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가정」 (나)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
|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제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못 위의 잠」 (다)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공광규,「별국」 |
다음 <보기>를 바탕으로 위 글 (가)를 감상한 것으로 가장 적절하지 못한 것은?
박목월의 시 ‘가정’은 기독교적인 맥락, 즉 천상의 낙원(에덴동산)을 떠나 지상에서 이브와 결혼하고 노동하며 땀 흘리는 아담형의 아버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담을 낙원에서 추방한 뒤 가족을 위하여 지상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라 하셨고, 이브에게는 자식을 낳는 해산의 고통을 맛보라 하셨다. 그것은 지상에 사는 아담과 이브들에게 시련이자 동시에 행복이다.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은 지상의 시련을 비유한 말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자신을 겸허하고 자조적으로 낮추어 부른 표현이므로 적절하지 못하다.
화자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돌아온 자신을 ‘어설픈 것’이라 부르며, 가족 앞에 선 아버지의 부족함과 연민을 드러낸다. 시련은 오히려 ‘눈과 얼음의 길’ 같은 시어가 맡고 있다.
- ‘눈과 얼음의 길’은 〈보기〉의 ‘지상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는’ 아담형 아버지의 노동과 고난에 대응한다.
- ‘아랫목에 모인’ 자식들은 시련 속에서 누리는 가족의 행복을 보여 주며, 〈보기〉의 ‘시련이자 동시에 행복’과 통한다.
-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은 크기가 제각각인 신발로 아버지가 부양해야 할 자식들을 비유한다.
| (가)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가정」 (나)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
|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제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못 위의 잠」 (다)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공광규,「별국」 |
다음 중 (가)~(다)의 공통점으로 적절한 것은?
세 작품은 모두 가족이라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애정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는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나)는 아버지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다)는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보여 준다.
- 자연물을 매개로 시상을 일으키는 것은 제비가 나오는 (나)에는 해당하지만, 신발에서 시상이 출발하는 (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 세 작품 모두 대립되는 시어를 반복해 정서를 강조하는 방식은 쓰지 않았다.
- 대상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어조는 (가)에서 두드러지지만, 과거를 회상하며 서술하는 (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 이 중에 시름없으니 어부(漁父)의 생애(生涯)로다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만경파(萬頃波)에 띄워 두고
인세(人世)를 다 잊었거니 날 가는 줄을 알랴
굽어보면 천심(千尋)녹수(綠水) 돌아보니 만첩(萬疊)청산
십장(十丈) ㉠홍진(紅塵)이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江湖)에 월백(月白)하거든 더욱 무심(無心)하여라
청하(靑荷)에 밥을 싸고 녹류(綠柳)에 고기 꿰어
노적(蘆荻) 화총(花叢)에 배 매어 두고
일반(一般) 청의미(淸意味)를 어느 분이 아실까
산두(山頭)에 한운(閑雲) 일고 수중에 백구(白鷗) 난다
무심(無心)코 다정한 이 이 두 것이로다
일생에 시름을 잊고 너를 좇아 놀리라
장안(長安)을 돌아보니 북궐(北闕)이 천리(千里)로다
어주(魚舟)에 누어신들 잊은 때가 있으랴
두어라 내 시름 아니라 제세현(濟世賢)이 없으랴
-이현보, 「어부단가(漁父短歌)」
(나) 평생에 원하는 것이 다만 충효뿐이로다
이 두 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를쏘냐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 년을 허둥대노라 <제1수>
계교(計較) 이렇더니 ㉡공명이 늦었어라
부급동남(負芨東南)해도 이루지 못할까 하는 뜻을
세월이 물 흐르듯 하니 못 이룰까 하여라 <제2수>
비록 못 이뤄도 ㉢임천(林泉)이 좋으니라
무심어조(無心魚鳥)는 절로 한가하나니
조만간 세사(世事) 잊고 너를 좇으려 하노라 <제3수>
강호에 놀자 하니 임금을 저버리겠고
임금을 섬기자 하니 즐거움에 어긋나네
혼자서 기로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 <제4수>
어쩌랴 이러구러 이 몸이 어찌할꼬
행도(行道)도 어렵고 은둔처도 정하지 않았네
언제나 이 뜻 결단하여 내 즐기는 바 좇을 것인가 <제5수>
-권호문,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다) 뒷집의 술쌀을 꾸니 거친 보리 한 말 못 찼다
주는 것 마구 찧어 쥐어 빚어 괴어 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다나 쓰나 어이리.
어와 저 백구(白鷗)야 무슨 수고 하느냐
갈 숲으로 서성이며 고기 엿보기 하는구나
나같이 군마음 없이 잠만 들면 어떠리
삼공(三公)이 귀하다 한들 강산과 바꿀쏘냐
조각배에 달을 싣고 낚싯대를 흩던질 제
이 몸이 이 청흥(淸興) 가지고 만호후(萬戶侯)인들 부러우랴
헛글고 싯근 ㉣문서 다 주어 내던지고
필마(匹馬) 추풍에 채찍을 쳐 돌아오니
아무리 매인 새 놓인다 한들 이토록 시원하랴
동풍이 건 듯 불어 적설(積雪)을 다 녹이니
사면(四面) 청산이 옛 모습 나노매라
귀밑의 해묵은 서리는 녹을 줄을 모른다.
-김광욱, 「율리유곡(栗里遺曲)」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세 작품의 화자는 모두 속세를 벗어난 자연 속의 삶을 지향한다.
(가)는 ‘인세(人世)를 다 잊었거니’, (나)는 ‘조만간 세사(世事) 잊고 너를 좇으려 하노라’, (다)는 ‘삼공(三公)이 귀하다 한들 강산과 바꿀쏘냐’라고 하여 강호 자연을 추구한다.
- 화자의 갈등은 ‘혼자서 기로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라고 한 (나)에 뚜렷할 뿐, (다)에는 갈등하는 모습이 없다.
- (다)는 술쌀을 꾸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만족하지만, (나)는 가난이 아니라 출사와 은거 사이의 고민이 중심이다.
- 사회 생활에서 실패한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는 세 작품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가) 이 중에 시름없으니 어부(漁父)의 생애(生涯)로다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만경파(萬頃波)에 띄워 두고
인세(人世)를 다 잊었거니 날 가는 줄을 알랴
굽어보면 천심(千尋)녹수(綠水) 돌아보니 만첩(萬疊)청산
십장(十丈) ㉠홍진(紅塵)이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江湖)에 월백(月白)하거든 더욱 무심(無心)하여라
청하(靑荷)에 밥을 싸고 녹류(綠柳)에 고기 꿰어
노적(蘆荻) 화총(花叢)에 배 매어 두고
일반(一般) 청의미(淸意味)를 어느 분이 아실까
산두(山頭)에 한운(閑雲) 일고 수중에 백구(白鷗) 난다
무심(無心)코 다정한 이 이 두 것이로다
일생에 시름을 잊고 너를 좇아 놀리라
장안(長安)을 돌아보니 북궐(北闕)이 천리(千里)로다
어주(魚舟)에 누어신들 잊은 때가 있으랴
두어라 내 시름 아니라 제세현(濟世賢)이 없으랴
-이현보, 「어부단가(漁父短歌)」
(나) 평생에 원하는 것이 다만 충효뿐이로다
이 두 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를쏘냐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 년을 허둥대노라 <제1수>
계교(計較) 이렇더니 ㉡공명이 늦었어라
부급동남(負芨東南)해도 이루지 못할까 하는 뜻을
세월이 물 흐르듯 하니 못 이룰까 하여라 <제2수>
비록 못 이뤄도 ㉢임천(林泉)이 좋으니라
무심어조(無心魚鳥)는 절로 한가하나니
조만간 세사(世事) 잊고 너를 좇으려 하노라 <제3수>
강호에 놀자 하니 임금을 저버리겠고
임금을 섬기자 하니 즐거움에 어긋나네
혼자서 기로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 <제4수>
어쩌랴 이러구러 이 몸이 어찌할꼬
행도(行道)도 어렵고 은둔처도 정하지 않았네
언제나 이 뜻 결단하여 내 즐기는 바 좇을 것인가 <제5수>
-권호문,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다) 뒷집의 술쌀을 꾸니 거친 보리 한 말 못 찼다
주는 것 마구 찧어 쥐어 빚어 괴어 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다나 쓰나 어이리.
어와 저 백구(白鷗)야 무슨 수고 하느냐
갈 숲으로 서성이며 고기 엿보기 하는구나
나같이 군마음 없이 잠만 들면 어떠리
삼공(三公)이 귀하다 한들 강산과 바꿀쏘냐
조각배에 달을 싣고 낚싯대를 흩던질 제
이 몸이 이 청흥(淸興) 가지고 만호후(萬戶侯)인들 부러우랴
헛글고 싯근 ㉣문서 다 주어 내던지고
필마(匹馬) 추풍에 채찍을 쳐 돌아오니
아무리 매인 새 놓인다 한들 이토록 시원하랴
동풍이 건 듯 불어 적설(積雪)을 다 녹이니
사면(四面) 청산이 옛 모습 나노매라
귀밑의 해묵은 서리는 녹을 줄을 모른다.
-김광욱, 「율리유곡(栗里遺曲)」
위 글의 ㉠~㉣ 중 문맥상 성격이 다른 하나는?
㉢ ‘임천(林泉)’만 화자가 지향하는 자연을 가리키고, 나머지는 모두 벗어나려는 속세를 뜻한다.
(나)의 ‘비록 못 이뤄도 임천이 좋으니라’에서 임천은 숲과 샘, 곧 은거할 자연이다.
- ㉠ ‘홍진(紅塵)’은 붉은 먼지, 곧 어지러운 속세를 뜻한다.
- ㉡ ‘공명(功名)’은 벼슬에 나아가 이름을 떨치는 세속적 성취이다.
- ㉣ ‘문서’는 내던지고 돌아온 관직 생활의 번잡한 일을 가리킨다.
(가) 이 중에 시름없으니 어부(漁父)의 생애(生涯)로다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만경파(萬頃波)에 띄워 두고
인세(人世)를 다 잊었거니 날 가는 줄을 알랴
굽어보면 천심(千尋)녹수(綠水) 돌아보니 만첩(萬疊)청산
십장(十丈) ㉠홍진(紅塵)이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江湖)에 월백(月白)하거든 더욱 무심(無心)하여라
청하(靑荷)에 밥을 싸고 녹류(綠柳)에 고기 꿰어
노적(蘆荻) 화총(花叢)에 배 매어 두고
일반(一般) 청의미(淸意味)를 어느 분이 아실까
산두(山頭)에 한운(閑雲) 일고 수중에 백구(白鷗) 난다
무심(無心)코 다정한 이 이 두 것이로다
일생에 시름을 잊고 너를 좇아 놀리라
장안(長安)을 돌아보니 북궐(北闕)이 천리(千里)로다
어주(魚舟)에 누어신들 잊은 때가 있으랴
두어라 내 시름 아니라 제세현(濟世賢)이 없으랴
-이현보, 「어부단가(漁父短歌)」
(나) 평생에 원하는 것이 다만 충효뿐이로다
이 두 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를쏘냐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 년을 허둥대노라 <제1수>
계교(計較) 이렇더니 ㉡공명이 늦었어라
부급동남(負芨東南)해도 이루지 못할까 하는 뜻을
세월이 물 흐르듯 하니 못 이룰까 하여라 <제2수>
비록 못 이뤄도 ㉢임천(林泉)이 좋으니라
무심어조(無心魚鳥)는 절로 한가하나니
조만간 세사(世事) 잊고 너를 좇으려 하노라 <제3수>
강호에 놀자 하니 임금을 저버리겠고
임금을 섬기자 하니 즐거움에 어긋나네
혼자서 기로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 <제4수>
어쩌랴 이러구러 이 몸이 어찌할꼬
행도(行道)도 어렵고 은둔처도 정하지 않았네
언제나 이 뜻 결단하여 내 즐기는 바 좇을 것인가 <제5수>
-권호문,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다) 뒷집의 술쌀을 꾸니 거친 보리 한 말 못 찼다
주는 것 마구 찧어 쥐어 빚어 괴어 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다나 쓰나 어이리.
어와 저 백구(白鷗)야 무슨 수고 하느냐
갈 숲으로 서성이며 고기 엿보기 하는구나
나같이 군마음 없이 잠만 들면 어떠리
삼공(三公)이 귀하다 한들 강산과 바꿀쏘냐
조각배에 달을 싣고 낚싯대를 흩던질 제
이 몸이 이 청흥(淸興) 가지고 만호후(萬戶侯)인들 부러우랴
헛글고 싯근 ㉣문서 다 주어 내던지고
필마(匹馬) 추풍에 채찍을 쳐 돌아오니
아무리 매인 새 놓인다 한들 이토록 시원하랴
동풍이 건 듯 불어 적설(積雪)을 다 녹이니
사면(四面) 청산이 옛 모습 나노매라
귀밑의 해묵은 서리는 녹을 줄을 모른다.
-김광욱, 「율리유곡(栗里遺曲)」
위 글 (나)를 감상한 것으로 적절하지 못한 것은?
제2수는 세속적 욕망을 부정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공명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하는 마음을 드러내므로 적절하지 못하다.
‘공명이 늦었어라’, ‘세월이 물 흐르듯 하니 못 이룰까 하여라’에서 화자는 여전히 공명을 이루려는 뜻을 품고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한다.
- 제1수는 ‘평생에 원하는 것이 다만 충효뿐이로다’라 하여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사대부의 면모를 보인다.
- 제3수는 ‘조만간 세사 잊고 너를 좇으려 하노라’라 하여 아직 속세에 있지만 자연을 동경한다.
- 제4수는 ‘강호에 놀자 하니 임금을 저버리겠고’라 하여 출사와 은거 사이의 내적 갈등을 드러낸다.
| (가) 산수간(山水間) 바회 아래 뛰집을 짓노라 ᄒᆞ니, 그 모론 ᄂᆞᆷ들은 욷ᄂᆞᆫ다 ᄒᆞᆫ다마ᄂᆞᆫ, [Ⅰ] 어리고 햐암의 뜻의ᄂᆞᆫ 내 분(分)인가 ᄒᆞ노라. 보리밥 풋ᄂᆞᄆᆞᆯ을 알마초 먹근 후에 바횟긋 믉ᄀᆞ의 슬ᄏᆞ지 노니노라. [Ⅱ] 그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ᄅᆞᆯ 줄이 이시랴. 잔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ᄇᆞ라보니 그리든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리ᄒᆞ랴. [Ⅲ] 말ᄉᆞᆷ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ᄒᆞ노라. 누고셔 삼공(三公)도곤 낫다ᄒᆞ더니 만승(萬乘)이 이만ᄒᆞ랴. 이제로 헤어든 소부허유(巢父許由)ㅣ 약돗터라. [Ⅳ] 아마도 임천한흥(林泉閑興)을 비길 곳이 업세라. -윤선도, 「만흥」 (나)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가)의 밑줄 친 시어와 가장 잘 통하는 것을 (나)에서 찾으면 무엇인가?
(가)의 ‘그나믄 녀나믄 일’과 가장 잘 통하는 것은 (나)의 ‘구름’이다.
‘그나믄 녀나믄 일’은 ‘그 밖의 다른 일’, 곧 자연 속 소박한 삶 외의 세속적 부귀공명을 뜻한다. (나)의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의 구름도 화자를 유혹하는 세속의 명리를 상징한다.
- ‘창’은 남쪽으로 내는 것으로, 밝고 긍정적인 전원생활의 출발점이다.
- ‘김’을 매는 일은 화자가 즐기는 소박한 농사 노동이다.
- ‘강냉이’는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전원생활의 소박한 결실이다.
| (가) 산수간(山水間) 바회 아래 뛰집을 짓노라 ᄒᆞ니, 그 모론 ᄂᆞᆷ들은 욷ᄂᆞᆫ다 ᄒᆞᆫ다마ᄂᆞᆫ, [Ⅰ] 어리고 햐암의 뜻의ᄂᆞᆫ 내 분(分)인가 ᄒᆞ노라. 보리밥 풋ᄂᆞᄆᆞᆯ을 알마초 먹근 후에 바횟긋 믉ᄀᆞ의 슬ᄏᆞ지 노니노라. [Ⅱ] 그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ᄅᆞᆯ 줄이 이시랴. 잔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ᄇᆞ라보니 그리든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리ᄒᆞ랴. [Ⅲ] 말ᄉᆞᆷ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ᄒᆞ노라. 누고셔 삼공(三公)도곤 낫다ᄒᆞ더니 만승(萬乘)이 이만ᄒᆞ랴. 이제로 헤어든 소부허유(巢父許由)ㅣ 약돗터라. [Ⅳ] 아마도 임천한흥(林泉閑興)을 비길 곳이 업세라. -윤선도, 「만흥」 (나)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가)의 각 연에 어울리는 말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Ⅲ]은 먼 산을 바라보며 말없이 하나 되는 즐거움을 노래하므로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어울리며, 이심전심(以心傳心)은 적절하지 않다.
‘말씀도 웃음도 아니하여도 못내 좋아하노라’는 사람 사이의 마음 전달이 아니라 화자와 자연(뫼)이 하나로 어우러진 경지이다.
- [Ⅰ]은 남들이 비웃어도 초가 짓는 일이 ‘내 분(分)인가’ 한다는 점에서 제 분수에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과 통한다.
- [Ⅱ]는 ‘보리밥 풋나물’로 만족하며 노니는 모습이므로 가난 속에서 도를 즐기는 안빈낙도(安貧樂道)와 통한다.
- [Ⅳ]는 삼공·만승보다 ‘임천한흥(林泉閑興)’이 낫다고 하여 자연 속 한가로운 정취인 강호한정(江湖閑情)과 통한다.
(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 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중략) 그 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기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찍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가닥 주름이 잡히고, (중략)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삼년 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중략)
“어데서 오시는 길입니까?”
“흥,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이 풀려나왔다.
(나)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중략)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중략) 지금으로부터 구 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이의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중략)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구주 탄광에 있어도 보고, 대판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 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라)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중략)
“나와 혼인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 나는 놀란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중략)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요?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한 열 병 따라뉘고 헤어졌구마.” (중략)
“이야기를 다 하면 무얼 하는기요?”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A]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현진건, 「고향」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라)는 서술자 ‘나’와 ‘그’의 대화를 통해, 참혹한 사연에 ‘쓴물이 났다’며 함께 술을 나누는 공감과 연대감을 보여 준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라는 말과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에서 서술자와 인물이 같은 처지의 민족으로 이어진다.
- (가)는 인물의 옷차림과 얼굴을 묘사하는 장면 제시가 중심이며, 행적을 요약해 긴장감을 높이는 부분이 아니다.
- (나)는 고향을 떠나 서간도로 간 사연을 서술자가 간추려 전하는 말하기(요약) 방식이다.
- (다)는 서술자 자신이 아니라 ‘그’가 겪은 떠돌이 생활을 전달하는 부분이다.
(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 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중략) 그 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기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찍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가닥 주름이 잡히고, (중략)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삼년 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중략)
“어데서 오시는 길입니까?”
“흥,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이 풀려나왔다.
(나)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중략)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중략) 지금으로부터 구 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이의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중략)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구주 탄광에 있어도 보고, 대판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 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라)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중략)
“나와 혼인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 나는 놀란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중략)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요?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한 열 병 따라뉘고 헤어졌구마.” (중략)
“이야기를 다 하면 무얼 하는기요?”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A]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현진건, 「고향」
위 글에서 [A]의 기능으로 가장 적절하지 못한 것은?
[A]는 문명화된 고향이 아니라 일제의 수탈로 피폐해진 고향을 형상화하므로 적절하지 못하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처럼 땅과 사람을 빼앗긴 식민지 현실이 노래된다.
- 고향과 민족이 몰락한 모습을 압축해 작품의 주제의식을 집약한다.
- 신작로·감옥소·유곽 등의 시어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모습만 나열하여 당시 현실에 대한 비관적 인식을 드러낸다.
생활에 여유를 주는 공간이라면 더 큰 공간일수록 좋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적 공간 개념에는 그와 같은 여유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큰 공간일수록 좋다는 생각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왜 여유의 공간을 넓은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국토가 너무 좁기 때문이었을까? 넓은 공간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부정적 해답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적극적인 가치 부여를 한다면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사상적 근거가 전제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정복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궁극적인 가치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공간 개념을 근거로 하고 있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공간 개념을 환경 문제와 결부시켜서 생각하면 어떤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까? 건축 행위라는 것은 자연 환경을 인간의 생활 환경으로 고쳐 가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물질 문명의 발달은 계속 더 적극적인 건축 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더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요구해 오는 사람들에게 건축은 아무 거리낌없이 건축 행위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팽창 위주의 건축 행위가 무제한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치게 되었다. 인간의 요구 조건만이 아니라 자연의 필요 조건도 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새로운 공간 설계를 원하는 고객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건축 행위가 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도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부정적 결과가 야기되는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네거티비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네거티비즘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부정적 측면도 고려해 보는 사고 방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네거티비즘은 결코 건축 행위를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건축 행위를 하되 긍정적인 면과 밝은 면, 또는 건축주의 요청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건축 설계에서 제외되기 쉬운 중요한 측면이나 인간 중심적인 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자는 것이 네거티비즘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건축 행위가 전제하고 있는 기본 가치관에 관한 문제가 된다. 네거티비즘은 하나의 건축 사상 내지는 건축 철학적 입장이다.
-김수근, 「건축과 동양 정신」
‘네거티비즘’ 건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네거티비즘 건축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한다.
글쓴이는 ‘인간의 요구 조건만이 아니라 자연의 필요 조건도 들어 주어야 한다’며 건축의 부정적 결과까지 고려하는 사고방식을 네거티비즘이라 하였다.
- 건축주의 요청만 고려하면 중요한 측면이 제외되기 쉽다고 했으므로, 건축주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한국적 공간 개념에는 ‘큰 공간일수록 좋다는 생각’이 없다고 했으므로 넓은 공간 확보와 맞지 않다.
- 인간의 요구 조건만 앞세운 팽창 위주의 건축이 한계에 부딪쳤다고 했으므로 인간 요구 최우선과도 반대이다.
생활에 여유를 주는 공간이라면 더 큰 공간일수록 좋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적 공간 개념에는 그와 같은 여유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큰 공간일수록 좋다는 생각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왜 여유의 공간을 넓은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국토가 너무 좁기 때문이었을까? 넓은 공간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부정적 해답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적극적인 가치 부여를 한다면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사상적 근거가 전제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정복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궁극적인 가치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공간 개념을 근거로 하고 있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공간 개념을 환경 문제와 결부시켜서 생각하면 어떤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까? 건축 행위라는 것은 자연 환경을 인간의 생활 환경으로 고쳐 가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물질 문명의 발달은 계속 더 적극적인 건축 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더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요구해 오는 사람들에게 건축은 아무 거리낌없이 건축 행위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팽창 위주의 건축 행위가 무제한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치게 되었다. 인간의 요구 조건만이 아니라 자연의 필요 조건도 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새로운 공간 설계를 원하는 고객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건축 행위가 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도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부정적 결과가 야기되는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네거티비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네거티비즘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부정적 측면도 고려해 보는 사고 방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네거티비즘은 결코 건축 행위를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건축 행위를 하되 긍정적인 면과 밝은 면, 또는 건축주의 요청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건축 설계에서 제외되기 쉬운 중요한 측면이나 인간 중심적인 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자는 것이 네거티비즘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건축 행위가 전제하고 있는 기본 가치관에 관한 문제가 된다. 네거티비즘은 하나의 건축 사상 내지는 건축 철학적 입장이다.
-김수근, 「건축과 동양 정신」
위 글의 글쓴이가 자신의 견해를 강조하기 위해 인용할 수 있는 시조는?
글쓴이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시조는 ‘十年을 經營ᄒᆞ야 草廬三間 지어내니’이다.
작은 초가삼간에 나·달·청풍이 한 칸씩 들고 강산은 둘러 두고 본다는 내용은, 넓은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살린 여유의 공간이라는 글쓴이의 한국적 공간 개념과 일치한다.
- ‘구렁에 낫는 풀이’는 근심 없는 풀을 부러워하며 인생의 시름을 드러낼 뿐 공간 개념과 무관하다.
- ‘국화야 너는 어이’는 서리를 이기는 국화를 통해 절개(오상고절)를 노래한다.
- ‘청산은 엇뎨ᄒᆞ야’는 청산과 유수처럼 변함없이 학문과 수양에 힘쓰겠다는 다짐이다.
|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ᄒᆞᆫᄉᆡᆼ 緣分(연분)이며 하ᄂᆞᆯ 모ᄅᆞᆯ 일이런가. 나 ᄒᆞ나 졈어 잇고 님 ᄒᆞ나 날 괴시니, 이 ᄆᆞ음 이 ᄉᆞ랑 견졸 ᄃᆡ 노여 업다. 平生(평생)애 願(원)ᄒᆞ요ᄃᆡ ᄒᆞᆫᄃᆡ 녜쟈 ᄒᆞ얏더니, 늙기야 므ᄉᆞ 일로 외오 두고 글이ᄂᆞᆫ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 그더ᄃᆡ 엇디ᄒᆞ야 下界(하계)예 ᄂᆞ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年(삼년)이라. ⓐ臙脂粉(연지분) 잇ᄂᆡ마ᄂᆞᆫ 눌 위ᄒᆞ야 고이 ᄒᆞᆯ고. ᄆᆞ음의 ᄆᆡ친 실음 疊疊(텹텹)이 ᄡᅡ혀 이셔, 짓ᄂᆞ니 한숨이오 디ᄂᆞ니 눈믈이라. 人生(인ᄉᆡᆼ)은 有限(유ᄒᆞᆫ)ᄒᆞᆫᄃᆡ 시ᄅᆞᆷ도 그지업다. 無心(무심)ᄒᆞᆫ 歲月(셰월)은 믈 흐ᄅᆞᄃᆞᆺ ᄒᆞᄂᆞᆫ고야. 炎凉(염냥)이 ᄯᅢ를 아라 가ᄂᆞᆫ ᄃᆞᆺ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東風(동풍)이 건듯 부러 積雪(젹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花(ᄆᆡ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ᄀᆞᆺ득 冷淡(ᄂᆡᆼ담)ᄒᆞᆫᄃᆡ 暗香(암향)은 므ᄉᆞ 일고. 黃昏(황혼)의 ᄃᆞᆯ이 조차 벼 마ᄐᆡ 빗최니, 늣기ᄂᆞᆫ ᄃᆞᆺ 반기ᄂᆞᆫ ᄃᆞᆺ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ᄆᆡ화) 것거 내여 님 겨신 ᄃᆡ 보내오져. 님이 너ᄅᆞᆯ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가] ᄭᅩᆺ디고 새 닙 나니 綠陰(녹음)이 ᄭᆞᆯ렷ᄂᆞᆫᄃᆡ, 羅幃(나위) 寂寞(젹막)ᄒᆞ고, 繡幕(슈막)이 뷔여 잇다.芙蓉(부용)을 거더 노코, 孔雀(공쟉)을 둘러 두니, ᄀᆞᆺ득 시ᄅᆞᆷ 한ᄃᆡ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鴦錦(원앙금) 버혀 노코, 五色線(오ᄉᆡᆨ션) 플텨 내여, 금자ᄒᆡ 견화이셔 님의 옷 지여 내니, 手品(슈품)은ᄏᆞ니와 制度(졔도)도 ᄀᆞᄌᆞᆯ시고, 珊瑚樹(산호슈) 지게 우ᄒᆡ 白玉函(ᄇᆡᆨ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ᄃᆡ ᄇᆞ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里 萬里(쳔리 만리) 길흘 뉘라셔 ᄎᆞ자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나] ᄒᆞᄅᆞ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 녤 제, 危樓(위루)에 혼자 올나 水晶簾(슈졍념) 거든말이, 東山(동산)의 ᄃᆞᆯ이 나고, 北極(븍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光(쳥광)을 쥐어 내여 鳳凰樓(봉황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ᄒᆡ 거러 두고, 八荒(팔황)의 다 비최여, 深山窮谷(심산궁곡) 졈낫ᄀᆞ티 ᄆᆡᆼ그쇼셔. [다] |
| 乾坤(건곤)이 閉塞(폐ᄉᆡᆨ)ᄒᆞ야 白雪(ᄇᆡᆨ셜)이 ᄒᆞᆫ 빗친 제, 사ᄅᆞᆷ은 ᄏᆞ니와 ᄂᆞᆯ새도 그쳐 잇다. 蕭湘南畔(쇼샹남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樓高處(옥누고쳐)야 더옥 닐러 므ᄉᆞᆷᄒᆞ리. 陽春(양츈)을 부쳐 내여 님 겨신 ᄃᆡ 쏘이고져. 茅詹(모쳠) 비쵠 ᄒᆡᄅᆞᆯ 玉樓(옥누)의 올리고져. 紅裳(홍샹)을 니믜 ᄎᆞ고, 翠袖(ᄎᆔ슈)ᄅᆞᆯ 半(반)만 거더, 日暮脩竹(일모슈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댜ᄅᆞᆫ ᄒᆡ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燈(쳥등) 거른 겻ᄐᆡ 鈿空篌(뎐공후) 노하 두고, ⓒᄭᅮᆷ의나 님을 보려 ᄐᆡᆨ 밧고 비겨시니, 鴦錦(앙금)도 ᄎᆞ도 ᄎᆞᆯ샤 이 밤은 언제 샐고. [라] ᄒᆞᄅᆞ도 열 두 ᄯᅢ ᄒᆞᆫ ᄃᆞᆯ도 셜흔 ᄂᆞᆯ, 져근덧 ᄉᆡᆼ각마라, 이 시ᄅᆞᆷ 닛쟈 ᄒᆞ니, ᄆᆞᄋᆞᆷ의 ᄆᆡ쳐 이셔 骨髓(골슈)의 ᄞᅦ텨시니, ⓓ扁鵲(편작)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ᄒᆞ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ᄎᆞᆯ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ᄃᆡ 죡죡 안니다가, 향므든 ᄂᆞᆯ애로 님의 오ᄉᆡ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ᄅᆞ셔도 내 님 조ᄎᆞ려 ᄒᆞ노라. - 정철, 「사미인곡」 |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 글은 상대방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임과 이별한 뒤의 그리움(연군지정)을 주제로 하므로 적절하지 않다.
‘ᄆᆞ음의 ᄆᆡ친 실음 疊疊이 ᄡᅡ혀 이셔’, ‘이 병을 엇디ᄒᆞ리’처럼 화자는 임을 잃은 슬픔과 사모의 정을 줄곧 토로한다.
- ‘이 몸 / 삼기실 제 / 님을 조차 / 삼기시니’처럼 4음보의 율격이 이어진다.
- 연지분, 옷 짓기, 홍상과 취수 등의 소재로 임을 그리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가 드러난다.
- ‘ᄎᆞᆯ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에서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 임 곁에 가고 싶어 한다.
|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ᄒᆞᆫᄉᆡᆼ 緣分(연분)이며 하ᄂᆞᆯ 모ᄅᆞᆯ 일이런가. 나 ᄒᆞ나 졈어 잇고 님 ᄒᆞ나 날 괴시니, 이 ᄆᆞ음 이 ᄉᆞ랑 견졸 ᄃᆡ 노여 업다. 平生(평생)애 願(원)ᄒᆞ요ᄃᆡ ᄒᆞᆫᄃᆡ 녜쟈 ᄒᆞ얏더니, 늙기야 므ᄉᆞ 일로 외오 두고 글이ᄂᆞᆫ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 그더ᄃᆡ 엇디ᄒᆞ야 下界(하계)예 ᄂᆞ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年(삼년)이라. ⓐ臙脂粉(연지분) 잇ᄂᆡ마ᄂᆞᆫ 눌 위ᄒᆞ야 고이 ᄒᆞᆯ고. ᄆᆞ음의 ᄆᆡ친 실음 疊疊(텹텹)이 ᄡᅡ혀 이셔, 짓ᄂᆞ니 한숨이오 디ᄂᆞ니 눈믈이라. 人生(인ᄉᆡᆼ)은 有限(유ᄒᆞᆫ)ᄒᆞᆫᄃᆡ 시ᄅᆞᆷ도 그지업다. 無心(무심)ᄒᆞᆫ 歲月(셰월)은 믈 흐ᄅᆞᄃᆞᆺ ᄒᆞᄂᆞᆫ고야. 炎凉(염냥)이 ᄯᅢ를 아라 가ᄂᆞᆫ ᄃᆞᆺ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東風(동풍)이 건듯 부러 積雪(젹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花(ᄆᆡ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ᄀᆞᆺ득 冷淡(ᄂᆡᆼ담)ᄒᆞᆫᄃᆡ 暗香(암향)은 므ᄉᆞ 일고. 黃昏(황혼)의 ᄃᆞᆯ이 조차 벼 마ᄐᆡ 빗최니, 늣기ᄂᆞᆫ ᄃᆞᆺ 반기ᄂᆞᆫ ᄃᆞᆺ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ᄆᆡ화) 것거 내여 님 겨신 ᄃᆡ 보내오져. 님이 너ᄅᆞᆯ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가] ᄭᅩᆺ디고 새 닙 나니 綠陰(녹음)이 ᄭᆞᆯ렷ᄂᆞᆫᄃᆡ, 羅幃(나위) 寂寞(젹막)ᄒᆞ고, 繡幕(슈막)이 뷔여 잇다.芙蓉(부용)을 거더 노코, 孔雀(공쟉)을 둘러 두니, ᄀᆞᆺ득 시ᄅᆞᆷ 한ᄃᆡ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鴦錦(원앙금) 버혀 노코, 五色線(오ᄉᆡᆨ션) 플텨 내여, 금자ᄒᆡ 견화이셔 님의 옷 지여 내니, 手品(슈품)은ᄏᆞ니와 制度(졔도)도 ᄀᆞᄌᆞᆯ시고, 珊瑚樹(산호슈) 지게 우ᄒᆡ 白玉函(ᄇᆡᆨ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ᄃᆡ ᄇᆞ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里 萬里(쳔리 만리) 길흘 뉘라셔 ᄎᆞ자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나] ᄒᆞᄅᆞ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 녤 제, 危樓(위루)에 혼자 올나 水晶簾(슈졍념) 거든말이, 東山(동산)의 ᄃᆞᆯ이 나고, 北極(븍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光(쳥광)을 쥐어 내여 鳳凰樓(봉황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ᄒᆡ 거러 두고, 八荒(팔황)의 다 비최여, 深山窮谷(심산궁곡) 졈낫ᄀᆞ티 ᄆᆡᆼ그쇼셔. [다] |
| 乾坤(건곤)이 閉塞(폐ᄉᆡᆨ)ᄒᆞ야 白雪(ᄇᆡᆨ셜)이 ᄒᆞᆫ 빗친 제, 사ᄅᆞᆷ은 ᄏᆞ니와 ᄂᆞᆯ새도 그쳐 잇다. 蕭湘南畔(쇼샹남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樓高處(옥누고쳐)야 더옥 닐러 므ᄉᆞᆷᄒᆞ리. 陽春(양츈)을 부쳐 내여 님 겨신 ᄃᆡ 쏘이고져. 茅詹(모쳠) 비쵠 ᄒᆡᄅᆞᆯ 玉樓(옥누)의 올리고져. 紅裳(홍샹)을 니믜 ᄎᆞ고, 翠袖(ᄎᆔ슈)ᄅᆞᆯ 半(반)만 거더, 日暮脩竹(일모슈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댜ᄅᆞᆫ ᄒᆡ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燈(쳥등) 거른 겻ᄐᆡ 鈿空篌(뎐공후) 노하 두고, ⓒᄭᅮᆷ의나 님을 보려 ᄐᆡᆨ 밧고 비겨시니, 鴦錦(앙금)도 ᄎᆞ도 ᄎᆞᆯ샤 이 밤은 언제 샐고. [라] ᄒᆞᄅᆞ도 열 두 ᄯᅢ ᄒᆞᆫ ᄃᆞᆯ도 셜흔 ᄂᆞᆯ, 져근덧 ᄉᆡᆼ각마라, 이 시ᄅᆞᆷ 닛쟈 ᄒᆞ니, ᄆᆞᄋᆞᆷ의 ᄆᆡ쳐 이셔 骨髓(골슈)의 ᄞᅦ텨시니, ⓓ扁鵲(편작)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ᄒᆞ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ᄎᆞᆯ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ᄃᆡ 죡죡 안니다가, 향므든 ᄂᆞᆯ애로 님의 오ᄉᆡ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ᄅᆞ셔도 내 님 조ᄎᆞ려 ᄒᆞ노라. - 정철, 「사미인곡」 |
[가]∼[라] 중, ‘선정(善政)에의 당부’로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이 포함된 것은?
‘선정(善政)에의 당부’는 [다]로 표시된 가을 대목에 담겨 있다.
‘淸光을 쥐어 내여 鳳凰樓의 븟티고져’, ‘八荒의 다 비최여 深山窮谷 졈낫ᄀᆞ티 ᄆᆡᆼ그쇼셔’는 임금의 덕을 상징하는 달빛을 궁궐에 걸어 온 세상 구석구석까지 밝게 해 달라는 뜻으로, 임금에게 선정을 바라는 마음이다.
- 봄 대목은 매화를 꺾어 임께 보내려는 정성을 노래한다.
- 여름 대목은 원앙금으로 임의 옷을 지어 보내려는 정성을 노래한다.
- 겨울 대목은 추위 속에 있을 임을 걱정하며 볕을 쏘이고 싶은 마음과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ᄒᆞᆫᄉᆡᆼ 緣分(연분)이며 하ᄂᆞᆯ 모ᄅᆞᆯ 일이런가. 나 ᄒᆞ나 졈어 잇고 님 ᄒᆞ나 날 괴시니, 이 ᄆᆞ음 이 ᄉᆞ랑 견졸 ᄃᆡ 노여 업다. 平生(평생)애 願(원)ᄒᆞ요ᄃᆡ ᄒᆞᆫᄃᆡ 녜쟈 ᄒᆞ얏더니, 늙기야 므ᄉᆞ 일로 외오 두고 글이ᄂᆞᆫ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 그더ᄃᆡ 엇디ᄒᆞ야 下界(하계)예 ᄂᆞ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年(삼년)이라. ⓐ臙脂粉(연지분) 잇ᄂᆡ마ᄂᆞᆫ 눌 위ᄒᆞ야 고이 ᄒᆞᆯ고. ᄆᆞ음의 ᄆᆡ친 실음 疊疊(텹텹)이 ᄡᅡ혀 이셔, 짓ᄂᆞ니 한숨이오 디ᄂᆞ니 눈믈이라. 人生(인ᄉᆡᆼ)은 有限(유ᄒᆞᆫ)ᄒᆞᆫᄃᆡ 시ᄅᆞᆷ도 그지업다. 無心(무심)ᄒᆞᆫ 歲月(셰월)은 믈 흐ᄅᆞᄃᆞᆺ ᄒᆞᄂᆞᆫ고야. 炎凉(염냥)이 ᄯᅢ를 아라 가ᄂᆞᆫ ᄃᆞᆺ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東風(동풍)이 건듯 부러 積雪(젹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花(ᄆᆡ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ᄀᆞᆺ득 冷淡(ᄂᆡᆼ담)ᄒᆞᆫᄃᆡ 暗香(암향)은 므ᄉᆞ 일고. 黃昏(황혼)의 ᄃᆞᆯ이 조차 벼 마ᄐᆡ 빗최니, 늣기ᄂᆞᆫ ᄃᆞᆺ 반기ᄂᆞᆫ ᄃᆞᆺ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ᄆᆡ화) 것거 내여 님 겨신 ᄃᆡ 보내오져. 님이 너ᄅᆞᆯ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가] ᄭᅩᆺ디고 새 닙 나니 綠陰(녹음)이 ᄭᆞᆯ렷ᄂᆞᆫᄃᆡ, 羅幃(나위) 寂寞(젹막)ᄒᆞ고, 繡幕(슈막)이 뷔여 잇다.芙蓉(부용)을 거더 노코, 孔雀(공쟉)을 둘러 두니, ᄀᆞᆺ득 시ᄅᆞᆷ 한ᄃᆡ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鴦錦(원앙금) 버혀 노코, 五色線(오ᄉᆡᆨ션) 플텨 내여, 금자ᄒᆡ 견화이셔 님의 옷 지여 내니, 手品(슈품)은ᄏᆞ니와 制度(졔도)도 ᄀᆞᄌᆞᆯ시고, 珊瑚樹(산호슈) 지게 우ᄒᆡ 白玉函(ᄇᆡᆨ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ᄃᆡ ᄇᆞ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里 萬里(쳔리 만리) 길흘 뉘라셔 ᄎᆞ자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나] ᄒᆞᄅᆞ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 녤 제, 危樓(위루)에 혼자 올나 水晶簾(슈졍념) 거든말이, 東山(동산)의 ᄃᆞᆯ이 나고, 北極(븍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光(쳥광)을 쥐어 내여 鳳凰樓(봉황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ᄒᆡ 거러 두고, 八荒(팔황)의 다 비최여, 深山窮谷(심산궁곡) 졈낫ᄀᆞ티 ᄆᆡᆼ그쇼셔. [다] |
| 乾坤(건곤)이 閉塞(폐ᄉᆡᆨ)ᄒᆞ야 白雪(ᄇᆡᆨ셜)이 ᄒᆞᆫ 빗친 제, 사ᄅᆞᆷ은 ᄏᆞ니와 ᄂᆞᆯ새도 그쳐 잇다. 蕭湘南畔(쇼샹남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樓高處(옥누고쳐)야 더옥 닐러 므ᄉᆞᆷᄒᆞ리. 陽春(양츈)을 부쳐 내여 님 겨신 ᄃᆡ 쏘이고져. 茅詹(모쳠) 비쵠 ᄒᆡᄅᆞᆯ 玉樓(옥누)의 올리고져. 紅裳(홍샹)을 니믜 ᄎᆞ고, 翠袖(ᄎᆔ슈)ᄅᆞᆯ 半(반)만 거더, 日暮脩竹(일모슈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댜ᄅᆞᆫ ᄒᆡ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燈(쳥등) 거른 겻ᄐᆡ 鈿空篌(뎐공후) 노하 두고, ⓒᄭᅮᆷ의나 님을 보려 ᄐᆡᆨ 밧고 비겨시니, 鴦錦(앙금)도 ᄎᆞ도 ᄎᆞᆯ샤 이 밤은 언제 샐고. [라] ᄒᆞᄅᆞ도 열 두 ᄯᅢ ᄒᆞᆫ ᄃᆞᆯ도 셜흔 ᄂᆞᆯ, 져근덧 ᄉᆡᆼ각마라, 이 시ᄅᆞᆷ 닛쟈 ᄒᆞ니, ᄆᆞᄋᆞᆷ의 ᄆᆡ쳐 이셔 骨髓(골슈)의 ᄞᅦ텨시니, ⓓ扁鵲(편작)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ᄒᆞ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ᄎᆞᆯ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ᄃᆡ 죡죡 안니다가, 향므든 ᄂᆞᆯ애로 님의 오ᄉᆡ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ᄅᆞ셔도 내 님 조ᄎᆞ려 ᄒᆞ노라. - 정철, 「사미인곡」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는 명의가 열 명 와도 이 병을 고칠 수 없다는 뜻이므로, 뛰어난 의사만이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扁鵲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ᄒᆞ리’ 다음에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가 이어지므로, 화자의 병은 임 때문에 생긴 상사병이라 의술로는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 ⓐ는 ‘연지분 있지만 누구를 위해 곱게 할까’라는 뜻으로, 임이 없으니 치장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 ⓑ는 원앙금을 베어 오색실로 임의 옷을 지어 내는 정성이다.
- ⓒ는 꿈에서라도 임을 보려고 턱을 받치고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바늘처럼 / 비는 또 내 / 얼굴에 꽂힌다’의 비는 화자를 찌르고 묶는 고통과 단죄의 이미지로, 나머지 셋의 긍정적인 비와 이질적이다.
‘죄인처럼 묶여’, ‘단죄’라는 시어에서 비는 화자를 벌하는 부정적 대상이다.
-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의 비는 ‘남모를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반가운 존재이다.
- ‘시름없이 내리는 비’는 떠나려는 임을 붙잡아 주기를 바라는 ‘반가운 빗소리’이다.
- ‘고요한 노래를 불러’ 황혼을 데려오는 비는 창밖에서 종알거리는 정다운 존재이다.
현대 사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재화를 생산하고 이를 판매・소비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고, 사회의 복잡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함에 따라 위험과 불확실성이 커졌다. 다양한 정보 통신 기술이 정보와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를 혁신적으로 바꾸면서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상호 의존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커다란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인문학은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그 실질적인 지침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핵심은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 인문학적 사유가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치밀하고도 분석적인 정신노동이며, 훈련과 교육을 통해 개발된다. 인문학 교육은 이러한 습관을 학생들이 체득하도록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업 과정에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업이 독서와 토론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학생들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글을 읽고,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을 제시해 보고, 자신의 견해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청취할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인문학적 사유의 훈련을 위해서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 그에 대한 전문가의 비판과 평가를 받아 보는 경험도 무척 중요하다. 추상적인 인문학의 주제와 실제 세상에서의 중요한 문제들 사이에 관련을 맺어 줌으로써 인문학 수업은 더욱더 흥미로워질 수 있다.
(나) 제너럴 모터스의 회장이었던 로저 스미스(Roger Smith)는 인문학 교육의 예찬론자였다. 그는 인문학 교육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혁신의 기본 요소인 창조성을 높이 평가하는 안목을 키워 주며,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게 함으로써 대인 관계에 도움이 되고, 질적으로 우수한 것에 대한 존경심을 키워 준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전혀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를 볼 줄 알고, 이렇게 서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배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예술과 문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에서 배양하는 능력이며, 바로 이것이 ‘성공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 요즘과 같은 기업 경영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능력”이라고 역설했다.
(다) 그런데 많은 인문 학자들은 현대 기술이나 기업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들은 기술이 시장 지향적이며 몰가치적이고 피상적임에 비해, 인문학은 인간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며 근본적이라는 식으로 기술과 인문학을 ( ㉠ )하곤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응용 학문에서 추구하는 ‘실용’과 무관한 ‘순수’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을 위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지식과 문화가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금, 순수와 응용의 경직된 구분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고 학문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라)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적 사유의 ‘실용성’(확장된 의미로서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문학이 자본 앞에 굴복하는 것도,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에 항복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의 ‘실용성’을 밝히고 이를 교육에 적극 도입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고, 이는 바로 인문학의 본령(本領)과 직결된다. 인문학이 해석하는 세상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가)~(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다)는 화제를 전환한 것이 아니라, 일부 인문학자들의 통념을 제시하고 이를 반박하는 부분이므로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인문학이 … ‘순수’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을 위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에서 보듯 화제는 여전히 인문학의 실용성이다.
- (가)는 인문학적 사유를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등으로 구체화한다.
- (나)는 로저 스미스의 말을 인용해 인문학적 능력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 (라)는 인문학의 ‘실용성’을 적극 연구해야 한다고 논지를 정리하며 글의 의도를 드러낸다.
현대 사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재화를 생산하고 이를 판매・소비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고, 사회의 복잡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함에 따라 위험과 불확실성이 커졌다. 다양한 정보 통신 기술이 정보와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를 혁신적으로 바꾸면서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상호 의존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커다란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인문학은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그 실질적인 지침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핵심은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 인문학적 사유가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치밀하고도 분석적인 정신노동이며, 훈련과 교육을 통해 개발된다. 인문학 교육은 이러한 습관을 학생들이 체득하도록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업 과정에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업이 독서와 토론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학생들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글을 읽고,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을 제시해 보고, 자신의 견해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청취할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인문학적 사유의 훈련을 위해서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 그에 대한 전문가의 비판과 평가를 받아 보는 경험도 무척 중요하다. 추상적인 인문학의 주제와 실제 세상에서의 중요한 문제들 사이에 관련을 맺어 줌으로써 인문학 수업은 더욱더 흥미로워질 수 있다.
(나) 제너럴 모터스의 회장이었던 로저 스미스(Roger Smith)는 인문학 교육의 예찬론자였다. 그는 인문학 교육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혁신의 기본 요소인 창조성을 높이 평가하는 안목을 키워 주며,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게 함으로써 대인 관계에 도움이 되고, 질적으로 우수한 것에 대한 존경심을 키워 준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전혀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를 볼 줄 알고, 이렇게 서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배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예술과 문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에서 배양하는 능력이며, 바로 이것이 ‘성공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 요즘과 같은 기업 경영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능력”이라고 역설했다.
(다) 그런데 많은 인문 학자들은 현대 기술이나 기업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들은 기술이 시장 지향적이며 몰가치적이고 피상적임에 비해, 인문학은 인간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며 근본적이라는 식으로 기술과 인문학을 ( ㉠ )하곤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응용 학문에서 추구하는 ‘실용’과 무관한 ‘순수’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을 위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지식과 문화가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금, 순수와 응용의 경직된 구분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고 학문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라)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적 사유의 ‘실용성’(확장된 의미로서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문학이 자본 앞에 굴복하는 것도,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에 항복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의 ‘실용성’을 밝히고 이를 교육에 적극 도입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고, 이는 바로 인문학의 본령(本領)과 직결된다. 인문학이 해석하는 세상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면접시험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한 것이다. 위 글의 논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글의 논지에 맞는 답변은 인문학 스스로 삶과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인문학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고, ‘인문학이 해석하는 세상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세상’이라며 현실과의 관련을 강조한다.
- 인문학 고유의 전통 계승은 순수와 응용을 경직되게 구분하는 태도에 가까워 글쓴이가 비판하는 쪽이다.
- 연구자 고용·지원책은 글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이다.
- 경제적 가치 창출은 ‘인문학이 자본 앞에 굴복하는 것도’ 아니라는 글쓴이의 확장된 실용성 개념과 어긋난다.
현대 사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재화를 생산하고 이를 판매・소비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고, 사회의 복잡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함에 따라 위험과 불확실성이 커졌다. 다양한 정보 통신 기술이 정보와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를 혁신적으로 바꾸면서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상호 의존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커다란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인문학은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그 실질적인 지침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핵심은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 인문학적 사유가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치밀하고도 분석적인 정신노동이며, 훈련과 교육을 통해 개발된다. 인문학 교육은 이러한 습관을 학생들이 체득하도록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업 과정에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업이 독서와 토론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학생들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글을 읽고,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을 제시해 보고, 자신의 견해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청취할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인문학적 사유의 훈련을 위해서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 그에 대한 전문가의 비판과 평가를 받아 보는 경험도 무척 중요하다. 추상적인 인문학의 주제와 실제 세상에서의 중요한 문제들 사이에 관련을 맺어 줌으로써 인문학 수업은 더욱더 흥미로워질 수 있다.
(나) 제너럴 모터스의 회장이었던 로저 스미스(Roger Smith)는 인문학 교육의 예찬론자였다. 그는 인문학 교육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혁신의 기본 요소인 창조성을 높이 평가하는 안목을 키워 주며,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게 함으로써 대인 관계에 도움이 되고, 질적으로 우수한 것에 대한 존경심을 키워 준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전혀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를 볼 줄 알고, 이렇게 서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배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예술과 문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에서 배양하는 능력이며, 바로 이것이 ‘성공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 요즘과 같은 기업 경영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능력”이라고 역설했다.
(다) 그런데 많은 인문 학자들은 현대 기술이나 기업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들은 기술이 시장 지향적이며 몰가치적이고 피상적임에 비해, 인문학은 인간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며 근본적이라는 식으로 기술과 인문학을 ( ㉠ )하곤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응용 학문에서 추구하는 ‘실용’과 무관한 ‘순수’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을 위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지식과 문화가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금, 순수와 응용의 경직된 구분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고 학문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라)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적 사유의 ‘실용성’(확장된 의미로서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문학이 자본 앞에 굴복하는 것도,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에 항복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의 ‘실용성’을 밝히고 이를 교육에 적극 도입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고, 이는 바로 인문학의 본령(本領)과 직결된다. 인문학이 해석하는 세상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에는 둘로 나눈다는 뜻의 양분(兩分)이 들어가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기술은 ‘몰가치적이고 피상적’, 인문학은 ‘가치 지향적이며 근본적’이라고 하여 기술과 인문학을 대립되는 두 쪽으로 나누고 있다.
- 분류(分類)는 여러 대상을 기준에 따라 종류별로 나누는 것이다.
- 분석(分析)은 복잡한 것을 요소로 풀어 따지는 것이다.
- 세분(細分)은 여러 갈래로 자세히 잘게 나누는 것이다.
| (가) 편견은 집단 간의 정상적인 관계를 저해하고 갈등을 조장하며 때로는 중대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므로, 이를 타파하기 위한 여러 가지 연구들이 사회 심리학자들에 의해 행해져 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인종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므로, 이를 완화시키기 위한 조건 분석과 시책에 관한 실천적 연구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나) 편견은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된 것으로, 특히 유년기와 소년기에 학습하게 된 편견은 평생을 통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편견을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 치유책 중의 하나는 어린 시기부터 사회화 기구 특히 가족이 솔선해서 아동들에게 편견을 주입시키지 않고 교육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편견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설득력에 있어 대중매체는 개인적 접촉보다는 효과가 미약하다. 하지만 인종 편견적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영화가 강연의 효과보다 훨씬 더 영속성이 있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다) 편견을 줄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으로 타 집단 성원과의 접촉을 들 수 있다. 접촉가설에 의하면 상이한 집단들 간의 접촉은 집단 상호간에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질적인 집단 성원들과의 접촉은 편견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고정 관념에 의한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상이한 자극 대상과의 익숙함은 자극 대상에 대해 보다 우호적인 태도를 낳는다는 것이다. (라) 이처럼 편견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모든 상황에서 원만하게 실현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법률 제정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많은 나라들에서 인종, 성, 종교, 나이,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요인들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법률을 입법화하는 것도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이다. (마) 차별을 비합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면 소수 집단 성원들의 삶에 있어 편견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소수집단에 대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 심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유해한 영향력을 미치거나 그들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행위 등이 억제될 수 있다. 물론 차별에 반대하는 입법화가 차별 그 자체를 근절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차별 행위의 빈도와 가혹함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
| (바) 뿐만 아니라 법률 제정은 사회 규범을 재수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서 법의 제정은 어떤 종류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며 또 어떤 종류의 행동이 수용되지 않는지를 규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편견을 지닌 개인의 차별적 행동이 규범에 위반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믿는다면, 개인들은 쉽사리 그러한 행동을 자행하기 어렵다. (사) 법에 동조함으로써 차별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편견 없는 태도를 내면화하도록 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차별을 하지 않는 행위가 하나의 습성처럼 일상적이 된다면 법의 제재는 약해지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차별 행위를 피하게 된다. 따라서 편견 없는 태도를 내면화시키기 위해서는 차별 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
위 글을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눈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이 글은 (가) / (나)(다) / (라)(마)(바)(사)의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가)는 편견 타파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도입이고, (나)(다)는 가정 교육·대중매체·타 집단과의 접촉 같은 개인적·사회적 완화 방법을 다룬다. (라)부터는 ‘법률 제정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조치’와 그 효과를 다룬다.
- (가)(나), (다)(라), (마)(바)(사)로 나누면 문제 제기와 사회화 교육이 섞이고, 접촉가설과 법률 제정이 한 부분이 된다.
- (가), (나)(다)(라), (마)(바)(사)로 나누면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라)가 그 효과를 다룬 (마)~(사)와 분리된다.
- (가)(나), (다)(라)(마), (바)(사)로 나누면 도입과 사회화 교육이 섞이고, 법률 제정 논의가 (마)와 (바) 사이에서 끊긴다.
| (가) 편견은 집단 간의 정상적인 관계를 저해하고 갈등을 조장하며 때로는 중대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므로, 이를 타파하기 위한 여러 가지 연구들이 사회 심리학자들에 의해 행해져 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인종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므로, 이를 완화시키기 위한 조건 분석과 시책에 관한 실천적 연구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나) 편견은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된 것으로, 특히 유년기와 소년기에 학습하게 된 편견은 평생을 통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편견을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 치유책 중의 하나는 어린 시기부터 사회화 기구 특히 가족이 솔선해서 아동들에게 편견을 주입시키지 않고 교육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편견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설득력에 있어 대중매체는 개인적 접촉보다는 효과가 미약하다. 하지만 인종 편견적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영화가 강연의 효과보다 훨씬 더 영속성이 있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다) 편견을 줄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으로 타 집단 성원과의 접촉을 들 수 있다. 접촉가설에 의하면 상이한 집단들 간의 접촉은 집단 상호간에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질적인 집단 성원들과의 접촉은 편견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고정 관념에 의한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상이한 자극 대상과의 익숙함은 자극 대상에 대해 보다 우호적인 태도를 낳는다는 것이다. (라) 이처럼 편견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모든 상황에서 원만하게 실현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법률 제정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많은 나라들에서 인종, 성, 종교, 나이,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요인들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법률을 입법화하는 것도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이다. (마) 차별을 비합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면 소수 집단 성원들의 삶에 있어 편견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소수집단에 대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 심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유해한 영향력을 미치거나 그들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행위 등이 억제될 수 있다. 물론 차별에 반대하는 입법화가 차별 그 자체를 근절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차별 행위의 빈도와 가혹함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
| (바) 뿐만 아니라 법률 제정은 사회 규범을 재수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서 법의 제정은 어떤 종류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며 또 어떤 종류의 행동이 수용되지 않는지를 규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편견을 지닌 개인의 차별적 행동이 규범에 위반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믿는다면, 개인들은 쉽사리 그러한 행동을 자행하기 어렵다. (사) 법에 동조함으로써 차별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편견 없는 태도를 내면화하도록 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차별을 하지 않는 행위가 하나의 습성처럼 일상적이 된다면 법의 제재는 약해지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차별 행위를 피하게 된다. 따라서 편견 없는 태도를 내면화시키기 위해서는 차별 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
위 글에서 언급한 법의 기능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개인이 입은 손해나 피해를 구제하는 기능은 글에 언급되지 않았다.
글은 차별 금지 법률이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기능만 다루며, 피해자 구제에 대한 진술은 없다.
- (바)의 ‘어떤 종류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며 … 수용되지 않는지를 규정’은 옳고 그른 행위의 기준 제시에 해당한다.
- (사)의 ‘차별을 하지 않는 행위가 하나의 습성처럼 일상적이 된다면’은 규범의 습관화·내면화에 해당한다.
- (마)의 차별 행위가 억제되고 ‘빈도와 가혹함을 감소’시킨다는 내용은 제재를 통한 질서 유지에 해당한다.
‘봉숭화’는 비표준어이며, 표준어는 ‘봉숭아’ 또는 ‘봉선화(鳳仙花)’이다.
‘봉숭아’와 한자어 ‘봉선화’가 함께 표준어로 쓰이며, 둘을 섞은 ‘봉숭화’는 인정되지 않는다.
- ‘냄비’는 ‘ㅣ’ 역행 동화가 일어난 형태를 예외적으로 표준어로 삼은 말이며, ‘남비’는 비표준어이다.
- ‘아지랑이’가 표준어이고 ‘아지랭이’는 비표준어이다.
- ‘천장(天障)’이 표준어이고 ‘천정’은 비표준어이다.
| <앞부분의 줄거리> 명나라 때, 어린 장국진은 달마국의 침입으로 부모를 잃는다. 죽을 고비에서 청의동자의 도움을 받아 여학도사의 제자가 되어 도술을 배운다. 그 후 장원 급제하여 천자의 도움으로 계양과 혼인하고, 병부상서 유봉의 딸과도 혼인을 한다. 천자가 승하한 뒤 이참의 참소로 유배를 가다가 달마국에 잡혀 죽을 고비를 맞는다. 며칠이 지나도 국진의 신병은 조금도 차도가 없으니, 이 위급함을 무엇으로 해결하여야 한단 말인가. 이때 어려서부터 닦아 온 천문지리가 누구보다 능통한 이 부인이 천기를 보고 있던 터라, 남편의 이런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라. 더욱이 옆에 있던 유 부인 역시 남편의 위험에 애통해하니, 장 승상이나 왕씨도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울 따름이더라. 육도삼략과 손오 병법에도 능통한 이 부인은 생각 끝에 결연히 일어서더니, 달마국 전장으로 달려가 병을 앓는 남편을 구하고 이 싸움을 결단 지으리라 결심하더라. 이 부인은 즉시 남장을 하고 머리에 용인 투구를 쓰고, 몸에 청사 전포를 입고, 왼손에 비린도, 오른손에 홀기를 들고는, 시부모와 유 부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필마단기로 달마국을 향하여 집을 떠나더라. 유 부인은 멀리 전송을 나와 이 부인의 전도를 근심하며, 봉서 한 통과 바늘 한 쌍을 이 부인에게 내어 주더라. |
그리고 이 부인에게 말하되,
“이것을 가지고 동정호 물 건널 제 물에 던지면 용왕 부인이 청할 것이니, 들어가 보옵소서, 동정호 용왕은 첩의 전생 부모이니 부모가 보오면 반가워할 터요, 이제 가장 좋은 선약(仙藥)을 얻어 가야 승상의 목숨을 구할 것이오. 다음은 선녀 한 쌍을 얻어 가야 천원 왕과 달마 왕을 잡으리다.”
하니, 이 부인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질풍처럼 달리더라.
동정호에 왔을 때 이 부인은 유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여 용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자, 용왕 내외가 반가워하며 만년주(萬年酒)를 권하더라. 그리고는 유 부인의 말대로 선약과 선녀 한 쌍을 이 부인에게 내리시며,
“천원 왕과 달마 왕은 욕이나 뵈옵되 죽이지는 마옵소서. 두 사람은 천상 선관으로 인간에 적거(謫居)하였으니, 만일 죽이면 일후에 원(怨)이 되리라.”
하고 교시하더라.
또한 용왕 부인은 선녀들에게 분부하여 이 부인을 잘 모시고 가서 공을 이루라고 특별히 당부하더라. 이렇게 하여 이 부인은 용궁에서 나와 전장으로 질풍같이 달려가니, 마음이 든든하기만 하더라.
이 때 명나라 진영은 적병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고 있었으며, 진문은 열지 않고 굳게 닫혀 있었으니, 적병은 이것을 깨칠 속셈으로 그 준비에 분주하더라.
이를 본 이 부인은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으니, 투구를 고쳐 쓰고, 비린도를 높이 들어 만리청총마의 고삐를 바싹 쥐어 잡고, 좌우에 따라온 선녀들은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하라고 분부하고 즉시 급하게 채찍질을 하니, 만리청총마는 화살처럼 적의 포위를 일직선으로 밟아 넘어서며 명나라 진문으로 향하여 달리더라.
적병들은 이 돌발적인 사태를 만나 몹시 어리둥절할 뿐이더라. 난데없이 천지에 소나기가 퍼붓고 번갯불과 천둥이 무섭게 진동하니 어느 누구라도 공포 속에서 정신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적병들이라고 해서 무섭지 않으랴. 그들은 이 사태를 운명에 맡길 뿐이더라. 아무리 비린도가 머리 위에서 번쩍번쩍하여도 그들은 다만 그것을 바라보며 쓰러질 따름이더라. 만리청총마는 그들을 갈대밭을 헤치듯 신속하게 통과하더라. 적장들은 이 하늘에서 떨어진 무서운 천신이 명나라 군의 진문으로 향하여 달리는 것을 그대로 바라볼 뿐이더라.
적진은 삽시간에 시체가 산을 이루니, 이에 번갯불과 천둥에 놀라 얼굴을 숨긴 이들이 얼굴을 들었을 때는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하더라.
이 부인은 의병장 이 모(李某)라고 자기를 밝히며 명나라 진영으로 인도되니, 선봉장은 진문을 열어 대원수의 격분을 사지나 않을까 겁을 내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국진 역시 의병장을 서둘러 맞아들이라고 분부하더라.
그의 병세는 몹시 위중하더라. 그는 누운 채 손짓으로 명령할 뿐이더라. 이 부인은 그곳으로 달려가되, 눈물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깨물어야 할 정도더라. 더구나 자신을 감추고 이 모(李某)라고 알리는 데에는 눈물 못지않는 인내가 필요하더라.
-작자미상,「장국진전」
위 글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적군은 이 부인의 등장으로 매우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적병들은 이 돌발적인 사태를 만나 몹시 어리둥절할 뿐이더라’, ‘어느 누구라도 공포 속에서 정신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에서 확인된다.
- 유 부인은 봉서와 바늘을 건네 이 부인을 도울 뿐,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은 없다.
- 이 부인이 ‘자신을 감추고 이 모(李某)라고 알리는’ 상황이므로 국진이 아내를 알아보고 감동하는 장면은 없다.
- ‘동정호 용왕은 첩의 전생 부모’라는 말은 유 부인의 말이므로, 용왕은 이 부인이 아니라 유 부인의 전생 부모이다.
| <앞부분의 줄거리> 명나라 때, 어린 장국진은 달마국의 침입으로 부모를 잃는다. 죽을 고비에서 청의동자의 도움을 받아 여학도사의 제자가 되어 도술을 배운다. 그 후 장원 급제하여 천자의 도움으로 계양과 혼인하고, 병부상서 유봉의 딸과도 혼인을 한다. 천자가 승하한 뒤 이참의 참소로 유배를 가다가 달마국에 잡혀 죽을 고비를 맞는다. 며칠이 지나도 국진의 신병은 조금도 차도가 없으니, 이 위급함을 무엇으로 해결하여야 한단 말인가. 이때 어려서부터 닦아 온 천문지리가 누구보다 능통한 이 부인이 천기를 보고 있던 터라, 남편의 이런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라. 더욱이 옆에 있던 유 부인 역시 남편의 위험에 애통해하니, 장 승상이나 왕씨도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울 따름이더라. 육도삼략과 손오 병법에도 능통한 이 부인은 생각 끝에 결연히 일어서더니, 달마국 전장으로 달려가 병을 앓는 남편을 구하고 이 싸움을 결단 지으리라 결심하더라. 이 부인은 즉시 남장을 하고 머리에 용인 투구를 쓰고, 몸에 청사 전포를 입고, 왼손에 비린도, 오른손에 홀기를 들고는, 시부모와 유 부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필마단기로 달마국을 향하여 집을 떠나더라. 유 부인은 멀리 전송을 나와 이 부인의 전도를 근심하며, 봉서 한 통과 바늘 한 쌍을 이 부인에게 내어 주더라. |
그리고 이 부인에게 말하되,
“이것을 가지고 동정호 물 건널 제 물에 던지면 용왕 부인이 청할 것이니, 들어가 보옵소서, 동정호 용왕은 첩의 전생 부모이니 부모가 보오면 반가워할 터요, 이제 가장 좋은 선약(仙藥)을 얻어 가야 승상의 목숨을 구할 것이오. 다음은 선녀 한 쌍을 얻어 가야 천원 왕과 달마 왕을 잡으리다.”
하니, 이 부인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질풍처럼 달리더라.
동정호에 왔을 때 이 부인은 유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여 용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자, 용왕 내외가 반가워하며 만년주(萬年酒)를 권하더라. 그리고는 유 부인의 말대로 선약과 선녀 한 쌍을 이 부인에게 내리시며,
“천원 왕과 달마 왕은 욕이나 뵈옵되 죽이지는 마옵소서. 두 사람은 천상 선관으로 인간에 적거(謫居)하였으니, 만일 죽이면 일후에 원(怨)이 되리라.”
하고 교시하더라.
또한 용왕 부인은 선녀들에게 분부하여 이 부인을 잘 모시고 가서 공을 이루라고 특별히 당부하더라. 이렇게 하여 이 부인은 용궁에서 나와 전장으로 질풍같이 달려가니, 마음이 든든하기만 하더라.
이 때 명나라 진영은 적병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고 있었으며, 진문은 열지 않고 굳게 닫혀 있었으니, 적병은 이것을 깨칠 속셈으로 그 준비에 분주하더라.
이를 본 이 부인은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으니, 투구를 고쳐 쓰고, 비린도를 높이 들어 만리청총마의 고삐를 바싹 쥐어 잡고, 좌우에 따라온 선녀들은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하라고 분부하고 즉시 급하게 채찍질을 하니, 만리청총마는 화살처럼 적의 포위를 일직선으로 밟아 넘어서며 명나라 진문으로 향하여 달리더라.
적병들은 이 돌발적인 사태를 만나 몹시 어리둥절할 뿐이더라. 난데없이 천지에 소나기가 퍼붓고 번갯불과 천둥이 무섭게 진동하니 어느 누구라도 공포 속에서 정신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적병들이라고 해서 무섭지 않으랴. 그들은 이 사태를 운명에 맡길 뿐이더라. 아무리 비린도가 머리 위에서 번쩍번쩍하여도 그들은 다만 그것을 바라보며 쓰러질 따름이더라. 만리청총마는 그들을 갈대밭을 헤치듯 신속하게 통과하더라. 적장들은 이 하늘에서 떨어진 무서운 천신이 명나라 군의 진문으로 향하여 달리는 것을 그대로 바라볼 뿐이더라.
적진은 삽시간에 시체가 산을 이루니, 이에 번갯불과 천둥에 놀라 얼굴을 숨긴 이들이 얼굴을 들었을 때는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하더라.
이 부인은 의병장 이 모(李某)라고 자기를 밝히며 명나라 진영으로 인도되니, 선봉장은 진문을 열어 대원수의 격분을 사지나 않을까 겁을 내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국진 역시 의병장을 서둘러 맞아들이라고 분부하더라.
그의 병세는 몹시 위중하더라. 그는 누운 채 손짓으로 명령할 뿐이더라. 이 부인은 그곳으로 달려가되, 눈물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깨물어야 할 정도더라. 더구나 자신을 감추고 이 모(李某)라고 알리는 데에는 눈물 못지않는 인내가 필요하더라.
-작자미상,「장국진전」
다음 <보기> 중 위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글쓰기 전략으로 볼 수 있는 것끼리 묶은 것은?
㉠인물의 정체를 추리해 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함.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여 인물의 능력을 강조함.
㉢서술자가 직접 개입하여 인물의 행동이나 상황에 대해 논평함.
㉣전기적 요소를 사용하여 소설의 사실감을 높임.
㉤역순행적 구성을 통해 사건 전개에 입체감을 형성함.
이 글의 글쓰기 전략은 과장된 표현으로 인물의 능력 강조(㉡)와 서술자의 직접 개입·논평(㉢)이다.
‘적진은 삽시간에 시체가 산을 이루니’, ‘갈대밭을 헤치듯’은 이 부인의 능력을 과장해 드러내고, ‘이 위급함을 무엇으로 해결하여야 한단 말인가’, ‘적병들이라고 해서 무섭지 않으랴’는 서술자가 직접 끼어든 논평이다.
- ㉠: 독자는 의병장 ‘이 모’가 이 부인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으므로 정체를 추리하는 과정이 없다.
- ㉣: 용궁·선녀·선약 같은 전기적 요소는 비현실성을 드러낼 뿐 사실감을 높이지 않는다.
- ㉤: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순행적 구성이다.
| <앞부분의 줄거리> 명나라 때, 어린 장국진은 달마국의 침입으로 부모를 잃는다. 죽을 고비에서 청의동자의 도움을 받아 여학도사의 제자가 되어 도술을 배운다. 그 후 장원 급제하여 천자의 도움으로 계양과 혼인하고, 병부상서 유봉의 딸과도 혼인을 한다. 천자가 승하한 뒤 이참의 참소로 유배를 가다가 달마국에 잡혀 죽을 고비를 맞는다. 며칠이 지나도 국진의 신병은 조금도 차도가 없으니, 이 위급함을 무엇으로 해결하여야 한단 말인가. 이때 어려서부터 닦아 온 천문지리가 누구보다 능통한 이 부인이 천기를 보고 있던 터라, 남편의 이런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라. 더욱이 옆에 있던 유 부인 역시 남편의 위험에 애통해하니, 장 승상이나 왕씨도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울 따름이더라. 육도삼략과 손오 병법에도 능통한 이 부인은 생각 끝에 결연히 일어서더니, 달마국 전장으로 달려가 병을 앓는 남편을 구하고 이 싸움을 결단 지으리라 결심하더라. 이 부인은 즉시 남장을 하고 머리에 용인 투구를 쓰고, 몸에 청사 전포를 입고, 왼손에 비린도, 오른손에 홀기를 들고는, 시부모와 유 부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필마단기로 달마국을 향하여 집을 떠나더라. 유 부인은 멀리 전송을 나와 이 부인의 전도를 근심하며, 봉서 한 통과 바늘 한 쌍을 이 부인에게 내어 주더라. |
그리고 이 부인에게 말하되,
“이것을 가지고 동정호 물 건널 제 물에 던지면 용왕 부인이 청할 것이니, 들어가 보옵소서, 동정호 용왕은 첩의 전생 부모이니 부모가 보오면 반가워할 터요, 이제 가장 좋은 선약(仙藥)을 얻어 가야 승상의 목숨을 구할 것이오. 다음은 선녀 한 쌍을 얻어 가야 천원 왕과 달마 왕을 잡으리다.”
하니, 이 부인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질풍처럼 달리더라.
동정호에 왔을 때 이 부인은 유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여 용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자, 용왕 내외가 반가워하며 만년주(萬年酒)를 권하더라. 그리고는 유 부인의 말대로 선약과 선녀 한 쌍을 이 부인에게 내리시며,
“천원 왕과 달마 왕은 욕이나 뵈옵되 죽이지는 마옵소서. 두 사람은 천상 선관으로 인간에 적거(謫居)하였으니, 만일 죽이면 일후에 원(怨)이 되리라.”
하고 교시하더라.
또한 용왕 부인은 선녀들에게 분부하여 이 부인을 잘 모시고 가서 공을 이루라고 특별히 당부하더라. 이렇게 하여 이 부인은 용궁에서 나와 전장으로 질풍같이 달려가니, 마음이 든든하기만 하더라.
이 때 명나라 진영은 적병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고 있었으며, 진문은 열지 않고 굳게 닫혀 있었으니, 적병은 이것을 깨칠 속셈으로 그 준비에 분주하더라.
이를 본 이 부인은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으니, 투구를 고쳐 쓰고, 비린도를 높이 들어 만리청총마의 고삐를 바싹 쥐어 잡고, 좌우에 따라온 선녀들은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하라고 분부하고 즉시 급하게 채찍질을 하니, 만리청총마는 화살처럼 적의 포위를 일직선으로 밟아 넘어서며 명나라 진문으로 향하여 달리더라.
적병들은 이 돌발적인 사태를 만나 몹시 어리둥절할 뿐이더라. 난데없이 천지에 소나기가 퍼붓고 번갯불과 천둥이 무섭게 진동하니 어느 누구라도 공포 속에서 정신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적병들이라고 해서 무섭지 않으랴. 그들은 이 사태를 운명에 맡길 뿐이더라. 아무리 비린도가 머리 위에서 번쩍번쩍하여도 그들은 다만 그것을 바라보며 쓰러질 따름이더라. 만리청총마는 그들을 갈대밭을 헤치듯 신속하게 통과하더라. 적장들은 이 하늘에서 떨어진 무서운 천신이 명나라 군의 진문으로 향하여 달리는 것을 그대로 바라볼 뿐이더라.
적진은 삽시간에 시체가 산을 이루니, 이에 번갯불과 천둥에 놀라 얼굴을 숨긴 이들이 얼굴을 들었을 때는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하더라.
이 부인은 의병장 이 모(李某)라고 자기를 밝히며 명나라 진영으로 인도되니, 선봉장은 진문을 열어 대원수의 격분을 사지나 않을까 겁을 내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국진 역시 의병장을 서둘러 맞아들이라고 분부하더라.
그의 병세는 몹시 위중하더라. 그는 누운 채 손짓으로 명령할 뿐이더라. 이 부인은 그곳으로 달려가되, 눈물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깨물어야 할 정도더라. 더구나 자신을 감추고 이 모(李某)라고 알리는 데에는 눈물 못지않는 인내가 필요하더라.
-작자미상,「장국진전」
다음 <보기>는 위 글의 공간적 배경과 사건을 정리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감상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공간의 변화] [사 건]
공간1 장국진의 위급함을 가족들이 알게 됨
공간2 이 부인이 용궁으로 가 용왕을 만남
공간3 이 부인이 명나라 진영으로 가 적군을 무찌름
이 부인은 공간 1에서 유 부인에게 받은 봉서와 바늘 덕분에 공간 2인 용궁으로 갈 수 있었다.
유 부인이 ‘이것을 가지고 동정호 물 건널 제 물에 던지면 용왕 부인이 청할 것’이라 했고, 이 부인은 ‘유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여 용궁에 인도’되었다.
- 이 부인은 꿈이 아니라 ‘천기를 보고’ 남편의 위기를 알았다.
- 용왕에게 받은 선약과 선녀는 남편을 구하고 적을 잡기 위한 것이지 남편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 국진이 의병장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근거는 없고, 오히려 이 부인이 자신을 감추고 있다.
자립명사는 일반적으로 조사와 자유롭게 결합되지만, 일부 자립명사들은 조사와 결합될 때 상당한 제약이 있어, 하나 또는 몇몇의 조사만을 취하게 된다
‘형식’은 조사와 자유롭게 결합하는 일반 자립명사이므로 일부 자립명사의 예로 보기 어렵다.
‘형식이, 형식을, 형식도, 형식에’처럼 여러 조사를 두루 취한다. 반면 일부 자립명사는 하나 또는 몇몇 조사만 취한다.
- ‘마찬가지’는 주로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처럼 서술격 조사나 ‘로’ 정도와만 어울린다.
- ‘불가분’은 주로 ‘불가분의’ 꼴로만 쓰인다.
- ‘불굴’도 주로 ‘불굴의’ 꼴로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