는 바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해’를 지니고 이 이해가 공유되는 바탕 위에 모든 사회의 행위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이 윤리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이러한 고찰(㉣)이 인간이 아닌 여타의 생물이 지닌 생명에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동물과 식물, 박테리아의 생명까지를 모두 인간의 생명과 대등한 위치에 놓고 생각할 것인지 혹은 이들의 생명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낮다면 얼마나 낮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하는 데에 이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까지 윤리학자들의 한가한 이론적 과제로만 치부되어 온 측면이 없지 않았다. 우리에게 인간 사회 안에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 가 ] |
㉠ ~ ㉣에 들어갈 한자로 알맞지 않은 것은?
㉡의 ‘사변’은 事變이 아니라 思辨으로 써야 한다.
“합리적 사변에 의해 도달하는 관념”은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가림’이라는 뜻의 思辨(사변)이다. 事變은 ‘사람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큰 변고’나 ‘선전 포고 없는 무력 충돌’을 뜻해 문맥에 맞지 않는다.
- ㉠ 각인(刻印)은 ‘머릿속에 새겨 넣듯 깊이 기억됨’으로 본능에 새겨졌다는 문맥에 맞다.
- ㉢ 간극(間隙)은 ‘두 사물·현상 사이의 틈’으로 차별성과 동등성 사이의 틈이라는 문맥에 맞다.
- ㉣ 고찰(考察)은 ‘깊이 생각하고 연구함’으로 문맥에 맞다.
띄어쓰기가 바른 문장은 “욕심이 지나쳐 좀더 큰것을 찾다가 이렇게 되어 버렸어.”이다.
한글 맞춤법은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때 붙여 쓸 수 있게 허용하므로 ‘좀더 큰것’이 가능하고, 보조 용언 ‘버렸어’는 원칙대로 띄어 썼다.
- ‘씨’는 호칭어인 의존 명사이므로 ‘이순신 씨’로 띄어 써야 한다.
- ‘기르는데는’의 ‘데’는 의존 명사이므로 ‘기르는 데는’으로, ‘적지않은’은 ‘적지 않은’으로 띄어 써야 한다.
- 앞말이 합성 동사인 ‘떠나가다’이면 보조 용언을 붙여 쓸 수 없으므로 ‘떠나가 버렸지’로 띄어 써야 한다.
호응이 자연스러운 문장은 “이 열차는 잠시 후 김천역에 도착하여 1분 동안 정차하겠습니다.”이다.
주어 ‘열차는’과 서술어 ‘도착하여’, ‘정차하겠습니다’가 모두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 ‘길을’은 ‘다니거나’와는 어울리지만 ‘놀 때’와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길을 다니거나 길에서 놀 때’로 고쳐야 한다.
- ‘꿈은’과 ‘되고 싶었다’가 호응하지 않으므로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로 고쳐야 한다.
- ‘보상 거부’는 ‘요구하다’와 어울리지 않으므로 ‘보상을 거부하고 토지 재평가를 요구하고’로 고쳐야 한다.
번역투가 없는 문장은 교장 선생님이 축구부 학생들에게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는 문장이다.
‘관심을 두다’는 우리말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표현이다. 나머지는 영어·일본어 직역에서 온 번역투가 들어 있다.
- ‘회의를 갖다’는 영어 have의 직역이므로 ‘회의를 하다/열다’로 고친다.
- ‘동생으로부터 들었다’의 ‘-로부터’는 from의 직역이므로 ‘동생에게서 들었다’로 고친다.
- ‘눈이 너무 나쁜 관계로’는 일본어투이므로 ‘눈이 너무 나빠서’로 고친다.
지위에 맞게 쓴 문장은 “선생님께서 누추한 우리 집을 몸소 찾아 주셨다.”이다.
윗사람의 행동을 ‘께서’, ‘몸소’, ‘주셨다’로 높이고, 자기 집은 ‘누추한’으로 낮추어 표현해 지위 관계에 맞다.
- 할아버지에게 말할 때는 ‘밥’이 아니라 높임 어휘 ‘진지’를 써야 한다.
- ‘선친’은 자기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므로 상대의 살아 계신 아버지에게 쓸 수 없다.
- ‘수고하다’는 윗사람에게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므로 ‘감사합니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어법에 맞는 문장은 “사람들은 생존의 기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동하는 존재입니다.”이다.
주어 ‘사람들은’과 서술어 ‘존재입니다’가 호응하고, ‘요건을 충족하다’도 자연스럽다.
- ‘표출’이 이미 ‘겉으로 나타냄’을 뜻하므로 ‘밖으로 표출되어’는 의미 중복이다.
- ‘의견은 … 뜻을 모았다’는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으므로 ‘장관들은 … 뜻을 모았다’로 고쳐야 한다.
- ‘결정되어져야’는 ‘-되다’와 ‘-어지다’가 겹친 이중 피동이므로 ‘결정되어야’로 고쳐야 한다.
| (가) 정월(正月)ㅅ 나릿므른 아으 어져 녹져 ᄒᆞ논ᄃᆡ 누릿 가온ᄃᆡ 나곤 몸하 ᄒᆞ올로 녈셔 아으 동동(動動) 다리 이월(二月)ㅅ 보로매 아으 노피 현 등(燈)ㅅ불 다호라 만인(萬人) 비취실 즈ᅀᅵ샷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삼월(三月) 나며 개(開)한 아으 만춘 ᄃᆞᆯ욋고지여 ᄂᆞᄆᆡ 브롤 즈ᅀᅳᆯ 디녀 나샷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사월(四月) 아니 니저 오실셔 곳고리새여 므슴다 녹사(綠事)니ᄆᆞᆫ 녯 나ᄅᆞᆯ 닛고신뎌 아으 동동(動動) 다리 오월(五月) 오일(五日)애 아으 수릿날 아ᄎᆞᆷ 약은 즈믄 ᄒᆡᆯ 장존(長存)ᄒᆞ샬 약이라 받ᄌᆞᆸ노이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유월(六月)ㅅ 보로매 아으 별해 ᄇᆞ룐 빗 다호라 도라보실 니믈 젹곰 좃니노이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 작자미상, ‘동동(動動)’ (나) 처음에 못 생각하여 시서(詩書)를 일삼도다 중간에 망령되이 명리(名利)를 바라도다 물외(物外)에 풍월강산이 내 분인가 하노라 경륜(經綸)을 내 알더냐 구세(救世)할 이 없을러냐 태평시세(太平時世)는 얼마나 멀었는가 필부의 위국(爲國) 충심(忠心)을 내어 뵐 데 없어라. - 이중경, ‘어부별곡(漁夫別曲)’ |
(가)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 ‘동동’에서 영원한 기다림의 의지를 다지는 태도는 찾기 어렵다.
화자는 “ᄒᆞ올로 녈셔”라며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탄식하고, 유월에는 자신을 “별해 ᄇᆞ룐 빗”에 빗대어 버림받은 처지를 한탄한다. 임을 그리워하고 송축하는 정서는 있으나 결연히 영원히 기다리겠다는 다짐은 드러나지 않는다.
- 임을 송축하는 이월·오월과 원망·한탄하는 정월·사월·유월이 섞여 있어 화자의 태도에 일관된 흐름을 찾기 어렵다.
- 정월부터 달마다 나릿물·등불·수릿날 등 세시 풍속에 맞추어 임에 대한 연정을 노래하는 월령체이다.
- 녹으려는 정월 나릿물이나 제때 찾아오는 꾀꼬리와 홀로인 화자를 대조해 고독한 처지를 드러낸다.
| (가) 정월(正月)ㅅ 나릿므른 아으 어져 녹져 ᄒᆞ논ᄃᆡ 누릿 가온ᄃᆡ 나곤 몸하 ᄒᆞ올로 녈셔 아으 동동(動動) 다리 이월(二月)ㅅ 보로매 아으 노피 현 등(燈)ㅅ불 다호라 만인(萬人) 비취실 즈ᅀᅵ샷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삼월(三月) 나며 개(開)한 아으 만춘 ᄃᆞᆯ욋고지여 ᄂᆞᄆᆡ 브롤 즈ᅀᅳᆯ 디녀 나샷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사월(四月) 아니 니저 오실셔 곳고리새여 므슴다 녹사(綠事)니ᄆᆞᆫ 녯 나ᄅᆞᆯ 닛고신뎌 아으 동동(動動) 다리 오월(五月) 오일(五日)애 아으 수릿날 아ᄎᆞᆷ 약은 즈믄 ᄒᆡᆯ 장존(長存)ᄒᆞ샬 약이라 받ᄌᆞᆸ노이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유월(六月)ㅅ 보로매 아으 별해 ᄇᆞ룐 빗 다호라 도라보실 니믈 젹곰 좃니노이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 작자미상, ‘동동(動動)’ (나) 처음에 못 생각하여 시서(詩書)를 일삼도다 중간에 망령되이 명리(名利)를 바라도다 물외(物外)에 풍월강산이 내 분인가 하노라 경륜(經綸)을 내 알더냐 구세(救世)할 이 없을러냐 태평시세(太平時世)는 얼마나 멀었는가 필부의 위국(爲國) 충심(忠心)을 내어 뵐 데 없어라. - 이중경, ‘어부별곡(漁夫別曲)’ |
(나)의 다음 시어 중 <보기>의 밑줄 친 ㉠이 드러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 < 보기 > 고전 시가 유형의 하나로서 ‘어부가’는 처사들이 어부를 은일지사의 표상으로 여겨, 스스로를 어부로 자처하며 자신의 심리적 대리인으로 조형되는 가짜 어부, 즉 가어옹(假漁翁)의 생애를 노래한 시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부가’는 전형적인 사대부의 노래이다. 사대부의 문학 전통에 있어서 가어옹을 통한 어부의 형상은 사대부의 유교적 세계인식과 심미 의식을 탐색할 수 있는 주요 요소이다. 즉 ㉠현실 속에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과 한적한 강호 생활의 동경이라는 양면성이 함께 드러난다. |
‘물외(物外)’는 현실 참여 욕망이 아니라 한적한 강호 생활의 동경을 드러내는 시어이다.
‘물외’는 ‘세상 물정의 바깥’이라는 뜻으로, “물외에 풍월강산이 내 분인가 하노라”에서 속세를 떠난 자연 속 삶을 자기 몫으로 여긴다. 이는 ㉠이 아니라 <보기>가 말한 양면성 중 강호 생활의 동경에 해당한다.
- 명리(名利)는 벼슬을 통한 명예와 이익으로, 현실 정치에 나아가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 경륜(經綸)은 나라를 다스리는 포부로, 유교적 이념의 현실 실현과 관련된다.
- 구세(救世)는 세상을 구제함으로, 현실 속에서 이념을 펼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 < 보기 > ㉠ 앞말에 특별한 뜻을 더하여 주는 조사는 보조사이다. ㉡ 상대 높임을 나타낸다. ㉢ 어절이나 문장의 끝에 결합한다. |
세 성격을 모두 갖춘 것은 “불쌍하지요”의 ‘요’이다.
이 ‘요’는 종결 어미 ‘-지’ 뒤에 붙어 듣는 이를 높이는 뜻을 더하는 보조사로, 문장 끝에 결합해 상대 높임(해요체)을 나타낸다.
- “해 주십시오”의 ‘오’는 종결 어미 ‘-십시오’의 일부이므로 조사가 아니다.
- “인생은”의 ‘은’은 대조·주제의 보조사이지만 상대 높임을 나타내지 않는다.
- “닭이요”의 ‘-요’는 사물을 나열하는 연결 어미이므로 보조사가 아니고 상대 높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