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는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한 사건이며, 같은 왕 때 아시촌에 소경을 설치하였다.
‘이사부’, ‘하슬라주 군주’, ‘나무 사자’, ‘우산국’이 단서로, 지증왕 대의 우산국 정벌을 가리킨다.
- 상대등 제도는 법흥왕 때 처음 두었다.
- 고구려 승려 혜량을 승통으로 삼은 것은 진흥왕 때이다.
- 사방에 우역을 처음 둔 것은 소지 마립간 때이다.
㉠ ㉡
㉠은 사림원, ㉡은 정치도감이다.
충선왕은 관제 개혁으로 사림원을 두어 왕명 출납과 인사(전주)를 맡기며 개혁의 중심 기구로 삼았고, 충목왕은 정치도감을 설치해 부원 세력을 척결하고 불법 점유된 토지와 노비를 본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 교정도감은 무신 집권기 최충헌이 설치한 최고 권력 기구로, 충목왕 대의 개혁 기구가 아니다.
- 편민조례추변도감은 충선왕 관제 개혁의 중심 기구인 사림원과는 다른 기구이다.
2.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 평등권을 제정하여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3.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재정을 넉넉히 한다.
… (중략) …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관할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 (후략)
자료는 갑신정변(1884) 때의 14개조 정강이며, 정변 실패 후 청의 내정 간섭이 강화되었다.
‘흥선 대원군 귀국·조공 허례 폐지’, ‘문벌 폐지와 인민 평등권’, ‘재정의 호조 일원화’가 갑신정변 정강의 단서이다. 정변이 청군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면서 청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 박문국과 전환국은 1883년에 설립되어 갑신정변 이전의 일이다.
-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에 설치된 개화 추진 기구로 정변 이전이다.
- 제물포조약은 1882년 임오군란의 결과로 체결되었다.
밑줄 친 강습소는 신흥강습소로, 이회영 등이 독립운동기지 건설의 일환으로 설립하였다.
‘1911년 유하현 삼원보’, ‘통화현 이전’, ‘무관 양성 특별과’가 단서이며, 신흥강습소는 이후 신흥무관학교로 개편되었다.
-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무렵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았으므로, 1925년의 미쓰야 협정으로 폐교된 것이 아니다.
- 임시정부 출범에 따라 상해로 근거지를 옮긴 사실은 없다.
- 조선민족전선연맹은 중·일 전쟁 무렵 관내에서 결성된 단체로, 만주의 이 학교와 관계가 없다.
자료의 국가는 신라이며, 지방 조세를 수도로 옮기는 조운 체계가 확립된 것은 고려 때이므로 옳지 않다.
‘재상가는 녹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이 3,000명’ 등은 『신당서』에 전하는 신라 귀족의 생활상이다.
- 신라는 천문박사와 누각박사를 두어 천문 관측과 시각 측정을 맡겼다.
- 신라 촌락문서(민정문서)에는 인구를 남녀별·연령별 6등급으로 구분해 기록하였다.
- 효소왕 때 수도에 서시와 남시가 새로 설치되었다.
정몽주, 권근, 정도전 등을 가르쳐 성리학을 확산시킨 인물은 안향이 아니라 이색이므로 옳지 않다.
안향은 충렬왕 때 원에서 성리학을 처음 소개한 인물이고, 이색은 공민왕 때 성균관을 중심으로 신진 사대부를 길러냈다.
- 백이정은 원에 가서 성리학을 배워 와 이제현 등에게 전하였다.
- 김문정은 원에서 공자와 제자들의 화상, 제기, 서적 등을 구해 왔다.
- 이제현은 원의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성리학 이해를 심화하였다.
(나) 수신전, 휼양전, 공신전 세습과 증가로 신진 관료에게 지급할 수조지가 부족해졌다.
(다) 수조권을 받은 관료가 권한을 남용하여 과다하게 수취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라) 거듭되는 흉년과 왜구의 침입 등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어 직전이 유명무실해졌다.
(다)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성종 때 관수관급제를 실시해 관청이 수조권을 대행하게 한 것이 옳다.
관수관급제는 관청이 직접 조를 거두어 관료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관료의 과다 수취를 막고 국가의 토지 지배를 강화하였다.
- (가)에 대응한 과전법은 수조권 지급을 경기 지역 토지로 한정하였으므로, 전국 토지의 수조권을 관료에게 준 것이 아니다.
- (나)에 대응한 세조의 직전법은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주고 수신전·휼양전을 폐지한 것으로, 신진 관료에 대한 지급을 중지한 것이 아니다.
- (라) 이후 명종 무렵 직전법이 폐지되어 관료에게는 녹봉만 지급되었다.
1898 독립협회 활동
1899 점진학교 설립
1907 신민회 조직
1923 국민대표회의 참여
1938 투옥 끝에 사망
자료의 인물은 안창호이며, 미국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평남 강서 출생’, ‘점진학교 설립’, ‘신민회 조직’, ‘국민대표회의 참여’, ‘1938년 투옥 끝에 사망’이 안창호의 생애와 일치한다.
- 한인애국단은 김구가 상하이에서 창단하였다.
- 헤이그 특사로는 이상설, 이준, 이위종이 파견되었다.
-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한 인물은 신채호이다.
내장원이 광산, 홍삼 전매 등을 관장한 것은 갑오개혁이 아니라 광무개혁 때의 일이므로 옳지 않다.
광무개혁 때 황실 재정 기구인 내장원이 주요 재원을 장악해 황실 재정을 확충하였다.
- 갑오개혁에서는 재판소를 설치해 사법권을 행정부에서 분리하였다.
- 갑오개혁 과정에서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 337군으로 재편하였다.
- 신식화폐발행장정으로 은본위제를 채택하면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이익은 단군·기자·삼한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내세워 기자를 정통에 포함하였으므로, 기자의 조선 책봉을 부정했다는 설명은 옳지 않다.
기자에 대한 인식은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으며,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기자 정전 등을 토지 개혁과 역사 정통론의 근거로 활용하였다.
- 중국 사서에는 고구려가 기자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 고려 숙종 때 평양에 기자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 한백겸은 『기전고』에서 기자의 정전 제도에 주목하였다.
ㄴ. 양반부터 천인에 이르는 신분으로 구성된 속오군이 편성되었다.
ㄷ. 10정은 각 주마다 1정씩 배치되었는데, 한주(漢州)에는 2정이 설치되었다.
ㄹ. 5도의 일반 군현에 주둔하는 주현군과 양계 지역의 주진군으로 구성되었다.
시대 순서는 ㄷ → ㄹ → ㄱ → ㄴ이다.
통일 신라의 10정, 고려의 주현군·주진군, 조선 전기의 영진군, 임진왜란 이후의 속오군 순으로 지방군 제도가 변천하였다.
- ㄷ: 각 주에 1정씩, 한주에 2정을 둔 10정은 통일 신라의 지방군이다.
- ㄹ: 5도의 주현군과 양계의 주진군은 고려의 지방군이다.
- ㄱ: 영·진에 소속된 영진군은 조선 전기 진관 체제 아래의 지방군이다.
- ㄴ: 양반부터 천인까지 편성한 속오군은 임진왜란 이후 조직되었다.
-『고려사절요』-
밑줄 친 왕은 노비안검법을 실시한 고려 광종이며, 광종은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였다.
‘노비를 상세히 조사하여 옳고 그름을 밝히도록 명령’, ‘왕비도 간절히 말렸다’는 내용이 광종의 노비안검법 시행과 이에 대한 반발을 보여 준다.
- 구제도감은 예종 때 설치되었다.
- 문신월과법은 성종 때 실시되었다.
- 삼한통보, 해동중보 등은 숙종 때 주조되었다.
○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권업회를 기반으로 한 ( ㉡ )이/가 수립되었다. 이 단체는 이상설과 이동휘를 중심으로 하여 독립전쟁을 준비하였다.
○ 1915년 의병 계열과 애국계몽운동 계열의 비밀 결사들이 통합하여 결성된 ( ㉢ )은/는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군자금을 마련하던 중 경찰에게 조직이 드러나 해체되었다.
○ 경상도 일대에서는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이 중심이 되어 ( ㉣ )을/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가담하여 각 지방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 ㉡ ㉢ ㉣
㉠ 중광단, ㉡ 대한광복군정부, ㉢ 대한광복회, ㉣ 조선국권회복단이다.
각 단체를 지역과 단서어로 확정할 수 있다.
- ㉠: 북간도에서 대종교가 만들고 북로군정서로 발전한 단체는 중광단이다.
- ㉡: 연해주 권업회를 기반으로 이상설·이동휘가 중심이 된 단체는 대한광복군정부이다.
- ㉢: 1915년 비밀 결사들이 통합해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한 단체는 대한광복회이다.
- ㉣: 경상도에서 윤상태, 서상일 등이 조직해 3·1 운동에 가담한 단체는 조선국권회복단이다.
자료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한 해석으로, 이와 관련된 사건은 사초를 문제 삼아 사림을 축출한 무오사화이다.
‘조룡은 세조’, ‘의제는 노산군(단종)’이라는 해석은 조의제문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했다고 본 훈구 세력의 논리로, 연산군 때 김일손의 사초에 실린 이 글이 문제가 되었다.
- 폐비 윤씨 사건 관련자와 사림이 제거된 것은 갑자사화이다.
- 조광조 일파가 제거된 것은 중종 때의 기묘사화이다.
-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세운 것은 중종반정이다.
ㄴ.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세운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는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등이 있었다.
ㄷ. 정부는 외국어 교육 기관으로 동문학을 설립하였다.
ㄹ. 교육입국조서가 반포되었고, 사범 학교와 외국어 학교의 관제가 제정되었다.
근대 교육에 대한 설명은 ㄱ, ㄴ, ㄷ, ㄹ 모두 옳다.
개항 이후 민간·선교사·정부가 각각 근대 학교를 세웠고, 갑오개혁 때 교육입국조서로 근대 교육 제도가 마련되었다.
- ㄱ: 원산학사는 덕원 주민들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이다.
- 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계통 학교이다.
- ㄷ: 동문학은 정부가 세운 외국어(영어) 교육 기관이다.
- ㄹ: 교육입국조서 반포 후 한성 사범 학교와 외국어 학교의 관제가 제정되었다.
밑줄 친 위원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로, 제헌 헌법의 특별 규정에 따라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구성되었다.
‘친일 경관 노덕술’, ‘대통령이 삼권분립 위배를 주장’이 단서로, 이승만 정부의 비협조 속에 활동한 반민특위를 가리킨다.
- 남북 협상은 김구, 김규식 등이 추진하였다.
- 반민특위는 1949년 해체되어, 1952년의 부산 정치 파동과는 관계가 없다.
- 3·15 부정 선거 규탄 시위는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어진 학생·시민 시위이다.
ㄱ. 무위영을 설치하였다.
ㄴ. 『동문휘고』를 편찬하였다.
ㄷ. 수성윤음(守城綸音)을 반포하였다.
ㄹ. 한구자(韓構字)와 정리자(整理字)를 주조하였다.
밑줄 친 왕은 정조이며, 정조의 업적은 ㄴ 『동문휘고』 편찬과 ㄹ 한구자·정리자 주조이다.
‘계지술사’,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 폐지(신해통공)’가 정조를 가리키는 단서이다.
- ㄱ: 무위영은 고종 때 군제 개편으로 설치되었다.
- ㄷ: 수성윤음은 영조 때 반포되었다.
ㄴ. 고구려가 요동의 서안평을 공격해 차지하고, 낙랑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었다.
ㄷ.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략하여 궁실을 불사르고 5만여 명을 포로로 붙잡아 갔다.
ㄹ. 고구려가 후연을 공격하여 요동으로 진출하고, 동북쪽으로는 숙신을 복속시켰다.
사건 순서는 ㄱ → ㄴ → ㄷ → ㄹ이다.
동천왕, 미천왕, 고국원왕, 광개토 대왕 순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와 중국 세력의 관계이다.
- ㄱ: 관구검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함락된 것은 동천왕 때이다.
- ㄴ: 서안평을 차지하고 낙랑군을 몰아낸 것은 미천왕 때이다.
- ㄷ: 전연의 모용황이 침입해 궁실을 불사른 것은 고국원왕 때이다.
- ㄹ: 후연을 공격해 요동으로 진출하고 숙신을 복속한 것은 광개토 대왕 때이다.
대화숙을 설치해 사상범에게 전향을 강요한 것은 1940년대 민족 말살 통치기의 일이므로 문화 통치의 내용으로 옳지 않다.
1920년대 문화 통치는 3·1 운동 이후 유화책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감시와 통제를 강화한 기만 통치였다.
- 헌병 경찰제가 보통 경찰제로 바뀌었으나 경찰의 수와 기구는 오히려 늘었다.
- 치안유지법을 제정해 사회주의 등 사상과 사회 운동을 탄압하였다.
- 문관도 총독에 임명될 수 있게 하였으나 실제로는 무관 총독만 부임하였다.
-『삼국유사』-
고조선과 제(齊)의 교역은 『관자』 등 중국 기록에 전하는 내용으로, 단군 신화가 전하는 내용이 아니므로 옳지 않다.
자료는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 신화로, 일연은 이를 『고기』를 인용해 수록하였다.
-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는 『고기』를 인용한 것이다.
- 단군이 중국의 요 임금 재위 시기에 건국하였다고 전한다.
- 환웅이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세상을 다스렸다고 전한다.