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습 목표: 중세 국어의 특징을 이해한다. • 학습 자료
•학습 자료의 활용 계획 ⓐ |
어두 자음군을 하나의 자음처럼 발음했다는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중세 국어의 ‘ᄡᅥ’ 같은 어두 자음군은 표기된 자음을 각각 발음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를 하나의 자음(된소리)처럼 발음한 사례로 제시할 수 없다.
- ‘孔子ㅣ’의 ‘ㅣ’는 ‘ㅣ’ 이외의 모음으로 끝난 체언 ‘ᄌᆞ’ 뒤에 쓰인 주격 조사로, 중세 국어의 주격 조사 사용 사례가 된다.
- ‘ᄉᆞᆯᄒᆞᆫ’은 체언 ‘ᄉᆞᆯㅎ’에 조사가 결합한 형태로, ‘ㅎ’ 종성 체언의 사례가 된다.
- ‘받ᄌᆞ온’의 ‘-ᄌᆞᆸ-’은 부모라는 객체를 높이는 객체 높임 선어말 어미의 사례가 된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다.’에서의 ‘만큼’과 ‘나도 너만큼은 공부를 잘 해.’의 ‘만큼’은 단어의 형태는 같으나 단어가 수행하는 기능은 다르다. 즉, 전자의 ‘만큼’은 의존명사이지만, 후자의 ‘만큼’은 조사이다. 의존명사의 경우는 앞말과 띄어 써야 하고 조사의 경우는 앞말에 붙여 써야 한다.
㉠ 집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하도록 해.
㉡ 부모님 말씀 대로 행동해야 한다.
㉢ 느낀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다.
㉤ 그 이야기는 소문으로 들었을뿐이다.
띄어쓰기가 올바른 것은 ‘도착하는 대로’와 ‘이것뿐이다’이다.
‘대로’와 ‘뿐’은 관형어 뒤에서는 의존 명사라 띄어 쓰고, 체언 뒤에서는 조사라 붙여 쓴다.
- ‘도착하는 대로’는 관형어 뒤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쓴 것이 맞다.
- ‘이것뿐이다’는 체언 뒤 조사이므로 붙여 쓴 것이 맞다.
- ‘말씀 대로’는 체언 뒤 조사이므로 ‘말씀대로’로 붙여 써야 한다.
- ‘느낀대로’는 관형어 뒤 의존 명사이므로 ‘느낀 대로’로 띄어 써야 한다.
- ‘들었을뿐이다’는 관형어 뒤 의존 명사이므로 ‘들었을 뿐이다’로 띄어 써야 한다.
| (가) 말을 그치며 홍련 형제 일어나 절하고 청학을 타고 반공에 솟아 가거늘, 부사가 그 말을 들으매 낱낱이 분명하니 자기가 흉녀에게 속은 줄 깨닫고 더욱 분노하여 날 새기 |
를 기다려 새벽에 좌기를 베풀고 좌수 부부를 성화같이 잡아들여 각별 다른 말은 묻지 아니하고 ㉠그 낙태한 것을 바삐 들이라 하여 살펴본 즉 낙태한 것이 아닌 줄 분명하매 좌우를 명하여 그 낙태한 것의 배를 가르라 하니 좌우가 영을 듣고 칼을 가지고 달려들어 배를 가르니 그 속에 쥐똥이 가득하였거늘 허다한 관속이 이를 보고 다
ⓐ흉녀의 흉계인 줄 알아 저마다 꾸짖으며, 홍련 형제가 애매히 처참하게 죽음을 가장 불쌍히 여기더라.
(나)
“ⓑ저의 무지 무식하온 죄는 성주의 처분에 있사오나 비록 시골의 변변하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온들 어찌 사리와 체모를 모르리잇고. 전실 장 씨 불쌍히 죽고 두 딸이 있사오매 부녀가 서로 위로하여 세월을 보내옵더니 후사를 아니 돌아보지 못하여 ⓒ후처를 얻사온즉 비록 어질지 못하오나 연하여 세 아들을 낳사오매 마음에 가장 기뻐하옵더니 하루는 제가 나갔다가 돌아온즉 흉녀가 문득 발연변색하고 하는 말이, ‘장화의 행실이 불측하여 낙태하였으니 들어가 보라.’ 하고 이불을 들추매 제가 놀라 어두운 눈에 본즉, ㉡과연 낙태한 것이 적실하오매 미련한 소견에 전혀 깨닫지 못하는 중 더욱 전처의 유언(遺言)을 아득히 잊고 흉계(凶計)에 빠져 죽인 것이 분명하오니 그 죄 만 번 죽어도 사양치 아니하나이다.”
(다)
“ⓓ소첩의 몸이 대대 거족으로 문중이 쇠잔하고 가세 탕패하던 차 좌수가 간청하므로 그 후처가 되오니 전실의 양녀가 있사오되 그 행동거지 심히 아름다옵기에 ⓔ친자식같이 양육하여 이십에 이르러는 저의 행사가 점점 불측하여 백가지 말에 한 말도 듣지 아니하고 성실치 못할 일이 많사와 원망이 심하옵기로 때때로 저를 경계하고 타일러 아무쪼록 사람이 되게 하옵더니 하루는 ㉢저희 형제의 비밀한 말을 우연히 엿듣사온즉 그 흉패한 말이 측량치 못할지라 마음에 가장 놀랍사와 가부더러 이른즉 반드시 모해하는 줄로 알 듯하여 다시금 생각하여 저를 먼저 죽여 내 마음을 펴고자 하여 가부를 속이고 죽인 것이 옳사오니 자백하오매 법에 따라 처치하시려니와 첩의 아들 장쇠는 이 일로 말미암아 천벌을 입어 이미 병신이 되었으니 죄를 사하소서.”
(라)
각설, 배 좌수가 국가 처분으로 흉녀를 능지하여 두 딸의 원혼을 위로하나 오히려 쾌한 것이 없으매 오직 여아의 애매히 죽음을 주야로 슬퍼하여 그 형용을 보는 듯 목소리를 듣는 듯 거의 미치기에 이를 듯하여 다만 다음 세상에 다시 부녀지의를 맺음을 종일 축원하는 중 집안에 살림할 이 없으매 그 지향할 곳이 더욱 없어 부득이 혼처를 구할새 향족 윤광호의 딸을 취하니 ㉣나이 십팔 세요, 용모와 재질이 비상하고 성품이 또한 온순하여 자못 숙녀의 풍도가 있는지라.
- 작자 미상,「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 중 지시하는 대상이 다른 것은?
지시 대상이 다른 것은 ⓑ ‘저’로, 진술하는 배 좌수 자신을 가리킨다.
나머지는 모두 장화·홍련을 모해한 후처(흉녀)를 가리킨다.
- ⓐ ‘흉녀’는 ‘흉녀의 흉계’라 하여 낙태 누명을 꾸민 후처를 가리킨다.
- ⓒ ‘후처’는 배 좌수가 전실 장 씨가 죽은 뒤 얻은 아내, 곧 흉녀이다.
- ⓓ ‘소첩’은 ‘좌수가 간청하므로 그 후처가 되오니’라고 말하는 후처 자신의 낮춤말이다.
| (가) 말을 그치며 홍련 형제 일어나 절하고 청학을 타고 반공에 솟아 가거늘, 부사가 그 말을 들으매 낱낱이 분명하니 자기가 흉녀에게 속은 줄 깨닫고 더욱 분노하여 날 새기 |
를 기다려 새벽에 좌기를 베풀고 좌수 부부를 성화같이 잡아들여 각별 다른 말은 묻지 아니하고 ㉠그 낙태한 것을 바삐 들이라 하여 살펴본 즉 낙태한 것이 아닌 줄 분명하매 좌우를 명하여 그 낙태한 것의 배를 가르라 하니 좌우가 영을 듣고 칼을 가지고 달려들어 배를 가르니 그 속에 쥐똥이 가득하였거늘 허다한 관속이 이를 보고 다
ⓐ흉녀의 흉계인 줄 알아 저마다 꾸짖으며, 홍련 형제가 애매히 처참하게 죽음을 가장 불쌍히 여기더라.
(나)
“ⓑ저의 무지 무식하온 죄는 성주의 처분에 있사오나 비록 시골의 변변하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온들 어찌 사리와 체모를 모르리잇고. 전실 장 씨 불쌍히 죽고 두 딸이 있사오매 부녀가 서로 위로하여 세월을 보내옵더니 후사를 아니 돌아보지 못하여 ⓒ후처를 얻사온즉 비록 어질지 못하오나 연하여 세 아들을 낳사오매 마음에 가장 기뻐하옵더니 하루는 제가 나갔다가 돌아온즉 흉녀가 문득 발연변색하고 하는 말이, ‘장화의 행실이 불측하여 낙태하였으니 들어가 보라.’ 하고 이불을 들추매 제가 놀라 어두운 눈에 본즉, ㉡과연 낙태한 것이 적실하오매 미련한 소견에 전혀 깨닫지 못하는 중 더욱 전처의 유언(遺言)을 아득히 잊고 흉계(凶計)에 빠져 죽인 것이 분명하오니 그 죄 만 번 죽어도 사양치 아니하나이다.”
(다)
“ⓓ소첩의 몸이 대대 거족으로 문중이 쇠잔하고 가세 탕패하던 차 좌수가 간청하므로 그 후처가 되오니 전실의 양녀가 있사오되 그 행동거지 심히 아름다옵기에 ⓔ친자식같이 양육하여 이십에 이르러는 저의 행사가 점점 불측하여 백가지 말에 한 말도 듣지 아니하고 성실치 못할 일이 많사와 원망이 심하옵기로 때때로 저를 경계하고 타일러 아무쪼록 사람이 되게 하옵더니 하루는 ㉢저희 형제의 비밀한 말을 우연히 엿듣사온즉 그 흉패한 말이 측량치 못할지라 마음에 가장 놀랍사와 가부더러 이른즉 반드시 모해하는 줄로 알 듯하여 다시금 생각하여 저를 먼저 죽여 내 마음을 펴고자 하여 가부를 속이고 죽인 것이 옳사오니 자백하오매 법에 따라 처치하시려니와 첩의 아들 장쇠는 이 일로 말미암아 천벌을 입어 이미 병신이 되었으니 죄를 사하소서.”
(라)
각설, 배 좌수가 국가 처분으로 흉녀를 능지하여 두 딸의 원혼을 위로하나 오히려 쾌한 것이 없으매 오직 여아의 애매히 죽음을 주야로 슬퍼하여 그 형용을 보는 듯 목소리를 듣는 듯 거의 미치기에 이를 듯하여 다만 다음 세상에 다시 부녀지의를 맺음을 종일 축원하는 중 집안에 살림할 이 없으매 그 지향할 곳이 더욱 없어 부득이 혼처를 구할새 향족 윤광호의 딸을 취하니 ㉣나이 십팔 세요, 용모와 재질이 비상하고 성품이 또한 온순하여 자못 숙녀의 풍도가 있는지라.
- 작자 미상,「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보기>를 참고할 때, ㉠∼㉣ 중 성격이 다른 것은?
서술자는 자신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직접 서술하거나, 인물의 시각에서 인물의 경험과 인식을 반영하여 서술한다. 즉 ‘서술’은 서술자가 담당하지만 ‘시각’은 서술자의 것일 수도, 인물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격이 다른 것은 ㉣으로, 서술자가 자신의 시각에서 새 부인의 나이·용모·성품을 직접 평가해 서술한다.
나머지는 모두 작중 인물의 말이나 인물의 경험·인식이 반영된 서술이다.
- ㉠은 진상을 깨달은 부사가 ‘그 낙태한 것을 바삐 들이라’고 명하는 인물의 말이다.
- ㉡은 배 좌수가 ‘어두운 눈에 본즉’ 낙태한 것이 적실하다고 여긴 자신의 인식을 진술한 것이다.
- ㉢은 후처가 형제의 비밀한 말을 엿들었다고 주장하는 자신의 경험을 진술한 것이다.
| (가) 말을 그치며 홍련 형제 일어나 절하고 청학을 타고 반공에 솟아 가거늘, 부사가 그 말을 들으매 낱낱이 분명하니 자기가 흉녀에게 속은 줄 깨닫고 더욱 분노하여 날 새기 |
를 기다려 새벽에 좌기를 베풀고 좌수 부부를 성화같이 잡아들여 각별 다른 말은 묻지 아니하고 ㉠그 낙태한 것을 바삐 들이라 하여 살펴본 즉 낙태한 것이 아닌 줄 분명하매 좌우를 명하여 그 낙태한 것의 배를 가르라 하니 좌우가 영을 듣고 칼을 가지고 달려들어 배를 가르니 그 속에 쥐똥이 가득하였거늘 허다한 관속이 이를 보고 다
ⓐ흉녀의 흉계인 줄 알아 저마다 꾸짖으며, 홍련 형제가 애매히 처참하게 죽음을 가장 불쌍히 여기더라.
(나)
“ⓑ저의 무지 무식하온 죄는 성주의 처분에 있사오나 비록 시골의 변변하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온들 어찌 사리와 체모를 모르리잇고. 전실 장 씨 불쌍히 죽고 두 딸이 있사오매 부녀가 서로 위로하여 세월을 보내옵더니 후사를 아니 돌아보지 못하여 ⓒ후처를 얻사온즉 비록 어질지 못하오나 연하여 세 아들을 낳사오매 마음에 가장 기뻐하옵더니 하루는 제가 나갔다가 돌아온즉 흉녀가 문득 발연변색하고 하는 말이, ‘장화의 행실이 불측하여 낙태하였으니 들어가 보라.’ 하고 이불을 들추매 제가 놀라 어두운 눈에 본즉, ㉡과연 낙태한 것이 적실하오매 미련한 소견에 전혀 깨닫지 못하는 중 더욱 전처의 유언(遺言)을 아득히 잊고 흉계(凶計)에 빠져 죽인 것이 분명하오니 그 죄 만 번 죽어도 사양치 아니하나이다.”
(다)
“ⓓ소첩의 몸이 대대 거족으로 문중이 쇠잔하고 가세 탕패하던 차 좌수가 간청하므로 그 후처가 되오니 전실의 양녀가 있사오되 그 행동거지 심히 아름다옵기에 ⓔ친자식같이 양육하여 이십에 이르러는 저의 행사가 점점 불측하여 백가지 말에 한 말도 듣지 아니하고 성실치 못할 일이 많사와 원망이 심하옵기로 때때로 저를 경계하고 타일러 아무쪼록 사람이 되게 하옵더니 하루는 ㉢저희 형제의 비밀한 말을 우연히 엿듣사온즉 그 흉패한 말이 측량치 못할지라 마음에 가장 놀랍사와 가부더러 이른즉 반드시 모해하는 줄로 알 듯하여 다시금 생각하여 저를 먼저 죽여 내 마음을 펴고자 하여 가부를 속이고 죽인 것이 옳사오니 자백하오매 법에 따라 처치하시려니와 첩의 아들 장쇠는 이 일로 말미암아 천벌을 입어 이미 병신이 되었으니 죄를 사하소서.”
(라)
각설, 배 좌수가 국가 처분으로 흉녀를 능지하여 두 딸의 원혼을 위로하나 오히려 쾌한 것이 없으매 오직 여아의 애매히 죽음을 주야로 슬퍼하여 그 형용을 보는 듯 목소리를 듣는 듯 거의 미치기에 이를 듯하여 다만 다음 세상에 다시 부녀지의를 맺음을 종일 축원하는 중 집안에 살림할 이 없으매 그 지향할 곳이 더욱 없어 부득이 혼처를 구할새 향족 윤광호의 딸을 취하니 ㉣나이 십팔 세요, 용모와 재질이 비상하고 성품이 또한 온순하여 자못 숙녀의 풍도가 있는지라.
- 작자 미상,「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에 부합하는 속담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에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가장 잘 어울린다.
후처는 친자식같이 길러 주었는데 오히려 딸이 말을 듣지 않고 ‘원망이 심하옵기로’라며, 잘못한 쪽이 도리어 원망한다고 호소한다. 적반하장은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남을 나무람을 이른다.
-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네’는 믿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해를 입었다는 뜻으로, 잘못한 쪽이 도리어 원망한다는 ⓔ의 핵심과 거리가 있다.
- ‘공든 탑이 무너져 버렸구나’는 정성 들인 일이 헛수고가 되었다는 한탄으로, 딸들이 도리어 원망한다는 ⓔ의 내용을 담지 못한다.
-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는 애쓰던 일이 실패해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 처지를 이르므로 맞지 않는다.
(가)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그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외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째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쿠앙과 양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나)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방금 우리가 나온 중국집 곁에 양품점의 쇼윈도가 있었다. 사내가 그쪽을 가리키며 우리를 끌어 당겼다.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갔다. “넥타이를 하나 골라 가져. 내 아내가 사주는 거야.” 사내가 호통을 쳤다. 우리는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들었고, 돈은 육백 원이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양품점에서 나왔다. “어디로 갈까?”라고 사내가 말했다. 갈 데는 계속해서 없었다. (라)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화재가 난 곳에 도착했다. 삼십 원이 없어졌다. 화재가 난 곳은 아래층인 페인트 상점이었는데 지금은 미용 학원 이층에서 불길이 창으로부터 뿜어 나오고 있었다. 경찰들의 호각 소리,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 불길 속에서 나는 탁탁 소리, 물줄기가 건물의 벽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 그러나 사람들의 소리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빛에 비쳐 무안당한 사람들처럼 붉은 얼굴로 정물처럼 서 있었다. 우리는 발밑에 굴러 있는 페인트 통을 하나씩 궁둥이 밑에 깔고 웅크리고 앉아서 불구경을 했다. 나는 불이 좀더 오래 타기를 바랐다. 미용 학원이라는 간판에 불이 붙고 있었다. ‘원’자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김 형, 우리 얘기나 합시다.”하고 안이 말했다. “화재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 밤에 미리 봤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저 화재는 김 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화재엔 흥미가 없습니다. 김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 |
윗글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은 작중 인물인 ‘나’가 서술자가 되어 사건을 전달함으로써 현장감을 높인다.
‘내가 물었다’, ‘우리는 승낙했다’처럼 사건에 직접 참여한 1인칭 서술자가 보고 겪은 대로 서술한다.
- 인물의 내면 의식을 길게 서술해 성격을 드러내기보다 대화와 행동 위주로 전개되므로 맞지 않다.
- 서술자 ‘나’ 자신이 사건의 중심에 함께 있어, 다른 인물이 주인공을 관찰해 신빙성을 얻는 방식으로 보기 어렵다.
- 장면은 중국집·양품점·화재 현장으로 옮겨 가지만, 인물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그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외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째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쿠앙과 양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나)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방금 우리가 나온 중국집 곁에 양품점의 쇼윈도가 있었다. 사내가 그쪽을 가리키며 우리를 끌어 당겼다.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갔다. “넥타이를 하나 골라 가져. 내 아내가 사주는 거야.” 사내가 호통을 쳤다. 우리는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들었고, 돈은 육백 원이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양품점에서 나왔다. “어디로 갈까?”라고 사내가 말했다. 갈 데는 계속해서 없었다. (라)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화재가 난 곳에 도착했다. 삼십 원이 없어졌다. 화재가 난 곳은 아래층인 페인트 상점이었는데 지금은 미용 학원 이층에서 불길이 창으로부터 뿜어 나오고 있었다. 경찰들의 호각 소리,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 불길 속에서 나는 탁탁 소리, 물줄기가 건물의 벽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 그러나 사람들의 소리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빛에 비쳐 무안당한 사람들처럼 붉은 얼굴로 정물처럼 서 있었다. 우리는 발밑에 굴러 있는 페인트 통을 하나씩 궁둥이 밑에 깔고 웅크리고 앉아서 불구경을 했다. 나는 불이 좀더 오래 타기를 바랐다. 미용 학원이라는 간판에 불이 붙고 있었다. ‘원’자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김 형, 우리 얘기나 합시다.”하고 안이 말했다. “화재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 밤에 미리 봤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저 화재는 김 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화재엔 흥미가 없습니다. 김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 |
<보기>가 들어갈 가장 적절한 곳은?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는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천 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는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 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 버렸단 말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 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그저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하고 아저씨가 말했다. “어디로 갈까?”안이 말하고, “어디로 갈까?”라고 나도 그들의 말을 흉내 냈다.
<보기>는 (나)와 (다) 사이에 들어가야 한다.
<보기>는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로 시작해 ‘어디로 갈까?’로 끝나는데, (다)는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방금 우리가 나온 중국집 곁에’로 이어진다.
- (가)와 (나)는 모두 중국집 안에서 사내가 사연을 털어놓는 장면이므로 그 사이에 거리로 나온 장면이 올 수 없다.
- (다)와 (라) 사이는 이미 양품점을 나온 뒤이므로 중국집에서 막 나온 장면이 오기에 늦다.
- (라) 뒤는 화재 현장 장면 이후이므로 시간 순서가 맞지 않는다.
(가)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그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외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째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쿠앙과 양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나)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방금 우리가 나온 중국집 곁에 양품점의 쇼윈도가 있었다. 사내가 그쪽을 가리키며 우리를 끌어 당겼다.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갔다. “넥타이를 하나 골라 가져. 내 아내가 사주는 거야.” 사내가 호통을 쳤다. 우리는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들었고, 돈은 육백 원이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양품점에서 나왔다. “어디로 갈까?”라고 사내가 말했다. 갈 데는 계속해서 없었다. (라)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화재가 난 곳에 도착했다. 삼십 원이 없어졌다. 화재가 난 곳은 아래층인 페인트 상점이었는데 지금은 미용 학원 이층에서 불길이 창으로부터 뿜어 나오고 있었다. 경찰들의 호각 소리,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 불길 속에서 나는 탁탁 소리, 물줄기가 건물의 벽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 그러나 사람들의 소리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빛에 비쳐 무안당한 사람들처럼 붉은 얼굴로 정물처럼 서 있었다. 우리는 발밑에 굴러 있는 페인트 통을 하나씩 궁둥이 밑에 깔고 웅크리고 앉아서 불구경을 했다. 나는 불이 좀더 오래 타기를 바랐다. 미용 학원이라는 간판에 불이 붙고 있었다. ‘원’자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김 형, 우리 얘기나 합시다.”하고 안이 말했다. “화재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 밤에 미리 봤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저 화재는 김 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화재엔 흥미가 없습니다. 김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 |
<보기>에서 ㉠∼㉤의 상황을 바르게 이해한 것으로 묶은 것은?
ㄱ. 사내가 ⓒ를 한 이유는 ⓐ 때문이다.
ㄴ. 나는 ⓒ의 상황을 알지 못해 ⓑ로 되묻고 있다.
ㄷ. 사내는 ⓒ의 결과로 ⓓ를 갖게 되었다.
ㄹ. 사내의 ⓓ는 ⓔ를 요청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ㅁ. 사내가 ⓕ처럼 반응한 것은 ⓔ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바르게 이해한 것은 ㄱ, ㄴ, ㄷ, ㄹ이다.
사내의 ‘함께 있어 주십시오’라는 요청에 대해 ‘우리는 승낙했다’고 하므로, 요청이 좌절되었다는 이해는 틀렸다.
- ㄱ: 처갓집이 어딘지 몰라 ‘할 수 없었어요’라고 하므로, 시체를 판 이유가 ⓐ라는 이해는 맞다.
- ㄴ: ‘나’는 무엇을 할 수 없었는지 몰라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라고 되묻고 있다.
- ㄷ: 시체를 병원에 판 결과로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라 하여 돈을 갖게 되었다.
- ㄹ: 사내는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라며 돈을 계기로 동행을 요청한다.
- ㅁ: 요청은 받아들여졌으므로, 힘없는 음성은 좌절 때문이 아니라 아내를 잃은 슬픔과 허무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가)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그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외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째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쿠앙과 양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나)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 (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방금 우리가 나온 중국집 곁에 양품점의 쇼윈도가 있었다. 사내가 그쪽을 가리키며 우리를 끌어 당겼다.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갔다. “넥타이를 하나 골라 가져. 내 아내가 사주는 거야.” 사내가 호통을 쳤다. 우리는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들었고, 돈은 육백 원이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양품점에서 나왔다. “어디로 갈까?”라고 사내가 말했다. 갈 데는 계속해서 없었다. (라)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화재가 난 곳에 도착했다. 삼십 원이 없어졌다. 화재가 난 곳은 아래층인 페인트 상점이었는데 지금은 미용 학원 이층에서 불길이 창으로부터 뿜어 나오고 있었다. 경찰들의 호각 소리,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 불길 속에서 나는 탁탁 소리, 물줄기가 건물의 벽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 그러나 사람들의 소리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빛에 비쳐 무안당한 사람들처럼 붉은 얼굴로 정물처럼 서 있었다. 우리는 발밑에 굴러 있는 페인트 통을 하나씩 궁둥이 밑에 깔고 웅크리고 앉아서 불구경을 했다. 나는 불이 좀더 오래 타기를 바랐다. 미용 학원이라는 간판에 불이 붙고 있었다. ‘원’자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김 형, 우리 얘기나 합시다.”하고 안이 말했다. “화재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 밤에 미리 봤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저 화재는 김 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화재엔 흥미가 없습니다. 김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 |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넥타이를 사 주는 모습에서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읽는 감상이 적절하지 않다.
넥타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다 써버리고 싶은’ 사내의 허무한 탕진의 하나일 뿐이며, ‘갈 데는 계속해서 없었다’처럼 인물들은 끝내 소통과 연대를 이루지 못한다.
-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는 반복에서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도시인의 비애를 읽을 수 있다.
- ‘불이 좀더 오래 타기를 바랐다’는 ‘나’의 태도에서 타인의 아픔에 무관심한 이기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 ‘저 화재는 김 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라는 안의 말에서 연대감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1.순 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1)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2)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는 것
(3)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나는 것
2.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1)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2) 뒷말의 첫소리 ‘ㄴ, ㅁ'앞에서 ‘ㄴ’소리가 덧나는 것
(3)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3.두 음절로 된 다음 한자어: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 대+잎 ㉡ 아래+마을 ㉢ 머리+말
㉣ 코+병 ㉤ 위+층 ㉥ 개(個)+수(數)
사이시옷을 적을 수 있는 것은 ‘댓잎’, ‘아랫마을’, ‘콧병’이다.
사이시옷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합성어에서 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ㄴ’·‘ㄴㄴ’ 소리가 덧날 때 적는다.
- 대+잎은 [댄닙]으로 ‘ㄴㄴ’ 소리가 덧나므로 ‘댓잎’으로 적는다.
- 아래+마을은 [아랜마을]로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므로 ‘아랫마을’로 적는다.
- 코+병(病)은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합성어로 [코뼝]처럼 된소리가 나므로 ‘콧병’으로 적는다.
- 머리+말은 [머리말]로 소리의 변화가 없으므로 ‘머리말’로 적는다.
- 위+층은 뒷말 첫소리가 이미 거센소리라 사이시옷을 적지 않고 ‘위층’으로 적는다.
- 개수(個數)는 한자어끼리의 합성어로 예외 여섯 단어에 들지 않으므로 ‘개수’로 적는다.
고전은 왜 읽는가? 고전 속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지혜가 살아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고전은 시간을 타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쓰인 고전이 지금도 힘이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자기 성취를 위해 애쓰고, 좋은 배우자를 얻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누리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집과 많은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이 세상에 왔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을까?
연암 박지원 선생의 글 두 편에서 그 대답을 찾아본다. 먼저 ‘창애에게 답하다’[답창애(答蒼厓)]란 편지글에는 문득 눈이 뜨인, 앞을 못 보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 년 동안 앞을 못 보며 살던 사람이 길 가던 도중에 갑자기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늘 꿈꾸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앞을 못 보는 삶에 길들여져 있던 그는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엄청난 정보를 도저히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기 집마저 찾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답답하여 길에서 울며 서 있는 그에게 화담 선생은 도로 눈을 감고 지팡이에게 길을 물으라는 ㉠처방을 내려 준다.
또 ‘하룻밤에 아홉 번 강물을 건넌 이야기’[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는 황하를 건널 때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이유를 설명했다. 거센 물결의 소용돌이를 직접 보면 그만 현기증이 나서 물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결 소리는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하지만 한밤중에 강물을 건널 때에는 온통 압도해 오는 물소리 때문에 모두들 공포에 덜덜 떨었다. 연암은 결국 눈과 귀는 전혀 믿을 것이 못 되고, 마음을 텅 비워 바깥 사물에 ㉡현혹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결론을 맺는다.
이 두 이야기는 사실은 복잡한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사람들은 날마다 수없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한다. 그런데 정보의 양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그 속에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게 되면, 갑자기 앞을 보게 된 그 사람처럼 제집조차 못 찾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는 것이 도리어 강물에 휩쓸리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뜨는 것은 더없이 기쁘고 좋은 일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기 집을 잃고 미아가 되거나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차라리 눈과 귀를 믿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한편, 길 가다가 문득 눈이 뜨인 그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눈을 감고 지팡이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한번 뜨인 눈을 다시 감을 수는 없다. 그의 문제는 길 가는 도중에 눈을 뜨는 바람에 제집을 찾지 못하게 된 데서 생겼다. 그러니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집을 찾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에 눈을 똑바로 뜨고 제집 대문 색깔과 골목의 위치를 잘 확인하고 나오면 된다. 그때부터는 지팡이가 전혀 필요 없다.
그 사람에게 눈을 도로 감으라는 것은 앞을 못 보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강물을 건널 때 물결을 보지 않으려고 하늘을 우러르고, 밤중에 강물 소리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변화는 그다음에 온다. 길은 눈먼 사람만 잃고 헤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날마다 길을 잃고 헤맨다. 운전자들은 차에 내비게이션을 달고도 길을 놓쳐 번번이 당황한다. 새로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여전히 혼란스럽다. 물결은 어디서나 밀려오고, 소음은 항상 마음을 어지럽힌다.
고전은 ‘창애에게 답하다’에 나오는 그 지팡이와 같다.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알려 준다. 지팡이가 있으면 길에서 계속 울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단 눈을 뜨고 나면 지팡이의 ㉢존재를 까맣게 잊는다. 그러고는 집을 못 찾겠다며 길에서 운다. 고전은 그러한 사람에게 길을 알려 주는 든든한 지팡이다. 뱃길을 잃고 캄캄한 밤바다를 헤매는 배에게 멀리서 방향을 일러 주는 듬직한 등댓불이다.
사물이 익숙해지면 지팡이는 필요 없다. 환한 대낮에는 등댓불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막 새롭게 눈을 뜬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뱃길을 벗어나 밤바다를 헤매는 배에게는 등댓불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는 길을 놓칠 때마다 고전을 통해 문제의 중심 위에 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긴 호흡으로 여러 분야의 고전들을 꾸준히 ㉣섭렵하는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별 문제가 없어도 문제는 늘 다시 생겨난다. 밤중에 길 잃는 배는 항상 있게 마련이라 등대는 밤마다 불을 밝힌다. 평소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고전은 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삶이 문득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할 때 고전의 힘은 눈먼 사람의 지팡이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으려면 평소에 생각의 힘을 든든하게 길러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다양한 고전을 늘 가까이에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 속에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깨달음을 얻게 될 때의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고전에 대한 든든한 신뢰를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고전을 늘 가까이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 정민, ‘고전으로 무너진 중심을 다시 세워라’ -
다음 중 ㉠∼㉣의 문맥적 의미와 다르게 사용된 것은?
문맥적 의미가 다른 것은 ‘존재’가 ‘남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뜻으로 쓰인 문장이다.
윗글의 ‘지팡이의 존재를 까맣게 잊는다’에서 존재(存在)는 실제로 있음을 뜻하지만, 이 문장의 존재는 위상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 처방(處方)은 지문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비유적 의미로 쓰였다.
- 현혹(眩惑)은 지문과 같이 정신을 빼앗겨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 섭렵(涉獵)은 지문과 같이 여러 책을 널리 읽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고전은 왜 읽는가? 고전 속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지혜가 살아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고전은 시간을 타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쓰인 고전이 지금도 힘이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자기 성취를 위해 애쓰고, 좋은 배우자를 얻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누리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집과 많은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이 세상에 왔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을까?
연암 박지원 선생의 글 두 편에서 그 대답을 찾아본다. 먼저 ‘창애에게 답하다’[답창애(答蒼厓)]란 편지글에는 문득 눈이 뜨인, 앞을 못 보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 년 동안 앞을 못 보며 살던 사람이 길 가던 도중에 갑자기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늘 꿈꾸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앞을 못 보는 삶에 길들여져 있던 그는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엄청난 정보를 도저히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기 집마저 찾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답답하여 길에서 울며 서 있는 그에게 화담 선생은 도로 눈을 감고 지팡이에게 길을 물으라는 ㉠처방을 내려 준다.
또 ‘하룻밤에 아홉 번 강물을 건넌 이야기’[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는 황하를 건널 때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이유를 설명했다. 거센 물결의 소용돌이를 직접 보면 그만 현기증이 나서 물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결 소리는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하지만 한밤중에 강물을 건널 때에는 온통 압도해 오는 물소리 때문에 모두들 공포에 덜덜 떨었다. 연암은 결국 눈과 귀는 전혀 믿을 것이 못 되고, 마음을 텅 비워 바깥 사물에 ㉡현혹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결론을 맺는다.
이 두 이야기는 사실은 복잡한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사람들은 날마다 수없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한다. 그런데 정보의 양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그 속에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게 되면, 갑자기 앞을 보게 된 그 사람처럼 제집조차 못 찾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는 것이 도리어 강물에 휩쓸리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뜨는 것은 더없이 기쁘고 좋은 일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기 집을 잃고 미아가 되거나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차라리 눈과 귀를 믿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한편, 길 가다가 문득 눈이 뜨인 그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눈을 감고 지팡이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한번 뜨인 눈을 다시 감을 수는 없다. 그의 문제는 길 가는 도중에 눈을 뜨는 바람에 제집을 찾지 못하게 된 데서 생겼다. 그러니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집을 찾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에 눈을 똑바로 뜨고 제집 대문 색깔과 골목의 위치를 잘 확인하고 나오면 된다. 그때부터는 지팡이가 전혀 필요 없다.
그 사람에게 눈을 도로 감으라는 것은 앞을 못 보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강물을 건널 때 물결을 보지 않으려고 하늘을 우러르고, 밤중에 강물 소리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변화는 그다음에 온다. 길은 눈먼 사람만 잃고 헤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날마다 길을 잃고 헤맨다. 운전자들은 차에 내비게이션을 달고도 길을 놓쳐 번번이 당황한다. 새로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여전히 혼란스럽다. 물결은 어디서나 밀려오고, 소음은 항상 마음을 어지럽힌다.
고전은 ‘창애에게 답하다’에 나오는 그 지팡이와 같다.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알려 준다. 지팡이가 있으면 길에서 계속 울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단 눈을 뜨고 나면 지팡이의 ㉢존재를 까맣게 잊는다. 그러고는 집을 못 찾겠다며 길에서 운다. 고전은 그러한 사람에게 길을 알려 주는 든든한 지팡이다. 뱃길을 잃고 캄캄한 밤바다를 헤매는 배에게 멀리서 방향을 일러 주는 듬직한 등댓불이다.
사물이 익숙해지면 지팡이는 필요 없다. 환한 대낮에는 등댓불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막 새롭게 눈을 뜬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뱃길을 벗어나 밤바다를 헤매는 배에게는 등댓불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는 길을 놓칠 때마다 고전을 통해 문제의 중심 위에 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긴 호흡으로 여러 분야의 고전들을 꾸준히 ㉣섭렵하는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별 문제가 없어도 문제는 늘 다시 생겨난다. 밤중에 길 잃는 배는 항상 있게 마련이라 등대는 밤마다 불을 밝힌다. 평소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고전은 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삶이 문득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할 때 고전의 힘은 눈먼 사람의 지팡이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으려면 평소에 생각의 힘을 든든하게 길러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다양한 고전을 늘 가까이에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 속에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깨달음을 얻게 될 때의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고전에 대한 든든한 신뢰를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고전을 늘 가까이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 정민, ‘고전으로 무너진 중심을 다시 세워라’ -
윗글의 주된 전개 방식으로 보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은 예시와 비유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핵심 논지를 쉽게 전달한다.
연암의 두 이야기를 예로 들고, 고전을 ‘지팡이’와 ‘등댓불’에 빗대어 그 필요성을 설명한다.
- 논지는 처음부터 고전의 가치로 일관되므로 점층적 심화로 예상 밖의 주제를 끌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 대조적인 내용을 병렬로 배열하지 않고 같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을 제시한다.
- 두 이야기는 같은 깨달음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쓰였을 뿐 서로 비교·대조되지 않는다.
고전은 왜 읽는가? 고전 속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지혜가 살아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고전은 시간을 타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쓰인 고전이 지금도 힘이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자기 성취를 위해 애쓰고, 좋은 배우자를 얻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누리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집과 많은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이 세상에 왔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을까?
연암 박지원 선생의 글 두 편에서 그 대답을 찾아본다. 먼저 ‘창애에게 답하다’[답창애(答蒼厓)]란 편지글에는 문득 눈이 뜨인, 앞을 못 보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 년 동안 앞을 못 보며 살던 사람이 길 가던 도중에 갑자기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늘 꿈꾸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앞을 못 보는 삶에 길들여져 있던 그는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엄청난 정보를 도저히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기 집마저 찾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답답하여 길에서 울며 서 있는 그에게 화담 선생은 도로 눈을 감고 지팡이에게 길을 물으라는 ㉠처방을 내려 준다.
또 ‘하룻밤에 아홉 번 강물을 건넌 이야기’[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는 황하를 건널 때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이유를 설명했다. 거센 물결의 소용돌이를 직접 보면 그만 현기증이 나서 물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결 소리는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하지만 한밤중에 강물을 건널 때에는 온통 압도해 오는 물소리 때문에 모두들 공포에 덜덜 떨었다. 연암은 결국 눈과 귀는 전혀 믿을 것이 못 되고, 마음을 텅 비워 바깥 사물에 ㉡현혹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결론을 맺는다.
이 두 이야기는 사실은 복잡한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사람들은 날마다 수없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한다. 그런데 정보의 양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그 속에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게 되면, 갑자기 앞을 보게 된 그 사람처럼 제집조차 못 찾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는 것이 도리어 강물에 휩쓸리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뜨는 것은 더없이 기쁘고 좋은 일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기 집을 잃고 미아가 되거나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차라리 눈과 귀를 믿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한편, 길 가다가 문득 눈이 뜨인 그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눈을 감고 지팡이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한번 뜨인 눈을 다시 감을 수는 없다. 그의 문제는 길 가는 도중에 눈을 뜨는 바람에 제집을 찾지 못하게 된 데서 생겼다. 그러니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집을 찾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에 눈을 똑바로 뜨고 제집 대문 색깔과 골목의 위치를 잘 확인하고 나오면 된다. 그때부터는 지팡이가 전혀 필요 없다.
그 사람에게 눈을 도로 감으라는 것은 앞을 못 보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강물을 건널 때 물결을 보지 않으려고 하늘을 우러르고, 밤중에 강물 소리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변화는 그다음에 온다. 길은 눈먼 사람만 잃고 헤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날마다 길을 잃고 헤맨다. 운전자들은 차에 내비게이션을 달고도 길을 놓쳐 번번이 당황한다. 새로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여전히 혼란스럽다. 물결은 어디서나 밀려오고, 소음은 항상 마음을 어지럽힌다.
고전은 ‘창애에게 답하다’에 나오는 그 지팡이와 같다.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알려 준다. 지팡이가 있으면 길에서 계속 울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단 눈을 뜨고 나면 지팡이의 ㉢존재를 까맣게 잊는다. 그러고는 집을 못 찾겠다며 길에서 운다. 고전은 그러한 사람에게 길을 알려 주는 든든한 지팡이다. 뱃길을 잃고 캄캄한 밤바다를 헤매는 배에게 멀리서 방향을 일러 주는 듬직한 등댓불이다.
사물이 익숙해지면 지팡이는 필요 없다. 환한 대낮에는 등댓불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막 새롭게 눈을 뜬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뱃길을 벗어나 밤바다를 헤매는 배에게는 등댓불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는 길을 놓칠 때마다 고전을 통해 문제의 중심 위에 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긴 호흡으로 여러 분야의 고전들을 꾸준히 ㉣섭렵하는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별 문제가 없어도 문제는 늘 다시 생겨난다. 밤중에 길 잃는 배는 항상 있게 마련이라 등대는 밤마다 불을 밝힌다. 평소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고전은 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삶이 문득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할 때 고전의 힘은 눈먼 사람의 지팡이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으려면 평소에 생각의 힘을 든든하게 길러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다양한 고전을 늘 가까이에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 속에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깨달음을 얻게 될 때의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고전에 대한 든든한 신뢰를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고전을 늘 가까이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 정민, ‘고전으로 무너진 중심을 다시 세워라’ -
윗글이 전제로 하고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은?
윗글의 전제가 아닌 것은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다.
글쓴이는 ‘눈을 도로 감으라는 것은 앞을 못 보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모르는 상태로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집을 찾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에’에서 일의 선후를 가려야 한다는 전제가 드러난다.
-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에서 삶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드러난다.
- 갑자기 눈을 뜬 사람이 ‘자기 집마저 찾지 못하는’ 데서 낯선 환경 앞에서 혼란에 빠진다는 전제가 드러난다.
최근 몇십 년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신고전파 경제학은 특유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국가의 개입은 시장의 결함이 극도로 심화된 이후에야 나타나야 할 ㉠인위적 대체물로 본다.
( 가 ) 태초에 시장은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경제 사학자들에 따르면, 시장 체제는 인류의 경제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고, 발생 단계부터 거의 항상 국가의 개입에 의존해 왔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더욱 그랬다. 폴라니는 그의 고전적 저작인 “대전환”을 통해 ‘자연 발생적으로’ 시장 경제가 나타난 것으로 흔히 간주되는 영국에서조차 시장의 발생에 정부가 결정적 역할을 해냈음을 보여 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자유 시장으로 가는 길은 정부가 꾸준히 개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유지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자유’의 개념을 인간 사회에 실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토지의 사유를 제도화한 인클로저 법들의 조항은 얼마나 복잡하였던가. 시장 개혁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관료적 통제가 필요하였던가?”
미국에서도 초기 산업화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소유권의 확립, 주요 사회 간접 시설의 건설, 농업 연구에 대한 자금 공급 등을 통한 정부의 개입이었다.
( 나 ) 미국은 ㉢‘유치산업 보호’라는 아이디어의 발생지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의 100년 동안 산업 보호 장벽이 가장 견고하였던 나라였다.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 가운데, 정부가 경제 발전에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물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맞서 복지 국가 체계를 수립한 비스마르크의 독일, 전후(戰後) 산업 복구 정책을 편 프랑스, 국가적으로 연구 개발을 지원한 스웨덴, 공기업 부문을 통해 제조업의 발전을 이룬 오스트리아, 국가의 주도로 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가 그것이다. 정부의 개입 형태는 이렇듯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
의 국가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은 사
실상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이라는 ㉣‘비(非)자연적 방
법’을 통하여 발전해 왔다. ( 다 ) 시장을 인위적 개입이
| 없는 자연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실제 사실이 아닌 희망 사항에 기반을 둔 것이다. 시장 제도가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지의 여부는 한 나라의 경제 정책 설계에 관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테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던 많은 나라들은 한동안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이것은 ‘잘 작동하는’ 정부 없이 ‘잘 작동하는’ 시장 경제를 건설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믿는 대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진화한다면, 이 옛 공산 국가들은 진작 그 같은 혼란에서 빠져 나왔어야만 한다. 또한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경제 발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라 할 것이다. |
빈칸 (가)∼(다)에 들어갈 말을 순서대로 적은 것은?
빈칸에는 순서대로 ‘그러나 – 게다가 – 그러므로’가 들어간다.
(가)는 신고전파의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를 뒤집으므로 역접, (나)는 미국의 정부 개입 사례를 덧붙이므로 첨가, (다)는 앞의 사례들로부터 결론을 이끌므로 인과의 접속어가 알맞다.
- (가)에 ‘그러므로’나 ‘그리고’를 넣으면 신고전파 주장과 ‘태초에 시장은 없었다’의 반박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 (나)에 ‘반면’을 넣으면 같은 방향의 미국 사례를 대조하는 것이 되어 맞지 않는다.
- (다)에 ‘그러나’를 넣으면 앞 내용을 요약하는 결론이 반대 내용처럼 되어 맞지 않는다.
최근 몇십 년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신고전파 경제학은 특유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국가의 개입은 시장의 결함이 극도로 심화된 이후에야 나타나야 할 ㉠인위적 대체물로 본다.
( 가 ) 태초에 시장은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경제 사학자들에 따르면, 시장 체제는 인류의 경제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고, 발생 단계부터 거의 항상 국가의 개입에 의존해 왔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더욱 그랬다. 폴라니는 그의 고전적 저작인 “대전환”을 통해 ‘자연 발생적으로’ 시장 경제가 나타난 것으로 흔히 간주되는 영국에서조차 시장의 발생에 정부가 결정적 역할을 해냈음을 보여 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자유 시장으로 가는 길은 정부가 꾸준히 개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유지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자유’의 개념을 인간 사회에 실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토지의 사유를 제도화한 인클로저 법들의 조항은 얼마나 복잡하였던가. 시장 개혁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관료적 통제가 필요하였던가?”
미국에서도 초기 산업화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소유권의 확립, 주요 사회 간접 시설의 건설, 농업 연구에 대한 자금 공급 등을 통한 정부의 개입이었다.
( 나 ) 미국은 ㉢‘유치산업 보호’라는 아이디어의 발생지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의 100년 동안 산업 보호 장벽이 가장 견고하였던 나라였다.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 가운데, 정부가 경제 발전에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물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맞서 복지 국가 체계를 수립한 비스마르크의 독일, 전후(戰後) 산업 복구 정책을 편 프랑스, 국가적으로 연구 개발을 지원한 스웨덴, 공기업 부문을 통해 제조업의 발전을 이룬 오스트리아, 국가의 주도로 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가 그것이다. 정부의 개입 형태는 이렇듯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
의 국가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은 사
실상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이라는 ㉣‘비(非)자연적 방
법’을 통하여 발전해 왔다. ( 다 ) 시장을 인위적 개입이
| 없는 자연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실제 사실이 아닌 희망 사항에 기반을 둔 것이다. 시장 제도가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지의 여부는 한 나라의 경제 정책 설계에 관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테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던 많은 나라들은 한동안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이것은 ‘잘 작동하는’ 정부 없이 ‘잘 작동하는’ 시장 경제를 건설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믿는 대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진화한다면, 이 옛 공산 국가들은 진작 그 같은 혼란에서 빠져 나왔어야만 한다. 또한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경제 발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라 할 것이다. |
윗글의 내용전개 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은 특정 이론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구체적 사례로 뒷받침한다.
‘시장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을 반박하며, 영국·미국·독일·프랑스·한국 등 국가 개입의 사례를 든다.
- 이론이 형성된 과정을 시대순으로 정리하거나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이 아니다.
- 두 이론을 비교해 각각의 장단점을 제시하지 않고 한쪽 견해를 비판한다.
- 이론의 사회적 의의를 밝히거나 종류를 나누어 분석하는 내용은 없다.
최근 몇십 년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신고전파 경제학은 특유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국가의 개입은 시장의 결함이 극도로 심화된 이후에야 나타나야 할 ㉠인위적 대체물로 본다.
( 가 ) 태초에 시장은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경제 사학자들에 따르면, 시장 체제는 인류의 경제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고, 발생 단계부터 거의 항상 국가의 개입에 의존해 왔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더욱 그랬다. 폴라니는 그의 고전적 저작인 “대전환”을 통해 ‘자연 발생적으로’ 시장 경제가 나타난 것으로 흔히 간주되는 영국에서조차 시장의 발생에 정부가 결정적 역할을 해냈음을 보여 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자유 시장으로 가는 길은 정부가 꾸준히 개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유지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자유’의 개념을 인간 사회에 실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토지의 사유를 제도화한 인클로저 법들의 조항은 얼마나 복잡하였던가. 시장 개혁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관료적 통제가 필요하였던가?”
미국에서도 초기 산업화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소유권의 확립, 주요 사회 간접 시설의 건설, 농업 연구에 대한 자금 공급 등을 통한 정부의 개입이었다.
( 나 ) 미국은 ㉢‘유치산업 보호’라는 아이디어의 발생지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의 100년 동안 산업 보호 장벽이 가장 견고하였던 나라였다.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 가운데, 정부가 경제 발전에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물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맞서 복지 국가 체계를 수립한 비스마르크의 독일, 전후(戰後) 산업 복구 정책을 편 프랑스, 국가적으로 연구 개발을 지원한 스웨덴, 공기업 부문을 통해 제조업의 발전을 이룬 오스트리아, 국가의 주도로 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가 그것이다. 정부의 개입 형태는 이렇듯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
의 국가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은 사
실상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이라는 ㉣‘비(非)자연적 방
법’을 통하여 발전해 왔다. ( 다 ) 시장을 인위적 개입이
| 없는 자연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실제 사실이 아닌 희망 사항에 기반을 둔 것이다. 시장 제도가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지의 여부는 한 나라의 경제 정책 설계에 관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테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던 많은 나라들은 한동안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이것은 ‘잘 작동하는’ 정부 없이 ‘잘 작동하는’ 시장 경제를 건설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믿는 대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진화한다면, 이 옛 공산 국가들은 진작 그 같은 혼란에서 빠져 나왔어야만 한다. 또한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경제 발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라 할 것이다. |
윗글과 <보기>를 비교하여 이해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시장과 정부는 경제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와 같다. 때로는 서로 잘 맞물려 수레를 잘 굴러가게 하지만, 서로 갈등을 빚으며 좌충우돌하고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정책 당국자가 정부가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장의 흐름과 상충되는 정책이 발표되면, 비록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시장의 흐름이 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성공하는 정책일수록 시장 친화적이어야 한다. 정부의 ‘보이는 손’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오히려 거의 모든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되고,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윗글과 달리 <보기>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기>는 ‘거의 모든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되고,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이다’라고 하지만, 윗글은 정부 없이 잘 작동하는 시장 경제를 건설할 수 없다고 본다.
- 정부가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보기>의 입장일 뿐 윗글과 같은 주장이 아니다.
- <보기>는 정부의 ‘보이는 손’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하므로 결정적 요인이라는 이해는 틀렸다.
-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윗글의 주장이며 <보기>는 이에 반대한다.
최근 몇십 년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신고전파 경제학은 특유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국가의 개입은 시장의 결함이 극도로 심화된 이후에야 나타나야 할 ㉠인위적 대체물로 본다.
( 가 ) 태초에 시장은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경제 사학자들에 따르면, 시장 체제는 인류의 경제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고, 발생 단계부터 거의 항상 국가의 개입에 의존해 왔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더욱 그랬다. 폴라니는 그의 고전적 저작인 “대전환”을 통해 ‘자연 발생적으로’ 시장 경제가 나타난 것으로 흔히 간주되는 영국에서조차 시장의 발생에 정부가 결정적 역할을 해냈음을 보여 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자유 시장으로 가는 길은 정부가 꾸준히 개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유지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자유’의 개념을 인간 사회에 실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토지의 사유를 제도화한 인클로저 법들의 조항은 얼마나 복잡하였던가. 시장 개혁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관료적 통제가 필요하였던가?”
미국에서도 초기 산업화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소유권의 확립, 주요 사회 간접 시설의 건설, 농업 연구에 대한 자금 공급 등을 통한 정부의 개입이었다.
( 나 ) 미국은 ㉢‘유치산업 보호’라는 아이디어의 발생지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의 100년 동안 산업 보호 장벽이 가장 견고하였던 나라였다.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 가운데, 정부가 경제 발전에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물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맞서 복지 국가 체계를 수립한 비스마르크의 독일, 전후(戰後) 산업 복구 정책을 편 프랑스, 국가적으로 연구 개발을 지원한 스웨덴, 공기업 부문을 통해 제조업의 발전을 이룬 오스트리아, 국가의 주도로 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가 그것이다. 정부의 개입 형태는 이렇듯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
의 국가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은 사
실상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이라는 ㉣‘비(非)자연적 방
법’을 통하여 발전해 왔다. ( 다 ) 시장을 인위적 개입이
| 없는 자연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실제 사실이 아닌 희망 사항에 기반을 둔 것이다. 시장 제도가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지의 여부는 한 나라의 경제 정책 설계에 관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테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던 많은 나라들은 한동안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이것은 ‘잘 작동하는’ 정부 없이 ‘잘 작동하는’ 시장 경제를 건설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믿는 대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진화한다면, 이 옛 공산 국가들은 진작 그 같은 혼란에서 빠져 나왔어야만 한다. 또한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경제 발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라 할 것이다. |
밑줄 친 ㉠∼㉣ 중 성격이 다른 하나는?
성격이 다른 것은 ㉡ ‘단순하고 자연적인 자유’로, 정부 개입이 없는 자유 시장의 이념을 가리킨다.
나머지는 모두 정부(국가)의 개입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 ㉠ ‘인위적 대체물’은 신고전파가 국가의 개입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 ㉢ ‘유치산업 보호’는 정부가 보호 장벽으로 산업에 개입하는 정책이다.
- ㉣ ‘비(非)자연적 방법’은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을 바꾸어 이른 말이다.
| (가)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쟈 한강수(漢江水)ㅣ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ᄯᅥᄂᆞ고쟈 ᄒᆞ랴마ᄂᆞᆫ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賞)ᄒᆞ니 올동말동 ᄒᆞ여라 - 김상헌 - (나) 창(窓) 내고쟈 창(窓)을 내고쟈 이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ᄇᆡ목걸새 크나큰 쟝도리로 ᄯᅮᆼ닥 바가 이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ᄒᆞᆯ 제면 여다져 볼가 ᄒᆞ노라 - 사설시조, 작가 미상 - (다) 두터비 ᄑᆞ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ᄃᆞ라 안자 것넌 산(山) ᄇᆞ라보니 백송골(白松骨)이 ᄯᅥ 잇거ᄂᆞᆯ 가슴이 금즉ᄒᆞ여 풀덕 ᄯᅱ여 내ᄃᆞᆺ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ᄂᆞᆯ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ᄒᆞ괘라 - 사설시조, 작가 미상 - |
(나)의 표현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나)를 초·중·종장 모두 율격을 무시한 시조로 본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사설시조는 주로 중장이 길어지는 형식이며, (나)도 초장과 종장은 평시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중장만 사물을 길게 늘어놓는다.
- 가슴에 창을 내겠다는 엉뚱한 발상으로 답답함을 웃음으로 이겨 내려는 평민 문학의 해학이 엿보인다.
- 장지·돌쩌귀·장도리 같은 일상 사물을 수다스럽게 열거해 괴로움을 강조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 중장의 문과 문고리 열거는 답답한 심정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를 뚫고 나가려는 의지로도 읽힌다.
| (가)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쟈 한강수(漢江水)ㅣ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ᄯᅥᄂᆞ고쟈 ᄒᆞ랴마ᄂᆞᆫ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賞)ᄒᆞ니 올동말동 ᄒᆞ여라 - 김상헌 - (나) 창(窓) 내고쟈 창(窓)을 내고쟈 이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ᄇᆡ목걸새 크나큰 쟝도리로 ᄯᅮᆼ닥 바가 이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ᄒᆞᆯ 제면 여다져 볼가 ᄒᆞ노라 - 사설시조, 작가 미상 - (다) 두터비 ᄑᆞ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ᄃᆞ라 안자 것넌 산(山) ᄇᆞ라보니 백송골(白松骨)이 ᄯᅥ 잇거ᄂᆞᆯ 가슴이 금즉ᄒᆞ여 풀덕 ᄯᅱ여 내ᄃᆞᆺ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ᄂᆞᆯ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ᄒᆞ괘라 - 사설시조, 작가 미상 - |
(다)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다)의 어휘를 모두 서민적인 일상어로 본 이해가 적절하지 않다.
예로 든 어휘 가운데 ‘백송골(白松骨)’은 흰 송골매를 이르는 한자어이므로 서민적 일상어로 묶을 수 없다.
- 약한 파리 앞에서는 뽐내다 백송골 앞에서는 꼼짝 못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두꺼비에게서 위선을 읽을 수 있다.
- 두꺼비는 약자에게 군림하고 강자에게 비굴하며, 넘어지고도 자기 합리화하는 모습으로 풍자의 대상이 된다.
- 파리·두꺼비·백송골의 세 계층으로 권력 구조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종장에서 두꺼비의 말로 화자를 바꾸어 풍자 효과를 높인다.
| (가)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쟈 한강수(漢江水)ㅣ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ᄯᅥᄂᆞ고쟈 ᄒᆞ랴마ᄂᆞᆫ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賞)ᄒᆞ니 올동말동 ᄒᆞ여라 - 김상헌 - (나) 창(窓) 내고쟈 창(窓)을 내고쟈 이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ᄇᆡ목걸새 크나큰 쟝도리로 ᄯᅮᆼ닥 바가 이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ᄒᆞᆯ 제면 여다져 볼가 ᄒᆞ노라 - 사설시조, 작가 미상 - (다) 두터비 ᄑᆞ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ᄃᆞ라 안자 것넌 산(山) ᄇᆞ라보니 백송골(白松骨)이 ᄯᅥ 잇거ᄂᆞᆯ 가슴이 금즉ᄒᆞ여 풀덕 ᄯᅱ여 내ᄃᆞᆺ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ᄂᆞᆯ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ᄒᆞ괘라 - 사설시조, 작가 미상 - |
(가)와 <보기>의 공통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잠시 뜻을 얻었노라 까불대는 이 시운이
나의 등을 내밀어서 너를 떠나가게 하니
일로부터 여러 해를 너를 보지 못할지나
그 동안에 나는 오직 너를 위해 일하리니
나 간다고 슬퍼 마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 안창호,「거국가(去國歌)」-
(가)와 <보기>는 모두 대유법과 의인법으로 고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가)의 ‘삼각산’·‘한강수’와 <보기>의 ‘한반도’는 조국을 대신 나타내는 대유이며, 이를 ‘삼각산아’, ‘한반도야’처럼 사람인 듯 부르는 의인법이 쓰였다.
- 두 작품 모두 설의적 표현으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방식이 중심이 아니다.
- 대구와 대조로 불안감을 형상화하기보다 떠나는 아쉬움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 <보기>의 ‘간다 간다 나는 간다’에는 a-a-b-a 반복이 있지만 (가)에는 없고, 두 작품 모두 과장법으로 답답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 부엌 + 일 → [부엉닐]
㉡ 콧 + 날 → [콘날]
㉢ 앉 + 고 → [안꼬]
㉣ 훑+ 는 → [훌른]
‘앉고 → [안꼬]’에 자음 축약이 있다는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앉고’는 자음군 단순화로 [안고]가 된 뒤 된소리되기로 [안꼬]가 되며, ‘앓고 → [알코]’처럼 ‘ㅎ’과 ‘ㄱ’이 합쳐지는 축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 ‘부엌일’은 ‘ㅋ’이 [ㄱ]으로, ‘콧날’은 ‘ㅅ’이 [ㄷ]으로 바뀌는 음절 끝소리 규칙이 적용된다.
- ‘부엌일’과 ‘콧날’에는 비음화, ‘훑는’에는 유음화가 일어나 인접 자음과 조음 방법이 같아진다.
- ‘앉고’와 ‘훑는’은 겹받침 중 하나가 탈락하는 자음군 단순화가 일어난다.
어법에 맞는 문장은 ‘후텁지근한 날이 많아’가 쓰인 문장이다.
‘후텁지근하다’는 조금 불쾌할 정도로 끈끈하고 무덥다는 뜻의 표준어이다.
- ‘헤매이던’은 불필요한 ‘-이-’가 들어간 말로 ‘헤매던’이 바르다.
- ‘내노라하는’은 ‘내로라하는’이 바른 표기이다.
- ‘칠흙같이’는 옻칠처럼 검다는 칠흑(漆黑)을 잘못 쓴 것으로 ‘칠흑같이’가 바르다.
| 오후 수업이 시작된 바로 뒤에 뜻밖에도 권 씨가 나를 찾아왔다. 때마침 나는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서 잡담이나 하고 있는 중이어서 수위로부터 연락을 받자 곧장 학교 정문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바쁘실 텐데 이거 죄송합니다.” 권 씨는 애써 웃는 낯이었고 왠지 사람이 전에 없이 퍽 수줍어 보였다. 나는 그 수줍음이 세 번째 아이의 아버지가 된 데서 오는 것일 거라고 좋은 쪽으로만 해석함으로 |
| 써 연락을 받는 그 순간에 느낀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리려 했다. “잘됐습니까?” “뒤늦게나마 오 선생 말씀대로 했기 망정이지 끝까지 집에서 버텼다간 큰일 날 뻔했습니다. 녀석인지 년인진 모르지만 못난 애비 혼 좀 나라고 여엉 애를 멕이는군요.” 권 씨는 수줍게 웃으며 길바닥 위에다 발부리로 뜻 모를 글씬지 그림인지를 자꾸만 그렸다. 먼지가 풀풀 이는 언덕길을 터벌터벌 올라왔을 터인데도 그의 구두는 놀랄 만큼 반짝거렸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틀림없이 바짓가랑이 뒤쪽에다 양쪽 발을 번갈아 가며 문지르고 있었을 것이었다. “십만 원 가까이 빌릴 수 없을까요!” 밑도 끝도 없이 그는 이제까지의 수줍음이 싹 가시고 대신 도발적인 감정 같은 걸로 그득 채워진 얼굴을 들어 내 면전에 대고 부르짖었다. 담배 한 대만 꾸자는 식으로 십만 원 소리가 허망히도 나왔다. 내가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그는 매우 사나운 기세로 말을 보태는 것이었다. “수술을 해야 된답니다. 엑스레이도 찍어 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모든 게 다 정상이래요. 모체 골반두 넉넉허구요. 조기 파수도 아니구 전치태반도 아니구요. 쌍둥이는 더더욱 아니구요. 이렇게 정상적인 데도 이십사 시간이 넘두룩 배가 위에 달라붙는 경우는 태아가 돌다가 탯줄을 목에 감았을 때뿐이랍니다. 제기랄, 탯줄을 목에 감았다는군요.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산모나 태아나 모두 위험하대요.” 어색하게 들린 것은 그가 ‘제기랄’이라고 씹어뱉은 그 대목뿐이었다. 평상시의 권 씨답지 않은 그 말만 빼고는 그럴 수 없이 진지한 이야기였다. 아니다. 그가 처음으로 점잖지 못한 그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내 귀엔 더욱더 진지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진지함 앞에서 ‘아아, 그거 참 안됐군요.’라든가 ‘그래서 어떡하죠.’ 하는 상투적인 말로 섣불리 이쪽의 감정을 전달하기엔 사실 말이지 ‘십만 원 가까이’는 내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집을 살 때 학교에다 진 빚을 아직 절반도 못 가린 처지였다. 정상 분만비 1, 2만 원 정도라면 또 모르지만 단순히 권 씨를 도울 작정으로 나로서는 거금에 해당하는 10만 원 가까이를 또 빚진다는 건 무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아내의 양해도 없이 멋대로 그런 큰일을 저질러도 괜찮을 만큼 나는 자유롭지도 못했다. “빌려만 주신다면 무슨 짓을, 정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갚겠습니다.” 반드시 갚는 조건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마치 성경책 위에다 오른손을 얹고 말하듯이 엄숙한 표정을 했다. 하마터면 나는 잊을 뻔했다. 그가 적시에 일깨워 주었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빌려 주는 어려움에만 골똘한 나머지 빌려 줬다 나중에 돌려받는 어려움이 더 클 거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할 뻔했다. 그렇다. 끼니조차 감당 못하는 주제에 막벌이 아니면 어쩌다 간간이 얻어걸리는 출판사 싸구려 번역 일 가지고 어느 해가에 빚을 갚을 것인가. 책임이 따르는 동정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기왕 |
| 피할 바엔 저쪽에서 감히 두말을 못하도록 야멸차게 굴 필요가 있었다. “병원 이름이 뭐죠?” “원 산부인괍니다.” “지금 내 형편에 현금은 어렵군요. 원장한테 바로 전화 걸어서 내가 보증을 서마고 약속할 테니까 권 선생도 다시 한 번 매달려 보세요. 의사도 사람인데 설마 사람을 생으로 죽게야 하겠습니까. 달리 변통할 구멍이 없으시다면 그렇게 해 보세요.” 내 대답이 지나치게 더디 나올 때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도전적이던 기색이 슬그머니 죽으면서 그의 착하디착한 눈에 다시 수줍음이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원장이 어리석은 사람이길 바라고 거기다 희망을 걸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한테서 수술 비용을 받아내기가 수월치 않다는 걸 입원시키는 그 순간에 벌써 알아차렸어요.” 얼굴에 흐르는 진땀을 훔치는 대신 그는 오른발을 들어 왼쪽 바짓가랑이 뒤에다 두어 번 문질렀다. 발을 바꾸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바쁘실 텐데 실례 많았습니다.” ‘썰면’처럼 두툼한 입술이 선잠에서 깬 어린애같이 움씰거리더니 겨우 인사말이 나왔다. 무슨 말이 더 있을 듯싶었는데 그는 이내 돌아서서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그 입에서 끈끈한 가래가 묻은 소리가, 이를테면, 오 선생 너무하다든가 잘 먹고 잘 살라든가 하는 말이 날아와 내 이마에 탁 눌어붙는 순간에 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갑자기 돌아서면서 나를 똑바로 올려다봤을 때 그처럼 흠칫 놀랐을 것이다. “오 선생,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그것뿐이었다. 내 호주머니에 촌지를 밀어 넣던 어느 학부형같이 그는 수줍게 그 말만 건네고는 언덕을 내려갔다. 별로 휘청거릴 것도 없는 작달막한 체구를 연방 휘청거리면서 내딛는 한걸음마다 땅을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는 동작으로 내 눈에 그는 비쳤다. 산 고팽이를 돌아 그의 모습이 벌거벗은 황토의 언덕 저쪽으로 사라지는 찰나, 나는 뛰어가서 그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돌팔매질을 하다 말고 뒤집혀진 삼륜차로 달려들어 아귀아귀 참외를 깨물어 먹는 군중을 목격했을 당시의 권 씨처럼, 이건 완전히 나체구나 하는 느낌이 팍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암만의 빚을 지고 있음을 퍼뜩 깨달았다. 전셋돈도 일종의 빚이라면 빚이었다. 왜 더 좀 일찍이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른다. 원 산부인과에서는 만단의 수술 준비를 갖추고 보증금이 도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우격다짐으로 후려낸 가불에다 가까운 동료들 주머니를 닥치는 대로 떨어 간신히 마련한 일금 10만 원을 건네자 금테의 마비츠 안경을 쓴 원장이 바로 마취사를 부르도록 간호원에게 지시했다. 원장은 내가 권 씨하고 아무 척분도 없으며 다만 그의 셋방 주인일 따름인 걸 알고는 혀를 찼다. “아버지가 되는 방법도 정말 여러 질이군요. 보증금을 마 련해 오랬더니 오전 중에 나가서는 여태껏 얼굴 한번 안 |
| 비치지 뭡니까.” “맞습니다. ㉠의사가 애를 꺼내는 방법도 여러 질이듯이 아버지 노릇 하는 것도 아마 여러 질일 겁니다.” 나는 내 말이 제발 의사의 귀에 농담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유감스럽게도 금테 안경의 상대방은 한 차례의 너털웃음으로 그걸 간단히 눙쳐 버렸다. 나는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싶게 사색이 완연한 권 씨 부인이 들것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거들었다.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
윗글의 서술 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윗글은 작품 속 서술자 ‘나’가 권 씨를 관찰하여 서술하는 방식이다.
‘나’(오 선생)는 권 씨의 표정·구두·발동작을 바라보며 그 심리를 짐작하는 1인칭 관찰자로서 이야기를 전한다.
- 서술자 ‘나’가 작품 안에 등장하므로 작품 밖 서술자의 서술로 볼 수 없다.
- 외부 이야기 속에 내부 이야기를 넣은 액자 구성이 아니며 시점과 주인공도 바뀌지 않는다.
- 대화와 장면 묘사가 중심이며, 요약적 서술로 인물의 성격을 직접 제시하지 않는다.
| 오후 수업이 시작된 바로 뒤에 뜻밖에도 권 씨가 나를 찾아왔다. 때마침 나는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서 잡담이나 하고 있는 중이어서 수위로부터 연락을 받자 곧장 학교 정문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바쁘실 텐데 이거 죄송합니다.” 권 씨는 애써 웃는 낯이었고 왠지 사람이 전에 없이 퍽 수줍어 보였다. 나는 그 수줍음이 세 번째 아이의 아버지가 된 데서 오는 것일 거라고 좋은 쪽으로만 해석함으로 |
| 써 연락을 받는 그 순간에 느낀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리려 했다. “잘됐습니까?” “뒤늦게나마 오 선생 말씀대로 했기 망정이지 끝까지 집에서 버텼다간 큰일 날 뻔했습니다. 녀석인지 년인진 모르지만 못난 애비 혼 좀 나라고 여엉 애를 멕이는군요.” 권 씨는 수줍게 웃으며 길바닥 위에다 발부리로 뜻 모를 글씬지 그림인지를 자꾸만 그렸다. 먼지가 풀풀 이는 언덕길을 터벌터벌 올라왔을 터인데도 그의 구두는 놀랄 만큼 반짝거렸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틀림없이 바짓가랑이 뒤쪽에다 양쪽 발을 번갈아 가며 문지르고 있었을 것이었다. “십만 원 가까이 빌릴 수 없을까요!” 밑도 끝도 없이 그는 이제까지의 수줍음이 싹 가시고 대신 도발적인 감정 같은 걸로 그득 채워진 얼굴을 들어 내 면전에 대고 부르짖었다. 담배 한 대만 꾸자는 식으로 십만 원 소리가 허망히도 나왔다. 내가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그는 매우 사나운 기세로 말을 보태는 것이었다. “수술을 해야 된답니다. 엑스레이도 찍어 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모든 게 다 정상이래요. 모체 골반두 넉넉허구요. 조기 파수도 아니구 전치태반도 아니구요. 쌍둥이는 더더욱 아니구요. 이렇게 정상적인 데도 이십사 시간이 넘두룩 배가 위에 달라붙는 경우는 태아가 돌다가 탯줄을 목에 감았을 때뿐이랍니다. 제기랄, 탯줄을 목에 감았다는군요.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산모나 태아나 모두 위험하대요.” 어색하게 들린 것은 그가 ‘제기랄’이라고 씹어뱉은 그 대목뿐이었다. 평상시의 권 씨답지 않은 그 말만 빼고는 그럴 수 없이 진지한 이야기였다. 아니다. 그가 처음으로 점잖지 못한 그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내 귀엔 더욱더 진지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진지함 앞에서 ‘아아, 그거 참 안됐군요.’라든가 ‘그래서 어떡하죠.’ 하는 상투적인 말로 섣불리 이쪽의 감정을 전달하기엔 사실 말이지 ‘십만 원 가까이’는 내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집을 살 때 학교에다 진 빚을 아직 절반도 못 가린 처지였다. 정상 분만비 1, 2만 원 정도라면 또 모르지만 단순히 권 씨를 도울 작정으로 나로서는 거금에 해당하는 10만 원 가까이를 또 빚진다는 건 무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아내의 양해도 없이 멋대로 그런 큰일을 저질러도 괜찮을 만큼 나는 자유롭지도 못했다. “빌려만 주신다면 무슨 짓을, 정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갚겠습니다.” 반드시 갚는 조건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마치 성경책 위에다 오른손을 얹고 말하듯이 엄숙한 표정을 했다. 하마터면 나는 잊을 뻔했다. 그가 적시에 일깨워 주었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빌려 주는 어려움에만 골똘한 나머지 빌려 줬다 나중에 돌려받는 어려움이 더 클 거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할 뻔했다. 그렇다. 끼니조차 감당 못하는 주제에 막벌이 아니면 어쩌다 간간이 얻어걸리는 출판사 싸구려 번역 일 가지고 어느 해가에 빚을 갚을 것인가. 책임이 따르는 동정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기왕 |
| 피할 바엔 저쪽에서 감히 두말을 못하도록 야멸차게 굴 필요가 있었다. “병원 이름이 뭐죠?” “원 산부인괍니다.” “지금 내 형편에 현금은 어렵군요. 원장한테 바로 전화 걸어서 내가 보증을 서마고 약속할 테니까 권 선생도 다시 한 번 매달려 보세요. 의사도 사람인데 설마 사람을 생으로 죽게야 하겠습니까. 달리 변통할 구멍이 없으시다면 그렇게 해 보세요.” 내 대답이 지나치게 더디 나올 때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도전적이던 기색이 슬그머니 죽으면서 그의 착하디착한 눈에 다시 수줍음이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원장이 어리석은 사람이길 바라고 거기다 희망을 걸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한테서 수술 비용을 받아내기가 수월치 않다는 걸 입원시키는 그 순간에 벌써 알아차렸어요.” 얼굴에 흐르는 진땀을 훔치는 대신 그는 오른발을 들어 왼쪽 바짓가랑이 뒤에다 두어 번 문질렀다. 발을 바꾸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바쁘실 텐데 실례 많았습니다.” ‘썰면’처럼 두툼한 입술이 선잠에서 깬 어린애같이 움씰거리더니 겨우 인사말이 나왔다. 무슨 말이 더 있을 듯싶었는데 그는 이내 돌아서서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그 입에서 끈끈한 가래가 묻은 소리가, 이를테면, 오 선생 너무하다든가 잘 먹고 잘 살라든가 하는 말이 날아와 내 이마에 탁 눌어붙는 순간에 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갑자기 돌아서면서 나를 똑바로 올려다봤을 때 그처럼 흠칫 놀랐을 것이다. “오 선생,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그것뿐이었다. 내 호주머니에 촌지를 밀어 넣던 어느 학부형같이 그는 수줍게 그 말만 건네고는 언덕을 내려갔다. 별로 휘청거릴 것도 없는 작달막한 체구를 연방 휘청거리면서 내딛는 한걸음마다 땅을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는 동작으로 내 눈에 그는 비쳤다. 산 고팽이를 돌아 그의 모습이 벌거벗은 황토의 언덕 저쪽으로 사라지는 찰나, 나는 뛰어가서 그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돌팔매질을 하다 말고 뒤집혀진 삼륜차로 달려들어 아귀아귀 참외를 깨물어 먹는 군중을 목격했을 당시의 권 씨처럼, 이건 완전히 나체구나 하는 느낌이 팍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암만의 빚을 지고 있음을 퍼뜩 깨달았다. 전셋돈도 일종의 빚이라면 빚이었다. 왜 더 좀 일찍이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른다. 원 산부인과에서는 만단의 수술 준비를 갖추고 보증금이 도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우격다짐으로 후려낸 가불에다 가까운 동료들 주머니를 닥치는 대로 떨어 간신히 마련한 일금 10만 원을 건네자 금테의 마비츠 안경을 쓴 원장이 바로 마취사를 부르도록 간호원에게 지시했다. 원장은 내가 권 씨하고 아무 척분도 없으며 다만 그의 셋방 주인일 따름인 걸 알고는 혀를 찼다. “아버지가 되는 방법도 정말 여러 질이군요. 보증금을 마 련해 오랬더니 오전 중에 나가서는 여태껏 얼굴 한번 안 |
| 비치지 뭡니까.” “맞습니다. ㉠의사가 애를 꺼내는 방법도 여러 질이듯이 아버지 노릇 하는 것도 아마 여러 질일 겁니다.” 나는 내 말이 제발 의사의 귀에 농담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유감스럽게도 금테 안경의 상대방은 한 차례의 너털웃음으로 그걸 간단히 눙쳐 버렸다. 나는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싶게 사색이 완연한 권 씨 부인이 들것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거들었다.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
㉠에 숨겨진 화자의 의도로 가장 적절한 것은?
㉠에는 목숨보다 돈을 중시하는 원장에 대한 비난이 숨어 있다.
원장은 보증금이 도착하자 비로소 마취사를 부르게 했고, ‘나’는 ‘내 말이 제발 의사의 귀에 농담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고 하여 원장을 겨냥한 말임을 드러낸다.
- ‘아버지 노릇 하는 것도 여러 질’이라는 말은 오히려 권 씨를 감싸는 것이어서 권 씨를 비난한 것이 아니다.
-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은 지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 ‘나’는 원장에게 할 말을 분명히 건네고 있어 현실에 대한 무기력증의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 오후 수업이 시작된 바로 뒤에 뜻밖에도 권 씨가 나를 찾아왔다. 때마침 나는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서 잡담이나 하고 있는 중이어서 수위로부터 연락을 받자 곧장 학교 정문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바쁘실 텐데 이거 죄송합니다.” 권 씨는 애써 웃는 낯이었고 왠지 사람이 전에 없이 퍽 수줍어 보였다. 나는 그 수줍음이 세 번째 아이의 아버지가 된 데서 오는 것일 거라고 좋은 쪽으로만 해석함으로 |
| 써 연락을 받는 그 순간에 느낀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리려 했다. “잘됐습니까?” “뒤늦게나마 오 선생 말씀대로 했기 망정이지 끝까지 집에서 버텼다간 큰일 날 뻔했습니다. 녀석인지 년인진 모르지만 못난 애비 혼 좀 나라고 여엉 애를 멕이는군요.” 권 씨는 수줍게 웃으며 길바닥 위에다 발부리로 뜻 모를 글씬지 그림인지를 자꾸만 그렸다. 먼지가 풀풀 이는 언덕길을 터벌터벌 올라왔을 터인데도 그의 구두는 놀랄 만큼 반짝거렸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틀림없이 바짓가랑이 뒤쪽에다 양쪽 발을 번갈아 가며 문지르고 있었을 것이었다. “십만 원 가까이 빌릴 수 없을까요!” 밑도 끝도 없이 그는 이제까지의 수줍음이 싹 가시고 대신 도발적인 감정 같은 걸로 그득 채워진 얼굴을 들어 내 면전에 대고 부르짖었다. 담배 한 대만 꾸자는 식으로 십만 원 소리가 허망히도 나왔다. 내가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그는 매우 사나운 기세로 말을 보태는 것이었다. “수술을 해야 된답니다. 엑스레이도 찍어 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모든 게 다 정상이래요. 모체 골반두 넉넉허구요. 조기 파수도 아니구 전치태반도 아니구요. 쌍둥이는 더더욱 아니구요. 이렇게 정상적인 데도 이십사 시간이 넘두룩 배가 위에 달라붙는 경우는 태아가 돌다가 탯줄을 목에 감았을 때뿐이랍니다. 제기랄, 탯줄을 목에 감았다는군요.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산모나 태아나 모두 위험하대요.” 어색하게 들린 것은 그가 ‘제기랄’이라고 씹어뱉은 그 대목뿐이었다. 평상시의 권 씨답지 않은 그 말만 빼고는 그럴 수 없이 진지한 이야기였다. 아니다. 그가 처음으로 점잖지 못한 그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내 귀엔 더욱더 진지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진지함 앞에서 ‘아아, 그거 참 안됐군요.’라든가 ‘그래서 어떡하죠.’ 하는 상투적인 말로 섣불리 이쪽의 감정을 전달하기엔 사실 말이지 ‘십만 원 가까이’는 내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집을 살 때 학교에다 진 빚을 아직 절반도 못 가린 처지였다. 정상 분만비 1, 2만 원 정도라면 또 모르지만 단순히 권 씨를 도울 작정으로 나로서는 거금에 해당하는 10만 원 가까이를 또 빚진다는 건 무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아내의 양해도 없이 멋대로 그런 큰일을 저질러도 괜찮을 만큼 나는 자유롭지도 못했다. “빌려만 주신다면 무슨 짓을, 정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갚겠습니다.” 반드시 갚는 조건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마치 성경책 위에다 오른손을 얹고 말하듯이 엄숙한 표정을 했다. 하마터면 나는 잊을 뻔했다. 그가 적시에 일깨워 주었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빌려 주는 어려움에만 골똘한 나머지 빌려 줬다 나중에 돌려받는 어려움이 더 클 거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할 뻔했다. 그렇다. 끼니조차 감당 못하는 주제에 막벌이 아니면 어쩌다 간간이 얻어걸리는 출판사 싸구려 번역 일 가지고 어느 해가에 빚을 갚을 것인가. 책임이 따르는 동정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기왕 |
| 피할 바엔 저쪽에서 감히 두말을 못하도록 야멸차게 굴 필요가 있었다. “병원 이름이 뭐죠?” “원 산부인괍니다.” “지금 내 형편에 현금은 어렵군요. 원장한테 바로 전화 걸어서 내가 보증을 서마고 약속할 테니까 권 선생도 다시 한 번 매달려 보세요. 의사도 사람인데 설마 사람을 생으로 죽게야 하겠습니까. 달리 변통할 구멍이 없으시다면 그렇게 해 보세요.” 내 대답이 지나치게 더디 나올 때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도전적이던 기색이 슬그머니 죽으면서 그의 착하디착한 눈에 다시 수줍음이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원장이 어리석은 사람이길 바라고 거기다 희망을 걸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한테서 수술 비용을 받아내기가 수월치 않다는 걸 입원시키는 그 순간에 벌써 알아차렸어요.” 얼굴에 흐르는 진땀을 훔치는 대신 그는 오른발을 들어 왼쪽 바짓가랑이 뒤에다 두어 번 문질렀다. 발을 바꾸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바쁘실 텐데 실례 많았습니다.” ‘썰면’처럼 두툼한 입술이 선잠에서 깬 어린애같이 움씰거리더니 겨우 인사말이 나왔다. 무슨 말이 더 있을 듯싶었는데 그는 이내 돌아서서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그 입에서 끈끈한 가래가 묻은 소리가, 이를테면, 오 선생 너무하다든가 잘 먹고 잘 살라든가 하는 말이 날아와 내 이마에 탁 눌어붙는 순간에 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갑자기 돌아서면서 나를 똑바로 올려다봤을 때 그처럼 흠칫 놀랐을 것이다. “오 선생,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그것뿐이었다. 내 호주머니에 촌지를 밀어 넣던 어느 학부형같이 그는 수줍게 그 말만 건네고는 언덕을 내려갔다. 별로 휘청거릴 것도 없는 작달막한 체구를 연방 휘청거리면서 내딛는 한걸음마다 땅을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는 동작으로 내 눈에 그는 비쳤다. 산 고팽이를 돌아 그의 모습이 벌거벗은 황토의 언덕 저쪽으로 사라지는 찰나, 나는 뛰어가서 그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돌팔매질을 하다 말고 뒤집혀진 삼륜차로 달려들어 아귀아귀 참외를 깨물어 먹는 군중을 목격했을 당시의 권 씨처럼, 이건 완전히 나체구나 하는 느낌이 팍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암만의 빚을 지고 있음을 퍼뜩 깨달았다. 전셋돈도 일종의 빚이라면 빚이었다. 왜 더 좀 일찍이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른다. 원 산부인과에서는 만단의 수술 준비를 갖추고 보증금이 도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우격다짐으로 후려낸 가불에다 가까운 동료들 주머니를 닥치는 대로 떨어 간신히 마련한 일금 10만 원을 건네자 금테의 마비츠 안경을 쓴 원장이 바로 마취사를 부르도록 간호원에게 지시했다. 원장은 내가 권 씨하고 아무 척분도 없으며 다만 그의 셋방 주인일 따름인 걸 알고는 혀를 찼다. “아버지가 되는 방법도 정말 여러 질이군요. 보증금을 마 련해 오랬더니 오전 중에 나가서는 여태껏 얼굴 한번 안 |
| 비치지 뭡니까.” “맞습니다. ㉠의사가 애를 꺼내는 방법도 여러 질이듯이 아버지 노릇 하는 것도 아마 여러 질일 겁니다.” 나는 내 말이 제발 의사의 귀에 농담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유감스럽게도 금테 안경의 상대방은 한 차례의 너털웃음으로 그걸 간단히 눙쳐 버렸다. 나는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싶게 사색이 완연한 권 씨 부인이 들것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거들었다.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
윗글로 보아 ‘놀랄 만큼 반짝거리는 권 씨의 구두’가 상징하는 의미로 가장 적당한 것은?
반짝거리는 구두는 비참한 처지에서도 지키고 싶은 권 씨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먼지 이는 언덕길을 오고도 구두를 닦아 두는 권 씨는 끝내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라고 말하며 마지막 체면을 지키려 한다.
- 끼니조차 감당 못하는 처지에서 구두가 앞날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나타낸다고 볼 근거는 없다.
- 세속적 성공에 대한 욕망보다는 무너져 가는 체면을 붙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지문에는 권 씨가 다른 사람을 우매하다고 여기며 차별하는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