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직 한국사] 18년 1회차
계리직 한국사 기출문제

18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계리직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18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사건들이 일어난 순서를 옳게 나열한 것은?

ㄱ. 살수대첩
ㄴ. 안시성 싸움
ㄷ. 황산벌 전투
ㄹ. 대가야 멸망
1ㄱ - ㄴ - ㄷ - ㄹ
2ㄴ - ㄷ - ㄹ - ㄱ
3ㄷ - ㄹ - ㄱ - ㄴ
4ㄹ - ㄱ - ㄴ - ㄷ
정답 및 해설

사건의 순서는 대가야 멸망 → 살수대첩 → 안시성 싸움 → 황산벌 전투이다.

신라 진흥왕 때 대가야가 멸망하였고(562), 이후 고구려가 수·당과 차례로 맞서 싸웠으며, 백제 멸망 직전 계백이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싸웠다(660).

  • 대가야 멸망: 562년 신라 진흥왕이 이사부를 보내 대가야를 병합하였다.
  • 살수대첩: 612년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의 별동대를 크게 무찔렀다.
  • 안시성 싸움: 645년 당 태종의 침입을 안시성에서 막아 냈다.
  • 황산벌 전투: 660년 계백의 결사대가 김유신의 신라군에 패하고 백제가 멸망하였다.
문제 2
밑줄 친 ‘이 나라’의 정치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이 나라는 5경박사를 두어 유학을 가르치고 서기라는 역사책을 편찬하는 등 유교 문화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사택지적비’를 보면 노장 사상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기>
ㄱ. 16등급의 관등 제도와 6좌평의 제도를 두었다.
ㄴ. 귀족들이 모여서 수상인 대대로를 선출하였다.
ㄷ. 소경(小京)이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설치하였다.
ㄹ. 지방에 22개의 담로를 두고 왕족을 보내 다스렸다.
1ㄱ, ㄴ
2ㄴ, ㄷ
3ㄷ, ㄹ
4ㄱ, ㄹ
정답 및 해설

‘이 나라’는 백제이며, 백제의 정치 제도는 16관등·6좌평과 22담로이다.

‘5경박사’, 근초고왕 때 고흥이 편찬한 ‘서기’, 도교적 무상관이 새겨진 ‘사택지적비’가 모두 백제를 가리키는 단서이다. 백제는 고이왕 때 관등과 좌평 제도를 마련하고, 무령왕 때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 귀족들이 수상인 대대로를 선출한 것은 고구려의 제도이다.
  • 소경이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설치한 것은 신라이며, 통일 후 5소경으로 정비되었다.
문제 3
다음 제도들을 시행한 까닭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기인 제도
∘ 사심관 제도
∘ 상수리 제도
∘ 경재소 제도
1각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2문벌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3지방 세력을 통제하여 중앙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4귀족 세력을 억압하고 관리 등용 제도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정답 및 해설

네 제도는 모두 지방 세력을 통제하여 중앙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신라의 상수리 제도와 이를 계승한 고려의 기인 제도는 지방 세력의 자제를 볼모로 서울에 머물게 한 것이다. 고려의 사심관 제도와 조선의 경재소는 중앙 관리가 출신 지역을 연결·감독하게 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 지방 세력을 견제하려는 장치이지 지방의 균형 발전을 꾀한 제도가 아니다.
  • 상수리 제도는 신라, 경재소는 조선의 제도로 고려 문벌귀족 체제 강화와 관계가 없다.
  • 관리 등용 제도는 과거제 등이 담당하였으며, 이들 제도의 목적은 지방 통제였다.
문제 4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는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천태종을 열어 이론과 실천을 아울러 강조하는 교관겸수를 제창하였다.
1정혜사를 결성하고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2만덕사에서 백련사를 결성하고 정토 신앙을 강조하였다.
3불교 관계 저술 목록을 정리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었다.
4[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여러 불교 종파의 융화·통일을 주장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인물은 대각국사 의천이며, 불교 관계 저술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었다.

‘천태종’ 개창과 ‘교관겸수’ 제창이 의천의 단서이다. 의천은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바탕으로 교장(속장경)을 간행하였다.

  • 정혜사를 결성하고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한 것은 지눌이다.
  • 만덕사에서 백련사를 결성하고 정토 신앙을 강조한 것은 요세이다.
  •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종파 융화를 주장한 것은 신라의 원효이다.
문제 5
다음 설명한 인물이 편찬한 서적으로 옳은 것은?

그는 고려의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조선 왕조 창건 후에는 이른바 ‘표전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사신으로 명에 다녀왔다.
1동국사략
2조선경국전
3삼강행실도
4동국여지승람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인물은 권근이며, 그가 편찬에 참여한 서적은 동국사략이다.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명이 조선의 외교 문서를 문제 삼은 ‘표전 문제’를 수습하러 명에 다녀온 인물이 권근이다. 권근은 태종 때 하륜 등과 함께 단군 조선부터 삼국까지를 다룬 동국사략을 편찬하였다.

  •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이 지은 법전이다.
  • 삼강행실도는 세종 때 설순 등이 편찬한 윤리서이다.
  • 동국여지승람은 성종 때 노사신 등이 편찬한 인문 지리서이다.
문제 6
다음 경제 정책을 시대 순으로 옳게 나열한 것은?

ㄱ. 신해통공으로 금난전권을 대부분 철폐하였다.
ㄴ. 공납제를 대동법으로 바꾸어 경기도에 시행하였다.
ㄷ. 영정법을 시행하여 흉풍에 관계없이 전세를 확정하였다.
ㄹ. 균역법을 통해 양인의 군역 부담을 군포 1필로 낮추었다.
1ㄱ - ㄴ - ㄷ - ㄹ
2ㄴ - ㄷ - ㄹ - ㄱ
3ㄷ - ㄹ - ㄱ - ㄴ
4ㄹ - ㄱ - ㄴ - ㄷ
정답 및 해설

시대 순은 대동법 → 영정법 → 균역법 → 신해통공이다.

임진왜란 이후 수취 체제 개편이 공납, 전세, 군역 순으로 이루어졌고, 상업 정책인 신해통공이 가장 늦다.

  • 대동법: 1608년 광해군 때 경기도에 처음 시행되었다.
  • 영정법: 1635년 인조 때 전세를 토지 1결당 쌀 4~6두로 고정하였다.
  • 균역법: 1750년 영조 때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 신해통공: 1791년 정조 때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문제 7
조선 전기의 문화에 대한 서술로 옳지 않은 것은?
1여러 농서들을 묶어 [농가집성]을 편찬하였다.
2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치밀하게 계산한 [칠정산]을 편찬하였다.
3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고 이를 돌에 새겼다.
4우리의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소개한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서술은 [농가집성]을 조선 전기 문화로 본 것이다.

[농가집성]은 조선 후기 효종 때 신속이 [농사직설] 등 여러 농서를 묶어 편찬한 농서로, 이앙법(모내기법) 보급에 기여하였다.

  • [칠정산]: 세종 때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해 만든 역법서로 조선 전기의 성과이다.
  •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때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로 조선 전기의 성과이다.
  • [향약집성방]: 세종 때 우리 풍토에 맞는 약재와 치료법을 정리해 간행한 의서로 조선 전기의 성과이다.
문제 8
다음 사건들이 일어난 순서를 옳게 나열한 것은?

ㄱ. 동북 9성을 쌓아 여진족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을 되찾았다.
ㄷ. 4군 6진을 설치하여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ㄹ. 강동 6주를 설치하여 압록강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1ㄴ - ㄹ - ㄱ - ㄷ
2ㄴ - ㄷ - ㄹ - ㄱ
3ㄹ - ㄱ - ㄴ - ㄷ
4ㄹ - ㄴ - ㄷ - ㄱ
정답 및 해설

순서는 강동 6주 → 동북 9성 → 쌍성총관부 수복 → 4군 6진이다.

고려 전기 거란·여진과의 관계, 고려 말 원 간섭기 영토 회복, 조선 초 북방 개척 순으로 이어진다.

  • 강동 6주: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확보하였다.
  • 동북 9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한 뒤 쌓았다.
  • 쌍성총관부 공격: 1356년 공민왕이 반원 개혁의 하나로 철령 이북 땅을 되찾았다.
  • 4군 6진: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가 압록강·두만강 유역을 개척하였다.
문제 9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광산 경영 방식에 덕대제가 유행하였다.
2상민 수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공노비를 해방시켰다.
3경시서를 두어 시전 상인의 불법적인 상행위를 통제하였다.
4동전을 재산 축적에 이용하여 유통 화폐가 부족해지는 전황이 발생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경시서가 조선 후기에 시전 상인을 통제했다는 내용이다.

경시서는 고려와 조선 전기에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던 관청으로, 조선 세조 때 평시서로 이름이 바뀌어 조선 후기에는 평시서가 그 역할을 맡았다.

  • 덕대제: 조선 후기 광산 경영에서 물주의 자본을 받은 덕대가 채굴 노동자를 고용해 운영하는 방식이 유행하였다.
  • 공노비 해방: 순조 때 상민 수를 늘려 재정을 확충하고자 중앙 관청의 공노비를 해방하였다.
  • 전황: 동전이 재산 축적 수단으로 쓰이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 10
다음 주장을 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재물은 비유하자면 샘과 같은 것이다. 우물물은 퍼내면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 비단옷을 입지 않아서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면 여공이 쇠퇴하며, 찌그러진 그릇을 싫어하지 않고 기교를 숭상하지 않아서 공장이 기술을 익히지 않게 되면 기예가 사라진다. 심지어 농사가 황폐해져서 농사짓는 법을 잊고, 상업은 이익이 적어서 생업을 잃게 된다. 그리하여 사농공상의 사민이 모두 곤궁해져서 서로 도울 수 없게 된다.
1혼천의를 제작하고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하였다.
2마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 소유, 공동 경작하는 여전론을 주장하였다.
3청과의 통상 확대와 수레·선박의 이용, 신분 차별 타파 등을 주장하였다.
4[우서]에서 상공업을 진흥하여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바꿀 것을 주장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주장을 한 인물은 박제가이며, 청과의 통상 확대와 수레·선박의 이용, 신분 차별 타파를 주장하였다.

재물을 ‘우물물’에 비유하여 퍼내야(소비해야) 생산이 자극된다고 한 것은 박제가의 북학의에 나오는 소비론이다.

  • 혼천의를 제작하고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것은 홍대용이다.
  • 마을 단위 공동 소유·공동 경작의 여전론을 주장한 것은 정약용이다.
  • 우서에서 상공업 진흥과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을 주장한 것은 유수원이다.
문제 11
다음 문화유산이 만들어진 순서를 바르게 나열한 것은?
1ㄱ - ㄴ - ㄷ - ㄹ
2ㄱ - ㄴ - ㄹ - ㄷ
3ㄴ - ㄱ - ㄷ - ㄹ
4ㄴ - ㄱ - ㄹ - ㄷ
정답 및 해설

만들어진 순서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미륵사지 석탑 → 문무왕 해중릉 → 석굴암 본존불이다.

삼국 시대 유물 두 가지가 먼저이고, 통일 직후의 문무왕릉, 8세기 중엽 통일 신라 불교 문화의 절정인 석굴암이 가장 늦다.

  • 북한산 순수비: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세웠다.
  • 미륵사지 석탑: 7세기 전반 백제 무왕 때 세운 목탑 양식의 석탑이다.
  • 문무왕 해중릉: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조성되었다.
  • 석굴암: 통일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조영을 시작하였다.
문제 12
다음 내용이 실린 책과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조선 땅덩어리는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다투게 마련이며, …(중략)… 그렇다면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어떠한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어짐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1청의 외교관인 황쭌셴(황준헌)이 저술하였다.
2조·일 수호 조규를 체결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3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
4지방 유생들이 상소를 통해 책의 내용을 비판하였다.
정답 및 해설

조선책략이 조·일 수호 조규 체결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조·일 수호 조규(1876)는 조선책략이 들어온 1880년보다 앞선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어짐’을 주장한 책은 조선책략이며, 이 책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영향을 주었다.

  • 청의 외교관 황쭌셴(황준헌)이 저술하였다.
  • 2차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서 가져와 국내에 소개하였다.
  •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영남 만인소를 올려 책의 내용을 비판하였다.
문제 13
다음과 같은 역사론을 주장한 인물이 쓴 논저를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역사란 무엇이냐.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보기>
ㄱ. 조선사연구초
ㄴ. 조선상고사감
ㄷ. 조선상고문화사
ㄹ. 한국독립운동지혈사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역사론은 신채호의 것이며, 그의 논저는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문화사이다.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으로 정의한 것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첫머리이다. 신채호는 민족주의 사학을 바탕으로 고대사 연구에 힘썼다.

  • 조선상고사감은 신민족주의 사학자 안재홍의 저술이다.
  •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박은식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문제 14
다음 내용을 주장한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1조 각 소에 권유원을 파견하여 권유문을 뿌리며 인민의 정신을 각성케 할 것
2조 신문 잡지 및 서적을 간행하여 인민의 지식을 계발케 할 것
3조 정미(精美)한 학교를 건설하여 인재를 양성할 것
…(중략)…
7조 본회에 합자로 실업장을 설립하여 실업계의 모범을 만들 것

<보기>
ㄱ. 만세보 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다.
ㄴ. 평양에 대성학교,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하였다.
ㄷ.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ㄹ. 비밀 결사 단체로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등이 조직하였다.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내용을 주장한 단체는 신민회이며, 대성학교·오산학교 설립과 비밀 결사 조직이 그 활동이다.

‘학교를 건설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합자로 실업장을 설립’한다는 강령은 교육·산업 진흥을 통한 실력 양성을 내건 신민회의 것이다. 신민회는 1907년 안창호·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로 조직하였다.

  • 만세보는 천도교가 발행한 기관지이다.
  •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한 것은 보안회이다.
문제 15
다음 선언을 발표한 단체에서 활동한 인물로 옳은 것은?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으로 가서 민중과 손을 잡아 끊임 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의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하지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탈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1이봉창
2안중근
3강우규
4김지섭
정답 및 해설

선언을 발표한 단체는 의열단이며, 이 단체에서 활동한 인물은 김지섭이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라는 구절은 신채호가 의열단의 요청으로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이다. 김지섭은 1924년 도쿄 궁성의 이중교에 폭탄을 던졌다.

  • 이봉창은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 단원으로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 안중근은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 강우규는 노인 동맹단 소속으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다.
문제 16
다음 강령을 발표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2.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3.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1순종의 인산일에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2일제강점기 국내에서 조직된 최대의 민족 운동 단체였다.
3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협력하여 만든 민족 협동전선체이다.
4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발발하자,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개최하려 하였다.
정답 및 해설

순종의 인산일에 만세 시위를 계획한 것은 6·10 만세 운동(1926)으로, 1927년 창립한 신간회의 활동이 아니다.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은 자치론자를 배격한 신간회 강령의 단서이다.

  • 신간회는 지회가 전국에 퍼진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의 합법적 민족 운동 단체였다.
  •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한 민족 협동 전선이다.
  •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진상 조사단을 보내고 민중 대회를 열려 하였다.
문제 17
다음을 암송하도록 강요했던 시기에 일제가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1.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협력하고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의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련다.
1회사령 폐지
2징병제 실시
3치안유지법 제정
4조선 태형령 공포
정답 및 해설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한 시기에 일제가 추진한 정책은 징병제 실시이다.

‘우리는 황국신민이다’로 시작하는 황국 신민 서사는 1937년 중일 전쟁 무렵부터 강요되었다. 이 민족 말살 통치기에 일제는 침략 전쟁에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 회사령 폐지는 1920년 문화 통치기의 정책이다.
  • 치안 유지법 제정은 1925년으로 사회주의·민족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 조선 태형령 공포는 1912년 무단 통치기의 일이다.
문제 18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1제주도에서 4·3사건이 발생하였다.
2유상매입, 유상분배의 방식으로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
3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이른바 삼백산업이 성장하였다.
4친일 청산을 위한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정부 수립 이후의 사실이 아닌 것은 제주 4·3 사건이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으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보다 앞선다.

  • 농지 개혁: 정부 수립 후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어 유상 매입·유상 분배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 삼백 산업: 1950년대 미국의 원조 물자를 바탕으로 밀가루·설탕·면직물 공업이 성장하였다.
  •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정부 수립 후 제헌 국회가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고 친일 청산 기구로 설치하였다.
문제 19
밑줄 친 단어의 한자 표기가 옳은 것은?
1구청에서 과태료(過怠料)를 부과했다.
2본회의에 주요 안건을 부의(賻儀)했다.
3두 팀은 백중세(百中勢)의 경기를 했다.
4그는 자신의 의견에 추호(秋護)도 양보하지 않았다.
정답 및 해설

한자 표기가 옳은 것은 과태료(過怠料)이다.

과태료는 의무를 게을리한 데 대해 부과하는 돈으로 '지날 과(過)', '게으를 태(怠)', '헤아릴 료(料)'를 쓴다.

  • 부의: 안건을 토의에 부친다는 뜻이므로 附議로 써야 하며, 賻儀는 초상집에 보내는 돈이나 물품을 뜻한다.
  • 백중세: 우열을 가리기 힘든 형세라는 뜻으로 맏이와 둘째를 뜻하는 伯仲勢로 써야 한다.
  • 추호: 가을철 짐승의 가는 털이라는 뜻에서 매우 적음을 이르므로 秋毫로 써야 한다.
문제 20
<보기>에 제시한 글의 밑줄 친 부분과 의미가 통하는 한자성어로옳지 않은 것은?

ㄱ. 인근 마을에서까지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던 하회별신굿은, 이 굿을 못 보면 죽어서 좋은 데로 못 간다고까지 일러 오던 대축제였다.
ㄴ. 물질과 부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문화를 잃게 되며, 삶의 주체인 인격의 균형을 상실하게 된다. 그 뒤를 따르는 불행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ㄷ. 전통은 대체로 그 사회 및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전통은 우리의 현실에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ㄹ. 문제를 어리석게 해결한다 함은, 오줌을 누어 언 발을 녹이는 경우와 같이, 당장의 문제는 일단 벗어났으나 다음에 더욱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게 처신했을 경우를 말한다.
1ㄱ: 人山人海
2ㄴ: 明若觀火
3ㄷ: 自激之心
4ㄹ: 姑息之計
정답 및 해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와 自激之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어울리는 성어는 不知不識(부지불식)이다.

自激之心(자격지심)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을 뜻하므로 밑줄 친 부분과 거리가 멀다.

  • 人山人海(인산인해): 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룰 만큼 많이 모인 모습으로, 사람이 몰려 ‘성시를 이룬’ 상황과 통한다.
  • 明若觀火(명약관화): 불을 보듯 뻔하다는 뜻으로 ‘더 말할 필요가 없다’와 통한다.
  • 姑息之計(고식지계): 당장 편한 것만 택하는 임시방편으로, 동족방뇨(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은 뜻이다.
계리직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18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사건들이 일어난 순서를 옳게 나열한 것은?

ㄱ. 살수대첩
ㄴ. 안시성 싸움
ㄷ. 황산벌 전투
ㄹ. 대가야 멸망
1ㄱ - ㄴ - ㄷ - ㄹ
2ㄴ - ㄷ - ㄹ - ㄱ
3ㄷ - ㄹ - ㄱ - ㄴ
4ㄹ - ㄱ - ㄴ - ㄷ
정답 및 해설

사건의 순서는 대가야 멸망 → 살수대첩 → 안시성 싸움 → 황산벌 전투이다.

신라 진흥왕 때 대가야가 멸망하였고(562), 이후 고구려가 수·당과 차례로 맞서 싸웠으며, 백제 멸망 직전 계백이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싸웠다(660).

  • 대가야 멸망: 562년 신라 진흥왕이 이사부를 보내 대가야를 병합하였다.
  • 살수대첩: 612년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의 별동대를 크게 무찔렀다.
  • 안시성 싸움: 645년 당 태종의 침입을 안시성에서 막아 냈다.
  • 황산벌 전투: 660년 계백의 결사대가 김유신의 신라군에 패하고 백제가 멸망하였다.
문제 2
밑줄 친 ‘이 나라’의 정치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이 나라는 5경박사를 두어 유학을 가르치고 서기라는 역사책을 편찬하는 등 유교 문화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사택지적비’를 보면 노장 사상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기>
ㄱ. 16등급의 관등 제도와 6좌평의 제도를 두었다.
ㄴ. 귀족들이 모여서 수상인 대대로를 선출하였다.
ㄷ. 소경(小京)이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설치하였다.
ㄹ. 지방에 22개의 담로를 두고 왕족을 보내 다스렸다.
1ㄱ, ㄴ
2ㄴ, ㄷ
3ㄷ, ㄹ
4ㄱ, ㄹ
정답 및 해설

‘이 나라’는 백제이며, 백제의 정치 제도는 16관등·6좌평과 22담로이다.

‘5경박사’, 근초고왕 때 고흥이 편찬한 ‘서기’, 도교적 무상관이 새겨진 ‘사택지적비’가 모두 백제를 가리키는 단서이다. 백제는 고이왕 때 관등과 좌평 제도를 마련하고, 무령왕 때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 귀족들이 수상인 대대로를 선출한 것은 고구려의 제도이다.
  • 소경이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설치한 것은 신라이며, 통일 후 5소경으로 정비되었다.
문제 3
다음 제도들을 시행한 까닭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기인 제도
∘ 사심관 제도
∘ 상수리 제도
∘ 경재소 제도
1각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2문벌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3지방 세력을 통제하여 중앙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4귀족 세력을 억압하고 관리 등용 제도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정답 및 해설

네 제도는 모두 지방 세력을 통제하여 중앙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신라의 상수리 제도와 이를 계승한 고려의 기인 제도는 지방 세력의 자제를 볼모로 서울에 머물게 한 것이다. 고려의 사심관 제도와 조선의 경재소는 중앙 관리가 출신 지역을 연결·감독하게 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 지방 세력을 견제하려는 장치이지 지방의 균형 발전을 꾀한 제도가 아니다.
  • 상수리 제도는 신라, 경재소는 조선의 제도로 고려 문벌귀족 체제 강화와 관계가 없다.
  • 관리 등용 제도는 과거제 등이 담당하였으며, 이들 제도의 목적은 지방 통제였다.
문제 4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는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천태종을 열어 이론과 실천을 아울러 강조하는 교관겸수를 제창하였다.
1정혜사를 결성하고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2만덕사에서 백련사를 결성하고 정토 신앙을 강조하였다.
3불교 관계 저술 목록을 정리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었다.
4[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여러 불교 종파의 융화·통일을 주장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인물은 대각국사 의천이며, 불교 관계 저술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었다.

‘천태종’ 개창과 ‘교관겸수’ 제창이 의천의 단서이다. 의천은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바탕으로 교장(속장경)을 간행하였다.

  • 정혜사를 결성하고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한 것은 지눌이다.
  • 만덕사에서 백련사를 결성하고 정토 신앙을 강조한 것은 요세이다.
  •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종파 융화를 주장한 것은 신라의 원효이다.
문제 5
다음 설명한 인물이 편찬한 서적으로 옳은 것은?

그는 고려의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조선 왕조 창건 후에는 이른바 ‘표전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사신으로 명에 다녀왔다.
1동국사략
2조선경국전
3삼강행실도
4동국여지승람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인물은 권근이며, 그가 편찬에 참여한 서적은 동국사략이다.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명이 조선의 외교 문서를 문제 삼은 ‘표전 문제’를 수습하러 명에 다녀온 인물이 권근이다. 권근은 태종 때 하륜 등과 함께 단군 조선부터 삼국까지를 다룬 동국사략을 편찬하였다.

  •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이 지은 법전이다.
  • 삼강행실도는 세종 때 설순 등이 편찬한 윤리서이다.
  • 동국여지승람은 성종 때 노사신 등이 편찬한 인문 지리서이다.
문제 6
다음 경제 정책을 시대 순으로 옳게 나열한 것은?

ㄱ. 신해통공으로 금난전권을 대부분 철폐하였다.
ㄴ. 공납제를 대동법으로 바꾸어 경기도에 시행하였다.
ㄷ. 영정법을 시행하여 흉풍에 관계없이 전세를 확정하였다.
ㄹ. 균역법을 통해 양인의 군역 부담을 군포 1필로 낮추었다.
1ㄱ - ㄴ - ㄷ - ㄹ
2ㄴ - ㄷ - ㄹ - ㄱ
3ㄷ - ㄹ - ㄱ - ㄴ
4ㄹ - ㄱ - ㄴ - ㄷ
정답 및 해설

시대 순은 대동법 → 영정법 → 균역법 → 신해통공이다.

임진왜란 이후 수취 체제 개편이 공납, 전세, 군역 순으로 이루어졌고, 상업 정책인 신해통공이 가장 늦다.

  • 대동법: 1608년 광해군 때 경기도에 처음 시행되었다.
  • 영정법: 1635년 인조 때 전세를 토지 1결당 쌀 4~6두로 고정하였다.
  • 균역법: 1750년 영조 때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 신해통공: 1791년 정조 때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문제 7
조선 전기의 문화에 대한 서술로 옳지 않은 것은?
1여러 농서들을 묶어 [농가집성]을 편찬하였다.
2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치밀하게 계산한 [칠정산]을 편찬하였다.
3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고 이를 돌에 새겼다.
4우리의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소개한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서술은 [농가집성]을 조선 전기 문화로 본 것이다.

[농가집성]은 조선 후기 효종 때 신속이 [농사직설] 등 여러 농서를 묶어 편찬한 농서로, 이앙법(모내기법) 보급에 기여하였다.

  • [칠정산]: 세종 때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해 만든 역법서로 조선 전기의 성과이다.
  •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때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로 조선 전기의 성과이다.
  • [향약집성방]: 세종 때 우리 풍토에 맞는 약재와 치료법을 정리해 간행한 의서로 조선 전기의 성과이다.
문제 8
다음 사건들이 일어난 순서를 옳게 나열한 것은?

ㄱ. 동북 9성을 쌓아 여진족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을 되찾았다.
ㄷ. 4군 6진을 설치하여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ㄹ. 강동 6주를 설치하여 압록강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1ㄴ - ㄹ - ㄱ - ㄷ
2ㄴ - ㄷ - ㄹ - ㄱ
3ㄹ - ㄱ - ㄴ - ㄷ
4ㄹ - ㄴ - ㄷ - ㄱ
정답 및 해설

순서는 강동 6주 → 동북 9성 → 쌍성총관부 수복 → 4군 6진이다.

고려 전기 거란·여진과의 관계, 고려 말 원 간섭기 영토 회복, 조선 초 북방 개척 순으로 이어진다.

  • 강동 6주: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확보하였다.
  • 동북 9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한 뒤 쌓았다.
  • 쌍성총관부 공격: 1356년 공민왕이 반원 개혁의 하나로 철령 이북 땅을 되찾았다.
  • 4군 6진: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가 압록강·두만강 유역을 개척하였다.
문제 9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광산 경영 방식에 덕대제가 유행하였다.
2상민 수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공노비를 해방시켰다.
3경시서를 두어 시전 상인의 불법적인 상행위를 통제하였다.
4동전을 재산 축적에 이용하여 유통 화폐가 부족해지는 전황이 발생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경시서가 조선 후기에 시전 상인을 통제했다는 내용이다.

경시서는 고려와 조선 전기에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던 관청으로, 조선 세조 때 평시서로 이름이 바뀌어 조선 후기에는 평시서가 그 역할을 맡았다.

  • 덕대제: 조선 후기 광산 경영에서 물주의 자본을 받은 덕대가 채굴 노동자를 고용해 운영하는 방식이 유행하였다.
  • 공노비 해방: 순조 때 상민 수를 늘려 재정을 확충하고자 중앙 관청의 공노비를 해방하였다.
  • 전황: 동전이 재산 축적 수단으로 쓰이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 10
다음 주장을 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재물은 비유하자면 샘과 같은 것이다. 우물물은 퍼내면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 비단옷을 입지 않아서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면 여공이 쇠퇴하며, 찌그러진 그릇을 싫어하지 않고 기교를 숭상하지 않아서 공장이 기술을 익히지 않게 되면 기예가 사라진다. 심지어 농사가 황폐해져서 농사짓는 법을 잊고, 상업은 이익이 적어서 생업을 잃게 된다. 그리하여 사농공상의 사민이 모두 곤궁해져서 서로 도울 수 없게 된다.
1혼천의를 제작하고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하였다.
2마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 소유, 공동 경작하는 여전론을 주장하였다.
3청과의 통상 확대와 수레·선박의 이용, 신분 차별 타파 등을 주장하였다.
4[우서]에서 상공업을 진흥하여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바꿀 것을 주장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주장을 한 인물은 박제가이며, 청과의 통상 확대와 수레·선박의 이용, 신분 차별 타파를 주장하였다.

재물을 ‘우물물’에 비유하여 퍼내야(소비해야) 생산이 자극된다고 한 것은 박제가의 북학의에 나오는 소비론이다.

  • 혼천의를 제작하고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것은 홍대용이다.
  • 마을 단위 공동 소유·공동 경작의 여전론을 주장한 것은 정약용이다.
  • 우서에서 상공업 진흥과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을 주장한 것은 유수원이다.
문제 11
다음 문화유산이 만들어진 순서를 바르게 나열한 것은?
1ㄱ - ㄴ - ㄷ - ㄹ
2ㄱ - ㄴ - ㄹ - ㄷ
3ㄴ - ㄱ - ㄷ - ㄹ
4ㄴ - ㄱ - ㄹ - ㄷ
정답 및 해설

만들어진 순서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미륵사지 석탑 → 문무왕 해중릉 → 석굴암 본존불이다.

삼국 시대 유물 두 가지가 먼저이고, 통일 직후의 문무왕릉, 8세기 중엽 통일 신라 불교 문화의 절정인 석굴암이 가장 늦다.

  • 북한산 순수비: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세웠다.
  • 미륵사지 석탑: 7세기 전반 백제 무왕 때 세운 목탑 양식의 석탑이다.
  • 문무왕 해중릉: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조성되었다.
  • 석굴암: 통일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조영을 시작하였다.
문제 12
다음 내용이 실린 책과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조선 땅덩어리는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다투게 마련이며, …(중략)… 그렇다면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어떠한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어짐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1청의 외교관인 황쭌셴(황준헌)이 저술하였다.
2조·일 수호 조규를 체결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3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
4지방 유생들이 상소를 통해 책의 내용을 비판하였다.
정답 및 해설

조선책략이 조·일 수호 조규 체결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조·일 수호 조규(1876)는 조선책략이 들어온 1880년보다 앞선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어짐’을 주장한 책은 조선책략이며, 이 책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영향을 주었다.

  • 청의 외교관 황쭌셴(황준헌)이 저술하였다.
  • 2차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서 가져와 국내에 소개하였다.
  •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영남 만인소를 올려 책의 내용을 비판하였다.
문제 13
다음과 같은 역사론을 주장한 인물이 쓴 논저를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역사란 무엇이냐.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보기>
ㄱ. 조선사연구초
ㄴ. 조선상고사감
ㄷ. 조선상고문화사
ㄹ. 한국독립운동지혈사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역사론은 신채호의 것이며, 그의 논저는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문화사이다.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으로 정의한 것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첫머리이다. 신채호는 민족주의 사학을 바탕으로 고대사 연구에 힘썼다.

  • 조선상고사감은 신민족주의 사학자 안재홍의 저술이다.
  •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박은식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문제 14
다음 내용을 주장한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1조 각 소에 권유원을 파견하여 권유문을 뿌리며 인민의 정신을 각성케 할 것
2조 신문 잡지 및 서적을 간행하여 인민의 지식을 계발케 할 것
3조 정미(精美)한 학교를 건설하여 인재를 양성할 것
…(중략)…
7조 본회에 합자로 실업장을 설립하여 실업계의 모범을 만들 것

<보기>
ㄱ. 만세보 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다.
ㄴ. 평양에 대성학교,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하였다.
ㄷ.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ㄹ. 비밀 결사 단체로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등이 조직하였다.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내용을 주장한 단체는 신민회이며, 대성학교·오산학교 설립과 비밀 결사 조직이 그 활동이다.

‘학교를 건설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합자로 실업장을 설립’한다는 강령은 교육·산업 진흥을 통한 실력 양성을 내건 신민회의 것이다. 신민회는 1907년 안창호·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로 조직하였다.

  • 만세보는 천도교가 발행한 기관지이다.
  •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한 것은 보안회이다.
문제 15
다음 선언을 발표한 단체에서 활동한 인물로 옳은 것은?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으로 가서 민중과 손을 잡아 끊임 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의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하지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탈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1이봉창
2안중근
3강우규
4김지섭
정답 및 해설

선언을 발표한 단체는 의열단이며, 이 단체에서 활동한 인물은 김지섭이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라는 구절은 신채호가 의열단의 요청으로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이다. 김지섭은 1924년 도쿄 궁성의 이중교에 폭탄을 던졌다.

  • 이봉창은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 단원으로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 안중근은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 강우규는 노인 동맹단 소속으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다.
문제 16
다음 강령을 발표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2.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3.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1순종의 인산일에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2일제강점기 국내에서 조직된 최대의 민족 운동 단체였다.
3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협력하여 만든 민족 협동전선체이다.
4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발발하자,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개최하려 하였다.
정답 및 해설

순종의 인산일에 만세 시위를 계획한 것은 6·10 만세 운동(1926)으로, 1927년 창립한 신간회의 활동이 아니다.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은 자치론자를 배격한 신간회 강령의 단서이다.

  • 신간회는 지회가 전국에 퍼진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의 합법적 민족 운동 단체였다.
  •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한 민족 협동 전선이다.
  •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진상 조사단을 보내고 민중 대회를 열려 하였다.
문제 17
다음을 암송하도록 강요했던 시기에 일제가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1.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협력하고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의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련다.
1회사령 폐지
2징병제 실시
3치안유지법 제정
4조선 태형령 공포
정답 및 해설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한 시기에 일제가 추진한 정책은 징병제 실시이다.

‘우리는 황국신민이다’로 시작하는 황국 신민 서사는 1937년 중일 전쟁 무렵부터 강요되었다. 이 민족 말살 통치기에 일제는 침략 전쟁에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 회사령 폐지는 1920년 문화 통치기의 정책이다.
  • 치안 유지법 제정은 1925년으로 사회주의·민족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 조선 태형령 공포는 1912년 무단 통치기의 일이다.
문제 18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1제주도에서 4·3사건이 발생하였다.
2유상매입, 유상분배의 방식으로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
3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이른바 삼백산업이 성장하였다.
4친일 청산을 위한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정부 수립 이후의 사실이 아닌 것은 제주 4·3 사건이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으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보다 앞선다.

  • 농지 개혁: 정부 수립 후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어 유상 매입·유상 분배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 삼백 산업: 1950년대 미국의 원조 물자를 바탕으로 밀가루·설탕·면직물 공업이 성장하였다.
  •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정부 수립 후 제헌 국회가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고 친일 청산 기구로 설치하였다.
문제 19
밑줄 친 단어의 한자 표기가 옳은 것은?
1구청에서 과태료(過怠料)를 부과했다.
2본회의에 주요 안건을 부의(賻儀)했다.
3두 팀은 백중세(百中勢)의 경기를 했다.
4그는 자신의 의견에 추호(秋護)도 양보하지 않았다.
정답 및 해설

한자 표기가 옳은 것은 과태료(過怠料)이다.

과태료는 의무를 게을리한 데 대해 부과하는 돈으로 '지날 과(過)', '게으를 태(怠)', '헤아릴 료(料)'를 쓴다.

  • 부의: 안건을 토의에 부친다는 뜻이므로 附議로 써야 하며, 賻儀는 초상집에 보내는 돈이나 물품을 뜻한다.
  • 백중세: 우열을 가리기 힘든 형세라는 뜻으로 맏이와 둘째를 뜻하는 伯仲勢로 써야 한다.
  • 추호: 가을철 짐승의 가는 털이라는 뜻에서 매우 적음을 이르므로 秋毫로 써야 한다.
문제 20
<보기>에 제시한 글의 밑줄 친 부분과 의미가 통하는 한자성어로옳지 않은 것은?

ㄱ. 인근 마을에서까지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던 하회별신굿은, 이 굿을 못 보면 죽어서 좋은 데로 못 간다고까지 일러 오던 대축제였다.
ㄴ. 물질과 부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문화를 잃게 되며, 삶의 주체인 인격의 균형을 상실하게 된다. 그 뒤를 따르는 불행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ㄷ. 전통은 대체로 그 사회 및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전통은 우리의 현실에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ㄹ. 문제를 어리석게 해결한다 함은, 오줌을 누어 언 발을 녹이는 경우와 같이, 당장의 문제는 일단 벗어났으나 다음에 더욱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게 처신했을 경우를 말한다.
1ㄱ: 人山人海
2ㄴ: 明若觀火
3ㄷ: 自激之心
4ㄹ: 姑息之計
정답 및 해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와 自激之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어울리는 성어는 不知不識(부지불식)이다.

自激之心(자격지심)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을 뜻하므로 밑줄 친 부분과 거리가 멀다.

  • 人山人海(인산인해): 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룰 만큼 많이 모인 모습으로, 사람이 몰려 ‘성시를 이룬’ 상황과 통한다.
  • 明若觀火(명약관화): 불을 보듯 뻔하다는 뜻으로 ‘더 말할 필요가 없다’와 통한다.
  • 姑息之計(고식지계): 당장 편한 것만 택하는 임시방편으로, 동족방뇨(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