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의 '한 번'은 횟수를 세는 말이므로 '한 번'으로 띄어 써야 한다.
'번'이 차례나 횟수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로 쓰여 '두 번, 세 번'으로 바꿀 수 있으면 띄어 쓰고, 시도·기회·강조·'일단'의 뜻으로 굳은 '한번'은 한 단어로 붙여 쓴다.
- '말 한번 잘했다'의 '한번'은 강조의 뜻이므로 붙여 쓴 것이 옳다.
- '얼만지 한번 물어보세요'의 '한번'은 어떤 일을 시험 삼아 해 본다는 뜻이므로 붙여 쓴 것이 옳다.
- '한번 엎지른 물'의 '한번'은 '일단 한 차례'라는 뜻의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쓴 것이 옳다.
총칙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 소리대로 적되, ㉡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다달이'는 'ㄹ'이 탈락한 소리를 그대로 적은 것이므로 '소리대로 적되'(㉠)의 예이지 '어법에 맞도록'(㉡)의 예가 아니다.
'달+달+이'에서 'ㄹ'이 떨어진 발음을 형태소의 본 모양 대신 소리대로 반영한 표기이므로, 본 모양을 밝히는 어법 원칙과는 반대 방향이다.
- '살고기' 대신 '살코기'로 적는 것은 'ㅎ'이 덧나는 실제 발음을 따른 것이므로 ㉠의 예로 적절하다.
- '론의' 대신 '논의'로 적는 것은 두음 법칙에 따른 실제 발음대로 적은 것이므로 ㉠의 예로 적절하다.
- '그피' 대신 '급히'로 적는 것은 어근 '급'과 접사 '-히'의 본 모양을 밝힌 것이므로 ㉡의 예로 적절하다.
'먹을 수 있거나 먹을 만한 음식'을 뜻하는 '먹거리'는 '먹을거리'와 함께 표준어로 인정된 말이므로 표기가 옳다.
나머지는 모두 표준 표기가 따로 있다.
- 무를 깍둑썰기하여 담근 김치는 '깎두기'가 아니라 '깍두기'로 적는다.
- 남을 단단히 윽박지르는 것은 '닥달하다'가 아니라 '닦달하다'로 적는다.
- 꽤 넓다는 뜻의 말은 겹받침 'ㄼ'의 'ㅂ'이 발음되지 않으므로 '넓다란'이 아니라 '널따란'으로 적는다.
'ㅐ'와 'ㅔ'의 차이는 혀의 높낮이이다. 'ㅔ'는 중모음, 'ㅐ'는 저모음이다.
두 모음은 모두 전설 모음이고 평순 모음이어서 혀의 앞뒤 위치와 입술 모양은 같다. 따라서 혀의 높이 차이가 잘 실현되지 않으면 두 소리가 구분되지 않는다.
- 혀의 앞뒤 위치는 두 모음이 모두 전설 모음으로 같으므로 구별 자질이 될 수 없다.
- 소리의 강약은 모음 'ㅐ'와 'ㅔ'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 소리의 장단은 같은 모음 안에서 뜻을 가르는 운소이지, 'ㅐ'와 'ㅔ'라는 서로 다른 모음을 구별하는 자질이 아니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히다'라는 뜻의 '얽히고설키다'는 한 단어로 붙여 쓰는 표준어이므로 이 문장은 어법에 맞다.
나머지 문장은 어휘 표기 오류나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오류가 있다.
- '웬간해서는'은 표준어가 아니며 '웬만해서는'으로 써야 한다.
- '불필요한 기능은 빠지고 필요한 기능만 살렸다'는 '살렸다'의 주체와 '빠지고'가 호응하지 않으므로 '불필요한 기능은 빼고'로 고쳐야 한다.
- '공사가 … 개통될지'는 공사가 개통된다는 뜻이 되어 호응이 어색하므로 '공사가 언제 시작되고 도로가 언제 개통될지'처럼 고쳐야 한다.
- 혜경궁 홍씨, 「한중록」 -
㉣의 '내'는 글쓴이인 혜경궁 홍씨 자신을 가리키고, 나머지는 모두 사도 세자를 가리킨다.
'소조(小朝)'는 대리청정하던 세자를 이르는 말이고, 휘항을 가져오라고 말하는 인물도 세자이다. '내 마음은 당신이 그날 그 지경에 이르실 줄 모르고'에서 '내'는 서술자인 혜경궁이다.
- ㉠의 '소조'는 영조가 휘령전으로 부른 세자, 곧 사도 세자를 가리킨다.
- ㉡의 '내'는 "내가 학질을 앓는다 하려 하니"라고 말하는 사도 세자 자신이다.
- ㉢의 '당신'은 혜경궁이 남편인 사도 세자를 높여 가리키는 3인칭 재귀 대명사이다.
종루 저자에 다리 팔아 배 사고 감 사고 유자 사고 석류 샀다.
아차차 잊었구나. 오화당(五花糖)을 잊어 버렸구나.
수박에 숟 꽂아 놓고 한숨계워 하노라.
송골매도 같고 줄에 앉은 제비도 같고 백화원리(百花園裡)에 두루미도 같고 녹수파란(綠水波瀾)에 비오리도 같고 따헤 퍽 앉은 소리개도 같고 썩은 등걸에 부엉이도 같데.
그려도 다 각각 임의 사랑이니 개(皆) 일색(一色)인가 하노라.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사올꼬.
단표누항에 허튼 혜음 아니하니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어떠하리.
산 접동새 난 비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것을
아으 잔월효성이 알으시리이다.
제시된 글은 임과 떨어져 병이 들 만큼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가 죽어서라도 범나비가 되어 임을 따르겠다고 하는 노래로, 고려 가요 「정과정」의 화자와 처지·정서가 가장 가깝다.
「정과정」의 화자도 '내 임을 그리워하여 울고 있나니'라며 임과 떨어진 채 임에 대한 그리움과 결백을 하소연한다.
- 병든 서방님을 위해 장에서 과일을 사 왔다가 오화당을 잊고 한숨짓는 노래는 곁에 있는 임을 보살피는 상황이라 이별의 그리움과 거리가 멀다.
- 여러 여인의 모습을 새에 빗대어 나열하는 노래는 해학적 관찰을 담고 있어 그리움의 정서가 드러나지 않는다.
- 공명과 부귀를 멀리하고 청풍명월을 벗 삼는 노래는 안빈낙도의 정서를 드러낸다.
○ 樹欲靜(㉡)風不止
㉠에는 '~으로써'를 뜻하는 以, ㉡에는 역접의 접속사 而가 들어간다.
'不以其道得之'는 '정당한 방법으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면'이라는 뜻이고(『논어』 「이인」), '樹欲靜而風不止'는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앞뒤 내용이 상반되는 '而'의 쓰임이다.
- ㉠에 '而'를 넣으면 '其道'를 수단으로 삼는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
- ㉡에 '以'를 넣으면 '고요하고자 함'과 '바람이 그치지 않음'의 역접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클래식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 티케트를 구한 후 별도의 준비 없이도 공연 현장에서 곧바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클래식이다.
물론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예습’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연장에 가기 전에 감상할 음악의 전곡(全曲) 음반을 구해 ㉢ 미리 들어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작곡가나 연주자 그리고 지휘자 등에 대해 미리 살펴보는 것도 좋다. 같은 곡을 다른 사람이 연주한 것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공연장에서 연주가 끝날 때에는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연주가 만족스럽게 느껴졌을 때도 박수를 칠 수 있다. 매우 감동한 경우에는 ‘앙코르!’, ‘브라보!’ 등의 환호를 보내도 ㉣ 올바르다.
글의 중심 내용은 클래식을 어렵게 여기지 말고 부담 없이 즐기라는 것이므로, 제목을 '꼭 지켜야 할 예절'로 바꾸자는 제안은 적절하지 않다.
본문은 '별도의 준비 없이도 … 곧바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클래식이라고 하며, 예습과 박수·환호도 즐기는 방법으로 소개할 뿐 의무적 규범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 'ticket'은 외래어 표기법상 '티켓'으로 적으므로 '티케트'를 고치자는 제안은 적절하다.
- '가장 좋은 방법은'이라는 주어에 맞추어 서술어를 '미리 들어 보는 것이다'로 고치는 것은 주술 호응상 적절하다.
- 환호를 보내도 괜찮다는 뜻이므로 '올바르다'보다 '무방하다'가 문맥에 맞는다.
계연은 이미 시뻘겋게 된 두 눈으로 성기의 마지막 시선을 찾으며 하직 인사를 했다. 성기는 계연의 이 말에, 꿈을 깬 듯,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계연의 앞으로 당황히 몇 걸음 어뜩어뜩 걸어오다간, 돌연히 다시 정신이 나는 듯 그 자리에 화석처럼 발이 굳어 버린 채, 한참 동안 장승같이 계연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편히 사시오.”
이렇게 두 번째 하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계연의 그 시뻘건 두 눈은 역시 성기의 얼굴에서 그 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만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러나 성기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릴 뻔하던 것을 겨우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계연의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은, 옥화와 그녀의 아버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 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빠, 편히 사시오.”
하고, 거의 울음이 다 된, 마지막 목소리를 남기고 돌아선 계연의 저만치 가고 있는 항라적삼을, 고운 햇빛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산울림처럼 울려오는 뻐꾸기 울음 속에 성기는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 김동리, 「역마」 -
계연의 거듭된 하직 인사에도 성기가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하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리를 보여 준다.
성기는 '꿈을 깬 듯' 일어났다가 '화석처럼 발이 굳어 버린 채' 바라보기만 하고, 두 눈엔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계연이 세 번 하직한 것은 성기에게서 '기적과도 같은 구원만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이지 인연을 끝내려는 의지가 아니다.
- '고운 햇빛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 뻐꾸기 울음'은 이별의 애상적 분위기를 돋우는 배경이지 굴곡진 미래를 암시하지 않는다.
- 서술자는 성기의 행동과 표정을 담담하게 그릴 뿐 냉소적·비판적 논평을 하지 않는다.
'입이 질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함부로 하는 것을 이르므로 '교양이 있겠구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교양 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말을 삼가거나 점잖게 한다는 긍정적 의미의 표현이 와야 문맥이 맞는다.
- '입이 높다'는 좋은 음식만 먹으려 한다는 뜻이므로 일반 음식은 먹지 않는다는 문맥에 맞다.
- '입이 뜨다'는 말수가 적다는 뜻이므로 '과묵한 사람'과 호응한다.
- '입 아래 코'는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뜻이므로 문맥에 맞게 쓰였다.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 김광규, 「대장간의 유혹」 -
'털보네 대장간'은 화자가 찾아가고 싶은 긍정적 공간이지만, '직지사 해우소'는 부끄러운 자신이 '똥덩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부정적 공간이어서 의미가 유사하지 않다.
시는 대량 생산·소비되는 삶을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벼려 만든 연장처럼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한다.
- '플라스틱 물건'과 '똥덩이'는 모두 화자가 부끄럽게 느끼는 현재의 자신을 나타낸다.
- '찾아가고 싶다'와 '바꾸고 싶다'는 모두 대장간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소망을 나타낸다.
- '무쇠낫'과 '꼬부랑 호미'는 모두 땀 흘려 만든, 화자가 지향하는 진정한 삶을 상징한다.
언어의 사멸은 급속하게 진행된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평균 2주에 1개 정도의 언어가 사멸하고 있다. 우비크, 쿠페뇨, 맹크스, 쿤월, 음바바람, 메로에, 컴브리아어 등이 사라진 언어이다. 이러한 상태라면 금세기 말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언어 가운데 90 %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추산도 가능하다.
글에는 예상되는 반론을 제기하고 반박하는 부분이 없으므로 이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글쓴이는 언어 사멸을 사례와 수치로 곧바로 보여 줄 뿐, 반대 견해를 상정하지 않는다.
- '80만 명', '4만 명', '1,000명 정도', '90 %' 등 통계 수치를 들어 언어 사멸 현상을 설명한다.
- 하와이어와 우비크·맹크스 등 사라진 언어를 구체적 예로 들어 언어 사멸의 위기를 보인다.
- '언어도 인간처럼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며 언어를 생명체에 비유하고, 금세기 말까지 90 %가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표준 언어 예절에서는 전화를 끊을 때 '들어가세요'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므로, 이를 권장하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들어가세요'는 널리 쓰이지만 바람직한 끝인사로 보지 않으므로, 전화를 끊을 때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등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전화를 건 사람이 인사하고 신분을 밝히며, 어린 사람은 통화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예의라는 설명은 적절하다.
- 찾는 사람이 없을 때 '전해 주시겠습니까?'나 '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처럼 부탁하는 표현을 쓴다는 설명은 적절하다.
- 전화가 잘못 걸렸을 때 '죄송합니다'나 '미안합니다'로 정중히 사과한다는 설명은 적절하다.
○ 우리 사회에 ㉡ 만연해 있는 불신감을 해소해야 한다.
㉠은 책망이나 괴로움을 달게 받는다는 뜻의 甘受(달 감, 받을 수), ㉡은 덩굴이 뻗어 퍼지듯 널리 퍼진다는 뜻의 蔓延(덩굴 만, 끌 연)으로 적는다.
'고통을 감수하다'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줄 수(授)'가 아니라 '받을 수(受)'를 쓴다.
- 甘授는 '달게 준다'는 뜻이 되어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문맥에 맞지 않는다.
- 漫延은 '흩어질 만(漫)'을 쓴 것으로, 퍼져 번진다는 뜻의 '만연'은 '덩굴 만(蔓)'을 쓴다.
㉠은 과학이 이성과 감성의 분열을 가져왔다는 내용으로, 천재 개념과 예술 창조의 비밀이라는 글의 흐름에서 벗어나므로 삭제해야 한다.
글은 예술 창조가 원리·법칙에 의거하지 않아 그 비밀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천재'라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 ㉡은 예술에 전수될 비방이 없다는 내용으로 예술 창조가 법칙에 의거하지 않음을 뒷받침한다.
- ㉢은 예술가 자신도 작품의 비밀을 모른다는 내용으로 예술 창조의 신비성을 보강한다.
- ㉣은 그 비밀을 천재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는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춘향이 아뢰되 “소녀 구관 사또 자제 도련님 뫼신 후에 대비정속한 고로 대령치 아니하였나이다.”
신관이 증을 내어 분부하되 “고이하다. 너 같은 노류장화가 수절이란 말이 고이하다. 네가 수절하면 우리 마누라는 기절할까? 요망한 말 말고 오늘부터 수청 거행하라.”
춘향이 여쭙되 “만 번 죽사와도 이는 봉행치 못 할소이다.” 신관의 말이 “네 잡말 말고 분부대로 거행하여라.”
춘향이 여쭙되 “고언에 충신은 불사이군이오, 열녀는 불경이부라 하오니 사또께서는 응당 아실지라. 만일 국운이 불행하여 난시를 당하오면 사또께서는 도적에게 굴슬하시리이까?” 신관이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강변의 덴 소 날뛰듯하며 춘향을 바삐 형추하라 하니
춘향은 '충신은 불사이군이오,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옛말로 자신의 수절을 정당화하고, 사또도 난리에 도적에게 굴복하겠느냐고 반문해 사또 요구의 부당성을 드러낸다.
사또에게 도적에게 '굴슬하시리이까'라고 되물어, 수청 요구가 곧 불의에 굴복하라는 것과 같음을 부각한다.
- 신관 사또는 '수청 거행하라', '분부대로 거행하여라'처럼 명령과 위협만 할 뿐 회유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 '네가 수절하면 우리 마누라는 기절할까?'는 춘향의 수절을 조롱하는 말이지 거부감을 덜어 주려는 표현이 아니다.
- 춘향은 양쪽을 모두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만 옳고 사또의 요구는 그르다고 분명히 주장한다.
남이 혼자 배달하기 힘들어서 한 20부 떼어 주는 것을 배달하고, 월급이라고 원 배달에게서 한 3원 받는 터이라 월급을 20여 원을 받고, 신문사 옷을 입고, 방울을 차고 다니는 원 배달이 제일 부럽노라 하였다. … (중략) …
그러나 웬일일까, 정말 배달복에 방울을 차고 신문을 들고 들어서는 사람은 황수건이가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이다.
“왜 전엣 사람은 어디 가고 당신이오?”
물으니 그는
“제가 성북동을 맡았습니다.”
한다.
“그럼 전엣 사람은 어디를 맡았소?”
하니 그는 픽 웃으며,
“그까짓 반편을 어딜 맡깁니까? 배달부로 쓸려다가 똑똑지가 못하니까 안 쓰고 말었나 봅니다.”
한다. … (중략) …
그런데 요 며칠 전이었다. 밤인데 달포 만에 수건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웬 포도를 큰 것으로 대여섯 송이를 종이에 싸지도 않고 맨손에 들고 들어왔다. 그는 벙긋거리며
“선생님 잡수라고 사왔읍죠.”
하는 때였다. 웬 사람 하나가 날쌔게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수건이의 멱살을 움켜쥐고 끌고 나갔다. 수건이는 그 우둔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꼼짝 못하고 끌려 나갔다.
나는 수건이가 포도원에서 포도를 훔쳐온 것을 직감하였다. 쫓아 나가 매를 말리고 포도 값을 물어 주었다. 포도 값을 물어 주고 보니 수건이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다섯 송이의 포도를 탁자 위에 얹어 놓고 오래 바라보며 아껴 먹었다. 그의 은근한 순정의 열매를 먹듯 한 알을 가지고도 오래 입안에 굴려 보며 먹었다.
- 이태준, 「달밤」 -
'나'는 포도를 훔쳐 온 수건이를 탓하지 않고 값을 물어 준 뒤 포도를 '은근한 순정의 열매'처럼 아껴 먹으므로, 순박한 인물을 감싸는 포용적 태도가 드러난다.
'한 알을 가지고도 오래 입안에 굴려 보며 먹었다'는 대목에서 수건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화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 화자는 원 배달이 되고 싶어 하는 수건이를 조롱하지 않고 연민과 애정으로 바라본다.
- 서술의 초점은 사건의 논리적 인과보다 수건이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화자의 정서에 놓여 있다.
- 수건이가 배달 일에서 밀려나는 현실이 그려지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서술은 없다.
㉠ ㉡
屍山血海(시산혈해)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룰 만큼 격렬한 싸움을, 滄海一粟(창해일속)은 넓은 바다의 좁쌀 한 알처럼 매우 하찮고 작은 것을 뜻하므로 의미가 비슷하지 않다.
나머지 묶음은 모두 뜻이 비슷한 사자성어끼리 짝지어져 있다.
- 單刀直入(단도직입)과 去頭截尾(거두절미)는 모두 군말 없이 요점이나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 如出一口(여출일구)와 異口同聲(이구동성)은 모두 여러 사람의 말이 한결같다는 뜻이다.
- 面從腹背(면종복배)와 口蜜腹劍(구밀복검)은 모두 겉으로는 따르거나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배반하거나 해칠 마음을 품는다는 뜻이다.
친구 아들이 '과장님'이라고 부른 것은 높임 표현의 혼란이 아니라 호칭어 선택의 문제이므로 젊은 세대의 존대법을 뒷받침하는 예로 적절하지 않다.
제시된 글은 어르신 세대가 젊은 세대의 존대법이 혼란스러워 불쾌하게 느낀다는 내용이므로, 높임 어휘나 겸양 표현의 쓰임을 문제 삼은 사례가 뒷받침이 된다.
- 어른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저' 대신 '나'를 쓰는 것은 겸양 표현을 지키지 않은 존대법 문제이다.
- 선생님께 '제가 한 말씀은요'라고 하는 것은 높임 어휘 '말씀'의 쓰임을 문제 삼은 존대법 사례이다.
- 윗사람에게 '수고하세요'라고 하는 것은 윗사람에게 쓰기 어려운 인사말을 쓴 존대법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