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셔경(西京)이 아즐가 셔경이 셔울히 마르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닷곤ᄃᆡ 아즐가 닷곤ᄃᆡ 쇼셩경 고ᄋᆈ마른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여ᄒᆡ므론 아즐가 여ᄒᆡ므론 질삼뵈 ᄇᆞ리시고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괴시란ᄃᆡ 아즐가 괴시란ᄃᆡ 우러곰 좃니노이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구스리 아즐가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긴히ᄯᆞᆫ 아즐가 긴힛ᄯᆞᆫ 그츠리잇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즈믄 ᄒᆡ를 아즐가 즈믄 ᄒᆡ를 외오곰 녀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신(信)잇ᄃᆞᆫ 아즐가 신잇ᄃᆞᆫ 그츠리잇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 너븐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내여 아즐가 ᄇᆡ 내여 노ᄒᆞᆫ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녈 ᄇᆡ예 아즐가 녈 ᄇᆡ예 연즌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건너편 고즐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타들면 아즐가 ᄇᆡ 타들면 것고리이다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 작자 미상, ‘서경별곡(西京別曲)’ -
(나)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던가
이시라 ᄒᆞ더면 가랴마ᄂᆞᆫ 제 구ᄐᆡ야
보내고 그리ᄂᆞᆫ 정(情)은 나도 몰라 ᄒᆞ노라
- 황진이 -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가)와 (나)는 모두 의문형 어미를 활용해 화자의 심정을 드러낸다.
(가)는 ‘긴힛ᄯᆞᆫ 그츠리잇가’, ‘신잇ᄃᆞᆫ 그츠리잇가’로 변함없는 사랑을 강조하고, (나)는 ‘그릴 줄을 모로던가’로 임을 보낸 뒤의 회한을 드러낸다.
- 시어 반복으로 리듬감을 만드는 것은 후렴과 어구 반복이 두드러진 (가)의 특징일 뿐, (나)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 상징적 소재로 상황을 부각하는 것은 ‘구슬’과 ‘끈’, ‘대동강’과 ‘배’가 쓰인 (가)에 해당하며, (나)에는 그런 소재가 없다.
(가) 셔경(西京)이 아즐가 셔경이 셔울히 마르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닷곤ᄃᆡ 아즐가 닷곤ᄃᆡ 쇼셩경 고ᄋᆈ마른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여ᄒᆡ므론 아즐가 여ᄒᆡ므론 질삼뵈 ᄇᆞ리시고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괴시란ᄃᆡ 아즐가 괴시란ᄃᆡ 우러곰 좃니노이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구스리 아즐가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긴히ᄯᆞᆫ 아즐가 긴힛ᄯᆞᆫ 그츠리잇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즈믄 ᄒᆡ를 아즐가 즈믄 ᄒᆡ를 외오곰 녀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신(信)잇ᄃᆞᆫ 아즐가 신잇ᄃᆞᆫ 그츠리잇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 너븐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내여 아즐가 ᄇᆡ 내여 노ᄒᆞᆫ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녈 ᄇᆡ예 아즐가 녈 ᄇᆡ예 연즌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건너편 고즐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타들면 아즐가 ᄇᆡ 타들면 것고리이다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 작자 미상, ‘서경별곡(西京別曲)’ -
(나)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던가
이시라 ᄒᆞ더면 가랴마ᄂᆞᆫ 제 구ᄐᆡ야
보내고 그리ᄂᆞᆫ 정(情)은 나도 몰라 ᄒᆞ노라
- 황진이 -
(가)의 화자와 <보기>의 화자가 만나 나눈 대화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ᄇᆞ리고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 살라 ᄒᆞ고
ᄇᆞ리고 가시리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태평성대
| 잡ᄉᆞ와 두어리마ᄂᆞᄂᆞᆫ 선ᄒᆞ면 아니 올셰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셜온 님 보내ᄋᆞᆸ노니 나ᄂᆞᆫ 가시ᄂᆞᆫ ᄃᆞᆺ 도셔 오쇼셔 나ᄂᆞᆫ 위 증즐가 태평성대 - 가시리 - |
(가)의 화자는 사공에게 임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사공을 원망하므로, 사공에게 임을 잘 모셔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녈 ᄇᆡ예 연즌다 샤공아’에서 화자는 임을 배에 태워 떠나보내는 사공을 탓하며 질투와 원망을 드러낸다.
- 임을 따라가 사랑하겠다는 말은 ‘질삼뵈 ᄇᆞ리시고 괴시란ᄃᆡ 우러곰 좃니노이다’와 맞는다.
- 임이 다시 오지 않을까 봐 보낸다는 말은 <보기>의 ‘선ᄒᆞ면 아니 올셰라’와 맞는다.
- 임이 빨리 돌아오기만 바란다는 말은 <보기>의 ‘가시ᄂᆞᆫ ᄃᆞᆺ 도셔 오쇼셔’와 맞는다.
(가) 셔경(西京)이 아즐가 셔경이 셔울히 마르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닷곤ᄃᆡ 아즐가 닷곤ᄃᆡ 쇼셩경 고ᄋᆈ마른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여ᄒᆡ므론 아즐가 여ᄒᆡ므론 질삼뵈 ᄇᆞ리시고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괴시란ᄃᆡ 아즐가 괴시란ᄃᆡ 우러곰 좃니노이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구스리 아즐가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긴히ᄯᆞᆫ 아즐가 긴힛ᄯᆞᆫ 그츠리잇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즈믄 ᄒᆡ를 아즐가 즈믄 ᄒᆡ를 외오곰 녀신ᄃᆞᆯ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신(信)잇ᄃᆞᆫ 아즐가 신잇ᄃᆞᆫ 그츠리잇가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 너븐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내여 아즐가 ᄇᆡ 내여 노ᄒᆞᆫ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녈 ᄇᆡ예 아즐가 녈 ᄇᆡ예 연즌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건너편 고즐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타들면 아즐가 ᄇᆡ 타들면 것고리이다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 작자 미상, ‘서경별곡(西京別曲)’ -
(나)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던가
이시라 ᄒᆞ더면 가랴마ᄂᆞᆫ 제 구ᄐᆡ야
보내고 그리ᄂᆞᆫ 정(情)은 나도 몰라 ᄒᆞ노라
- 황진이 -
(나)의 화자가 처한 상황과 가장 유사한 것은?
(나)의 화자처럼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처지를 드러낸 것은 ‘ᄆᆞ음이 어린 후ㅣ니’로 시작하는 시조이다.
(나)의 화자는 임을 스스로 보내 놓고 ‘보내고 그리ᄂᆞᆫ 정’에 괴로워한다. ‘ᄆᆞ음이 어린 후ㅣ니’의 화자도 올 리 없는 임을 기다리며 ‘지ᄂᆞᆫ 닙 부ᄂᆞᆫ ᄇᆞ람에 행여 긘가’ 할 만큼 그리움에 젖어 있다.
- ‘추강에 밤이 드니’는 빈 배에 달빛만 싣고 돌아오는 무욕과 탈속의 정서를 노래한 것으로, 임과의 이별과는 관계가 없다.
- ‘청산은 내 뜻이오’는 임(녹수)이 떠나도 변하지 않는 화자의 지조를 강조한 것으로, 임을 보낸 뒤의 후회와 그리움과는 결이 다르다.
- ‘청산리 벽계수ㅣ야’는 떠나려는 상대에게 머물기를 권하는 것으로, 임이 이미 떠난 뒤의 상황이 아니다.
| 뎨 가ᄂᆞᆫ 뎌 각시 본 듯도 ᄒᆞᆫ뎌이고 ㉠천상(天上) 백옥경(白玉京)을 엇디ᄒᆞ야 이별(離別)ᄒᆞ고 ᄒᆡ 다 뎌 져믄 날의 눌을 보라 가시ᄂᆞᆫ고 어와 네여이고 이내 ᄉᆞ셜 드러 보오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ᄒᆞᆫ가마ᄂᆞᆫ 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ᄉᆡ 나도 님을 미더 군ᄠᅳ디 전혀 업서 이ᄅᆡ야 교ᄐᆡ야 어ᄌᆞ러이 ᄒᆞ돗ᄯᅥᆫ디 반기시ᄂᆞᆫ ᄂᆞᆺ비치 녜와 엇디 다ᄅᆞ신고 누어 ᄉᆡᇰ각ᄒᆞ고 니러 안자 혜여ᄒᆞ니 ㉡내 몸의 지은 죄 뫼ᄀᆞ티 ᄡᅡ혀시니 하ᄂᆞᆯ히라 원망ᄒᆞ며 사ᄅᆞᆷ이라 허믈ᄒᆞ랴 셜워 플텨 혜니 조물(造物)의 타시로다 글란 ᄉᆡᇰ각 마오 ᄆᆡ친 일이 이셔이다 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 믈 ᄀᆞᄐᆞᆫ 얼굴이 편ᄒᆞ실 적 몃 날일고 춘한(春寒) 고열(苦熱)은 엇디ᄒᆞ야 디내시며 ㉢추일(秋日) 동천(冬天)은 뉘라셔 뫼셧ᄂᆞᆫ고 죽조반(粥早飯) 조석(朝夕) 뫼 녜와 ᄀᆞᆺ티 셰시ᄂᆞᆫ가 기나긴 밤의 ᄌᆞᆷ은 엇디 자시ᄂᆞᆫ고 님 다히 소식(消息)을 아므려나 아쟈 ᄒᆞ니 오ᄂᆞᆯ도 거의로다 ᄂᆡ일이나 사ᄅᆞᆷ 올가 내 ᄆᆞᄋᆞᆷ 둘 ᄃᆡ 업다 어드러로 가쟛 말고 잡거니 밀거니 놉픈 뫼ᄒᆡ 올라가니 |
| 구롬은 ᄏᆞ니와 안개ᄂᆞᆫ 므ᄉᆞ 일고 산천(山川)이 어둡거니 일월(日月)을 엇디 보며 지척(咫尺)을 모ᄅᆞ거든 천리(千里)ᄅᆞᆯ ᄇᆞ라보랴 ᄎᆞᆯ하리 믈ᄀᆞ의 가 ᄇᆡ길히나 보랴 ᄒᆞ니 ᄇᆞ람이야 믈결이야 어둥졍 된뎌이고 샤공은 어ᄃᆡ 가고 븬 ᄇᆡ만 걸렷ᄂᆞᆫ고 강천(江川)의 혼쟈 셔셔 디ᄂᆞᆫ ᄒᆡᄅᆞᆯ 구버보니 님 다히 소식이 더옥 아득ᄒᆞᆫ뎌이고 모첨(茅簷) ᄎᆞᆫ 자리의 밤듕만 도라오니 반벽청등(半壁靑燈)은 눌 위ᄒᆞ야 ᄇᆞᆯ갓ᄂᆞᆫ고 오ᄅᆞ며 ᄂᆞ리며 헤ᄯᅳ며 바자니니 져근덧 역진(力盡)ᄒᆞ야 풋ᄌᆞᆷ을 잠간 드니 정성(精誠)이 지극ᄒᆞ야 ᄭᅮᆷ의 님을 보니 옥(玉) ᄀᆞᄐᆞᆫ 얼구리 반(半)이나마 늘거셰라 ᄆᆞᄋᆞᆷ의 머근 말ᄉᆞᆷ 슬ᄏᆞ장 ᄉᆞᆲ쟈 ᄒᆞ니 눈믈이 바라 나니 말ᄉᆞᆷ인들 어이ᄒᆞ며 정(情)을 못다 ᄒᆞ야 목이조차 몌여ᄒᆞ니 오뎐된 계성(鷄聲)의 ᄌᆞᆷ은 엇디 ᄭᆡ돗던고 ㉣어와 허사(虛事)로다 이 님이 어ᄃᆡ 간고 결의 니러 안자 창(窓)을 열고 ᄇᆞ라보니 어엿븐 그림재 날 조ᄎᆞᆯ ᄲᅮᆫ이로다 ᄎᆞᆯ하리 싀여디여 ㉮낙월(落月)이나 되야이셔 님 겨신 창(窓) 안ᄒᆡ 번드시 비최리라 각시님 ᄃᆞᆯ이야 ᄏᆞ니와 ㉯구ᄌᆞᆫ비나 되쇼셔 - 정철, ‘속미인곡(續美人曲)’ - |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은 임을 모시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 안부를 걱정하는 표현이다.
㉢의 앞뒤인 ‘춘한 고열은 엇디ᄒᆞ야 디내시며’, ‘기나긴 밤의 ᄌᆞᆷ은 엇디 자시ᄂᆞᆫ고’는 모두 임이 계절과 일상을 어떻게 지내는지 염려하는 말이므로, ㉢도 임에 대한 염려로 읽힌다.
- ㉠은 상대 여인에게 ‘천상 백옥경’을 어찌 이별했느냐고 물어, 상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임을 드러낸다.
- ㉡은 ‘내 몸의 지은 죄’라고 하여 이별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 ㉣은 ‘어와 허사로다’라는 탄식으로 꿈에서 깬 뒤의 허탈함을 드러낸다.
| 뎨 가ᄂᆞᆫ 뎌 각시 본 듯도 ᄒᆞᆫ뎌이고 ㉠천상(天上) 백옥경(白玉京)을 엇디ᄒᆞ야 이별(離別)ᄒᆞ고 ᄒᆡ 다 뎌 져믄 날의 눌을 보라 가시ᄂᆞᆫ고 어와 네여이고 이내 ᄉᆞ셜 드러 보오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ᄒᆞᆫ가마ᄂᆞᆫ 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ᄉᆡ 나도 님을 미더 군ᄠᅳ디 전혀 업서 이ᄅᆡ야 교ᄐᆡ야 어ᄌᆞ러이 ᄒᆞ돗ᄯᅥᆫ디 반기시ᄂᆞᆫ ᄂᆞᆺ비치 녜와 엇디 다ᄅᆞ신고 누어 ᄉᆡᇰ각ᄒᆞ고 니러 안자 혜여ᄒᆞ니 ㉡내 몸의 지은 죄 뫼ᄀᆞ티 ᄡᅡ혀시니 하ᄂᆞᆯ히라 원망ᄒᆞ며 사ᄅᆞᆷ이라 허믈ᄒᆞ랴 셜워 플텨 혜니 조물(造物)의 타시로다 글란 ᄉᆡᇰ각 마오 ᄆᆡ친 일이 이셔이다 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 믈 ᄀᆞᄐᆞᆫ 얼굴이 편ᄒᆞ실 적 몃 날일고 춘한(春寒) 고열(苦熱)은 엇디ᄒᆞ야 디내시며 ㉢추일(秋日) 동천(冬天)은 뉘라셔 뫼셧ᄂᆞᆫ고 죽조반(粥早飯) 조석(朝夕) 뫼 녜와 ᄀᆞᆺ티 셰시ᄂᆞᆫ가 기나긴 밤의 ᄌᆞᆷ은 엇디 자시ᄂᆞᆫ고 님 다히 소식(消息)을 아므려나 아쟈 ᄒᆞ니 오ᄂᆞᆯ도 거의로다 ᄂᆡ일이나 사ᄅᆞᆷ 올가 내 ᄆᆞᄋᆞᆷ 둘 ᄃᆡ 업다 어드러로 가쟛 말고 잡거니 밀거니 놉픈 뫼ᄒᆡ 올라가니 |
| 구롬은 ᄏᆞ니와 안개ᄂᆞᆫ 므ᄉᆞ 일고 산천(山川)이 어둡거니 일월(日月)을 엇디 보며 지척(咫尺)을 모ᄅᆞ거든 천리(千里)ᄅᆞᆯ ᄇᆞ라보랴 ᄎᆞᆯ하리 믈ᄀᆞ의 가 ᄇᆡ길히나 보랴 ᄒᆞ니 ᄇᆞ람이야 믈결이야 어둥졍 된뎌이고 샤공은 어ᄃᆡ 가고 븬 ᄇᆡ만 걸렷ᄂᆞᆫ고 강천(江川)의 혼쟈 셔셔 디ᄂᆞᆫ ᄒᆡᄅᆞᆯ 구버보니 님 다히 소식이 더옥 아득ᄒᆞᆫ뎌이고 모첨(茅簷) ᄎᆞᆫ 자리의 밤듕만 도라오니 반벽청등(半壁靑燈)은 눌 위ᄒᆞ야 ᄇᆞᆯ갓ᄂᆞᆫ고 오ᄅᆞ며 ᄂᆞ리며 헤ᄯᅳ며 바자니니 져근덧 역진(力盡)ᄒᆞ야 풋ᄌᆞᆷ을 잠간 드니 정성(精誠)이 지극ᄒᆞ야 ᄭᅮᆷ의 님을 보니 옥(玉) ᄀᆞᄐᆞᆫ 얼구리 반(半)이나마 늘거셰라 ᄆᆞᄋᆞᆷ의 머근 말ᄉᆞᆷ 슬ᄏᆞ장 ᄉᆞᆲ쟈 ᄒᆞ니 눈믈이 바라 나니 말ᄉᆞᆷ인들 어이ᄒᆞ며 정(情)을 못다 ᄒᆞ야 목이조차 몌여ᄒᆞ니 오뎐된 계성(鷄聲)의 ᄌᆞᆷ은 엇디 ᄭᆡ돗던고 ㉣어와 허사(虛事)로다 이 님이 어ᄃᆡ 간고 결의 니러 안자 창(窓)을 열고 ᄇᆞ라보니 어엿븐 그림재 날 조ᄎᆞᆯ ᄲᅮᆫ이로다 ᄎᆞᆯ하리 싀여디여 ㉮낙월(落月)이나 되야이셔 님 겨신 창(窓) 안ᄒᆡ 번드시 비최리라 각시님 ᄃᆞᆯ이야 ᄏᆞ니와 ㉯구ᄌᆞᆫ비나 되쇼셔 - 정철, ‘속미인곡(續美人曲)’ - |
㉮와 ㉯를 비교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다 ㉯가 임에 대한 적극적 사랑을 드러내는 소재이다.
‘낙월’은 ‘님 겨신 창 안ᄒᆡ 번드시 비최리라’처럼 멀리서 임을 비추기만 하지만, ‘구ᄌᆞᆫ비’는 임에게 직접 내려 닿을 수 있어 더 적극적인 사랑의 방식이 된다.
- 두 소재는 임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라도 임 곁에 가고 싶은 소망을 담고 있다.
- 두 소재는 임에게 다가가려는 매개이지, 임과 화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 ‘낙월’이 소망의 실현 불가능성을 드러낸다고 볼 근거는 없으며, 두 소재 모두 소망의 표현이다.
| (가)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
(나)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보기>를 참고하였을 때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신동엽은 4․19 혁명에 대하여 남다른 집념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힐 수 있었던 것도 4․19 정신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는 바로 4․19 정신의 정수로부터 획득한 이념적 힘을 형상화한 작품이며, 우리가 성취해야 할 민족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현실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1960년대 참여 문학의 대표작이며, 이후 민중 민족 문학의 이정표 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3
※ 법원행정처 확정정답이 복수정답(②③)으로 공개된 문항입니다. 실제 시험에서는 ②③ 모두 정답 처리되었습니다.
| (가)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
(나)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나)의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화자가 이 세상 밖을 지향하는 까닭은 이 세상의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모습 때문이다.
영화 시작 전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는 장면은 개인에게 강요되는 획일성을 보여 주며, 화자는 이를 벗어나 새떼처럼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고 바란다.
- ‘삼천리 화려 강산’은 반어적으로 쓰인 것이고, 새떼를 비웃는 것도 아니므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계기가 된다는 해석은 맞지 않는다.
- 화자가 자리에 앉는 것은 삶을 지키려는 선택이 아니라 ‘주저앉는다’에서 보듯 떠나지 못하는 좌절이다.
- 이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새떼가 남은 화자를 부러워한다는 내용은 없고, 오히려 화자가 새떼를 부러워한다.
| (가)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
(나)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가)와 (나)의 화자가 만나 나눈 대화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나)의 화자가 남아서 부정적 현실과 맞서 싸우겠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나)의 화자는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 주저앉는다.’로 끝나, 현실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맞서지도 못하는 좌절과 무력감을 드러낸다.
- (가)가 부정적 대상을 제거하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고’와 맞는다.
- (나)가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다고 하는 말은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과 맞는다.
- (가)가 지금 이곳에서의 극복을 강조하는 말은 ‘이곳에선’, ‘한라에서 백두까지’와 맞는다.
(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눈’ -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두 시는 모두 화자가 지향하는 가치를 구체적 행위를 통해 드러낸다.
(가)는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는 기다림으로 아름다움(모란)에 대한 소망을, (나)는 ‘기침을 하자’, ‘가래라도 / 마음껏 뱉자’로 순수한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 처음과 끝을 상응시키는 수미상관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가)에만 해당한다.
- 문장 구조가 점차 확대되는 것은 ‘눈은 살아 있다 →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처럼 (나)에만 나타난다.
- 두 시 모두 선명한 색채 대비로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는다.
(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눈’ -
㉠과 ㉡을 비교하여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봄’은 ㉡ ‘밤’과 달리 화자에게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가)의 봄은 모란이 피는 기다림의 시간이자 모란이 지는 설움의 시간이어서 ‘찬란한 슬픔의 봄’으로 표현된다. 반면 (나)의 밤은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처럼 부정적인 것이 쌓이는 시간이다.
- ㉠은 화자가 기다리는 소망의 시간이므로, 두 시어를 모두 부정적 현실의 상징으로 볼 수 없다.
- 두 시어 모두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배경이 아니다.
- ㉡은 가래가 고이는 부정적 시간으로, 소망이 실현되는 시간이 아니다.
어근과 어근의 형식적 결합 방식에 따라 합성어를 나누어 볼 수 있다. 형식적 결합 방식이란 어근과 어근의 배열 방식이 국어의 정상적인 단어 배열 방식 즉 통사적 구성과 같고 다름을 고려한 것이다. 여기에는 합성어의 각 구성 성분들이 가지는 배열 방식이 국어의 정상적인 단어 배열법과 같은 ㉠‘통사적 합성어’와 정상적인 배열 방식에 어긋나는 ㉡‘비통사적 합성어’가 있다.
a.새해 b.힘들다 c.접칼 d.부슬비
e.돌아가다 f.오르내리다
㉠ ㉡
통사적 합성어는 새해, 힘들다, 돌아가다이고, 비통사적 합성어는 접칼, 부슬비, 오르내리다이다.
‘새해’는 관형사+명사, ‘힘들다’는 ‘힘이 들다’에서 조사가 생략된 구성, ‘돌아가다’는 연결 어미 ‘-아’로 이어진 구성이라 국어의 정상적 배열과 같다.
‘접칼’은 용언 어간이 바로 명사와 결합했고, ‘부슬비’는 부사성 어근이 명사와 결합했으며, ‘오르내리다’는 연결 어미 없이 어간끼리 결합해 정상적 배열에서 벗어난다.
- ‘힘들다’를 비통사적 합성어로 분류한 짝은 조사 생략 구성을 잘못 본 것이다.
- ‘접칼’, ‘부슬비’를 통사적 합성어로 분류한 짝은 어간·부사성 어근과 명사의 직접 결합을 놓친 것이다.
- ‘새해’를 비통사적 합성어로 분류한 짝은 관형사가 명사를 꾸미는 정상 구성을 잘못 본 것이다.
|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
|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이용악, ‘그리움’ - |
‘눈’과 ‘화물차의 검은 지붕’이 색채 대비를 이루기는 하지만, 이 시는 문명 비판이 아니라 두고 온 곳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므로 그 감상은 적절하지 않다.
화자는 ‘너를 남기고 온 /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라며 북쪽 고향과 그곳의 사람을 그리워할 뿐, 화물차나 철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 ‘눈이 오는가 북쪽엔’이라는 수사적 의문이 처음과 끝에서 시상을 환기하며 전개를 이끈다.
- 부정 표현과 어울리는 부사 ‘차마’를 ‘차마 그리운 곳’처럼 긍정 표현에 쓴 시적 허용으로 그리움의 정서가 응축된다.
-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도 눈은 ‘복된 눈’으로 그려져 긍정적 이미지를 지닌다.
‘밟다’를 [밥ː따]로 발음하는 것이 표준 발음이다.
겹받침 ‘ㄼ’은 자음 앞에서 대개 [ㄹ]로 발음하지만, ‘밟-’은 예외로 자음 앞에서 [ㅂ]으로 발음한다. 뒤의 ‘ㄷ’은 된소리로 나서 [밥ː따]가 된다.
- ‘깨끗이’는 받침 ‘ㅅ’이 연음되어 [깨끄시]로 발음하며, 구개음화는 받침 ‘ㄷ, ㅌ’에만 일어나므로 [깨끄치]는 틀리다.
- ‘신문’을 [심문]으로 바꾸는 것은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위치 동화이므로 [신문]으로 발음한다.
- ‘읽지’는 겹받침 ‘ㄺ’이 자음 앞에서 [ㄱ]으로 발음되어 [익찌]가 맞다.
동양에서 ‘도(道)’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것인 동시에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도(道)란 원래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의미하는 말로 사람을 일정한 지점으로 이끄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본래의 의미는 점차 확대되고 풍부하게 되었다. 하지만 길이라는 의미로부터 완전히 다른 것이 된 것은 아니다.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길을 통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확대되어 길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반드시 따라야 하는 원칙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길은 목적지와 연결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길 위에 있다는 것이 곧 목적지 위에 있다는 말과도 같다. 여기로부터 길은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도가 확대된 의미를 갖게 되면서 유가(儒家)에서는 천도(天道) 라는 말을 인도(人道)와 구분하여 사상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천도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길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거슬러 올라가면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면 우주 만물을 주재하는 궁극의 존재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담당하며 자연의 변화를 주관하는, 천지 만물의 원초적 근원자인 하늘이다. ( ㉮ ) 하늘의 길은 해와 달과 별이 운행하는 길이며 우주 만물에 적용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길, 즉 사람이 올바르게 살기 위해 늘 실천해야 하는 예의 규범, 도덕 원칙을 뜻하는 인도와는 구분이 되는 것이다.
춘추 시대 때 유가에서는 자연이나 초자연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천도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었다. 이에 비해 음양가(陰陽家)는 사회적 문제보다는 자연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한나라 때의 동중서는 이 둘을 합하여 천인감응의 설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천문 현상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늘이 사람에게 바른 도리를 알려 주기 위한 하나의 상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 ㉯ ) 이를 잘 살펴서 사회를 올바르게 운영하면 사람의 도는 하늘의 도와 일치 하게 되는 것이다.
|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다 저마다 하늘과 감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천인감응은 하늘을 대신하는 뛰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제왕이다. 제왕의 정치가 바르면 하늘은 상서로운 구름과 알맞게 내리는 비로써 제왕의 덕을 칭송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로 자연재해로써 견책을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인감응의 설은 제왕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뿐이었다. ( ㉰ ) 송나라의 유학자들은 여기에 깊은 의문을 가졌다. 제왕만이 하늘의 이치와 합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바른 도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송나라의 유학자들이 찾은 답은 하늘이 모든 사람들에게 성(性)을 주었으며, 사람은 이를 따르는 것이 바로 도라는 것이다. 하늘이 준 성은 곧 하늘의 이치, 곧 천도를 말한다. 이를 따라 행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그릇으로 인식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을 따라 행하는 것은 사람이므로 이것은 사람의 도리, 곧 인도를 말한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관점에서의 천도와 인도의 합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윤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
㉮ ㉯ ㉰
빈칸에는 차례로 그래서 - 그러므로 - 그런데가 들어간다.
㉮ 앞에서 길의 근원이 하늘이라고 밝힌 뒤 ‘하늘의 길은 … 원리’라는 결과를 이끌므로 순접·인과의 ‘그래서’가 맞다. ㉯ 앞의 천문 현상이 하늘의 상징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사회를 바르게 운영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므로 ‘그러므로’가 맞다.
㉰는 천인감응설이 제왕에게만 해당한다는 내용에서 송나라 유학자들의 의문으로 화제를 전환하므로 ‘그런데’가 맞다.
- ㉯에 ‘그런데’를 넣는 짝은 앞뒤가 근거와 결론 관계인 점을 놓친다.
- ㉮에 ‘그런데’를 넣는 짝은 하늘이라는 근원에서 하늘의 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끊는다.
| 아들러는 우월성이란 개념을 자기완성 혹은 자아실현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아들러는 인간의 자기 신장, 성장, 능력을 위한 모든 노력의 근원이 열등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삶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단지 열등감의 해소만을 추구하는가?’, ‘인간은 단지 타인을 능가하기 위해서만 동기화 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아들러는 1908년까지는 ‘공격성’으로, 1910년경에는 ‘힘에 대한 의지’로, 그 후부터는 ‘우월성 추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월성의 추구는 삶의 기초적인 사실로 모든 인간이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부족한 것은 보충하며, 낮은 것은 높이고, 미완성의 것은 완성하며, 무능한 것은 유능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성이다. 즉 우월성의 추구는 모든 사람의 선천적인 경향성으로 일생을 통해 환경을 적절히 통제하며 동기의 지침이 되어 심리적인 활동은 물론 행동을 안내한다. 아들러는 우월성의 추구를 모든 인생의 문제 해결의 기초에서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에 부딪히는 양식에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우월성 추구의 노력은 인간을 현 단계에서 보다 넓은 단계의 발달로 이끌어 준다. 모든 욕구는 완성을 위한 노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분리된 욕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월성 추구는 그 자체가 수천 가지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나 성숙을 추구하는 |
| 일정한 노력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월성의 추구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설명된다. 첫째, 우월성의 추구는 유아기의 무능과 열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초적 동기이다. 둘째, 이 동기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셋째, 추구의 목표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방향이 있다. 긍정적 방향은 개인의 우월성을 넘어서 사회적 관심, 즉 타인의 복지를 추구하며, 건강한 성격이다. 부정적 방향은 개인적 우월성, 즉 이기적 목표만을 추구하며, 이를 신경증적 증상으로 본다. 넷째, 우월성의 추구는 많은 힘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이므로 긴장이 해소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한다. 다섯째, 우월성의 추구는 개인 및 사회 수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즉 개인의 완성을 넘어서 문화의 완성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들러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우월성의 추구가 건전하게 이루어진 성격에 사회적 관심을 가미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사회적 관심을 가진 바람직한 생활양식을 바탕으로 한 우월성 추구가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
윗글의 내용 전개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은 중심 대상인 ‘우월성 추구’의 개념을 밝히고 그 특징을 설명한다.
앞부분에서 ‘우월성의 추구는 … 경향성이다’라고 개념을 정의한 뒤,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특징을 차례로 설명한다.
- 구체적 사례를 분류해 나열하는 방식은 쓰이지 않았다.
- 아들러 한 사람의 이론을 설명할 뿐, 하나의 개념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해 절충하는 과정이 없다.
| 아들러는 우월성이란 개념을 자기완성 혹은 자아실현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아들러는 인간의 자기 신장, 성장, 능력을 위한 모든 노력의 근원이 열등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삶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단지 열등감의 해소만을 추구하는가?’, ‘인간은 단지 타인을 능가하기 위해서만 동기화 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아들러는 1908년까지는 ‘공격성’으로, 1910년경에는 ‘힘에 대한 의지’로, 그 후부터는 ‘우월성 추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월성의 추구는 삶의 기초적인 사실로 모든 인간이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부족한 것은 보충하며, 낮은 것은 높이고, 미완성의 것은 완성하며, 무능한 것은 유능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성이다. 즉 우월성의 추구는 모든 사람의 선천적인 경향성으로 일생을 통해 환경을 적절히 통제하며 동기의 지침이 되어 심리적인 활동은 물론 행동을 안내한다. 아들러는 우월성의 추구를 모든 인생의 문제 해결의 기초에서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에 부딪히는 양식에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우월성 추구의 노력은 인간을 현 단계에서 보다 넓은 단계의 발달로 이끌어 준다. 모든 욕구는 완성을 위한 노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분리된 욕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월성 추구는 그 자체가 수천 가지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나 성숙을 추구하는 |
| 일정한 노력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월성의 추구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설명된다. 첫째, 우월성의 추구는 유아기의 무능과 열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초적 동기이다. 둘째, 이 동기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셋째, 추구의 목표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방향이 있다. 긍정적 방향은 개인의 우월성을 넘어서 사회적 관심, 즉 타인의 복지를 추구하며, 건강한 성격이다. 부정적 방향은 개인적 우월성, 즉 이기적 목표만을 추구하며, 이를 신경증적 증상으로 본다. 넷째, 우월성의 추구는 많은 힘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이므로 긴장이 해소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한다. 다섯째, 우월성의 추구는 개인 및 사회 수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즉 개인의 완성을 넘어서 문화의 완성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들러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우월성의 추구가 건전하게 이루어진 성격에 사회적 관심을 가미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사회적 관심을 가진 바람직한 생활양식을 바탕으로 한 우월성 추구가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에 따르면 인간은 현재보다 나은 상태를 추구한다.
우월성의 추구는 ‘부족한 것은 보충하며, 낮은 것은 높이고, 미완성의 것은 완성하며’ 나아가는 선천적 경향성이고, ‘인간을 현 단계에서 보다 넓은 단계의 발달로 이끌어 준다’고 하였다.
- 우월성의 추구는 ‘긴장이 해소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한다’고 하였으므로 긴장이 이완된다는 설명은 틀리다.
- 개인적 우월성, 즉 이기적 목표만 추구하는 것은 ‘신경증적 증상’으로 본다고 하였다.
- 우월성의 추구는 ‘개인 및 사회 수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고 하였으므로 개인 수준 다음에 사회 수준으로 나아간다는 설명은 틀리다.
|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규율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회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갈라놓는 규율 기관들의 장벽은 이제 거의 고대의 유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일어난 심리적·공간구조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주 사용되는 “통제사회”와 같은 개념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는 데 적절한 것이 못 된다. 그런 개념 속에는 지나치게 많은 부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부정성,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점증하는 탈규제의 경향이 부정성을 폐기하고 있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예스 위 캔”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노’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금지의 부정성은 그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당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성과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는 규율 단계를 졸업한 것이다. 능력은 규율의 기술과 당위의 명령을 통해 도달한 생산성의 수준을 더욱 상승시킨다. 생산성 향상이란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은 글쓴이의 관점을 명시한 뒤 그 관점에서 현상을 해석한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는 관점을 먼저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우울증, 자기 착취 같은 현상을 성과사회의 병리로 해석한다.
- 통념의 문제를 지적한 뒤 절충적 대안을 내세우는 부분은 없다.
- 푸코의 분석이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짚기는 하지만, 글 전체가 다른 견해를 일관되게 비판하는 구성은 아니다.
|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규율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회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갈라놓는 규율 기관들의 장벽은 이제 거의 고대의 유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일어난 심리적·공간구조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주 사용되는 “통제사회”와 같은 개념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는 데 적절한 것이 못 된다. 그런 개념 속에는 지나치게 많은 부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부정성,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점증하는 탈규제의 경향이 부정성을 폐기하고 있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예스 위 캔”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노’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금지의 부정성은 그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당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성과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는 규율 단계를 졸업한 것이다. 능력은 규율의 기술과 당위의 명령을 통해 도달한 생산성의 수준을 더욱 상승시킨다. 생산성 향상이란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성과주체가 당위의 명령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진술은 윗글과 일치하지 않는다.
글쓴이는 ‘능력이 당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성과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여, 당위와 능력 사이에 연속적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라고 하였으므로 능력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진술은 일치한다.
-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고 하였으므로 자기 착취에 관한 진술은 일치한다.
-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고 하였으므로 패러다임 전환과 사회적 무의식을 연결한 진술은 일치한다.
|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규율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회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갈라놓는 규율 기관들의 장벽은 이제 거의 고대의 유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일어난 심리적·공간구조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주 사용되는 “통제사회”와 같은 개념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는 데 적절한 것이 못 된다. 그런 개념 속에는 지나치게 많은 부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부정성,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점증하는 탈규제의 경향이 부정성을 폐기하고 있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예스 위 캔”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노’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금지의 부정성은 그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당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성과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는 규율 단계를 졸업한 것이다. 능력은 규율의 기술과 당위의 명령을 통해 도달한 생산성의 수준을 더욱 상승시킨다. 생산성 향상이란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
글쓴이의 관점에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소설 ‘바틀비 이야기’는 미국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1819년∼1891년)의 소설로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뉴욕 월가의 한 법률 사무소를 배경으로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필경사 바틀비(Bartleby)의 삶을 통해 산업화, 도시화된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주의를 비판한 수작이다.
바틀비가 근무하는 법률 사무소의 사면은 오래되고 그늘져서 검게 변한 높은 벽돌벽에 둘려 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답답한 사무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한 쪽은 60세 가량의 화자인 변호사가, 다른 한 쪽은 신경성 질환에 시달리는 바틀비를 비롯한 세 명의 필경사가 사용한다.
60세 가량의 필경사 칠면조(Turkey)는 오전에는 온순하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지만 오후만 되면 비정상적으로 변해 혼란스럽고 목표 없는 분주한 활동으로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젊은 필경사 니퍼즈(Nippers)는 소화불량 때문에 고통 받으며 일을 할 때 이를 부득부득 갈고 끊임없이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는다. 이들과 달리 바틀비는 침묵하며 돌처럼 굳어 한동안 밤낮으로 열심히 일만 한다. 그러던 바틀비는 갑자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변호사의 작업지시를 거부하다 해고되고 결국 교도소에 수감되고 노동과 음식을 거부하다가 아사하고 만다.
바틀비를 후기 근대사회의 과중한 자아 부담을 거부하는 위대한 존재로 보는 해석은 글쓴이의 관점에 맞지 않는다.
<보기>의 바틀비는 높은 벽돌벽에 둘린 사무실에서 단조로운 필사만 하다 교도소에 갇히는, 규율사회의 복종적 주체이다. 글쓴이는 성과사회의 자아 부담을 지는 존재를 복종적 주체가 아닌 ‘성과주체’로 구분하므로, 바틀비를 그 부담을 거부하는 존재로 읽을 수 없다.
- 벽과 감옥은 글쓴이가 말한 규율사회(병원, 감옥, 공장 등)의 상징과 맞닿아 있으므로 멜빌이 규율사회를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 성과사회의 병은 긍정성에서 비롯되지만 바틀비는 규율사회의 복종적 주체이므로, 그를 병들게 한 것이 과도한 긍정성이 아니라는 해석은 타당하다.
|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규율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회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갈라놓는 규율 기관들의 장벽은 이제 거의 고대의 유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일어난 심리적·공간구조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주 사용되는 “통제사회”와 같은 개념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는 데 적절한 것이 못 된다. 그런 개념 속에는 지나치게 많은 부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부정성,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점증하는 탈규제의 경향이 부정성을 폐기하고 있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예스 위 캔”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노’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금지의 부정성은 그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당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성과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는 규율 단계를 졸업한 것이다. 능력은 규율의 기술과 당위의 명령을 통해 도달한 생산성의 수준을 더욱 상승시킨다. 생산성 향상이란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
문맥상 ㉠∼㉣과 바꿔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은?
㉢ ‘깃들어’를 침잠(沈潛)해로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깃들다’는 어떤 기운이나 성질이 서려 있다는 뜻이고, 침잠은 물속 깊이 가라앉거나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몰입한다는 뜻이다. 문맥상 ‘강제의 부정성이 들어 있다’는 의미이므로 ‘내재(內在)해’ 정도가 어울린다.
- ㉠ ‘갈라놓는’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는 뜻이므로 ‘구별(區別) 짓는’으로 바꿀 수 있다.
- ㉡ ‘일어난’은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므로 ‘발생(發生)한’으로 바꿀 수 있다.
- ㉣ ‘숨어 있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있다는 뜻이므로 ‘잠재(潛在)해 있다’로 바꿀 수 있다.
| (가) 동명왕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아무리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만은 잘 알 줄 안다. 나도 일찍 이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때 나는 웃고 말았다. 공자가 괴상하고 요란한 귀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기에 이 역시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인지라 우리들이 즐겨 말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뒤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으니 거기에 또한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내용이 간략하여 상세하지 못하였다. 자기네 중국 이야기라면 자세히 썼으련만 다른 나라 이야기라 이다지 간략하게 쓴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계축년(1193) 4월 ‘구삼국사’를 구하였는데 거기에 실린 ‘동명왕 본기’를 보니 신비로운 사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역시 잘 믿기지 않아 그저 괴상하고 황당한 이야기려니 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번 거듭 읽으면서 참뜻을 생각하고 그 근원을 찾아보니, 이것은 황당한 것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이며, 괴상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것이었다. 하물며 나라 역사의 정직한 필치에 무슨 거짓이 있겠는가! 김부식 공이 다시 ‘국사’를 편찬하면서 동명왕의 사적을 자못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공은 아마 국사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라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생각건대 당나라 ‘현종 본기’와 ‘양귀비전’을 보면 방사(方士)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시인 백낙천(白樂天, 백거이)이 그러한 이야기가 희미해져 없어질까 봐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그 사연을 밝혀 두었다. 실상 그 이야기야 거칠고 음탕하며 황당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로 노래하여 ㉡훗대에 전하였거늘 하물며 우리 동명왕의 이야기랴. 동명왕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신비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가 처음 창건되던 때의 신성한 자취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이것을 이제 서술해 두지 않으면 ㉢뒷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므로 내 노래로 이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니 우리나라가 본디 성인이 이룩한 나라임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이다. - 이규보, ‘동명왕편 병서’ - (나) 십구 일의 남문 대장(南門大將) 구굉(具宏)이 발군ᄒᆞ야 ᄡᅡ화 도젹 이십 명을 쥭이다. 대풍(大風)하고, 비 오려 ᄒᆞ더니 김쳥음(金淸陰)을 명ᄒᆞ샤 셩황신(城隍神)의 졔(祭) ᄒᆞ니, ᄇᆞ람이 긋치고 비 아니 오니라. 이십 일의 마장(馬將)이 통ᄉᆞ(通使) 뎡명슈(鄭命壽)ᄅᆞᆯ 보ᄂᆡ야 화친ᄒᆞ기ᄅᆞᆯ 언약ᄒᆞᆯᄉᆡ 셩문을 여디 아니ᄒᆞ고 셩 우ᄒᆡ셔 말을 뎐ᄒᆞ게 ᄒᆞ다. |
| 이십일 일의 어영 별장(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이 군을 거ᄂᆞ려 도젹 여라믄을 쥭이고, 동문 대장(東門大將) 신경진(申景禛)이 발군ᄒᆞ야 도젹을 쥭이다. 이십이 일의 ᄯᅩ 마부대(馬夫大)ㅣ 통ᄉᆞ(通事)ᄅᆞᆯ 보ᄂᆡ여 닐오ᄃᆡ, 이졔ᄂᆞᆫ 동궁(東宮)을 쳥티 아니니, 만일 왕ᄌᆞ 대신을 보ᄂᆡ면 뎡ᄒᆞ야 화친ᄒᆞ쟈 ᄒᆞᄃᆡ, 샹이 오히려 허티 아니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젹 여라문을 쥭이고, 신경진이 ᄯᅩ 셜흔아믄을 쥭이다. 샹이 ᄂᆡ졍(內廷)의셔 호군(犒軍)ᄒᆞ시다. (중략) 이십ᄉᆞ 일의 대위(大雨ㅣ) ᄂᆞ리니, 셩쳡(城堞) 직흰 군ᄉᆡ 다 젹시고 어러 쥭으 니 만흐니, 샹이 셰ᄌᆞ(世子)로 더브러 ᄯᅳᆯ 가온ᄃᆡ 셔셔 하ᄂᆞᆯ긔 비러 ᄀᆞᆯ오샤ᄃᆡ, “금일 이에 니ᄅᆞ기ᄂᆞᆫ 우리 부ᄌᆡ 득죄ᄒᆞ미니, 일셩 군민(一城軍民)이 무ᄉᆞᆷ 죄리잇고. 텬되(天道ㅣ) 우리 부ᄌᆞ의게 화ᄅᆞᆯ ᄂᆡ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오쇼셔.” 군신들이 드ᄅᆞ시기ᄅᆞᆯ 쳥ᄒᆞᄃᆡ 허티 아니ᄒᆞ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ᄎᆞ지 아니ᄒᆞ니, 셩듕인(城中人)이 감읍(感泣)디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 일의 극한(極寒)ᄒᆞ다. 묘당(廟堂)이 젹진의 ᄉᆞ신 보ᄂᆡ기ᄅᆞᆯ 쳥ᄒᆞ오니, 샹이 ᄀᆞᆯ오샤ᄃᆡ, “아국이 ᄆᆡ양 화친으로ᄡᅥ 져의게 쇽으니, 이졔 ᄯᅩ ᄉᆞ신을 보ᄂᆡ야 욕될 줄 아ᄃᆡ, 모든 의논이 이러ᄒᆞ니 이 셰시(歲時)라, 술, 고기ᄅᆞᆯ 보ᄂᆡ고 은합(銀盒)의 실과ᄅᆞᆯ 담아 ᄡᅥ 후졍(厚情)을 뵌 후, 인ᄒᆞ야 졉담(接談)ᄒᆞ야 긔ᄉᆡᆨ을 살피리라.”ᄒᆞ시다. 이십뉵 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이 술, 고기 은합을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ᄀᆞᆯ오ᄃᆡ, “군듕(軍中)의 날마다 쇼 잡고 보믈이 뫼ᄀᆞᆺ티 ᄡᅡ혀시니, 이거ᄉᆞᆯ 므어ᄉᆡ ᄡᅳ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 가히 스ᄉᆞ로 ᄡᅥᆷᄌᆞᆨᄒᆞ도다.”ᄒᆞ고, 드ᄃᆡ여 밧디 아니ᄒᆞ고, 도로 보ᄂᆡ니라. 이십칠 일의 날마다 셩듕의 구완ᄒᆞ라 오ᄂᆞᆫ 군ᄉᆡᄅᆞᆯ ᄇᆞ라ᄃᆡ 일인도 오ᄂᆞ니 업고더라. - 어느 궁녀, ‘산성일기’ - |
(가)를 쓴 작가 이규보의 생각을 이해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규보는 동명왕의 이야기를 거짓이 아니라 성스럽고 신비로운 사실로 보았으므로, ‘거짓이더라도 기록해야 한다’는 이해는 적절하지 않다.
그는 ‘이것은 황당한 것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이라 하고 ‘나라 역사의 정직한 필치에 무슨 거짓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중국 역사서가 ‘다른 나라 이야기라 이다지 간략하게 쓴 것’을 아쉬워했으므로, 우리 역사를 구별해 소중히 전해야 한다고 본 것이 맞다.
- 김부식이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짐작하였다.
- ‘장한가’를 ‘거칠고 음탕하며 황당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로 노래하여 훗대에 전하였’다고 하여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 (가) 동명왕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아무리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만은 잘 알 줄 안다. 나도 일찍 이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때 나는 웃고 말았다. 공자가 괴상하고 요란한 귀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기에 이 역시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인지라 우리들이 즐겨 말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뒤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으니 거기에 또한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내용이 간략하여 상세하지 못하였다. 자기네 중국 이야기라면 자세히 썼으련만 다른 나라 이야기라 이다지 간략하게 쓴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계축년(1193) 4월 ‘구삼국사’를 구하였는데 거기에 실린 ‘동명왕 본기’를 보니 신비로운 사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역시 잘 믿기지 않아 그저 괴상하고 황당한 이야기려니 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번 거듭 읽으면서 참뜻을 생각하고 그 근원을 찾아보니, 이것은 황당한 것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이며, 괴상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것이었다. 하물며 나라 역사의 정직한 필치에 무슨 거짓이 있겠는가! 김부식 공이 다시 ‘국사’를 편찬하면서 동명왕의 사적을 자못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공은 아마 국사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라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생각건대 당나라 ‘현종 본기’와 ‘양귀비전’을 보면 방사(方士)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시인 백낙천(白樂天, 백거이)이 그러한 이야기가 희미해져 없어질까 봐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그 사연을 밝혀 두었다. 실상 그 이야기야 거칠고 음탕하며 황당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로 노래하여 ㉡훗대에 전하였거늘 하물며 우리 동명왕의 이야기랴. 동명왕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신비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가 처음 창건되던 때의 신성한 자취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이것을 이제 서술해 두지 않으면 ㉢뒷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므로 내 노래로 이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니 우리나라가 본디 성인이 이룩한 나라임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이다. - 이규보, ‘동명왕편 병서’ - (나) 십구 일의 남문 대장(南門大將) 구굉(具宏)이 발군ᄒᆞ야 ᄡᅡ화 도젹 이십 명을 쥭이다. 대풍(大風)하고, 비 오려 ᄒᆞ더니 김쳥음(金淸陰)을 명ᄒᆞ샤 셩황신(城隍神)의 졔(祭) ᄒᆞ니, ᄇᆞ람이 긋치고 비 아니 오니라. 이십 일의 마장(馬將)이 통ᄉᆞ(通使) 뎡명슈(鄭命壽)ᄅᆞᆯ 보ᄂᆡ야 화친ᄒᆞ기ᄅᆞᆯ 언약ᄒᆞᆯᄉᆡ 셩문을 여디 아니ᄒᆞ고 셩 우ᄒᆡ셔 말을 뎐ᄒᆞ게 ᄒᆞ다. |
| 이십일 일의 어영 별장(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이 군을 거ᄂᆞ려 도젹 여라믄을 쥭이고, 동문 대장(東門大將) 신경진(申景禛)이 발군ᄒᆞ야 도젹을 쥭이다. 이십이 일의 ᄯᅩ 마부대(馬夫大)ㅣ 통ᄉᆞ(通事)ᄅᆞᆯ 보ᄂᆡ여 닐오ᄃᆡ, 이졔ᄂᆞᆫ 동궁(東宮)을 쳥티 아니니, 만일 왕ᄌᆞ 대신을 보ᄂᆡ면 뎡ᄒᆞ야 화친ᄒᆞ쟈 ᄒᆞᄃᆡ, 샹이 오히려 허티 아니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젹 여라문을 쥭이고, 신경진이 ᄯᅩ 셜흔아믄을 쥭이다. 샹이 ᄂᆡ졍(內廷)의셔 호군(犒軍)ᄒᆞ시다. (중략) 이십ᄉᆞ 일의 대위(大雨ㅣ) ᄂᆞ리니, 셩쳡(城堞) 직흰 군ᄉᆡ 다 젹시고 어러 쥭으 니 만흐니, 샹이 셰ᄌᆞ(世子)로 더브러 ᄯᅳᆯ 가온ᄃᆡ 셔셔 하ᄂᆞᆯ긔 비러 ᄀᆞᆯ오샤ᄃᆡ, “금일 이에 니ᄅᆞ기ᄂᆞᆫ 우리 부ᄌᆡ 득죄ᄒᆞ미니, 일셩 군민(一城軍民)이 무ᄉᆞᆷ 죄리잇고. 텬되(天道ㅣ) 우리 부ᄌᆞ의게 화ᄅᆞᆯ ᄂᆡ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오쇼셔.” 군신들이 드ᄅᆞ시기ᄅᆞᆯ 쳥ᄒᆞᄃᆡ 허티 아니ᄒᆞ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ᄎᆞ지 아니ᄒᆞ니, 셩듕인(城中人)이 감읍(感泣)디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 일의 극한(極寒)ᄒᆞ다. 묘당(廟堂)이 젹진의 ᄉᆞ신 보ᄂᆡ기ᄅᆞᆯ 쳥ᄒᆞ오니, 샹이 ᄀᆞᆯ오샤ᄃᆡ, “아국이 ᄆᆡ양 화친으로ᄡᅥ 져의게 쇽으니, 이졔 ᄯᅩ ᄉᆞ신을 보ᄂᆡ야 욕될 줄 아ᄃᆡ, 모든 의논이 이러ᄒᆞ니 이 셰시(歲時)라, 술, 고기ᄅᆞᆯ 보ᄂᆡ고 은합(銀盒)의 실과ᄅᆞᆯ 담아 ᄡᅥ 후졍(厚情)을 뵌 후, 인ᄒᆞ야 졉담(接談)ᄒᆞ야 긔ᄉᆡᆨ을 살피리라.”ᄒᆞ시다. 이십뉵 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이 술, 고기 은합을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ᄀᆞᆯ오ᄃᆡ, “군듕(軍中)의 날마다 쇼 잡고 보믈이 뫼ᄀᆞᆺ티 ᄡᅡ혀시니, 이거ᄉᆞᆯ 므어ᄉᆡ ᄡᅳ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 가히 스ᄉᆞ로 ᄡᅥᆷᄌᆞᆨᄒᆞ도다.”ᄒᆞ고, 드ᄃᆡ여 밧디 아니ᄒᆞ고, 도로 보ᄂᆡ니라. 이십칠 일의 날마다 셩듕의 구완ᄒᆞ라 오ᄂᆞᆫ 군ᄉᆡᄅᆞᆯ ᄇᆞ라ᄃᆡ 일인도 오ᄂᆞ니 업고더라. - 어느 궁녀, ‘산성일기’ - |
<보기>는 한글 맞춤법의 일부이다. <보기>를 참고하여 (가)의 ㉠∼㉣을 탐구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1. 순 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1)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고랫재, 귓밥, 나룻배, 나뭇가지, 냇가
(2)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는 것
멧나물, 아랫니, 텃마당, 아랫마을
(3)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도리깻열, 뒷윷, 두렛일, 뒷일
2.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1)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귓병, 머릿방, 뱃병, 봇둑
(2)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것
곗날, 제삿날, 훗날, 툇마루
(3)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가욋일, 사삿일, 예삿일, 훗일
3. 두 음절로 된 다음 한자어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
제40항 어간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ㅎ’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거센소리로 될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
간편하게→간편케, 연구하도록→연구토록
〔붙임1〕‘ㅎ’이 어간의 끝소리로 굳어진 것은 받침으로 적는다.
않다, 않고, 않지, 않든지
그렇다, 그렇고, 그렇지, 그렇든지
〔붙임2〕어간의 끝음절 ‘하’가 아주 줄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
거북하지→거북지, 생각하다 못해→생각다 못해
㉠ ‘생각건대’는 ‘하’가 아주 줄어든 경우(제40항 붙임 2)이므로 그대로 적는 것이 맞고, ‘생각컨대’로 고쳐야 한다는 탐구는 적절하지 않다.
‘생각하건대’처럼 ‘하’ 앞이 안울림소리 받침(ㄱ)이면 ‘하’가 통째로 줄어 ‘생각건대’가 된다. <보기>의 ‘생각하다 못해→생각다 못해’와 같은 경우이다.
- ‘훗대’는 한자어 ‘후대(後代)’이며, 사이시옷을 적는 두 음절 한자어는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뿐이므로 ‘후대’로 고쳐야 한다.
- ‘뒷세상’은 순우리말 ‘뒤’와 한자어 ‘세상’이 결합하고 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므로 사이시옷을 적는 것이 맞다.
- ‘어떻게’는 ‘ㅎ’이 어간의 끝소리로 굳어진 경우(붙임 1)로 받침으로 적는 것이 맞다.
| (가) 동명왕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아무리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만은 잘 알 줄 안다. 나도 일찍 이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때 나는 웃고 말았다. 공자가 괴상하고 요란한 귀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기에 이 역시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인지라 우리들이 즐겨 말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뒤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으니 거기에 또한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내용이 간략하여 상세하지 못하였다. 자기네 중국 이야기라면 자세히 썼으련만 다른 나라 이야기라 이다지 간략하게 쓴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계축년(1193) 4월 ‘구삼국사’를 구하였는데 거기에 실린 ‘동명왕 본기’를 보니 신비로운 사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역시 잘 믿기지 않아 그저 괴상하고 황당한 이야기려니 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번 거듭 읽으면서 참뜻을 생각하고 그 근원을 찾아보니, 이것은 황당한 것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이며, 괴상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것이었다. 하물며 나라 역사의 정직한 필치에 무슨 거짓이 있겠는가! 김부식 공이 다시 ‘국사’를 편찬하면서 동명왕의 사적을 자못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공은 아마 국사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라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생각건대 당나라 ‘현종 본기’와 ‘양귀비전’을 보면 방사(方士)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시인 백낙천(白樂天, 백거이)이 그러한 이야기가 희미해져 없어질까 봐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그 사연을 밝혀 두었다. 실상 그 이야기야 거칠고 음탕하며 황당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로 노래하여 ㉡훗대에 전하였거늘 하물며 우리 동명왕의 이야기랴. 동명왕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신비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가 처음 창건되던 때의 신성한 자취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이것을 이제 서술해 두지 않으면 ㉢뒷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므로 내 노래로 이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니 우리나라가 본디 성인이 이룩한 나라임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이다. - 이규보, ‘동명왕편 병서’ - (나) 십구 일의 남문 대장(南門大將) 구굉(具宏)이 발군ᄒᆞ야 ᄡᅡ화 도젹 이십 명을 쥭이다. 대풍(大風)하고, 비 오려 ᄒᆞ더니 김쳥음(金淸陰)을 명ᄒᆞ샤 셩황신(城隍神)의 졔(祭) ᄒᆞ니, ᄇᆞ람이 긋치고 비 아니 오니라. 이십 일의 마장(馬將)이 통ᄉᆞ(通使) 뎡명슈(鄭命壽)ᄅᆞᆯ 보ᄂᆡ야 화친ᄒᆞ기ᄅᆞᆯ 언약ᄒᆞᆯᄉᆡ 셩문을 여디 아니ᄒᆞ고 셩 우ᄒᆡ셔 말을 뎐ᄒᆞ게 ᄒᆞ다. |
| 이십일 일의 어영 별장(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이 군을 거ᄂᆞ려 도젹 여라믄을 쥭이고, 동문 대장(東門大將) 신경진(申景禛)이 발군ᄒᆞ야 도젹을 쥭이다. 이십이 일의 ᄯᅩ 마부대(馬夫大)ㅣ 통ᄉᆞ(通事)ᄅᆞᆯ 보ᄂᆡ여 닐오ᄃᆡ, 이졔ᄂᆞᆫ 동궁(東宮)을 쳥티 아니니, 만일 왕ᄌᆞ 대신을 보ᄂᆡ면 뎡ᄒᆞ야 화친ᄒᆞ쟈 ᄒᆞᄃᆡ, 샹이 오히려 허티 아니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젹 여라문을 쥭이고, 신경진이 ᄯᅩ 셜흔아믄을 쥭이다. 샹이 ᄂᆡ졍(內廷)의셔 호군(犒軍)ᄒᆞ시다. (중략) 이십ᄉᆞ 일의 대위(大雨ㅣ) ᄂᆞ리니, 셩쳡(城堞) 직흰 군ᄉᆡ 다 젹시고 어러 쥭으 니 만흐니, 샹이 셰ᄌᆞ(世子)로 더브러 ᄯᅳᆯ 가온ᄃᆡ 셔셔 하ᄂᆞᆯ긔 비러 ᄀᆞᆯ오샤ᄃᆡ, “금일 이에 니ᄅᆞ기ᄂᆞᆫ 우리 부ᄌᆡ 득죄ᄒᆞ미니, 일셩 군민(一城軍民)이 무ᄉᆞᆷ 죄리잇고. 텬되(天道ㅣ) 우리 부ᄌᆞ의게 화ᄅᆞᆯ ᄂᆡ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오쇼셔.” 군신들이 드ᄅᆞ시기ᄅᆞᆯ 쳥ᄒᆞᄃᆡ 허티 아니ᄒᆞ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ᄎᆞ지 아니ᄒᆞ니, 셩듕인(城中人)이 감읍(感泣)디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 일의 극한(極寒)ᄒᆞ다. 묘당(廟堂)이 젹진의 ᄉᆞ신 보ᄂᆡ기ᄅᆞᆯ 쳥ᄒᆞ오니, 샹이 ᄀᆞᆯ오샤ᄃᆡ, “아국이 ᄆᆡ양 화친으로ᄡᅥ 져의게 쇽으니, 이졔 ᄯᅩ ᄉᆞ신을 보ᄂᆡ야 욕될 줄 아ᄃᆡ, 모든 의논이 이러ᄒᆞ니 이 셰시(歲時)라, 술, 고기ᄅᆞᆯ 보ᄂᆡ고 은합(銀盒)의 실과ᄅᆞᆯ 담아 ᄡᅥ 후졍(厚情)을 뵌 후, 인ᄒᆞ야 졉담(接談)ᄒᆞ야 긔ᄉᆡᆨ을 살피리라.”ᄒᆞ시다. 이십뉵 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이 술, 고기 은합을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ᄀᆞᆯ오ᄃᆡ, “군듕(軍中)의 날마다 쇼 잡고 보믈이 뫼ᄀᆞᆺ티 ᄡᅡ혀시니, 이거ᄉᆞᆯ 므어ᄉᆡ ᄡᅳ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 가히 스ᄉᆞ로 ᄡᅥᆷᄌᆞᆨᄒᆞ도다.”ᄒᆞ고, 드ᄃᆡ여 밧디 아니ᄒᆞ고, 도로 보ᄂᆡ니라. 이십칠 일의 날마다 셩듕의 구완ᄒᆞ라 오ᄂᆞᆫ 군ᄉᆡᄅᆞᆯ ᄇᆞ라ᄃᆡ 일인도 오ᄂᆞ니 업고더라. - 어느 궁녀, ‘산성일기’ - |
<보기>를 참고하여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고친 청 태종은 조선에 최후통첩을 보내 조선의 왕자를 볼모로 보내고 청과의 대결을 주장하는 척화론자들을 압송하라고 요구한다. 조선의 집권층이 이를 무시하자, 청 태종은 그해 12월 조선에 침입한다. 청의 선봉 부대가 한양에 접근하자 인조는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나, 곧 청군에 포위된다.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고, 청은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을 볼모로 잡고 대표적인 척화론자들인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3학사를 체포해 철군한다.
(나)에는 척화론자를 비판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글쓴이가 그들의 현실 감각 결여를 비판한다는 감상은 적절하지 않다.
(나)는 남한산성에서 날마다 일어난 일을 사실 위주로 기록할 뿐이며, 글쓴이의 평가는 임금의 기도에 ‘셩듕인이 감읍디 아니리 업더라’처럼 성안 사람들의 반응을 전하는 정도이다.
- ‘십구 일’부터 ‘이십칠 일’까지 날짜순으로 실제 병자호란의 사건을 서술하였다.
- ‘네 나라 군신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는 적장이 남한산성을 돌구멍에 빗대 멸시한 말이다.
- ‘묘당이 젹진의 ᄉᆞ신 보ᄂᆡ기ᄅᆞᆯ 쳥ᄒᆞ오니’와 임금이 ‘모든 의논이 이러ᄒᆞ니’라고 한 데서 조정 의견이 화친으로 모였음을 알 수 있다.
| (가) 동명왕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아무리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만은 잘 알 줄 안다. 나도 일찍 이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때 나는 웃고 말았다. 공자가 괴상하고 요란한 귀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기에 이 역시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인지라 우리들이 즐겨 말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뒤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으니 거기에 또한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내용이 간략하여 상세하지 못하였다. 자기네 중국 이야기라면 자세히 썼으련만 다른 나라 이야기라 이다지 간략하게 쓴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계축년(1193) 4월 ‘구삼국사’를 구하였는데 거기에 실린 ‘동명왕 본기’를 보니 신비로운 사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역시 잘 믿기지 않아 그저 괴상하고 황당한 이야기려니 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번 거듭 읽으면서 참뜻을 생각하고 그 근원을 찾아보니, 이것은 황당한 것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이며, 괴상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것이었다. 하물며 나라 역사의 정직한 필치에 무슨 거짓이 있겠는가! 김부식 공이 다시 ‘국사’를 편찬하면서 동명왕의 사적을 자못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공은 아마 국사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라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생각건대 당나라 ‘현종 본기’와 ‘양귀비전’을 보면 방사(方士)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시인 백낙천(白樂天, 백거이)이 그러한 이야기가 희미해져 없어질까 봐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그 사연을 밝혀 두었다. 실상 그 이야기야 거칠고 음탕하며 황당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로 노래하여 ㉡훗대에 전하였거늘 하물며 우리 동명왕의 이야기랴. 동명왕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신비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가 처음 창건되던 때의 신성한 자취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이것을 이제 서술해 두지 않으면 ㉢뒷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므로 내 노래로 이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니 우리나라가 본디 성인이 이룩한 나라임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이다. - 이규보, ‘동명왕편 병서’ - (나) 십구 일의 남문 대장(南門大將) 구굉(具宏)이 발군ᄒᆞ야 ᄡᅡ화 도젹 이십 명을 쥭이다. 대풍(大風)하고, 비 오려 ᄒᆞ더니 김쳥음(金淸陰)을 명ᄒᆞ샤 셩황신(城隍神)의 졔(祭) ᄒᆞ니, ᄇᆞ람이 긋치고 비 아니 오니라. 이십 일의 마장(馬將)이 통ᄉᆞ(通使) 뎡명슈(鄭命壽)ᄅᆞᆯ 보ᄂᆡ야 화친ᄒᆞ기ᄅᆞᆯ 언약ᄒᆞᆯᄉᆡ 셩문을 여디 아니ᄒᆞ고 셩 우ᄒᆡ셔 말을 뎐ᄒᆞ게 ᄒᆞ다. |
| 이십일 일의 어영 별장(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이 군을 거ᄂᆞ려 도젹 여라믄을 쥭이고, 동문 대장(東門大將) 신경진(申景禛)이 발군ᄒᆞ야 도젹을 쥭이다. 이십이 일의 ᄯᅩ 마부대(馬夫大)ㅣ 통ᄉᆞ(通事)ᄅᆞᆯ 보ᄂᆡ여 닐오ᄃᆡ, 이졔ᄂᆞᆫ 동궁(東宮)을 쳥티 아니니, 만일 왕ᄌᆞ 대신을 보ᄂᆡ면 뎡ᄒᆞ야 화친ᄒᆞ쟈 ᄒᆞᄃᆡ, 샹이 오히려 허티 아니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젹 여라문을 쥭이고, 신경진이 ᄯᅩ 셜흔아믄을 쥭이다. 샹이 ᄂᆡ졍(內廷)의셔 호군(犒軍)ᄒᆞ시다. (중략) 이십ᄉᆞ 일의 대위(大雨ㅣ) ᄂᆞ리니, 셩쳡(城堞) 직흰 군ᄉᆡ 다 젹시고 어러 쥭으 니 만흐니, 샹이 셰ᄌᆞ(世子)로 더브러 ᄯᅳᆯ 가온ᄃᆡ 셔셔 하ᄂᆞᆯ긔 비러 ᄀᆞᆯ오샤ᄃᆡ, “금일 이에 니ᄅᆞ기ᄂᆞᆫ 우리 부ᄌᆡ 득죄ᄒᆞ미니, 일셩 군민(一城軍民)이 무ᄉᆞᆷ 죄리잇고. 텬되(天道ㅣ) 우리 부ᄌᆞ의게 화ᄅᆞᆯ ᄂᆡ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오쇼셔.” 군신들이 드ᄅᆞ시기ᄅᆞᆯ 쳥ᄒᆞᄃᆡ 허티 아니ᄒᆞ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ᄎᆞ지 아니ᄒᆞ니, 셩듕인(城中人)이 감읍(感泣)디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 일의 극한(極寒)ᄒᆞ다. 묘당(廟堂)이 젹진의 ᄉᆞ신 보ᄂᆡ기ᄅᆞᆯ 쳥ᄒᆞ오니, 샹이 ᄀᆞᆯ오샤ᄃᆡ, “아국이 ᄆᆡ양 화친으로ᄡᅥ 져의게 쇽으니, 이졔 ᄯᅩ ᄉᆞ신을 보ᄂᆡ야 욕될 줄 아ᄃᆡ, 모든 의논이 이러ᄒᆞ니 이 셰시(歲時)라, 술, 고기ᄅᆞᆯ 보ᄂᆡ고 은합(銀盒)의 실과ᄅᆞᆯ 담아 ᄡᅥ 후졍(厚情)을 뵌 후, 인ᄒᆞ야 졉담(接談)ᄒᆞ야 긔ᄉᆡᆨ을 살피리라.”ᄒᆞ시다. 이십뉵 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이 술, 고기 은합을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ᄀᆞᆯ오ᄃᆡ, “군듕(軍中)의 날마다 쇼 잡고 보믈이 뫼ᄀᆞᆺ티 ᄡᅡ혀시니, 이거ᄉᆞᆯ 므어ᄉᆡ ᄡᅳ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 가히 스ᄉᆞ로 ᄡᅥᆷᄌᆞᆨᄒᆞ도다.”ᄒᆞ고, 드ᄃᆡ여 밧디 아니ᄒᆞ고, 도로 보ᄂᆡ니라. 이십칠 일의 날마다 셩듕의 구완ᄒᆞ라 오ᄂᆞᆫ 군ᄉᆡᄅᆞᆯ ᄇᆞ라ᄃᆡ 일인도 오ᄂᆞ니 업고더라. - 어느 궁녀, ‘산성일기’ - |
(나)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적장이 술과 고기를 돌려보낸 것은 연민 때문이 아니라 조롱과 멸시 때문이므로, 이 진술은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
적장은 ‘군듕의 날마다 쇼 잡고 보믈이 뫼ᄀᆞᆺ티 ᄡᅡ혀시니, 이거ᄉᆞᆯ 므어ᄉᆡ ᄡᅳ리오’라며 조선 군신이 굶주린다고 비웃었다. 또 화친에 매번 속았다고 한 쪽은 적장이 아니라 ‘아국이 ᄆᆡ양 화친으로ᄡᅥ 져의게 쇽으니’라고 말한 조선의 임금이다.
- ‘셩문을 여디 아니ᄒᆞ고 셩 우ᄒᆡ셔 말을 뎐ᄒᆞ게’ 하였으므로 정명수를 성안에 들이지 않은 것이 맞다.
- 비에 젖은 군사들이 ‘어러 쥭으니 만흐니’ 임금이 세자와 함께 뜰에 서서 하늘에 빌었다.
- ‘구완ᄒᆞ라 오ᄂᆞᆫ 군ᄉᆡᄅᆞᆯ ᄇᆞ라ᄃᆡ 일인도 오ᄂᆞ니 업’었으므로 고립무원의 상황이 맞다.
| (가) 동명왕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아무리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만은 잘 알 줄 안다. 나도 일찍 이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때 나는 웃고 말았다. 공자가 괴상하고 요란한 귀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기에 이 역시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인지라 우리들이 즐겨 말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뒤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으니 거기에 또한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내용이 간략하여 상세하지 못하였다. 자기네 중국 이야기라면 자세히 썼으련만 다른 나라 이야기라 이다지 간략하게 쓴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계축년(1193) 4월 ‘구삼국사’를 구하였는데 거기에 실린 ‘동명왕 본기’를 보니 신비로운 사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역시 잘 믿기지 않아 그저 괴상하고 황당한 이야기려니 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번 거듭 읽으면서 참뜻을 생각하고 그 근원을 찾아보니, 이것은 황당한 것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이며, 괴상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것이었다. 하물며 나라 역사의 정직한 필치에 무슨 거짓이 있겠는가! 김부식 공이 다시 ‘국사’를 편찬하면서 동명왕의 사적을 자못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공은 아마 국사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라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생각건대 당나라 ‘현종 본기’와 ‘양귀비전’을 보면 방사(方士)가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시인 백낙천(白樂天, 백거이)이 그러한 이야기가 희미해져 없어질까 봐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그 사연을 밝혀 두었다. 실상 그 이야기야 거칠고 음탕하며 황당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로 노래하여 ㉡훗대에 전하였거늘 하물며 우리 동명왕의 이야기랴. 동명왕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신비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가 처음 창건되던 때의 신성한 자취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이것을 이제 서술해 두지 않으면 ㉢뒷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므로 내 노래로 이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니 우리나라가 본디 성인이 이룩한 나라임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이다. - 이규보, ‘동명왕편 병서’ - (나) 십구 일의 남문 대장(南門大將) 구굉(具宏)이 발군ᄒᆞ야 ᄡᅡ화 도젹 이십 명을 쥭이다. 대풍(大風)하고, 비 오려 ᄒᆞ더니 김쳥음(金淸陰)을 명ᄒᆞ샤 셩황신(城隍神)의 졔(祭) ᄒᆞ니, ᄇᆞ람이 긋치고 비 아니 오니라. 이십 일의 마장(馬將)이 통ᄉᆞ(通使) 뎡명슈(鄭命壽)ᄅᆞᆯ 보ᄂᆡ야 화친ᄒᆞ기ᄅᆞᆯ 언약ᄒᆞᆯᄉᆡ 셩문을 여디 아니ᄒᆞ고 셩 우ᄒᆡ셔 말을 뎐ᄒᆞ게 ᄒᆞ다. |
| 이십일 일의 어영 별장(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이 군을 거ᄂᆞ려 도젹 여라믄을 쥭이고, 동문 대장(東門大將) 신경진(申景禛)이 발군ᄒᆞ야 도젹을 쥭이다. 이십이 일의 ᄯᅩ 마부대(馬夫大)ㅣ 통ᄉᆞ(通事)ᄅᆞᆯ 보ᄂᆡ여 닐오ᄃᆡ, 이졔ᄂᆞᆫ 동궁(東宮)을 쳥티 아니니, 만일 왕ᄌᆞ 대신을 보ᄂᆡ면 뎡ᄒᆞ야 화친ᄒᆞ쟈 ᄒᆞᄃᆡ, 샹이 오히려 허티 아니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젹 여라문을 쥭이고, 신경진이 ᄯᅩ 셜흔아믄을 쥭이다. 샹이 ᄂᆡ졍(內廷)의셔 호군(犒軍)ᄒᆞ시다. (중략) 이십ᄉᆞ 일의 대위(大雨ㅣ) ᄂᆞ리니, 셩쳡(城堞) 직흰 군ᄉᆡ 다 젹시고 어러 쥭으 니 만흐니, 샹이 셰ᄌᆞ(世子)로 더브러 ᄯᅳᆯ 가온ᄃᆡ 셔셔 하ᄂᆞᆯ긔 비러 ᄀᆞᆯ오샤ᄃᆡ, “금일 이에 니ᄅᆞ기ᄂᆞᆫ 우리 부ᄌᆡ 득죄ᄒᆞ미니, 일셩 군민(一城軍民)이 무ᄉᆞᆷ 죄리잇고. 텬되(天道ㅣ) 우리 부ᄌᆞ의게 화ᄅᆞᆯ ᄂᆡ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오쇼셔.” 군신들이 드ᄅᆞ시기ᄅᆞᆯ 쳥ᄒᆞᄃᆡ 허티 아니ᄒᆞ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ᄎᆞ지 아니ᄒᆞ니, 셩듕인(城中人)이 감읍(感泣)디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 일의 극한(極寒)ᄒᆞ다. 묘당(廟堂)이 젹진의 ᄉᆞ신 보ᄂᆡ기ᄅᆞᆯ 쳥ᄒᆞ오니, 샹이 ᄀᆞᆯ오샤ᄃᆡ, “아국이 ᄆᆡ양 화친으로ᄡᅥ 져의게 쇽으니, 이졔 ᄯᅩ ᄉᆞ신을 보ᄂᆡ야 욕될 줄 아ᄃᆡ, 모든 의논이 이러ᄒᆞ니 이 셰시(歲時)라, 술, 고기ᄅᆞᆯ 보ᄂᆡ고 은합(銀盒)의 실과ᄅᆞᆯ 담아 ᄡᅥ 후졍(厚情)을 뵌 후, 인ᄒᆞ야 졉담(接談)ᄒᆞ야 긔ᄉᆡᆨ을 살피리라.”ᄒᆞ시다. 이십뉵 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이 술, 고기 은합을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ᄀᆞᆯ오ᄃᆡ, “군듕(軍中)의 날마다 쇼 잡고 보믈이 뫼ᄀᆞᆺ티 ᄡᅡ혀시니, 이거ᄉᆞᆯ 므어ᄉᆡ ᄡᅳ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 가히 스ᄉᆞ로 ᄡᅥᆷᄌᆞᆨᄒᆞ도다.”ᄒᆞ고, 드ᄃᆡ여 밧디 아니ᄒᆞ고, 도로 보ᄂᆡ니라. 이십칠 일의 날마다 셩듕의 구완ᄒᆞ라 오ᄂᆞᆫ 군ᄉᆡᄅᆞᆯ ᄇᆞ라ᄃᆡ 일인도 오ᄂᆞ니 업고더라. - 어느 궁녀, ‘산성일기’ - |
다음은 (나)의 26일에 있었던 조선과 청의 대화 장면을 가상으로 꾸며본 것이다. (나)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22일에 청이 아무 조건 없이 화친을 제안했다는 말은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
22일 마부대는 ‘만일 왕ᄌᆞ 대신을 보ᄂᆡ면 뎡ᄒᆞ야 화친ᄒᆞ쟈’고 하여 조건을 걸었고, 임금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 설 무렵이라 정을 보이려고 술과 고기를 보냈다는 말은 ‘이 셰시라, 술, 고기ᄅᆞᆯ 보ᄂᆡ고 … 후졍을 뵌 후’와 맞는다.
- 그런 것은 넘쳐나니 도로 가져가라는 말은 적장이 ‘이거ᄉᆞᆯ 므어ᄉᆡ ᄡᅳ리오’라며 받지 않고 돌려보낸 내용과 맞는다.
- 22일 제의 때 받았어야 했다는 말은 그날 임금이 화친 제의를 ‘허티 아니시다’는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