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직 한국사] 21년 1회차
계리직 한국사 기출문제

21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계리직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1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글이 나오는 책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대저 옛 성인들은 예악으로 나라를 융성케하고 인의(仁義)로 가르쳤으며, 괴상한 힘이나 난잡한 귀신을 말하지 아니했다. …(중략)…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고 해서 어찌 괴이하겠는가? 이것이 신이로써 다른 편보다 먼저 놓은 까닭이며, 그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1현재 전하는 신라의 향가를 가장 많이 수록하고 있다.
2유교 사서의 관례에 따라 중국 정사의 기전체(紀傳體) 형식을 도입했다.
3개인 전기가 실린 열전은 백제인이나 고구려인보다 신라인의 비중이 높다.
4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하여 사용한 것은 옳지 않다고 논했다.
정답 및 해설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며 이를 다른 편보다 먼저 놓았다는 글은 일연의 『삼국유사』 기이편 서문이므로, 현전 신라 향가를 가장 많이 수록한 책이라는 설명이 옳다.

『삼국유사』에는 향가 14수가 실려 있어 현재 전하는 신라 향가의 대부분을 담고 있다. 고조선과 단군 신화, 불교 설화와 민간 전승도 폭넓게 수록하였다.

  • 중국 정사의 기전체 형식을 따른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이다.
  • 열전에서 신라인의 비중이 높은 것도 『삼국사기』의 특징이다.
  • 신라의 독자 연호 사용을 옳지 않다고 논한 것은 사대적 시각을 드러낸 『삼국사기』의 사론이다.
문제 2
다음 ( )의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지금 ( )의 창고에는 옥으로 된 벽(璧)·규(珪)·찬(瓚) 등 여러 대에 걸쳐 내려온 물건이 있어 대대로 보물로 여기는데, 원로들이 말하길 선대(先代) 왕이 하사받은 것이라 한다. 그 인문(印文)은 ‘예왕지인(濊王之印)’ 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1추수가 끝나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2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의 특산물이 생산되었고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하였다.
3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는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4사출도를 두었으며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개최하였다.
정답 및 해설

창고에 ‘예왕지인(濊王之印)’이 새겨진 인장을 보관했다는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부여조이므로, 사출도를 두고 12월에 영고를 연 나라라는 설명이 옳다.

부여는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가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고, 수렵 사회의 전통이 남은 영고를 12월에 열었다.

  • 10월의 제천 행사 동맹은 고구려의 풍속이다.
  • 단궁·과하마·반어피와 10월 무천은 동예에 해당한다.
  • 5월과 10월의 계절제는 삼한의 제천 행사이다.
문제 3
신라의 발전 과정에 대한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고령의 대가야를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ㄴ. 호국의 염원을 담아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ㄷ. 행정기관인 병부(兵部)를 설치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ㄹ. 주군현(州郡縣)의 제도를 정하고 실직주(悉直州)를 두었다.
1ㄷ-ㄹ-ㄱ-ㄴ
2ㄷ-ㄹ-ㄴ-ㄱ
3ㄹ-ㄷ-ㄱ-ㄴ
4ㄹ-ㄷ-ㄴ-ㄱ
정답 및 해설

시대순은 지증왕의 주군현 제도·실직주 설치 → 법흥왕의 병부 설치 → 진흥왕의 대가야 병합 → 선덕여왕의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이다.

지증왕은 505년 주군현 제도를 정하고 실직주를 두어 이사부를 군주로 삼았다. 법흥왕은 517년 병부를 설치하고 율령을 반포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 진흥왕은 562년 이사부를 보내 고령의 대가야를 병합하였다.
  • 황룡사 9층 목탑은 선덕여왕 때 자장의 건의로 645년에 완성되었다.
문제 4
다음 ( )에 해당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현종(玄宗) 개원(開元) 7년에 ( )이/가 죽었다. …(중략)… 아들이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들이 겁을 먹고 그를 섬겼으며, 또 사사로이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고쳤다.
- 신당서, 「열전」 북적 발해 -
1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를 확립하였다.
2장수 장문휴(張文休)를 시켜 등주를 공격하였다.
33성 6부의 중앙 관제와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4당의 군대를 천문령에서 물리치고 동모산에서 건국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개원 7년(719)에 죽고 아들이 연호를 ‘인안’으로 고쳤다고 했으므로 그 아들은 무왕이고, ( )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다. 따라서 천문령에서 당군을 물리치고 동모산에서 건국했다는 설명이 옳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천문령 전투에서 당군을 격파한 뒤 698년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는 선왕 때 갖추어졌다.
  • 장문휴를 보내 등주를 공격한 것은 아들 무왕이다.
  • 3성 6부의 중앙 관제 정비는 문왕 때의 일이다.
문제 5
고려 시대 가족 제도와 여성의 지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아들과 딸 모두 부모의 제사를 주관할 수 있었다.
2여성은 사회 활동에 아무런 제한이 없이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3혼인 형태는 일부일처가 일반적이었으나 축첩(蓄妾)도 가능하였다.
4여성이 호주(戶主)가 될 수 있었고 호적에도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나이에 따라 기록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고려 여성이 사회 활동에 아무런 제한 없이 남성과 대등했다는 내용이다.

고려 여성은 가정 안에서 지위가 비교적 높았지만 관직 진출이 불가능했으므로 사회 활동에 제한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

  • 아들과 딸이 모두 제사를 주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은 옳다 — 자녀가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윤회봉사도 행해졌다.
  • 일부일처가 일반적이었으나 축첩도 가능했다는 설명은 옳다.
  •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있고 호적에 자녀를 아들딸 구분 없이 나이순으로 기록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6
다음 작품이 제작된 시기의 문화 예술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자연을 벗삼아 사는 모습을 노래한 「청산별곡」이 창작되었다.
2왕조의 창업과정과 왕실 선조들의 업적을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3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두어 왕실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 등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였다.
4중인·서얼층이 결성한 시사(詩社)를 중심으로 위항문학(委巷文學)이 유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세종 때인 15세기 작품이므로, 『용비어천가』를 지은 것이 같은 시기의 문화이다.

세종 때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왕조 창업 과정과 선조의 업적을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한글로 지어 간행하였다.

  • 「청산별곡」은 고려 시대의 속요이다.
  • 강화도 외규장각은 조선 후기 정조 때 설치되었다.
  • 중인·서얼의 시사를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은 조선 후기에 유행하였다.
문제 7
다음 전투가 일어난 시기를 <보기>의 (가)~(라)에서 바르게 고른 것은?

이여송이 휘하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말을 몰아 급히 진격하였다. 왜적은 벽제관 부근에서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면서 명군을 진흙수렁으로 유인하였다. 명군이 함부로 전진하다가 여기에 빠지자 왜적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명군을 마구 척살하였다. 겨우 죽음을 면한 이여송은 나머지 부하들을 이끌고 파주,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후퇴하였다.
- 『연려실기술』, 선조조 고사본말 -

<보기>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패하고 자결하다.
⇩ (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이 한산도 해상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기다.
⇩ (나)
김시민 휘하의 조선 군인과 백성들이 진주성에서 일본군의 침입을 막아내다.
⇩ (다)
권율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다.
⇩ (라)
원균이 칠천량 부근에서 전사하다.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이여송의 명군이 패한 벽제관 전투는 1593년 1월의 일로, 1차 진주성 전투와 행주산성 전투 사이인 (다) 시기에 해당한다.

1592년 4월 탄금대 패전, 7월 한산도 대첩, 10월 김시민의 진주성 승리가 이어졌다. 1593년 1월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되찾은 뒤 남하하던 명군이 벽제관에서 패하였고, 이어 2월에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승리하였다.

  •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전사한 것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이다.
문제 8
다음 글이 나오는 책을 지은 학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수령이라는 직책은 관장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여러 조목을 열거하여도 오히려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스스로 실행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첫머리의 부임(赴任)과 맨 끝의 해관(解官) 2편을 제외한 나머지 10편에 들어 있는 것만 해도 60조나 되니, 진실로 어진 수령이 있어 제 직분을 다할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방법에 어둡지는 않을 것이다.
1노론의 중심 인물로 대의명분을 중시하였다.
2조세제도 개혁을 통해 정전제의 이념을 구현하려 하였다.
3자영농 육성을 위해 토지를 재분배하자는 균전론을 제기하였다.
4본인의 연행 경험을 바탕으로 상공업 진흥과 기술 발전을 제안하였다.
정답 및 해설

수령의 직책을 부임에서 해관까지 12편으로 정리한 책은 『목민심서』이고 지은이는 정약용이므로, 조세 제도 개혁으로 정전제의 이념을 구현하려 했다는 설명이 옳다.

정약용은 여전론을 거쳐 현실적 대안으로 정전론을 내세워 토지 제도와 조세 제도를 함께 개혁하고자 하였다.

  • 노론의 중심 인물로 대의명분을 중시한 인물은 송시열이다.
  • 자영농 육성을 위한 균전론은 유형원이 제기하였다.
  • 연행 경험을 바탕으로 상공업 진흥과 기술 발전을 제안한 것은 박지원·박제가 등 북학파이다.
문제 9
다음에서 묘사한 도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운종가는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바다
수레와 말들은 우레 소리 일으키네.
점포마다 온갖 상품 가득 쌓여
비단 가게에는 능라(綾羅)와 금수(錦繡)
어물 가게에는 싱싱한 갈치, 준치, 숭어, 붕어, 잉어
숭례문 밖 풍경을 보니 창고에는 곡식이 억만섬
- 『성시전도(城市全圖)』 -
1동시, 서시, 남시를 개설하였다.
2건원중보와 해동통보가 화폐로 유통되었다.
3국가의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육의전이 번성하였다.
4벽란도와 중국의 항저우를 연결하는 해상길을 통해 교역이 이루어졌다.
정답 및 해설

‘운종가’와 ‘숭례문’이 등장하므로 묘사한 도시는 조선 후기의 한양이며, 국가의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육의전이 번성했다는 설명이 옳다.

운종가(종로)에는 국가에 물품을 대는 대가로 특권을 받은 시전이 늘어섰고, 그중 비단·면포 등 여섯 종류를 취급한 육의전이 대표적이었다.

  • 동시·서시·남시를 개설한 곳은 신라의 수도 경주이다.
  • 건원중보와 해동통보는 고려 시대에 주조된 화폐이다.
  • 벽란도를 통해 송과 교역한 것은 고려의 수도 개경이다.
문제 10
밑줄 친 ‘반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반란을 일으킨 적도들은 평안도 가산읍 북쪽 다복동에서 무리를 모아 봉기하여 가산과 선천, 곽산 등 청천강 북쪽의 주요 고을들을 점령하고 기세를 떨쳤다.
- 『서정록(西征錄)』 -

<보기>
ㄱ.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였다.
ㄴ. 반정 후의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ㄷ. 지역의 무반 출신과 광산노동자들이 적극 가담하였다.
ㄹ. 의주와 안주를 연이어 점령하여 조정에 큰 위협이 되었다.
1ㄱ, ㄴ
2ㄱ, ㄷ
3ㄴ, ㄷ
4ㄴ, ㄹ
정답 및 해설

가산 다복동에서 봉기해 청천강 이북을 점령한 반란은 1811년 홍경래의 난이므로, 평안도 차별에 대한 저항과 무반·광산노동자의 가담이 옳은 설명이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기의 수탈과 서북 지역 차별에 반발해 일어났으며, 몰락 양반·향임층·상인·광산노동자 등이 폭넓게 참여하였다.

  • 반정 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된 것은 인조 때의 이괄의 난이다.
  • 홍경래군은 정주성에서 관군에 진압되었으며, 의주와 안주를 연이어 점령하지는 못하였다.
문제 11
근대문물이 들어오면서 조선 사회가 경험한 새로운 변화와 관련하여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ㄱ. 근대식 우편 제도와 전신 시설은 모두 1884년에 시작하여 원거리 통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ㄴ. 근대식 의료는 갑오개혁 이후 더욱 확산하여 1895년 정부에 위생국을 설치하고 전염병 예방 규칙도 제정하였다.
ㄷ. 전등은 1887년 고종과 미국인의 합작으로 설립한 한성전기회사가 경복궁에 처음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ㄹ. 철도는 광무개혁 때 경인선을, 러일전쟁 때 경부선을, 간도협약으로 경의선을 모두 일본이 개통하였다.
1ㄱ, ㄴ
2ㄴ, ㄷ
3ㄷ, ㄹ
4ㄹ, ㄱ
정답 및 해설

옳은 것은 1884년 우편·전신의 시작과 갑오개혁 이후 위생국 설치·전염병 예방 규칙 제정의 두 가지이다.

1884년 홍영식의 건의로 우정총국이 개설되었고, 같은 해 부산과 나가사키를 잇는 해저 전신선이 개통되었다. 갑오개혁 때 내무아문 아래 위생국이 설치되고 1895년 전염병 예방 규칙이 마련되었다.

  •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처음 켜진 전등은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가 설치한 것이며, 한성전기회사는 1898년에 세워졌다.
  • 경의선은 러일전쟁 중 일본이 군용으로 부설하였고, 간도협약의 대가로 일본이 얻은 것은 안봉선 개축권 등이다.
문제 12
밑줄 친 ‘정변’과 관련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전에는 …(중략)… 개화당을 꾸짖는 자도 많이 있었으나, 개화가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면 듣는 사람들도 감히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변을 겪은 뒤부터 조정과 민간에서 모두 “이른바 개화당이라고 하는 자들은 충의를 모르고 외국인과 연결하여 나라를 팔고 겨레를 배반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 『윤치호 일기』 -
1이 정변을 계기로 주미공사 박정양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2이 정변 직후 근대화를 위해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3이 정변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상호 약속으로 제물포조약이 체결되었다.
4이 정변의 주도 세력은 혜상공국의 혁파 등 여러 개혁을 시도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개화당이 외국인(일본)과 연결해 일으켰다고 비난받은 정변은 1884년 갑신정변이므로, 주도 세력이 혜상공국 혁파 등 개혁을 시도했다는 설명이 옳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는 14개조 정강에서 문벌 폐지, 지조법 개혁, 혜상공국 혁파, 호조로의 재정 일원화 등을 내세웠다.

  • 박정양을 주미공사로 파견한 것은 1887년으로, 갑신정변을 계기로 한 것이 아니다.
  •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에 설치되어 갑신정변보다 앞선다.
  • 제물포조약은 임오군란의 사후 처리로 체결되었고, 갑신정변 뒤에는 한성조약과 톈진조약이 맺어졌다.
문제 13
다음 (가)의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920년대 후반 민족유일당운동의 결과, 만주 지역 민족해방운동의 중심 단체이던 정의·신민·참의 3부가 국민부와 혁신의회로 재편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 국민부 계통은 (가)을/를 조직하여 남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1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2혜산진 보천보를 습격하여 일제의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3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4일본군과 6일 동안 10여 회의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다.
정답 및 해설

국민부 계통이 조직해 남만주에서 활약한 (가)는 조선혁명군이므로, 영릉가·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는 설명이 옳다.

조선혁명군은 양세봉의 지휘 아래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1932년 영릉가 전투, 1933년 흥경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 보천보 습격은 동북항일연군 소속 부대의 활동이다.
  • 쌍성보·대전자령 전투는 혁신의회 계통의 한국독립군이 북만주에서 거둔 승리이다.
  • 청산리 대첩은 1920년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부대 등이 이끌었다.
문제 14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시기로 옳은 것은?

조선총독부는 「조선농지령」을 제정하여 지주의 소작료 수탈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소작인의 소작료 감면청구권을 법제화했다. 이는 소작인의 소작권을 안정시켜 농촌사회의 불안을 완화하려는 것이었으나,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지주의 권익을 옹호하고 마름의 횡포를 통제하지 않았다.

①②③④
국권피탈 ~ 3·1운동3·1운동 ~ 신간회 해산신간회 해산 ~ 조선어학회 사건조선어학회 사건 ~ 8·15 해방
1①
2②
3③
4④
정답 및 해설

「조선농지령」은 1934년에 제정되었으므로, 신간회 해산(1931)과 조선어학회 사건(1942)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1920년대 후반부터 소작 쟁의가 격화되자 총독부는 농촌 진흥 운동과 함께 1932년 조선소작조정령, 1934년 조선농지령을 시행해 소작 쟁의를 체제 안으로 흡수하려 하였다.

  • 국권 피탈부터 3·1 운동까지는 토지 조사 사업이 진행된 무단 통치기이다.
  • 3·1 운동부터 신간회 해산까지는 산미 증식 계획이 추진된 문화 통치기로, 조선농지령보다 앞선다.
  •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는 전시 동원 체제가 극에 달한 시기로, 조선농지령 제정보다 늦다.
문제 15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에 관한 연대별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1960년대: 노동집약적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으로 매년 10%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21970년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전태일의 분신은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었다.
31980년대: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의 이른바 ‘3저 호황’에 힘입어 중반 이후 연평균 10%에 가까운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41990년대: 한때 중단되었던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하는 개헌을 통해 정치적 민주화에 진전을 이루었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대통령 직선제 부활 개헌을 1990년대의 일로 본 내용이다.

직선제를 되살린 개헌은 6월 민주 항쟁 직후인 1987년(9차 개헌)에 이루어졌으므로 1980년대의 사실이다.

  • 1960년대 노동집약적 수출 주도형 공업화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설명은 옳다.
  •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이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는 설명은 옳다.
  • 1980년대 중반 이후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으로 고성장을 이루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6
다음 각 자료에 해당하는 시대의 지방 제도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ㄱ. 사람을 죽인 자는 바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하게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그 집의 노비로 삼는다.
ㄴ. 태조께서 나라를 통일한 후에 외관을 두고자 하였으나 …(중략)… 시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중략)… 청컨대 외관을 두소서.
ㄷ. 골품을 따져 사람을 쓰기 때문에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뛰어난 재주와 큰 공이 있어도 자기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ㄹ. 이들은 집합하자마자 우선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쳐 …(중략)… 군중의 사기를 높이고 마침내는 경찰 관서를 습격하여 때때로 파괴적 행동에 빠지려 하였다.
1ㄱ: 5부를 설치하고 장관으로 욕살을 두었다.
2ㄴ: 12목을 설치하고 장관으로 목사를 두었다.
3ㄷ: 8도를 설치하고 장관으로 관찰사를 두었다.
4ㄹ: 23부를 설치하고 장관으로 관찰사를 두었다.
정답 및 해설

태조가 외관을 두려다 못 했으니 외관을 두라고 청한 글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로 고려 성종 때이며, 이 시기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를 파견하였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983년 처음으로 지방에 12목을 두고 지방관을 상주시켰다.

  • 살인·상해·절도를 처벌한 법은 고조선의 8조법이며, 5부와 욕살은 고구려의 지방 제도이다.
  • 골품에 따른 인재 등용은 신라의 모습이며, 8도와 관찰사는 조선의 지방 제도이다.
  •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찰 관서를 습격한 것은 일제 강점기 3·1 운동의 모습이고, 23부와 관찰사는 1895년 제2차 갑오개혁 때의 제도이다.
문제 17
시대별 교육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삼국 가운데 백제와 신라는 모두 국학이라는 최고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2고려에서는 국자감과 향교 외에도 9재라는 사립교육 형태가 나타났다.
3조선에서는 선현을 모시는 서원이 고등 교육 기능도 함께 담당하였다.
4갑오개혁 시기에 신교육을 전담할 정부 부처로 학무아문을 설치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백제와 신라가 모두 국학을 설립했다는 내용이다.

국학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세운 유학 교육기관이며, 백제는 국학을 두지 않고 오경박사 등 박사 제도를 운영하였다(고구려는 태학).

  • 고려에서 국자감·향교 외에 최충의 문헌공도 등 사학 12도가 나타났으며 문헌공도가 9재로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옳다.
  • 조선의 서원은 선현 제사와 함께 교육 기능을 담당했다는 설명은 옳다.
  • 갑오개혁 때 교육 행정을 전담하는 학무아문을 설치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8
다음 (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옳지 않은 것은?
1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수도를 옮겼다.
2프랑스 군이 침입하여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3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켰다.
4진위대의 군인들이 군대해산에 저항하여 봉기하였다.
정답 및 해설

부근리 고인돌, 정족산성, 초지진이 있는 (가)는 강화도이며, 을사조약에 반대해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킨 곳은 강화도가 아니다.

최익현은 1906년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창에서 체포되어 쓰시마로 압송되었다.

  • 고려 최씨 무신 정권은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하고 외규장각 의궤 등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 1907년 군대 해산에 맞서 강화 진위대 군인들이 봉기하였다.
문제 19
밑줄 친 부분과 의미가 통하는 한자어를 연결한 것으로 옳지 않은 것은?

ㄱ. 코로나 19로 인해 일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ㄴ. 이 연극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ㄷ. 그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아직 드러내지 않은 생각이 따로 있었다.
ㄹ. 다국적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1ㄱ: 休務
2ㄴ: 壓卷
3ㄷ: 覆案
4ㄹ: 角逐
정답 및 해설

‘마음속에 간직하고 아직 드러내지 않은 생각’은 배 복(腹) 자를 쓴 腹案(복안)이므로, 뒤집힐 복(覆) 자를 쓴 覆案과 연결한 것이 옳지 않다.

覆案은 ‘다시 조사하여 살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어서 음이 같아도 의미가 다르다.

  • ‘일을 쉬는’ 것은 休務(휴무)와 통한다.
  • ‘가장 뛰어난 부분’은 壓卷(압권)과 통한다.
  • ‘치열하게 다투는’ 것은 角逐(각축)과 통한다.
문제 20
밑줄 친 단어의 한자 표기가 모두 옳은 것은?
1의견수렴(意見收廉)을 거쳐 우체국 보험(保險) 상품을 새로 시판했다.
2예금주는 언제든지 예금거래 기본 약관(約款)의 교부(交付)를 청구할 수 있다.
3우정사업본부는 대한민국 우편(郵便)·금융의 초석 역할(楚石役割)을 하고 있다.
4변동금리를 적용하는 거치식(据値式) 예금(預金)은 최초 거래 시 이율 적용 방법을 표시한다.
정답 및 해설

한자 표기가 모두 옳은 것은 예금거래 기본 약관(約款)의 교부(交付)를 청구한다는 문장이다.

나머지 문장에는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다른 한자를 잘못 쓴 표기가 하나씩 들어 있다.

  • 의견을 모은다는 뜻의 의견수렴은 意見收斂으로 써야 하며, 收廉은 틀린 표기이다(보험 保險은 옳다).
  • 주춧돌을 뜻하는 초석은 礎石으로 써야 하며, 楚石은 틀린 표기이다(우편 郵便은 옳다).
  • 일정 기간 그대로 두는 거치식은 据置式으로 써야 하며, 据値式은 틀린 표기이다(예금 預金은 옳다).
계리직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1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글이 나오는 책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대저 옛 성인들은 예악으로 나라를 융성케하고 인의(仁義)로 가르쳤으며, 괴상한 힘이나 난잡한 귀신을 말하지 아니했다. …(중략)…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고 해서 어찌 괴이하겠는가? 이것이 신이로써 다른 편보다 먼저 놓은 까닭이며, 그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1현재 전하는 신라의 향가를 가장 많이 수록하고 있다.
2유교 사서의 관례에 따라 중국 정사의 기전체(紀傳體) 형식을 도입했다.
3개인 전기가 실린 열전은 백제인이나 고구려인보다 신라인의 비중이 높다.
4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하여 사용한 것은 옳지 않다고 논했다.
정답 및 해설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며 이를 다른 편보다 먼저 놓았다는 글은 일연의 『삼국유사』 기이편 서문이므로, 현전 신라 향가를 가장 많이 수록한 책이라는 설명이 옳다.

『삼국유사』에는 향가 14수가 실려 있어 현재 전하는 신라 향가의 대부분을 담고 있다. 고조선과 단군 신화, 불교 설화와 민간 전승도 폭넓게 수록하였다.

  • 중국 정사의 기전체 형식을 따른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이다.
  • 열전에서 신라인의 비중이 높은 것도 『삼국사기』의 특징이다.
  • 신라의 독자 연호 사용을 옳지 않다고 논한 것은 사대적 시각을 드러낸 『삼국사기』의 사론이다.
문제 2
다음 ( )의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지금 ( )의 창고에는 옥으로 된 벽(璧)·규(珪)·찬(瓚) 등 여러 대에 걸쳐 내려온 물건이 있어 대대로 보물로 여기는데, 원로들이 말하길 선대(先代) 왕이 하사받은 것이라 한다. 그 인문(印文)은 ‘예왕지인(濊王之印)’ 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1추수가 끝나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2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의 특산물이 생산되었고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하였다.
3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는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4사출도를 두었으며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개최하였다.
정답 및 해설

창고에 ‘예왕지인(濊王之印)’이 새겨진 인장을 보관했다는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부여조이므로, 사출도를 두고 12월에 영고를 연 나라라는 설명이 옳다.

부여는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가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고, 수렵 사회의 전통이 남은 영고를 12월에 열었다.

  • 10월의 제천 행사 동맹은 고구려의 풍속이다.
  • 단궁·과하마·반어피와 10월 무천은 동예에 해당한다.
  • 5월과 10월의 계절제는 삼한의 제천 행사이다.
문제 3
신라의 발전 과정에 대한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고령의 대가야를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ㄴ. 호국의 염원을 담아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ㄷ. 행정기관인 병부(兵部)를 설치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ㄹ. 주군현(州郡縣)의 제도를 정하고 실직주(悉直州)를 두었다.
1ㄷ-ㄹ-ㄱ-ㄴ
2ㄷ-ㄹ-ㄴ-ㄱ
3ㄹ-ㄷ-ㄱ-ㄴ
4ㄹ-ㄷ-ㄴ-ㄱ
정답 및 해설

시대순은 지증왕의 주군현 제도·실직주 설치 → 법흥왕의 병부 설치 → 진흥왕의 대가야 병합 → 선덕여왕의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이다.

지증왕은 505년 주군현 제도를 정하고 실직주를 두어 이사부를 군주로 삼았다. 법흥왕은 517년 병부를 설치하고 율령을 반포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 진흥왕은 562년 이사부를 보내 고령의 대가야를 병합하였다.
  • 황룡사 9층 목탑은 선덕여왕 때 자장의 건의로 645년에 완성되었다.
문제 4
다음 ( )에 해당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현종(玄宗) 개원(開元) 7년에 ( )이/가 죽었다. …(중략)… 아들이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들이 겁을 먹고 그를 섬겼으며, 또 사사로이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고쳤다.
- 신당서, 「열전」 북적 발해 -
1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를 확립하였다.
2장수 장문휴(張文休)를 시켜 등주를 공격하였다.
33성 6부의 중앙 관제와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4당의 군대를 천문령에서 물리치고 동모산에서 건국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개원 7년(719)에 죽고 아들이 연호를 ‘인안’으로 고쳤다고 했으므로 그 아들은 무왕이고, ( )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다. 따라서 천문령에서 당군을 물리치고 동모산에서 건국했다는 설명이 옳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천문령 전투에서 당군을 격파한 뒤 698년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는 선왕 때 갖추어졌다.
  • 장문휴를 보내 등주를 공격한 것은 아들 무왕이다.
  • 3성 6부의 중앙 관제 정비는 문왕 때의 일이다.
문제 5
고려 시대 가족 제도와 여성의 지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아들과 딸 모두 부모의 제사를 주관할 수 있었다.
2여성은 사회 활동에 아무런 제한이 없이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3혼인 형태는 일부일처가 일반적이었으나 축첩(蓄妾)도 가능하였다.
4여성이 호주(戶主)가 될 수 있었고 호적에도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나이에 따라 기록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고려 여성이 사회 활동에 아무런 제한 없이 남성과 대등했다는 내용이다.

고려 여성은 가정 안에서 지위가 비교적 높았지만 관직 진출이 불가능했으므로 사회 활동에 제한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

  • 아들과 딸이 모두 제사를 주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은 옳다 — 자녀가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윤회봉사도 행해졌다.
  • 일부일처가 일반적이었으나 축첩도 가능했다는 설명은 옳다.
  •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있고 호적에 자녀를 아들딸 구분 없이 나이순으로 기록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6
다음 작품이 제작된 시기의 문화 예술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자연을 벗삼아 사는 모습을 노래한 「청산별곡」이 창작되었다.
2왕조의 창업과정과 왕실 선조들의 업적을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3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두어 왕실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 등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였다.
4중인·서얼층이 결성한 시사(詩社)를 중심으로 위항문학(委巷文學)이 유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세종 때인 15세기 작품이므로, 『용비어천가』를 지은 것이 같은 시기의 문화이다.

세종 때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왕조 창업 과정과 선조의 업적을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한글로 지어 간행하였다.

  • 「청산별곡」은 고려 시대의 속요이다.
  • 강화도 외규장각은 조선 후기 정조 때 설치되었다.
  • 중인·서얼의 시사를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은 조선 후기에 유행하였다.
문제 7
다음 전투가 일어난 시기를 <보기>의 (가)~(라)에서 바르게 고른 것은?

이여송이 휘하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말을 몰아 급히 진격하였다. 왜적은 벽제관 부근에서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면서 명군을 진흙수렁으로 유인하였다. 명군이 함부로 전진하다가 여기에 빠지자 왜적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명군을 마구 척살하였다. 겨우 죽음을 면한 이여송은 나머지 부하들을 이끌고 파주,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후퇴하였다.
- 『연려실기술』, 선조조 고사본말 -

<보기>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패하고 자결하다.
⇩ (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이 한산도 해상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기다.
⇩ (나)
김시민 휘하의 조선 군인과 백성들이 진주성에서 일본군의 침입을 막아내다.
⇩ (다)
권율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다.
⇩ (라)
원균이 칠천량 부근에서 전사하다.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이여송의 명군이 패한 벽제관 전투는 1593년 1월의 일로, 1차 진주성 전투와 행주산성 전투 사이인 (다) 시기에 해당한다.

1592년 4월 탄금대 패전, 7월 한산도 대첩, 10월 김시민의 진주성 승리가 이어졌다. 1593년 1월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되찾은 뒤 남하하던 명군이 벽제관에서 패하였고, 이어 2월에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승리하였다.

  •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전사한 것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이다.
문제 8
다음 글이 나오는 책을 지은 학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수령이라는 직책은 관장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여러 조목을 열거하여도 오히려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스스로 실행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첫머리의 부임(赴任)과 맨 끝의 해관(解官) 2편을 제외한 나머지 10편에 들어 있는 것만 해도 60조나 되니, 진실로 어진 수령이 있어 제 직분을 다할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방법에 어둡지는 않을 것이다.
1노론의 중심 인물로 대의명분을 중시하였다.
2조세제도 개혁을 통해 정전제의 이념을 구현하려 하였다.
3자영농 육성을 위해 토지를 재분배하자는 균전론을 제기하였다.
4본인의 연행 경험을 바탕으로 상공업 진흥과 기술 발전을 제안하였다.
정답 및 해설

수령의 직책을 부임에서 해관까지 12편으로 정리한 책은 『목민심서』이고 지은이는 정약용이므로, 조세 제도 개혁으로 정전제의 이념을 구현하려 했다는 설명이 옳다.

정약용은 여전론을 거쳐 현실적 대안으로 정전론을 내세워 토지 제도와 조세 제도를 함께 개혁하고자 하였다.

  • 노론의 중심 인물로 대의명분을 중시한 인물은 송시열이다.
  • 자영농 육성을 위한 균전론은 유형원이 제기하였다.
  • 연행 경험을 바탕으로 상공업 진흥과 기술 발전을 제안한 것은 박지원·박제가 등 북학파이다.
문제 9
다음에서 묘사한 도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운종가는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바다
수레와 말들은 우레 소리 일으키네.
점포마다 온갖 상품 가득 쌓여
비단 가게에는 능라(綾羅)와 금수(錦繡)
어물 가게에는 싱싱한 갈치, 준치, 숭어, 붕어, 잉어
숭례문 밖 풍경을 보니 창고에는 곡식이 억만섬
- 『성시전도(城市全圖)』 -
1동시, 서시, 남시를 개설하였다.
2건원중보와 해동통보가 화폐로 유통되었다.
3국가의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육의전이 번성하였다.
4벽란도와 중국의 항저우를 연결하는 해상길을 통해 교역이 이루어졌다.
정답 및 해설

‘운종가’와 ‘숭례문’이 등장하므로 묘사한 도시는 조선 후기의 한양이며, 국가의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육의전이 번성했다는 설명이 옳다.

운종가(종로)에는 국가에 물품을 대는 대가로 특권을 받은 시전이 늘어섰고, 그중 비단·면포 등 여섯 종류를 취급한 육의전이 대표적이었다.

  • 동시·서시·남시를 개설한 곳은 신라의 수도 경주이다.
  • 건원중보와 해동통보는 고려 시대에 주조된 화폐이다.
  • 벽란도를 통해 송과 교역한 것은 고려의 수도 개경이다.
문제 10
밑줄 친 ‘반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반란을 일으킨 적도들은 평안도 가산읍 북쪽 다복동에서 무리를 모아 봉기하여 가산과 선천, 곽산 등 청천강 북쪽의 주요 고을들을 점령하고 기세를 떨쳤다.
- 『서정록(西征錄)』 -

<보기>
ㄱ.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였다.
ㄴ. 반정 후의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ㄷ. 지역의 무반 출신과 광산노동자들이 적극 가담하였다.
ㄹ. 의주와 안주를 연이어 점령하여 조정에 큰 위협이 되었다.
1ㄱ, ㄴ
2ㄱ, ㄷ
3ㄴ, ㄷ
4ㄴ, ㄹ
정답 및 해설

가산 다복동에서 봉기해 청천강 이북을 점령한 반란은 1811년 홍경래의 난이므로, 평안도 차별에 대한 저항과 무반·광산노동자의 가담이 옳은 설명이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기의 수탈과 서북 지역 차별에 반발해 일어났으며, 몰락 양반·향임층·상인·광산노동자 등이 폭넓게 참여하였다.

  • 반정 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된 것은 인조 때의 이괄의 난이다.
  • 홍경래군은 정주성에서 관군에 진압되었으며, 의주와 안주를 연이어 점령하지는 못하였다.
문제 11
근대문물이 들어오면서 조선 사회가 경험한 새로운 변화와 관련하여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ㄱ. 근대식 우편 제도와 전신 시설은 모두 1884년에 시작하여 원거리 통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ㄴ. 근대식 의료는 갑오개혁 이후 더욱 확산하여 1895년 정부에 위생국을 설치하고 전염병 예방 규칙도 제정하였다.
ㄷ. 전등은 1887년 고종과 미국인의 합작으로 설립한 한성전기회사가 경복궁에 처음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ㄹ. 철도는 광무개혁 때 경인선을, 러일전쟁 때 경부선을, 간도협약으로 경의선을 모두 일본이 개통하였다.
1ㄱ, ㄴ
2ㄴ, ㄷ
3ㄷ, ㄹ
4ㄹ, ㄱ
정답 및 해설

옳은 것은 1884년 우편·전신의 시작과 갑오개혁 이후 위생국 설치·전염병 예방 규칙 제정의 두 가지이다.

1884년 홍영식의 건의로 우정총국이 개설되었고, 같은 해 부산과 나가사키를 잇는 해저 전신선이 개통되었다. 갑오개혁 때 내무아문 아래 위생국이 설치되고 1895년 전염병 예방 규칙이 마련되었다.

  •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처음 켜진 전등은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가 설치한 것이며, 한성전기회사는 1898년에 세워졌다.
  • 경의선은 러일전쟁 중 일본이 군용으로 부설하였고, 간도협약의 대가로 일본이 얻은 것은 안봉선 개축권 등이다.
문제 12
밑줄 친 ‘정변’과 관련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전에는 …(중략)… 개화당을 꾸짖는 자도 많이 있었으나, 개화가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면 듣는 사람들도 감히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변을 겪은 뒤부터 조정과 민간에서 모두 “이른바 개화당이라고 하는 자들은 충의를 모르고 외국인과 연결하여 나라를 팔고 겨레를 배반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 『윤치호 일기』 -
1이 정변을 계기로 주미공사 박정양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2이 정변 직후 근대화를 위해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3이 정변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상호 약속으로 제물포조약이 체결되었다.
4이 정변의 주도 세력은 혜상공국의 혁파 등 여러 개혁을 시도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개화당이 외국인(일본)과 연결해 일으켰다고 비난받은 정변은 1884년 갑신정변이므로, 주도 세력이 혜상공국 혁파 등 개혁을 시도했다는 설명이 옳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는 14개조 정강에서 문벌 폐지, 지조법 개혁, 혜상공국 혁파, 호조로의 재정 일원화 등을 내세웠다.

  • 박정양을 주미공사로 파견한 것은 1887년으로, 갑신정변을 계기로 한 것이 아니다.
  •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에 설치되어 갑신정변보다 앞선다.
  • 제물포조약은 임오군란의 사후 처리로 체결되었고, 갑신정변 뒤에는 한성조약과 톈진조약이 맺어졌다.
문제 13
다음 (가)의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920년대 후반 민족유일당운동의 결과, 만주 지역 민족해방운동의 중심 단체이던 정의·신민·참의 3부가 국민부와 혁신의회로 재편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 국민부 계통은 (가)을/를 조직하여 남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1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2혜산진 보천보를 습격하여 일제의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3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4일본군과 6일 동안 10여 회의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다.
정답 및 해설

국민부 계통이 조직해 남만주에서 활약한 (가)는 조선혁명군이므로, 영릉가·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는 설명이 옳다.

조선혁명군은 양세봉의 지휘 아래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1932년 영릉가 전투, 1933년 흥경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 보천보 습격은 동북항일연군 소속 부대의 활동이다.
  • 쌍성보·대전자령 전투는 혁신의회 계통의 한국독립군이 북만주에서 거둔 승리이다.
  • 청산리 대첩은 1920년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부대 등이 이끌었다.
문제 14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시기로 옳은 것은?

조선총독부는 「조선농지령」을 제정하여 지주의 소작료 수탈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소작인의 소작료 감면청구권을 법제화했다. 이는 소작인의 소작권을 안정시켜 농촌사회의 불안을 완화하려는 것이었으나,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지주의 권익을 옹호하고 마름의 횡포를 통제하지 않았다.

①②③④
국권피탈 ~ 3·1운동3·1운동 ~ 신간회 해산신간회 해산 ~ 조선어학회 사건조선어학회 사건 ~ 8·15 해방
1①
2②
3③
4④
정답 및 해설

「조선농지령」은 1934년에 제정되었으므로, 신간회 해산(1931)과 조선어학회 사건(1942)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1920년대 후반부터 소작 쟁의가 격화되자 총독부는 농촌 진흥 운동과 함께 1932년 조선소작조정령, 1934년 조선농지령을 시행해 소작 쟁의를 체제 안으로 흡수하려 하였다.

  • 국권 피탈부터 3·1 운동까지는 토지 조사 사업이 진행된 무단 통치기이다.
  • 3·1 운동부터 신간회 해산까지는 산미 증식 계획이 추진된 문화 통치기로, 조선농지령보다 앞선다.
  •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는 전시 동원 체제가 극에 달한 시기로, 조선농지령 제정보다 늦다.
문제 15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에 관한 연대별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1960년대: 노동집약적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으로 매년 10%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21970년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전태일의 분신은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었다.
31980년대: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의 이른바 ‘3저 호황’에 힘입어 중반 이후 연평균 10%에 가까운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41990년대: 한때 중단되었던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하는 개헌을 통해 정치적 민주화에 진전을 이루었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대통령 직선제 부활 개헌을 1990년대의 일로 본 내용이다.

직선제를 되살린 개헌은 6월 민주 항쟁 직후인 1987년(9차 개헌)에 이루어졌으므로 1980년대의 사실이다.

  • 1960년대 노동집약적 수출 주도형 공업화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설명은 옳다.
  •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이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는 설명은 옳다.
  • 1980년대 중반 이후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으로 고성장을 이루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6
다음 각 자료에 해당하는 시대의 지방 제도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ㄱ. 사람을 죽인 자는 바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하게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그 집의 노비로 삼는다.
ㄴ. 태조께서 나라를 통일한 후에 외관을 두고자 하였으나 …(중략)… 시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중략)… 청컨대 외관을 두소서.
ㄷ. 골품을 따져 사람을 쓰기 때문에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뛰어난 재주와 큰 공이 있어도 자기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ㄹ. 이들은 집합하자마자 우선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쳐 …(중략)… 군중의 사기를 높이고 마침내는 경찰 관서를 습격하여 때때로 파괴적 행동에 빠지려 하였다.
1ㄱ: 5부를 설치하고 장관으로 욕살을 두었다.
2ㄴ: 12목을 설치하고 장관으로 목사를 두었다.
3ㄷ: 8도를 설치하고 장관으로 관찰사를 두었다.
4ㄹ: 23부를 설치하고 장관으로 관찰사를 두었다.
정답 및 해설

태조가 외관을 두려다 못 했으니 외관을 두라고 청한 글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로 고려 성종 때이며, 이 시기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를 파견하였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983년 처음으로 지방에 12목을 두고 지방관을 상주시켰다.

  • 살인·상해·절도를 처벌한 법은 고조선의 8조법이며, 5부와 욕살은 고구려의 지방 제도이다.
  • 골품에 따른 인재 등용은 신라의 모습이며, 8도와 관찰사는 조선의 지방 제도이다.
  •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찰 관서를 습격한 것은 일제 강점기 3·1 운동의 모습이고, 23부와 관찰사는 1895년 제2차 갑오개혁 때의 제도이다.
문제 17
시대별 교육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삼국 가운데 백제와 신라는 모두 국학이라는 최고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2고려에서는 국자감과 향교 외에도 9재라는 사립교육 형태가 나타났다.
3조선에서는 선현을 모시는 서원이 고등 교육 기능도 함께 담당하였다.
4갑오개혁 시기에 신교육을 전담할 정부 부처로 학무아문을 설치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백제와 신라가 모두 국학을 설립했다는 내용이다.

국학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세운 유학 교육기관이며, 백제는 국학을 두지 않고 오경박사 등 박사 제도를 운영하였다(고구려는 태학).

  • 고려에서 국자감·향교 외에 최충의 문헌공도 등 사학 12도가 나타났으며 문헌공도가 9재로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옳다.
  • 조선의 서원은 선현 제사와 함께 교육 기능을 담당했다는 설명은 옳다.
  • 갑오개혁 때 교육 행정을 전담하는 학무아문을 설치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8
다음 (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옳지 않은 것은?
1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수도를 옮겼다.
2프랑스 군이 침입하여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3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켰다.
4진위대의 군인들이 군대해산에 저항하여 봉기하였다.
정답 및 해설

부근리 고인돌, 정족산성, 초지진이 있는 (가)는 강화도이며, 을사조약에 반대해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킨 곳은 강화도가 아니다.

최익현은 1906년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창에서 체포되어 쓰시마로 압송되었다.

  • 고려 최씨 무신 정권은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하고 외규장각 의궤 등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 1907년 군대 해산에 맞서 강화 진위대 군인들이 봉기하였다.
문제 19
밑줄 친 부분과 의미가 통하는 한자어를 연결한 것으로 옳지 않은 것은?

ㄱ. 코로나 19로 인해 일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ㄴ. 이 연극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ㄷ. 그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아직 드러내지 않은 생각이 따로 있었다.
ㄹ. 다국적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1ㄱ: 休務
2ㄴ: 壓卷
3ㄷ: 覆案
4ㄹ: 角逐
정답 및 해설

‘마음속에 간직하고 아직 드러내지 않은 생각’은 배 복(腹) 자를 쓴 腹案(복안)이므로, 뒤집힐 복(覆) 자를 쓴 覆案과 연결한 것이 옳지 않다.

覆案은 ‘다시 조사하여 살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어서 음이 같아도 의미가 다르다.

  • ‘일을 쉬는’ 것은 休務(휴무)와 통한다.
  • ‘가장 뛰어난 부분’은 壓卷(압권)과 통한다.
  • ‘치열하게 다투는’ 것은 角逐(각축)과 통한다.
문제 20
밑줄 친 단어의 한자 표기가 모두 옳은 것은?
1의견수렴(意見收廉)을 거쳐 우체국 보험(保險) 상품을 새로 시판했다.
2예금주는 언제든지 예금거래 기본 약관(約款)의 교부(交付)를 청구할 수 있다.
3우정사업본부는 대한민국 우편(郵便)·금융의 초석 역할(楚石役割)을 하고 있다.
4변동금리를 적용하는 거치식(据値式) 예금(預金)은 최초 거래 시 이율 적용 방법을 표시한다.
정답 및 해설

한자 표기가 모두 옳은 것은 예금거래 기본 약관(約款)의 교부(交付)를 청구한다는 문장이다.

나머지 문장에는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다른 한자를 잘못 쓴 표기가 하나씩 들어 있다.

  • 의견을 모은다는 뜻의 의견수렴은 意見收斂으로 써야 하며, 收廉은 틀린 표기이다(보험 保險은 옳다).
  • 주춧돌을 뜻하는 초석은 礎石으로 써야 하며, 楚石은 틀린 표기이다(우편 郵便은 옳다).
  • 일정 기간 그대로 두는 거치식은 据置式으로 써야 하며, 据値式은 틀린 표기이다(예금 預金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